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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어린이의 사물 애호: 원초적인 박물학적 충동

어떤 동식물이나 사물에 푹 빠져서 그걸 직접 보고 싶어하거나 비슷한 걸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하는 어린아이들의 욕구, 그리고 그걸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들어 주고 체험시켜 주려는 양육자의 노력을 볼 때면 나는 마음 속 한 곳에서 이상하리만치 깊은 인상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보편적인 이해를 증진하는 게 아니라 신기하고 독특한 개별 사물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충족시켜 가는 과정은 주로 어린아이에게 허용되는 것으로서, 굉장히 원초적이고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욕구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아주 신기하고 인상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하루 종일 그것에 빠져 있지는 않게 된다. 그러다가 어린아이가 그러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기에 그런 욕구가 너무 잘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것에 빠졌지 하고 다소 이해가 안 되거나, 약간 부담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그런 신기함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보편적인 가치가 부여되거나 의도가 투영되지 않은 작은 부분으로부터 유발되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그렇다. 자연이나 인공물 중에서 무엇이, 어떤 부분이 어린이의 마음을 끌어당길지는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르고, 그렇기에 뭔가 불가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이렇게 주변에 풍랑을 일으키면서까지 무언가를 알고 싶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인간성의 정수가 담겨 있는 욕구를,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각자의 관심사를 형성해나가며 고유한 '소우주'(microcosm)가 되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이해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수록 감당이 안 되어서(?)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의 이러한 충동(혹은 이러한 충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심정능력)이,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인간사의 여러 위대한 도전들과 경악할 천태만상들을 일으키는 데에도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내 것으로 만든다'라는 건 그냥 내가 적당히 만들어서 쓰는 말인데, 소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신기함의 순간을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느끼고, 그 신기하다는 감정의 정체와, 애초에 호기심이 유발된 이유를 캐치해서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의 총체를 뜻한다. 이를 좀 더 멋있는 말로 하자면 "박물학적 충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조금 더 단순하게, 꼭 이런 종류의 충동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의 어떤 욕구를 양육자가 다소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조건없이 이해하려고 해 주고, 잘 대응해 주는 것 자체가 굉장한 사랑과 이해심이 있어야 되는 일이므로 이것은 당연히 따뜻하고 인상깊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친구관계를 비롯한 다른 욕구들에 비해서,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결부될 때가 나는 특히 더 인상적이고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 나 스스로가 아직까지도 사물과 현상을 애호하는 경향이 남들보다 굉장히 강하고, 그것들을 별 의미없이 찾아보고 감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꺼리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철덕도 아니고 수집가도 아니지만 이와 같은 심적 경향은 철덕 및 각종 수집광들과도 뭔가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서, 그들에게도 종종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된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음식을 즐길 때에도 혀에 느껴지는 맛 때문에 먹고 싶어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음식이라는 사물 자체에 호기심이 들고 마음이 이끌려서 애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디저트 종류가 주로 그렇다. 음식을 예로 드니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러한 욕구가 소유 및 소비 욕구와는 묘하게 다르다는 게 더 명확해지는 듯하다.


이런 것과 관련된 몇가지 구체적인 기억도 있다. 가족들이 나를 여기저기 데려가서 이것저것 보여주신 경험은 일일이 기억은 안 나더라도 꽤 많이 있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아래의 일화다.

어릴 때 나는 책이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신기한 것들을 부모님께 갖고 가서 보여드리는 걸 즐겼는데,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꽃으로 유명한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눔' (나중에는 '타이탄 아룸'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더 많이 알려짐)이 신기했는지 꽤 여러 차례 보여드렸나보다.
근데 어느 날은 그 꽃이 한국에서 오랜만에 핀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 거다. 아마 학교에서 배부해 주는 소년한국일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역만리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핀다니 굉장히 신기해서 그 소식도 보여드렸다. 고양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검색해보니 고양꽃박람회에 타이탄 아룸이 왔다는 소식은 2013년대 이후에나 나오는 걸 봐서 어디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런데 아빠가 차로 거기에 가보자고 하시는 거다. 나는 그거 하나 보자고 거기에 데려가신다는 게 어린 마음에 너무 큰 일 같아서 (사실 어린 마음이 아니라 어른 되고 나서 봐도 귀찮은 일은 맞다) 살짝 무섭고 겁나는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거기로 향했다. 걱정했던 대로 그 꽃은 며칠밖에 안 피는 거라 이미 져 버린 상태여서 그 화분에는 알수없는 흙덩어리와 팻말뿐이 없었고, 그렇지만 거기 행사장에 있는 다른 식물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걸 먹고 즐겁게 돌아왔었다.


이 일화가 기억이 나서 부모님께 여쭤봤는데, 아예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는 걸 보니 심하게 귀찮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대신 엄마가 잊을 만 하면 얘기하시는 일화는, 집에 엄마 친구 분들이 와 계신데 내가 뜨거운 그릇(오븐에서 나온 도자기 같은 것)이 신기하고 예뻤는지 그 그릇을 만져보고 싶다고 해서 곤란했다던가 하는 류의 일화들이다. 그 때는 가만히 있게 조심시킨 다음에 열기가 느껴지게 꽤 가까이에 대서 위험하다는걸 알게 해 주셨고 친구 분들이 훌륭한 교육이라며 놀랐다는데, 정작 난 아예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확실히 결이 다르다. 물론 이 일화도 꽤 울림이 있기는 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나는 사물 애호뿐 아니라 오래된 인터넷 공간들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묘한 기분을 느끼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인터넷 덧글창과 어린이의 마음: 원초적 정신의 관점으로'라는 제목으로 한 번 포스팅을 했었다. 이것도 링크로 공유해 본다.

링크를 다시 읽어 보니 본문의 내용과 공통점이 꽤 많다. 결국 둘 모두 인간의 정신에 있는 원초적인 계기들이 점점 합리화되고 간접화되면서 보다 세련된 이성능력과 의지를 구성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가끔씩은 그 원초적인 형태 그대로 튀어나오기도 하는 사태들을 다룬다. 나 스스로가 지금까지도 은연중에 갖고 있는 이러한 계기들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는 것이 다소 불편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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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IRA (1988) 관람 후기

애니메이션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아키라(AKIRA, 1988)가 한국에서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직전에야 알게 되어, 12월 22일 밤 시간에 CGV 혜화에서 관람하고 왔다. 영화 상영이 끝나니 11시 10분이 넘어서, 결국 귀갓길에 사당역에서 막차가 끊겼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익히 알려진 웅장하고 화려한 사이버펑크 배경들뿐 아니라, 뛰어난 작화와 높은 프레임에서 오는 아기자기한 장면들과 훌륭한 동세 묘사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 작품의 장면들에서 유래되어 클리셰적으로 쓰이는 연출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아키라 하면 모두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달리던 오토바이가 90도 선회하며 급제동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 등의 무기를 슬로우모션으로 (혹은 작중에서 실제로 느려지게 해서) 피하는 장면도 아키라에서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마침내는 매트릭스(1999)의 그 유명한 장면에도 오마주된 것이라고 한다.


스토리와 주요 설정들 자체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스토리의 전달 방식이 어딘가 뚝뚝 끊기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들도 잘 파악이 안 되다 보니, 어느새 스토리의 세부보다는 대략적인 얼개만을 기억한 채 장면 연출 위주로만 감상하게 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원래 훨씬 길고 자세한 내용을 담은 만화책이 있고, 그 만화가 연재되는 도중 애니메이션화를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만화책의 주요 사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담으려고 하면 이렇게 뚝뚝 끊기는 느낌이 생기고, 그렇다고 특정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면 내적 완결성과 박진감은 확보하지만 원작 팬들이 아쉬워할 뿐더러 일반 관객 입장에서도 뭔가 스펙타클이 부족하다고 느낄 공산이 생긴다 (후자의 예시로는 내 인생 만화 중에 하나인 BLAME! (브레임!)을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있다).

만화책의 애니메이션화에 따르는 위와 같은 한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박진감 있고 활달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아득해지고 멘탈해지는, 그리고 모든 소중한 것들이 세심하지 않은 방식으로 파괴되는 일본 만화 특유의 서사 전개는 여전히 내 취향과는 다소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거대한 자연 재난을 빈번하게 겪는,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를 신화화, 인격화해서라도 집단적으로 process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관념이 반영된 부분일 수도 있겠다.

또한, 웅장하고 커다란 이야기가 결국 한 소년의 심리적 문제로 귀결되는 건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 이전에 아키라에서도 (그리고 아마도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미 그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경로로 주워들어 이름만 알거나, 주요 장면을 유튜브 클립으로만 보고 정작 제대로 감상을 안 해 본 유명한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약 2년 전쯤부터는 이들을 엑셀 파일에 리스트업해 두고 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니, 일주일에 한 편 정도씩 감상하고 기록을 남겨 보는 취미를 가져도 좋을듯싶다. 이번 아키라처럼 리스트에 적어 두었던 영화가 극장에서 재개봉한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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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8일 일요일

급기야 북한발 비상사태까지 유발하려 한 내란세력: 안보와 국민경제는 안중에도 없었나

설마 했는데, 지난 가을의 평양 무인기 사건도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기획한 게 맞았던 모양이다. 야당을 향한 경고성 계엄이라는 희대의 주장도 완벽한 거짓말로 드러나고있다.

북한의 도발은 언제 왜 일어나는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내부의 불안정한 역학관계가 발생했을때 대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바깥(?)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거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윤석열과 김용현도 비슷한 이유로 남북관계 긴장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북한 같은 폐쇄 고립 정권이 들어선 곳도 아니고 대외적인 리스크에 정면으로 개방된 채 매일같이 막아내며 여기까지 성장해온 나라인데, 이번 국지전 유발 시도 및 계엄으로 국민 생명이 이미 위협당한 것은 물론이며,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국민경제는 쪼그라들었고 국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 북한이 대응해서 확전이라도 했으면? 한국의 계엄군뿐 아니라 북한에 의한 실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서 계엄령의 정당성마저 확보될 수가 있고 그 여파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교육받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지금도 한국은행을 비롯한 관계기관들이 이미 RP 무제한매입, 국민연금-한은 외화 스와프 등으로 우리 세대의 복지 자금이 될수 있는 돈들을 하루에 십수조 혹은 수십조씩 빼서 금융시장 충격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건 안 그래도 무너져 있고 부동산에 기형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생애주기 설계에 장기적이고 결정적 악영향이 불가피하고, 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 및 용서가 불가능하다.

잘못은 내란을 획책한 소수 사람들이 했는데 왜 그 책임은 5000만 국민들이 져야 하는지, 그것도 왜 하필 내가 살아가가야 하는 세대에 이런일이 일어나야 되는지 정말 너무나도 억울하다. 이번 일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이번 기회에 국가 체질을 바꿀 부분은 바꾸어서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대비하는 게 그나마 이번 사태의 충격을 줄이는 일이다.

기무사도 이름까지 안보지원사로, 또 방첩사로 바꿔가며 쇄신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충암파인 방첩사령관 지휘 하에 사전 작업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번일에 참여해 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상명하복에서 오는 비극일 수도 있지만 결국 본연의 임무들 잘 했건 못 했건 이번 일에는 부대 해편까지 포함한 아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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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7일 토요일

무엇이 질서있는 퇴진인가

여당에서 이야기하는 2선 후퇴, 책임총리제, 거국내각 등이 법적으로 애초에 없는 개념인데, 그게 왜 '질서 있다'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오직 탄핵에 의한 직무정지 및 파면, 자진 하야, 혹은 불소추특권 예외에 의한 체포의 3가지만이 질서있는 퇴진의 방법이다.

결국 여당이 원하는 것은 위헌적 계엄으로 계엄군을 동원하여 국회의원들을 잡아넣으려고 했던 대통령을 권한도 확실하게 정지 안 된 채로 직에 유지시켜 놓고 비정상적인 형태로 시간을 벌겠다는 것 아닌가.

만약 그 와중에 군사적 급변사태나 외교, 경제, 금융 등에서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군통수권을 포함한 모든 주요 결정 권한은 법적으로 대통령한테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할건가? 이렇듯 소위 2선 후퇴가 제대로 된 법적 개념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문제는 지극히 크다. 헌법적 근거가 있는 퇴진의 방안들이 속도도 더 빠르고 그 실행의 방법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도 적으며 더 민주적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우리 경제와 금융은 대외 불확실성에 언제나 정면으로 노출되어있다. 국내 인구는 충격적인 감소세가 예정되어 있는데다 나라의 먹거리가 될 미래 성장동력조차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라면 초저성장을 넘은 마이너스성장이 기정사실이다. 연금, 지역균형, 부동산, 가계부채, 노동 등 국민경제의 모든 주요 부문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을 만성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해결 못한채로 쌓아오기만 한 그런 것들이 초저성장을 계기로 구체적으로 터져나올 것인데 이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향이 설정된 정책 집행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걸어온 오르막길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그것도 대단히 가파른 내리막길에 진입하고있다. 바로 내 주변 세대가 그런 숨막히는 시대와 처음으로 정면으로 부딪혀가며 살아가야한다.


그런 상황에서 계엄선포에 따른 전대미문의 정치적 위기까지 촉발되어 국정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리스크에 대응할 능력이 특히 현저하게 감소되어있다. 1분 1초가 아까운 이런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여당이 한갓된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이재명 판결까지, 혹은 심지어 2026년 5월까지 이런 식으로 하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제발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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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6일 금요일

이젠 실패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없다고 할 셈인가

- 계엄의 어설픔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또한 내란 옹호 세력의 프레임이다! -

우파 스피커들 중에서 아무리 그래도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너무 큰 잘못이 맞다고, 현재 촉발된 헌정위기의 중대성 앞에 우선 마음을 모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이러다가 이재명이 당선되면 어떡할 거냐, 안귀령이 뭘 잘못했다, 포고령상 법리적으로 국회 계엄해제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현 시점에 지엽적인 부분, 혹은 법리상 이미 전혀 문제가 없는 건데 커뮤에서나 뇌피셜로 굴러가는 떡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진짜로 간첩 잡는 줄 알았는데 뭣도 없어서 아쉬웠다,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했어야 되는데 어설프고 무능해서 실망이었다 등 핀트가 묘하게 나가 있거나,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바람에 근거한 지극히 위험한 얘기나 하는 등, 속편한 대가리 굴리기부터 들어간 청년 보수들도 정말 많이 보인다. 똑똑하고 쿨한 척은 다 해 왔으면서 정말 양심이 있는 건가?

경악하고 참담한 마음, 상황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 이전에 그런 지엽적인 떡밥부터 머리 속에서 굴러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헌정 위기의 중대성에 대한 감수성이 지극히 부족해 보이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직도 이 사람들은 계엄 금방 해제되고 실패했으니 내란범이라는 무서운 단어는 야당의 과장된 레토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듯하다. 성공한 쿠데타뿐 아니라 실패한 쿠데타도 처벌할수 없다는 얘기인가. 나야말로 과장된 레토릭을 그 누구보다 경계하고 정확한 개념을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이게 개념상 내란이 아니면 뭔가?

물론 계엄 사태의 심각성 자체는 이미 벌어져서 모두가 아는 상황이니까, 굳이 계속 이야기하지 않고 조금 다른 디테일을 더 얘기하는 건 좋다. 나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계엄 사태 자체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애써 입을 꾹 다물었으면서, 쿨병에 걸린 것처럼 자꾸 지엽적인 얘기만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람들의 글에서 그 정도 행간을 사람들이 못 파악할까? 실패했으니 별 문제 아니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축소하고 싶어하는 의도를 사람들이 못 읽어낼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셈이다.

보수정권이 국가를 대내외적으로 이렇게까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충격과 아쉬움은 이해하나, 그러면 더욱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정확한 비판을 하는 것에 집중할 때지, 그런식으로 본질과 말단이 전도된 사고방식에 지지자들이 휘둘리기 시작하면 보수세력은 더욱 더 다같이 망하게 된다.

쿠데타가 나름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것을 무능이라고 부른다면 그러한 무능은 차라리 다행인 거에 가깝고 (그것도 사실 국민들과 국회가 막아 주고 있었고 군 지휘관이랑 일선 군인들이 최후의 선을 안 넘어서 다행인거지... 순전히 주동세력이 무능해서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번 기습 계엄 사태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지극히 반헌법적이고 폭력적인 것이다. 주된 논의의 초점은 어설프다, 무능하다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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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4일 수요일

충격적인 12.3 비상계엄 사태: 의문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단 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른 것인지 실감조차 나지 않아서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해보고 있다.

지난 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국민들의 신속한 관심과 국회의 의결 등을 통해 인명피해 없이 몇시간 안에 해제되면서 일단 당장의 급박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하룻밤의 '해프닝'이라는 단어로 사태의 무게를 축소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해프닝이라는 말은 물론이고 '오판', '정치적 자폭행위'라는 보수언론들의 마지못한 비판적 언사마저,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말이다. 이번 일이 헌법에 얼마나 많은 위반사항이 있고, 흘러가기에 따라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 건인지를, 한치 앞도 알 수 없던 어젯밤의 감각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끊임없이 실감나게 상기하며 적극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당과 군에 대한 장악이 안된 채로 이런 사태를 벌인 것이 어차피 안될 일이었다는 식으로 '오판' 내지는 '정치적 자폭행위' 정도로 축소하려는 모습도 보수언론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정치적인 무력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써 서슬퍼런 1970-80년대에 사용되었던 수단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윤석열 자신이 정말 국회의 완전한 무력화와 전국민 기본권 통제까지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해는 전혀 안되지만) 나름의 경고성 조치 내지는 일종의 충격요법을 생각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엄연한 사실은 선관위가 장악되고, 여야 대표 체포조가 투입되고, 특히 국회에서 일반 시민과 무장 계엄군이 직접 대치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는 것이다. 해프닝이라기엔 이 모든 일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한 정도가 너무나 크다.

여기서 만약에 상황이 조금만 잘못되고,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대치 최일선에서 아주 조금의 돌발적 사태나 오판만 있었어도 사태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국가폭력 사태가 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이런 일을 한 번 벌인 이상, 집회 및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앞으로의 정국에서 박근혜 때와는 다른 굉장한 오판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아직 그 어떤 것도 해결된 건 없는 것이다. 이는 전혀 과도한 우려가 아니며, 이러한 위험에 국민들을 노출시킨 것 자체가 1970-80년대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행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외신들의 경악에는 이유가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그 요건 자체가 안 될 뿐만 아니라, 계엄은 초헌법적인 것이 아니므로 현행 헌법 및 계엄법상 계엄령이라고 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발효되었던 포고령의 내용과 군부대를 통해 국회 장악 시도를 한 것 등 계엄의 구체적 전개과정도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위반하고있다. 민주국가에서 사용될 수 있는 정상범위의 정치적 수단을 한참 넘어선 일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평가해야 한다.

대통령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성정을 가진 매우 특이한 인물이고 그러한 성정이 국민들에게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채로 당선되어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도대체 어떤 생각과 판단능력으로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수단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는 아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색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감옥 갈 수도 있는, 헌법 교과서를 다시 쓰이게 할법한 이런 일까지 할까.

당선 직후부터 여당 대표를 수차례 갈아치우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오로지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부적절하고 대결적인 대응으로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드는 특유의 정치행태를 통해 점점 더 고립을 자초한 형국이, 이러한 파국을 예견함과 동시에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조심스레 생각해볼 뿐이다.

충암고등학교 동문인 경호처장을 국방부장관에 임명했을 때부터 이미 이러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 등, 아직은 의문투성이인 이번 일의 정확한 경위와 전말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반복적인 고위공직자 탄핵발의와 예산안 비협조 또한 하나의 배경으로 자연스레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성숙한 민주국가라면,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이번 일을 대통령과 극소수 참모의 지극히 일탈적인, 기존의 정치 풍토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빠르게 평가를 정리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헌정사적 의미와 재발 방지 방안 등 보편적인 고찰이 가능한 점들 또한 부족함 없게 속속들이 논의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능히 같이 가져갈 수 있느냐가 우리나라 정치의 역량과 성숙도를 시험대에 오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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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실용음악 이론] 다이아토닉 코드, 모드 스케일, 대리코드 등 간단 정리

어느새 햇수로 3년째 기타 레슨을 받으면서, 이론적인 부분 중에 여지껏 가장 어렵지만 그래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이 바로 모드스케일이다. 사실 화성학에서는 기초에 해당하는 내용이겠지만 여지껏 코드 이름들과 코드의 진행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외워 왔던 내 입장에선 그것들이 통합되어 이해되는 좋은 경험이었다.

레슨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나도 정리해볼 겸, 내 나름대로 스케일을 찾아내고 이름을 이해하는 방법을 정리해본다. 아래 설명은 피아노 기준으로 검은 건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C키 (구성음: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을 기준으로 한다.

먼저 코드 톤은 특정 코드의 제일 기본적인 색깔을 정해주는 구성음들(1, 3, 5, 7)을 말하는데, 여기서 조금씩 다른 색깔을 부여하기 위해 그 사이의 음들(2, 4, 6)을 적당히 내리거나 올려서 스케일 및 코드를 만들게 되고 이를 텐션이라고 한다. 이렇게 텐션을 포함한 스케일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모드스케일 및 다이아토닉 코드이다.


먼저, 현재 키인 C키의 기본 스케일인 C major scale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와 구성음(=diatonic notes)이 같되 근음만 바꾼 일련의 스케일들을 생각하자.

예컨대 근음을 D로 바꾸면: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이를 D major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와 비교해 보면 3도, 7도 음이 반음씩 내려가 있다.

이렇게 3, 7도음이 내려간 것을 D 도리안(dorian) 스케일이라고 하고 (이건 그냥 이름이라 외우면 됨),

이는 C키와 구성음(=다이아토닉 노트)를 공유하는 모드 스케일의 하나이다.

한편 이 스케일에서 1 3 5 7도음인 레 파 라 도 를 취하면 D minor 7 코드 (Dm7)가 되는데, 이는 C키의 다이아토닉 코드의 하나이다. 이를 키에 무관하게 쓰기 위해 IIm7이라고 쓰면 (C키와 구성음이 같되, 2도음을 근음으로 바꾼 다이아토닉 코드니까 로마 숫자 II를 붙임), 키가 바뀌더라도 어떤 코드를 일컫는지 쉽게 찾을 있다.

다이아토닉 코드는 위에서 찾은 모드 스케일과 서로 어울리게끔 되어 있다. 애초에 코드 구성음이 모드스케일의 일부분이니까 어울리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C키라는 키가 역할을 하고 있는 덕분에 가능한 거라 꼭 당연하지만은 않다.

약간 헷갈리는 부분이, 모드 스케일은 D를 1도음으로 생각해서 이름이 'D' 도리안이고, 다이아토닉 코드 역시 이름이 'D' minor 7인데, 둘다 C키의 모드스케일이고 C키의 다이아토닉 코드라는 점이다. 여기서는 '구성음'이 vanilla한 C키의 구성음이라서 모두 C키에 어울리는 소리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덜 헷갈릴 수 있다.


여기서 잠깐, D minor code를 얘기했으니 D minor scale도 생각해보자. D minor scale은 레 미 파 솔 라 시b 도 로, D major scale에 비해 3, 6, 7도 음이 내려가 있다. 그러면 6도음이 D 도리안 스케일과 충돌하지 않는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코드와 스케일은 별개의 것이고, 모드스케일 관점에서는 D minor code는 이름이 비슷한 D minor scale보다 오히려 D 도리안 스케일과 더 자연스럽게 짝이 맞는 것이다. 물론 D minor scale에 있는, 내려간 6도음 (시b)도 C키의 Dm7 코드 연주 중에 적당하게 사용해줄 수는 있겠다.


하나만 더 굳이 자세히 해 본 다음에 나머지는 같은 원리로 일반적으로 정리하자.

C키와 구성음이 같고 근음이 E일 때: 미 파 솔 라 시 도 레 미

이를 E major (미 파# 솔# 라 시 도# 레#) 와 비교해 보면 2, 3, 6, 7번 음이 내려가 있다.

이를 E 프리지안(Phrygian) 스케일이라고 하며, C키의 모드 스케일 중 하나이다.

위 스케일의 1, 3, 5, 7음을 고르면 미 솔 시 레 인데, 이는 바로 Em7 코드 (키에 무관하게 쓰면 IIIm7) 로 역시 C키의 다이아토닉 코드의 하나이며, E 프리지안 스케일과 어울리게 되어 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다이아토닉 코드와 그에 대응되는 모드스케일, 그리고 (메이져 스케일에 비해) 바뀐 음을 정리해보자. 원리는 위와 완전히 같다.

  다이아토닉 코드  |      모드 스케일      |         바뀐 음        |    예: C키의 경우 구성음   |

         IM7                  아이오닉(Ionic)                 x                :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IIm7                  도리안(dorian)              b3, b7            :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레

        IIIm7              프리지안(Phrygian)    b2, b3, b6, b7      : 미 파 솔 라 시 도 레 미

        IVM7                 리디안(Lydian)                #4               : 파 솔 라 시 도 레 미 파

         V7           믹솔리디안(Myxolydian)           b7               : 솔 라 시 도 레 미 파 솔

       VIm7               에올리안(Aeolian)         b3, b6, b7         : 라 시 도 레 미 파 솔 라

     VIIm7b5            로크리안(Locrian)    b2, b3, b5, b6, b7  : 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여기서 일부 독자들은 알아챘다시피, A aeolian scale은 C major과 나란한조인 A minor scale와 구성음이 완전히 같다. 하지만 C major 키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 C major 키의 모드스케일인 A aeolian scale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코드들과의 조화를 쉽게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왜 중요한가? 바로 특정 키의 코드진행에서 가장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코드들이 바로 다이아토닉 코드들이고, 거기에 잘 어울리는 스케일이 모드스케일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잘 알려진 2, 5, 1 진행을 C키에서 다이아토닉 코드로 찾으면 Dm7, G7, CM7가 되는데, 이 진행을 연주해 보면 상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멜로디를 쉽게 얹어서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응되는 D 도리안 스케일, G 믹솔리디안 스케일, C 메이져 스케일이 잘 어울릴 것이다 (사실 이들의 구성음은 플랫이나 샵이 붙지 않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로 모두 같으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코드에 따른 근음과 스케일을 알고 있으면 진행에 따라 보다 더 스토리가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모두 다이아토닉 코드만 사용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며, 음악의 종류에 따라 수많은 코드진행들이 가능하다. 이 중 다이아토닉 코드를 기본으로 하되 조금씩 다른 코드를 써 줄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이 바로 대리코드 및 차용화음인데 이들은 이 포스팅의 범위를 넘는다.


반대로 코드 진행이 주어졌을 때 키를 찾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IM7 IIm7 IIIm7 IVM7 V7 Am7 Bm7b5

유튜브의 백킹 트랙에 있는 어떤 코드진행에서 m7코드가 나왔다면, 위 리스트에 따르면 그 코드의 근음은 키의 2도, 3도, 6도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3도는 잠깐 사용하는 것 말고 주되게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2도, 6도 중에 하나인데, 둘 중에 하나라고 가정했을 때 해당 코드진행에 등장하는 다른 코드들이 위 리스트의 다이아토닉 코드와 맞아야 한다. 이렇게만 해도, 키를 거의 추정할 수 있다.

- 끝 -




2024년 9월 9일 월요일

jtL - My Lecon: 과거의 커다란 인기와 다시 얻은 생명력

기아 타이거즈의 아웃송으로 요새 유명한 삐끼삐끼송은 Olive Beat의 Lecon Studios라는 트랙인데, 이 트랙은 H.O.T.가 해체하고 멤버 세 명이 뭉쳐서 만든 그룹 jtL의 곡인 'My Lecon' (2001년 발매)을 빨리감기 하고 삐끼삐끼 소리를 입혀서 믹스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My Lecon이라고 하는 원곡은 jtL 활동 중에 특별히 밀어준 곡은 아닌 것 같은데도, 인도네시아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어서 국민 히트곡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덧글들을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도 각종 행사에서 늘 들었다고, K팝인 줄은 이제야 알았다고 하는 식의 얘기가 많다.


원곡을 들어보면 단조풍의 멜로디에, 거만함과 폭력을 비판하는 가사까지 더해져 90년대 말-00년대 초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소 특이하게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댄스그룹뿐 아니라 마칭밴드에서도 단골로 커버하는 곡인데, 비트와 랩이 상당히 찰진데다,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지 않고, 곡의 흐름도 너무 단조롭지도 너무 복잡하지도 않고 꽤나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이 곡이 발매된지도 어느새 20년이 넘어가는데, Olive Beat의 버전이 틱톡 등의 매체에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끌고, 킹받는 아웃송으로 쓰이면서 다시금 알려진 과정은 상당히 극적이고 흥미롭다.

물론 아웃송에서 가장 부각되는 삐끼삐끼 부분이 원곡에는 딱히 없는 사운드라는 점에서 이 서사의 매력이 조금은 약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하는 인터넷 트렌드에서 점차 흔적이 사라져가던 곡이 믹스된 트랙의 배경 트랙으로 깔려서 다시 생명력을 얻고 잘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재조합을 통한 무제한적 확장이라는 매체이론적 관점으로 본다면 오히려 더 흥미롭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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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삶, 기록, 의미... 그리고 재조직화하는 흐름으로서의 인간

사람들 혹은 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의해 회고되는 위대하거나 소소한 성취들을 보면서, 매우 최근까지도 implicit하게 가지고 있던 어떤 사고방식이 있다. 대략 언어화해 보자면, 아무리 즐거운 기억, 아무리 훌륭한 성취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상실한다는 생각, 혹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훌륭하고 즐거운 사건들은 오직 기록되기 위해서 기획되고 전개되는 것일 거라는 정도의 생각이다.


몇 달 전에 내 사고방식의 그런 부분을 명시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마침 내 흘러간 과거의 개인 자료들을 보게 되는 등, 거의 동시에 일어난 몇 가지 우연한 계기 때문에 최근에 생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시간 눈금을 조금 길게 잡아서 보면 그런 기록물들과 현재의 우리와의 관계는 생각보다 금방 단절되는 감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며 어떤 활동을 함께한 기억은 그 사람들을 만나거나 상기할 때 거의 즉각적으로 호출될 수 있고, 심지어는 축적된 경험으로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면서 개인과 세계에 영향을 주는데, 이런 기억과 경험들이야말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원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억과 경험들 및 그 영향도 당연히 영속하지는 않고, 지속시간으로만 따지면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짧을 수 있다. 하지만 요지는 영속성이 아니라, 그 충만함의 정도와 양태가 많이 다르고, 둘 중에서 전자가 인간에게 있어서 '의미'라는 부분에 더 많이, 더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 않은가 하는 것.

위대하거나 소소한 성취들과 사건들의 경우에도, 그 기록이 아주 적거나 아주 많거나 상관없이, 현장에 참여하지 않은 채로 기록된 내용들만 보아서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비텍스트적인 면모들도 많다. 바로 그 공간, 바로 그 시간에 있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고, 심지어 바로 그 시공간에 있었더라도 거기에서 발생한 사건을 나의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와 사회성의 많은 부분을 열정적으로 쏟아부어서 충실하게 체험하고 의미화하지 않았다면 재현해내고 공유하고 집단적으로 향유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


인간 활동의 응집력은 그 활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흩어지면서 생각보다 금방 흩어지게 마련인데, 그 활동들이 의미가 되고 영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기록보다는 이런 식으로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의식적 기억,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경험들이 아닌가. 물론 나는 성향상 그런 참여에 충실하지 못하고 기록 위주로 생각하고 간접 경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을 굳이 돌아돌아 생각까지 해야 알 수 있는 거고.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꾸만 '저장', 그리고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두 키워드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전개되게 된다. 인간의 정신은 정보를 단순히 쌓아둘 수도 있지만 정보를 예쁘고 유용하게 처리하고 가공해서 흘려보내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마저 재조직화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어떤 형식인데 이러한 처리 능력이 그저 인간의 기능적인 부분에 그치는 대신 유희적이고 감상적인 부분, 인격을 형성하는 부분에까지 심원하게 닿아 있고 (물론 내용을 단순히 저장하는 기능도 정보처리에 따른 side effect로서 개인과 세계에게 매우 중요하긴 할테다), 그로 인해 위와 같은 일이 생기는 듯하다.

심지어 '저장'이 아닌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이러한 인간 역량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와중에 문명 전체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어떤 기능일 수도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그 무엇도 명시적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버려지더라도 그러한 내용들을 처리하고 재조직화하는 형식의 작동을 통해 그 형식 자체가 발전할 수 있으며, 그렇게 발전한 형식이 존재하는 한 그 모든 사라진 내용들, 혹은 발견되기 어렵게 가라앉아 있는 내용들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고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문명사적 차원에서도 유효한 것 같다. 너무 거창한 예시지만 언어들의 초기 역사 중에서는 절대로 알수 없게 돼버린 것들도 많을텐데 그 과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암튼 이게 나로서는 꽤 충격적인 생각의 전환이라 지난 6월쯤에 며칠간 실제로 멍함을 느낄 정도였는데, 그 며칠 동안 들었던 생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와 같이 글로 적을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명료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멍하던 상태는 이런 생각을 계속 상기해보더라도 다시 재생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별로 쾌적한 상태도 아니고, 이런 생각과 상관없이 그냥 컨디션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때 하필 왜 이런 생각이 들게 됐는지, 그러한 기분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너무 깊게 회고하거나 분석하려 들지 말고, 내 마인드도 이런 생각을 처리하면서 어떻게든 재조직화되었을 테니 그대로 놔두고 활용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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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9일 금요일

지중해의 휴양지, 코르시카 꺄흐제즈(Cargèse) 여름 학교에 가다!

여기에 와서 유럽 학생들이랑 어울리겠다고 처음으로 WhatsApp이랑 PayPal을 다 깔아봤다.
지금 참석 중인 Summer School은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에 있는 Cargèse라는 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교과서적 프랑스어 발음으로 말하자면 꺄흐제즈 정도일 텐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카르제스 정도로 부른다. 코르시카의 최대도시인 아작시오(Ajaccio)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산악지대 풍경을 보면서 굽이굽이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오면 도착한다.

여긴 통신이 잘 안 터질 때가 많고 에어컨이랑 찬 음료가 없어서 좀 지치긴 한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와 제로콜라가 그립다... 내가 있는곳은 숙소 겸 학회장소 (IESC, Institut d'Études Scientifiques de Cargèse) 인데,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정말 이 시설뿐이다. 손전등 들고 30분 정도 산길을 걸으면 상점과 식당이 있는 중심가가 있어서 저녁은 거기서 먹는다. 거기도 말이 중심가지 인구가 13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살면서 와 본 모든 곳 중 제일 외진 듯.

물론 멋진 점이 훨씬 많아서, 위와 같은 약간의 불편함들도 낭만으로 느껴진다. 밤이 되면 수많은 별들이랑 심지어 은하수까지 흐릿하게나마 보일 정도로 하늘이 깨끗하고 (12일 밤에는 페르세우스 유성우도 떨어진다고 해서 무척 기대 중이다), 이 일대에 말 그대로 우리밖에 없다 보니, 바닷가가 꽤 넓은데도 굉장히 프라이빗하고 깨끗하다. 엄청 오랜만에 사람들과 어울려서 해수욕 해 봤다. 그리고 빌리지가 멀다보니 아침 점심은 다 숙소에서 해결하는데 메인메뉴 작은 거 하나에 과일, 요거트, 빵 정도라서 뭔가 살 빠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더워서 숙소 창문은 활짝 열고 자는데, 바닷가 + 산골인데도 곤충이나 뱀이 안 들어오는 것도 신기하다. 섬 자체에 뱀은 좀 있긴 하지만 독사는 없다고 한다. 밤길에 보면 도마뱀이랑 박쥐는 있다.

그렇다면 왜 스쿨을 이 곳에서 하는가? 이 스쿨은 나도 무척 관심 많은 곳인 룩셈부르크 대학의 통계물리, 생물물리 그룹들에서 주최하는 것인데, 코르시카가 약간 유럽인들에게는 제주도 포지션이라 그쪽 교수님들이 휴양 겸해서 하려고 여기로 잡은 것 같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뿐만이 아니라 이 IESC라는 곳 자체가 1960년대에 출범해서 그때부터 이런 학회를 꾸준히 호스팅해온 근본있는 시설이라고 한다.

특히 이론물리학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Gerardus t'Hooft, 아직도 살아 계시고 작년인가에 한국이 주최하는 워크숍에서도 강연하심)가 이휘소 박사님의 강연을 듣고 영감을 받아 후일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을 이룬 게 다름이 아니라 여기 카르제스 스쿨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여기 시설에 뭔가 연혁이 써 있거나 흔적이 있거나 하지는 않던데, 그래도 그런 역사가 일어난 곳이라고 하니 반갑고 뜻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21일에 한국 돌아가자마자 삼척에서 invited talk 하는 게 있어서 맘 편히 있지는 못하고 그것도 틈틈이 준비 해야 되기는 하지만, 다시 오기 힘든 좋은 곳인만큼 스쿨 참여도, 휴양도 즐겁게 한 뒤에 귀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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