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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31일 일요일

감사원장의 돌출발언 관련: 사적 신념에 따른 공적제도의 임의적 해석을 경계해야한다

국회의원이나 정무직 고위공무원의 행위는 방어적이고 원칙적인 헌정질서의 수호와, 좀 튀는 정무적 판단 내지는 개인적 신념의 표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최재해 감사원장의 이번 발언은 그런 면에서 좀 균형을 잃었다고 보인다. 감사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는 발언은 돌고 돌아서 맞는 말일 수도 있기는 하다. 감사원이 제 역할을 못하면 공직 기강이 무너지고 국정운영이 파행으로 치달을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여전히 그의 개인적 해석일 뿐이며, 감사원의 기본적인 역할은 견제하고 감찰하는 것이므로 엄밀히는 틀린말이다. 국정운영을 지원하는 것은 대통령실과 총리실 등이지 감사원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당 의원들마저도 감사원장의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고 수정의 기회를 주었다.


조국사태 이후로 추미애 장관 등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찍어내기할 때에 윤석열총장의 여러가지 발언들 중에서도, 공적으로 부여받은 검찰총장 직책으로서 수사역량 유지를 위해 할만한 대응들을 넘어서 지나치게 개인적 소신이 드러나는 발언들이 꽤 있었다. 그때부터 딴생각이 있었다 이런게 아니라, 철저히 조국 수사 및 검찰조직에 대한 발언들도 묘하게 그랬단얘기다.


그리고 대선 과정 및 대통령 당선 이후 여가부 폐지를 둘러싼 정부여당 고위정치인들의 의견들에서도, 관련 제도와 기관이 지금처럼 자리잡게끔 한 모종의 헌법적/정치적 합리성의 발전과정을 무시하고 '사적 신념에 따라 임의로 재해석하고 재배열해서' 힘을 빼려는 특유의 인식이 드러난다.


특히 대통령에게서도, 이준석 대표에게서도 여러차례 발언에서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여성 권익 문제는 고유의 독립된 영역을 가진 이슈가 아니며 각 부문별로 쪼개서 다루면 충분하다는 식의 인식이다. 여성부 존립을 둘러싼 축적된 논의속에서 일정 시점 이후로는 이러한 인식의 출처를 찾기 힘들다.


물론 여가부가 설령 폐지되더라도 관료제적 합리성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면서 각 사업이 가장 적절한 부처로 이관될것이고, 그러한 임의적 견해에 의한 재배열의 폐해는 약간은 완화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재해석과 재배열은 의제들을 추진하는데 있어서의 일관성과 동력을 많이 훼손하게 되므로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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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8일 목요일

나노입자 용액의 발색 원리, 그리고 대통령 시찰보도 논쟁

나노입자는 그 크기가 클수록 양자화된 에너지 사이의 간격이 작아서 더 낮은 에너지의 빛 (파란색~빨간색 중 빨간색쪽) 을 방출하게 된다. 일반물리학 시간에 첫 양자역학 문제로 배우는 '상자 속 입자 (무한 퍼텐셜 우물)'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물감처럼 색깔별로 각각 만드는 게 아니라 똑같은 물질, 똑같은 원리로 생산하는 나노입자들인데도, 크기만 바꾸어서 색깔을 제어할수 있다는 건 공학적 장점이 무척 많다.


물론 저 회사의 경우 나노입자를 만드는 목적이 색깔을 내는쪽은 아니며 약물전달 같은 의생명쪽 응용이지만, 선명하게 색이 보이는 원리 자체는 비슷할 것이다. 또한 나노입자의 크기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기에 실질적인 유용성도 있다.


사람 1명, 문구: '전자신문 나노 약물 입자 크기 측정 시연하는 윤석열 대통령 발행일 2022.07.27 16:09 f URL ""빠진 치아" 있는데 이제껏 "임플란트" 미뤘다면?! 250만원, 고반발 금장 아이언세트, '60만원'대 72% 할인 판매! 간'의 이미지일 수 있음


문구: '2nm 6nm 파장에 따른 스펙트럼'의 이미지일 수 있음


기사의 장면은 그런 나노입자 콜로이드의 색깔 분포를 바탕으로 입자의 크기 분포 (평균크기 및 균일성) 를 추정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당연히 윤석열 대통령이 육안으로 하는건 아닐거고(...) 기계와 기계 사이에 샘플 옮기다가 색깔 신기해서 한번 봤것지. 암튼 나노입자 크기가 보이는 거냐며 초시력이라고, 과한 연출이라고 놀릴 꺼리는 아닌 듯하다.


+ 그래도 이런 걸 체험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것 자체보다는, 그래서 이 회사가 무엇에 강점이 있는 곳이고 정확히 뭘 하는 장면인지 해설해 주는 식으로 기사가 나간다면 이런 시찰(?) 보도가 더 유익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아쉬움은 있다. 거의 모든 기사에서 윤대통령이 시연하고 있다 라고 한줄씩만 써두니, 대통령만 보이고 시찰 행사 취지가 사라져버리는 점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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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언이 권장되는 정치문화...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나

대통령의 지지율이 아무리 바닥을 쳐도 야당인 민주당이 반사 이익을 볼 거라고 전혀 기대가 안 되는 게... 정권에 대해 총기있고 실력있는 비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술자리에서나 할 법한 우악스러운 비판들, 무척 서툴러서 오히려 비웃음을 사는 비판들만이 주로 보이고. 심지어 민주당 차기 대표로 유력한 분은 "저학력·저소득층, 국민의힘 지지자 많아" 이런 발언으로 사서 욕을 먹고 있다.


계급, 성별, 나이 등에 무관하게 모든 유권자를 신성시하다시피 해야 하는게 (적어도 전략적으로) 정치인의 기본 덕목 아니었나? 정동영 노인발언이 당시 초대형사고였던 이유도 그거고. 근데 지난 정부 들어서 설훈 의원 같은 사람들이 심심하면 청년 소환해서 패고 그러던 것도 제대로 심판 안 받더니만... 이젠 이재명 정도의 체급 되는 정치인마저 거리낌없이 이런 말을 한다.


사실 특정 정당 지지자들끼리 모여있을때 서로간에 encourage 한답시고 이런식으로 히히덕대는 (혹은 "솔직히 맞는말이긴 하지 않냐"라는) 오만한 발언들 나오곤 하는거 모르는 바가 아니다. 민주당만 그런 것도 아니다. 근데 그런 발언이 나오더라도 재빨리 자제되는 것, 아니 최소한 유력인사의 입에서 안 나오는 건 기본중의 기본인데 컬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컬쳐도 컬쳐지만 그 이전에 이재명 본인의 인품 문제일 수도 있음. 대선 거치면서 국민들의 우려 사는 부분들 많이 바꾸고 희석시키고 하는거 보고 호불호를 떠나 대단하긴 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었는데, 끝나자마자 바닥을 모르게 다시 이상해지는듯.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른 당대표후보들이 인지도나 인기나 여러 면에서 밀리는 모양.


반복적인 망언 하더라도 아예 만성화 돼서 '저 사람은/저 당은 원래 저렇지 뭐' 이런 느낌으로 별 감흥이 없게 되어버린다면 그 또한 괴이한 평형점이겠으나... 당신들은 그래도 될 만큼 힘있고 믿는구석 있는 권력집단이 아니지않나. 민주당이 고소득/고학력자 위주로 지지받는다고 치더라도 (그게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그건 공고한 권력을 얻었다는 뜻이 아니라 지지층이 한정된다는 뜻이니까. 또한 누가 그런 당을 마음속 깊이 지지하겠으며, 그런 상태가 국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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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7일 수요일

NEST meeting 발표 후기 (220722)

지난 금요일에는 약 1년만에 NEST 미팅에서 발표를 했다 (발표자료: 아래에 임베드). 지난번과 달리 zoom이 아닌 오프라인 현장에서 발표했는데, 현장에는 고등과학원 선생님들만 오셔서 옹기종기 진행을 했지만 줌으로는 좀더 많은 분들이 들으신 모양이다. 비록 informal한 시간이지만 통계물리 분야 교수님들, 박사님들께서 한 줄 한 줄 봐주시기 때문에 준비도 무척 디테일하게 하게 되고, 발표 과정에서의 디스커션도 다른 어느 발표보다도 알차게 도움이 된다.


나는 저번 발표(블로그 게시물 링크)에서처럼 이번에도 thermodynamic geometry (이하 TG. 합의된 약어는 아니며 임의로 줄인 것임) 쪽 논문을 리뷰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시스템의 거시적 상태를 정의하는 파라미터 (온도, 압력 등) 쌍들의 모임이, 그 곡률이 명확한 역학적/에너지적 의미를 갖게끔 어떤 다양체를 이룬다는 것이 TG의 핵심적인 관찰이다.


원래 이쪽 분야는 Ruppeiner geometry, Weinhold geometry 등의 이름으로 평형 시스템의 거시적 열역학에 대해 먼저 수립되었고, 액체-기체 상전이나 이징 모형과 같은 교과서적 모형에 대한 기하적 재해석뿐 아니라 블랙홀 등에 대한 최신 연구들에도 꽤나 활발히 적용이 되었다. 다만 상전이에서 나타나는 불연속점이나 미분불가능점 같은 singularity에 대해, 이론 물리학의 자랑할 만한 방법론으로서 잘 정립된 재규격화군(RG) 등에 비해서 이런 TG가 얼마나 좋은 설명력과 새로운 시야를 제공할지는 의문인 상태다.


단적으로 말해 TG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열역학적 현상을 매니폴드 위에서 일어나는 걸로 취급할수 있더라 라는 재밌는 해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하에서도 서술하겠지만 그러한 재밌는 포말리즘이 연구자를 매혹시키고 계속 공부를 하게끔 한다. 분포가 오직 거시적 파라미터에 의해 간단히 결정되기 때문에 이들 시스템의 기하학은 피셔 정보량을 메트릭 삼는 정보기하(information geometry)와 동등하기도 하다.


아무튼 그러다가 비평형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확률열역학이 발달되면서, 평형으로 relax되고 싶어하지만 외부 제어입력 때문에 계속 평형에서 조금 떨어진 채로 evolve되는, 요동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계들을 선형근사해서 TG로 다루는 연구들이 진행되었다. 이미 잘 정립되어 있는 linear response theory (LRT) 가 여기에서 적극적으로 쓰여, 물리문제를 어떠한 기하문제로 바꾸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잘 guide를 해준다.


시스템을 제어해서 처음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기는 작업을 어떻게 하면 적은 비용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이런 궁금증은 꽤나 응용가능성이 많은 연구문제다. TG에 따르면 그런 에너지적 비용이, 매우 자연스럽게 파라미터 다양체 상에서의 '길이'와 직접 관련지어 써진다.


멀리 옮길수록 비용이 많이 들테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는데, TG의 message는 그것보다는 약간 더 nontrivial하다. 목표로 하는 처음 상태와 나중상태가 정해져 있더라도, 어느 경로를 거쳐서 가는지를 여전히 무한히 다양하게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양체가 시스템의 역학적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경로를 거쳐야 마찰 등에 의한 에너지적 비용 발생을 최소화하면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말하자면 매우 추상적으로 정의된 휘어진 공간 상에서 길이를 최소로 하는 '직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게 TG의 핵심적 역할이다. 이 경우에 길이를 정해주는 메트릭 텐서는 정보기하와는 약간은 다르게 된다.


더 나아가서, 같은 경로를 따르더라도 어느 부분에서 빠르게 가고 어느 부분에서 느리게 가느냐에 따라 에너지적 비용이 달라질 수 있다. 비록 LRT 영역이라 어차피 매우 느린 상황이긴 하지만, 그 안에서도 이러한 time-parametrization의 이슈는 어느정도 다뤄질 수 있다. 어떤 고정된 경로에 대해 코시-슈바르츠 방정식을 적용하면, (대충 대각화시켜서 얘기하자면) 메트릭텐서의 역할을 하는 susceptibility의 크기가 클수록 그 곳에서는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는, 어찌 보면 꽤나 직관적인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이번에 NEST 미팅에서 소개한 논문은 이러한 TG의 방법론을, (Thouless가 처음 보고한) adiabatic pumping이라는 문제에 대해 적용한다. Adiabatic pumping은 거시적, 항시적 기울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싸이클을 돌려서 일정한 방향의 흐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기서 흐르는 것은 전기가 될수도 있고 스핀이 될수도 있는 등 다양하다. 저자들은 열역학 연구자들이므로 주로 역학적 에너지를 뽑아내는 엔진에 대해서 다룬다. 특정한 방식의 엔진싸이클은 adiabatic pumping으로 간주될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따로 노는 것처럼 보였던 adiabatic pumping 분야와 열역학적 제어 분야가, 기하학이라는 징검다리를 통해 연결된다. 그리고 효율이 높으려면 그만큼 일률(power)는 줄어들어야 한다는 tradeoff relation이 기하로부터 주어지게 된다.


청중 선생님들의 공통된 지적은, 포말리즘이 무척 재밌기는 한데 과연 얼마나 새로운 시야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해당분야 연구자들이 좀더 와닿게 밝혀줘야 할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scarce한 상황에서 제어를 통해 어렵게 어렵게 에너지를 뽑아낼때는 어떤 경로를 얼마나 빠른속도로 거칠지의 이슈가 중요해지고, 그럴 때 TG가 기존에 우리가 몰랐던 실용적인 솔루션을 제공할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고 있다. 그래도 확실히 재밌긴 한것같고, interest가 잘 맞는 것 같으니 함께 꾸준히 공부 해보자고 말씀해 주셨다.


한편, 아예 평형으로 relax될 생각이 없이 항시적(housekeeping)으로 평형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arbitrarily far-from-equilibrium 시스템에 대해 TG를 적용하는 연구는 아직 별로 없는 상태다. 왜냐면 LRT만 해도 평형계에서부터 미소하게만 떨어진 것이므로 거시적 파라미터 셋으로 규정되는 앙상블 접근이 약간은 통하는데, 평형에서 임의로 멀리 떨어진 시스템은 앙상블 접근 자체가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시적 조건 하에서 비평형계가 어떤 상태를 택할지에 대한 일반원리는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로, 최소 엔트로피 원리, 최대 엔트로피 원리, 최대 캘리버 원리 등 여러 설들이 부분적인 이해만을 제공하고있다.


Active matter를 비롯한 내가 정말로 관심있는 시스템들도 대부분 이 경우인데, 여기에의 TG 적용은 아직 블루오션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이유로 근본적으로 TG와 안 맞는다고 볼수도 있다. 물론 far-from-equilibrium에서의 엔트로피 생성을 기하적으로 다루는 연구 흐름들도 있고 그것들에도 관심이 무척 많긴 하나, 그건 파라미터들의 공간이 아니라 좀더 추상적인 함수공간이므로 TG와는 아예 다르다.


Active matter를 제어해서 에너지를 뽑아내거나 구조를 형성시킬 때 비용이 어떻게 드는지에 관해서는, 정적인 상태에서의 연구는 나름 진행이 되고 있지만 동역학적 과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시피한 상태다. 그 돌파구는 위에서 말한것처럼 함수공간 상에서 엔트로피 생성을 보는 쪽이나, 아니면 optimal transport theory 및 speed limit 쪽에서 활발히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있긴 하며, 그쪽에도 흥미가 많이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에 대한 지식이 TG로도 어느정도 증진된다면 그 역시 꽤나 재밌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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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2일 금요일

병무정책의 정치화와 병사월급 정상화는 무조건 환영이다

병사월급 200 공약은 윤 대통령 취임 날 전후로는 사실상 공약 파기 수순이라고 보도될 정도로 크게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추진 의지가 꾸준히 있는 듯해서 다행이다.


지난 정부에서 원래 계획보다는 다소 적긴 하지만 60만원 (병장 기준) 으로 올려 놓았고, 이는 물가 및 통상 임금 대비 아예 없는 돈 수준이었던 기나긴 10~20만원 시절과는 군복무에 대한 인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것, 또한 정치인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할수 있다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그렇지만 파격적인 증명이었다. 이번 정부에서도 그 기조를 이어가서, 20-30년 전에 진작 달성되어도 모자랐을 세자리수 월급을 드디어 달성하고자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의 월급인상은 국민들이 민주적으로 얻어낸 것이라기보다는 보편적 권리라는 관점에서 다소 탑다운 성격으로 주어진 것이고, 핵심 수혜층의 정치적 성향도 문정부와 반대되는 탓에 주요 정치적 성과로서 부각되지 못했다는 한계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정부에서는 엄연히 '정치적' 쟁점사안으로서 이 문제가 줄다리기되면서 다뤄지고 있다.


개별 군사안보 문제에 나쁜의미로 '정치적'인 의사결정이 개입되는건 여야 모두 경계해야 하지만 (북송문제 여론추이를 보라), 국가와 국민의 관계설정에 있어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병무정책만큼은 의사결정에 민주적인 국민 참여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까지 많아져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지라 이는 무척 환영할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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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또 "'MZ세대'의 군 생활이 안전하고 유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병영문화를 개선해 달라"며 대선 공약이었던 병사봉급 200만원 이상을 차질없이 추진해달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북핵 위협 대응을 위한 미사일 방어 체계를 촘촘하고 효율적으로 구성하는데 만전을 기해달라"며 "한미동맹 강화에 발맞춰 실기동 훈련을 정상화하는 등 연합훈련과 연습을 철저히 하라"고 지시했다.
尹 "병영문화 지속개선…병사 봉급 200만원 이상 차질없이" (중앙일보 기사(김은빈 기자)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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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9일 화요일

aespa 2nd mini album 《Girls》 감상평 및 피지컬앨범 개봉 후기

에스파 2nd mini album 《Girls》. 음원들은 어차피 따로 다운받아 들었으니 그렇다 치고 포토카드, 스티커, 포스터 등 CD 외의 구성품도 꽤 알차다. 디지팩은 커버까지 5종 중에 랜덤인데, 그냥 하나만 샀는데도 운좋게 제일 갖고싶던 버전이 왔다. 커다란 책자 형태의 KWANGYA ver.는 구성품이 랜덤.






먼저 인상적인 것은 테마에 충실한 아트웤들인데, 사실 그 덕분에 피지컬앨범까지 사게 되었다. 지난 20-30년간 대중음악의 시각적 요소로 이미 끊임없이 제시되어온 사이버/SF의 이미지들을 성실히 레퍼런스하며, 어느새 레트로해진 미래적 이미지들을 바탕으로 제뉴인한 퓨처리즘을 제시하는데까지 어느정도 다다르고있다고 보인다.


수록곡(디지털앨범 기준)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앨범명과 동명의 타이틀곡은 무난하고 단단하게 잘 만들어졌다는 정도의 느낌이고,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기타와 보컬 위주의 팝 곡인 'Life's Too Short'다. 케이팝 앨범에서 주로 간판으로 내건 신나는 댄스곡이 베스트로 꼽히고 어쿠스틱/팝 곡은 쉬어가는 느낌이게 마련인지라 나로서도 퍽 의외인데, 너무 딥하거나 늘어지지 않아 청량감있게 들을 수 있고 특히 감각적으로 쓰인 후렴구 보컬이 인상깊다. 말하자면 같은 기타 반주 곡임에도 'Forever (약속)'와는 달리 앨범의 비주얼 테마인 파란색/검은색과 잘 어울린다고 하겠다.


그리고 이번 앨범에도 수록된 'Black Mamba'는 예전에 싱글로 공개됐을 때부터 미묘하게 산만해서 아주 좋아하지는 않는 곡임에도 굉장히 귀에 붙고 기억에 잘 남는듯하다. 괜히 데뷔 첫 공개 곡으로 골랐던 게 아니구나 싶다. 'Lingo', 'ICU (쉬어가도 돼)' 등 다른 수록곡들도 나름 재미있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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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7일 일요일

문화전쟁의 소용돌이를 넘어 차세대 아젠다의 발굴에 힘써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가 미국정치의 나쁜 부분만을 점점 닮아 간다는 느낌이다. 사실은 미국의 영향력과 밀접한 한미관계,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론 한국기독교에의 미국 복음주의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여지껏 어떻게 이렇게 흘러가지 않고 유예되어 있었는지가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다. 이러한 유예에 기여하고있던, 국제사회에 보편적으로 어필 가능할 정도의 독자적인 담론설정을 할 수 있는 실력과 거시적 시야를 갖춘 정치인들은 보이지 않는다.


기독교 우파 기반의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의 미약한 역사적 연결만을 바탕으로 자유주의를 참칭하면서 시민들의 실제적인 자유를 (특히 여성권익 문제 및 성소수자 이슈 등을 비롯한 사회문화적인 부분에서) 위협하는 것이 일차적인 문제다. 이외에도 이들은 헌법에 규정된 정교분리를 아주 미약한 역사적 연결만을 바탕으로 거의 노골적으로 위반하면서 세속국가의 가치를 위협하고있다.


나도 집안이 민주/진보쪽 기독교 문화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도 이런 문제에 오래 관심을 가졌다보니, 언뜻 평이하게 보이는 글에서도 극우개신교 쪽 논리의 개입을 잘 발견하는 편이다. 그런데 밑에 캡처하여 첨부한, 국가주의 기독교 보수에 어필하는 최인호 관악구의원 (소위 성평화 쪽 출신인것으로 알고있다) 의 글은 그러한 헌정사 왜곡의 노골적인 종합판이다. 마침 제헌절인데 참 유감스럽다.





민주당세력의 과오도 만만치 않다. 극우세력에 대응해서, 그들이 늘 소리높여 말하는 '공짜가 아닌' 자유의 수호, 다름아니라 민주당 세력 자신들이 지난 수십년간 주도적으로 투쟁해서 획득해온 그런 자유의 증진을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부각하며 이어갔어야 한다. 다만 회고적인 꼰대질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혁신하며 새로운 문제의식을 발굴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유라는 가치를 점유하고 추구하는 것 자체에 큰 관심이 없었을뿐더러, 그 밖에도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할지 큰 그림을 제시해주는 리더십을 갖고있지 못했다. 당에도 그런 장기적인 관점을 부각해주는 리더십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문재인정부 역시 나름의 구상이 있었던 것 같지만 국민 일반을 설득하는데 실패했고, 호응과 실력이 꽤 괜찮았던 몇가지 축마저 정치적 성과로 부각하는데 실패해서 그런 탓도 큰듯하다.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은 각 부문에서 정확한 언어와 파괴력 있는 가치체계 설정으로 실력을 기르는 대신에, 우려할 만한 사회현상이나 대표적인 오해 및 가짜뉴스의 확산을 가볍게 여기며 희화화하거나 일축하는 식의 대응만을 이어가다가, 그런 현상들이 모여 커다란 흐름으로 나타날땐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며 실력의 부족을 드러내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점유할 수도 있었던 수많은 괜찮은 가치들을 눈뜨고 코베이듯이 빼앗기기를 반복해왔다. 이런 부분은 미국 리버럴과 정말 똑같다. 게다가 당 주류와는 약간 다르더라도 혁신에 동력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차세대 정치인들을 위한 공간을 열어주지도 못했다.


사실 이런 글도 이제는 너무 많이 써 버려서 예전 글들의 패러프레이징에 불과하게 되었다. 계속 답답해서 그런다. 그렇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지도 얘기해보아야 한다.


일단 왜 민주당을 계속 얘기하는가?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고 나도 기대를 이제는 잃었다. 그럼에도 이런 주제를 얘기할 때 내 주된 관심사가 늘 민주당인 것은 현재 한국의 정치적 지형상, 보수정당이 이념적 주도권까지 가질 때보다는 민주당이 정치적/사회문화적 자유주의를 제대로 하고 그에 부합하는 정책적 실력도 갖출때만이, 종교 및 인터넷기반 극우세력의 자유 참칭을 통해 미국식의 '문화 전쟁'이 한국에 고착화되는 것을 막을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정치라는 좋은 레퍼런스를 가지고 있고 레파토리가 거의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는 만큼, 예방을 못한다면 한국정치의 명백한 실패일테다. 한편 그러한 예견적인 예방의 시도가 오히려 극단주의를 링 위에 올려주며 실현하는 그리스비극 꼴이 되지 않도록 주요 정치인들의 자제심도 반드시 필요하다. 옛말에 신나면 망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르겠다. 그치만 과거는 돌아볼수 있다. 나쁘지 않았던 문재인정부의 코로나 대응에도 불구하고, 2년도 훨씬 넘게 민주당은 각종 창의적이고 희극적인 방식으로 지속적으로 동력을 상실해왔는데, 그것들이 비장하지 않고 희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로는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제도적 원칙들까지 거리낌없이 건드려버린 것이 크다고 보인다.


보수정부가 그러한 원칙들을 대체로 더 광범위하게 훼손하지만, 민주당은 권력의지에 의한 체계적 개입 내지는 어디에나 있는 정치 비리라고 해석되기 어려운, 임기응변 식의 창의적인 훼손, 한눈에 봐도 비판가능한 '쉽고 직관적인' 훼손을 유독 많이 저질러서 국민 눈밖에 나는 면이 크다. 그리고 그런것들이 은밀하게 일어나기보다는, 국민생활에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도 바빠야 할 중앙 정치무대의 최고 핵심부의 동력을 지리멸렬하게 소모해가며 이뤄진다는 점도 크다. 정치인들과 지망생들이 단기적인 인기장사에 과도하게 영합할 것이 아니라, 헌법적 원칙과 정책적 실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잘할수 있는 차세대의 아젠다를 발굴하고 공부하면서 한걸음씩 나가야 한다.


좋은 재료들이 민간영역과 학계에 언제나 있고, 그것들 중 향후 수십년간 중앙 정치담론에서 진지하게 작동 가능한 것들을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선별 흡수해서 공적 영역으로 올려야 한다. 민주당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 이전에, 이게 국민을 생각하고 민주정치의 본령에 책임을 다하는 기본 자세이기도 할테다. 물론 일정규모 이상의 정당이라면 자세히 찾아보면 어느 당이든, 어디에선가는 늘 이런걸 생각보단 열심히 하고있다. 국민 일반에 실질적으로 와닿을만큼 적극적으로 설정되고 논의되지 않을뿐이다. 결국 어느 진영이든간에 실력있는 리더십의 부재가 아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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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5일 금요일

토르: 러브 앤 썬더 (2022) 감상평

여의도 cgv에서 '토르: 러브 앤 썬더'를 보고 왔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고 만듦새가 부족하다고 하길래 기대를 아예 안 했는데 생각보다는 나름 재밌게 봤다.


영화 내내 엉성하고 늘어지는 느낌이 있긴 했는데, 보여주고 들려주려고 의도하는 요소와 테마들이 무척 매력적이고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서, 그럭저럭 선해하고 interpolation해 가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20세기스럽게 힘있는 아트 스타일 덕에 엔딩크레딧조차 눈을 떼지 않고 보았다.

유머러스한 장면들과 끊임없이 아우라를 빼는 연출이 맥을 끊는 문제는 분명히 컸다. 다만 유머 같은 경우 관객들이 다같이 웃으면서 보면 꽤 괜찮았을 것 같은데도 터지지가 않아서 자꾸만 어색해지는 느낌도 있었다. 웃음소리를 뇌 속에서 자체 재생해가면서 보면 좀 달랐을 듯.

다만 이는 이번 4편만의 문제라기보다는 3편에서부터 고수해 온 스타일이고, 감독이 히어로영화로서 '전형적이지 않은' 3편의 성공 방식에 과하게 천착해서 시쳇말로 뇌절을 한 것 아닌가 싶긴 한데, 미국에선 또 반응이 좋았다고 하니 어떨진 모르겠다.

서사도 돌아보면 좀 문제가 있는 듯.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는 우연적 사건의 연쇄도 어떤 관통하는 테마를 통해서 마치 필연인 것처럼 전달을 하려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영화 내적으로 실제로 필연성이 성립하게끔 완결성있게 떡밥 회수를 잘 하거나 하는데, 이번 토르4에서는 각 인물의 서사를 멋지게 엮어주는 일관된 테마라던가, 사건들이 바로 그런 식으로 일어나야 하는 이유를 찾기가 약간 어려웠다.

영화의 좋은 점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보자면, 액션과 비주얼도 좋았고 특히 제인포스터의 무기 활용방식 연출은 전혀 생각 못했고 깜짝 놀랄정도로 멋있었다.

수많은 외계 종족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생활조건과 양식이 모두 인간세계의 다수와 비슷하다는 게 오히려 이상한 만큼, 다양성에 대한 표현도 딱히 무리하거나 patronizing하지 않고 매우 개연적이라고 느꼈다.

기대하던 록 음악 활용도 매력적으로 잘 된. 듯하다. 옛날 곡들을 핸드폰으로, 에어팟으로 들으면 물론 좋지만 뭔가 심심하다 라고만 생각이 드는데, 영화관 사운드에 큰 볼륨으로 들으니 존재감이 대단했다.

그리고 록음악들도 록음악이지만 토르 캐릭터의 메인테마가 원래 이거였나? 마이클 지아키노가 스코어링 했던데, 아마도 기존테마의 단순 어레인지가 아니라 아예 새로 만든 거 같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메인 테마가 무척 웅장하면서도 신나서 맘에 들었다.

하여튼 위에 말했듯이, 맥이 끊기고 어딘가 엉성한 게 제일 아쉬운 점이다. 긴장감 갖고 쭉 이어지는 하나의 영화를 보고 나왔다는 느낌보다는, 밥먹고 집안일 하면서 부분부분 본 느낌이 들 정도디. 영화의 각 요소들은 나름 좋다보니, 좀 더 잘 연결했다면 많은 수가 호평할 만한 훨씬 좋은 영화가 될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전반적인 만듦새가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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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2일 화요일

테크업계 지인들과의 inspiring했던 대화와 나의 향후 진로설계

오늘은 강남역에서 점심~저녁 사이에 일정이 많이 떠서, 내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11번 출구 할리스커피에서 커피 마시며 계속 죽치고 있었다. (마음의고향이 몇개여;) 내일 하는 연구실 저널클럽 주제를 불과 며칠 전에 급히 바꿨는데, 그 벼락치기 공부를 그 시간 동안 거의 끝냈고 지금 발표자료를 마지막으로 손보고 있다. 역대급으로 효율적인 카공이었다.


한편 몇달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몰랐던 모 IT 스타트업의 이름을, 최근들어 신기할 만큼 여러 채널을 통해서 듣고있다. 종합해 보면 해당 회사가 채용 프로세스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돌리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고, 우리 나잇대도 슬슬 사회 진출해서 경력 쌓이기 시작할 시기이다 보니 내 지인 풀도 그 프로세스에 꽤나 involve되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저녁약속도 자연대 대학원생이 아닌 테크업계 종사자들의 관점으로 그 회사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어 보고 싶어서 마련한 자리였다. 비록 나는 직군도 좀 거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취업 생각할 시기도 아니긴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꽤나 재밌었고 자극이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현재로선 졸업 후에도 학계에 자리잡고 싶은 마음이 큰데, 지혜롭게 해 봐야겠지만 내가 원한다고 꼭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학계에 자리잡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기업 쪽을 알아보게 될 텐데, 기업 취업 쪽에서 최대한으로 바란다면 전공 실력을 활용하고 논문도 쓸 수 있는 리서치 조직에 가고싶은 마음이다 (리서치조직 가더라도 박사전공을 100% 살린다는 생각보다는, 대부분 거의 새롭게 공부하다시피 따로 준비해서 가긴 하더라).


아직은 아무것도 정해진게 없지만, 내년 하순쯤부터는 학위과정의 전체적인 그림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충만하게 마무리될지 각을 재 가며, 향후 진로의 방향을 정해서 액티브하게 준비해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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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JWST)가 보내온 중력렌즈 효과 사진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 (JWST) 첫 풀컬러 사진. 중요하고 의미있는 사진을 잘 골라서 공개한 것 같다. 미국 기준 7월 12일, 그러니까 아마도 한국시간으로는 오늘 밤이나 내일 새벽쯤에 몇 장의 사진이 더 공개된다고 한다. 그것들도 무척 기대가 된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아래 사진은 기본적으로 허블 딥필드랑 같은 개념으로, 사진에 있는 빛나는 덩어리들 하나하나가 각각 수천억 개 이상의 별을 가지고 있는 은하이다 (우리 은하 내의 항성도 몇개 찍힌 것 같긴 하다). 은하들의 형태의 다채로움과 우주의 큰 규모를 알 수 있다. 12.5시간의 촬영만으로 얻은 결과라고 하는데 허블 우주 망원경보다도 비약적으로 향상된 성능 덕분이다.

사진에서 또 눈에 띄게 중요한 점은 명확히 관찰되는 중력 렌즈 (gravitational lensing) 효과이다. 사진의 중앙에서 은하들이 늘어져 보이는 것은 제임스웹 망원경의 촬영 아티팩트가 아니라 빛이 실제로 그렇게 들어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에 따르면 중력은 질량체에 의해 시공간의 곡률이 0이 아니게 되어서 생기는 기하학적 효과이다. 빛은 늘 광속이라는 고정된 속력으로 이동하며 질량(관성)이 없기 때문에, 빛의 경로는 시공간의 곡률 구조를 매우 직접적으로 반영해 보여준다.

이렇듯 빛은 늘 최단거리를 주는 측지선(geodesic)을 따르지만 (즉 말하자면 직진하지만), 커다란 질량체 주변에서는 빛 진행의 무대가 되는 시공간 자체가 크게 휘어져 있기 때문에 렌즈와 같은 효과가 관측 가능할만큼 크게 발생하게 되며 이것이 중력 렌즈 현상이다. 이를 통해 사진에 잡힌 영역에서 직접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까지 포함한 질량의 분포를 비교적 정확하게 추정할 수 있다.

(+ 원래 글 쓸 때는 상이 왜곡되는 것이 일반 상대론의 증거다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좀더 찾아보고 생각해보니 훨씬 더 신기하고 의미가 있는 거였다. 아주 멀리 있어서 원래는 안 보여야 하는 우주 초기의 은하들의 상이, 볼록렌즈 같은 효과에 의해서 관측 가능할정도의 시지름과 밝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관측되게 되는 것.)

30년 넘게 성과를 내온 허블 우주 망원경은 기본적으로 인공위성처럼 지구 주위를 돌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이 가서 수리할 수 있지만, JWST는 지구처럼 태양 주위를 공전하기 때문에 거리가 훨씬 멀어 사람이 갈 수가 없다. 이로 인해 혹시 초기에 심한 고장이 나 버리면 끝이라고들 했었다. 다행히 궤도에 안착해서 무척 잘 작동하는 듯하다.

참고로 허블은 가시광선 영역대를 관측하는 데 비해 JWST는 적외선을 관측한다. 허블처럼 가시광을 관측하게 될 차세대 망원경은 따로 또 예정이 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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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5일 화요일

허준이 교수님의 필즈상 수상 및 세간의 논쟁

허준이 교수님(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이 수학계 최고의 영예인 필즈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늦깎이 수학자로 유명한 분인데, 우리 학교 물리천문학부 출신이고 학부 후반까지만 해도 과학기자를 하려고 했다고 하니 공연한 친밀감이 들기도 한다. 나도 과학인문학이나 과학저널리즘 쪽까지 포함한 여러 진로를 탐색하다가 물리 쪽으로 뒤늦게 마음 정하고 시작했지만, 잘 할수 있으면 좋겠다.


박사 1학년 때 증명한 Read's conjecture, 그 이후 2015년에 증명한 Heron-Rota-Welsh conjecture (혹은 Rota's log-concavity conjecture. 언론에서는 로타 추측이라고만 언급되는데 찾아보니 흔히 Rota's conjecture라고 불리는건 다른 명제인듯) 등의 업적이 있고 대수기하학과 조합론을 연결짓는 연구를 하신다고 한다.


학부 후반에 필즈상 수상자인 일본인 초빙교수의 대수기하학 수업을 듣고 (이 시점에서 이미 흔히 생각하는 늦깎이와는 좀 다른 것 같지만... 수학 쪽은 워낙 어릴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사람들이 많긴 하니까) 수학으로 진로를 바꾸어 결국 스승처럼 필즈상을 수상했다는 영화같은 스토리도 있다.


한편, 세간에서는 축하의 분위기와 함께 국적 및 병역과 관련된 궁금증과 논쟁들도 있다.

사실 그동안 허준이 교수와 반대로 한국과 인연이 없는 한국계 미국인이 좋은 소식으로 뉴스에 나왔을 때, 어쨌든 핏줄은 한국인 아니냐며 동질감 느끼고 축하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게 과도한 민족주의로 많이 비판받기도 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이와 반대로, 국적은 미국이지만 초중고 학사 석사까지 한국에서 나온 사람이 필즈상을 받은 것을 두고 '그냥 미국인 아니냐'라며 왜 축하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많이 보인다. 위의 과도한 민족주의와 내용은 반대지만 형식상으론 크게 다르지 않은 거울상 같아서 퍽 심술이 난다.


각 부문에서 사례가 쌓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나친 국뽕(?)을 경계하는 성숙한 태도가 어느정도 형성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면에는 안티테제로서 이러한 과도한 냉소도 생기는가보다 싶다. 그래도 그런 태도가 반대쪽에서 꾸준히 역할을 하는 덕분에, 정반합으로 성숙한 태도가 더 효과적으로 자리잡게 될것 같기는 하다.


가족관계로 이어지는 혈통, 서류상의 국적 같은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어떤 판단을 하기보다는, 삶의 총체적인 행적을 (물론 알려진 정보만으로 내 맘대로 재구성하는 거지만) 읽어 보면서 어떤부분은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부분은 이질감 느낄 수도 있고 그런 것 아니겠나. 그냥 그런 총체적인 느낌들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 것이지, 왜 어떤 한 기준으로 고정시켜서 규정하고 판단하려 하는것인지 모르겠음.


그 모든 동질감이나 이질감을 퉁쳐서, 해소해야 할 비합리적이고 두려운 것으로만 취급한다면 종합적인 인간 이해와 세계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다. 그런 감정들의 존재를 appreciate한 채로 어떻게 하면 특수성에 기반한 세계시민적 보편성을 만들어 나갈것인지 생각해야한다.


또한 같은 수학자였던 배우자분이 커리어를 중단한 사정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있다. 하단에 링크한 임소연 교수님 글에서 보듯이, 알기 어려운부분인 개인사를 추측하고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것보다는, 좀더 보편적인 여성 커리어 문제로 연결지어 논하는것이 지혜로울테다.


아무튼 필즈상 수상소식을 성취지위에 대한 논쟁으로 받아들이는 한국적 분위기 속에서 허준이 교수의 수상소식은 병역 논쟁과 젠더 논쟁을 뜻밖에 약간이나마 초래하고있다. 흔히 세간의 논쟁에서 임출육 문제와 병역문제를 병치하는 게 졸렬하다고 종종 간주되지만, 한국이 수십년간 쌓아온 업보 탓에 그 둘이 현실적으로 interlocking 되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싶기도 하다.


90%에 달하는 남성이 현역으로 징집되며 나머지는 사회복무요원으로서 기형적 강제노동을 하는 극단적 병역부담을 해소하고,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을 결정적으로 제한하는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이 둘을 지혜롭게 unweave해야 할 텐데, 아직은 기존의 질서가 꽤나 공고해보인다. 대안적 수행과 개선된 제도로 과감하게 넘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기성세대의 압박과 주변의 시선에 의해 들볶아지는 기존의 분위기가 유지될지, 그 과도기는 우리 세대에 오는듯하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1, 링크2, 링크3(임소연 교수님 '과학기술 분야 성별 격차에 대하여')

2022년 7월 3일 일요일

Why Americans write in all caps? (왜 미국인들은 대문자로 메모하는가?)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미국인들은 메모를 대문자로 하곤 한다. 며칠 전에 본 <탑건: 매버릭>에서도 초반에 그런 장면이 나왔다. 대문자 메모 특유의 힘있고 삐죽한 느낌이 괜스레 멋져서 나도 해봤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텍스트의 이미지일 수 있음

(구글 검색을 통해 찾은 자료사진)


대문자로만 쓰여진 글씨가 소리지르는 (yelling)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는 종종 들어 봤는데, 명령이나 경고가 아니라 단순히 메모된 평서문에 대해서도 그렇게 느낄까? 원어민이 아니라서인지 직관이 없으니 이런 부분도 궁금하다.


찾아봤는데 'write in all caps'로 검색하면 왜 그렇게 하는 건지 여러 설명들이 나온다. 소문자는 둥근 부분이 많고 쭉 연결해서 쓰는 경향이 있어서 읽고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문자로 쓰게 되는 거라고 한다.


이와 연관될 수도 있는 얘긴데, 필기체를 교육하는게 과연 유익한지에 대해 논쟁이 있어서, 더이상 필기체를 안 가르치는 곳도 있고 그렇다는 듯하다.

또한 글자를 그렇게 쓸수록 자기확신이 강하고 자기 자신을 감추는 경향이 있다는 식으로 personality와 연관짓는 설명도 나오긴 하는데 유사심리학인 graphology(필적학) 스럽게 들려서 실제로 아주 일리 있는 이야기 같지는 않음.

소셜 미디어에서의 언어사용, 특히 orthography와 prosody의 관계 (둘다 뭔지모름) 를 연구하는 미네소타 대학의 언어학자 Maria Heath (웹사이트: 링크) 가 이런 분야의 전문가인 듯하다. 관련 논문도 있다. 다만 소셜 미디어에 대한 연구들이라 손글씨 메모와 얼마나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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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추천] Bubblemath - Turf Ascension

 꼭 1년 전에 알게 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Bandcamp 페이지: 링크, Facebook 페이지: 링크)의 신보 <Turf Ascension>이 며칠 전 발매되었다.


이 밴드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트랙인 'Routine maintenance'(Youtube에서 들어보기: 링크, 본 블로그 소개글: 링크)를 통해서이다. 정말 잘 만든 트랙이라고 생각함.


이번 앨범은 위 곡이 수록된 앨범인 <Edit Peptide (2017)> 이후 5년 만의 신보라는데, 더 일찍 알았으면 몇 년씩이나 기다릴 뻔했으니 늦게 알아서 다행이다(?). 그 전 것은 무려 십육 년 간격이었다고 하니 당시 리스너들은 정말 오래 기다렸겠다.


이번 앨범엔 네 곡이 수록돼 있는데 모두 전작처럼 구성이 탄탄하면서도 듣기에 담백하며 멜로디도 확실한 느낌이다. 언젠가부터 프로그레시브 메탈/재즈퓨전 쪽을 많이 찾아 듣고 있는데, 메탈스럽지 않은 것들 중에서는 딱 이런 정도의 온도로 연주되고 프로듀싱된 곡들이 제일 내 취향에 맞는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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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일 금요일

테크업계의 쏘아붙이는 말투 앞에서 위축되지 않기

[기술 업계의 독성 말투 문제, 고칩시다!]

(번역본: 김용균 님 블로그 '보통의 비망록', 원본: April Wensel의 웹사이트 'Compassionate Coding')


읽어 볼 만한 글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대학 다닐 때까지도, 본문에서 toxic하다고 규정하는 저런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사회성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그리고 실력이 아주 좋아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러지 않기 이전에 그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다른 부문들에 비해 컴퓨터 및 게임 관련해서 인터넷에서 뭔가를 찾아보거나, 동료들에게 뭔가를 물어볼 때에 저런 쏘아붙이는 반응을 유난히 많이 겪었다. 그리고 그것을 부러워하기도, 그 앞에서 위축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학부시절 동안 여러 부문의 사람들이랑 얘기해 보면서, 그렇게 위축될 필요가 전혀 없고, 자신감 갖고 내 스타일대로 해도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익혔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저런 태도가 뛰어난게 아니라 부족한 커뮤니케이션이며, 심지어 toxic한 말투라고까지 일컬어지기도 하는 걸 보니 내 이런 경험들을 재확인하고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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