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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9일 목요일

윤석열 1심 무기징역 선고에 대한 의견

윤석열에게 내란우두머리 혐의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이 선고된 데에는, 만일 계엄이 성공했더라면 윤석열, 김용현, 노상원 등이 과연 그 이후에 도대체 어디까지 계획하고 있던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점도 작용한 것 같다.

특히 정보사령부가 '계엄 성공 이후'를 주로 담당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재판에서 그 실체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어디까지 계획되어 있었는지가 인정되지 못했고 아마도 앞으로도 소상히 알려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이 점이 실제 형량 측면에서도, 그리고 역사를 기록한다는 측면에서도 아쉬운 듯하다. 게다가 납득하기 다소 어려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몇몇 판단들까지.


선고요지를 보면 비상계엄 선포 자체도 어느정도 유형력의 행사라고 볼 수 있을뿐더러 군의 출입 통제, 국회 진입 등이 일어났고, 그 목적도 국헌문란에 해당한다고 한다. 선고요지에서 수차례 언급하듯이, 밝혀지지 않은 전후맥락을 제외하고서라도 이 사건의 핵심인 "국회에 군을 보내서 상당 기간 그 기능을 정지시키려 한 것" 그 자체만(?)으로도 나라 전체의 평온을 해한 것이라고 인정되고, 여기에 범죄전력없음, 고령을 이유로 선처까지 해서 비로소 무기징역이라는 아주 무거운 형벌이 나온 것인데,

이를 달리 말하면 만약에 정치인을 체포해서 정확히 무엇을 어떻게 하려고 했는지가 입증되었거나 (체포 시도 자체는 인정됨), 거리에 나온 국민들의 희생을 감수하고도 더 밀어붙이려 했다는 것 등이 구체적으로 입증이 되었더라면 (혹은 그래서는 안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성공했다가 나중에 끌어내려졌다면), 훨씬 넉넉히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나왔을 듯하다. 특검의 입증 역량 문제도 있을테지만 증거를 확보하기 근본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요컨대 다른 중대 정치사건과도 그 궤를 달리하는 수준의 중한 범죄인 내란에 대해서 사법부가 단호한 태도를 표명하겠다는 의지가 판결에서 상당부분 드러난 면은 있다고 본다. 장기독재를 기도하거나 정치인을 체포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를 일단 떠나서,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일으킨 것 그 자체만으로도 무기징역이라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위 문장의 '떠나서' 부분이 어쩔 수 없이 아쉽다. 로마부터 시작되는 타국의 역사적 사례들까지 거창하게 검토한 것치고는, 그리고 헌정을 중단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무력을 동원하여 헌정위기를 촉발했던 사태의 엄중함에 비해서는, 이번 판결에서 선고에 이르는 논리 구성이나 선고요지의 구체적 표현들이 12.3을 생생히 직접 겪은, 나아가 20세기 군사독재를 겪었던 현재의 우리에게 충분히 경종을 울리지 못하고, 다소 붕 떠 있는 느낌이 들기는 해서다. 이번 사건이 워낙 불확실한 부분이 많다보니, 국회 군 투입이라는 그 장면만 똑 떼어 놓고 판단해야 하는 상황의 한계가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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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9일 월요일

세계 해석의 도구로서 분절적 명제화를 때로는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것들을 분절적으로 의미화·명제화하고, 논리를 통해 그것들을 직조하여 이해를 획득한다. 이는 세계를 해석할 때의 인지적 부담을 낮추어주며 폭넓은 간접 경험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분절적 이해를 관성적으로 적용한다면 사태의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면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에는 소홀해지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환원주의적(혹은 원자론적) 사고논리적 사고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간주하곤 하나, 논리라는 형식을 동원하는 방식에 따라 그 둘은 종종 정반대에 있게 되기도 한다. 사태의 부조리와 입체성을 정면으로 마주하여 때로는 위로를 받고 때로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게 해 주는 것은, 후자보다는 주로 주로 전자에 가깝다고 본다.

고양이는 반드시 발로 착지하고, 식빵을 떨어뜨리면 반드시 잼을 바른 쪽으로 바닥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고양이의 등에 식빵을 묶어 두면 무한히 회전하는, 혹은 공중에 계속 떠 있는 영구동력장치를 만들 수 있다.

이 유명한 논증(?)은 척 보기에도 다소 황당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분절적 이해에 포섭되지 않는 것들을 다루다가 스트레스를 느끼고 분쟁을 겪는 상황들 중 꽤 많은 수가, 실은 고양이와 잼 바른 식빵 농담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2026년 2월 1일 일요일

AI의 무색무취함과 적당함, 그리고 지식정보망의 형해화 가능성

AI로 논문을 쓸 때 가짜 인용 문제가 자주 논란이 된다.

연구 단계에서 논문 추천 받을 때라면 몰라도, 연구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하는 단계에서는 내 연구와 관련이 되는 일부라도 직접 정확하게 읽고 cite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난 아무리 AI 시대를 재미있어한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텍스트에 대한 고전적 개념을 매우 중요시하는 인간인 듯. 나아가서 앞으로는 자동화할 수 있는 읽기, 쓰기 및 계산도 '굳이 사람의 능력으로 해 보며' 인간의 그런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학자 집단의 역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으려나.

어쩌면 참고문헌이라는 것은 이젠 정말로 '참고가 된 문헌'이라기보다는, 내 논문이 지식정보망의 어디쯤에 어떠한 맥락으로 위치해 있다는 것을 느슨하게 표명하는 장치 정도가 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원래도 참고문헌에는 그런 기능이 당연히 있고 또한 그런 기능이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scientometrics나 science of science에서 citation network를 통해 지식정보망과 지식의 발전경로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많이 하는 일이다.

근데 인간의 '쪼'가 들어가지 않고 느슨하게만 관련이 있는 '무색무취한', '적당한' 인용들이 AI 때문에 폭증하게 되면,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재구성된 지식정보망의 질조차 종국에는 많이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양이나 속도 면에서는 AI가 압도적이니, 결국 인류가 쌓아온 방식은 뒤안길로 금세 밀려나서 불필요한 것이 되고, 그런 느슨하고 적당한 방식이 압도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있다.

예컨대 분야 상으로는 내 연구와 크게 상관 없어 보이는 어떤 논문의 특정 부분에 큰 영감을 받아서 연구가 진행되었거나, 혹은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분야의 논문에서 내 생각과 비슷하고 formal한 연관성도 있는 아이디어를 이미 제시한 부분이 있었을 때, AI가 과연 그런 인용을 자동으로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이례적인 경우들 외에도, 내 연구가 어느 지형 위에 놓여 있다고 표명하다 보면 '학맥'이라는 것이 자연스레 형성되게 되는데 AI가 분야의 유사성, 연구대상 유사성만을 바탕으로 정보를 취합하다 보면 그런 패러다임적인 것들이 형해화되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논문 작성 단계가 아니라 논문 다 마무리하고 나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 한다면 결국은 흉내가 아닐까? 독해력과 문제의식을 갖춘 사람이 봤을 때 그게 납득이 갈까? 이런 생각들이 든다.

물론 새로운 기술적 매체가 등장하면서 내용의 복제가 간편해지면 늘 거대한 양적 확대가 일어나고, AI 또한 의미론적인 영역으로까지 고도화된 복제 및 정보처리 장치라고 할 수 있으니, 이러한 적당하고 느슨한 인용이 더욱 발전하고 양적으로도 확대되면서 인간이 모르던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의 구조가 떠오를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이 직접 자신의 정신을 개입시켜서 작성하는 텍스트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나중에 나올 무언가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일 수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일단 지금 생각으로는 AI 특유의 '적당함', 그리고 인간의 안이함 때문에, 정보처리의 세밀함이 당분간은 계속 낮아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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