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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6일 수요일

플로우(2024) 감상평

애니메이션 영화 플로우(2024)를 보러 강남역 CGV에 갔다.



귀여운 까만 고양이와, 내가 인터넷에서 알게 된 우아한 조류인 뱀잡이수리가 등장한다고 해서 기대하면서 봤다. 대사가 없는 영화인데, 하필 전날 세네 시간밖에 못 자는 바람에 틀림없이 보다가 졸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대사가 아예 없는데도 꽤나 박진감 있어서 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냉혹하고 강대한 자연의 현실적인 느낌과, 뭐라 설명하기 힘든 환상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두 가지 느낌 모두 이 영화에 아주 조리있는 줄거리나, 배경이나 사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다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자연은 우리에게 터전을 제공하지만 이유없는 파괴를 일으키기도 하는, 소중하고도 두려운 존재이다. 설령 인간의 직간접적 개입을 비롯한 어떤 메커니즘이 제시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자연화된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바로 내게 그런 일이 그런 순서와 규모로 일어나야만 하는 합리적 이유는 없다.

이처럼 작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들 또한, 어떠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농도짙게 디자인되었다기보다는 실제 자연이 행동하는 방식처럼 다소 두서없이 일어난다. 끊임없이 변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나설 수밖에 없다. 배경과 거기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현실에서 있을 법하지만, 그 규모가 장대하게 표현이 되어서 환상적인 느낌을 더한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의도를 견주어 보며 상황에 따라 협력하고, 그렇지만 때로는 미련없이 헤어지거나 냉정하게 공격하기도 하는, 조심스럽게 거리를 유지하는 동물들 특유의 관계맺음 방식도 무척 인상깊었다. 대사가 없어서 이런 점이 더욱 잘 표현된 것 같다. 유튜브에 뜨는 동물 영상들이나, 대사가 전혀 없는 일부 실험적인 공연예술에서도 짧지만 이러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조심스러움이 영화에 기묘한 포근함을 부여해 준다. 개인적으로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너무 피곤하게 서로 지지고 볶는 것보다는 이와 같은 담백한 관계가 좋아 보이기는 하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또한 인간으로서의 해석일 테니까 말이다.

이런 점들과 어울리게도,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동물들의 행동 역시, 어떤 상징성을 아주 농도짙게 가져가거나 고정된 메시지를 세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신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사건들에 대응하면서 뭉치고 흩어지는 귀여운 동물들의 모험을 보며, 삶과 존재에 대해 각자 열린 생각을 가지고 서로 나눌 뿐이다.

아트워크도 무척 아름답고 분위기도 몰입감 있어서 하루가 넘게 지났는데도 인상에 퍽 오래 남는다. 주변에 많이 추천해서 함께 소감을 나누고 싶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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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4일 월요일

상황적 우연에 따른 언어이해의 오류는 인간, 언어, 세계 사이의 다채로운 상호작용이다

'황망하다'는 말은 슬프다기보다는 정신없다는 뜻인데, 장례식을 치르는 상주들이 보통 '혜량해 달라'라는 말과 함께 주로 이 황망하다는 말로 소식을 전하다 보니, 슬프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여서 종종 그렇게 쓰이는 것 같다.

이 얘기를 함께 나누던 다른 분의 보충적 의견에 따르면, '허망하다' 등의 단어와 발음이 유사하다 보니 여기에 이끌려서 더 그런 점도 있겠다.

이런 식으로 단순한 어감, 몇 가지 상황적 우연, 다른 단어 및 형태소들과의 유사성 등이 겹쳐서 단어의 뜻이 사전적인 것과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지곤 하는 것이 나는 굉장히 흥미로운 현상 같다(나는 이런 것을 '이끌린다'라고 표현하게 되는데, 이런 언어 현상들 관련해서 위키 등에서 많이 본 표현이라서 그런 듯). 의미와 기표는 서로 별개의 층위인데, 실제로 언어가 구사될 때는 언어들간의 관계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이나, 세계의 필연적 구조의 영향 하에 그 층위를 활발하게 넘나들면서 다채로운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우연과 혼동에 의해 쓰임이 변화하더라도 언어정책은 어휘들의 사전적 의미와 정확한 어법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등 보수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현상들은 세계와 인간의 지극히 다채로운 상호작용이므로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황망하다'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얘기했던 또다른 예시로는 '억하심정'이 있다. 사전적으로 보면 억하심정은 사람의 마음 중에서 꾹 눌러 놓고 겉으로 내보이지 않아서 알 수 없는 속마음을 뜻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 중에서는 부정적이고 억울한 마음이 아무래도 많게 되어 있다 보니, 억울하고 한이 맺혔다는 뜻으로 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사용하는 듯하다. 물론 사전적인 뜻대로, 꼭 한이 맺힌 느낌이 아니라도 뭔가 음침한 속마음을 갖고 행동하는 것 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말하는 경우도 여전히 많은 것 같기는 하다.

또한, 답답하고 북받친다는 의미의 '억하다'라는 단어가 존재하므로 '억한 심정'이라는 표현이 존재할 수 있는데, 이런 표현과도 상호작용하는 것 같다. 다만 '억하다'라는 말이 '억한 심정' 외에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을 보면, '억하심정' 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덕분에 그 영향을 받아서 (예컨대 억하심정이라는 말이 머리속에 떠오르긴 했는데 그게 알맞지 않은 쓰임새임을 인지하고 있어서 바로 수정할 때) '억한 심정'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는 점도 있지 않을까 싶다.


위 내용과 약간 관련될 수도 있는, 2017년경 별다른 목적 없이 간단히 작성해 본 글을 하나 첨부한다 (아래에 임베드). 여기에서는 언어로부터 우연하게 유발되는 감각인상(편의상 '언감 현상'이라고 칭함)이, 결코 필연적인 것은 아님에도 세계의 모습과 인간의 인식 구조상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지극히 흥미로운 현상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러한 언감 현상은 감각과 의미가 직접 맞닿아 상호작용하므로 아주 세련된 예술적 계기까지는 아니지만 주관적 보편성을 가지므로 미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논증하였다. 이와 관련해서, 위키위키 류 사이트 이용자들이 유난히 좋아하는 떡밥 중에 하나인 Bouba-Kiki 효과도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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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1일 금요일

미술과 음악에서 균일성에 대한 왜곡된 인지와 이를 보정하는 표현법

디자인 분야에서 정사각형과 원의 폭이 같으면 원이 더 작아 보이기 때문에, 원의 크기를 일부러 더 키워 주어야 두 도형의 크기가 똑같아 보인다거나 하는 여러 노하우들이 있다 (여기서 크기가 같다는 것은 면적이나 길이 등 정량적인 기준이 아니라, 사람이 딱 보기에 같은 크기라고 판단되는 것을 말한다).


(사진 출처: medium 포스트 (링크))


그런데, 음악에도 비슷한 게 있는 것 같다. 한 마디 내에서 앞쪽이나 뒤쪽에 가사 음절들이 쏠려 있거나, 멜로디의 상승감 및 하강감이 두드러지면, 분명 박자가 정확히 맞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저는 것처럼 들릴 때가 많다.

그런 효과가 덜 느껴지도록 송라이팅 자체를 잘 하거나, 아니면 가창을 할 때 살짝 밀거나 끌어서 부르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마 이런 것들이 음악 프로듀싱 하는 업계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이슈가 아닐까 싶다.

왜 이 생각을 갑자기 했냐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aespa의 Whiplash 음원 레코딩이 어느 정도 후자처럼 디렉팅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음방 영상을 처음으로 봤는데, 박자가 잘 맞는데도 음원과 차이가 좀 난다.

보컬이나 악기를 녹음할 때 박자 퀀타이즈를 너무 칼같이 하지 않는 게 낫다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컨텍스트도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박자가 나갔을수도 있지만, 감각이 뛰어나고 숙련된 연주자는 이런 것을 잘 고려해서 표현하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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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0일 목요일

국제질서 급변과 인구 급감을 앞두고... '평범한' 과학 커리어란 가능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정부효율부(DOGE) 수장이 추진하는 일들의 귀결은, 지금까지 빚과 지출을 늘리며 대내, 대외적으로 확장되어온 미 연방을 어떤 의미에서 한 번 청산하는 것과, 더욱 노골적인 부자들만의 나라를 만드는 것인 듯하다. 큰 정부를 싫어하는 미국인들의 어떤 평균적 의지(별로 정합적으로 작동가능한것 같지는 않은)가 이런 결과로 드러나고 있는 셈인데, 그 의지를 표명하는 개인들조차 지금의 이런 사태까지 속속들이 예상하거나 의도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경제 및 외교통상 관련 조치뿐만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언론, 시민, 외국인들의 비판을 막고, 기후, 다양성 등의 의제를 시민운동과 학술연구 양쪽에서 완전히 죽여놓다시피 하는 걸 보면 순식간에 유럽보다 중·러에 가까운 나라가 된게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다. 이게 회복이 가능할까?

특히 학계조차 컷을 당하고 탄압을 받고 있는걸 보니 참으로 무서운 일인 것 같다. 안그래도 우리나라 기초과학은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생태계가 돌아갈 만큼의 볼륨은 아직도 안 되는 것 같아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협력이 지극히 중요할 텐데... 이는 한국인 연구자들에게도 상당히 안 좋은 시그널이다.


한국이건 세계이건, 왜 내가 어렸을 때까지는 그런대로 좋다가 하필 내가 커리어를 꾸려나가고 책임있는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될 시기부터 이렇게 흉흉하게 되는가를 생각하면 너무 억울하다. 이것은 어릴 때의 순진함에 의한 착각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세계가 바뀌고 있는 것임이 명백하다. 앞으로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데, 앉아서 고민한다고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니고, 결국 상황에 맞추어 유연하게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차라리 한국 내에서 가능한 커리어패스가 충분히 있다면 몸도 편하고 좋을 텐데, 세계를 유랑해야 하는 한국 과학도의 삶이란... 과학도들은 미국유학에 대한 흔한 한국적 관념처럼 '급'을 높이려는 욕심 때문에 해외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기초과학계의 라이프스타일 자체가 디폴트로 굉장히 국제화되어 있는데다, 한국인 연구자들의 경우 해외 아니면 커리어패스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리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에 몸이 힘들고 정착이 늦어짐에도 불구하고 해외를 돌아다니게 되는 것에 가깝다. 이를 알아야 한다.


내가 박사 졸업을 할 시점에도 미국의 상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말년 만화에서 유래된 유행어인 '명예로운 죽음'처럼 '명예로운 미국못감(?)'을 하고 유럽, 일본, 심지어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고자 시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도 한데, 다시 군비증강과 전쟁의 시대로 돌입하는 지금의 국제정세로 보면 과연 유럽 혹은 다른 나라라고 해서 안전할지... 그 이전에 한국은 멀쩡할지?


앞으로 인구의 급감으로 인해 대학이랑 연구소의 자리들도 점점 줄어들 텐데, 내 실력을 보니까 나는 개인적인 안정성을 포기한다면 평범하게 자리를 지키는 연구자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늦지 않은 나이에 학계에 정규직으로 정착이 가능할 정도로 좋은 연구 업적을 쌓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개인적인 팔자만 생각한다면, '명예로운 학계포기(?)'와 함께 빠른 취업을 생각하고 과학은 애호가로만 남는 것이 사실 제일 좋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수학, 물리학 하는 학생들 중에 일부 자존심 세고 소명의식 높은 부류는 취업하는 것을 실패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난 공과대학 출신이다 보니 이런 면에 있어서는 생각이 유연한 편이기도 해서 그런 생각까지는 없다. 사실 그럴 입장 자체가 못되는 게, 요새 박사 취업도 굉장히 어렵고 (신진 기업들뿐 아니라 전통의 삼성만 봐도... 과거 전기전자/물리학쪽 박사 삼성취업은 과장 많이 섞어서 럭키 티맥스 느낌이었다고 하지만 작년엔 박사 채용이 거의 없었고 특히 하반기 삼전은 박사채용 0명이었다는 말이 있음), 실제 혁신은 인더스트리에서 훨씬 많이 일어나니까 말이다.


후과를 생각하면 사실 이런 글도 올리면 안 되기는 할테다. 과학도로서도, 한 명의 시민으로서도 참 갑갑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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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9일 일요일

기본값의 왜곡, 헌법재판의 개념, 가벼움이라는 착각

결국 원조 내란수괴인 전두환 일가까지 등판해서 윤석열에게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윤석열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이유다. 무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퇴행적, 미래적(?) 극단주의 모두를 적극적으로 띄워 줘 버린 것이다. 대통령이라는, 전국민의 관심이 쏠린 최고로 권위 있는 채널에서 공식 발언으로 부적절한 인식이 나가게 되면, 우리 사회의 기본값이 되는 합의의 선 자체를 확 낮춰 버린다. 그러면 음지에서나 머물러야 할 온갖 극단주의적 주장,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져야 하는 군사독재의 그림자가 함께 수면 위로 떠올라서 제도권에 안착하게 된다.

이건 비상계엄 사태 이전에도, 윤석열 정부 내내 역사관을 중심으로 한 이런저런 문제들 관련해서 계속 그래 왔다. 그래서 5.18 부정론을 비롯해서 역사관 관련한 온갖 이상한 주장들이 기세등등해져서 함께 튀어나와서 정상을 참칭하게 된다. 이것이 제때 비판되지 못하고 장기화되면 말 그대로 정상, 흔히 말하는 뉴 노멀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는 비상 계엄선포 및 탄핵심판에서 윤석열 및 그 대리인단이 온갖 짓을 다 하면서 정점을 찍었다.


나는 이를 기본값 조정에 의한 인지 왜곡이라고 부르고 싶다. 정치 관련한 기계적 중립 및 양비론으로의 압력이 심한 편인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되면 정치 중도층과 무관심층들은 비정상적인 상황을 어느새 정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반대로 문제가 아닌 걸 문제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지도자가 뻔뻔할 대로 뻔뻔해지면 이렇게나 악영향이 크다. 정치권력의 책임성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2020년대의 세계를 보면 헌정 민주주의 체제의 기본합의를 부정하는 극우의 정치세력화가 어느정도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통령 본인이 이에 진심으로 심취해서 찬동해 버리는 바람에 그 속도와 규모가 대단히 가속화되어, 순식간에 세계 어느 제대로 된 민주국가보다도 심각하게 제도권에 올라가 버렸다.

거기에다가 말로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국가행정조직 중에서도 굉장히 특수한, 군경이라는 국가폭력의 유일한 합법적 담지자를 위헌적, 불법적으로 동원해서 국민들 앞에 대치까지 시키면서, 폭력적인 헌정 부정세력들을 기세등등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이번에 새로 발표된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떨어졌던데, 내란 옹호의 세력의 주류화를 조기에 떨쳐내는 데 실패한다면 이는 일시적인 일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급기야는 40년 전의 원조 내란수괴도 뻔뻔하게 다시 기어나와서 저러고 있으며, 지난 몇 주 동안 보았듯이 거대 여당 중진들도 광장정치에 고무된 나머지 옹호해서는 안 될 것까지 옹호하고, 찬동해서는 안 될 것까지 찬동해 버리고 있다. 이게 우리나라의 정치에 아주 안 좋은 여파를 장기간에 걸쳐서 남길 것이다.

전재국 씨가 시공사 돈 떨어져서 나오는 거다... 이런식으로 가볍게 치부할 게 아니다. 극우 기독교 광장정치도 돈으로 동원하는 거니까 무시하면 된다고 가볍게 치부하다가 순식간에 이렇게 와버렸지 않은가 (물론 MB랑 박근혜 때 국정원과 청와대가 진짜로 우파 단체에 나랏돈 줘 가면서 집회 동원하고 했던 것은 그것대로 또 추적하고 기억하고 비판해야 함). 마르코스가 기어이 재집권해 버린 사태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이 상태에서 정말 혹시나 탄핵이 기각되기라도 하면, 헌정체제 파괴를 획책한 내란이 광장정치의 힘까지 더해져서 성공을 거두는 것이고, 정말 문자 그대로 나라가 망한다. 이미 적당한 정치적 화해로 끝날 수가 없게 갈 데까지 가버린, 야당과 일부 헌법기관을 돌이킬 수 없게 국가의 적으로 선포해버린 인물이 윤석열이다. 헌법재판소도 외부로부터의 여러 정신적, 물리적 압박이나 정치여건에 좌고우면하지 말고, 헌법 위반사항을 공정하게 따져서 탄핵심판 선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본질적으로 고도의 정치적 판결을 하는 기관이라는 언설도 꽤 많이 보이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에도 동의가 안 된다. 쟁점이 갈릴 만한 통상의 위헌법률심판 등에서는 헌법에서 근거를 찾되 재판관들의 개인 성향, 국민 여론, 사회상규 등이 반영될 수 있고 여기에 정치성이 개입될 수는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말그대로 헌법의 규범력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판정을 내리는 기관이지, 그 외의 다른 개념규정은 부차적이거나 아예 불필요하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의 경우 헌법 위반사유가 명확하고 피청구인의 헌법 수호의지가 부재한데다, 위반 사항이 단순히 문언 상의 디테일에 대한 절차적인 부분도 아니고, 헌법정신 그 자체를 정면으로 파괴하려 했던 상황이다. 이럴 때에는 정치나 여론이 아니고 오직 헌법에서 근거를 찾으면 '정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오히려 그 정답이 아닌 외부 여건에 좌고우면해서 판결이 내려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치적 판결일테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체제 파괴를 선동하고 있는 내란범(형사 판결 안 나왔는데 내란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지적은 받지 않겠다)을 다루는데 있어서 절대로 안이해서는 안 된다. 속 편한 소리들 좀 그만 보고 싶다.

워낙 요즘이 해체주의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인 만큼, 이게 '옛날의 그' 진짜 계엄령, 진짜 내란, 진짜 군사쿠데타와는 다른, 뭔가 가벼운 것이라고 사람들이 계속 착각하는 경향도 있다. 나는 심지어 윤석열 본인도 어느 정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되기도 한다. 역설적이지만 계엄이 (너무 다행히도) 일찍 해제된 덕분에 사람들이 더 그렇게 느끼는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한국에서 국민들의 기본권이 순식간에 제한되고 민주주의가 근본적으로 훼손될 수 있는 순간이었고, 국민들과 국회의원 및 보좌진들이 그날 밤 용기있게 막아냈다.

그리고 광장에서 내란을 옹호하는 전광훈, 손현보, 전한길이나 그에 영합하는 여당 중진 의원들도, 속으로 계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돈이나 정치 여건 때문에 잠깐 그런다는 식으로 평가절하(?)를 당하곤 한다. 그러나 이 정도의 심각한 사안 앞에서, 아무리 잠깐의 정치 여건 때문에 파면 전까지만 그런다고 해도, 그 악행의 무게는 그 행위 하나하나로 조목조목 정확하게 비판되어야 할 것이다.

계엄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쉽고 당연한 일이지만, 여당의 분위기 자체가 위처럼 박살나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그런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윤석열과 명확히 선긋기를 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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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8일 토요일

윤석열 구속취소를 보며: 직무정지의 실효성, 그리고 대통령 직속기관 개편 제안

다시 힘든 시간을 마주하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에 따른 직무 정지 이후로도 대통령실은 작동하고 있으며 회의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여도 행정관료 조직을 동원한 통상적인 범위의 '나랏일'을 못 하는 것뿐이지, 훨씬 정무적인 보좌의 성격을 갖는 대통령비서실 고위 인사들이랑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접촉해서 정치적, 비정치적, 법적, 비법적 헛공작을 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직무정지 때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대통령비서실의 기능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음. 이미 비상계엄 선포를 통해 신뢰 배반의 끝을 한번 본 사람이라, 안 되더라도 쓸 것 같긴 하지만). 그 사람들 다 관료적/자기보신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한몸인 사람들이지 않나. 그나마 특활비 삭감 해놔서 좀 제한되려나.

지금의 상황은 대통령이 정상적인 헌정의 틀 내에서 나랏일을 잘 했냐 못 했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선을 한참 넘어가서, 아예 다른 헌법기관을 무력으로 건드리면서 직접 헌정위기를 초래한 상황이라는 점을 아무리 반복하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사람이 직무정지든 아니든 석방된 것 자체가 너무 걱정이 된다.

나랏일은 대행한테 맡기고 정국 대응 구상할 시간만 엄청 많은 상태인 거니까 나랏일 안 해도 되는 게 오히려 꿀이지...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석방돼 있는 사람이니까 사실은 나랏일에도 그의 의중이 작용을 안 할 수가 없을 것이고.

대통령이 최측근 동원해서 주요 라인 장악한 상태에서 선을 넘으려면 거하게 넘을 수 있다는 게 드러나 버리고, 상대진영이나 일부 헌법기관을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적대시하게 된 지금의 상황에서, 직무정지조차 그 실효성에 한계가 크다고 느껴져서 솔직히 절망감이 크다. 나는 대통령제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제대로된 민주국가에 대통령중심제가 은근히 드물다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을 정도다. 지금은 정말 exceptional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보완이 필요하다.

대통령이 폭주했을 때 어떻게 막을 것인지 앞으로 국가적으로 많은 고민과 디테일한 보완이 필요할 것이고, 그 핵심으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아예 통치구조 자체를 바꾸는 큰 일인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개헌 등을 안 한다면) 대통령 직속기관 개편을 통한 권력의 분산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하는 대통령실과 국가 행정조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입장에서의 느슨한 상상일 뿐으로, 불가능하거나 말이 안되는 얘기가 많이 있을 수 있다.

먼저 지난번에도 썼듯이, 경호처는 정무적 성격을 빼고 철저히 대통령 개인의 물리적 안전을 위해 경호하는 조직으로 다시 축소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게 가지고 있다. 경호처장(혹은 경호실장)에 최측근이 임명되고 경호처가 정치화되면서 헌정위기가 생긴 게 이번을 포함해서 벌써 몇번째인가. 이미 김영삼 정부나 문재인 정부를 포함한 이전 정부들에서 몇 번 했던 것처럼, 그야말로 '원래부터 직업이 경호원인' 사람을 공채를 하거나, 경호처에서 내부승진으로 발탁을 하거나 하는 식으로 정착시켜야 될 듯하다.

대통령비서실도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군사 안보 관련된 기능이 대통령비서실이 아닌 국가안보실, 국정원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일단 다행이지만, 대통령의 개인 품위유지나 일정 관련된 '비서' 기능과 정치/경제/정책현안에 대한 보좌기능은 대통령비서실이라는 조직 아래에 여전히 하나로 합쳐져 있는데, 이것도 지금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까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지금 정부에서도 대통령비서실 밑에 '대통령비서실장'이랑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이 둘다 장관급으로 동등하게 이원화되어 있기는 하다. 그럴거면 아예 실을 나눠서 더 확실하게 분리하면 어떻냐는것.

그럼으로써 위에 경호처장에 대해 말한 것처럼, 대통령비서실장도 정무적 최측근의 성격을 제거하고 그야말로 생활, 품위유지, 일정 등과 관련된 비서 역할 위주로만 하게 하는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더 나아가서, 홍보, 정무, 민정수석실의 역할도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정책실은 대통령이 국무회의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일을 할지를 보좌해서, 국무회의를 중심으로 현안관련 국정이 돌아가게 한다던지.

물론 국가원수라는 위치상 개인적인 보좌와 업무 관련 보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이 많을 수밖에 없고, 비서라는 건 그 모든 걸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자리인지라, 비서실을 위처럼 쪼개는 게 비현실적이라고 할수도 있다. 동의가 되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너무 강한 권한을 생각하면 불편이 따르더라도 이런 식으로 분산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왜 대통령 직속기관인지도 사실 모르겠다. 윤석열 당선되고 나서 MB 때랑 똑같이 (심지어 이동관은 그 때랑 아예 같은 사람임..) 문제 많은 인사들을 방송 쪽에 등용해서 노골적으로 방송장악을 시도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사들을 괴롭히는 꼴을 봤으니... 보다 독립성을 기할 수 있는 대안이 필요할 듯하다.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현재진행형으로 지극히 위험한 인물이 돼버린 상황인데, 구속기간에 대한 지극히 이례적인 해석까지 근거로 들면서 구속취소 판결을 한 재판부도 이 점에서는 너무 안이하다고 생각이 든다. 사실 잘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수사권 갈등이나 서부지법 영장청구에 대한 논쟁이 많은데, 이미 다른 재판부에서 문제없다고 판단이 이뤄진 부분들임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권 관련된 게 상급심 등에서 문제가 돼서 사건이 파기환송되거나 재심될 수 있으니 더 정리가 필요하다는 재판부의 입장은 이해가 되는 면도 없지는 않다. 결국 이 부분은 내란죄 수사를 제외해 놓은 이상한 공수처법과, 출범 이후 수사기관 간에 수사권 관련 세부사항의 정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던 상황의 원죄라고밖에... 2년 반 만에 고위공직자의 내란죄 혐의가 생길 줄 어떻게 알았겠냐만 말이다.

아무튼 또 다시 너무 힘든 시간일듯하다. 국민 앞에 군을 동원해서 대치시킨 반헌법적 계엄을 목도한 것 자체가 충격인데, 집권여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광장정치에 고무돼서 기세등등한 바람에, 적당히(?)하지를 못하고 옹호해선 안 될 것까지 옹호해 버리고 있다. 현실적 정치여건 상 정당해산심판까지는 아마 하기 어렵겠지만, 일부 인사들의 발언을 보면 정당해산이 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강조했지만, 지금 상황이 그냥 고위직들끼리 싸움 좀 붙은 정치 갈등이나 흔한 비리 정도가 아닌, 헌정 위기 상황이며 대통령이 초 중대 범죄혐의자라는 점을 다들 잊지 않아야 하겠다.

여론 봐 가면서 광장정치에 영합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얼마나 심각한 사태인데 여당 정치인들이 자기 발언의 무게를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대통령이 석방까지 돼서 활동이 자유로워졌으니, 탄핵심판에서 설령 파면 선고가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너무너무 안 좋은 영향이 남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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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3일 월요일

메탈 및 메탈근처 앨범 10선

지하철에서 Spotify를 켰다가 심심해서 꼽아 보는 메탈 및 메탈근처 앨범 10선.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들은 일단 빼고, 폭넓게 알지는 못하다보니 상징성, 대표성보다는 내가 아는 범위에서 지금 현 시점에 끌리는 앨범들 위주로 골랐다. 전반적으로 연주가 복잡다단하면서도 어느정도 직선적인 야마가 분명하게 잡혀서 비교적 쉽게 이해가능한 곡들, 그리고 어두움의 틈에서 서정성이 스며나오는 곡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1. Nine Inch Nails - The Downward Spiral (1994)

시기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아래 다른 앨범들과는 꽤 이질적이지만 개인적으로 대중음악 전체에서 딱 한 개 음반만 꼽자면 이것임. 악보에 표기하기 곤란한 전자음과 효과음이 적극적으로 도입되고 소리의 텍스쳐가 대단히 강조되면서, 그 결과물도 실험적인 가치를 넘어 악곡 그 자체로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음반으로서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나와서 선구자 역할을 한 듯. 2010년대에 한창 일렉트로닉 유행하던 시절에 어두운 전자음악이 뭐가 있나 많이 찾아봤었는데 내 마음에 충분히 드는 건 없었고 오로지 NIN이 오래 전에 매우 탁월하게 선취했다고 생각함




2. Have Heart - Songs to Scream at the Sun (2008)
하드코어펑크 중에서도 straight edge라고 해서 술이나 약물 같은 쾌락에 젖는 대신 올바르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는 펑크 무브먼트라고 하던데 그건 잘 모르겠고 곡들이 굉장히 좋다. 앨범커버가 좀 깜놀계다.



3. Decrepit Birth - Polarity (2010)
테크니컬 데스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멜로디가 강화된 앨범. 둔탁하면서도 빠른 박자와 맞물리는, 쉴새없이 찌르는 하이프렛의 기타를 듣고 있으면 모든 세포를 기계장치로 대체한 새가 지저귀는 느낌이 든다. 곡들이 그리 길지 않아서, 귀가 피곤해질 때쯤 다음 곡으로 전환된다. 수록곡 중에서 조금 조용한 편인 Sea of Memories가 제일 마음에 듦.




4. Revocation - Chaos of Forms (2011)
다양한 장르를 적당히 결합시키면서도 메탈이라는 구심점을 잃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여낸 놀라운 테크니컬 스래쉬. 듣다보면 언뜻 당황스럽지만 이내 적응하고 즐기게 되는 순간들이 많다. 레코딩도 굉장히 선명하게 이뤄져 있다.




5. Periphery - Periphery II: This Time It's Personal (2012)
날카롭게 깎인 미국스러운 젠트 앨범. Make Total Destroy로 처음 접하고 풀앨범은 나중에 다 들어봤는데 특히 Scarlet은 딱 들어도 이해할수 있는 정도의 대중성까지 확보한 희대의 명곡인 것 같음. 앨범의 프로듀싱은 중후하다기보다는 날카롭게 이루어졌고, 이와 어울리게도 컨셉과 가사가 미묘하게 유치한 덕분에 (페리페리 전반적인 특징이긴 함) 오히려 너무 무게잡는 느낌이 안들고 재밌게 접근할 수 있는 점도 평가할만한 부분.




6. Native Construct - Quiet World (2015)
심포닉블랙스러운 블라스트비트부터 디즈니 뮤지컬(?!)스러운 파트까지 섞인 굉장히 특이한 트랙 Mute가 있음. 다른 곡들도 Mute만큼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꽤 즐겁게 들을 수 있다. 별도의 포스트로 소개한 바 있다.




7. Plini - Handmade Cities (2016)
섬세한 프록메탈/재즈퓨전의 대표주자. Electric Sunrise로 대표되는 이 앨범은 송라이팅도 프로듀싱도 꽤 부드럽게 된 편이라 (연주 순수체급을 바탕으로;) 재즈 듣는 사람들한테 들려줘도 좋아함.




8. Vektor - Terminal Redux (2016)
한국 메탈팬덤에서도 엄청 화제가 됐던 앨범. 다양한 스타일의 영향이 묻어나지만 그게 일관된 색깔 안에 잘 통합되어있고, 송라이팅과 구성이 너무 좋다보니 언급이 덜 되지만 보컬의 사용도 탁월하고 유니크하다.




9. Between the Buried and Me - Colors II (2021)
Colors I에 이어서 십수년만에 나온 정신적 후속작. 맘에 드는 부분들이 많지만 구린 부분도 많고 정리가 좀 덜된 느낌이 들어서 넣을까 말까 고민했는데 전반적으로 즐겁게 들었기 때문에 선정함. 앨범 커버 때문일수도 있는데 이 앨범을 듣다보면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카메라가 가지각색의 연회장을 빠르게 훑으며 보여주는 느낌이 든다.




10. Asunojokei - Island (2022)
Blackgaze 장르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앨범. 극도의 서정성이 인상깊다. 짧은 연주곡인 Tidal Lullaby가 기승전결이 확실하면서도 이 앨범의 스타일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별도의 포스트로 소개한 바 있으며 덧글에 링크.




Honourable mention
나를 입문시켜준 양대 앨범인 Arch Enemy의 Burning Bridges와 서태지 6집 울트라맨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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