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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관람

 문화관에서 하는 음대 정기오페라를 보러 갔다 (기부자로 초청된 건 아니고 티켓 사서). 2년마다 하는 것이라는데 이번 공연은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였다.


오페라라고 해서 엄근진한 것이 아니라, 다소 통속적이면서 굉장히 개성있고 기이한 사랑이야기 세편을 엮었다. 내가 좋아하는 구성 방식이었는데 그게 뭐냐면, 한 낭만적인 인간, 혹은 이상한 인간이 남들은 겪지못할 경험들을 해왔고, 파국, 죽음, 꿈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 그걸 관통하면서 회고하고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 것. 진부한 표현이지만 낭만적 삶의 정수를 담아내기에 좋은 방식인듯하다.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 각 인물이 같은인물인지 다른인물인지, 실제인지 환상인지 등에 대해 답이 정해져있지 않고 해석이 열려있는 것 같았는데 맞게 독해했는지는 의문.

같이 간 연구실 동료의 말씀에 따르면 음악과 극본 정도만 정해져 있고 구체적인 연출과 해석은 자유도가 크다고 하니 그런것도 보는 재미가 있겠다.

연출도 연주도 다들 너무 잘하셨다. 그리고 음악극이지만 내 당초의 생각보다 가창뿐 아니라 '연기'의 비중도 무척 높았다. 연습을 많이 하셨을거 같고 엄청 보람있었을 것 같다.

1막이 끝난 뒤엔 인형도, 주정뱅이도, 비서도 각자의 웃긴 특징이 드러나면서도 어쨌든 노래를 '잘' 해야 하니까 그렇게 곡 쓰는게 어려울 것 같다고 얘기 나눴었는데, 아니나다를까 2막 처음에 바로 허를 찌르는 유머가 등장해서 재밌었다. 원작에도 있는지 이번 연출의 아이디어인지 궁금하다.

특히 내가 원래 바리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악역 바리톤분이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그리고 다 끝나고 사진찍는데 올림피아 역 배우분이 바로 앞에 지나가셔서 놀라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금요일에 기숙사 축제에서 노래 무대들도 봤었는데... 공연이란 걸 본 것이 코로나 이후 literally 처음인데, 운좋게 이틀연속 공연을 갔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공기였고 나도 공연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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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신해철과 서태지: 어떤 철지난 팬덤 갈라치기에 관하여

고재열 여행감독의 브런치 글(서태지보다 신해철이 좋았던 이유, 7주기 추모)은 제목에서부터 보이듯이 갈라치기(?)를 심하게 하고 있는데, 정작 신해철과 서태지는 애초에 친척관계기도 하고, 스키 여행, 음악 인터뷰 방송도 같이 하는 등 공사를 막론하고 무척 신뢰하는 선후배 관계였다. 마지막에는 김종서 이승환과 함께 (통칭 마태종승) 음악 작업도 같이 했지만 신해철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발매 및 합동공연은 안 하게 되기도 했다.


서태지가 전자음악을 록에 결합시키는 시도를 잘했지만 그런 서태지에게 미디를 가르쳐줬던 선구자적 인물이 바로 신해철인데 만약 서태지에 대해 글쓴이와 같은 생각을 가졌다면 좋은 관계를 어떻게 계속 유지했겠나.


서태지가 사회비판 '척'에 그쳤다는 대목에도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단순히 스타일과 인기, 음악 속 메시지에 의한 사회분위기 변화뿐 아니라 본인이 음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갈등을 겪어가며 실질적인 부조리 철폐와 제도개선을 얻어낸 실천적 성과도 많기 때문이다.


하여튼 단정적인 글도 매력이 있다지만 개인 견해 표명을 넘어 시대를 규정하고 타 뮤지션을 격하하는 과잉된 언사가 추모하는 글쓰기에 굳이 필요했을까. 둘 모두의 상당한 팬인 입장에서 이런 글에서 영양가를 찾기 힘들다. 서태지가 인기는 더 많았지만 신해철이 더 깊이있고 솔직하고 실천적이어서 좋았다는 비평 정도로 해 두었다면 둘 모두의 행보와 음악성향을 아는 입장에서 누가 이렇게 뭐라고 했겠나.


그동안 90년대가 서태지의 시대라고 속아 왔지만 알고보니 신해철의 시대였다는 본문의 '깨달음 서사'도 허위에 가깝거나, 혹은 잘 쳐줘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단평이 아닌 섬세한 논평들에서 도대체 누가 그렇게 속였으며 또 속아넘어갔는가. 정치 및 종교부문 등의 또다른 토픽에서도 여러번 언급했지만 이런 식으로 개인적인 '깨달음 서사'를 사회의 보편적 인식과 혼동하게끔 하는 것은 좋은 글쓰기가 아니며, 나아가 쓰는이 자신의 인식도 왜곡되게끔 한다.


2014년 하반기는 신해철과 서태지 둘 모두가 오랜만에 컴백한 시기였다. 상술했듯 이 둘은 이승환, 김종서와 함께 '나인티스 아이콘'을 4인 버전으로 공동 작업했고 음원까지 완성되어 있는 시점이었다. 그러다 신해철이 의료사고로 쓰러지고 상황이 심상치 않자 서태지는 슈퍼스타K6에서 회복을 기원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서태지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녹화하는 당일에 결국 신해철이 사망하게 되어 유희열과 함께 추모의 이야기도 나누고, 슬프지만 담담하게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영결식의 추도사도 서태지가 낭독했다. 둘 모두 이러한 방식의 기억을 원하지는 않았을테다.


과잉된 재단의 언사로 점철된 공연한 서열화보다는 신해철의 행보와 대중적으로 덜 알려진 명곡들을 한 번 더 소개하는 게 더 좋은 기억의 방식일테다. 철기군에 걸맞잖은 뱀의 혀로 어찌 마왕을 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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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일부 매체출연 의사들의 끊이지 않는 '랜선진단', 직업윤리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원희룡후보 설전 영상을 봤는데 수십초 이상 보기가 힘들었다. 감정이 격해진 상황도 그렇지만 내용상으로도 무리한 이야기여서 그렇다.


쟁점이랄 것도 없이 문제는 사실 간단하다. 진료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는데 어떻게 진단이라는게 나오나. 직업윤리상 그런식의 소견(?)을 말하면 안되는 이유도, '맞는 말이지만 하면 안된다'라기보다는 진료행위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틀린 말이므로 하면 안된다'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 차이가 굉장히 명쾌한데 의외로 많이들 흐리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징계를 감수하겠다며 마치 떳떳한 폭로라도 한 것인양 말하는 태도는 적반하장 격이다. 오히려 잘못을 했으니 사과를 해야 하는 입장인데 말이다. 그러면서 '허위사실'이라는 이재명 측 패널의 워딩에 강하게 불만을 드러내는데... 그러면 진료를 원하지도 진료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소시오패스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와 같은 진단명을 말하는 것이 굳이 따지자면 당연히 허위사실에 가깝지, 그러면 진실에 가까운가?


직업윤리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구나 싶다. 조국사태 때부터 해서 직업윤리라는 게 땅에 떨어져 있다는 건 이미 느끼고 있었지만 다시한번 확인하게 해주셔서 고맙다. 지키면 바보되는 세상이 아니라 안 지키면 손해보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한국 정치에서 굽히지 않는 태도, 아내를 지키려는 발언들을 보면 자동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을것이다. 원희룡 후보의 이번 설전은 합리적인 내용을 극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비합리적인 옹호를 고집스럽게 이어나가는 것이라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그것과 무척 대조되었다.


후보의 태도가 이렇다 보니 세간의 여론도 혼란스럽다.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그런 진단(?)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그냥 흐지부지 시키는게 최선이었을텐데, 이재명이 소시오패스다 라는 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 공허한 기의의 불씨를 어떻게든 살려서 끌고 가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여러 방식의 무리한 옹호가 난무하게 되었다.


물론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경우, 과격한 과거 트윗들에서도 드러나듯이 누군가를 무척 쉽게 적으로 돌리고 공격하는 (그리고 심지어 그것에 무척 능한) 타입인지라 여러 부문에 많은 풍파가 있을 듯하여 걱정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이미 고지에 오르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독선으로 치닫는걸 효과적으로 방지할 장치 자체가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 건 아닌 거고...


제대로 된 수많은 비판과 우려가 충분히 가능한만큼, 그 잘못 나온 말(실제로 강윤형 박사의 문제의 인터뷰 클립을 보면, 일단 말을 꺼내기는 했지만 다소 곤혹스러워하는 기색이다)을 어떻게든 옹호하려고 하지 말고 빠르게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는 것이 더 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희룡 후보가 무리하게 설전을 벌임으로써 이 국면이 더 국민들 기억에 각인되고 오래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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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윤석열 예비후보의 릴레이 망언

윤석열 예비후보는 국민의힘 입당 전후로 거의 전방위적인 1일 1망언 중.... 120시간 노동, 대구 아니었으면 민란, 아프리카 손발노동, 여자들이 점도 보고 한다, 인문학은 병행 가능, 그리고 전두환 발언까지. 맥락을 지워서 그렇다고 하는데 대부분 맥락을 포함시켜도 취지 및 그 기저에 깔린 인식이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발언들이 반복되는 걸 보니 전략이라기보다는 측근들도 곤혹스러워할 만큼 실제 본인의 확고한 평소 생각에 의해 나오는 것들인 듯하다. 문제되는 발언들이 잘 보면 그것들끼리 또 나름의 일관적인 결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즉 실언이라기보다는 망언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아래의 몇가지 대목을 비롯한 내 기존 평가를 크게 수정하진 않아도 되겠다. 각종 사회이슈에 대한 인식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부족하긴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각종 망언들에 더해서, 평소의 발언태도도 정치동료들이나 유권자들을 겁박하는, 그러면서도 카리스마 있다기보다는 어쩐지 답답한 느낌이 있다. 파란만장하고 범상치 않은 인생사임은 틀림없으나 예비 정치인으로서는 국민들을 감동시킬만한 강직하고 멋있는 이미지와는 많이 멀게 된듯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지지는 굳건한데, 대안이 없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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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글(링크)에서 발췌)
"말하자면 본인의 사상이 없는 소위 '정치 괴물' 타입은 아니고 오히려 독서와 토론을 통해 확고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타입에 가깝다는것. 이는 윤 총장에 대한 오랜 지인들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만약 직업정치를 한다면 정치관 전반이 상식적인지, 개별 이슈에 대한 입장이 어떤지, 직업정치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관철할 역량이 있는지 등에 대한 검증은 되어있지 않고 이는 상징으로서 받는 막연한 지지에 불과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일반 국민들뿐 아니라 정치인들부터가 무척 궁금해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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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송영길 대표의 정권교체 말장난: 의미의 희석을 경계하며

[기사 (머니투데이)] '정권교체' 여론 절반 넘자... "이재명 돼도 새 정권, 정권교체"


신선한 관점이긴 한데, 이 말대로면 대통령이 무단으로, 혹은 임기중 개헌해서 재집권하지 않는 한 정권교체 아닌게 없게 된다. 민주당 내에서 이 발언이 해석되기에 따라 결집을 방해할수 있으므로 당대표로서 부적절한 발언임은 또 논외로 하고 말이다.


물론 '정권교체'라는 단어 자체가 막 헌법에 명시된 것까지는 아니고 정치학적 개념 내지는 언론에서 사용하는 용어 같은 거라, 결국 정의하기 나름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해버리면 여당이 바뀌는걸 뜻하는 통상의 용례와 매우 다를뿐더러, 무엇보다 상술했듯이 정권교체 아닌게 없게 되므로 대통령단임제 민주주의가 정착한 상황에서 전혀 의미가 없는 개념이 돼버린다.


의미가 없는 개념이란 정확히 말하면 브랜딩, 내지는 레토릭 같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결국 어떤 의도가 있는 재개념화라기보다는 그냥 좋게말하면 레토릭이고 나쁘게 말하면 말장난인데, 물론 그냥 넘어갈수도 있는거지만 이런거에 대해선 정치인들이 이런식으로 안했으면 한다. 왜냐하면 법치가 교묘하게 흐려지고 민주주의가 실제로 위협받을 때에도 다들 이런식의 말장난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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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곱근풀이에 대하여

 학생 때 공부하던 기억을 되새겨보면, 아버지는 '제곱근풀이' (루트2 같은 걸 시행착오 거치지 않고 손으로 절차적으로 구하는 방법) 를 알고 계시고 나에게도 중학교 때 심심풀이 느낌으로 가르쳐 주셨었다.


그러나 정작 정규 교육과정에서나 사교육에서나 그것을 배운 적은 없는데, 실제로 제곱근풀이는 현재 교육과정에서는 다루지 않도록 명시되어 있다고 한다 [1]. 제곱근풀이가 교육과정에 있다가 언젠가부터 빠진 것인지, 아니면 교육과정에는 처음부터 없었고 아버지가 따로 (혹은 교육과정 표준화가 덜 되어서) 배우신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직접 계산해 보면 루트2가 진짜로 1.414213...으로 나오는 게 확인되니까 무척 재미있긴 한데, 자릿수를 하나하나 얻는 것이 은근히 오래 걸리는지라, 정말로 아무리 많이 해도 순환마디가 없겠구나 하는 확신은 사실 잘 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리수 또한 (적어도 어떤 것들은) 임의의 자릿수까지 절차적으로 구해낼 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에 과도한 신비감(?)이 줄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제곱근풀이를 왜 다루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계산이 되기는 하지만 그 원리를 해설하기가 까다로워서 교육과정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해 본다. 근호를 포함한 표현을 갖는 두 수의 대소 비교 등에서도, 제곱근풀이를 알고 있다면 근삿값을 이용한 '편한' 풀이법을 떠올리게 될 수가 있는데 이것은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


일부는 제곱근풀이가 교육에서 활용될 가능성을 비교적 긍정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박윤희, 박달원, 정인철 (2004) 는 학습자들이 무리수에 대해 '근호를 써서 나타내는 수' 따위의 오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보고한다. 해당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학습자들이 제곱근 풀이법, 혹은 계산기 사용을 통해 직접 제곱근 계산을 해 봄으로써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임을 체감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두 가지 방법 모두 결국 어떤 정수의 제곱근을 취하는 방식이므로,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는 그러한 방식으로만 얻어진다는 오개념을 가질 위험도 있어 보인다 (물론 추측이다). 특히 계산기 사용이 아닌 제곱근 풀이법의 경우, 상술한 것처럼 제곱근풀이를 직접 해 볼 때 순환하지 않는 무한소수라는 확신이 드는지 여부도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위 교육과정에서 제곱근풀이 혹은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 무리수의 근삿값을 구할 일은 없다시피한데, 오직 순환마디가 없음을 체감하고자 그 원리도 까다로운 제곱근풀이를 학습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이 제안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이미 학습하였을 원주율 역시 무리수라는 것을 강조하는 방법 등이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제곱근풀이는 알아두면 나름 재미있고, 무리수 역시 적어도 어떤 것들은 임의의 자릿수까지 절차적으로 구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감각은 전형적인 '수학적' 사고력과는 다소 결이 다른 것 같다. 또한 위에 쓴 여러 이유로 실익이 크지 않고 응용 문제풀이 시에 사용해 본 적도 딱히 없는 듯하다. 따라서 교육과정에서 다루기 애매한 건 사실인듯하며, 꼭 없어도 된다는데 동의한다. 실제로는 어떤 이유로 빠지게 되었는지 (혹은 원래부터 없었는지) 그 경위가 궁금해진다.


[1] 박윤희, 박달원, 정인철. "중학교 수학에서 무리수 개념에 관한 학습자의 이해 연구." 한국학교수학회논문집 제 7 권 제 2 호 (2004): 9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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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묘한 매력의 한국자유총연맹 건물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야외의 이미지일 수 있음

한국자유총연맹이 쓰는 건물은 엄청 견고하고 위압적이어 보인다. 밑으로 갈수록 두꺼워지는 저 곡선 때문인 거 같은데 딱 봐도 안보시설 내지는 이데올로기적 건축물 같다. 튼튼한 댐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쪽과 달리 반대쪽 파사드는 좌부터 우까지 전체가 위로 말려올라가는 지붕으로 되어있는데, 르코르뷔지에가 계획한 인도 찬디가르 국회의사당과의 유사성이 지적된다고 한다.

건물 자체의 이름은 자유센터이고 김수근 설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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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산울림 음악 예찬

말 신기한 밴드 중 하나는 김창완님으로 대표되는 산울림이다. 신나거나 잔잔해서 무난하게 널리 불리는 곡들뿐 아니라, '산할아버지', '개구장이' 등 동요 느낌의 곡들도 많고,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처럼 난해하거나 사이키델릭한 곡들도 많다.


특히 제목부터 왠지 비범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는 정말 넘버원 명곡같음. 유명한 베이스리프가 쭉 깔리면서 신나는 분위기를 한창 형성하다가, 퍼지한 기타가 들어오면서부터 뭔가 서늘한 느낌이 확 든다. 러브크래프트 식으로 비유하자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불온한 먹구름 사이에서 들려오는 천 개의 나팔 소리와도 같달까... (그게 뭔데 이자식아)


하여간 내가 아는 한에서 이런 분위기로는 버줌의 Til hel og tilbake igjen이라는 곡이 제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 꽤 먹고 나서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에서 이런 포인트를 재발견하고는 등잔밑이 어두웠구나 싶었음.


잠비나이가 함께한 최근의 리메이크 버전도 완성도는 굉장히 높고 국악이 잘 어울려서 무척 좋은데, 원곡 특유의 그 압도적인 느낌은 덜 나긴 하는 것 같다.


더 놀라운 것은 각 곡들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 봤다는 걸 넘어서, 그것들을 관통하는 산울림만의 일관된 색채가 있음을 누구라도 발견할수 있다는 점. 복잡한 고급의 화성보다는 직선적이고 동요스러운 구성요소들 위주임에도 그걸 전형적이지 않게 사용해서 엄청 특이한 느낌이 난달까. 단순히 옛날 음원이라서, 혹은 연주가 다소 서툴러서 그런 것은 단연코 아닌거같다.


특히 3집까지의 곡들은 어릴때부터 놀이하듯이 악기들 둥당거리면서 100% 형제들끼리 만든 거라는데, 믿기지 않으면서도 너무 독특하다보니 믿긴다(?).


김창완 아저씨는 인물 자체라던가 퍼포먼스도 너무 독특하신듯. 덤덤하게 직선적으로 읊조리듯이 부르는데도 표정같은게 감정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고... 그러면서도 어떨 때는 되게 차가워 보이고 (그래서 드라마에서 악역 연기도 잘함). 언젠가 음악 관련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문적인 대담 하는 티비프로를 봤는데 굉장히 지적이시기도 함. 보고나서 무슨 프로인지 찾아봤었는데 아예 못찾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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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 간단한 시청 후기

인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연휴동안 봤다. 사실 흥행에 따른 의무감(?)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매력있고 스무스하게 쭉 보게되는듯. 캐스팅이랑 연기도 좋았고 장면 연출도 돈 많이 들였겠다 싶게 세련되어 있었다. 다 보고나서 자세히 찾아봤는데 흥행도 그냥 흥행이 아니라 무슨 전례없는 수준의 흥행이더라.


이런 장르에서 작품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처한 삶의 어떤 모순적인 순간들에서 오는 막막함/암담함의 내용적 깊이와, 그걸 담아내는 게임의 형식면에서의 자극성이 균형있게 조응해야 한다고 본다. 오징어게임은 어느 한쪽도 과하지 않고 밸런스있게 구성된 듯하다.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이지만 의미있고 매력적인 인물들이어서 드라마적으로도 괜찮았다. 또한 게임 상황 및 묘사 자체도 과하게 악취미적이지 않고,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다같이 얘기해 볼 수 있는 정도인것 같았다. 이런 게 흥행 요인들이었을 듯하다.


그리고 군상극(?) 속에서 서로의 서사가 얽히는건 극중에선 우연이지만 제작진 입장에서는 필연일것이며 그 엮임구조를 어떻게 안 어색하게 하느냐에서 비평적 설득력이 나오는데, 그런 면에서도 대다수 작품들보다 덜 어색하게 잘 구성이 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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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맥락에 어긋나는 나무위키의 페미니즘 비판 서술들

나무위키 돌아다니다 보면 페미니즘과 관련해서 이런 식의 서술이 되어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맥락상 불필요하거나 어색한데도 불구하고 페미니즘을 강하게 비판하는 예시를 삽입해두는것.

여기서도 그냥 인구가 앞으로 더 급격히 줄어든다고 하면 충분한 내용인데 굳이 페미니즘으로 원인을 단정짓는 서술이 존재할 필요가 하나도 없지않나.

나무위키 자체가 다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다 보니 글의 완결성은 애초에 기대하지 않지만, 이런 서술이 불특정 다수 문서에 등장하고 딱히 수정도 안될 정도라는건 남성위주 인터넷공간들의 문화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반감은 조심스럽거나 논쟁적이지조차 않은 디폴트가 되어버렸고, 소위 젠더갈등(?)이 갈데까지 갔다는게 아닌가 싶어 다른의미로 유감스러운 심정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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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7일 목요일

aespa 미니앨범 [Savage] 단평

에스파 미니앨범 처음엔 소리가 비어있다고 느껴지고 잘 와닿지가 않았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일관성있는 반주 위에 보컬이 깔리는게 아니라 보컬이 기본적으로 곡을 끌고가는데 전환이 잦고, 거기에 비교적 간단한 반주가 시시각각 다르게 밀접하게 결합하는 느낌 때문에 그런듯하다. 꼭 에스파에게서만 나타나는게 아니라 요즘 케이팝 댄스곡들 메타가 좀 그런것 같긴 하더라.


암튼 계속 들어보니 곡이 좀 귀에 익게 되었고, 제일 맘에 드는 두 트랙은 'Savage'와 'YEPPI YEPPI'다. 'Next Level'에서도 그랬지만 위에서 말한 점 덕분에, 비트를 정직하게 쓰면 진부해질수 있는 부분들도 정형적이지 않게 해놔서 트랙들이 힙하게 뽑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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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4일 월요일

불닭: 불닭볶음면의 잊혀진 기원

센세이셔널하게 매운 불닭이라는 요리가 10-15년 전쯤에 상당히 유행을 탔고 그 느낌으로 인스턴트 면요리를 만든게 불닭볶음면인 것인데... 물론 지금은 인지도가 역전된지 한참이다. 나보다 약간 아래 나잇대에는 불닭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아서 이 이야기를 하면 신기해하곤 한다. 꽤 크게 유행했었는데 격세지감이다.


난 불닭 자체는 안먹어본거 같고 불닭 스타일의 소스를 쓴 매운치킨을 시켜먹어본 기억이 있다 (근데 생각해보면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많이 매운건 그리 즐기진 않는다. 불닭 이후로도 아주 매운 음식의 유행 계보가 꾸준히 있어온 걸로 아는데 아예 대표로 정착해버린 불닭볶음면을 제외하면 그것들 중 하나는 2010년대 중반쯤까지 유행했던 치즈등갈비고, 지금은 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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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2일 토요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기대하며: 메타적으로 감행되는 미학적 실험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 대한 각종 루머(루머라고 해두자ㅎㅎ)들이 나오는 이 시점에 약간 엮어볼 수 있는 글을 공유해본다(https://www.facebook.com/yongjae.oh/posts/1143266179098419. 시공의 폭풍: 서사성의 붕괴와 탈맥락적 조합). 사실 반 장난식으로 썼지만 마음에 드는 글이라서 꺼리가 있을 때마다 다시 올리는 것이다.


원래의 글에서 간과된 점을 덧붙이자면, 기원 내지는 현재의 담지자를 서로 달리하는 문화적 상징들이 마음껏 조합되기 위해서는 현실에서의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얼만큼 정설인지는 모르겠으나 단군 신화의 내용을 현실에서 일어난 곰 세력과 호랑이 세력의 관계에 대한 은유일 것이라고 해설하곤 하던데, 이 역시 그 전형적 사례일 것이다.

마블의 MCU에서 어벤져스 시리즈를 중심으로 하여 인피니티 사가라는 거대한 기획이 성공하면서 나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강한 흥미를 느꼈다. 히어로들의 서사와 비중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서는 책임자의 결정도 있었겠지만, 각자의 취향을 가진 기획자들이 토론하며 수많은 조정을 거쳤을 것이다. MCU 영화 속 수퍼히어로들 간의 파워 밸런스 및 인간관계와, 그들을 창작하는 스튜디오 직원들 사이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으며 서로가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들의 관계'를 이룬다. 말하자면 다층 연결망(multiplex network)인 것이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에서는 어떤가. 일단 루머의 내용들을 차치하고서라도 현재 소니에 속해 있는 스파이더맨이 MCU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이전에 애초에 원래 마블 캐릭터인데 소니가 가지고 있게 된 것 자체가 '무대 뒤'에서의 숱한 이해관계 조정의 산물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하물며 이번에 나오는 출연 루머들이 사실일 경우 이벤트성 출연이건 보다 본격적인 세계관 통합이건간에 무척이나 깊은 수준의 줄다리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현실에서 각 주체들이 성공을 거두어왔느냐 아니냐에 따른 발언권의 차이가 여기에 동적으로 개입해왔음도 명백하다.

전작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에서는 극중 빌런이 주인공을 비롯한 히어로진영을 속임에 따라 영화 제작진도 관객들을 속이게 되는 '이중의 속임 구조'를 통해, 사실적 가상에의 immersive한 경험을 의도하는 영화 제작행위의 본성을 빌런의 서사에 그대로 이식하여 유쾌하면서도 소름돋게 풀어내었다. 이어서 후속작인 본작에서는 현대 영화가 가지는 대중문화 산업으로서의 특성이 인물과 서사에 직접 (그리고 필연적으로) 반영됨으로써, 과거작들에 찬사를 보내며 관객들의 열광을 이끌어낸다. 일종의 미학적 실험이 전작에 이어서 재차 감행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현대 대중문화에서 대상들의 질적인 차이가 지워지고 무한히 재조합되는 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가 형성되는 것은 (한국의 야인시대 혹은 영미권의 Bully Maguire를 필두로 한 '합성' 문화에서 보듯이) 불특정 다수 대중들의 유희 본위의 협력으로 가능해지는 점이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 유희를 넘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은 또다른 국면, 어쩌면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국면을 요한다.

하필 상술한 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의 대표사례인 Bully Maguire 밈 역시 토비 맥과이어가 출연한 오리지널 스파이더맨 트릴로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무척 인기있는 시리즈기에 대중적 밈의 소재도 되며 실제 산업적 콜라보레이션도 가능한 것임을 감안하면 이는 그저 '하필'이 아닐지도 모른다. 루머들이 사실이라면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해당 밈의 소스를 제공한 소수의 당사자들이 직접 제작하는 '합성물 중의 합성물', '합성물 아닌 합성물'로서의 유일무이한 성격을 가지며, 밈에 대한 찬사를 보냄과 동시에 진본의 아우라를 귀환시킬 전망이다.

이것은 오직 현대화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며 디지털을 추동하는 리얼월드의 특수한 협력의 조건 속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해진다. 권리의 아나키 상태에서라면 특수한 협력이 없어도 무한한 재조합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는 서로 다른 것들을 불화 없이 엮어낼 힘을 가진 현대적 주체가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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