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 단체의 과학기술 인식을 비판하는 소위 과학주의자들이 기후위기 문제에 진정성이 없을 거라고 간주되곤 하던데, 이 역시 굉장히 이분법적인 관점이라고 본다. 예컨대 나는 기후변화를 그나마 늦출 유일한 현실적 방법이 원전 위주의 에너지 시나리오이며, 기술이란 적절한 감시 하에 적극적으로 쓸수록 더 안전해진다고 생각하므로 탈핵 기조에 부정적이다. 이에 대해선 조만간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성 있는 환경주의적 실천과 감시활동을 해왔으면서도 원전에 대해 전향적인 의견을 가진 단체는 찾기 어려우며, 원전에 친화적인 단체들은 태생상 환경주의적 의제생산과 실천보다는 전문지식에 천착하는 양상을 보이는데다 공적인 설득력과 파괴력이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하고있다. 이렇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그 어느 진영과도 결정적인 지점에서 공감대가 안 맞다고 느낀다. 이미 도래한 비가역적 기후변화라는 컨센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도 이런 문제로 붕 떠 있는 사람이 나 말고도 굉장히 많을 것이다.
비단 원전이라는 단일 의제뿐 아니라, 과학기술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고, 동의되지 않는 주장을 볼 때 개별 논거뿐 아니라 기저에 깔린 그러한 인식의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감시자로서의 공헌을 인정하면서도 대부분의 환경단체와 결정적인 공감대가 안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게 '내가 이공학도이고 그들이 비과학적이어서'는 분명히 아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지만... 과학 vs 비과학의 단순한 도식 하에서 과학을 자처하며 비과학 쪽을 공격하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는 과학주의적인 모습이 실제로 도처에서 보이고, 나 또한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한갓된 과학주의적 의식이 종종 그러한 방향을 향함을 부정하기 힘들므로 딱히 할 말이 없어지기도 한다.
이들은 대개 이공학도로서의 솔리드한 자기인식을 바탕으로 개별 과학지식, 혹은 과학분야의 내적 논리가 사회적으로 수용되기를 기대하나 그것이 실패함으로 인해 매번 실망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고립되고 방치되어왔다. 슬프게도, 사회는 이공학도들이라는 '집단 아닌 집단'이 그토록 수호하려 하는 과학지식의 정확성(?) 그 자체에 딱히 관심이 없으며 그것을 수호하는 데 별로 중대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것 같다. 이는 과학적 지식과 기계론적 세계관에 애정을 가지고 그것을 판단의 주된 근거로 삼는 이들의 마음속에 엄청난 불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공학도가 훈련받는 교과서적 과학지식들과 현장 전문지식들은, 냉정히 말해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과학기술에 대해, 그것과 관련이 있(다고 간주되)는 여러가지 기술적 산물과 그를 둘러싼 갈등 및 의사결정 구조 하에서 담론을 생산해내는 역량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시피하다(물론 그러한 담론을 서포트하는 개별 주장의 근거로서 반드시 필요하기는 하겠다). 또한 이공학도라고 과학적인 것도 당연히 아니다. 따라서 상술한 불만은 이러한 공론장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거의 다뤄지지 못하며 오히려 종종 웃음거리가 된다.
반면에 환경운동은 현실적인 갈등과 의사결정에 오랫동안 개입해왔으며 대단히 실천적이다. 또한 과학'주의'는 대체로 경계하지만 필요하다면 과학기술에 얼마든지 근거를 두는 등 상당히 다층적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말해 환경운동은 환경운동이지 과학도 반과학도 아닌데, 환경운동 전반에 걸쳐 축적된 지식과 활동에 대해, 그 프로세스를 참여하거나 따라가본 경우가 아닌 이공학도 일반의 입장에서 개별 논거에 대한 의문 제기 이상으로 어떤 파괴력있는 뭔가가 가능하겠는가. 과학지식 한 꺼풀로는 이길 수가 없는 것이며 사실 딱히 대립하는 관계조차 아닐 수 있다. 또한 이긴다 해도 그것이 그 자체로 공적으로 의미있는 실천적 대안을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형태가 되기란 현재로서는 어려워보인다.
그러나 충분한 근거를 갖지 못한 말이 유통되는 걸 볼 때 견디지 못하는, 그러한 종류의 열망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으며 그것이 건강하지도 않다. 의제 생산을 안 하면서 맘에 안 드는 걸 비판하기만 한다는 지적도, 실현된 모습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곱씹어 볼수록 솔직히 부당하다. 의사결정의 근거가 이상하면 당연히 시정해야 하고, 그것을 위한 문제제기는 대안을 따로 가져오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그러나 그러한 한에서) 충분히 의미있지 않은가.
이와 같은 상당히 일반적이고 정당한 열망이 뭔가 엉성한 시민운동 코스프레(?)로 이행하여 비웃음을 사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고 건전한 방향으로 가게 하려면, 결국 과학지식에 애정이 있는 이공학도라는 '집단 아닌 집단'의 추상적인 의지를 실질적으로 건전하게 구현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그러한 의지 자체가 거시적인 중대한 역할을 갖기 어려우며, 사회적 구성물로서의 과학기술을 둘러싼 싸움에서 개별적이고 미시적인 근거 정도로 작용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제 위치를 찾아가도록 할 때 실현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히 정치적인 목표를 달성하기를 원하면서 정작 정치문법을 거부하고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자처하는 모순적인 경향도 극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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