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재명 대통령이 "환빠" 질문을 한 상대방이 그 뉴라이트 행보에 논란이 있는 박지향 교수라서 논의가 꼬인 점이 있다. 야당 정치인들까지 이재명 비판에 가세하니 정부여당 측 지지자들은 진영논리의 영향을 받았는지 이재명 대통령 발언을 무리하게 옹호하고, 심지어 식민사관 타도와 민족사학 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유사역사학 자체에 힘을 실어주려는 듯한 흐름까지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 발언의 진의에 논란이 있으나, 일단 말 그대로 읽는다면 유사역사학을 주류 사학과 동등한 링 위에 올려 주는 발언인 것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과거에도 이덕일의 책을 읽었다고 올리기도 하고 '식민사관'도 종종 언급하는 등 유사역사학에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정말로 중립적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경청하려고 물어본 것일 수도 있고, 그러면 조금은 더 낫지만, 사실 유사역사학과 역사학 사이에서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 자체가 유사역사학에 우호적인 것이므로 긍정적으로 평가되기 어렵다.
그 근거로, 유사역사학에 친화적인 인터넷매체들은 이재명 대통령 발언에 대해 기다렸다는 듯 논평을 하면서 아래와 같이 굉장히 기대감 섞인 글들을 게재했다. 트래픽을 늘려 줄 것 같아서 클릭하지는 않고 검색창에서만 봤다.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놀랍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곧 기대가 된다. 이제는 '환빠'라는 조롱의 언어가 아니라, 공정한 검증과 ..." (환단고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대통령 - 한문화타임즈)
"이재명 대통령의 입에서 '환단고기'와 '환빠'라는 단어가 직접 거론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역대 그 어떤 대통령도 공식 ..." (사상 최초로 '환단고기'를 언급한 대통령, 역사 광복의 서막인가 - 한문화타임즈)
참으로 아찔해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렇게 장차관, 고위공직자, 일반 시민 등이 함께하는 간담회를 자주 연출하는 편인데, 여태껏 그 상황들에서 대체로는 디테일한 상황 파악을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런 행사들에서 종종 굳이 안해도 될 다소 가벼운 농담이나 튀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이 보이기도 하는데, 본인 스타일인 것 같지만 그것들 중 일부는 논란을 자초하기도 한다. 최근 1-2주 사이에 그런 게 유독 크게 보도되어 이런저런 논쟁을 낳은 경우가 많이 보이는데 (북한 억류자 처음 들어본다, 언어순화 등), 이번 일도 그 중 하나라고 보아야겠다.
이덕일 류의 유사역사학은 단순히 그들만의 장사를 넘어, 중앙 정계에 있는 정치인들과 그 지지세력에게 상당히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사학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기 위해 남용되는 '식민사학', '강단사학'이라는 단어가 그들 주변에서는 이미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잡아 있을 정도이다. 주류 사학계에서 유사역사학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오래 노력해온 분들의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정치계에도 전달이 되면 좋을 것 같다.
이들의 영향은 중앙 정계뿐 아니라 미시적, 지역사적인 부분에서도 상당히 마음 아픈 형태로 일어난다. 소외 의식과 민족 의식을 자극해서 주류 사학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하고, 이것이 실제 역사학적 작업을 왜곡하거나 좌초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공교롭게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전라도 천년사>, <김해시사> 출간을 둘러싼 사건들도 그 예시이다. 이는 조롱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해결이 되는 것이 아니고 아주 세밀한 실천적 이성을 필요로 하는 논쟁인 것 같아서 꼭 팔로업하고 싶은데, 지난번에도 이에 대해 공부해 보겠다고 페북에 썼지만 아직은 문헌들만 찾아봐 둔 상태다.
이들뿐 아니라 맨 아래 공유한 글(기경량 교수님) 말미의 추천서적도, 누가 유사역사학 얘기를 하면 나도 몇 마디 얹을 수 있도록 한번 읽어 봐야겠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