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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9일 목요일

A mathematical coincidence: 1-e^-1 ~ sqrt(0.4)

회로이론 등에서 특성시간 볼 때 자주 나오는 (1-e^(-1))=0.632...라는 숫자가, 루트 0.4라는 숫자와 값이 0.05% 차이밖에 안 난다는 걸 방금 발견했다.


이러한 우연한 근사식들은 사실 꽤나 많은데 위키백과의 mathematical coincidence 문서 (링크) 에 잘 정리가 되어있다. 이것도 0.05%면 저기에 등재될만 하지않나~


암튼 이러한 우연들 중에는 알고보니 원리가 있는 것도 있지만, 그야말로 순전한 우연으로 생각되는 것들도 있는데, 전자뿐 아니라 후자 중에서도 단순한 amusement를 넘어 실제로 공학적으로 활용되는 것들도 간혹 있는 듯하다.


참고로 원주율의 제곱과 중력가속도 9.8이 비슷한 것은 때때로 물리학도들의 계산과 추정을 편하게 해주는데, 재밌게도 이것은 우연이 아니며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옛날에는 1미터를 진자(pendulum)의 흔들림을 가지고 정의했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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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6일 월요일

모델하우스 홍보의 이유있는 음침함

모델하우스 홍보 뭔가 이상한거 나만 느끼는게 아니었구나. 새집 홍보 하는거면 뭔가 편안하고 좋은 인상을 줘야 할 텐데 거기 분들 호객 하는거 보면 그렇지가 못하고 거의 무슨 다단계처럼 음침하고 desperate한 느낌남...


특히 위례성대로 쪽이 새 오피스텔 같은거 자주 들어서는 동네라서 그런지 모델하우스 호객 정말 엄청 많았던듯. 그쪽에 대형 학원도 많다 보니 멋모르는 학생들도 끌려들어가서 연락처 쓰고 나오곤 했으며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아직도 그럴련지 모르겠다.


나는 그때 딱봐도 학생이어서 그런지 투자 권유까지는 안 받았는데, 투자권유까지는 아니라도 사람 끌어와서 이름이랑 연락처 쓰게 하고 이런것 자체도 그 직원들 실적이 되는 구조인 것 같다. 실적압박이 심한 것 같고 개중에는 아웃소싱의 폐단뿐 아니라 아예 실제 사기성인 것도 꽤 있는 모양이다.


하여튼 세상의 많은 무서운 일들 중에서 특히 오피스텔 신축처럼 애매하게 큰돈이 얽힌 일들, 그리고 계약의 구조가 여러단계 있는 일들(하도급?)은 안전한것과 위험한것의 경계가 유달리 모호한것같고, 생산, 유통 및 서비스에 기여하는 멀쩡한 직역인데도 이상하게 권익보호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인상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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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5일 일요일

대상의 속성 및 반(反)속성 지칭에서의 모호함

어떤 대상의 속성 및 반(反)속성을 표현하는 문장에서 종종 존재하는 모호함이 있다. 이에 대해 평소에 막연하게 모호함을 느꼈으나 그것을 오래 붙잡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최근에 생각이 정리되어 기록해둔다.


이를테면 '식들의 논리적 성격'이라는 명사구를 보자. 이 표현은 다음의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1) 식들이라는 대상이 갖는, 비논리적이지 않고 논리적이라는 특징

(2) 식들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인데, 논리라는 체계 속에서 각 식들의 구체적인 기능이 무엇인지 (전제인지 조건인지 명제인지 등등)


해당 표현이 둘 중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확하지 않고, 일단은 (1)과 (2) 모두를 의미할 수 있는 것 같다. 만약에 어법 규칙상 한쪽만 맞는 것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사람들이 꽤 많이 혼용해서 쓰는 것 같고, 그러면 맥락에 따라 이해할 수밖에 없는게 아닌가 싶다.


음성 언어에서는 말의 강조점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구분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한데... 글로만 써 있을 때에 이 모호함을 해소하려면 아예 문장을 통째로 풀어헤쳐서 다시 쓸 수밖에 없어서 답답한 경우가 꽤 있었다.

조금 더 쉬운 예시로는 '계획의 군사적 성격'도 있다. 이 역시 다음의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된다.

(1) 비군사적인 계획이 아니고, 군사에 초점을 둔 계획이라는 특징
    : 음성언어로는 주로 계획의 '군사적' 성격이라고 강조해서 말하는 듯.

(2)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계획이 맞는데, 그 중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싶음
    : 음성언어로는 주로 계획의 군사적 '성격'이라고 강조해서 말하는 듯.

사실 맥락에 따라 어느정도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이슈는 아닐수도 있으나.. 어려운 문헌, 그리고 처음 보는 분야의 문헌 (따라서 대상과 속성의 관계에 대해 독자의 지식이 불명확할 경우) 을 볼 때는 이런 점이 실질적인 혼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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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0일 화요일

빛으로 작동하는 인공지능

이전에 우연히 접하고 신기해서 포스팅 했던 전기과 유선규 교수님(https://waves.snu.ac.kr/research)은 박사 때는 플라즈몬 같은 걸 하셨고, 지금은 질서가 깨져있는 물질의 설계 쪽과 함께, 전기 대신 빛으로 작동하는 인공신경망의 설계를 연구 테마로 잡고 계신다.


그런데 마침 요새 analog optical computing이 나한테까지 전해 들릴 정도로 업계에서 굉장한 화두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유 교수님 연구실 소개를 보고 그때는 지적으로 신기하다고만 생각했는데, 프랙티컬한 관점에서도 시의적절하게 매우 좋은 연구주제를 설정하신 것 같아 멋진듯하다.


머신러닝을 개선하는데 쓰이는 핵심적인 아이디어들을 보면, 물론 디지털 하드웨어를 효과적으로 쓰도록 로우레벨에서 개선하는것도 엄청 중요했지만, 이해와 활용에 있어서는 대부분 아날로그한 알고리즘들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듯하다 (그래서 컴공의 여타 분야에 비해 머신러닝에서는 선대, 미적분학 등이 유독 더 강조되는 것이기도 하겠다). 극단적으로는 그러한 아날로그 알고리즘이 머신러닝의 요체이고, 디지털 컴퓨터는 그러한 아날로그 알고리즘을 원하는대로 쉽게 implement 하게 해주는 플랫폼 역할이라고 생각할수도 있다.


이런 센스에서, reservoir computing이라고 해서, 수많은 비선형 자유도를 가진 시스템이라면 (이를테면 물 담아놓은 바가지(...) 등 물리적 시스템들을 포함하여) 뭐든지 사용할수 있는 아날로그한 딥러닝도 제안된 바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 비선형 자유도 전체를 시시각각 업데이트 하는것이 아니라, 말단에 있는 상대적으로 조그만 뉴럴넷만 트레이닝 시켜서 원하는 함수의 윤곽을 뽑아내게 된다.


아직 analog optical computing이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reservoir computing과 약간은 비슷하게, 그러나 전자 기반의 디지털 집적회로처럼 매우 세심히 디자인된 광회로를 만들어가지고서 머신러닝을 비롯한 계산을 하겠다는 듯하다.


Genuine analog의 장점은 명백하다. 자연은 나비에-스톡스 방정식 등의 복잡한 편미분방정식을, 말하자면 매 순간 아주 쉽게 근사적으로 푼다고 할수 있다 (방정식이 정확히 캡쳐하지 못하는 건 stochasticity로 간주될테다). 이는 근본적으로 에뮬레이션인, 컴퓨터속의 아날로그와는 다른것이다. 한편 아날로그의 큰 단점으로는 어떤 디자인을 바닥부터 원하는대로 쌓아올리거나, 요소 하나하나 값을 시시각각 컨트롤하기가 어렵다는 게 있다.


후자의 특징 때문에 생각보다 시간과 에너지가 드라마틱하게 절약되진 않을수도 있겠단 생각은 든다. 만약 기존 디지털컴퓨팅 노하우들과 시너지를 이룬 좋은 광회로가 나와서 이런 점들에서 breakthrough가 일어난다면 우리가 아는 컴퓨팅의 모습에 근본적인 도약이 생길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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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9일 월요일

재구획의 성정치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때 쓰려다 만 얘기에다 최근의 문제의식을 약간 더 섞어서 올려본다.

1.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준석 대표의 기획 중에는, 정치영역에서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약자 우대를 할당제라고 명명하고, 이를 없애겠다 라는 선언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직역에서의 채용에 비유해서 이를 할당제라고 칭하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을 같아보이게 만드는 잘못된 프레이밍이다. 평시 정치행위의 목적이며 대의제 민주사회의 핵심이벤트인 각종 선거에서, 각 부문, 각 인구집단의 실질적 파워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른 결과가 나오게끔 임파워링 해주는 것은 할당제라고 비웃을 일이 아니며 사회 통합을 위해 일부러라도 권장해야 하는 일이다.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비례대표제를 운영하는 취지이기도 하다. 비례대표제가 없다면 각 지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대변하는 경우가 더욱 많아질텐데 이것이 진보진영에서 흔히 생각하는 건강한 지역균형 의제로 흘러갈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만 되는 것은 아니다.

한편 실제로 할당제라고 칭할수 있는 일반 취업의 경우도 논할 필요는 있다. 궁극적으로는 학과, 그리고 해당 전공 유관 학계/산업계의 각 직급에 여러 인원이 지속적으로 고르게 분포되는게 지향점일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천장을 겪는 개인들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장기적인 실적 면에서도 더 좋다는 리포트들도 꽤 있다. 특정 성별에 대한 특정 직위로의 어퍼머티브 액션은 그 자체 수단이라기보단 이를 위한 과정이라고 볼수 있겠다. 물론 유일무이한 개인의 실적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는 종류의 취업시장에서는 좀더 애매해지는 이슈가 있겠으나... 마이너 디테일이고 각 부문의 특성별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리더가 조직에 존재하면 좋은 롤모델이 될수 있고 그렇기때문에 여성리더를 중심으로 각종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그런거 아니겠는가.

즉 대의제 선거에서의 균형있는 선출, 일반취업에서의 할당제, 연구직 취업에서의 블라인드제 등 서로 비슷해 보이는 것들에 대해 공통점은 공통점대로, 차이점은 차이점대로 논해야 한다. 무조건 같다고, 혹은 무조건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단주의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2. 구획의 정치는 현실을 규정하고 추동한다
여성부를 독립 부처로 존치하는지 여부는 단순한 상징 싸움이 아니다. 직제 계통의 분리와 통합, 위계의 변화 등은 실제 정책의 방향 및 추진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전반적인 국정철학(?)을 반영할뿐 아니라, 어디에 힘을 싣고 어디에 힘을 뺄것인지가 구체적으로 결정된다.

예컨대 지자체 분리 및 통합을 생각해보라. 수도권 재구획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선거철만 되면 여러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이를테면 경기도와 서울시를 통합해서 '서울특별도'를 신설하는 방안, 그리고 경기도를 분리하여 '경기북도 및 경기남도'를 신설하는 방안 등이 있다. 이들의 차이는 단순히 상징적인 것이 아니라, 예산의 관할주체와 각 사업의 유기적 연계 여부 등에 매우 큰 차이를 불러일으키며, 균형발전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현실에 매우 구체적으로 반영되게 된다.

정부부처 통합 및 분리도 이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 점을 염두한 채로 아래 단락으로 넘어가보자.

3. 분할과 정복: 개별화의 욕망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에 여성의제라는 단일한 의제는 실체가 모호하며 (혹은 그러한 묶임이 실용적이지 않으며) 철저히 개별 문제로 접근하면 된다는 시각을 드러낸 바 있다.

잠깐 정반대로, 서로 다른 여러 부문을 하나로 엮는 이해에 대해 살펴보자. 이거 역시, 당연히 지적으로 위험하고 실천적으로도 올바른 결과를 주기 어렵다. 좋아하는 분들도 많이 계실거라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 대표사례는 평화라는 키워드 하에 여성, 생태, 군사, 국제 등 모든 키워드를 엮는 정희진 선생의 텍스트일것이다. 물론 그러한 글쓰기 및 사유 스타일은 이미 지성계 전반에 특정 조류로 이미 자리잡은 상태여서 지금와서 특정인을 탓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아무튼 만약에 그러한 신념이 권력을 통해 현실에 구현되어 부처가 통합된다면 특정한 이론, 보편적이지 않은 관념에 의존하는 셈이 되고, 제도의 공적 가치가 저해될것이다. 이는 민주적 권력에 의한 공적기구 재편에 사적 신념이 반영되면 안된다는, 광의의 세속주의적 문제의식으로 비판이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분별한 통합을 경계하는 만큼이나, 무분별한 분리 또한 경계해야한다. 여성 의제는 여성이 삶의 여러 경로와 단계에서 종합적으로 겪는 것들이므로, 이런 경우에는 정치적, 정책적으로 한 덩어리로 묶여있는 것이 그저 상징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실질적인 시너지가 있다. 위 문단에서도 이미 밝혔다. 조금 과한 비유일수도 있지만 육군과 해군 모두 국방부의 통제를 받는것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번에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해서 법무부장관이 방문하여 주문한, 여성 안전 문제의 제도적 개선 같은 건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당연히 필요하고 또 정말 중요하다. 잘하는 거라고 본다. 그렇지만 만약에 지지층이나 정권이 그것들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긴다면 여전히 문제적이라는 얘기다.

위에서 말했듯이 윤석열 정부는 '젠더문제란 없고, 파편적인 각 부문에서 여성과 관련있는 문제들이 존재할뿐이므로 쪼개놓아야 마땅하다'로 귀결되는 인식을 후보시절부터 매우 일관적으로 드러내고있다. 그 인식의 중심에 여가부 폐지가 있다. 이는 부처별로 이미 정립되어 있는 기능을 본인의 신념에 따라 재배열하여 이해하고있는 윤석열대통령 개인의 일관된 사고방식 (ex. 교육부의 존재 목적은 산업인력의 배출이라는 발언), 독립된 부문으로서의 젠더문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여가부폐지를 염원해온 청년남성 지지세가 절묘하게 조응한 결과일것이다.

4. 자유주의와 조화되는 평등론?: 자유의 총량 증진을 향하여
끝으로 자유라는 가치를 통해 이 문제를 다시 조명해보자. 위에 말한 임의적 재구획이 일어나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문제들을 통합적으로 다루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충돌하는 가치들을 서로 견주어보며 타협을 하든지 한쪽에 힘을 실어주든지 할 수 있는 정책적 논의의 장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그러한 분리는 자유로운 인간들 사이의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각자의 자유에 따른 각자의 이해관계로의 통약불가능한 추구로 우리를 이끈다. 이러한 분리의 욕망은 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 온 소위 K-자유주의(여기에 이과감성을 곁들인)와 상당부분 관련이 된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예컨대 자유와 권리를 비롯한 법익은 민주사회에서 원칙적으로 불가침한 것이지만 타인의 자유와 권리 역시 마찬가지이며 이들은 필연적으로 경합한다. 만약에 특정한 종류의 자유를 누리는 정도가 두 집단 (예컨대 두 성별집단)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는 상황이라면, 사회의 다양성있는 통합을 위해서 한쪽을 임파워링 시켜서 자유의 총량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할 때도 있지 않냐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유와 평등의 추구는 조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부분은 정치철학과 정치학에서 많이 논의하는 주제일 것 같은데, 잘 아는 바가 없어 이렇게 약간의 인상을 조심스레 던져두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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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8일 일요일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보며: 제도보완뿐 아닌 미시적 인식개선도 동반되어야 한다

 6년 전에 강남역 살인사건을 보며 여성 안전과 페미니즘 관련해서 처음으로 길게 써봤던 내 생각(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21746071250431&id=100002451425265)은 엉성하긴 하지만 그 쟁점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대하는 작금의 세간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어떤 사건의 발생 기제가 여성혐오냐 아니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과 그 뒤에 숨어있는 반동적 가치판단은 여전히 진행중이며, 이제는 그 논쟁을 여가부를 폐지하겠다는 여가부장관이 받아서 무려 정권차원에서 조장하고있다. 현실적 위협 앞에서의 '젠더 갈등'이라는 기만적 용어사용도 마찬가지다.


여성혐오의 개념을 더 정확히 설명하자는 방향으로의 노력은 그 이유가 어떻든 성공하지 못하고 있고, 나아가 꼭 그 개념을 적확히 수호하면서 전달해야겠다는 의지 자체도 몇년 사이 공허해졌다. 여성혐오의 타개에는 친절한 설명과 설득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결국은 매체 및 생활에서 실제로 여성혐오라고 불릴수있는 답답한 공기가 존재한다는걸 체감하는 여성당사자 중심의 담론의 비중이 높아지고, 이번 민주당 모 시의원 발언같은 남성중심적-폭력적 발언들이 제지되고 자제되는 과정을 통해 가능할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선 사건에 대한 반응에서 보이는 여성혐오 논쟁과, 매우 직접적인 여성 대상 폭력 문제를 잠깐 나눠서 얘기해 보겠으나, 이 둘은 칼같이 분리되는 문제는 아니다. 먼저 스토킹범죄와 관련해서 실질적으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인 보완이 절실히 필요해보인다. 공권력이 예전보다는 더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 이런 일이 생겼을 것이다. 가해자가 직장에서 직위해제 되었어도 데이터베이스를 볼수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일을 더 꼼꼼하게 막아야 할것이다.


또한 접근금지나 구속 등의 조치를 더 적극 검토해서, 조치가 명백히 필요한 상황인데도 법적으로 할수있는 일이 없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를 자극하는 부작용을 피하는 것과, 국민 모두가 가진 원칙적인 법익을 심대하게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피해여성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실무경험 축적과 연구가 필요한 영역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보완 외에 인식의 변화도 당연히 뒷받침 되어야 하며, 적어도 여기에는 세간의 여성혐오 논쟁이 들어갈 자리가 충분해보인다. 그리고 이하에서 보겠지만 이는 제도보완과 아주 분리된 문제만은 아니다.


먼저 그러한 보완된 제도의 수혜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개인들의 인식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를테면 직위해제된 스토킹가해자가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는걸 막는 등의 예방조치는 제도개선만으론 되는 것이 아니고, 각 직장 내에서 일 처리가 돌아가는 구조를 잘 알고 실제로 조치를 취하는 이들의 사려깊은 꼼꼼함이 요구된다. 그러려면 그들 개인이 스토킹문제의 심각성과 관련해서 미적지근해하지 않고 인식을 함께해야한다.


또한 구속이 안된 이유가 회계사 자격증이 있어서라는 말도 있는데, 이번 사건에서는 정확히 어떤지 몰라도 과거 의대생 성범죄 사건들 당시에도 그런 얘기들이 있었던 걸 보면 영 실체가 없는 얘기는 아닌 모양이다. 게다가 미래가 창창한 청년 타령은 기성세대만의 문제는 아닌 게, 어떤 사건의 가해자가 전문직일 경우에 노력을 해서 뭔가를 성취했을 가해자의 인생서사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나 이입이 인터넷에서도 꽤 보인다. 그런것들이 쌓여 잘못된 인식이 형성되는 것 같은데,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에 다름 아니다.


아무튼 그게 사실이라면 법관들의 그러한 잘못된 정서에 대한 국민들의 큰 질타와 법관 연수 같은 프로그램들, 그리고 무엇보다 제대로 된 판결 사례와 좋은 판결문의 축적이 필요할것이다.


또한 인식의 변화는 스토킹피해를 비롯한 성범죄를 겪고 있는 이가 주변의 인간적인 이해와 지지를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당연히 뒷받침되어야 한다. 스토킹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불편한 접근과의 연장선에 있는 면도 있겠지만 알고보면 잘 정의된 특유한 문제행동이며, 피해자와 가족의 일상을 크게 위협하는 일이라는 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미시적 인식 개선과 거시적인 제도 개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이 있는 것이고 어느쪽에 비중을 두느냐는 각자의 판단인것이지, 그 둘이 충돌하는데 후자가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므로 전자는 틀렸다라고 이야기하는건 적절치 않아보인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 여성혐오의 개념을 끌어오는 것은 부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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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7일 토요일

연구활동 외의 자기계발 계획 고민: 제너럴한 스킬셋 or 고급 이론물리 방법론

요새 의무 출퇴근 시작하고 기존에 두루뭉술 뭉개져 있었던 하루의 루틴이 좀 잡히면서, 퇴근하고 나서는 자기계발로 뭘 할까 하는 직장인스러운(?) 고민을 좀 하고있다. 아직까지는 몸이 좀 덜 적응해서 퇴근하고 집안일 좀 하면 피곤해서 뭘 못하는데, 주변사람들 말로는 1-3달쯤 지나면 적응 할거라고 한다.


그래서 뭘 할 것인가... 이걸 정하는건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물론 물리공부하는거 세상에서 제일 재밌지만, 한편으로는 근 1-2년 사이에 주변 다수의 지인들이 무척 좋은 처우의 직장을 구하는걸 보고 좀 마음이 붕 뜬 느낌도 함께 있어왔다. 물리과 출신이 아니다보니 주변에 물리쪽 해외포닥 관련해서 정보와 의견 나눌 친구가 많지 않고, 그러다보니 내가 물리과구나 하는 소속감도 별로 안들어서 더 그런것도 있다. 좀더 맘 잡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면 우리 연구실 외에도 물리 공부하는 사람들 더 많이, 더 자주 만나서 얘기 나눠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


암튼 그래서 생각한 거 한 가지가, 데이터사이언스 쪽과 관련지을 수 있는 제너럴한 스킬셋을 겸비만 한다면 가능한 진로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것이다(실제로 그렇고). 그래서 통계학, 인과추론, 확률 그래프이론, 시각화 등등의 기초적인 지식과 실무를 꾸준히 취미삼아 공부 및 구현 해본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다. 내 본진인 통계물리에서도 (주로 확률과 기하 관련해서) 응용수학스러운 게 자주 등장하다보니, 그런 것과 연관지으면 시너지가 있을듯하다.


그리고 대학원생 신분이고 심지어 물리적으로도 산속에 있다보니, 어쩔수없이 바깥세상과의 끈이 놓아지고 세상을 팔로업하지 못하는 느낌이 있는데... 학부땐 몰랐지만 그런걸 내가 좀 신경쓰는 성격인듯. 연구실 사람들이랑 교수님은 정말 과분할만큼 좋은데도 이 관악골의 대학원이라는 환경 자체가 약간 그렇다. 그래서 저런걸 더 꾸준히 해보고 싶은 점도 있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하면, 이론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서 아무리 퇴근 이후라고 하지만 그런 딴짓(?)에 내 지적 자원을 꾸준히 투입하는건 본분에 어긋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저녁이후 시간까지 더 열심히 하면 더 좋은 연구결과를 내서 더 잘 풀릴 수도 있는 건데, 굳이 딴짓을 루틴화해서 스스로를 제한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또한 제너럴한 스킬셋은 만약에 졸업 임박했을때 일반취업 준비를 하게 된다면 그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익힐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위에 말한 것 하나하나가 각각 깊은 분야이기도 하지만, 제너럴한 스킬셋으로 잘 정리돼 있는 것들이 있고, 물리 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기에 그런 것들에서 투입시간 대비 평균보다 깊은 원리 이해를 할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다. 임박해서 급히 하면 그만큼 깊이있게 하긴 어렵겠으나, 어차피 직접 연구에 적용해보는 수준의 책임감을 갖지 않고 취미로 들여다본 한에야 큰 차이 없을 가능성도 높다. 또한 진로 목표가 생기면 그에 맞춰서 준비하면 되니까 아무래도 좀더 제대로 할 수 있겠지.


그러나 데이터사이언스는 숫자세상과 실제 세상을 연결짓는 작업인 만큼 결론 도출에 있어 굉장히 책임 있는 자세를 필요로 할 텐데... 지적으로 정확한 수리통계적 베이스 없이 짠 하고 흉내내는 건 꾸준히 한다고 해도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과연 얼마나 효용이 있을지 고민이 들기도 한다.


한편 자기만족 측면에서도, 6년이라는 시간은 물리공부만 하기에도 넘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내 연구가 (적어도 아직까지는) 흔히 생각하는 이론물리의 코어에 있는 멋있는 방법론을 활발히 적용하는 연구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남들보다 그런거에 늦게 눈이 트인 것 같다. 확률계산 하나는 이젠 자신 있긴 하다.


손익을 따져봐도, 깊은 이론물리를 일단 많이 해두고 나중에 진로 목표가 확실히 잡혔을 때 그것에 필요한 제너럴한 스킬셋을 준비하는건 어렵지 않겠지만, 만약에 깊은 물리공부 덜 하고 졸업했는데 나중에 미련 남아서 공부하고 싶어질 경우엔 쫌 마음적으로다가 고통스러워지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내 연구에 당장 쓰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통계장론/RG 같은 고급 이론물리 방법론을 퇴근 이후 시간에 꾸준히 공부해 볼까 생각도 든다. 그러면 물리를 보는 시야가 달라지고, 기존에 못하던 고급계산들을 할 수 있으니 내 연구활동 및 연구문제 선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테니까 말이다. 그러면 실제로 딴짓이 아니기 때문에 딴짓 한다는 죄책감도 들 일이 없고.


아니면 평일 퇴근이후엔 후자 쪽으로, 주말엔 전자쪽 공부 및 독서 이런식으로 나눠서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깊이를 쌓으면서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어떻게 밸런스있게 인생을 운용할수 있을지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고있다. 그게 합리적으로 견주어보는 판단이라기보단, 내 흥미가 어디를 향하고있으며 내가 뭘 할때 맘이 편한지와 주로 관련돼 있다는게 좀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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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는 재미: 어원에는 문명의 교류사가 압축되어 있다

논문 초안을 쓰면서 영어 단어들의 뉘앙스를 보다 정확히 알고자 하다 보니 영영사전을 습관적으로 찾아보게 되었었다. 그런데 요새는 그걸 넘어서 단어들의 etymology를 찾아보는 취미 같은 게 생겼다.


제일 신기했던 건 -able의 어원인데, 다름이 아니라 고인류 '호모 하빌리스'의 이름에서 많은 이들이 보았을 라틴어 단어인 habere -> habilis (손을 쓴다, 손으로 잡다, 다루다 이런 느낌) 에서 온 단어라고 한다. 구체적인 대상이나 동작을 지시하는 게 아니라, 나와 세계 사이의 상호작용의 일반 양상과 관련된 추상적(?) 단어로 자리를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손'이라는 특정 대상과 결부된 계기가 강하게 들어가 있어서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아예 더 추상적으로 on, at, in 이런 식의 미묘한 위치관계를 표현하는 성분들도, 현재는 알 수 없게 되었을지언정 구체적인 대상으로부터 유래된 구상적 어원 같은 것이 있을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물론 딱히 없을 수도 있겠고.


아무튼 어원을 찾아보다 보니 언어라는 게 이런 식으로 일상적 동작과 일상적 사물들로부터 출발한 게 많은 것 같은데, 어디서 출발하고 어떻게 약속돼서 이어져 온 걸까, 기초 단어들은 그 성립의 초기에는 언중에게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진 것일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게 돼서 재미있다.


언어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지만 그 속에는 개인들의 언어능력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교류사·전쟁사 및 흥망사와, 어떤 경우에는 탁월한 개인들의 흔적까지 담겨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널리 쓰이지만 어원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한자어 및 우리말 단어들에 대해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이런 종류의 아쉬움을 쉽게 메꾸려고 하다보니 유사역사학이나 유사언어학이 나오는 것일 듯하다.


생각해보면 한자문화권의 한자어 단어들도 그 구성 원리가 전혀 다르지만은 않다. 나는 한자를 잘 모르긴 하지만 어떤 한자어를 볼 때에 특정 글자가 어떤 다른 단어의 글자와 같은 것이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편인데 (물론 헛다리도 많음), 그렇다고 해서 각 글자의 유래를 떠올린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모르니까. 이와 비슷하게 서구권 화자들 역시 복잡한 단어를 봤을 때에 맥락과 라틴어 어원에 따라 (일일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대략적인 느낌이 올지도 궁금하다.


대표적으로 텝스 준비할 적에 절대 안 외워지는 com- 혹은 con-이 들어간 온갖 단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맥락과 어원을 결부지어 직관적으로 기억한다면 경선식류의 장난식 암기 굳이 필요 없이 좀더 효과적으로 기억하지 않았을까 싶다. 독일어 같은 경우에도 기초 어휘들은 게르만에서 온 것이라 라틴어, 그리스어 쪽과는 계통이 꽤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한창 공부할 적에 이런 쪽으로 접근해 봤으면 매일매일이 새롭고 좀더 재미를 붙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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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5일 목요일

논문 초안을 쓰며 느낀 점: 책임있는 글쓰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법

작년 말에 연구를 마무리하고 논문으로 정리하자고 하셔서 인트로 및 부록 빼고 본문까지는 대략 써 보았었다. 그때 내가 임의로 해서 교수님께 가져간 목차를 교수님도 거의 비슷하게 구상하고 계셨어서 기분이 좋기도 했었다. 내용을 소개하는 방식이 straightforward하지만은 않은데 꽤 구체적으로 비슷했어서 신기했던 기억이다.


하지만 그 이후 약 아홉 달 동안, 기존 내용을 refine하고 추가적인 연구 내용 (efficiency at maximum power (EMP)) 을 얻느라 섭밋 계획을 한번 엎었다. 그 사이에 새로 얻은 EMP 쪽을 메인으로 해서 이번 3-4주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했고 연휴 직후에 교수님께 보내드렸는데, 이번엔 정말로 마무리하자는 느낌이시다.


초안을 써 보면서 여러가지 느낀 게 있다. 먼저 영문으로 이정도 분량의 글을 써 본 건 사실상 처음인 탓에 (학부 졸업논문들이랑 인문대수업 리포트들도 전부 국문으로 썼음), 내가 쓴 글임에도 글의 전모가 한 눈에 들어오진 않아서 불안감은 가지고 있다. 아마도 아카이브에 올리기 전까지 교수님께 피드백 받는 과정에서 계속 살펴보면, 좀 더 이 원고와 친해져서(?) 한 눈에 이슈들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사실 본문에서는 그냥 내가 연구한 내용을 잘 표현하면 되니까 좀 테크니컬한 고민들이랑 수식 입력의 귀찮음 위주로만 있었다면, 좀더 고차원적인 창작의 고통(?)은 인트로 부분에서 주로 있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쓰기 전에 막연하게 걱정되던, 혹은 다른 논문들 읽으면서 '와 이런걸 번거로워서 어떻게 하나' 싶어서 걱정했음에도 막상 써 보니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해결이 되는 것들도 많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게 레퍼런스 다는 것. 다른 논문들의 레퍼런스 보면 기본 50-60개는 되는 느낌이라 처음에는 저걸 대체 어떻게 하지 싶었는데, 첫 연구를 그래도 몇년 붙잡고 있었다 보니, 정말 직접적인 참고가 되는 문헌만 정리해도 30-40개 정도로 생각보다 적지 않게 나오더라. 여기에 직접적인 방법론적 참고는 안 되더라도 연구사적 맥락에서 반드시 인용해야 하는 논문들 및 설명이 잘돼있는 리뷰 논문들을 인용하고, 20세기 초반에 쓰인 근본 논문들도 방법론 언급할 때 예우 차원(?)에서 인용하면, 50-60개는 억지스럽게 채운다는 느낌 없이도 금방이다.


그런데 우리 교수님이 원생/포닥 때 작성하신 논문들을 보면 인용을 같은 업계에 비해서 정말 무척 적게 하시는 편인듯하다 (주도적으로 쓰신 논문에서는 30개 미만 인용하신 경우가 많음). PPT 같은거 봐 주실 때도 과장된 표현이나 레토릭한 표현을 지양하시는데 이런 것과 뭔가 일관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방향으로 지도를 해주실지도 궁금하기도 하다.


다음은 유사도 문제. 워낙 조심해야 한다고 주의가 많길래 고통을 받을것으로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전혀 그렇진 않았다. 아무리 본문이 아닌 선행연구조사 부분이더라도, 내가 원하는 딱 그 맥락과 뉘앙스에 exact한 문장이 다른 논문들에 많이 있는 게 아니라서, 다른 논문을 일단 긁어오자는 생각 자체가 안 들고 내가 직접 써서 다듬게 되더라. 간혹 정말로 질투날 만큼 맘에 쏙 드는 문장들도 있긴 한데, 확률상 대부분은 내가 필요로 하는 문장들이 아닌지라 그냥 기억하고 기록만 해둔다.


결국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존재하고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해봤다면, 표절을 피하는 것은 내가 갖고있는 문장을 억지로 paraphrasing하는 힘든 과정이 아니라, 나쁜 마음 먹지 않는다면 나름 자연스레 이뤄지는 과정인듯 (반면에 예술창작, 특히 음악에서는 훨씬 어려울 것 같음).


우리 active matter 분야에서는 과장좀 섞어 모든 논문이 거의 똑같이 시작하는데 ("active matter는 개별 입자의 수준에서 주변으로부터 에너지를 흡수하여 운동으로 전환시키며 와글거리는 물질이다" 이 정도의 뜻), 이런 건 약간 예외적일 수도 있겠다. 다만 이런 것조차도, 다른 논문들의 문장을 직접 참고하되 표현을 바꿔 쓴다는 느낌이 아니라, 뜻의 덩어리를 머리속에 기억해두고 그걸 글에 녹여낸다는 느낌으로 하면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잘 할수 있다. 만약 100년 동안 연구가 쌓인다면 정의는 그대로인데 표현의 가짓수는 한정적이니 표절문제가 생길수 있겠지만, 그때는 연구 트렌드가 달라져서 첫문장이 달라지겠지(...).


카피킬러 같은 건 아직 안 해 보았고 교수님의 피드백과 첨삭까지 마치면 해볼 예정이다. 글쓰기에 있어서는 스타일이 확고하시고 굉장히 꼼꼼하셔서 아마 많이 바뀌어서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실제로 무척 인자하고 점잖은 분이신데, 교수님 말씀으로는 대학원생때 유일하게 짜증나셨을 때가 동료 논문 첨삭해 줄 때였다고 하신다.


그리고 연구노트 좌측여백을 사실상 영어 단어장처럼 사용하고 있다. 나는 맘에 쏙 드는 단어가 보이면 어떻게든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하는데 (이것은 페북이나 블로그에 글을 쓸때도 마찬가지임) 그러다보니 언젠가 내 글에 써먹으려고 적어두게 된다. 텝스 공부할 때도 단어 억지로 외우는걸 제일 힘들어했는데 (사실 제대로 안하고 청해/독해점수로 비볐음...), 글쓰기라는 목적이 있으니 영단어 공부도 자연스럽게 되는구나 싶다.


그리고 그런 단어들이 과연 맥락에 맞는 뜻인지를 보려면 영영사전을 찾는 게 매우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았다. 예문도 예문이지만, 뜻이 정확히 논리적으로 해설된 걸 보는 것도 생각보다 꽤 유용하다. 이를테면 내가 정의한 어떤 양을 여지껏 composite efficiency라고 이름붙이고 사용해 왔는데, 찾아보니 composite가 내가 생각하던 그런 뉘앙스와는 좀 다른 뜻이라, 영영사전을 찾아가며 comprehensive efficiency로 바꾸게 된 일이 있다 (물론 교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진 모른다). 그리고 남의 논문 읽을 때도, 그냥 수식 따라가며 공부하는 입장이 아니라 논문을 써야되는 사람 입장에서 읽으니까 예전과 달리 어휘 같은 게 눈에 좀더 들어오는 듯.


아무튼 첫 연구는 교수님이 하사해주신 토픽이지만 내 맘에 쏙 드는 지적 방향성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갈피를 못잡던 시간이 길어서 연구가 늦어지다 보니 슬슬 비슷한 문제의식의 논문이 많이 나와서 연구가 처음보다는 덜 novel하게 된 느낌인데... 그 논문들이 모르고 있는 걸 내가 아는 게 아직은 꽤 남아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시간문제겠다 싶어서 초조한 기분이 많이 든다. 이젠 정말로 빨리 제출하고 다음 연구주제로 넘어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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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혁신과 대중문화의 상호작용: 세기말 'DNA 카드' 굿즈의 사례

아이돌가수의 생체정보를 담은 'DNA 카드'는 늦어도 90년대 후반까지의 기괴한 아이돌 굿즈인 줄로만 알았는데 기사 검색을 해 보니 최소한 2004년 비 3집 'It's Raining' 때까지도 있었던 모양이다. 일본에서 먼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이디어라는 언급도 있다.

(기사1) [연예] 젝스키스-핑클 'DNA 상품' 나와 (스포츠조선, 1999.06.16)

(기사2) 훼미리마트, 유명 연예인 유전자 활용한 이색 마케팅 (매일경제, 1999.08.02)

(기사3) DNA로 만든 스타캐릭터 '봇물' (동아사이언스, 2001.05.10)

(기사4) 비, 3집 발매 맞춰 '비의 DNA 디스크' 판매 이벤트 (조선일보, 2004.10.07)

그런데 여담이지만 지금 보면 좁은 의미의 세기말이나, 2004년이나 햇수로만 보면 그리 차이가 나지 않긴 한다. 나는 그 둘이 상당히 멀게 느껴지는데, 개인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 중간에 분위기 변화도 꽤 컸던 것 같다.


기사들에서 단백질은 어감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굳이 '유전자산물(protein)'이라고 표현한 점이 퍽 흥미롭다.


2020년대 초에 최첨단 미래의 이미지를 점유하며 나온 여러 가지 유행들 중에서도, 나중에 본다면 기술혁신보다는 문화유행에 가깝게 평가될 만한 게 많을 듯하다.

물론 문화와 기술 두가지는 서로의 성립에 기여하며 샤프하게 분리될 수 없다. 새로운 종류의 문화컨텐츠에 기술혁신이 reflect되거나 실질적으로 반영될 수 있으며, 정말로 그러한지 여부는 경우에 따라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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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3일 화요일

Neural style transfer를 처음 접했던 일, 그리고 컴퓨터 공부의 잘못된 방법

딥러닝을 아주 막연하게만 알다가 처음으로 그 놀라운 성능, 그리고 크리에이티브한 분야에의 응용가능성을 접한 것은 바로 style transfer 쪽에서 가장 히트쳤던 논문 중 하나인 "A neural algorithm of artistic style" 논문을 접하고서였다.

(당시 버전: arXiv 링크. 이후 CVPR 2016에 "Image style transfer using convolutional neural networks"라는 제목으로 억셉되었다. Google scholar에서는 인용수를 병합하여 집계하고있음. 해당 버전: 링크)


그 논문을 소셜미디어에서 우연히 접하고 너무 감명받아 페이스북에 글을 썼었다. 지금 보니 말투가 킹받기는(?) 하지만, 당시의 소감을 느낄 수 있다보니 재미있어서 다시 가져와본다 (해당 Facebook 게시물: 링크).


저 때 나는 패턴인식에 막연하게나마 관심이 있어서 전기과 해동 도서관에서 책 빌려서 공부하던 터였다. 그 때 공부하던 건 공간상에 빨간 점파란 점이 뿌려져 있는데 직선으로는 구분되지 않을 때 비선형함수들의 합성으로 어떻게 구분선을 그을지 등 기초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접한 neural style transfer는 아득히 멀게, 그야말로 마법에 가깝게 느껴졌던 것 같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하여튼 저런 게 내 센트럴한 흥미를 깊이 자극했지만, 이미 너무 잘 발전해버린 바람에 내가 기술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수는 절대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기분은 머신러닝 기술 발전소식을 팔로업하면서 8년째(...) 계속 느끼는중인데... 그 기간 동안 아무 때라도 좀더 용기내서 dive in 해 보았다면 좀더 여러 가지의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 아쉬움도 있다. 농담섞인 얘기지만 물리를 잘 하는 게 딥러닝에 도움 된다는걸 늘 생각했고 또한 실제로 목격해왔는데, 지금은 내 전공인 비평형 통계물리의 핵심 아이디어들까지 머신러닝 피플들이 적극적으로 익히고 있는 바람에, 통계물리 바탕으로 그쪽에 새로운 뭔가를 던질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무튼 당시에나 지금이나 컴퓨터에 워낙 친숙하지 않다보니, 저때는 소스코드 등이 다 공개되어 있으니까 그대로 가져다가 돌려 보면 된다거나 하는 것도 아예 몰랐었고 철저히 아날로그적으로 (수학이나 물리 공부하듯이) 공부했다. 그러느라 머신러닝에 쓰이는 수식들이랑 초보적인 매트랩(!?)에는 빠삭해졌지만, 파이썬 라이브러리로 직접 뭔가 만들 줄 아는 실속은 전혀 없이 시간 낭비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컴퓨터라는 건 바닥부터 안해도 이미 있는거 따라하면서 부딪혀보면 되는거라고 옆에서 한마디라도 누가 좀 알려줬더라면...

하여튼 그 이후로 물리학이랑 미학 공부한다고 정신없느라 이쪽 공부는 안하다가 (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가 사실은, 딥러닝이 발전하는걸 보며 기술과 문화예술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생겨서이기도 하다), 2018년 초에 원래 알던 전기과 형이랑, 의대 신입생 두명이랑 같이 굿펠로 책 스터디하면서 좀 다시 따라가게 됐던 것 같다. 그 책은 연구실 출범 초기에 교수님께서 빌려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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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1일 일요일

'금쪽같은 내새끼' 시청 소감: 의도와 요구, 평판 의식, 그리고 호불호의 감각

요즘에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금쪽같은 내새끼'를 넷플릭스에서 뒤늦게 보고 있는데, 틀어 놓기에 좋을뿐더러 상당히 재미있다. 아이들의 행동과 진단을 보다 보면, 출연한 가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되고 이것저것 생각해보게 된다. 듣기로는 현직 어린이들도 금쪽이를 은근히 재밌게 보고, 자신과 견주어보기도 하고 그런다고 한다.


나같은 경우 여지껏 뭘 해도 자연스럽게가 안 되고, 흉내내고 에뮬레이트 하는 느낌으로 살아오다 보니 타인의 감정이나 그 표현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관찰과 생각정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타인에 대해 기다/아니다로 한번 판단이 서면 쭉 그렇게만 정해두는 식으로 좀 judging하는 경향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정해두지 않으면 모든것이 혼란의 연쇄이게 됨). 근데 오히려 내 장점이나 결함에 대해 어린시절에 내가 했던 생각들까지 포함해서 깊이 돌이켜 보는건 의외로 많이 해본 일이 아니라서 꽤나 재밌는 듯.


전반적으로 내 성격은 내 의도와 요구의 합리성에 대한 높은 자존심과, 그게 꺾이거나 뜻대로 안 됐을 때도 freak out하지 않고 의젓해야 한다는 마인드 사이의 피곤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형성이 돼있는듯. 누구든 저런 측면이 없겠냐마는, 내가 늘상 고민하고 생각하고 하던게 주로 저런 카테고리라... 암튼 기본적으로 누구든 자신한텐 당연한게 남들한텐 당연하지 않을수밖에 없는데, 그런걸 우호적인 환경에서 천천히 솔직하게 얘기하면야 관철이 되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어른들 세상에서는 물론이고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런건 잘 안되니까 말이다.


근데 그럴때 나는 얘기하는 방식을 바꿔서 원하는걸 얻어내야겠다는 전략적(?)인 행동을 잘 못하다보니, 머리속에 있는걸 더 차분하고 정확하게 한번 더 얘기 해야겠다, 그러면 수용은 어렵더라도 이해는 해주겠지 이런 착각이 먼저 드는 편이었던거 같음. 나는 정확한 생각을 전달하기에 음성언어가 참 안좋다고 느끼는데ㅡ 남들은 그 한계를 사회성으로 메꿔서 오히려 음성언어일때 원하는걸 더욱 잘만 전달하는걸 보기도 했고, 사람들이 '사교적인 것'과 '똑똑한 것'을 정반대로 혼동한다 라는 불만도 오래 가졌으니.


그치만 타인은 성격이 아주 비슷하지 않은한 내 머리속에까진 관심이 별로 없는것이고... (지금도 성격 아주 비슷한 소수의 친구들은 내쪽에서의 큰 노력없이도 금세 알아보고 친해져서 고맙게생각함) 암튼 저런 식의 두 가지 피곤한 성격들을 어찌저찌 조화시켜서 스트레스 크게 안받게끔 평온한 성격을 만들어놨는데, 기본적으로 평판을 의식하는 마인드가 리미터 역할을 해줘서 가능했던거 같다.


다만 부작용도 있는데, 이걸 보다보니 사회의 복잡한 인간관계 또한 자꾸만 기본적인 요구와 거절/수용의 감각, 소유와 양보의 감각, 호/불호의 감각이라는 틀을 바탕으로 해석해 보게 된다는것. 사실 복잡미묘한 걸 쉽게 이해하고 활용할줄 안다면 저렇게 단순명쾌하게 환원해볼 이유 자체가 없기도 하고, 그런 내맘대로의 해석들은 넘겨짚기일 수밖에 없고 심지어 상대방을 어린애 취급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보니 그다지 좋은 생각의 방향은 아닌듯.


근데 또, 사람들의 복잡하게 엮인 말과 행동들을 걷어내고 보면 그런 원초적인 감정이 코어에서 작동하면서 대인관계의 기본적인 모드를 설정하는 면도 분명히 있는것같긴 해서, 그런걸 한번더 생각하면서 나 혹은 타인을 이해하는 계기 중에 하나 정도로만 참여시켜 놓는다면 나름 괜찮지 않을까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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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10일 토요일

글쓰기 취미를 계속 이어갈 방법이 없을까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에 '문/이과 융합적 교양 담론을 늘 의심하자'라는 제목으로 썼던 3년 전 글이 떴다 (링크).


돌이켜보면, 이런 주제가 대중문화비평 및 미시적 젠더정치와 함께 지난 수 년 간 내 메인 관심사의 코어였고, 블로그에 글 쓰는 취미의 동력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글을 쓰고 싶어도 소재도 마땅치가 않을뿐더러, 잘 모르면서 쉽게 비판적으로 얘기할 용기도 많이 떨어졌다보니 진지한 글을 잘 못 쓰겠음. 여러가지 지적 파탄이나 비약들 그리고 비판들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실질적 활동들인 것인데, 그앞에서 내 한갓된 글쓰기, 그것도 공부가 동반되지 않고 인스턴트한 서치만으로 비벼서 하는 블로그 글쓰기는 늘 초라해지기도 했고.


만약에 자투리시간에 유튜브랑 페북 보는걸 줄이고 과학기술사회학 쪽 양질의 영문 텍스트를 꾸준히 읽고 기록하는 식으로 해 본다면, 지적 건전성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런쪽 흥미를 꾸준히 풀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고 있다. 아니면 토픽은 하드하되 스케쥴은 루즈한 독서 모임 같은 거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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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9일 금요일

Resurrezione (Pericle Fazzini) - 교황청 알현실에 있는 멋진 조각 작품

 바티칸의 교황 알현실에 있는 대형 금속 조각 작품이다 (Resurrezione - Pericle Fazzini). 핵전쟁과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독특한 테마로 제작되었다고.

사람 2명의 이미지일 수 있음


종교적 도상들은 질서정연하고 찬란한 느낌과 함께, 우리의 마음속에 온전히 포섭되어 이해되기 힘든 다소간에 두렵고 낯선 느낌도 늘 함께 가져다 주는 듯하다. 그중에서 이 작품은 후자 쪽에 많이 쏠려 있는, 다소 괴기한 장엄함을 갖춘 굉장히 현대적인 컨셉의 기독교미술 작품 같은데 무려 교황청에 있다고 하니 뭔가 더욱 웅장하게 느껴지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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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일 금요일

점점 각광받는 디퓨전 모델 (diffusion model)

생성모델 분야를 매일같이 혁신하고 있는 학습 스킴인 diffusion model 쪽에서 유명한 Yang Song (Google scholar: 링크, 개인 홈페이지: 링크) 이 이번에 스탠포드 박사 졸업 하시면서 바로 칼텍 교수로 임용되신 듯하다.


이 분이랑, 스탠포드 Ganguli 그룹(홈페이지: 링크)의 여러 alumni 및 그 근처 동료 분들(S.S. Schoenholz, J. Sohl-Dickstein, J. Pennington, Jaehoon Lee 등)이, 수학 및 물리학을 바탕으로 머신러닝을 이론적으로 연구하면서 FAANG에도 걸쳐 있을 수 있는 멋진 포지션 창출의 제일 모범적이고 성공한 케이스들인 것 같다.


Ganguli 그룹에서는 디퓨전 모델은 사실 극히 일부분이고, 기존 딥러닝 이론에 물리 적용하는걸 꾸준히 다양하게 잘 하시며, 인공지능뿐 아니라 생체 신경망의 정보 인코딩에 대한 이론적 분석 같은 것도 활발히 하시는 듯. 어째 다 스탠포드네....


나도 9월 초에 논문초안 내고 나면, 네이버웹툰 지인이랑 같이 올해 초에 디퓨전모델 스터디 하던 걸 자투리시간에 마무리 해서 블로그에 정리나 해둘 생각이다.

- diffusion model 기초: 물리학의 시야에서

- diffusion Schrödinger bridge

- Riemannian manifold에서의 diffusion model

- 미학적(?) 함의

아무튼 우리 분야로부터 강하게 inspired된 방법론인 디퓨전모델이 재작년부터 점점 뜨더니 위에 말한 스터디 그만뒀던 한 반년도 안 되는 사이에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질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거둬서 기쁜마음 반 초조한마음 반임.

초조한 이유는 디퓨전모델이 워낙 각광받다 보니 이제 머신러닝 피플이 비평형통계물리 계산을 우리들보다도 잘하게 되는게 시간 문제겠다 싶어서 ㅋㅋ 현재 이론물리의 정수이자 에쎈스는 장론이랑 RG라고 생각하는데 이들도 혹시 IT 최전선에 응용돼서 빼앗기기(?) 전에 깊게 공부해서 저점매수 해 두어야겠다. 실제로 이미 응용의 시도들도 파편적으로 꽤 있고.

난 교양수준이긴 하지만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의 assistant로서의 머신러닝에 늘 관심이 제일 많은 편이다. 세계의 근본 요소가 아니라, 세상에서 어쩌다 생겨난 여러가지 것들에 대한 '법칙 아닌 법칙'(말하자면 패턴?)들을 경험적으로 파악해서 재조합하는 걸 전통적으로는 예술가와 그 조수들이 잘 했는데, 머신러닝이 잘 하는. 것도 딱 그런거고. 그렇게 파악된 '법칙 아닌 법칙'을 뜯어보는 것에 내가 원체 관심이 많기도 할 뿐더러, 그런것들이 역으로 각 부문별 창작활동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더 깊은 이해까지 제공할수 있다고 생각함.

DALL-E 2나 Midjourney 등으로 요즘 핫한, diffusion model의 예술창작 같은 경우도 그래서 매우 맘에 든다. 그런데 이것은 결국 블랙박스 단계를 넘어 semantic 및 style을 체계적이면서도 쉽게 이해, 추출, 변경 가능해질 때에 지금보다도 더욱 커다란 비즈니스적 breakthrough가 생길것 같음. 별로 챌린징한 태스크는 아닌 것 같고 (통합적으로 예쁘게 안된다면 덕지덕지 붙여서 만들면 되니까) 돈 많이 될 테니까 아마 금세 누가 만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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