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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7일 월요일

강요되는 근본주의: 그들의 악의적 독해에 위축되지 말자

최연소 연예부장으로서 여러 연예인들에 대하여 비하성, 논란성 기사들을 써서 연예인 팬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김용호 기자는, 최근에 우파 싱크탱크를 자처하는 김세의, 강용석의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에 출연하면서 배우 정우성이 중졸이므로 변호사 연기를 못 한다는 등의 비하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정우성이 상당수의 진보적 국민들에게 모범적이라고 간주될 만한 사회참여적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에 관심 있는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김 기자가 이번에는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을 대표적인 좌파 감독이라며 자신의 채널에서 비난한 모양이다. 우파 진영은 파괴력 있는 컨텐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대로라면 '문화 전쟁'에서 패배할 것이라고 외치는 그의 위기감 넘치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페친 분들이 탁월하게 지적해주신 바 있다.

내가 언급하고 싶은 상대적으로 사소한 지점은 바로 김 기자의 봉준호 감독 비난에서 엿보이는, 좌파사상에 대한 특정한 악의적 독해법이다. 그는 봉준호 감독이 미국에 대해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어 왔으나(아마 <괴물>에서의 비판적 묘사 등을 염두한 것 같다), 정작 대표적인 미국 기업인 넷플릭스에서 투자를 받아 <옥자>를 만들었다며, 이것이 좌파들의 이중성이라며 비판한다.

그러나 현대의 영화라는 것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현대적 체제를 완벽히 벗어난 대안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의 한가운데에서 예술과 인간성을 외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영화라는 대중문화 장르의 저력 아니겠는가. 이것은 현실과 신념의 중간 어디쯤에서 신념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식의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신념을 실천하되 어떠한 방식으로 실천하는지와 관련된 '양태'의 문제이다.

즉 김 기자의 이러한 비난은 좌파사상에 대한 '근본주의적' 독해를 악의적으로 취함으로써 발생하는 잘못된 비난이다. 조금 확장해 보자면, 이것은 최근에 청년보수 진영과 극우개신교 진영 등에서 다수 생산되는, 좌파, 운동권 등을 비판하는(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칭하며 좌파세력과 동일시하는) 뉴미디어 컨텐츠들이 높은 비율로 공유하고 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다.

이들은 좌파라면 모름지기 갖추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그들이 알고 있는 전통적, 전형적인 좌파의 모습(주로 90년대까지 융성했으며 사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지하조직 중심으로 작동했던 '운동권')에 시대착오적으로 근거하여 자의적으로 설정하고, 그 요소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함과 동시에, 그 요소를 충분히 강력하게 취하지 않는 좌파에 대해서는 또 위선적, 이중적이라며, 혹은 이득에 따라 비일관적으로 행동한다며 비난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 신념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특정한 신념체계 전체를 문자 그대로 추종하며, 충돌하는 것들을 전적으로 거부해 버리는 것만이 진정한 실천이라고 여기는 '근본주의'의 거울상에 불과하다. 아마 극우진영에서 유달리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 중, 좌파진영에서 매우 강경한 목소리를 내다가 소련 붕괴 이후 전향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미제의 산물인 콜라를 먹지 말자고 할 정도의 강성 좌파였으나, 나중에는 박근혜 정권에서 어버이연합 등의 극우단체를 동원하여 관제데모를 주도한 허현준 청와대 행정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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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3일 목요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억: 서거 10주기를 맞으며

  10년 전 오늘의 기억을 회고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흔치않은 10의 배수인지라 오늘은 나도 그 집단기억에 두서없는 몇 자를 보태 보고자 한다.

  나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아침에 방에서 쉬고 있던 중 친구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문자를 받고 처음에는 그 친구의 짖궂은 거짓말이라는 식으로 생각했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으나, 매우 갑작스럽고 놀랍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그 친구가 재차 사실이라고 얘기해 주었고, 방에서 나가 봤더니 가족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가 참여정부 대통령인수위와 행정부에서 몇 년 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나는 노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으로 공연히 친밀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 정치를 잘 몰랐음에도 인터넷상에 대운하 등으로 이명박을 조롱하는 밈이 많았던지라 역으로 민주당계열 정부에 막연하게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별개의 얘기지만 당시에 극우매체 뉴데일리를 보고 충격받았던 게 내 지금의 성향에 많은 영향을 준 듯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도 그 사건이 상당히 충격으로 다가왔던 듯하다.

  노무현을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동안 '현재적'일 것으로 보이므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하여 학술적 객관성을 추구하는 조명작업은 아직 수월하지 않아 보인다. 증언과 일화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의 영역보다는 현실정치와의 연관 하에서 수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런 증언과 일화들은 정치를 떠나서도 역사적 기록으로서 틀림없이 소중하므로 끊임없이 찾아보고 기억하게 되는 면이 있다(다르지만 비슷하게, 얼마전에 박근혜정부 말기의 내부 상황을 옹호적, 동정적으로 기록하여 신동아에 실린 글도 어떤 점에서는 분명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청와대 내부의 기록들뿐 아니라, 국민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참여정부 시기의 각종 정책들이 어떻게 수립되고 수행되었는지, 또한 그러한 과정 중 소위 '노무현 정신'의 구현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이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어디인지 알아보고 싶기도 하다.

  말하자면 끝없이 길어질 테니 내 개인적 평가를 간추려 보자면, 말과 글을 도구로 하는 민주적 통치, 그리고 그것에 대한 공적 기록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실현하고자 한 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좋은 모습 중 하나였으며, 이는 말과 글에 있어서 무척이나 능했던 대통령 개인의 '스탯'에 상당부분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는 합리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늘 마음속으로 새기고 있지만 정작 '말을 잘 못한다'라는 컴플렉스가 아주 강한 내 입장에서 부러운(?) 점이기도 하다. 무엇을 하던지 언어적 표현을 갈고닦아 적시에 꺼낼 수 있는 능력은 높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는 다들 알다시피 순탄하다고 말하기 어려웠고, 보수언론을 필두로 한 소위 기득권층의 공격뿐 아니라 '약자'에 해당하는 계층의 대표세력과의 대립도 많았으며 그 과정에서 민주당 계열과 진보세력의 대립이 더욱 공고해지기도 했다. 노무현을 지지했으나 실망한 이들, 그리고 아주 복잡한 마음을 갖게 된 이들도 많다. 여담이지만 노무현이 비판했던 보수언론의 무서움을 나는 상당히 최근에야 체감할 수 있었다.

  참여정부 시기는 소위 '시민사회'가 활성화되었으며 글 쓰는 사람들끼리 상당히 생산적으로 싸웠던 시기이기도 한 것 같다. 물론 나의 직접적 경험이 아닌 기록을 통한 유추이지만,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논쟁과 사건들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독 참여정부 시기에 일어난 경우가 많았다(아마 인터넷이 발달했으나 소위 뉴미디어가 대중적으로 자리잡지 않은 기술적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글 쓰는 사람들 중심으로 자주 이야기된 '시민사회'는 그들의 의도나 자기인식과는 관계없이 엘리트적인 면이 없지 않았고 높은 수준의 정치성을 지속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다만 이것은 내 경험의 한계상 철저히 온라인공간 상에서의 파급력을 중심으로 한 편협한 평가일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결과적으로, 여러모로 '한국적 리버럴'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 민주주의와 인권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주장하며 시민들의 연대를 통한 문제 해결을 추구하지만, 혁명이 아닌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소위 '좌파'와는 어느정도의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확고하게 탄생하게 된 시기가 참여정부 시기가 아닌가 한다.

  과학기술과 관련해서도 양면적인 평가가 있을 것 같다. 컴퓨터에 상당히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가졌고, 인터넷의 잠재력을 인식했으며 대통령 재임시절 프로그래밍 능력을 바탕으로 이지원시스템 개발에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기술에 대한 관심이 있던(그리고 이것들을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결부짓고자 했던) 대통령이었으나, 과학정책에 있어서는 황우석 사건이라는 두고두고 회자될 '흑역사'격의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과학 연구 내용 그 자체를 정치의 영역과 과도하게 결부짓는 과정에서의 여러 오판이 단적으로 드러난 이 사건을 주도한 '황금박쥐'는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고 십수 년 후 문재인 정부에서까지 잊을 만하면 등장하곤 한다.

  결론짓자면, 노무현 개인이 여러 가지 면에서 가졌던 유능함은 매우 탄복할 만한 것이나, 대통령으로서 그의 정치적 한계 역시 오직 외적 여건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엔 여전히 새로운 것이었던) 대통령 선출의 민주적 정당성, 대통령 개인의 카리스마, 개혁론자들의 기대와 실망, 재임기간 내내 어려웠던 외적 여건 등은 아직까지도 정치에 관심 있는 사회구성원 상당수에게 트라우마라고 할 만한 기억이 되었으며 입체적 평가를 어렵게 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앞으로는 대통령의 훌륭했던 점이 보편적인 민주 정치의 가치와 결부되어 계승되어야 하고, 한계를 보였던 점은 솔직하게 조망하며 분석되어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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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22일 월요일

사이비단체의 뇌과학분야 침식, 오래된 현실이다

2005년도의 기사(사진1, 링크)를 보면, PET(양전자 단층촬영)의 세계 최초 발명자인 조장희 박사님도 이승헌이 거느리는 사이비집단의 행사에서 특별강연을 했으며, 개신교계열 합작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 설립에 깊게 관여한 박찬모 포스텍 전 총장도 축사를 했다. 특히 조장희 박사님의 경우는 2017년에도 이들 사이비집단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강연을 하는 등 꾸준히 이들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사진1: 조장희 박사, 박찬모 총장 등 학계 유력인사가 참여한 사이비집단의 행사.


그리고 놀랍게도 유명 뇌과학자인 IBS(기초과학연구원)의 신희섭 단장 역시 2006년에 이승헌과 함께 책을 냈고(사진2, 링크), 2018년에도 관련 인터뷰를 하는 등, 슬프지만 이 사이비집단과 연관이 있는 분으로 간주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미지: 사람 2명, 웃고 있음, 텍스트
사진2: 사이비집단의 수장인 이승헌이 유명 뇌과학자인 신희섭 박사(현 IBS 단장)와 공동저술한 책.


지난번에도 썼듯, 고려대, 서울대, 연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 각 대학의 뇌과학, 인지과학 연구소에서 후원하며 과학고 학생들도 많이 참여하는 '한국 뇌 캠프'(과거명 한국뇌과학올림피아드) 역시 매우 정상적인 내용의 대회이지만, 정작 '뇌교육'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명백한 사이비단체에서 후원하고 있다(사진3, 링크). 그리고 이 단체의 장은 서유헌 서울의대 명예교수이다.
(추가: 단순히 이름에 뇌교육이 들어가서 사이비라고 단정한 것이 아니다. 서교수님과 이승헌이 함께 검색되는 문서들이 매우 많고, 위키백과에 있는 서교수님 저술 목록에도 단월드 관련 내용이 많다. 이렇게 내용상 지극히 정상적인 행사까지 이승헌과 연관되어 있다는 정황이 있기에 오히려 더욱 주시해야 한다는 취지로 적은 것이다.)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사진3: 사이비집단이 주최 및 주관하는 한국 뇌 캠프(과거명 한국뇌과학올림피아드).


이렇게 한국 뇌과학계의 최고 권위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포섭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뇌과학분야 전체가 사이비집단에 침식될 수도 있다는 지난번 글(https://bit.ly/2Gq5A9Z)에서의 내 언급은 우려 정도가 아니라 이미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 단체는 앞에서는 실제 뇌과학 분야를 후원해서 정당성을 얻으면서, 뒤에서는 사이비 행사를 하는 식으로 과학과 유사과학의 경계를 흐리면서 영향력을 더욱 넓혀가고, 뇌과학 분야의 대중화에도 '물주' 역할을 지속하려고 할 것 같다. 돈이 걸려 있고 유명 과학자들까지 포섭되어 있는 문제이다 보니 결코 쉽진 않겠지만, 이 사이비단체를 과학계에서 몰아내려는 치열한 싸움이 필요할 것 같다. 이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뇌과학 분야를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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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8일 목요일

과학고에서의 기억, 그리고 단월드



뇌교육 등의 키워드를 내세운 단월드의 행사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후원을 받는 것이 드러나 충격을 자아내고 있다.

이승헌의 사이비단체 단월드는 그야말로 사회 곳곳에 '깃들어' 있으며,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는 것을 넘어서 이처럼 공적 영역까지 보란 듯이 침투해서 예산과 사회적 자원을 갉아먹기 시작한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그리고 그 외연도 명상, 상담, 교육, 뇌과학 등으로 지극히 다양하다.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고 대한민국 외교부에서 강연하기도 한 '임마뉴엘 페스트라이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가 단월드 계열의 사람임은 이미 이전에 밝힌 바 있다(https://bit.ly/2Pg582m). 아래의 포스터에서 두 번째 사진에 있는 '이만열'이 바로 페스트라이쉬 교수와 동일한 인물이다.



비단 이 행사뿐일 것 같은가? 사이언스 라이프의 원문에서는 '제대로 된' 뇌과학을 하는 분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고 있으며 나 역시 이에 매우 동의하긴 하지만, 과연 과학자의 눈이 아닌 행정과 법률의 관점에서 봤을 때 단월드를 '제대로 된' 뇌과학과 분리시킬 방법이 있을까? 어쩌면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충격적이게도, '제대로 된' 뇌과학 분야에도 단월드 계열의 단체가 이미 후원자 등의 자격으로 귀신같이 들어와 있다.

내가 과학고등학교 재학 시절 겪은 일 중 가장 쎄했던 일은, 4대강 사업을 노골적으로 옹호하는 연사가 강연을 온 일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모르고 지나갔던, 훨씬 더 문제적인 일이 있었음을 최근에서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생물 분야를 지망하는 과학고 친구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했던 뇌과학올림피아드라는 대회는, 적어도 그 내용상으로는 완전히 '제대로 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우연한 계기로 찾아본 결과, 그 대회의 홈페이지에서도 명백한 단월드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 대회는 여전히 과학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다, 단월드 계열이 아닌 실제 각 대학교 연구소들도 참여하고 있는 대회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이들이 그 외연을 어디까지 떨치고 있는지 아찔하기까지 하다.

약간의 비관적 상상을 곁들이자면, 이들이 뇌과학 분야의 후원자를 자임하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도미넌트한 역할을 하게 되어, 해당 분야에서 한국 학계의 위상이 실추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단순히 관념적인 차원에서 '비과학이 과학을 참칭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온 단월드라는 단체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여전히 남아 사회적 자원을 갉아먹고, 정상적인 단체들과의 구분을 흐리면서 사회 각계에 자연스럽게 진출해 있는 현재의 상황은 명백히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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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2일 금요일

[논문 소개] 복잡계 제어이론 관점에서의 뇌 연구들

Complex network에 대한 control theory 관점에서의 뇌 연구가 요새 종종 눈에 들어와서 흥미롭다. 오늘만 해도 페이스북 뉴스피드와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서 돌아다니는 논문 링크 두 개를 봤는데 키워드 때문에 처음에 언뜻 보고 똑같은 것인 줄 알았다.

그 중 하나는 UPenn에서 나온 리뷰논문(The physics of brain network structure, function, and control)인데 차근차근 읽어 보면 트렌드를 follow하는 데 대단히 도움이 될 것 같고, 다른 것은 KAIST 바뇌과에서 나온 논문(The Hidden Control Architecture of Complex Brain Network)으로, 분산되어 있으면서도 겹쳐 있는 뇌의 특수한 제어 구조 덕분에 제어의 강인성이 보장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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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적 쟁점에서 종교적 신념이 개입할 자리는 없다

  종교단체가 자신들의 교리를 어떤 사회적 변화 상황에 적용하여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자체는 매우 존중할 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들 내부적으로 그 문제에 대하여 입장을 정리하려 할 때에나 그렇다는 것이지, 낙태죄 폐지를 바라보는 지금의 천주교 교회와 같이 그 세속 사안에 직접 개입하여 절충안을 마련하겠다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헌재 판결 등의 공적 결정에서는 종교 단체의 특정 교리, 그리고 그것이 믿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특별히 고려되어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다. 그들이 어떤 결정의 당사집단이 되는 특수한 경우라면 그런 것이 간접적으로 고려될 수야 있겠으나, 당사집단이 아닌 사안에 대해 그들이 외부에서 '훈수'를 두는 형태라면 그런 개입의 정당성은 단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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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환영하며




  이 문제와 관련해서 그동안 여성들이 겪어온 어려움은 제도적인 측면 때문인 게 컸다고 생각한다. 제도적 문제로 인하여 여성들이 삶의 계획에 대한 응당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법적 책임까지 떠맡게 되었던 지금까지의 구조는 명백한 불합리이다(부조리와 불합리를 구분할 필요를 느껴 수정함). 이번 판결이 그런 불합리함을 대폭 해소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이자면, 지금까지 낙태죄라는 법조문을 바꾸는 차원의 문제가 지극히 중요한 쟁점이었다면, 앞으로 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뒤로는 보건 인프라와 그에 대한 사회적 접근성 등을 확충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떠오를 것 같다.


  이렇게, 헌법불합치 판결에도 불구하고 특정 세력으로부터 소극적 개정입법을 향한 압력은 지속될 것이므로 우리는 안심할 순 없으며,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도 그들만의 사안이 아니라 수많은 국민들이 관심 가질 만한 사안이다 보니, 조금은 더 대응이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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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8일 목요일

사회적 존재로서의 과학기술

  2018년 정부 예산안에 대한 환경운동연합의 의견서에서 양이원영 처장이 핵융합에 대해 남긴 코멘트가 그 실소를 자아내는 내용으로 인해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당사자인 양이원영 처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대응하면서 '핵융합 지지자'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일각에서 "과학기술은 지지/반대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말로 대응하곤 하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면 이 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1) '된다 / 안 된다'의 문제를 미리 말할 수 없고 일단 해 봐야 아는 것일진대(그것도 그 특정한 구현방식에 대해서만), 그것에 대해 실제로 (2) '해 보자 / 하지 말자'의 여부를 정하는 것이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일 테다. 적어도 후자의 차원에서는 과학기술을 지지/반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것은 아닐 수 있다. 양이원영 처장의 문제는, 가히 자연신론적이라 할 만한 비과학적 주장을 근거로 (1)의 차원에서 '안 된다'의 쪽을 부당하게 채택해 놓고, 그것을 근거로 (2)의 차원에서 '하지 말자'의 쪽을 채택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부당한 주장을 공문서에 수록하여 운동가로서의 공적 책임을 방기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내 페친이신 전명환 씨가 이전 글에서 댓글로 탁월하게 지적해 주셨듯(Facebook 게시글 링크), 과학 예산과 에너지 예산을 잘 구분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현재 단계의 핵융합 연구는 (우리의 머리 속에서) 분명 과학에 속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에너지기술 관련 예산으로 책정이 되어 있다면 에너지기술 관련 예산인 것이다. 원래 권력이라는 것이 다름 아니라 개념을 뒤틀어서 원하는 대로 만드는 것 아니겠나. 머리 속의 개념을 원하는 대로 사회 속에 구현하려면 어찌되었든 권력이 필요하다.

  지극히 정당한 주장을 하는 이공학도들을 자신의 진영에 해가 된다는 이유로 적폐 취급하는 행동은 매우 적폐스러우나, 그러한 행동에 대응하는 입장에서도 과학기술은 진공 속에 놓여 있다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구현되는 것임을 늘 염두하여야 할 것 같다. 양이원영 처장은 이러한 측면을 무척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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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3월 26일 화요일

집단에는 의식이 없다: 타자화의 징후

특정 집단에 대한 타자화의 징후 중 하나는, 그 집단 내에서도 서로 상호적으로 대립하는 다양한 견해와 갈등이 있다는 것이 무시되고 마치 그 집단 전체가 단일 인격체처럼 취급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집단에게는 모순을 일으키면서까지 이익을 좇는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 또한 이것은 집단을 부당하게 대표하는 어떠한 고정된 단일 상을 만들어서 소비하려는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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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의 무책임한 공적 판단을 규탄한다

핵융합 관련 예산 전액 삭감 의견을 주장하는 자료(아래 캡쳐. 출처는 Facebook '물리학과 무관합니다만,' 그룹 게시물)를 보고 경악했다가, 담당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끄덕끄덕했다. 나는 이것이 시스템을 원자론적으로(?) 들여다보지 않고 언어적인 차원에서 비약적으로 사유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며, 과학지식에 대한 접근성 부족 문제를 따지기 이전에 기본적인 논리학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미 예전부터 수 초 이상 핵융합 반응 유지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은 그렇다 치고, 설령 '전력 생산에 실용화 가능할 만큼' 핵융합을 유지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선해한다고 해도, 저 말이 "위대한 자연의 섭리를 어찌 한낱 인간이 재현해 내겠느냐"는 자연신론적 예언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시민참여가 확대되는 것, 정치적 목적으로 비전문가에게 권력을 주는 것 등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며, 국민을 냉소하고 불신해 버리는 과도한 전문가주의를 경계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직접적인 정책 결정과 연관되는 권력이 주어진다면 전문가들이 참여 의지를 잃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정치적 목적으로 상징성 있는 비전문가를 등용하는 것이, 그 사람과 얽히게 된 이해관계를 반영하거나 혹은 어떤 메시지로서 기능하는 면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 상징성으로만 기능하면서 정책 추진의 중심을 잡아 주거나, 혹은 휘하에서 생산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하거나 해야 할 텐데 이런 경우는 정말로 납득하기 힘들다.

심각한 악순환이다. 전문가들이 정치참여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진 문제도 있겠으나(그러다 보니 점점 코너에 몰리고, 결국 자유한국당과 함께하게 되어서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인 집단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과연 그 탓만 할 수 있을까? 이공계 인력 풀을 확보하려는 정부의 의지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캡쳐 상단 때문에 양이원영 씨가 어느 새 아예 산업부로 가 계시고 산업부에서 이런 자료를 생산한 것으로 보아서 경악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 자료는 환경운동연합 처장으로서 산업부에 전달한 자료인 것 같지만, 그래도 여전히 경악의 정도에는 차이가 없다. 이 단체는 공론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정부 부처와의 채널도 확보하고 있고, 무엇보다 이 문서는 예산안 평가에 대한 의견서로서 정부에 실제로 제출한 의견서이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 단체는 분명히 실제로 중요한 위치에서 권력(즉 공적 권위)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위의 논지는 전혀 훼손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