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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0일 화요일

변화한 지하철 안내방송을 듣고

  지하철 안내방송 중에 들을 때마다 꽤 의아한 부분이 있다.

  "불쾌한 신체접촉이 일어날수 있으니 시민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나중에 구글링해 보니, 원래 '불쾌한 신체접촉'이라는 말 대신 성추행이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다수의 승객들을 범법자로 매도하는 것 아니냐는 민원이 속출하여 이렇게 바꾼 것이라고 한다...)

  선로와 열차 사이의 간격이 넓은 것, 지하철 운행 중의 진동이 심한 것 등은 지하철 자체가 그렇게 건설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조건들이다. 이런 요소들에 대해 '시민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에 비해, 불쾌한 신체접촉은 혼잡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승객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서로를 존중하여 의식적으로 배려한다면, 그리고 혼잡함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점차 해소될 수 있는 문제이다. 불쾌한 신체접촉을 당하는 입장에서 주의하는 방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기도하듯 손을 모으는 자세로 탑승하자는 캠페인도 이런 배경에서 제시되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노트북 가방을 안아서 들고 탑승하는데, 기도하는 손 모양보다 확실히 자연스러울 뿐더러, 승하차 과정에서 주위 승객들과 부딪힐 일이 없어 내 입장에서도 편하다.)

  여튼, 오늘 집에 오는 길에 교대역에서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그 안내방송을 들었는데, 평소에 듣던 것에 비해 뉘앙스가 좀 달랐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이 안 나지만 불쾌한 신체접촉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가 먼저 조심하고 배려하면 다같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라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냥 안내하시는 분이 그렇게 바꿔서 말한 건지, 아니면 전면적으로 바뀐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인상깊었다. 불쾌한 신체접촉을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불가피한 요소인 것처럼 취급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들이 동료 승객들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먼저 조심하고 배려함으로써 점차 해소해 나갈 수 있는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은 상당히 큰 전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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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22일 월요일

오브제: 상상된 것의 출현

컴퓨터그래픽 작업공간에 덩그러니 생성된 오브젝트 같다.
하늘의 색깔도 건물들의 모양도 단조로워서 그런 걸까? 도로변의 여러 시설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기지 않아서 그런 걸까?
아무리 번화한 도시의 풍경일지라도, 사람들과 자동차들과 각종 시설물들이 모두 제거된다면 우리는 그 장면을 매우 낯설게 여기게 될 것 같다. 컴퓨터그래픽으로 자유롭게 생성한 오브젝트들에 의해 구성된 가상환경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21세기 도시의 첨단 단지들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을 물리적 현실 속에 직접 출현시켜 버리려는 욕구가 집약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미지: 고층 건물, 하늘 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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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12일 금요일

클로저스 성우 교체 논란

  지난 몇 주간 인터넷 공간상에서는 큰 규모의 파장이 일어났다. 게임 ‘클로저스’에 참여한 한 성우가 트위터에 ‘메갈리아4’의 티셔츠 구입을 인증하는 글을 게시한 뒤, 유저들의 반발이 많자 넥슨 측에서 해당 성우의 참여 분량을 삭제한 일 때문이다. 이 사건은 지난 약 1년간 ‘메갈리아’와 관련하여 형성되어 온 인터넷 상에서의 여론이 거의 모든 대형 커뮤니티에서 단번에 터져 나오게 되는 도화선과 같은 역할을 하였고, 이 사건에 대해 각계에서 의견표명을 하는 과정에서 웹툰 계에서는 일부 작가들이 독자들에게 보인 태도로 인해 많은 독자들이 실망하는 일도 있었으며, 정의당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논평을 냈다가 철회하는 등의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 당원들을 실망시키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메갈리아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메갈리아에 대한, 어떤 경우에는 모든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동안 페이스북 상에서는 좋아요로만 의견을 표현해 왔는데 이에 대해 변명을 하자면, 진즉에 이야기되었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그것들을 살펴볼 충분한 시간과 정신적 여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태의 전모가 어느 정도 드러난 현 시점에서 늦게나마 의견을 남겨 보려 한다.

  인터넷 공간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메갈리아에 대해 일종의 이데올로기화된 ‘건국 신화’를 기반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효과적인 운동 전략으로서의 ‘미러링’이 제시되는 과정에 대한 신화가 그것이다. 지지자들은 그러한 신화를 신념으로 채택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반대자들은 그러한 신화에 대한 무의미한 비난을 하곤 한다. 자신이 이들 중 어느 ‘편’에 속하는지에 관계없이, 이러한 신화를 걷어내고 보다 실증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 서로 비슷한 성향의 유저들이 모였던 초창기에는, 이용자들이 일반적으로 스스로를 여성운동으로 정체화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격한 언어와 혐오감정이라는 공통점으로 흔히 비교되는 ‘일베’ 현상과는 달리, 메르스 갤러리는 여성운동이라는 대의의 서포트를 받게 되었고,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이름을 딴 웹사이트 ‘메갈리아’에 이르러 그들의 언어는 ‘미러링 전략’으로 지칭되게 되었다. 메르스 갤러리의 언어는 외견상 혐오표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주의 운동의 전략의 하나로 빠르게 흡수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미러링 행위의 본질이 단순히 혐오적인 유희인지, 남성중심적 편견의 폭력성에 대한 풍자와 조롱인지, 절박함에서 오는 분노 표출인지 판별하려는 시도는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르며, 심지어 한 사람 안에서도 중첩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뢰를 기반으로 공정성이 확보된 유의미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담론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메갈리아의 지지자들을 타자화하여 담론공동체로부터 배제하려는 시도 역시 배격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점들에 의해, 메갈리안 멘탈리티 자체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내 수준에서는 다소 무모한 것이 된다.

  어떻게 보면 허구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메갈리아라는 ‘집단’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메갈리아의 언어가 미러링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대외적으로 정체화되어 여성주의 진영에 흡수되면서 발생한 발화의 양식, 운동의 양상이다. 따라서 이하에서는 사이트로서의 메갈리아와 양식으로서의 메갈리아가 혼용되어 언급될 것이다.

  페미니즘은 학문적 태도이기도 하며 실천적 사회 운동이기도 하다. 그 자체로 거시적인 사회 구조부터 지극히 일상적인 영역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는 만큼, 페미니즘의 학술적인 측면과 사회 운동의 측면은 꽤나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에 의해 페미니즘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며, 어떤 것이 ‘진정한 페미니즘’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페미니즘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응용윤리적 판단 및 사회구성적으로 정립된 평가를 넘어선 ‘엄정한 의미에서의’ 규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메갈리아라는 단어가 더 이상 특정 사이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자들에게 흡수된 화법 및 운동의 양상을 뜻하게 된 이상, 개인적 의견에 따라 메갈리아가 ‘과격한 페미니즘이다’, ‘문제가 있다’라며 비판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들이 내세워서 여성주의 진영에 흡수되며 발생한 사상과 전략에 한해서는, ‘페미니즘이 아니다’, ‘진정한 페미니즘을 하라’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렵다. 이와 반대로, 메갈리아의 양식을 채택한 페미니즘 진영에서 그렇지 않은 페미니스트들이 존재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본인들에게 반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페미니즘이 아니다’라며 부정하는 현상 역시 그 원인에 대한 성찰은 매우 필요할지언정,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다 자세하게 후술한다.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 자체의 성질을 균질한 것으로 가정하여 진단할 수는 없다. 그 집단의 코드에 강하게 동조하는 사람, 반대하는 점도 있으나 전략적, 윤리적 판단에 의해서 동조하는 사람, 자세히 알지 못하고 대의를 보며 동조하는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한 스탠스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또한 그들이 하나의 커뮤니티에만 소속되지 않고 복수로 활동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이기 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를 마치 어떤 정당이나 정파처럼 취급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진영’이라는 것은 사실 허구인 것이다. 그러나 실재하지 않는 것을 실재한다고 믿고 활동하는 것이 인간 행동의 핵심적인 측면 아니겠는가? 현실적인 측면에서 이미 진영으로 보이는 것이 발생한 이상,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논지를 전개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다.

  이것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통용되는 ‘코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그 코드가 사이트 내부 및 외부적으로 그 표현 자체로만 받아들여지는 것은 오류를 낳으며, 그 코드 배후의 의미와, 그것이 발생하게 된 배경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메갈리안들이 자신들에 대한 비판자가 페미니스트일 수는 없다는 강한 흑백논리와 진영논리를 내재하고 있다는 점, 생활정치 영역과 제도권 정치 영역을 혼동하여 공고한 강자-약자 구도를 형성한다는 점, 그들에 의해 실질적인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점, 메갈리아의 ‘건국 신화’와 미러링 행위의 성격이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많은 채로 이데올로기화되어 신념으로 채택되고 있다는 점, 몇몇 사안을 강력하게 공론화하여 해결에 일조한 바는 있으나 전략적인 면에서 대중에 대한 궁극적인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 등에서 메갈리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메갈리아의 비판자들 중 ‘메퇘지’, ‘쿵쾅쿵쾅’ 등의 숱한 외모적 편견에 근거한 멸칭들을 사용하여 그들(에 더하여 모든 페미니스트들)을 조롱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 시대에 무슨 여혐이냐’, ‘그러면 나도 여혐이라는 것이냐’, ‘나와 내 주위 사람들 중에 여혐 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는 사람들과는 더욱더 같은 편에 설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강한 진영논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들을 단순히 비난하기보다는 그 발생 원인과 해소 방안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시 이번 논쟁으로부터 시선을 넓혀서 지난 십여 년 간 인터넷에서 진행되어 온, 더 나아가 지난 백수십년 간 진행되어 온 페미니즘 담론을 살펴보면, 언제나 그것은 남녀라는 동등한 두 진영의 싸움 같은 것이 아니었으며, 기본적으로 여성혐오가 공고하게 만연해 있는 상태에서 진행되어 왔다.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다(여성혐오라는 단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선은 그대로 사용하겠다. 여성혐오(misogyny)는 자국이성혐오와 같은 혐오적 정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게 강하게 적용되는 외모지상주의,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적 풍조 등을 포함하는, 젠더담론에서 다루는 가장 뿌리 깊은 지점에서부터 존재하는 넓은 개념인 것으로 이해된다). 비록 일베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혐오적 발언들에 의해 여성혐오의 아이콘이 되었지만, 일베뿐만 아닌 많은 곳에서 여성혐오는 언제나 존재하였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페미니즘 담론은 잘 정착되지 못했고, 여성혐오적 발언들의 엄청난 양에 비해 그것이 제지되는 경우는 그에 비해 많지 않았다.

  이처럼 네티즌들이 평소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해 보여주었던 나이브한 반응을 생각한다면, 현재 메갈리아에 대해 빠르고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민감하게 작동하고 있는 억압적인 기제에는 여성혐오적 반동이 많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이를 통해 다른 모든 페미니즘 담론에까지 부정적인 낙인이 찍혀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이며, 이러한 우려는 이미 어느 정도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으로 ‘여성 억압은 나쁜 것이다’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여혐 한 적 없다’면서 그것을 생활이나 미디어 속에서 캐치할 정도로 이해하며 체화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불완전할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우리 안의 여성혐오’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여 공론장을 열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태도를 가지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메갈리아에 대해 최대로 비판적인 관점을 취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혐오표현이 일부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정당한 운동의 방식으로 수용되어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었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 자체는 생각해 볼 여지를 많이 남기고 있다. 소위 ‘우리 안의 여성혐오’를 발견하지 못하면서도 성평등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뢰가 붕괴되어 있는 것이 이유가 되어, 메갈리아의 혐오적 정서와 폭력적인 언어가 여성운동의 대의와 만나 운동의 양식의 하나로 흡수되어 재생산되는 것이 끊임없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나도 여성혐오에 분노한다! 그렇지만 메갈리아는 좀 아니지 않느냐’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과연 ‘진짜로’ 여성혐오를 잘 발견하고 있는 것일지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한 그 ‘진짜’는 어떻게 규정되는 것인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진다. 결국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평소의 언행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스탠스를 증명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그동안 젠더문제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면서 페미니즘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음으로 인하여, 공론장의 기반이 되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원이 확립되지 못했는데, 실천을 통해 스스로의 스탠스를 증명함으로써 신뢰가 회복되고 담론공동체가 형성되어 대화와 설득을 통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일상화된 실천이, 신뢰의 확보와 더불어 생산적인 페미니즘 담론의 확산과 사회적인 인식 제고에 큰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메갈리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 기존에 만연해 있던 여성혐오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기를 원한다면, 여성들이 겪는 사회구조적 차별 및 문화적 풍조에 의한 모멸감 등을 더욱 열심히 알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남성들이 겪는 군대라는 경험,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소위 ‘맨박스’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남성들 중 여성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분명히 사실이지만, 그들 중의 모두를 악으로 취급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각자가 문제를 느끼는 영역, 각자가 잘 알고 있는 영역에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그 의도는 분명히 인정하되, 여성에 대해 증오심을 갖고 있는 것은 비논리적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대결구도와 갈등만을 증폭시킨다는 것을 설득하여 공론장에 참여할 인원을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하여야 한다.

  더 많은 실천, 더 많은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다. 공통점을 발견해서 서로 연대하기보다는, 차이점을 발견해서 서로 배제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점을 발견하여 이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론장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식을 같이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설득 가능한 요소를 발견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절대악에 대한 혁명과 투쟁이 아닌, 악한 요소를 가진 평범한 대중에게서 그 요소를 발견하여 파괴하여야 하는 젠더이슈와 같은 경우에 더욱 더 그렇다(물론 그 악이 ‘평범한 것’이 되어 있는 현 상태는 정말 답답한 것이 맞다). 메갈리아가 끊임없이 정당화되는 것은 그동안의 대중들의 젠더이슈에 대한 무지와 개선되지 않는 여성인권 상황, 그리고 붕괴된 사회적 신뢰와 공론장의 부재를 생각해 본다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으나,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해서 우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지형 속에서 이렇게까지 고립된 적은 없는 것 같다. 증오에 의해 사회가 붕괴되고 파편화된 개인만이 남게 될 거라는 두려움이 현실화되어 가고 있는 시대이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일반적으로 젠더담론은 동등한 양 진영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좋은 말로 하자’,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를 제기하는 자들에 대한 기만이 된다. 그러므로 문제를 열심히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을 통해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상태에서 대화와 설득을 역설하여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증오의 시대, 불신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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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3일 수요일

카톡방 성폭력 고발을 보며


  동료 학우를 성적 대상화해서 이런 식으로 뒤에서 음담패설을 일삼는 행동... 굳이 젠더 담론의 용어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냥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의 차원에서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잘못된 걸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알려지지 않았을 뿐, 비슷한 일은 은근히 많이 있어 왔을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이미 있어 왔다는 이유로 이 단일 사건이 희석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반대로, 이러한 일들이 버젓이 있어 왔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견을 드러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인문대학 새터에서는 어울림 내규라고 해서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소개와,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열심히 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한 환경에서도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그 분위기 주도한 사람 중에는 평소에 페북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을 자주 공유하던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예방 교육과 지식 등이, 물론 필요하지만, 직접적으로 뭔가를 바꾸기는 어렵다는 증거인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얘기하셨듯이 매번 법적인 대응을 하는 것도 애매한 부분이 많으며, 본질적으로 예방되는 것도 아니다(아마 이런 이유로 법적 대응보다는 자보를 통한 공론화 전략을 택한 것 아닐까 추측해 본다).

  상대방을 인간으로서 존중한다는 것에 대한 학교 구성원 '개개인의 인식'이 바뀌고, 단톡방 내에서 이런 일들을 불편해하면서 지적하더라도 안 좋은 취급을 받지 않도록 '학내 분위기'가 형성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는 개개인의 삶에 매우 밀접한 문제이다. 자기 자신이 단톡방에서 저런 식으로 언급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사람은 불편함 정도가 아니라 큰 불쾌함을 느낀다. 이 점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저런 거 안 한다'며 저 이들을 욕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그런 것들을 지적해 가면서 실천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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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0일 일요일

딥마인드 데미스 허사비스의 재미있는 경력

어릴 때 Black & White라는 CD게임을 했었는데, 거기서 플레이어가 키울 수 있는 creature에 적용된 인공지능이 당시 게임 AI 중 최고 성능이라고 기네스북에 올랐던 것을 기억한다.

사진: Black & White 인게임 스크린샷.


그 AI의 주요 개발자가 바로, 훗날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DeepMind)의 수장 데미스 허사비스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고위공무원 '개돼지' 망언을 보며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607082025001
[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 공고화해야" (2016.07.08) ]

정책기획관이면 2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안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헌정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에 정면으로 반하는 발언이다. 아무리 술을 마셨어도 그렇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당당히 내비친다는 건, 저 사람이 가지고 있을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 반민주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는다. 은연중에라도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고위 공직에 유의미한 숫자로 존재한다면, 이 땅이 소위 말하는 헬조선이 된 게 납득이 간다.

  말은 중요하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의 말은 그 무게가 상당하며, 만일 그것이 민주주의, 자유, 권리, 헌법 같은 단어들과 연관이 된 말들일 경우엔 그 무게는 더욱 크다.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들이어야 한다.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정부 들어 헌정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사상들이 어떻게 훼손되어 왔는가? 또한 정치인들의 어떤 언행들이 그 훼손을 증언하였는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인터넷 사이트 댓글과 트위터를 통해 대규모의 여론조작을 하였다. 대선 3일 전에는 김용판 경찰청장이 국정원 여론조작행위가 없었다고 거짓말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 일을 하고 그는 무죄를 받았다.

  청와대의 허현준 행정관은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단체를 관리하며 관제 데모를 지시하고 여론을 조작해 온 바 있다. 어버이연합에 대한 조사는 잘 진행되지 않다가, 증거인멸 하고도 남았을 시기인 바로 며칠 전에야 사무실 수색이 진행되었다.

  이완구 전 총리는 총리 지명 이후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하여 자신에 대한 의혹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지시했고, 그 사실을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말했다.

  이정현 의원(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세월호 사건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하여, 정권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하라고 다소 고압적으로 요청했다.

  헌법에 써 있는 자유와 권리의 가치, 대의제 민주주의의 의미를 충분히 많이 공부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고위직에 올랐을 사람들이, 그 의미를 체화하고 있기는커녕 정면으로 위배하면서 권력을 남용하는 행태를 보여 온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개돼지 발언은 이러한 비극의 단면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증언한다.

  엄청난 실언들의 쓰나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이것들에 무뎌지거나 체념해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비판해 나가야 한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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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4일 화요일

강남역 살인사건

  5월 17일자에 강남역 인근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살인사건은 그 사건성 자체와 함께 많은 사회적 논의를 동반하며 거대한 의미를 획득해 버렸다. 매우 큰 담론이기에 다소 조심스럽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표적이 되어 목숨을 잃은 여성을 추모하면서, 최근 며칠간 느낀 바를 간단히 적어 보려 한다. 읽어주시는 페북 친구 여러분들과 보충이든, 반론이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사건이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인지,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인지에 대한 논쟁이 많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둘 중 어느 하나가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서울신경정신과 서천석 원장이 언급했듯이, 정신질환에 따른 망상도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혐오의 피라미드’라고 알려진 도식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혐오(misogyny의 번역어)는 남성혐오와는 달리 단순한 혐오감정뿐만이 아닌 고용 등에 있어 차별적인 사회적 구조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객체화하는 문화적 풍조를 포함한다(그렇기에 여성혐오라는 단어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은 글 최하단에 언급할 것이며, 그 전까지는 우선 여성혐오라는 어휘를 사용하겠다). 이것은 왜냐하면 실제로 남성에게와는 달리 여성에게는 그런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뇌 속에 형성된 망상에는 그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사회의 모습들이 분명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풍조가 아니었다면 가해자가 ‘하필 그런’ 망상에 휩싸여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

  또한, 굳이 망상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현재 성희롱, 성폭행, 데이트폭력 등 왜곡된 성 관념에 의한 범죄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서 현저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남성혐오적 망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성혐오의 경우에 비해 낮게 관측된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젠더적인 담론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한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정신질환에 의한 여성혐오적 망상을 가진 가해자가 원한관계가 없는 여성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정신보건의 실패>와 <여성혐오>의 두 축에서 종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전자의 측면과 관련된 논의도 보다 활발해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셜 미디어나 언론사 보도 등을 보면 현재의 논쟁은 이러한 종합적인 시각에 도달하려는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이분법 구도에서의 싸움(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적일 수도 있다)으로 격화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은 국민성이 미개하기 때문도 아니며, 남혐 사이트가 이 사건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논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이다’ 또는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이다’라는, 얼핏 보면 사실관계의 진술로만 보이는 말들 속에 사실은 무엇을 더 중요시하고 무엇을 상대적으로 무시할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혼재되어 있고, 그것을 말하는 의도에 역시 그러한 가치판단이 함의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간접적 원인으로는 사회적 공론장이 마비된 한국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자비의 원칙에 입각한 토론보다는 서로 증오하면서 비난을 일삼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있다.

  이에 대해 모두 논의하자면 지나치게 길어지고 논점도 벗어나므로 이 글에서는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젠더 담론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해야 할 부분은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이다’라는 주장은 사실 ‘여성혐오가 아닌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이다’라는 뉘앙스를 갖고, 젠더 문제가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주체에 의해 발화되는 가치판단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화가 존재하는 한, 남녀끼리 갈등을 하지 말고 연대하자는 말은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이야기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사건 이외에도 남성과 여성에게서 비대칭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는 아주 많다. 성희롱, 성폭력, 데이트 폭력 등은 물론이고, 강도와 같은 젠더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강력범죄도 평균적인 완력의 차이 등을 이유로 여성을 표적으로 자행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남성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범죄 위협은 이성 이전의 문제이다.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주체로서 대우받을 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일상 속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대부분의 남성에 비해 일상에서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지위에 대한 위협을 많이 느끼면서 살아가는 기막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일각에서 터져 나오는 기계적 중립에의 요구, 일반화하지 말라는 요구는 실제로는 그들이 거부감을 갖는 소위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큰 폭력이 되며, 자칫 평화주의적인 요구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기만이 된다. 마치 군사독재가 종식된 이후 보수 언론에서 ‘과거는 잊고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기사를 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사건 자체와 함께 사건에 대한 반응 역시 충격적이었다. 네이버 댓글 등지에서는 '솔직히 늦게까지 논 여성도 잘못은 있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었다. 이런 정도의 전근대적 발상이 실재하며,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여성혐오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앞서 말한 극단적인 주장들을 보고 잘 성찰해 본다면 여성혐오가 분명히 실제로 공고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혐 아닌 대부분의 남자한테까지 일반화하지 말라'는 자칫 평화주의적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말 그대로 ‘김치녀’와 같은 여성혐오부터 여성의 객체화와 성적 대상화, 호의적 성차별 등은 일부 남성만의 문제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우 만연해 있는 왜곡된 성 관념이며, 심지어 미디어와 문화권력에 의해 조장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사회적 풍조 속에서 남성들에게는 그저 '여혐에 동참하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니라, 성 평등 의식과 공감 능력, 소위 ‘젠더감수성’을 기르고, 여성혐오를 목격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지적하면서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여, 성 평등 사회를 이루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젠더문제는 여성들의 삶에 매우 밀접한 문제이다. 또한 여성혐오는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풍조의 문제와 함께, 그 영향을 받은 각 개인 심리의 문제로 다층적인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젠더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들의 일상을 투쟁화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많이 부족하지만 기꺼이 동참하고자 한다.

  나는 대학 생활 중에 학과 내에서의 동료 여학우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 ‘개념녀네’와 같은 호의적 성차별을 비판하는 데 전투적으로 임해 왔다.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되,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사회적 논쟁을 통해 여성혐오적 풍조가 일반에 생각보다 훨씬 더 만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문제의식을 더 확장해 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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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여성혐오’라는 어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어휘는 misogyny의 번역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어휘는 대단히 강력하고 포괄적이다. 젠더문제는 일상에서의 성차별적 언행 하나부터 넓은 평등하지 못한 사회 구조, 그리고 성폭력이나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그런데 글 초반부에 언급하였듯이 이 모든 것이 '여성혐오적' 이라고 불리어진다. 현재 여성혐오라고 묶여서 일컬어지는 이러한 사회적 징후에는 사회구조적 측면과, (결국은 사회풍조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었을) 개인의 심리적 측면이 있을 것이고, 왜곡된 인식, 차별적 대우, 성적대상화 등 다양한 면모가 있는 것이다.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그것들을 잘 대표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특히 자기 딴에는 ‘여성이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님에도 사실은 차별적 인식을 담고 있는 소위 '호의적 성차별'이 매우 심각하다고 보는 입장에서('개념녀네', '여자답다' 등등), 여성혐오라는 단어는 저런 현상들의 총체에 대한 대표성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엥, 난 여혐 안 하는데?’ 라며 제대로 사유해 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젠더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왔던 사람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데에는 보다 직관적인 어휘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페이스북 상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떤 분에 따르면 ‘여성혐오’와 ‘이분법적 성 고정관념’이 교집합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몇몇 어휘들을 함께 제시하여 misogyny라는 현상의 총체에 도달하도록 보완할 순 있겠지만, 한 단어로 된 대체제가 생각이 나지 않는 관계로 본 글에서는 일단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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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9일 목요일

5월 18일을 맞으며: 헌정 민주주의를 사유하기

  군사정권에서 투입한 계엄군에 의해 통신과 교통이 차단당한 채로 광주시민들이 학살당했던 일, 실존을 위협하는 시스템의 폭력 아래서 총까지 들어 가며 시민군으로서 계엄군과 대적을 하게 되었던 비극, 불과 36년 전 오늘, 1980년 5월 18일부터 수 주에 걸쳐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나 실상은 꽤나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다거나, 순수하지 않은 목적의 폭동이었다는 주장이 아직까지도 자주 보인다. 언론인들은 용기가 없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라. 나는 그들이 후대에라도 사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다.

  이후에도 제5공화국 내내 많은 민주진영 인사들과 대학생들이 탄압당했고, 고문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대학생과 직장인 등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한 1987년 6월 항쟁 이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약속되었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경유착을 하며 정권에 돈을 주었던 기업들은 서서히 발을 뺐고, 책임자들은 청문회에서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군사정권의 잔재 청산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고, 어쨌든 세상의 우려와 달리 88 올림픽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0년쯤 시간이 흘렀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와 생명을 탄압했던 군사정권 수뇌부의 정점에 있던 전두환은 2016년, 예우를 해 준다면 광주를 찾아갈 수 있다며, 생생히 살아 있는 광주시민들의 기억을 기만한다. 군사 독재는 끝났지만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에는 군사 독재를 주도하거나 찬동한 인사들도 포함되었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정치계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회는 해체되었지만 하나회 출신 인사들은 여전히 퇴역장성 단체에 소속되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등 정치의 배후에서 개입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5월 18일 새벽, 짧게나마 알고 있는 역사를 되짚어 보며, 2013년 이래로 외우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곱씹어 보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자연스레 주어진 안정적인 것인가, 혹은 섬세하고 예민하게 쌓아올려진 것인가? 과연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고 신뢰할 만한 것인가? 과연 우리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위협받을 때, 우리 옆의 사람들이 실존을 위협당할 때, 우리는 다시금 문제를 인식하고, 용기내어 문제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우리의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에 대해 어떻게,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들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그것들이 위협받는 것을 목도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헌정 민주주의의 원리에 기반한 시민들의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 노력과 투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소중한 헌법적 가치, 민주주의적 가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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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8일 수요일

전문연구요원 폐지 폭탄선언에 대해

  전문연구요원 폐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어제 뉴스 링크([단독] "이공계 병역특례 2023년까지 폐지")를 공유하면서 썼던 글에 더하여 몇 가지 쟁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다.

  이번 발표에서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유예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이미 전문연을 염두에 두고 학부생활 도중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공계열 선배들이 상당히 많을 텐데, 이렇게 될 경우 학부를 졸업하고 입대하거나 대학원 과정을 중단하고 입대하는 등 사회인으로서의, 이공학도로서의 커리어에 문제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교육과정이랑 군대정책은 최소 10년은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 시행 중인 제도의 폐지에 이런 식으로 유예기간을 안 둠으로서, 그 제도를 상정하고 계획을 세워 놓은 수많은 이공학도들의 인생계획을 꼬이게 만드는 것은 배려가 없는 걸 넘어 폭력적인 처사이다.

  또한 연구 지망 이공학도들의 개인적 불편함 외에 국가적, 사회적 측면에서도 전문연을 폐지할 경우 국내 이공계 학문 연구에 차질이 발생하고 우수 연구인력이 대량으로 해외 유출되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이다. 국내와 해외의 과학기술자 대우 및 연구환경의 차이와 함께, 이런 식으로 연구인력을 기만하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많은 이공학도들이 실망하며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병사 수천 명 더 확보하려고 전문연을 폐지함으로써 국내 이공계 전체가 타격을 입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조치인 것이다. 과학기술을 중시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이러한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합당하다.

  2020년까지 달 탐사를 하겠다고 하는데(유인탐사 얘기는 아니겠지만), 미국이 달에 사람 보내는 데 들인 돈이 현재 가치로 약 200조 원이었다.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알파고의 개발 배경에는 구글이라는 거대 IT 기업이 전세계의 좋은 스타트업들을 거액에 인수 합병하면서 연구 개발해 온 수많은 기술들이 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하게 선언 하고 테이프 끊는 것으로는 어떤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 과학기술 연구 환경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국내 대학원생 대우가 열악한 편인데 이런 문제까지 더해지면 많은 학도들과 지망생들이 실망하고, 국내 이공계 연구원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할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 보자면, 전문연구요원과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은 타 특수병과 및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에 대한 것일 것이다. 이공계 연구인력만 소중하고 다른 직종 희망자는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흔히 전문직이라고 이야기되는 의사, 법조인, 연구원 중에서 앞의 두 직종은 군의관, 군법무관이라는 잘 정착된 특수병과를 통해 병역문제를 해결해 왔으나, 연구원의 경우 전문연이라는 고학력 이공계에 제한된 좁은 문을 통해 보충역으로 병역문제를 해결해 왔고, 결국 그마저도 없어지면서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게 되어 버렸다. 이는 전문직 종사자 개인 입장에서도 차별적인 대우가 될 수 있을 뿐더러, 군대 입장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한 기계화, 현대화된 선진강군 건설이라는 최근의 추세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조치가 될 수 있다.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연 제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 문제가 전문연 폐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역 일반병에 대해서도 군기강과 상관없는 폭력을 최대한 막고, 밥이랑 월급 수준 개선하고, 장비 제대로 지급하고, 외출을 자주 가능하게 하고, 자기계발 시간을 어느정도 이상 확보하도록 하여, 전문연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병역수행의 환경을 상향평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전문연과 같은 수준의 자유화는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앞서 나열한 것들 정도는 현역일반병에게도 못 해 줄 이유가 전혀 없는 조처들이다. 혜택이 아닌 당연한 권리들이다.

  대한민국 징병제 하의 군인들의 복무환경과 그 대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나쁜 수준이고, 한국이라는 국가의 전반적인 사회 수준에 비추어 보면 아연실색할 정도이다. 전문 연구인력에 대한 특별대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반병사의 복무환경 자체도 정상적인 수준으로 확 끌어올려질 필요성이 있다.

  안그래도 시민사회와 유리된 한국 군대의 폐쇄성과 전근대성이 조만간 매우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며, 우리가 군대에 대해 문제를 문제라고 똑바로 인식하고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 전문연 폐지 조처를 통해 군대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목소리도 나오고 하면서 전반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 전문연구요원 폐지 조치에 대해 전면 재검토 착수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면밀히 조사하여 수정 조치하여야 한다.
- 임금 개선, 식사 개선, 자기계발 시간 및 휴가 확보 등, 수십 년간 방치되어 오다시피 한 군인들의 복무 환경 정상화 문제를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설정하고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사회구성원 개인들의 삶의 방향 설정에 큰 영향을 주는 교육, 입시, 군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최소 10년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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