최근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그리고 그 추진 배경 및 절차에서 폭넓게 드러나는 현 정부의 반민주성과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이미 수차례 지적해 온 바 있다.
그런데, 현재 이슈의 진단에 있어 '국정화 반대율이 높은 청년층이 정작 투표율은 낮기 때문에 난 사달'로 규정하는 것을, 국정화 지지 측은 물론이고 반대 측에서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젊은이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정작 투표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 일련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국민 책임론 내지는 '20대 책임론'이라고 일컬음과 동시에,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함을 선언한다(본래 '20대 책임론'은 민주화 이래 뿌리깊은 세대갈등론에서 청년세대의 각성을 촉구해 온 진보진영의 견해를 폭넓게 일컫는 단어이나, 여기에서는 현재의 이슈와 관련지어 보다 협의의 의미로 사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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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백 번 양보하여, 민주 정치가 이상적으로 운영되는 사회에서의 일상적인 정치적 의결사항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하는 국민들에게는 '표로 이야기했어야 한다'라고 성토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선거로 당선된 정치인들이 몇 년 동안 국가를 운영하며 정책을 추진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그러한 성토는 모든 정치인들이 수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본인의 선거 공약대로만 정치 활동을 한다는 아주 비현실적인 가정 하에서나 유의미한 것이다. 선거 공약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던 정책을 추진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국정화 논란도 그 예 중 하나이다.
또한, '표로 이야기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대한민국의 위정자들은 헌법에 명시된 원리에 기초하여 민주주의적으로 정치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국민들의 역사관을 일원화시키는 시도로서 사상의 자유 침해 및 학계 침체 유발 우려가 매우 크고, 정상적인 국민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비밀 TF팀을 조직하고 예비비를 편법으로 집행하여 진행되고 있으며, 급기야는 군 당국까지 월권하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등 헌정 민주주의의 가치를 침해할 소지가 매우 크다.
대한민국이 민주 공화국인 이상, 반대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민주주의의 가치에 반하는 정책 추진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즉, 민주 국가에서 반민주주의적인 정책이 추진되는 데 대한 본질적인 책임은 반민주주의적인 위정자에 있는 것이며, 반대자들의 책임은 위정자들을 견제하는 데 실패한 책임 정도로 되는 것이 적절하다(물론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부에서 후술한다). '20대 책임론'은 사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비판의 화살을 엉뚱한 데 돌리는 주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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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선거 때 어느 후보가 민주주의 침해 소지가 있는지 사전에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 않았냐는 비판, 예상을 했다면 왜 투표하지 않았냐는 비판, 심지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하고 확정고시한 지금도 인터넷으로나 반대하고 왜 딱히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는 비판 등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비판들은 모두 일맥상통하는데,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문장으로 거칠게 요약해 볼 수 있다. 국민의 주권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민주성이 어느 정도 침해되어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문장을 바탕으로 성급하게 국민 미개론을 주장하기 이전에, 그러한 국민 '수준'의 형성 과정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5000만 가짓수의 너무나도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국민이라는 추상적인 집단에 일률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한 일로서, 사실상 아무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과 동일한 행동이다. 그렇게 다양한 가정 환경적, 지적, 지역적, 시대적, 사상적 배경을 가진 국민들이 대체적으로 '정치적 무관심',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낮은 민감도'라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주권자로서의 민주시민이라는 의식이 부족해서이며, 이는 바로 민주시민교육의 부재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또한 관념적 추론이 아닌 실증적인 측면에서도 민주시민교육이 매우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20세기 말까지 계속되어 온 군사 독재 시절 국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면서, 헌법은 무시되어 왔고 심지어 아예 바뀌어 버린 적도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잘 이루어질 수 없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시민교육은 사회 시간에, 일반적인 학교 공부와 같은 레벨에서 잠깐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따라서 국민 수준을 언급하며 정부의 반민주주의적 처사에 대해 '국민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계속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주장하는 것 역시 적반하장격인 주장이 된다. 공교육에서 적극적 반민주주의는 아니더라도(일선 교사들이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긴 하지만), 민주시민교육을 소극적으로만 해 온 탓에 국민의 주권의식이 부족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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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론적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우선 문제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어떠한 후보에 대해 20대 전체가 반대하고 60대 대다수가 찬성하며, 그 모두가 투표권을 행사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해도 20대 유권자 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리고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유권자 수의 격차는 중장기적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군사독재 하에서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체험하지 못한 고령 인구의 비율이, 민주주의를 체험한 청년 인구(적극적 민주시민교육은 여전히 거의 부재하지만)의 비율과는 대조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구 구조상 청년 세대의 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득표 수에 따라 움직이는 민주주의 정치가들의 입장에서는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작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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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심각하여 정치 참여율이 매우 낮으며,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민감도 역시 매우 낮다는 것이 우려할 만한 점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율이 낮다'는 것을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련의 반민주적 사태의 '원인'인 것으로 진단할 수는 없다. 사태의 원인은 학계와의, 일반 국민들과의 소통을 거부하고 국정화를 강행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 다양한 원인에 의해 낮은 정치 참여율이 우리에게 현실로 주어져 있는 이 상황에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청년들을 향한 지적은 '참여율을 높이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태의 원인이 아닌 '해결'을 위한, 참여 독려로의 구호로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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