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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0일 수요일

비판을 차단하는 졸속행정과 극우 이념운동으로 점철된 윤석열 정부의 15개월

대선 직후에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성실하고 양심있는 시민들의 절차적, 실질적 법익이 당장 대규모로 침해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비판과 감시가 작동할 테니까, 검사출신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이제 우리도 검찰에 잡혀가는거 아니냐'(주로 SNS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많이 말하던)라는 식의 과도한 언사는 일단은 반대자들한테 비웃음만 사기 쉽고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었다. 이 얘기는 무려 대선 바로 다음날 포스팅에서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군검찰이 해병대 사망사건 수사단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보니 (뉴스 기사 링크: [1보] 군검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 청구 | 연합뉴스) 위의 우려는 그 동기와 별개로 결과적으로 결코 조롱도, 과도한 걱정도 아니었고 그 자체로 맞는 말이자 타당한 우려였다는 생각까지 든다.

관료집단은 그 보신주의적 성격상 정권의 의지가 강하다면 아무리 이상한 일에 대해서도 억지로라도 논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이는 대통령 실언 수습 과정, 그리고 수능 논란이랑 R&D예산삭감 등 졸속정책 등에서 여러 차례 보았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법익이 직간접적으로 심대하게 침해되며, 논쟁의 내용 면에서도 건전하고 조심스러운 논의일수록 가장 빨리 힘을 잃게 된다. 이렇게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관료집단을 통해 구현되는 국가권력을 내가 너무 가볍게 봤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서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판당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대규모로 법익을 침해하고 일을 말도 안 되게 더 키우는게 벌써 십수 번씩이나 눈에 보이니까 정말 걱정이 된다. 외교 무대 관련 논란이나 수능 킬러문제 논란 때도 여러 번 그랬었다. 사실은 백수십명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는 얘기도 있는데 이건 너무 마음이 아파지니까 더 얘기는 안 하겠다.

물론 군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폭로하고 싶으면 이런 고초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한데, (내가 평시 군검찰 군판사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인건 차치하고) 그걸 감안하고 봐도 지금 수사단장에 대한 군검찰의 적극적인 기소는 다름 아니라 윗선의 외압을 폭로하는 행보에 대한 보복임이 명백해보인다.


말문이 트인 김에 역사관 논쟁도 얘기해보자. 21세기 이래로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보수 이념운동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형국인데 그 수위가 대단히 세며 국민통합이 아닌 좌우 분열을 노골적으로 의도하는 점, 그리고 육사를 비롯한 군 조직이 자신들의 내부 방침을 정리하는 것일 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이 문제겠다.

임시정부 수립 및 8.15 광복이 아니라 1948년 건국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뉴라이트 역사관에서 늘 밀고 있는 방향이니 이번 정권 들어 그렇게 하겠다 싶긴 했지만, 그 방법으로서 당대 인물의 공산주의와 관련된 행보를 '현재의' 북중러와 직접 연관시켜, 현재적 이적성(利敵性)에 가까운 것을 단정적으로 부여하고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배제하려는 지금의 행보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막말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 전후에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의 대한민국 수립에의 기여를 일괄적으로 불인정해 버리면 (실제로 홍범도 유해를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한다는 보수단체의 주장도 있었다) 오히려 북한이 그들에 대한 계승의식을 배타적으로 취하는 것을 막을 논리가 사라져서, 대한민국을 이념의 무균실로 만들어 그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맷집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지 않은가.

섬세한 역사학적 논리가 아닌 오직 반공 몰이를 통해 역사 논쟁에서 정치적으로 승리하려고 하는 보수 이념운동의 오랜 나쁜 습관이 정권에 의해 직접 추인되면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정부여당이 매우 강경한 의견을 천명하니까 그동안 외면되거나 자제되었던 온갖 강경한 의견들이 덩달아 힘을 얻어 수면위로 나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역시 정치권력의 가장 무서운 힘 중에 하나는 스스로의 개념체계를 - 그 개념체계의 건전성과 무관하게 - 현실 사회에 그대로 구현해 버리는 능력이다.


인사도 정말 문제다. 막말로 이동관이 자녀 학폭 무마 적극 개입, 정보기관과 연계한 적극 방송탄압 경력 등 숱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장으로 임명을 시키려는 모습이 보인다면, 2019년 당시의 검찰이었다면 바로 수사개시를 해야 맞음.

정권 초반 고위공직자 인사문제는 일차적으로 정치영역에서 해결을 보는 게 순리이기도 할 것이고. 후보자의 논란사항에 대해 검찰이 전격 수사를 개시해봤자 정권이 아직 건재하니까 제대로 진행될 각이 안 선다고 봐서 일반적으로 안 하는 일인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국정원 덧글사건, 그리고 2019년 조국사태 당시 검찰 내 특정인사는 숱한 노골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걸 해냈기 때문에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을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결국 임명된) 이번 이동관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는 검찰이 그런 움직임을 전혀 안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이건 뭔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겠냐는 것.

물론 여러번 지적했듯이, 이걸 어떻게 해야 이상적이냐고 물었을 때 답이 명확하진 않다. 무슨 카드게임 하는 것처럼 어떤 건은 바로 수사 개시하고 다른 건은 각이 안 나오니 꿍쳐놓고 못 하고... 특수수사의 이러한 '근본적으로 선택적인' 모럴은 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지만,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관료기구가 자율적 시스템 위주로 작동하면서 구성원의 직업윤리적 책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아무튼 지난 5년 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이 하는 문제가 많은 발언들에 질려서 가급적 거리를 뒀는데, 정권 바뀌고 나서 나도 이렇게 금방 그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말 (나도 잡혀가는거 아니냐? 왜 조국은 수사했는데 쟤는 수사 안하냐?) 을 하게 될 거라고는 1년 전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제대로 하면 이러지도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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