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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8일 수요일

ChatGPT 이모저모 - (2) 조리있음, 논리적 상상력, 그리고 강박적 우호성

지난번 글에서는 ChatGPT의 기술적인 원리를 나름대로 짚어보았다. 이를 요약하자면, ChatGPT는 다음 토큰 예측을 통해서 담화 형태를 가진 텍스트를 완성시켜 준다. 또한 맥락-내 학습을 통해 추가적인 학습 없이도 사용자의 적절한 프롬프팅(텍스트 입력)만으로 새로운 과제에 대한 수행능력을 구성해 낼 수 있다.


이번에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경험적으로 파악한 특징들을 나열하고, 그것들이 앞서 이야기한 기술적 원리들과 어떻게 연관되는지에 대해서도 느낌을 가져보기로 한다. 그 다음으로는 주요 한계점에 대해서 논의한다.

먼저 아래의 서술들은 질문-답변 형태의 거대언어모델들이 앞으로 갖게 될 일반적인 특징들이라고 보기는 조심스러우며, 일단은 현재 단계의 ChatGPT가 가지는 특징들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다만 ChatGPT는 언어 생성 자체의 성능은 매우 높으면서도, 사실관계 답변이나 수량적 지식 처리 등의 특정한 목적에 맞추기보다는 격식있는 언어 일반을 재현하는 듯하다. 또한 사용자와 잘 align되는 특성, 조금 더 좁게 말하면 편향되거나 노골적으로 유해한 대화를 피하는 것에는 신경을 많이 썼다. 이러한 safety에는 물론 많은 노력과 커스텀이 들어간 것이지만, 어떻게 보면 신뢰할 수 있는 작동을 위한 최소 요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면 ChatGPT는 거대언어모델의 기본원리를 비교적 충실하게 reflect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러므로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언어모델들의 '바닐라' 상태에 가깝다고 보인다.

('바닐라'란 기본을 만족하되 추가적인 커스텀을 가하지 않은 상태를 일컫는 용어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기본 맛'으로 여겨지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링크: https://en.wikipedia.org/wiki/Vanilla_software)


먼저 ChatGPT의 가장 중심적인 특징 두 가지는 형식 면에서의 조리있음, 그리고 내용 면에서의 논리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내 생각에 이 두 가지가 ChatGPT가 가장 자연스럽게 잘 하는 종류의 일이며, 따라서 대체로 이들에 집중할 때에 ChatGPT로 가장 생산적이고 재미있는 결과들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논리적 상상력은 강박적 우호성이라고 이름붙인 또다른 특성에 의해 지지되고 있다. 문제도 없지 않은데, 이미 널리 지적되고 있는 사실관계 오류 문제를 제외한다면 대표적인 문제는 물리적 세계감각과 관련된 상식이 부족한 것과, 텍스트 구성요소의 층위를 혼동하는 것으로 정리하였다.

이를 종합해서 ChatGPT를 인간에 비유하자면 우호적이고 빠르고 성실한, 그러면서도 창의적인 조수에 가깝다고 보인다. 다만 수많은 부문을 '글로만 배웠'다 보니 인간에 비해 많은 한계점도 보여준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조리있음

첫번째로 다룰 특징인 조리있음은 말 그대로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조리있고(coherent) 잘 조직화된 (organized)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은 '논리적'인 것과는 묘하게 다르며, 내용의 논리성보다는 글의 스타일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 필자가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덕지덕지 쓴 입력을 넣어도, 말하고자 하는 내용만 확실하다면 그것을 알아듣고 상당히 프로페셔널한 학술적 스타일로 바꾸어주며, 그것을 바탕으로 생산적인 결과를 출력한다. 이는 수많은 예시들로부터 이미 명백하기에 예시는 따로 첨부하지 않기로 한다.

또한 원하는 조건을 프롬프팅을 통해 하나하나 추가하면, 그것을 모두 반영해서 잘 수정된 결과를 준다. 통째로 새롭게 할 필요가 없고 dialogue를 반복해가며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점진적으로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시에 사용되는 표현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변화시켜야 할 사항과 보존시켜야 할 사항을 확실하게 밝혀준다면, 불만을 원하는 만큼 해소하고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물론 확률적 생성이기 때문에, 일부분만 바꾸고 싶은데 글 전체가 바뀌어 버리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 그런 경우에는 나머지를 그대로 놔두고 오직 그 부분만 바꾸라고 말하면 사과와 함께 다시 잘 해 주기도 한다.

따라서 사용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점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정확성이라는 것은 꼭 형식적/문법적으로 조리있고 깔끔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격식없는 언어로라라도, 예시를 동원해서라도, 그렇지만 분명한 논리적 지시사항이 있게끔 어떻게든 표현을 해내면 된다. 특히 예시의 동원은 많은 도움이 된다.

다만 사용자가 직접 제공한 예시에만 지나치게 이끌리지 않고 넓은 범위의 샘플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상당한 프롬프팅의 노하우를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AI에게 말로 일을 시키는 prompt engineering이 그림뿐만 아니라 언어모델 쪽에서도 아예 하나의 직군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측 (그리고 이미 실현 중인 현상) 이 바로 이런 측면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물론 막연하게 의외성에 의한 희극적인 결과를 기대하고 질문하는 것도 재미있다. 언론에까지 보도된, 한국사 가짜뉴스 만들기가 그 예시일 것이다.

(한국일보 기사: 링크. "세종대왕 맥북 던짐 사건 알려줘" 밈이 된 챗GPT 엉뚱 답변)



그렇게 할수록, ChatGPT의 활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서술할 ‘우연성 예술’에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다만, 관점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으나 이러한 경우에도 메타포에 근거한 시적 상상력보다는 소설적 상상력이 더 부각되는 면이 있기에 여전히 조리있음의 범주에 넣는 것이 적절하겠다. 자세한 내용은 이하에서 다룬다.




논리적 상상력

두번째로 다룰 논리적 상상력은, 기발한 은유를 동원해서 세계의 어떤 단면을 짚어내는 종류의 상상력이 아니라, 대상들의 잘 알려진 기능과 특징에 논리적으로 입각해서 창의적인 작업을 하는 종류의 상상력을 말한다. 이러한 작업의 예시는 구체적으로 보자면 서로 다른 두 대상 혹은 영역을 창의적으로 연결하기, 주어진 조건에 부합하는 설정 및 캐릭터를 만들기, 조건에 부합하는 이야기의 스켈레톤을 만들기 등이 있다.

이것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샘플들을 첨부한다. 첫번째는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연결하는 작업에 관한 것이다. 임의로 고른 두 식재료 (닭가슴살과 젤리) 의 질감을 내삽(interpolation)하는, 즉 그 둘의 중간 정도의 식감을 갖는 식재료를 제안해 달라고 해 보았다.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연결하기 (1/3)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연결하기 (2/3)

서로 다른 두 대상을 연결하기 (3/3)

Facebook에서 해당 게시물 보기: 링크 (2022.12.04)

Facebook에서 또다른 예시 보기: 링크 (2022.12.04)
(한국어와 영어가 무작위적으로 섞인 이상한 문단 만들기)


사실 요리라는 것은 감각의 영역이 많이 작용하는 부문인 데 반해, ChatGPT는 말하자면 요리를 '글로 배운' 경우이다 보니 이것이 현실 세계에서 잘 작동하는 제안이라고 보장할 수는 없으므로 그다지 재미있는 예시는 아니다 (ChatGPT에게 감각세계가 부재하다는 문제는 이하에서 보다 자세히 다룬다). 그럼에도 각 식재료의 특징을 성실하고 적극적으로 가져와서 결과물에 논리적으로 반영해 주는 것에서, 논리적 창의성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만약에 감각에 직접 와닿는 질감보다는 이산적인 기능이 중요한 과제를 창의적으로 수행하게 하면 훨씬 더 괜찮을 것이다. 예컨대 지금 내 앞에는 '컴퓨터'와 '커피'가 있다. 만약에 이 둘을 내삽하는 물체 혹은 개념을 제안해 달라고 하면, 보통은 이게 무슨 말인가 하겠지만 ChatGPT는 각각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반영하여 새로운 물체와 그 이름까지 제안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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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예시는 조건에 부합하는 설정과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에 관한 것이다. 시간 여행이 존재하는 SF 속 세계에서 사용될 법한 영문법 시제를 만들어 달라고 해 보았다.

SF 속에 등장하는 전형적 시간여행 상황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은 유저가 전혀 알려주지 않았고, ChatGPT가 방대한 데이터들 중에 어떠한 상황을 고를지 스스로 정한 것이다. 해당 상황들에 대해 대략적으로 어떤 모습의 시제를 원하는지는 매 단계 세심히 알려주었다.

  • 먼저 will, might, been, being 등 기존의 시제 표현 단어들을 조합해서 SF 속 시간여행 상황을 표현하게 한다.
  • 그 다음에는 낯선 느낌을 주기 위해 morpheme들을 조금씩만 왜곡하도록 했다. 아래에서, 아마 have를 변형한 것으로 보이는 hab 등이 그 흔적이다.
  • 마지막으로 랜덤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관련이 있는 기존 단어들 (chrono-, tempo-, reverse 등) 을 부분부분 따 와서 집어넣도록 했다.

예외적으로 맨 마지막 6번째 시제는 정반대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내가 직접 "will must have been done"이라는 시제를 아무렇게나 만들어서 주고, 이것이 어떤 시간여행 상황에 적합할지 생각해서, 1-5번째와 같은 형태로 표현하도록 시켰다. 앞과 정확히 같은 형식으로 잘 표현해 준다.

조건에 부합하는 설정을 만들기 (1/3)

(1) chro have hab been -ing: 주어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여행할때, 미래에서 이미 겪은 일을 나타냄
(2) be willing to tem have been: 시간선에서 이미 일어난 미래의 일을 예상하는 것을 나타냄
(3) had been rev being pp.: 과거의 사건을 현재 순간에 겪고 있는 것을 나타냄

조건에 부합하는 설정을 만들기 (2/3)

(4) be had -ing: 현재 순간에 과거의 사건을 다시 살고 있는 것을 나타냄
(5) will be over being: 미래의 사건을 예측하며 그것을 현재에 겪고 있는 것을 나타냄


조건에 부합하는 설정을 만들기 (3/3)


(6) will must have anti been done: 어떤 사건이 미래에 완료될 것임을 예측하는데, 그것이 시간여행에 의해 과거에 이미 완료되었음을 나타냄

Facebook에서 해당 게시물 보기: 링크 (2022.12.06)

이들은 그저 흉내만 내려고 랜덤하게 합친 것은 아니고, 나름의 논리성에 의거하여 완성된 시제들이다 (최소한 처음의 생성은 랜덤했을지라도, 각 시제에 대해 설명을 요구하면 합리적이고 일관성있는 설명을 제공해준다). 캡쳐에 있는 각 시제의 ‘이름’도 나름 근사하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해당 상황을 나타내는 시제와 그 이름이 반드시 이러해야만 한다는 실용문법적 '답'을 제시하는 개념은 아니고, 창의적 기계로서 합리적, 논리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일 뿐이다.

맨 처음에는 시제의 이름과, 문장속에서의 시제의 표현을 구분하지 못하길래 그 구분을 열심히 알려주고 나서 진행했다. 필자가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대략 지시한 뒤에 이해했는지 물어보면, 이해한 바를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얘기해주므로, 이러한 종류의 과제에서 상당히 믿을만하다.

이처럼, 매 단계에서 ChatGPT에게 정확히 이해했는지 스스로의 언어로 논리적으로 설명해 보라고 시킨 다음에, 그것을 확인 및 컨펌하고 진행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일관되고 설명가능한 결과를 내기 어렵다. 이러한 절차는 인간과의 꼼꼼한 협업이랑 비슷한데, 훨씬 더 빠르고 명확하고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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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나는 이러한 논리적 상상력을 시적 상상력보다는 소설적 상상력에 가깝다고 표현하고 싶어진다. 어떤 뜻인지는 전달이 될 것 같아서 임시로나마 이 용어를 쓰겠다.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상들의 기능과 특징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함께,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조합을 무척 그럴듯하게 (즉 그것을 묘사하는 텍스트가 실제로 존재할 법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ChatGPT의 작동 원리에 잘 부합한다.

물론 여기에서도,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의외성’, ‘무작위성’의 영역이 어느 정도는 있다. 어떤 두 가지를 연결시키려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명시하지 않은 각각의 특성들,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시키는 방법 자체는 창의적으로 찾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랜덤으로 탐색된 것들일지언정 종국에는 상당히 논리적이고 개연적으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이들 작업은 결국은 논리성에 닿아 있다.

2019년경 각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인공지능이 배트맨과 조커에 대해 만든 짧은 스토리와, 그것을 바탕으로 사람이 그린 그래픽 노블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것은 나름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어딘가 부조리하고,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메타포들 (주로 우연에 의해 생성되었을), 그리고 조커다운 나쁜 농담을 포함하고 있다.

(Keaton Patti의 트위터 게시물: 링크. AI가 작성한 짧은 스토리.)
(Matt Shults의 트위터 게시물: 링크. 위 스토리를 바탕으로 사람이 그린 그래픽 노블.)


어느 정도 구조를 갖춘 스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람들에게 어필했던 메인 포인트는 결국 여전히 우연성 예술이자 시적 상상력의 영역이며, 따라서 ChatGPT보다는 과거의 낮은 성능의 챗봇들에 여전히 가까운 면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부조리가 조커라는 등장인물의 특성과 우연히도 무척 잘 어울리다 보니 꽤 인상깊은 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훨씬 최신 모델이지만 '지나치게 조리있는' ChatGPT에게는, 이러한 메타포적인 작업이야말로 일부러 세심하게 시키더라도 만족스럽게 되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작업이다.

한편, ChatGPT를 이용해서 어떤 캐릭터나 브랜드의 이름을 짓는 것은 어렵다. 멋지지 않고 너무 정직한 이름을 지어 준다. 이름을 짓는 행위는 ChatGPT가 잘 발휘하는 소설적 상상력이 아닌, 시적 상상력에 가까워서 그렇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강박적 우호성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그럴듯한 내용의 예측이라는 특징으로부터 창발하는, 강박적 우호성이다. 여기서 우호성이라고 하는 것은, toxic하거나 aggressive한 답변을 피한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이다. ChatGPT는 사실이든 아니든, 그 대화 내에서 전제되어야 하는 사실을 프롬프팅을 통해 알려주면 그에 대해 반대하기보다는 철저히 동의 하에 진행한다. 이것은 사실관계 오류를 걸러내지 못하는 한계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앞선 포스팅에서 서술한 기본 원리를 생각해봤을 때 사실 제 할 일을 한 것뿐이며, 창의성이라는 면에서는 잘 활용하면 대단한 것일 수 있다.

즉 ChatGPT는 물어본 내용에 대해 어떻게든 가능성을 찾아주는 편이며, 부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위에서 언급된 논리적 창의성도 사실은 이러한 강박적 우호성과 꽤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서로 상관이 없는 두 가지를, 서로 관련이 있다고 전제하고 어떻게든 연결지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개념이나 대상을 -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상상해내는 작업에서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



ChatGPT의 특성: 종합 및 기타 노하우

위에서는 강박적 우호성에 의해 논리적 상상력이 수립되는 것 같다고 하였다. 물론 대체로만 그렇다는 것이며, 가끔씩은 가능성을 찾지 않고 부정해 버리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이럴 때에는 ‘정확도가 아닌 상상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창의성을 발휘해 보라’고 지시하면 다시 잘 하기도 한다. 이전의 맥락까지 포함한 총체적인 대화를 하다 보니 이것마저 잘 안 될 수가 있는데, 그럴 때는 아예 새로운 대화 창에서 다시 시작하면 더 좋다. 이런 것 역시 일종의 노하우로, prompt engineering의 초보적인 예시일 수 있다.

강박적 우호성과 약간 관련될 수 있는 어떤 문제점도 있다. 어떤 명제에 대해 긍정인지 부정인지 답을 얻고 싶은데, 프롬프팅에서 그 명제가 언급된 것 자체로 이미 긍정 쪽으로 편향, 혹은 강박적으로 균형있게 다루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은 사용자가 기술 리터러시가 부족할 경우에 인지적 편향을 유발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는 다음 글에서 쓰겠다.

한편 앞에서는 조리있는 스타일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라고 하였는데, 사실은 데이터가 워낙 많고 capability가 워낙 좋다 보니, 프롬프팅을 잘 해서 조리있지 않은 스타일로 써 달라고 하는 것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서, ChatGPT에게 멀쩡한 일상적 문장을 말하다가 갑자기 중간에 말이 끊기고 고장나는 것처럼 연기해 달라고 프롬프팅해 보았다.

조리있지 않은 언어를 생성하기 (1/2): 2022.12.06.

조리있지 않은 언어를 생성하기 (2/2): 2022.12.06.


약간 무섭기도 하고... 어찌되었든 의도대로 꽤 잘 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조리있지 않은 스타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꽤나 세심한 엔지니어링이 필요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물은 진정으로 지리멸렬하기보다는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게다가 잘 하다가도 약간 변형을 주려고 하면 조리있는 스타일로 자꾸만 되돌아가기도 한다 (위 캡쳐들은 십수 번의 시도 끝에 가장 괜찮은 것만 골랐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에 크기가 작고 학습도 잘 안 된 자연어처리 모형을 이용하고, 지난번 포스팅에서 언급한 온도라는 파라미터도 매우 높게 설정한다면 훨씬 더 랜덤한 글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조리있지 않은 스타일 혹은 높은 수준의 우연을 강제하다 보면, 때로는 ChatGPT 내부에서 임베딩을 통해 창발한 의미 공간, 혹은 음소 공간의 기하적(?) 구조가 드러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주로 가짜 언어를 만들어 달라고 하거나, 아니면 한국어와 관련된 무언가를 해 달라고 프롬프팅할 때에 그런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이는 다음 포스트에서 예시를 포함하여 다루기로 한다.

대화 스레드 전체에 대한 일관적인 이해를 상당 수준으로 갖추고 있다는 것도 ChatGPT의 놀라운 점이다. 이에 따라, 한참 위에 있는 질문 및 답변을 다시 끌고 와서 현재 맥락에 다시 적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물론 가끔은 위쪽 대화와의 일관성이 깨지는데, 이부분은 지적하면 고친다. 다만 여러 번의 시도를 거치는 과정에서 비슷한 문답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면, 아무리 자세히 이야기해도 그것들 중에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르게 되어 버린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답변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놓고 진행하면 꽤 편리하다.

여담이지만 이 일관성을 바탕으로 글의 장르를 왔다갔다 할 수도 있다. 예컨대 학술적인 내용의 질의응답을 하다가, 이 내용에 대해 시를 써 달라고 하면 지금까지 이야기한 내용 전체를 반영해서 잘 써 준다. 이러한 시들의 경우 다양한 어휘를 이용하여 운율을 갖추는 데에는 매우 뛰어나나, 초보적이고 전형적인 비유법만을 사용하므로 (우연에 의한 결과에 인간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한은) 세계의 어떤 진리를 세밀하게 포착하는 문학적 가치는 부재하다고 생각된다. 그래도 조금 더 ‘뭔가 있어 보이는’ 결과를 원한다면 be abstract, be symbolic, pretend it contains the fundamental wisdom of life and universe 등의 요구를 하면 조금 더 낫기는 하다.




주요 한계

여기서부터는 ChatGPT의 주요 한계점을 다룬다. 이미 널리 지적된 사실관계 오류 문제를 가장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알려졌다시피 ChatGPT는 매우 태연하고 조리있게 잘못된 사실을 말한다 (한국어에서 더 많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구글 Bard의 제임스웹 망원경 실수 사건이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쉬웠던 것은, ChatGPT도 동일한 실수를 자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기술적 실패라기보다는 퍼포먼스 실패에 가깝다고 느껴져서 그렇다. 즉 Bard 시연을 할 때 올바른 문제 정의를 전제하기만 했더라도, 이러한 종류의 거짓 정보 출력이 과연 커다란 실패로 간주되기는 했을지 의문이다.

(경향신문 기사: 링크. 구글 '바드' 체면 구긴 질문은? 새 검색툴 공개 첫날 주가 급락)


오히려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꽤나 진짜 같은 가게 이름 및 학술문헌 이름을 만드는 것, 그리고 사실과 다르지만 언뜻 보면 꽤 그럴듯한 역사 사건 설명과 이야기를 내놓는 것은, 정확한 사실관계에 대한 가져오기(retrieval) 및 요약보다도 훨씬 더 신기한 면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사실관계 관련 오해에 대해서는 다음 글의 ‘우려’ 파트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이번 섹션에서는 조금 다른 이슈들 두 가지를 다루어본다. 그 두가지는 바로 물리적 세계감각과 관련된 상식의 부족, 그리고 내용이 형식에 이끌려 버리는 문제 (텍스트 구성요소의 층위를 혼동하는 문제) 이다.

감각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지식레벨의 상식 즉 언어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ChatGPT는 무척 폭넓고 우수하다. 그러나 인간의 물리적 세계감각과 관련된 상식은 부족하다. 경험과 지식은 매우 총체적인 것이며, ChatGPT의 주특기인 언어는 인간 인식에서 무척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한정적이다. 예컨대 나는 운전, 격투술, 스타크래프트 등을 직접 실행해 본 적이 없으므로 그것들에 대한 글을 읽고 영상을 보아도 그것들이 감각적으로 충분히 와닿기는 어렵다.

ChatGPT도 이처럼 여러가지 부문에 대한 지식을 ‘글로만 배웠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위의 요리 예시도 마찬가지다.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에서조차 텍스트로 일일이 누가 설명해두는 경우가 많이 없는, 그러나 그것이 부재했을때 모르고 있다는 티가 확실히 나는 암묵적인 부분들 말이다.

또한 텍스트 구성요소의 층위를 혼동해서, 글에 추상적으로 반영만 되면 될 지시사항들이 자꾸 내용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버리는 것도 고치기 무척 어렵다. 말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의 ’예시’여야 할 임의의 문장들이, 지시 내용 자체에 이끌려서 특정한 내용 위주로만 생성된다.

예컨대 일련의 지극히 일상적인 문장들을 생성하되, 해당 문장들이 어떠한 특정한 구조를 갖는다고 하고 싶다. 예컨대, 어떤 글에서 처음에는 밝은 날씨에서 나올 법한 문장들이 나오다가, 나중으로 갈수록 흐리고 나쁜 날씨에서 나올 법한 문장들이 생성되게 하여 모종의 문학성을 갖추고 싶다고 하자. 그럴 때 ChatGPT는 어려운 길을 택하지 않고, 아주 쉬운 길을 택한다. 아예 날씨에 대한 이야기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문장들을 생성하는 것이다.

물론 앞의 영문법 시제 샘플에서는 각 예시 문장 자체가 너무나 정직하게 시간여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어서, 오히려 이해와 검증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위처럼 ‘시적 상상력’에 가까운 작업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것이 상당히 불편할 수 있을 듯하다. 어떠한 심상이 구조를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용 상에 직접적인 시어로 드러나 버리면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은 사실은 사람한테도 한번에 설명하기는 약간 어려운 얘기인데, 나는 이것을 내용이 형식에 이끌린다고 표현하겠다. 다만 대략적인 스케치를 주고 이렇게 하라고 알려준 뒤, 예시에 이끌리지 말라고 명시하고, 그것을 이해했는지 물어본 다음에 다시 하라고 하면 조금 더 잘 되기는 한다. 이런 것 역시 바로 기초적인 prompt engineering 노하우일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이것을 해결하는 것은 유난히 어렵다.

이와 비슷하게 문제가 되는 게 있는데 바로 유머, 공포와 같은 감정과 관련된 스타일이다. ChatGPT는 고차원적인 유머, 혹은 상황적 공포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것을 잘 못한다. 예컨대 유머를 만들라고 하면 전반적인 상황에 부조리가 있어서 웃긴 것이 아니라, 광대가 깜짝 등장해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 준다는 식의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가 꽤 많다. 이것은 그러한 상황의 참여자들에게는 즐거움을 줄 수 있지만, 하나의 이야기로서는 그저 유머러스한 상황에 대한 서술일 뿐 그 자체로 전혀 웃기지 않다. 이는 감각, 감정에 대한 직관이 없는 탓에 웃기는 게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잘 몰라서 그런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위 문단의, 텍스트 구성요소의 층위를 혼동하는 오류에도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맨 앞에서 거대언어모델을 통해 언어현상이라는 것이 ‘정확히 얼마나’ 신기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고 한 것과 비슷한 생각을 여기서도 해 볼 수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의 거대언어모델에서는, 언어만을 이용해서 감각과 감정에 대한 직관을 에뮬레이션하는 것은 정말 어려워 보인다. 이 정도로 데이터가 많고 성능이 좋은 언어모델에서도 그러한 능력들이 자동으로 emerge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확실히 언어 바깥의 것이 맞는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각과 감정이야말로 인간성의 정수이며 신비한 것이라고 단호히 주장하지는 않겠다.

감각적인 것뿐 아니라, 정량적으로 기술되지만 해석 및 의미 부여가 필요한 분야 (대표적으로 물리학) 에서도, 어떤 개념 A와 B가 서로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물어보면 ChatGPT는 대개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강박적으로 동등하게 다루며, 수식 레벨 혹은 이론 레벨에서 명백히 같은 것들인데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것이라고, 그 이유는 이렇다고 답한다. 텍스트 레벨에서만 보면, 각각의 용어는 서로 약간씩 다른 맥락과 다른 학자들에게서 등장하니까, 다르다고 판단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서 그런 듯하다.

이것은 텍스트 배후의 정량적 지식 (정량이라는 건 그저 숫자가 아니라, 수학적 형식을 바탕으로 톱니바퀴처럼 아귀가 맞게 작동하는 이론적 모형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한계와 함께, 가능성을 차단하지 않으며, 강박적으로 우호적이라는 ChatGPT의 두 가지 특징이 추가로 결합해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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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트에서는 ChatGPT의 특징과 한계에 대해 다루었다. 아마 이 주제와 관련해서 마지막이 될 다음 번 포스트에서는 ChatGPT를 비롯한 대화형 챗봇의 여러 활용 사례에서 우려할 만한 점들을 다룬다. 첫째로 사실관계 오류와 강박적 우호성에 의해 사용자의 자기확신과 편향이 강화될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 두번째로는 거대언어모델이 만들어내는 텍스트에 의해 수많은 부문에서 신호와 잡음의 구분이 어려워지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는 약간의 철학적 개념들을 동원해서 ChatGPT와 그 출력물을 해석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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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2023년 3월 8일에 alookso에 게재하였고 동년 9월 5일자로 블로그에도 옮겨둡니다)

2023년 3월 5일 일요일

ChatGPT 이모저모 - (1) 서론 및 기술적 원리 개괄

대화형 인공지능 ChatGPT를 처음 접한 것은 작년 12월 초였는데, 당시에 워낙 높은 성능과 창의적인 과제 수행 덕분에 하루종일 이것만 가지고 놀게 되는 등, 걱정스러울 정도로 재미있는 바람에 하루이틀 시험하다가 오히려 심리적 거리를 두고 접어 두었었다. 그때 열심히 사용해 보고, 보다 최근에 큰 화제가 된 후 다시 사용해보며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작동 원리에 대한 이야기는 가장 단순화된 레벨에서는 아마 대체로 정확할 테지만, 기술적인 세부는 맥락에 다소 어긋나거나 부정확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 포스트를 제외한 이 시리즈의 내용 대다수는 실제 기술적인 원리보다는, 철저히 사용자 입장에서 느낀 점을 다룰 것이다.


또한 이 글을 작성하는 사이에 이미 ChatGPT뿐만 아니라 각 유수 기업에 의한 대화형 거대언어모델들도 속속 공개되었고, 각 부문에 특화된 서비스들도 구름떼처럼 등장하고 있다. 특히 가장 최근에는 거대언어모델이 검색엔진 Bing에 결합되어서 실시간 정보도 처리해 주면서, 정말로 검색을 효과적으로 보완하는 역할을 시범적으로 해주고 있다. 또한 바로 며칠 전인 3월 1일에는 ChatGPT의 API가 공개되어, 정식 버전이 여러 가지 서비스에 활발하게 이식될 길이 열렸다. 또한 12월 초에 공개되었을 때에 비해서 쿼리를 처리하는 비용을 90% 이상 절약했다고 한다.

(관련 openAI 아티클: 링크. ChatGPT를 누구나 자신이 개발하는 서비스에 이식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를 공개한 OpenAI의 소식.)


이렇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ChatGPT가 거대언어모델의 대표 예시로 나름 오래 갈 것으로 상정하고 그 특징 및 장단점을 논하는 이 글의 접근은 거대언어모델에 대한 general perspective라기에는 벌써 퇴색되는 감이 있다. 독자분들의 너른 이해를 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hatGPT는 광범위한 대중적 관심뿐만 아니라 산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 만큼 충분히 고성능이며, 그러면서도 특정한 목적보다는 격식있는 언어 일반에 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앞으로 나올 여러 언어모델들의 대표이자 하나의 전형이라고 여기며 생각해보는 것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계획 중인 목차는 다음과 같으며, 이 포스트에서는 '2. 기술적 원리 개괄'까지 다룬다.


1. 서론
2. 기술적 원리 개괄
3. 사용자 입장에서의 특징 및 장단점
    (1) 조리있음, 논리적 상상력, 그리고 강박적 우호성
    (2) 주요 한계
4. 우려
    (1) 자기확신과 인지편향의 강화
    (2) 신호와 잡음의 구분이 어려워지는 문제
5. 해석
    (1) 생성 인공지능: 우연성 예술과 합리적 조수 사이에서
    (2) '의미 엔지니어링'으로서의 거대언어모델
    (3)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6. 기타


2. 기술적 원리 개괄

먼저 기술적 원리를 짧게만 정리해보면서 이하에 나올 내용들을 예고해본다. ChatGPT는 AI 중에서도 거대언어모델 (Large Language Model)의 일종이다. 대부분의 거대언어모델, 특히 ChatGPT가 직접적으로 기반을 두고 있는 GPT의 기본적인 원리는 바로 다음 토큰 예측 (next token prediction) 이다. 토큰이란 텍스트를 적당한 기본 구성 단위로 나누어서, AI가 다룰 수 있게 번호를 부여한 것을 뜻한다. 즉 단순화하자면 다음 단어 혹은 다음 문장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어떤 글이 주어졌을 때 그 글의 다음에 등장할 법한, 즉 가장 그럴듯한 문장을 예측한 후 확률에 따라 생성해서, 가장 자연스럽게끔 글을 완성시켜 주게 된다.

이렇게 확률적 예측이라는 학습 방식뿐 아니라, 거대언어모델의 성공에 관여하는 또다른 요소는 모델을 이루는 인공신경망이 커다란 비선형시스템으로서 수많은 함수를 표현해 낼 수 있는 능력 (expressibility) 그 자체, 그리고 커다란 학습 데이터이다. 후술하겠지만 더 세부적으로는, 언어라는 시계열 정보를 멀리까지 (long-range) 조리있게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은 뉴럴 네트워크 중에서도 트랜스포머 구조와, 그것을 훈련시키는 어텐션 방법에서 주요하게 기인한다.

하여튼 이것들을 이용해서 이 정도까지 long-range로 조리있는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으며, 상당수준의 창의적인 과제까지 수행해준다는 점은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일이다. 고성능 언어모델의 등장을 통해서 언어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언어학적 설명과 별개로, 그것들이 정확히 얼만큼 신기한 현상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암묵지적 이해 (다르게 말하자면 ‘감’) 역시 발전할듯하다.

이미 2년 정도 된 이야기지만, 사용자가 스토리를 만들면 GPT-3가 스토리를 이어서 쓰는 식의 던전 탐험 게임인 ‘AI Dungeon’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이하에 자세히 쓰겠지만, ChatGPT가 화제가 되는 방향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사실관계 대답 및 자료 해석 위주로 과도하게 쏠려 있었다. 그런데 이 AI Dungeon이야말로, 다음 내용 예측이라는 기본 원리에 의해 ‘논리적이면서도 창의적인’ 특징이 창발되는 GPT의 특징을 단적으로 예고하는 서비스였던 것 같다. 말하자면, 결국 공부와 일 이전에 놀이와 재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렇게 ‘다음 내용 예측’ AI를 이용해서 원하는 출력을 얻으려면, 인풋을 상당히 sophisticated하게 디자인해서 넣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답을 AI가 다음 문장으로 출력해줄 법한, 어떠한 ‘구멍 뚫린’ 글을 내가 마련해야 된다는 것 아닌가. 이것은 마치 사람한테 직접적 명령이 아닌 간접적인 수단만으로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것처럼 비효율적이고 어렵다. 만약에 우리가 AI한테 무언가를 물어볼 때에 이렇게 어렵게 머리를 써서 하지 말고, 사람한테 명령을 하듯이 직접 명령하는 게 기본이 되면 편할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ChatGPT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어떻게 한 것일까? 그 원리 자체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ChatGPT도 기본적으로는 위의 GPT와 똑같이 어떤 텍스트의 다음 내용을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다만, 그렇게 해서 완성되는 글이 ‘한 사람이 쓰는 글’이 아니라 ‘두 사람의 문답 반복’ 즉 dialogue의 형태를 갖는 글이 되게끔 사람들이 직접 평가하고 보상을 주어서 강화학습을 한 것이다. 이를 RLHF (Reinforcement Learning from Human Feedback) 라고 한다.

(관련 openAI 아티클: 링크. ChatGPT의 핵심 원리인 RLHF를 설명하는 OpenAI의 논문(?) 웹사이트. 정확히는 InstructGPT에 대한 설명이다.)



듣기에는 간단하지만, 아마 실제로 지금의 성능을 얻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적 노력과 노동작업이 매우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특히 유해한(toxic) 출력을 걸러내기 위한 케냐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과 정신건강에의 악영향은 최근에 거대 AI 모델의 어두운 면으로 잘 알려지기도 했다.

물론 질문에 대한 답변 형태로 출력을 하지 말고, 그냥 한 명의 화자에 의한 글을 완성하는 셈 치고 써 달라고 지시하면 잘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 이건 후술할 in-context learning 등으로 인해 ChatGPT의 성능이 워낙 좋은 덕분에 다양한 과제에 대한 capability가 있어서 그런 것이지, 기본적으로 확실한 작동 모드 같은것이 존재하여 과제 종류에 따라 전환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즉, ChatGPT를 질문에 대해 뭐든지 답변을 해 주는 AI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질문→답변이 반복되는 dialogue를 가장 그럴듯하게 완성시켜 주는 AI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워낙 성능이 좋고 데이터가 방대하다 보니,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 주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만약에 인간의 언어 구사도 결국 그럴듯한 빈칸 채우기에 불과한 것이라면, 사실 위 둘의 차이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나는 이에 동의하는 편이다. 다만, 이후 포스트에서도 다루겠지만 ChatGPT에게는 언어 외부가 없는 반면 인간은 텍스트 바깥의 감각세계와도 연결이 되어있다는 점이, 답변 행위의 authenticity를 결정짓는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탐구와 해석이 필요한 부분이며, 어찌되었든 이 글의 논점은 벗어난다. 따라서 위의 비교는 ChatGPT의 답변 생성 원리가 인간의 언어기제와 원리적으로 분명히 같다 (혹은 분명히 다르다) 는 주장은 아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오해를 줄이기 위한 실용적인 이해의 방식 정도로 해두는 것이 적절하겠다.

다음으로는 ChatGPT를 학습시킨 방법의 이런저런 세부사항을 소개한다.

먼저 ChatGPT는 위에서 이미 언급한 다음 내용 예측과 함께, 글 중간의 토큰을 지우고 맞추는 masked language modeling도 동원하여 학습이 이뤄졌다고 한다. 한편 고성능의 결정적 요인은 바로 트랜스포머 아키텍쳐에서의 어텐션 방법으로, GPT의 T가 바로 트랜스포머를 줄인 것이다.

(A Vaswani et al., "Attention is all you need", arXiv:1706.03762: 링크. 어텐션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트랜스포머라는 신경망 구조를 최초로 제안한 Google Brain 측의 논문 (Vaswani et al. (2017)).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회 중 하나인 NeurIPS 2017에 억셉되었다.)



이 트랜스포머 및 어텐션이라는 것은 2017년 발표된 이후로 고성능 딥러닝 모델들의 발전을 주도해온 매우 중요한 방법론이다. 음악, 언어 등과 같이 일렬로 나열된 시계열 데이터를 인공지능이 학습할 때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요소들 간에 coherence가 깨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텐션 메커니즘은 근처에 있는 글자뿐 아니라 멀리 있는 글자들에도 매우 효과적으로 주목해서 상관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는 정도로 일단 이해하자.

또한 맥락-내 학습(In-context learning)도 중요한 키워드인데, 이는 모델을 구성하는 파라미터를 업데이트 하지 않고서도, 커다란 모델 속에 기존에 저장되어 있는 능력을 잘 이끌어내어서 새로운 과제에 대한 수행능력을 구성해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ChatGPT는 예시를 오직 몇 개만 주거나 (few-shot learning), 혹은 예시가 아닌 자연어로 된 설명만 제공하더라도 (zero-shot learning) 상당히 잘 알아듣고 과업을 수행해준다. 직접 사용해보면서 알게 된 이러한 사실이, 맥락-내 학습이라는 기술적 용어와 연결되는 것이 재미있다.

기존의 많은 거대언어모델에서는 새로운 과제를 종류의 수행하게 하려면 사전학습된 모델 (pre-trained model) 을 미세 조정하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는데, 이는 쉽게 말해서 각각의 과제를 위해 학습을 새로 해야 한다는 뜻이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이와 반대로, 맥락-내 학습에서는 파라미터 업데이트 없이도 원하는 과제를 금방 배울 수 있으니, 특히 ChatGPT와 같은 대화형 인공지능이 사용자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하는 데에 매우 적합하며 사용자의 편의성을 크게 증대시켜 준다.

이러한 zero-shot 추론기계로서의 거대언어모델의 특징에 대한 약간 더 기술적인 내용은 이후 포스트에 나올 ‘의미 엔지니어링으로서의 거대언어모델’ 섹션에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문장 생성에 있어서 무작위성을 얼만큼 허용할지와 관련된 온도라는 하이퍼파라미터를 많은 사람들이 흥미로워하는 것이 반갑다. 말하자면 고온에서 분자들이 더 무작위적으로 운동하는 것처럼, 언어모델의 온도라는 파라미터를 높게 설정하면, 다음 토큰 예측에서 보다 후순위에 있는 단어들도 인출될 가능성이 높아져서 문장이 무작위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열역학 및 통계물리학에서의, 그리고 일상적 쓰임에서의 온도 개념과 잘 유비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가장 기초적인 생성 인공지능 중에 하나인 제한 볼츠만 기계 (Restricted Boltzmann Machine, RBM) 은 그 자체로 통계물리학의 교과서적 모형인 이징 모델과 거의 똑같은데, 거기서 사용되던 온도의 개념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나는 내 전공분야인 통계물리학이 인공지능 발전 역사의 중요 순간들에서 많은 역할을 해 왔다고 늘 주장한다. 통계물리학이란 주어진 조건 하에서 수많은 구성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상황을, 확률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다루는 물리학의 한 분야이다. 에너지의 흐름과 비가역성을 다루는 열역학이 현대적으로 정당화되는 과정에서 볼츠만 등에 의해 확률 개념과 결합하면서 등장하였다. 확률 분포를 다루다 보니  최근의 기계학습 패러다임에 적합한 부분이 많다. 따라서 고전적인 인공신경망인 Hopfield 네트워크 및 RBM부터 최근의 확산 모델(diffusion model)까지를 포괄하는 수많은 인공지능 모델들에서, 그리고 딥러닝의 성공 요인에 대한 이론적 분석 등에서 통계물리학은 상당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 생성인공지능에서 무작위성의 정도를 결정하는 온도라는 파라미터의 존재는, 이러한 오랜 기여에 대한 사소해 보이지만 무척 본질적인 예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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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ChatGPT의 기술적 원리를 나름대로 개괄해보았다. 나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늘 관심을 가지고 팔로우업하고 있으나, 약간의 수학적, 물리학적 배경이론을 공부해 본 것 외에는 인공지능 모델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개발 등의 전문성은 없는 입장인지라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에 다음 글에서는 기술적 작동원리에 대한 더 깊은 접근은 그만두고, 사용자 입장에서 느낀 ChatGPT의 특징들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

그 특징들은 크게 '조리있음', '논리적 창의성' 그리고 '강박적 우호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특징들에도 불구하고, 혹은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ChatGPT가 갖게 되는 한계점들과, 그것들로부터 우리가 가지게 되는 여러 가지 우려사항들과 논점들에 대해서도 다루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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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2023년 3월 5일에 alookso에 게재하였고 동년 9월 5일자로 블로그에도 옮겨둡니다)

2023년 2월 27일 월요일

디지털 아트의 발전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생성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라서, 나는 단순히 여러 물체를 retrieval해서 이산적으로 병치시키는 아이디어 suggestion, 혹은 ppt처럼 논리적 관계를 표현하는 다이어그램의 편리한 생성 정도가 제일 먼저 대중화 될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것보다 아예 학습 데이터를 근본적인 수준에서 재조합하여 회화를 그려주는 생성모델이 더 먼저 대중화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생성모델들의 기초원리의 중심에는 다름아닌 '확률분포'라는 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 가능성을 GAN 등에서 이미 실제로도 봤다는 것 등 여러 가지를 감안하면, 사실은 예상을 했어야 맞겠다.


그리고 맨 위 문단에 말한 것들도 그 개념증명은 오버스펙으로 되어버린 셈이라, 금세 서비스들이 대중화되지 않을까 싶다 (심지어 이건 아직 많이는 안 보이긴 하는데, 언어모델인 ChatGPT로도 프롬프팅을 잘 하면 논리적인 시각적 다이어그램을 그릴 수도 있다).


점, 선, 면 같은 단순한 도형들을 조합한 컴퓨터 아트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1970년대이며 (80년대 록밴드 앨범 커버들을 보면 초보적인 디지털 아트가 많이 보인다), 내 심리적 거리는 그 시절에 한땀한땀 컴퓨터를 배워가며 작업한 선구자들에 대해 상당히 가까운 편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50년도 안 된 2020년대 초반에 아예 프롬프팅으로만 완성도 높은 그림을 그려주는 컴퓨터 기술이 나온 것은, 정말 곱씹을수록 괴상한 일이다. 이것은 휴먼스케일에선 이해가 어렵고,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기여하면서 누적이 빨리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 50년의 격차는 엄청 큰데, 앞으로 만약에 인류문명이 오래갈수 있다면 이 50년간의 발전이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지 궁금하다. 생산성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게 되면 아마 멀지 않은 시대에 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기술 = 인공지능서비스 기술 이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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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4일 금요일

대학원 생활에서 불안감의 요인: 사회적 계약의 부재와 유예되는 진로선택

대학원생은 대학생이 아니라서 장학금도 드물고, 인건비도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회사 다니는 친구들이 받는 여러 혜택이나 연금 같은 것들, 그리고 대출심사 같은 것에도 해당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공부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대학생도 근로자도 아닌, 말하자면 이중적으로 배제되는 입장인 것이다.

(특히 전문연구요원은 많은 장학사업이나 펀딩에서 예외이고 학내 근로도 불가능함. 복무 시간을 준수하면 학내 근로는 당연히 불가능한 것이니 그렇다고 치는데, 장학 같은 경우는 꼭 돈 때문이 아니라 장학 수혜 자체가 스펙이 되는 경우도 있는지라 더 아쉬운 부분이고... 암튼 이 부분은 이번에 장관님이 개선 의지가 있으시다고 들었다.)


이렇다 보니, 분명히 일도 열심히 하고 있고 BK 및 과제 인건비 등도 챙겨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으로서 삶의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듯하다. 이러한 유예에서 오는 불안과 불확실성이 큰 시기(개인적)이고 또한 그러한 세대(사회적)이다보니 좀더 이런 게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대학원생들한테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교육과 사회에 좀더 직접 기여할 책무를 부여해서라도, 고도화된 사회계약의 참여자로 약간 더 적극적으로 포함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귀찮아할 사람도 많겠지만...


아무튼 나 정도면 무척 괜찮은 환경에서 다니는 것일텐데 너무 많은걸 바라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현대 국가에서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정확하게 제도 상에 인지되고 라이프사이클에 맞게 각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게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유독 이런 면에서 구멍이 있는 것 같다.

대학원생 인건비가 근로소득으로 인정되거나, 평균값이 대폭 오르거나 하는건 여건상 무리이기도 하거니와 우리의 마땅한 지향점인지조차 불분명하긴 하다. 다만 회사 근로자에 준하는 이런저런 제도적 관심과 지원을 대학원생들도 어떤 방법으로 받을수 있게 되면 좋을 것 같다.

사실은 방법이 있는데 결혼하면 각종 혜택이 있다고 한다. 힘들고 결혼 안하는 시대라지만 이런 걸 감안하면 역시 상대에게 확신이 들면 끝없이 미루기보다는 주저말고 선택을 하는 것도 좋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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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7일 금요일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한승혜 외)>을 기대하며

출간 예정인 <여자를 모욕하는 걸작들>(한승혜 외, 문예출판사 (교보문고 해당 도서 링크))는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어릴 때 유명하다는 문학 작품이나 영화를 보다 보면 다소 뜬금없고 과도한 성적인 메타포, 그리고 여성 인물 재현 및 신체묘사의 폭력적 방식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곤 했다. 예컨대 인간성의 정수를 표현하거나 그 상실을 개탄하는 진지한 내용을 덤덤하게 다루는 부분에서도, 거의 작가의 포르노그라피적 애호에 가까워보이는 여성묘사가 끼워져 있는 그 언밸런스함 탓에 말하자면 '깬다'는 것이다.


그때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시적 메타포로 사용될 경우에는 그래도 지체높은 문인들이 쓴 것이고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니까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했던 것 같다. 혹은 폭력에 대한 리얼리즘적 서술에서의 충분한 이유 없는 성적 묘사는 사회적 비참함을 표현하기 위해 특수하게 용인되는 것인가보다 했다. 그래도 깬다는 생각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런데 현재에 알게 된 여러가지를 바탕으로 그 당시로 외삽해 보면, 그것들 중에서 꽤 많은 것들을 그냥 이상하다고 생각해도 되는 거였구나 싶다. 요악하자면 다른 어떤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메타포 역시 충분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독자에게 보편적 설득력을 갖출수 있다. 그리고 퍽 많은 독자 집단에게서 광범위하게 설득력을 깎아먹는 요소는 보통은 보편적으로도 실패한 요소이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던 친구들과 얘기해봐도 대체로 비슷한 의견이다.


물론 정신분석학 및 그것에 근거한 문학비평 이론 등에서 성적인 메타포가 중요하고 특수하게 다루어지는 것에는 상당부분 진실이 있을 수 있다. 우리 머리속에서 분명히 약간 더 특수하고 뿌리깊은 영역이 관여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론들 자체가 남성중심적으로 서술되거나 사용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이 경우는 전복적 재구성을 꾀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재구성의 시도들도 원본과 거의 패러렐하게 전개되며 이미 상당부분 정착한 듯하다.


또한 문학작품과 문학비평의 양방향적 상호작용을 감안할 때, 비평론에서 그러한 메타포들에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혹은 비판적으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개별 문학작품들의 그러한 스타일이 더 강화되었을 수 있다.


본서에서는 개별 유명 문학작품들에 대한 애호를 잃지 않은 채로 이들을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한다. 외설과의 거리두기를 암묵적으로 선언하는 지체높은(?) 작품들에서도 여성성이 당연하다는 듯이 폭력적으로 다뤄져온 기제를 해명하고 대안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분들도 유명한 분들이 많이 참여를 했다.


물론 예술작품이 성윤리의 멸균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폭력을 보거나 상상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사람보다는, 폭력을 자신의 관점 속에 적극적으로 포함시켜 볼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가치론적으로 더 바람직한 도덕적 태도를 가졌을뿐더러, 작품 감상에 있어서도 더 '충만한' 독자라고 생각한다.


예술작품에서의 부적절한 여성 묘사에 대한 비판이 적절히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를 폭력 이해에 취약한 성윤리의 멸균실이 아니라, 폭력에 대해 세심하게 다루고 생각해볼 줄 아는 맷집이 있는 사회로 이끌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이전에 다른 글에서 '금기'에 대해 썼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되 폭력에 대한 얘기로 이식하면서 끝맺자. 내가 생각하는 '맷집 있는' 사회는 금기가 일방적으로 위반되어도 (혹은 폭력적 태도가 드러나도) 문제삼을 수 없는 사회가 아니라, 금기에 대한 감수성이 높고 그것이 적절한 방식으로 정교하게 위반될 때에 (혹은 폭력이 충분한 작품 내적 맥락을 가지고 묘사될 때에) 다들 괜찮아하는 사회이다. 만일 이것이 혼동된다면, 작품 속에서 시뮬레이션된 위반과 실제의 위반이 그 구별을 잃는 것은 한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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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이론물리학의 변방에서: 기초학문 위기 속 진로 고민과 개인적 푸념

명지대 물리학과 폐지 예정 보도가 이번주 내내 소소한 이슈였다.


연구 꿈나무들 사이에선, 국내에서 학계 근처에 자리를 잡는 게 점점 더 급속히 어려워진다는 비관적인 (그리고 거의 확실한) 예상이 이미 공기처럼 당연하게 자리잡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도 막상 명지대 정도로 이름 있는 학교에서 물리학과 (그리고 수학과, 철학과, 바둑학과) 를 없앤다는 보도가 나오니 상당히 마음이 건드려지기는 한다. 물론 학생들과 교수님들은 반대가 우세하다고 하니 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것이지만, 컨설팅을 받고있는 재단쪽이 의지가 강력한 모양이다.


앞으로 학생 인구 감소 때문에 이런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순수학문으로 분류되는 수학, 물리학 그리고 소위 문사철 쪽이 제일 취약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의견인 듯하다. 대학의 본령은 순수학문인데 어떻게 이걸 없앨 수 있냐는 주장은 지금 아무것도 아닌 내 위치에서 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그냥 통계물리학이라는 방법론적 배경을 진로에 충분히 활용하면서 내 한몸 건사하고 사회적으로 1인분 몫을 하고 싶은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씁쓸함이 우선 든다.

오히려 순수학문도 순수학문이지만, 수학 및 물리학과를 폐과함으로써 공학을 비롯해서 산업에 보다 직결된 분야 학생들의 기초역량 교육이 장기적으로 대단히 힘들어질 것이 더 실질적인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새로운 것을 창출하거나, 새롭지 않더라도 기존 것들의 퀄리티를 유지하고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킬수있는 혁신력이 한국의 산업생태계에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혁신력은 트렌드를 따라가는 융합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기초적인 방법론적 역량에 대한 확실한 훈련, 그리고 기초적 윤리에 대한 인식 제고에서 나오는 면도 많다고 본다.

또한 다시 개인적 푸념으로 돌아오자. 이공계생 전반에 대한 기초역량 교육을 넘어서 물리학이라는 분야 자체로 봤을때도, 나는 이론물리학, 그 중에서도 특히 통계물리 분야가 비록 순수학문에 속할 수 있지만 약간만 옆으로 틀면 사회적 트렌드 주도와 이익창출에 기여해온 부분이 무척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사람들이 잘 몰라주는 것 같아서 늘 아쉽다 (오히려 수학의 경우에는 금융계 잘 간다거나, 인공지능에 중요하다거나 하면서 이런 게 나름 알려져있는 것 같더라).

사실 요즈음은 우리 분야는 딱히 순수 이론물리에 속하는지도 잘 모르겠음. 이론물리학자들이 보면 너무 practical해서 변방에 속할 것이고, 즉각적인 산업응용을 염두에 둔 쪽에서 보면 또 너무 이론적이고. 그런 중간적 특성이 약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분야가 등장하고 성장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아무튼 기업이든 학교든, 국내든 국외든 우리 통계물리 분야의 강점을 잘 알아주는 곳이 많이 있다면 좋을 것 같고, 나도 잘 찾아봐야겠다.

오히려 부모님은 주변을 보니 결국 공부 오랫동안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자리를 얻었었다며, 벌써부터 힘 빠지는 소리 하지 말고 너가 하고 싶으면 계속 해 보라고 권장하시기는 한다. 근데 그때와 지금은 또 많이 다를 텐데 싶기도 하고... 너 졸업할때면 교수님들이 많이 은퇴하시지 않냐고 하는데 이미 그 시기는 거의 끝났다고 알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아카데미든 아니든, 물리학 백그라운드를 구체적으로 살릴 수 있는 커리어패스에 대해 encourage하는 얘기가 거의 아무데서도 들리지 않다 보니 나라도 적극적으로 틈날 때마다 여러 재밌는 포지션들을 찾아보고 소개하고 그러는데, 그래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예전부터 가졌던 내 고질적 문제점이 바로 시야에 들어오는건 많은데도 계속 하던것만 하려고 해서 정작 실제 선택의 폭이 좁고 질투와 불안감만 커진다는 건데... 이게 장기적으로 별로 안 좋은 것 같고, 좀더 넓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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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4일 화요일

세포 자동자와 능동 물질: 비교하고 접점을 탐색하기

콘웨이의 생명 게임으로 가장 잘 알려진 Cellular automata (세포 자동자) 에서는 그 규칙과 초기조건에 따라 여러 가지 멋진 집단현상들이 보고된다. 자기 혼자서만 주기적으로 변화하는 패턴, 무언가를 계속 멀리 쏘아보내는 패턴, 마치 영양분이 충분한 균들처럼 무한 증식하는 패턴 등이 있다.

이러한 세포 자동자를 이산적인 격자가 아니라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하기도 하는데, 가장 유명한 것들로는 S Rafler가 만든 SmoothLife와, Bert Chan이 만든 Lenia 등이 있다 (아래 그림). 이들은 연속적인 공간에서 정의되다 보니, 정말로 동글동글한 원시적 생명체처럼 생긴 것들이 서로 다양한 모양으로 결합해서 구조를 이루는 등 무척이나 신기하다. 후자의 Lenia를 만든 Bert Chan의 경우 구글브레인 도쿄 캠퍼스에 계신 분이고, 지금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 visiting하고 계신 듯하다.

expanded version of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 and expanded universe." (링크).

Lenia - 연속적 공간에서의 세포자동자 예시. (출처: Bert Wang-Chak Chan. "Lenia-biology of artificial life." arXiv preprint arXiv:1812.05433 (2018)).


한편, 현재 내 연구 주제인 능동물질(active matter)도, 에너지를 소모해서 스스로를 평형으로부터 멀게 유지하며 자기조직화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재미있는 집단현상들을 나타낸다. 이들이 그 상호작용 규칙과 파라미터 범위에 따라 보여주는 여러가지 패턴은, 어떤 순간의 물질 분포와 미리 정해진 동역학적 규칙 그리고 확률적으로 더해지는 노이즈값에 따라서, 그 다음 순간의 물질의 밀도분포 (혹은 입자기반 모형일 경우 각 입자들의 위치) 가 정해지는 방식으로 업데이트된다.

언뜻 생각하기에 이러한 능동물질은 세포자동자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지어질 수 있어 보인다. 둘 다 공간 속에서 외부 입력 없이 에이전트들끼리의 상호작용 규칙에 따라 자발적으로 비자명한 패턴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포자동자에서 보고되는 수많은 패턴들이, 생각보다 우리 통계물리학 분야의 능동물질 패러다임에서 그다지 적극적으로 탐구되지는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분야의 발전사와 관련된 역사적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그 가장 큰 이유는, 세포 자동자의 변화 규칙을 실제로 implement할 수 있는 "물리적으로 구현가능한 메커니즘"이 무엇인지가 모호하다는 점이 큰 것 같다.

즉 능동물질은 어디까지나 물리학 모형이기 때문에 물질 혹은 신호가 국소적으로, 즉 한 점에서 바로 인접한 다른 점으로 잇따라 전달되어야 한다거나, 실제 물리계 혹은 생체계에서 구현 가능한 메커니즘이어야 하는 등 여러 제약들이 존재한다. 반면 세포자동자의 경우에는 세포가 동에번쩍 서에번쩍 하는 것도 가능한 등, 업데이트 규칙의 설정이 능동물질의 경우보다 훨씬 자유로운 듯하다. 주로 컴퓨터 아트 및 정보과학의 문화예술 응용 쪽 (정확히 어떻게 묶어 불러야 할지 모르겠음. 아무튼 미디어 아티스트들이나, Bert Chan 같은 분들) 에서 그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을 많이 탐구하는 듯하다.

이 두 가지 분야의 잠재적인 접점을 구체적으로 탐색하고 실현하려면 두 가지 방향이 가능할 것이다. 세포자동자를 탐구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physics-grounded된 모형을 보거나, 아니면 반대로 능동물질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능동입자들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자유분방하게 세팅해주는 방법이 있다. 후자의 경우 단순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주변을 인식하고 제어하는 일종의 intelligence를 개별 입자 수준에 주는 것이다.

첫 번째 방향에 해당하는 것을 지난번에 최승준 교수님께서 알려주셨다 (물리학전공자 출신으로 미디어아트 쪽에 계시면서 최신 과학기술을 적극 접목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DeepDream으로 유명했던 알렉산더 모드빈체프 (Alexander Mordvintsev) 는 그 이후로는 neural cellular automata라고 해서, 세포자동자를 마구 흩뜨려 놓은 상태에서 출발시켜도 원하는 이미지로 수렴하도록 상호작용 규칙을 학습하는 매우 신기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인공지능의 이미지 생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봤을법한 초록색 도마뱀 그림이 바로 그거다 (Growing neural cellular automata: 링크). 이러한 neural cellular automata는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실에서 생성적 산업디자인에 응용하기도 했다 (아래 그림).

Neural cellular automata를 이용한 모양 완성 (shape completion), 전기정보공학부 김영민 교수님 연구. (출처: https://iclr.cc/virtual/2021/poster/2914, Zhang, Dongsu, et al. "Learning to generate 3d shapes with generative cellular automata." arXiv preprint arXiv:2103.04130 (2021).



그런데 이 모드빈체프가 최근에는 세포자동자가 아니라 입자 기반 시뮬레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내가 그 동기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추측으로는 아마도 위에서 말한 내 문제의식대로, 단지 컴퓨터 속에서가 아니라 실제 물리계, 이를테면 살아있는 세포들 혹은 나노머신들로 실현 가능한 상호작용 규칙을 원해서가 아닐까 싶다.
(여담이지만 인공적/자연적 신경망 쪽에 인상깊은 기여를 하신 분들이 living matter 쪽에도 관여하는 경우가 유난히 많아서 신기하다. 지난번에 Hopfield의 볼츠만 메달 수상소식에 대해 포스팅했을 때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뉴럴네트워크는 결국 여러가지 패턴을 표현가능하고 심지어 일반화까지 가능한 커다란 비선형 시스템이다보니, 생체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쪽이랑 그 방법론적 출발점은 달라 보이지만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뭔가 비슷한 종류의 관심사로 분류되는 듯하다.)


다음으로 그 반대 방향, 즉 능동물질의 상호작용 규칙을 약간 더 sophisticated하게 디자인하는 방향을 보자. 예컨대 주변을 인식하고 주변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운동 능력도 매우 뛰어난 intelligent한 나노머신을 대량 만들어서 뿌려뒀다고 생각하면 되므로, 그리고 능동물질이 애초에 그런 것의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 할 수 있으므로, 안 될 것은 없다. 물론 상호작용의 규칙이 복잡해질수록, 되도록 단순한 규칙에 따른 집단현상을 선호하는 통계'물리학'에서 멀어지는 느낌은 있지만, 아무튼 '물리적'으로 구현은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11월에 참석했던 학회에서 Igor Aranson 교수님의 발표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이분이 연구하신 것은 signaling (혹은 communicating) active matter인데, 능동물질의 구성 입자들이 단순히 자체 추진 및 상호간에 역학적 충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서 화학물질의 밀도파를 통해 신호를 원거리까지 전달한다는 개념이다. 이렇게 파동에 의한 원거리 신호전달이 존재하면, 파라미터 선택에 따라서 기존 능동물질 분야에서는 흔히 본적이 없고 마치 콘웨이의 생명게임에서 나올 법한 매우 다채로운 집단현상이 나타난다. 이미지로 첨부한다. 화학적 신호가 아닌 음파 신호, 즉 입자들 자체의 진동을 서로 주고받을 때에 나타나는 패턴들도 소개해 주셨는데 (acoustic signaling), 구글 스콜라에 뜨지 않는 걸 봐서 bulletin으로만 있고 아직 논문으로 나오지는 않은 듯하다.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1. 우측 상단은 입자 시뮬레이션 기반 모형, 우측 하단은 밀도함수 기반의 모형인데 서로 잘 대응되는것이 보인다.(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신호를 주고받는 능동물질 (communicating active matter) 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집단 현상들 2. (출처: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2-34484-2)



만약에 이런 양방향적 탐구들을 통해 세포 자동자와 능동물질 분야의 접점이 넓어진다면, 능동물질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많아진다. 예컨대 세포 자동자에서는 튜링 머신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잘 연구되어 있다. 크기만 충분히 크다면 세포자동자가 유니버셜한 컴퓨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능동물질을 이용해서도 노이즈에 대해 강인한 튜링머신을 만들 수 있다면, 현재의 반도체 기반 디지털컴퓨터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unconventional computing의 좋은 예시가 될 수 있는 것 같다. 이전에 포스팅했던 Herbert Jaeger의 리뷰논문에도 living system을 컴퓨터로 사용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과도 관련지을 수 있어 보인다. 이러한 unconventional computing은 저전력 컴퓨팅의 발전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개인적으로는 특히 오차를 허용하는 딥러닝 패러다임과 궁합이 좋을거라는 상상을 하게된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지금까지 얘기한 내용들과 약간 관련이 있다. 머리속 혹은 컴퓨터 속에 존재하면서 매우 고도화된 집단현상들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모형들도, 결국에는 국소성, 보존법칙,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역학법칙 등 여러 물리학적 제약을 받는 물리적 시스템으로써 실현될때 더욱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도 나는 통계물리학 전공이다 보니 열역학적 원리에 관심이 많다. 물론 나 혼자 하고 있는 상상이고, 학위과정 동안에, 혹은 학위과정 이후에 이러한 방향의 커리어를 꾸려나갈 수 있을지는 내 능력과 주변 상황에 달려 있을 것이다. 내 관심사 자체가 바뀔 수도 있고.

특히 국소적인 역학적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원거리 신호 전달 같은 게 있을 경우, 에너지 출입을 다루는 전통적인 열역학뿐만 아니라, 맥스웰의 악마 개념을 포함하여 정보 출입까지 다룰 수 있도록 일반화된 '정보열역학'을 적극 도입해서 새로운 결과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각각의 집단현상들에 underlying하는 열역학적 비용을 밝히고 그것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다면, 생명체 및 생체모방 인공시스템들의 패턴형성 및 형태형성, 그리고 컴퓨팅 (특히 머신러닝) 구현의 새로운 패러다임 등에 나름의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에너지를 아끼는 것, 혹은 필요하다면 에너지를 써서라도 원하는 기능을 달성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을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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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0일 금요일

외교 실언 대응을 보며: 대통령 무오류설은 사태를 더 키울 뿐이다

이전에도 몇 번 썼듯이, 현재 대통령은 경제사안이나 국제문제 등에 대해 본인의 사적인 (즉 공식적 보좌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신념을 선명하게 가져가는 타입인 것으로 보이며, 대선 후보 시절부터 이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돌출발언이나 실언이 많은 편이다.


대통령이 UAE를 방문 중이라는 상황적 지식을 바탕으로, 이란이 UAE의 적이라고 강하게 규정하는 발언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지 상상은 해 볼 수 있다. 아마 시아파-수니파 차이를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고, 이란이 북한처럼 국제무대에서 공인된 소위 '악의 축'이므로, 북한을 머리에 이고 있는 우리 상황과 관련지어서 얘기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 상세는 발언자인 대통령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불명이다.


대통령은 외교무대에서 상징성을 갖는 행동들과 적절한 의례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맥락에 맞는 자료와 적절한 보좌를 제공받아, 각각의 상황에서 기대되는 내용을 준비해서 발언하는 것이 대통령의 역할이다. 물론 즉흥적인 쇼맨십이나 임기응변도 중요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번 발언은 국제무대에서 흔히 나오는 종류의 발언이 아니기에 모종의 합리적 의도가 추론되지 않고 불안감을 조성하게 되며, 전형적인 윤 대통령 특유의 사적 신념에 따른 돌출발언에 해당하는듯하다.


여러 후속보도들에서 알려진 바에 따르면 UAE와 이란은 비록 삐걱삐걱하지만 최근에 잘 지내려고 노력을 하고 있는 관계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란이 UAE의 '적'이라는 단정적 발언은 일단 사실 자체로 틀렸을 뿐더러, 모종의 합리적 의도를 추론해 내기 힘든 기괴한 발언이다. 아시아대륙 반대편 나라의 수장이, 두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고 서로 '싸움 붙이는(?)' 발언을 대체 왜 한단 말인가?


여러가지 외교 실언 논란의 전례에 비추어봤을때도 사건의 본질은 대통령의 돌출적 발언임이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돌출적 발언이 한국 주도의 외교 새판짜기가 아니라 오히려 해명을 계속해야 하는 곤혹스런 상황으로 이어진것으로 보아, 스트롱맨 타입의 지도자들이 종종 하는 의도된 강경발언이라기보다는 단순 실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솔직한 해명을 하는것이 제일 깔끔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정치인들의 무리한 옹호가 오히려 사태를 더 키워서 상황을 더 어렵게 꼬아 놓는 듯하다. 그중에서도 아예 대놓고 거짓말인, '이란과의 관계에 대해 대통령은 언급하지 않았다' 같은 무마용 발언은 그렇다고 치자. 오히려 더 걱정되는 것은 지나치게 거창한 옹호들이다.


특히 한국-이란 관계, 나아가 국제 무대에서 이란의 위치 등을 언급하는 큼직큼직한 발언들이 교통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여러 한국 정치인들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것은 우려할 만한 상황으로 보인다.


이란의 인권탄압국이자 테러지원국이라는 면모를 무시하자거나, 이란은 한국한테 중요한 나라니까 쩔쩔매자거나 하는게 당연히 아니다 (위의 '거창한 옹호자'들이 주로 저렇게 매도한다). 외교현장에서 일반적으로 발화되지 않는 종류의 발언이 나왔으니 그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란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국제무대 전체가 지켜보는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포인트를 짚자면, 이란에도 적절한 정보와 판단능력을 갖춘 외교 전문가들이 없지 않을 테니, 이번 발언이 단순히 우리 대통령 개인의 돌출적 실언인지, 아니면 양국관계 규정의 근본적 변화를 시사하기 위해 의도된 외교적 사건인지 정도는 구분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다른 어떤 웬만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낸시 펠로시 패싱 사건 때 결례의 수준이 심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측이 그냥 넘어간 것은 당시 사건이 철저하게 의도된 결례가 아니라, 정권이 메시지를 적절한 수준으로 잘 조직해서 발신하는 데에 서툴러서 일어난 사고에 불과(?)하다는 걸 잘 이해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유지하는것이 우선이므로, 한국정부의 당시 외교 의전 역량 부족을 굳이 들춰내서 언급할 이유가 없으니 모른척 연기하는 것이다.


이란은 반미 국가이고 심지어 한국의 적인 북한을 지원한다고 단골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나라인데도, 경제 교류가 있어서 그런지 신기하게도 한국-이란 양국은 노골적 외교 갈등을 피하고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해왔다고 한다. 그런데 그러한 관계가 국제정세 변화와 대이란 제재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요즈음, 우리 대통령의 실언은 이란 쪽에서 꺼낼수 있는 하나의 좋은 '패'가 된다. 그쪽이 뭔가 수틀리면, 돌출발언이라는 점을 의도적으로 모른 체하고 유리하게 이용할 수가 있다. 당장 사건 직후에 해명하라고 압박하거나 대사를 초치한 것도 넓게 보면 그 일환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돌출발언에 불과했다는 점을 우리 정치권 스스로도 인정을 못 해 버리면, 그건 이란이 사용하는 '패'에 정당성을 부여해 주므로 결국 상대방 좋은 일만 해주는 셈이다. 또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한 한국정치권의 외교역량에 대해 국제 사회의 의구심이 발생할 수 있어 보인다.


한편 이란은 어차피 빌런 같은 국가인데 왜 그들의 카드놀이 패에 대해 눈치를 봐야 하냐는 주장도 종종 보인다. 이 역시 위의 내용들로 충분히 반론이 되리라 본다. 그러한 주장은 대통령의 발언을 옹호하기 위한 임기응변으로서, 대통령의 당초 의도에도 없었을, 눈치를 안 보고 소신을 얘기하는 일종의 '강짜' 내지는 '사이다' 외교를 대통령이 수행한거라고 선해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맥락상 어색할 뿐더러 한국이라는 나라의 기존 외교 행보, 그리고 품위와 체급에 맞지 않다. 또한 위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번 발언을 통해 한국이 얻는 것이 딱히 없고 계속 해명을 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상황에만 처하게 되고 있으므로 그 효과 또한 의문이다.


국내 정치인들이 마치 대통령 발언의 무오류성을 수호하겠다는 일념을 내비치듯, 외교관계에 대한 민감한 발언들을 트럭단위로 쏟아내며 대통령 철통방어에 복무시키는 것은 지극히 근시안적이라고 하겠다. 외교에서 여러 예상치 못한 사건이야 늘 생길 테지만, 그것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여당의 외교적 역량은 실시간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되며 이는 잠재적으로 각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미칠수있는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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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3일 화요일

[유우머] 어느 갑각류 연구소

어느 갑각류 연구소에서는 인위적 조치를 통해 게들의 여러 신종과 중간종을 만들어내었다.

이 게들은 특징에 따라 식용, 애완용 등으로 쓰였으며, 유용한 물질대사 산물이나 해조류 수분 매개자로서의 특성 등에 착안한 생명공학적 이용도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처럼 인위적 개량으로 생명체를 수단화하는 것에 윤리적 의문이 제기되었으며, 게들이 방생되고 기존 게들과 유전자 및 서식지가 섞이면서 생태계 파괴도 일어났다. 보다못한 한 원로 학자는 연구자 스스로 연구의 파급효과를 예상하고 한계를 설정하는 책임 의식을 요구했다. 노학자가 충고하기를...

"한계 두게. 세계 내 게 다 섞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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