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7
코토바 x 단편선 순간들 합동공연 <당신은 재미있다> at 공상온도 @gongsangondo
2024.12.17
코토바 x 단편선 순간들 합동공연 <당신은 재미있다> at 공상온도 @gongsangondo
한국어-일어 번역가로 헤비메탈 관련 출판에도 일찍이 관여해온 미즈시나 테츠야(Tetsuya Mizushina)선생이 2018년에 출판한 책이다. 한국 메탈 밴드 300여 팀을 총망라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소수 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는 정기 간행물이 아닌 이러한 집대성 식 단행본 중에서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국내에서 나온 대부분의 출판물을 압도하며, 텍스트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한국 음악의 흐름에 이해할 수 있는 도표 및 그래픽 자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소장 가치 또한 상당하다.
모든 밴드에게 한 페이지 (각 챕터의 최후반부에는 1/4페이지) 정도를 할당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아주 유명한 팀도 비교적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밴드에 대해서도 유명 밴드와 비슷한 분량으로 다룬다는 뜻이기에 의미 있어 보이며, 내용도 피상적이지 않고 충실하다.
나는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지만 짧은 한자 지식과 Papago를 이용해서 몇 군데 읽어 보았는데, 단순히 밴드들의 공식 소개를 카피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밴드에 대해 저자가 직접 들어 본 뒤 앨범별로 설명과 소감을 적었고, 비슷한 스타일의 밴드들도 태그되어 있는 등 정성이 돋보인다.
우리 동아리의 멀지 않은 선배들이 주축이 된 팀들인 Liberalia, Purgatorium도 소개되어 있는 점도 무척 반가웠다. 저술 과정에서 굉장히 디깅을 많이 하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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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식물이나 사물에 푹 빠져서 그걸 직접 보고 싶어하거나 비슷한 걸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하는 어린아이들의 욕구, 그리고 그걸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들어 주고 체험시켜 주려는 양육자의 노력을 볼 때면 나는 마음 속 한 곳에서 이상하리만치 깊은 인상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보편적인 이해를 증진하는 게 아니라 신기하고 독특한 개별 사물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충족시켜 가는 과정은 주로 어린아이에게 허용되는 것으로서, 굉장히 원초적이고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욕구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아주 신기하고 인상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하루 종일 그것에 빠져 있지는 않게 된다. 그러다가 어린아이가 그러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기에 그런 욕구가 너무 잘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것에 빠졌지 하고 다소 이해가 안 되거나, 약간 부담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그런 신기함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보편적인 가치가 부여되나 의도가 투영되지 않은 작은 부분으로부터 유발되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그렇다. 자연이나 인공물 중에서 무엇이, 어떤 부분이 어린이의 마음을 끌어당길지는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르고, 그렇기에 뭔가 불가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이렇게 주변에 풍랑을 일으키면서까지 무언가를 알고 싶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인간성의 정수가 담겨 있는 욕구를,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각자의 관심사를 형성해나가며 고유한 '소우주'(microcosm)가 되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이해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수록 감당이 안 되어서(?)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의 이러한 충동(혹은 이러한 충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심정능력)이,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인간사의 여러 위대한 도전들과 경악할 천태만상들을 일으키는 데에도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내 것으로 만든다'라는 건 그냥 내가 적당히 만들어서 쓰는 말인데, 소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신기함의 순간을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느끼고, 그 신기하다는 감정의 정체와, 애초에 호기심이 유발된 이유를 캐치해서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의 총체를 뜻한다. 이를 좀 더 멋있는 말로 하자면 "박물학적 충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조금 더 단순하게, 꼭 이런 종류의 충동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의 어떤 욕구를 양육자가 다소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조건없이 이해하려고 해 주고, 잘 대응해 주는 것 자체가 굉장한 사랑과 이해심이 있어야 되는 일이므로 이것은 당연히 따뜻하고 인상깊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친구관계를 비롯한 다른 욕구들에 비해서,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결부될 때가 나는 특히 더 인상적이고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 나 스스로가 아직까지도 사물과 현상을 애호하는 경향이 남들보다 굉장히 강하고, 그것들을 별 의미없이 찾아보고 감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꺼리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철덕도 아니고 수집가도 아니지만 이와 같은 심적 경향은 철덕 및 각종 수집광들과도 뭔가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서, 그들에게도 종종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된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음식을 즐길 때에도 혀에 느껴지는 맛 때문에 먹고 싶어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음식이라는 사물 자체에 호기심이 들고 마음이 이끌려서 애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디저트 종류가 주로 그렇다. 음식을 예로 드니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러한 욕구가 소유 및 소비 욕구와는 묘하게 다르다는 게 더 명확해지는 듯하다.
이런 것과 관련된 몇가지 구체적인 기억도 있다. 가족들이 나를 여기저기 데려가서 이것저것 보여주신 경험은 일일이 기억은 안 나더라도 꽤 많이 있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아래의 일화다.
애니메이션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아키라(AKIRA, 1988)가 한국에서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직전에야 알게 되어, 12월 22일 밤 시간에 CGV 혜화에서 관람하고 왔다. 영화 상영이 끝나니 11시 10분이 넘어서, 결국 귀갓길에 사당역에서 막차가 끊겼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익히 알려진 웅장하고 화려한 사이버펑크 배경들뿐 아니라, 뛰어난 작화와 높은 프레임에서 오는 아기자기한 장면들과 훌륭한 동세 묘사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 작품의 장면들에서 유래되어 클리셰적으로 쓰이는 연출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아키라 하면 모두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달리던 오토바이가 90도 선회하며 급제동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 등의 무기를 슬로우모션으로 (혹은 작중에서 실제로 느려지게 해서) 피하는 장면도 아키라에서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마침내는 매트릭스(1999)의 그 유명한 장면에도 오마주된 것이라고 한다.
스토리와 주요 설정들 자체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스토리의 전달 방식이 어딘가 뚝뚝 끊기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들도 잘 파악이 안 되다 보니, 어느새 스토리의 세부보다는 대략적인 얼개만을 기억한 채 장면 연출 위주로만 감상하게 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원래 훨씬 길고 자세한 내용을 담은 만화책이 있고, 그 만화가 연재되는 도중 애니메이션화를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만화책의 주요 사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담으려고 하면 이렇게 뚝뚝 끊기는 느낌이 생기고, 그렇다고 특정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면 내적 완결성과 박진감은 확보하지만 원작 팬들이 아쉬워할 뿐더러 일반 관객 입장에서도 뭔가 스펙타클이 부족하다고 느낄 공산이 생긴다 (후자의 예시로는 내 인생 만화 중에 하나인 BLAME! (브레임!)을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있다).
만화책의 애니메이션화에 따르는 위와 같은 한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박진감 있고 활달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아득해지고 멘탈해지는, 그리고 모든 소중한 것들이 세심하지 않은 방식으로 파괴되는 일본 만화 특유의 서사 전개는 여전히 내 취향과는 다소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거대한 자연 재난을 빈번하게 겪는,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를 신화화, 인격화해서라도 집단적으로 process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관념이 반영된 부분일 수도 있겠다.
또한, 웅장하고 커다란 이야기가 결국 한 소년의 심리적 문제로 귀결되는 건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 이전에 아키라에서도 (그리고 아마도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미 그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경로로 주워들어 이름만 알거나, 주요 장면을 유튜브 클립으로만 보고 정작 제대로 감상을 안 해 본 유명한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약 2년 전쯤부터는 이들을 엑셀 파일에 리스트업해 두고 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니, 일주일에 한 편 정도씩 감상하고 기록을 남겨 보는 취미를 가져도 좋을듯싶다. 이번 아키라처럼 리스트에 적어 두었던 영화가 극장에서 재개봉한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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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는데, 지난 가을의 평양 무인기 사건도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기획한 게 맞았던 모양이다. 야당을 향한 경고성 계엄이라는 희대의 주장도 완벽한 거짓말로 드러나고있다.
북한의 도발은 언제 왜 일어나는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내부의 불안정한 역학관계가 발생했을때 대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바깥(?)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거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윤석열과 김용현도 비슷한 이유로 남북관계 긴장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북한 같은 폐쇄 고립 정권이 들어선 곳도 아니고 대외적인 리스크에 정면으로 개방된 채 매일같이 막아내며 여기까지 성장해온 나라인데, 이번 국지전 유발 시도 및 계엄으로 국민 생명이 이미 위협당한 것은 물론이며,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국민경제는 쪼그라들었고 국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 북한이 대응해서 확전이라도 했으면? 한국의 계엄군뿐 아니라 북한에 의한 실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서 계엄령의 정당성마저 확보될 수가 있고 그 여파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교육받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지금도 한국은행을 비롯한 관계기관들이 이미 RP 무제한매입, 국민연금-한은 외화 스와프 등으로 우리 세대의 복지 자금이 될수 있는 돈들을 하루에 십수조 혹은 수십조씩 빼서 금융시장 충격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건 안 그래도 무너져 있고 부동산에 기형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생애주기 설계에 장기적이고 결정적 악영향이 불가피하고, 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 및 용서가 불가능하다.
잘못은 내란을 획책한 소수 사람들이 했는데 왜 그 책임은 5000만 국민들이 져야 하는지, 그것도 왜 하필 내가 살아가가야 하는 세대에 이런일이 일어나야 되는지 정말 너무나도 억울하다. 이번 일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이번 기회에 국가 체질을 바꿀 부분은 바꾸어서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대비하는 게 그나마 이번 사태의 충격을 줄이는 일이다.
기무사도 이름까지 안보지원사로, 또 방첩사로 바꿔가며 쇄신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충암파인 방첩사령관 지휘 하에 사전 작업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번일에 참여해 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상명하복에서 오는 비극일 수도 있지만 결국 본연의 임무들 잘 했건 못 했건 이번 일에는 부대 해편까지 포함한 아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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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에서 이야기하는 2선 후퇴, 책임총리제, 거국내각 등이 법적으로 애초에 없는 개념인데, 그게 왜 '질서 있다'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오직 탄핵에 의한 직무정지 및 파면, 자진 하야, 혹은 불소추특권 예외에 의한 체포의 3가지만이 질서있는 퇴진의 방법이다.
결국 여당이 원하는 것은 위헌적 계엄으로 계엄군을 동원하여 국회의원들을 잡아넣으려고 했던 대통령을 권한도 확실하게 정지 안 된 채로 직에 유지시켜 놓고 비정상적인 형태로 시간을 벌겠다는 것 아닌가.
만약 그 와중에 군사적 급변사태나 외교, 경제, 금융 등에서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군통수권을 포함한 모든 주요 결정 권한은 법적으로 대통령한테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할건가? 이렇듯 소위 2선 후퇴가 제대로 된 법적 개념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문제는 지극히 크다. 헌법적 근거가 있는 퇴진의 방안들이 속도도 더 빠르고 그 실행의 방법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도 적으며 더 민주적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우리 경제와 금융은 대외 불확실성에 언제나 정면으로 노출되어있다. 국내 인구는 충격적인 감소세가 예정되어 있는데다 나라의 먹거리가 될 미래 성장동력조차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라면 초저성장을 넘은 마이너스성장이 기정사실이다. 연금, 지역균형, 부동산, 가계부채, 노동 등 국민경제의 모든 주요 부문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을 만성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해결 못한채로 쌓아오기만 한 그런 것들이 초저성장을 계기로 구체적으로 터져나올 것인데 이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향이 설정된 정책 집행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걸어온 오르막길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그것도 대단히 가파른 내리막길에 진입하고있다. 바로 내 주변 세대가 그런 숨막히는 시대와 처음으로 정면으로 부딪혀가며 살아가야한다.
- 계엄의 어설픔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또한 내란 옹호 세력의 프레임이다! -
단 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른 것인지 실감조차 나지 않아서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해보고 있다.
지난 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국민들의 신속한 관심과 국회의 의결 등을 통해 인명피해 없이 몇시간 안에 해제되면서 일단 당장의 급박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하룻밤의 '해프닝'이라는 단어로 사태의 무게를 축소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해프닝이라는 말은 물론이고 '오판', '정치적 자폭행위'라는 보수언론들의 마지못한 비판적 언사마저,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말이다. 이번 일이 헌법에 얼마나 많은 위반사항이 있고, 흘러가기에 따라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 건인지를, 한치 앞도 알 수 없던 어젯밤의 감각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끊임없이 실감나게 상기하며 적극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당과 군에 대한 장악이 안된 채로 이런 사태를 벌인 것이 어차피 안될 일이었다는 식으로 '오판' 내지는 '정치적 자폭행위' 정도로 축소하려는 모습도 보수언론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정치적인 무력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써 서슬퍼런 1970-80년대에 사용되었던 수단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윤석열 자신이 정말 국회의 완전한 무력화와 전국민 기본권 통제까지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해는 전혀 안되지만) 나름의 경고성 조치 내지는 일종의 충격요법을 생각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엄연한 사실은 선관위가 장악되고, 여야 대표 체포조가 투입되고, 특히 국회에서 일반 시민과 무장 계엄군이 직접 대치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는 것이다. 해프닝이라기엔 이 모든 일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한 정도가 너무나 크다.
여기서 만약에 상황이 조금만 잘못되고,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대치 최일선에서 아주 조금의 돌발적 사태나 오판만 있었어도 사태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국가폭력 사태가 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이런 일을 한 번 벌인 이상, 집회 및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앞으로의 정국에서 박근혜 때와는 다른 굉장한 오판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아직 그 어떤 것도 해결된 건 없는 것이다. 이는 전혀 과도한 우려가 아니며, 이러한 위험에 국민들을 노출시킨 것 자체가 1970-80년대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행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외신들의 경악에는 이유가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그 요건 자체가 안 될 뿐만 아니라, 계엄은 초헌법적인 것이 아니므로 현행 헌법 및 계엄법상 계엄령이라고 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발효되었던 포고령의 내용과 군부대를 통해 국회 장악 시도를 한 것 등 계엄의 구체적 전개과정도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위반하고있다. 민주국가에서 사용될 수 있는 정상범위의 정치적 수단을 한참 넘어선 일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평가해야 한다.
대통령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성정을 가진 매우 특이한 인물이고 그러한 성정이 국민들에게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채로 당선되어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도대체 어떤 생각과 판단능력으로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수단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는 아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색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감옥 갈 수도 있는, 헌법 교과서를 다시 쓰이게 할법한 이런 일까지 할까.
당선 직후부터 여당 대표를 수차례 갈아치우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오로지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부적절하고 대결적인 대응으로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드는 특유의 정치행태를 통해 점점 더 고립을 자초한 형국이, 이러한 파국을 예견함과 동시에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조심스레 생각해볼 뿐이다.
충암고등학교 동문인 경호처장을 국방부장관에 임명했을 때부터 이미 이러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 등, 아직은 의문투성이인 이번 일의 정확한 경위와 전말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반복적인 고위공직자 탄핵발의와 예산안 비협조 또한 하나의 배경으로 자연스레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성숙한 민주국가라면,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이번 일을 대통령과 극소수 참모의 지극히 일탈적인, 기존의 정치 풍토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빠르게 평가를 정리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헌정사적 의미와 재발 방지 방안 등 보편적인 고찰이 가능한 점들 또한 부족함 없게 속속들이 논의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능히 같이 가져갈 수 있느냐가 우리나라 정치의 역량과 성숙도를 시험대에 오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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