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지인과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 단체 PWS Korea (Pro Wrestling Society Korea)의 메인쇼를 보러 갔다 (11/29 중구구민회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금 한국 프로레슬링은 중흥기라고 할 만큼 상당한 인기를 누리며 성공적인 종합 엔터테인먼트화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흥미롭게도 최근 1-2년 사이에 유튜브 채널 '급식왕'과의 콜라보를 통해 급격히 유입된 어린이 팬들이 있다. 나는 프로레슬링에 대해 학창시절에도 관심이 없었던지라 직접 보러 가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나, 요즘 이처럼 인기를 얻게 된 독특한 과정에 대해 이미 어느정도 알고 있는 바가 있었어서 소개해본다.
유튜브 급식왕/급식걸즈 채널은 현재 코미디언 출신 박병규가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용 유튜브 채널인데, 처음에는 '~하는 유형' 등 단편적인 영상 위주로 인기를 끌었으나 점점 규모가 커지고, 꽤나 본격적이고 일관적인 등장인물별 캐릭터성(기믹)과 스토리라인을 갖추며 드라마화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주로 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여러 유쾌한 사건사고를 다루는데, 그때그때 인기있는 유행어, 놀이, 장난감 등도 반영한다. 나는 어쩔티비 유행 때 침착맨이 한번 언급해서 우연히 유입되어 지금까지 보고 있다.
개콘이나 SNL 등 개그프로나 기타 TV프로그램을 많이 봤던 우리 세대라면 익숙한 배우들도 많이 나오고 (코미디언들 외에는 대표적으로 크레용팝 초아가 아이돌 연습생 역할로 거의 4년정도 출연을 했었다), 극중 대사나 설정들에 어린이들은 잘 모를 깨알 옛날 소재들도 많이 사용되어서 상당히 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기성 유튜브에서의 유행도 그때그때 창의적으로 반영하는데, 예를들어 피식대학의 B대면데이트에 킹받는 재벌집 자식으로 출연한 이호창(코미디언 이창호)이 똑같은 캐릭터성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촬영은 아주 잘 갖춰진 스튜디오라기보다는 급식왕 채널이 사용하는 사무실(학원 강의실처럼 생겼다)이랑 그 주변 골목길 같은 데서 하거나, 필요하면 그린스크린 등을 이용해서 연출하는데 코미디언들 출신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연출의 센스가 뛰어나고 연기도 퀄리티가 높다. 나는 애초에 유튜브를 볼 때 머리아픈 지식/시사 컨텐츠보다는 깨알 재미가 있는 유치한 컨텐츠나 추억팔이 컨텐츠를 좋아하는지라 내 취향에 쏙 맞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어떤걸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급식왕은 단지 유튜브 영상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설정을 바탕으로 굿즈도 판매하고, 심지어 음원도 내고 그걸 바탕으로 개그 뮤지컬도 여러차례 하는 등 컨텐츠적으로나 비즈니스적으로나 상당히 수완이 있어보여서 인상깊게 시청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기 출연하던 멤버들도 다른 고정 일자리가 생기면 빠지는 경우도 잦은 편이었다. 특히 2023년 말 개그콘서트가 부활하면서 출연자들이 많이 빠지는 징후가 보였는데, 이때쯤에 프로레슬링 단체 PWS와 콜라보를 시작해서 채널에 새로운 성장의 계기를 도입한 모양이다 (나무위키를 보니 급식왕의 박병규님이 발가락쌤 의상을 입은 채로 관람하러 갔다가 PWS의 수장 격인 레슬러 시호가 알아봐서 콜라보 논의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 콜라보는 급식왕 채널뿐 아니라 프로레슬링 쪽에게도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이제 급식왕과의 콜라보는 몇몇 특별한 행사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프로레슬링 메인쇼에서 급식왕 배우들이 진행과 안내를 맡고 레슬러들 사이에서 마이크도 전달해주며, 스토리상으로도 PWS의 단장을 발가락쌤(박병규)이 맡는 서사 빌드업이 있는 등 상당히 밀접하게 결합되어 진행된다. 그리고 급식왕 채널의 컨텐츠에도 PWS 레슬러들이 링에서와 같은 기믹을 가지고 배우로 거의 매번 출연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급식왕과 PWS 모두 실제와 가상이 다소 뒤섞인, 기믹과 배우의 인기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점에서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하겠다.
이번 프로레슬링 메인쇼에 가보니, 초반부는 급식왕 설정들과 함께 유쾌하게 진행을 하다가도, 중반부부터는 점점 서늘하고 하드한 분위기로, WWE나 일본 등 해외 판에서 실제로 뛰던 프로레슬러들도 등장해서 긴장감있는 경기를 연출하는 등, 전 연령대가 각자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라는 느낌이 들었다. 끝나고 굿즈 사면서 싸인받을 수 있는 시간도 있어서, 영상으로만 봤던 배우/레슬러 분들이랑 직접 말도 하고 사진도 찍을 수 있어서 신기했다.
나를 여기에 데려온 지인은 스트리머 케인 방송을 보다가 프로레슬링에 유입되었다고 하고 (케인의 이름 자체가 WWE 레슬러 케인을 따서 지은 이름이기도 하다), 나는 침착맨->급식왕을 통해 유입되었는데, 침착맨과 케인도 친분이 있는 걸 고려하면 하나의 싸이클이 완성되는(?) 느낌이라 재미있기도 했다.
심지어 몇 달 전에는 레슬네이션이라는 한 해의 가장 큰 행사(WWE의 레슬매니아에 해당하는 듯하다)에서 케인이랑 급식왕 대장인 발가락쌤(박병규)의 매치도 있었는데, 링에 실제로 오르는 건 처음인데도 훈련도 많이 하고 진지한 태도로 임해서 박진감있는 경기를 했다고 한다. 이 행사에 유명 스트리머들도 대거 구경을 오고 각자 방송에서 소감도 말하고 해서 프로레슬링의 인지도가 올라가기도 했다. 케인 시청자들은 프로레슬링 팬이었던 케인이 시간이 흘러 한국 프로레슬링 판을 알리는 역할도 맡게 되다니 감격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팟캐스트 등 시사분야 활동으로 처음 접한 김남훈 님도 프로레슬링계로 다시 복귀하여 이번 쇼에 해설자로 나오셨길래 신기하고 반가운 느낌이 있었다. 나로서는 가히 거대한 세계관 통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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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메르타, 오지 블레이즈 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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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빛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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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셀, 디바(급식왕), 예니, 포이즌 로즈 |
어린이 위주로 흘러가는 것에 대해서는 PWS 팬들 사이에 호불호가 없지는 않은 것 같고, 또한 프로레슬링 단체가 PWS만 있는 것도 아니지만, 여태껏 다소간에 높은 연령대의 관심사였고 그마저도 해외 매치 시청 위주였던 프로레슬링 분야에 이 정도로 티켓파워가 상당히 나오는 국내단체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게다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팬을 해 줄 수 있는 어린이 팬덤까지 확보한 것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이고 놀라워하는 반응인듯하다.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 어른들이 보기에도 깨알 재미가 참 많은 급식왕 채널 역시 프로레슬링을 통해 인지도가 더 확대되는 것 같다.
아무쪼록 뭔가 주류 미디어와 일정정도 거리가 있으면서 규모가 꽤 있는 인디 엔터테인먼트 판 하나가 새로 커다랗게 자리잡은 느낌이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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