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학생회에서 예비군 버스 대절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논란이 발생했다. 진행하는 것이 오히려 고마운 일이고 진행이 강제될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논란이 발생한 이유는, 학생회 운영위원회 내에서 사업을 진행하지 않게 된 사유로 논의된 것 중에 하나가 “국가 폭력에 부당하게 동원되는 학내 구성원을 위한 저항활동의 일부라고 하면 온전히 설득이 되는데, 1) 강제 동원 자체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편의만을 위한 사업임에도 극히 소수만을 대상으로 함”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사유가 해당 학생회 운영위원회에서만 논의되고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아마 비공식적 경로로 유출되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글을 쓰는 첫번째 이유는 이 사유에 대한 직접적인 반론이 운영위원회 내에서 없었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극적 동의들이 있었다고 한다. 두번째 이유는 이 논란에 대한 나의 비판적 평가가 내가 평소에 늘 하고 싶은 말과 맞닿은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행위와 사회적 규약에 폭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은 분명히 매우 정확하며 중대한 사회학적 통찰이다. 그러나 사실 그 말은 ‘모든 현상은 원자들의 상호작용에 불과하다’라는 말만큼이나 원론적인 말이다. 그 말이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 말을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집단 사이에서는 그 말을 반복하는 것 자체로는 개별 현상에 대한 지식이 증대되거나, 실천적 대책이 제시되지 않는다.
어떤 사건이나 행위, 대표적으로 학내 인권폭력 사건 등에 대하여 ‘이것은 폭력’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원론적인 선언에 불과함에도 사실 중대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것을 공적으로 폭력으로 규정함으로써 대응을 하겠다는(혹은 그 대응을 지지하겠다는) 의도가 동반되어 있는 실천적인 선언이기 때문이다. 선언에는 구체적인 실천의 가능성이 동반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에 어떤 행위에 대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의 가능성(나는 이것을 ‘사건성’이라고 부른다)을 상상할 수 없고 그것이 폭력이라는 선언 자체만 가능하다면, 그 폭력은 그 정도의 중대성만 가지는 것이 된다. 반대로 말하면, 중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이것은 폭력’이라는 선언에만 그친다면, 그 발화자는 그 문제의 ‘사건성’을 부정하고, 원론적인 수준의 인식만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총장선거 출마자가 학내 인권폭력 사건에 대해 ‘이것은 폭력’이라고 원론적으로 말하는 데에 그치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쉽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구체적인 실천을 하지 못할 거라면 조용히 하라’는 억압적인 말과는 거리가 멀다. 실천 방안을 제시하지 않는 모든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밀접한 문제로의 이행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과, 오직 관념적이고 상징적인 이해에 그치는 것은 그 전제와 접근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이것은 언어가 가진 상징과 서사 기능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구조주의를 내가 경계하는 이유와도 관련이 깊다.
군대와 폭력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순히 전쟁을 상징한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실제 근대적 국민국가의 핵심 원리가 군대의 폭력 독점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군대 내에서 실제 폭력이 매우 농축되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 언어 속에서 군대는 분명히 폭력에 대한 하나의 거대한 상징으로 (그리고 또한 자주 폭력적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상징은 언어 속에서만, 그리고 언어 행위를 통해서만 폭력적 효과를 발휘한다. 우리는 실제로 존재하면서 사람들에게 강제력을 발휘하는 군대라는 집단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군대를 실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집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담지한 상징으로 보고 관념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군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폭력적'인 사유 방식이다. 우리는 폭력에 대해 비폭력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상술한 학생회 운영위원회의 논의를 비판하는 관점에서, 우선 버스 대절 사업이 ‘강제 동원 자체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편의만을 위한 사업’이라는 전제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예비군 버스 대절 사업은 분명히 군대가 학우들에게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학우들이 보다 적은 비용으로 보다 편하게 다녀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응원하는 의미를 가지는 사업이다. 그것을 국가 폭력에 대해 적극적으로 순응하는 의미로 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르며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다(물론 학생회의 인식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기는 하다). 동원 대상자가 군대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하는 것이 쉽지 않은 대한민국의 환경에서, 예비군 버스 대절 사업을 운영하면서 군대가 국가 폭력이라는 인식을 학생회가 명시적으로 언급한다면 사업 참여에 대한 학우 일반의 부담이나 거부감이 엄청나게 가중될 수밖에 없으므로, 또한 그것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군대는 폭력이다’는 선언 자체만으로는 개별 현상에 대한 지식이 증대되거나, 실천적 대책이 제시되지 않는다.
만약 예비군 버스 대절 사업이 국가 폭력에 대한 순응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진행하지 않는 것이 국가 폭력에 대한 일종의 보이콧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이콧의 의미는 ‘보이콧을 한다’는 선언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대상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입히는 데 있다. 그러나 예비군 버스 대절 사업을 진행하지 않음으로써 병무청에, 혹은 군대라는 동원체제 자체에 끼칠 수 있는 손해는 전혀 없다. 버스 대절을 진행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효과는, 동원 당사자인 학우들이 제공받을 수도 있었던 편의를 제공받지 못하고 원래대로 비용과 수고를 들이게 되는 것뿐이다. 따라서 버스 대절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의도대로 국가 폭력에 저항하는 정치적 효과조차도 갖지 못한다.
다수의 사람들은 안보 문제와 관련한 군대의 필요성에 대해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동의하는 편이며, 군대에 대한 거대담론을 전개할 때에는 (그 필요성에 대한 비판적 논의를 당연히 포함하여) 그런 측면까지 고려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내가 진보적 담론 일각의 나이브한 평화주의를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불편함과 동시에 이러한 문제점까지 경험한 예비군 대상자 학우들은,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부정적인 의미에서 ‘정치적인’, ‘이념적인’ 이유로 사업이 무산되었다고 느낄 것이다.
결론적으로, 예비군 버스 대절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로는 학생회의 행정력 투입이 어려운 상황이고 다른 사안과 비교하여 중심적인 의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 진행을 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가 더 솔직하며 전략적으로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개 전의 최종 단계에서 해당 사유를 삭제한 해당 학생회 운영위원회의 조치는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예비군 버스 대절 사업을 진행하지 않는 이유로는 학생회의 행정력 투입이 어려운 상황이고 다른 사안과 비교하여 중심적인 의제가 아니기 때문에 사업 진행을 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가 더 솔직하며 전략적으로도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공개 전의 최종 단계에서 해당 사유를 삭제한 해당 학생회 운영위원회의 조치는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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