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지구를 1초에 7바퀴 반 돌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간단히 역산해 보면, 1바퀴 도는 데 15분의 2초가 걸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빛이 지구를 반 바퀴 도는 데에는, 즉 빛이 지구의 한 지역에서 정반대 지역으로 전달되는 데에는 아무리 빨라도 15분의 1초가 걸린다.
이제, 광통신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우선, 광섬유 케이블 속에서는 빛의 속도가 진공에 비해서 느려진다.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를 광섬유의 굴절률 n으로 나누면 된다. 따라서, 완전히 이상적인 경우라고 해도 15분의 1초보다 n배 오래걸리게 된다.(물리적 요인)
그런데, 광섬유 케이블이 정확히 최단거리로 뻗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대륙과 해양 등 여러 가지 지리적 요인들이 있을 뿐더러, 애초에 여러 지역의 네트워크이 모여들어서 하나의 큰 해저케이블을 이루는 식으로 통신망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어떤 지역을 선택하더라도 그 정반대편 지역과의 광통신 경로는 전혀 최단 거리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광섬유 케이블 안에서도 빛은 지그재그로 반사되어 가면서 이동하기 때문에 실제 빛의 경로의 길이는 광섬유 케이블 자체의 길이보다도 더욱 길다.(기하적 요인)
여기에 더하여, 네트워크의 말단까지 오로지 광섬유로만 연결되어 있지는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실제적인 통신에 소요되는 시간은 더욱 느려지며, 심지어 한 채널에서 혼자만 통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송수신자들도 엄청나게 많이 있기 때문에 통신 자원을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는 것도 고려하면 더욱 더 그렇다.(통신공학적 요인)
따라서, 지구의 한 지역와 정 반대편 지역 사이에 광통신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15분의 1초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지구 반대편까지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는 데는 아마도 1초보다도 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구 반대편의 친구와, 당연하게도 메신저를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와 실시간 온라인 게임을 함께 플레이할 수는 없다. 15분의 1초만 지연이 되어도 실시간 게임플레이에 큰 지장이 있을 텐데, 위에서 밝혔듯이 실제로는 지연이 훨씬 더 길 테니까 말이다. 카드게임 같은 것은 정해진 순서와 절차대로 진행되니까 괜찮지만, 속도와 순발력이 핵심인 FPS 같은 경우에는 이것이 매우 곤란한 문제이다(혹시나 이것이 내 착각이며 실제로 통신 속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특수한 기법 없이 지구 반대편 친구와의 실시간 게임 플레이에 문제가 없게 할 수 있다면, 댓글로 지적 부탁드린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류의 요구에 비해 광속은 정말 느리다!
물론, 휴먼 스케일에서 빛은 매우 빠르다. 따라서 우리는 빛 정보가 '즉시' 전달된다고 느낀다. 우리의 선험적 인식 틀 역시, 빛은 즉시 전달된다는 관념을 본유적으로 내재하고 있을 것이다(마치 상대론에 따르면 시간의 흐름은 절대적이지 않고 속도에 따라 변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시간과 길이가 당연히 모두에게 절대적이며 불변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이론적으로 직접 연관이 있다). 그런데, 스케일을 지구 규모로만 키워 봐도, 빛이 즉시 전달되는 것이 아님이 드러난다. 따라서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다. 빛이 '충분히 빠르'지 못하기 때문에, 빛 전달의 즉시성이라는 본유관념을 가진 인간은 이 때 큰 혼란에 빠진다. 글로벌 시대에, 이런 의미에서, 휴먼 스케일에서 빛은 매우 느리다. 기막힌 역설이다.
이것은 엄청난 난점이다. 우주 개발과 관련하여 많은 이들이 논의와 상상을 하고 있는데, 무엇을 논의하려 하더라도 이 점이 문제가 된다.
우리와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까지는 광속으로 1.3초가 걸리며, 태양까지는 광속으로 490초가 걸린다. 우리의 문명이 우리의 행성을 넘어 달과 태양 등의 범위까지 본격적으로 진출한다면, 실시간 게임 플레이는 못 할 수도 있겠지만,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인 체제의 작동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다. 수십 초 이하의 단위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대응해야 하는 비상 상황은 각 지역에서 알아서 처리할 수 있도록 대응 시스템을 빼곡히 갖추어 놓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 문명의 스케일이 조금 더 커진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 우리 태양계와 가장 가까이 있는 별은 알파 센타우리인데, 지구에서 알파 센타우리까지는 광속으로 4.3년이 걸린다. 이 정도 스케일에 건설된 문명에서는 문명을 유지하기 위한 기본적 체제가 작동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 비상 상황은 각 영역에서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면 된다지만, 한 국가나 기업의 체제가 중앙 집권적으로 의사를 결정하고 관리를 할 수 있는 범위가 그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모든 국가는, 국경에서의 전쟁 결과를 몇 달이 지나서야 받아들 수 있었던 고대 제국의 황제들처럼 되는 것이다.
또한, 직업 때문에 멀리 떠나 버린 사람이 그의 가족과 제대로 된 한 두 마디의 대화를 나누는 데에도 수 년이 걸리게 된다. 대화는 상호적인 것이므로, 새로운 정보를 받고 이에 대해 답신을 하는 상호적 의사 소통은 오로지 번갈아가면서만 진행될 수 있으며, 여기에 편법은 없다.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일방적으로 받는다고 해도, 상호성은 확보되지 않는다.
산업 혁명 이래 교통과 통신의 발전을 통해 모든 곳이 가까워지고 모든 것이 빨라져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한편, 인간의 욕망이 뻗는 범위, 인간이 진출할 수 있는 범위 역시 엄청나게 넓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런데, 후자가 무한한 데에 비해 전자는 유한하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러한 고속화, 근거리화의 흐름의 끝에서 인간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저속성과 원거리성을 마주하게 된다.
인간은 지구와 달, 태양 정도의 크기 스케일에서는 모든 사람과 간단하게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이상의 범위로 가면 그 교류는 갑작스레 매우 어려운 일이 된다. 알파 센타우리와 태양 사이에 연속적인 구조물을 건설하여 그 구조물의 모든 부분에 사람이 살도록 하는 게 아닌 바에야, 태양계와 알파 센타우리의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태양, 지구, 달 사이의 통신은 휴먼 스케일에서 '의사 소통'이라고 충분히 여길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지구와 알파 센타우리의 통신은 휴먼 스케일에서 '의사 소통'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하염없는 기다림만이 인간들에게 있을 뿐이다.
(알파 센타우리에서 사진과 비디오를 찍고 과학 데이터를 수집해서 우리에게 계속 보내 준다면, 최초에 '알파 센타우리까지 인류가 우주선을 타고 가는 시간 + 4.3년'만큼만 기다리면 되고, 그 이후로는 연속적으로 받아 볼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론할 수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사진을 계속 받아 보는 것만 해도 아주 고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우주 개발 초기 단계에서의 연구 데이터 전송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개발이 잘 되어서 이미 지구와 알파 센타우리 간의 교류가 존재하는 상황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는 상호적인 의사 소통이 매우 중요해지며,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 때 고독감이 밀려온다. 나는 지식 습득이 아닌, 상호적 의사소통에 기반을 둔 '관계맺음', '함께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체 개조를 통해서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린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알파 센타우리의 답신을 기다리는 8.6년 동안에는, 태양계의 사람들은 어찌되었든 태양계 내부에서만 서로 교류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매 순간순간 확실하게, 지금의 우리와 다름없이 느끼면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에, 8.6년에 익숙해지고 시간 감각이 무뎌져서 아무렇지 않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아예 모든 사람의 시간 감각을 바꾸어서, 그 8.6년이 딱히 길게 느껴지지 않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한다면 태양계 내에서의 많은 일들은 그들에겐 매우 빠르게 일어나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되어 버리므로, 태양계 내에서의 일들은 신경쓸 수 없게 되어 버릴 것이다. 그렇게 해서 8.6년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도록 새로운 시간 관념을 갖고, 기존의 일상이었던 시간 스케일에 대해서는 신경을 못 쓰게 되어 버린다면, (단순히 외부 행성들에 대한 호기심 충족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우주 개발의 의미가 전혀 없어진다. 마치 온 우주의 모든 것이 2배 커지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과 똑같은 것처럼 말이다. 주지하였다시피, 나는 지식 습득이 아닌, 상호적 의사소통에 기반을 둔 '관계맺음', '함께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에, 일상에서의 시간 감각(A)과, 8.6년을 아무렇지 않게 느낄 수 있는 시간 감각(B) 사이를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어떤 이가 B 모드에서 시간을 보낼 때, 그는 A 모드의 사람들과 '동일 시공간에' 존재할 수는 있지만, '함께'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가 B 모드를 끝내고 A 모드로 돌아가면, B 모드에 돌입하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A 모드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이 모두 파괴되어 있음을 그는 알게 된다.
우리 인간은 정말로 넓은 세계가 있음을 알았다. 인간은 동족들의 공동체가 그 넓은 세계로 진출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인간은 그 넓은 세계에서 동족들과 동시에 존재함을 알지만,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홀로됨은 외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럿 사이에서 홀로됨은 외로운 것이다.
시간과 공간은 속도를 통해 결부되어 있다. 그런데 그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그 때문에 인간은 외로운 것이다.
- 시공간의 물리적 특성 및 인간 관계맺음의 상호성 테제에 의한 우주적 고독의 해명 -
이상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결부지어 주는 속도라는 물리량에 299792458m/s라는 -결코 빠르지 않은- 상한선이 있다는 사실에 의하여, 빛 전달의 즉시성이라는 허위적인 본유관념을 가진 채 넓은 시공간에 퍼져 생활하고 있는 인류의 상호성에 기반한 관계맺음이 본질적으로 제한됨을 밝히고, 그로부터 현대인과 미래인의 '우주적 고독'이 산출되는 원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하였다. 까마득한 고대인들에게도 이러한 우주적 고독감은 널리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온 세상이 과학과 이성의 빛으로 가득하다고 믿던 근대를 지나, 그 과학의 연구 성과들에 의하여 우주적 고독감이 더욱 구체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다시 제시되면서 팩트 폭력을 가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고독은 현대인들에게는 수많은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기도 하면서, 우주 개발 시대의 미래인들에게는 일상적으로 겪게 될 현실적인 심리적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이 우주적 고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을 유도하고 이해를 증진하여 미래에 있을 다양한 논의들에 대한 예비적 작업으로서 기능하기를 감히 소망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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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d on 2018.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