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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A Road to 'Science of Semantics' (의미의 과학 및 의미 엔지니어링의 가능성)

이건 그야말로 잘 모르면서 하는 순전한 상상이기는 한데, 최근 머신러닝 분야의 발전과 발맞추어서, 그런 머신들이나 우리들의 두뇌 속에 '의미'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것을 어떻게 엔지니어링할지에 대한 학문 분야가 발달하게 된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듯하다.


부전공에서 '기호학'이라는 키워드를 알게 되어서 이래저래 찾아봤던 바로는, 특히 철학 쪽에서 이런방향을 지향하며 지적 고속도로를 깔아 두는 탐구들이 예전부터 이미 활발히 있어 왔기는 하며, 이들은 과학기술과의 협력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다. 그런데 최근에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가 지능시스템을 어떻게 '뜯어봐야' 할지에 대한 효과적인 개념적 틀이 점점 생겨나고 있으니, 계기만 있다면 이러한 분야가 훨씬 더 폭발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한다. 이공계 쪽에서는 내가 종종 언급하는 스탠포드의 Surya Ganguli 그룹이 어느 정도 이런 걸 지향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수량화된 기호학이라고 불릴만한 이러한 '의미 엔지니어링' 분야가 더욱 발달하게 된다면 계산신경과학과 인문학 최전선의 협력이 될것이며, 이러한 분야는 분명히 '공학'인데도 불구하고 상징과 직관의 찬란한 언어가 오가는 독특한 색채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의미 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와 그 가능성은 다름아닌 영화 《인셉션》을 보고 나서부터 내 머리속 한곳에 늘 자리잡고 있던 것인데... 최근의 발전들을 보다 보니 이것이 그저 SF적인 상상이 아니며, 내 생애 안에 그런 비슷한 건 충분히 가능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만큼 그 존재를 신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면이나 자각몽 같은 각종 비일상적 정신상태도, 결국은 휴리스틱하게 해왔던 일종의 정신 엔지니어링이 아닌가.


좀 다른얘기일지 모르지만 자연어처리 쪽에서 GPT-3으로 대표되는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들도, 단지 그럴듯한 말을 적당히 흉내내는걸 넘어서 상당 수준의 reasoning 즉 논리적 기능이 자연스레 창발한다는게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이라면 그런 기계들도 어느 정도 논리성, 합리성을 갖추고 결이 맞는 언어생성기제를 내적으로 갖출 수 있다는 것인데 (그리고 그 능력의 유무는 '정도의 문제'가 될수 있다는 것인데), 그 속에서 각 단어들의 의미가 어떻게 인코딩되고 인출되는지를 뜯어보고 실제 생물체와 비교할수 있다면 재밌을 것이다. 특히 실제 생물체들은 의미의 추상적 부호화가 시청각적 직관과 막 뒤섞여 있을거 같은데 반해서, 자연어처리 기계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최근의 거대 언어 모델까지 가지 않고, 머신러닝 붐 초창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했던 word2vec 같은 임베딩만 봐도 의미의 수량적 분석 가능성은 예고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어들을 벡터공간 속 좌표로 임베딩했을 때, 예컨대 king에서 male을 빼고 female을 더했더니 queen이 나오더라 이런 것 말이다. 물론 실제 의미부호들의 존재방식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초등적인 부호화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리고 추상적인 의미들일수록 뇌 속의 네트워크에 보다 '분산적으로' 저장되어있을 듯한데, 그런걸 뜯어보면서 identify하고 사람마다 비교하려다 보면 지난 20년간 인터넷의 연결망 구조 분석 등으로부터 발전해온 '복잡계 과학' 및 네트워크 사이언스가 다시 한 번 크게 주목받을 수 있어 보인다.


다른 한쪽 극단으로 가 보자면 생명이나 안전에 관련있다던지 해서 좀더 본능에 가까운 대상들의 의미론은, 보편적인 의미 저장/인출 망으로서의 뇌에 소프트웨어적으로 올려진 것이 아니라 보다 낮은 레벨에 있는 '전용' 뇌 부위에 따로 저장돼있는게 아닐까 상상도 해본다. 특히 평소에 사람들의 언어생활 (그리고 언어생활에 발생하는 전형적인 결함의 패턴들) 을 보다보면 욕설이나 성적인 단어 같은 건 일반적인 단어들과 좀 다른방식으로 저장되고 인출되는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전술했듯이 이런 건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하는 상상이고... 또한 위에서는 언어 위주로 썼지만 의미라는 게 꼭 순전히 언어적인 것일 필요도 없고 비언어적인 시청각적 archetype들과도 막 섞여 있을 것 같고. 아무튼 앞서나가는 분들에 의해 이미 제대로 된 판이 깔려있을 것 같긴 하다. 취미삼아 follow-up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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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7일 목요일

강금실 전 장관 강연 (과학기술시대의 기후위기와 지구 패러다임) 을 기대하며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11/8(화)에 자연대에 강연 오는데 나는 하필 그때 출장이라 못 갈 듯하다. 강연 주제는 '과학기술시대의 기후위기와 지구 패러다임'으로 강금실 장관의 오랜 관심사이다. 그런데 이 분은 한국정치에서 하나의 커다란 상징성을 가진 파격적 인사였던데다 민주당 원로로서의 활동이 있는 분이다보니, 그쪽 정치권에서 과학기술 및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환경 의제의 현실적 담지자들이 어떤 세력으로 구성돼 있는지까지 기대섞인 비판적 관점으로 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하다.


젊은 이공학도들 중에 환경 의제와 기후위기 걱정 자체에는 진심으로 공감하면서도 지구의 총체성, 연결성을 강조하는 '세계관'으로서의 생태주의에 대해서는 히피적인 대안담론이라며 냉소하는 경우가 꽤 많은 듯하다. 나도 사실 단편적인 인상으로는 그렇게 느껴지는 편이기도 한데... 다만 그쪽 담론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을 것인데 (사회주의 기반일지, 종교 기반일지, 철학 기반일지 등등) 나 같은 경우는 그런 담론지형 자체를 잘 읽어낼 줄 모르는지라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다. 대신 나한테 비교적 잘 읽히는 종류의 글들부터 읽으면서, 어떻게 해야 의견을 효과적으로 모아서 거시적인 흐름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편. 그리고 강금실 장관이 공부한 생태주의가 한국의 생태담론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 것인지도 사실 전혀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강연이 전직 정치인의 개인적 컨텐츠 홍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문에서 기후위기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일종의 링크가 되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기후위기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매우 현실적인 위협이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이과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어떤 의견들이 어떤 담론지형으로 존재하는지 그 전모를 이해하고 있어야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을 테니까.


암튼 나 출장 가는 건 우리 분야 교수님들이 강의 느낌으로 발표해 주시는 학술행사인데,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일주일 중 하루 정도를 버리고 강금실 장관 강연 들으러 갈지 고민을 했겠지만... 어쨌든 선발 절차를 거친 스쿨인데다 (실제로 선발에 경쟁은 딱히 없었던 것 같기는 함) 내용도 매우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병무청에 통보되는 출장이다 보니 애초에 함부로 빠지고 강연 들으러 올 수가 없다. 나랑 비슷한 관점 가진 사람이 있으면 대신 들어주고 내용 알려줬으면 좋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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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잔치는 끝났는가? 고연봉 리서치 포지션들의 상황 변화를 듣고

IT 쪽 석박사급 고연봉 일자리들은 올해 초중순을 끝으로 당분간 거의 문 닫힐 모양이다. 그동안 우수인력 뽑기도 충분히 많이 뽑았을뿐더러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다 보니... 물론 내가 아예 모르는 좋은 자리들이 있을수 있겠지만 일단 들리는 바로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사실 지난 2년 정도가 유동성 덕분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잔치였던 건가 싶기도 해서, 당분간이 아니라 그냥 앞으로 다시 안 올 수도 있을 것 같음. 딱 지금시기에 학위 받고 졸업하는 분들은 그 전 시기 취업자들과 비교해서 꽤나 배 아픈 분들 많을 듯함...


나는 어떤 부문에서 무엇을 될지를 떠나 포닥을 할지 취업을 할지조차 아직 아예 모르겠지만, 3년 후엔 전반적인 취업 상황이 어떨지 걱정되기도 하고 참 아예 모르는 일인 거구나 싶음.


취준생들뿐만 아니라 재직자들한테서도 안좋은 소리 종종 나오는 게, 지난 2년간 리서치 하도록 보장해 주겠다고 뽑은 포지션들도 올해 초중순 기점으로 연구 아닌걸로 돌려서 투입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함.


제품 개발하고 이익 내서 회사 살리는게 우선이니까 어쩔순 없다 싶지만, 약속이 안지켜진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쪽 직군에서 그간 형성된 컬쳐 탓에 자기 자신이 회사와 한 배를 탔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보니 직무 변경으로 스트레스 많이들 받는 듯하다. 리서치에 열정 많은 분들은 심지어 네카라쿠배 급 회사에서 대학원으로 컴백 준비중인 경우도 좀 있다.


아무튼 거시적인 경제지표가 경제 및 금융분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의 진로선택 및 직무 만족도에까지 이정도로 중요한 선택을 주는구나 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제대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회사 연구직들이 정말정말 부러웠는데, 꼭 그렇진 않고 (특히 경제가 어려워질 때) 그들도 힘든 점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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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3일 일요일

확장된 가정으로서의 숨막히는 한국사회: 김연아 선수 결혼에 대한 반응을 보며

나는 피겨 팬인 친누나의 영향으로 김연아 선수도 직접 보러 다니기도 했고, <팬텀싱어 2>도 워낙 열심히 봐서 화려한 목소리의 베이스 고우림도 원래 즐겨듣고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 결혼 발표됐을 때 사람들의 '그게 누구임?' 하는 반응이랑 반 농담식으로 전국민이 지켜본다고 하는 것을 넘어, 진지하게 급이 안맞는 결혼이라는 식으로 인터넷 상에서 계속 얘기가 나오는 건 굉장히 '억까' 같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농담이냐 진지하냐의 기준은? 일단 김연아선수가 아깝다 아니다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야 당연히 가질수 있지만, 아까운지 여부가 마치 논쟁을 통해 결정할수 있는 '논쟁거리'처럼 소비되는 양상이 생기면 진지해지는 거고 그게 억까의 시작인 듯하다.


그리고 후술하듯이 그렇게 진지하게 따지기 시작하면야 이 경우에 답은 당연히 한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으며 개인사를 '논쟁거리'로 만들기 시작하는 이들도 이것을 알면서 의도하고있음. 그러니까 오히려 애초에 시작되어서는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며, 설령 안 진지하고 가볍게 말하는 것이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는 게 좋은 것임.


결혼에(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에)도 손익을 따지고 비교하는 측면이 작용 할수밖에 없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서로한테 서로가 만족할 만큼 충실한 평생친구 하자고 하는 것이 결혼인데, 당사자들이라면 모를까 축복하고 응원해주면 될 타인들이 점수 매기는 식으로 접근하는건 별로인 것 같다.


김연아선수가 훨씬 유명하고 전국민이 주목하는데다 인간적으로도 멋있는 면모가 많이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 내에서 위인급 인물인건 자명한 사실이니... 아깝다는 소리 안나오게 하려면 고우림 당신이 정말 잘해야겠네 라는 덕담 정도로 해두는게 맞는거 같고, 그걸 넘어서 좋은 결혼인지 아닌지 진지하게 점수 매기고 평가질 하는건 매우 별로인 것 같다. 대중들한테 알려진 대단한 하자가 있다거나 한것도 아닌데 좋으면 결혼하는거지. 상대방이 올타임 레전드급 스타여서 그렇지 고우림도 보고있으면 심술이 날 정도로 정말 결점이 없고 가진게 꽤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아예 억까 말고 뭔가 근거를 갖춘(?) 듯 보이는 우려의 레파토리들의 경우는, 혹시 실제로 문제가 생기고 나서 i told you 시전하는거라면야 굉장히 심술나긴 하지만 그래도 인정하겠는데... 그러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말이 나오는건 (물론 유명인이라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거지만) 한국사회에서 일반인들의 결혼이 주변인들 입에 오르내리는 방식과도 무관하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셀럽들의 연애사가 대중들의 초미의 관심사인건 어느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파퓰러컬쳐에서의 떡밥으로 남겨두면 좋을 그런 관념이, 한국에서는 뭔가 가정과 가정간의 끕이 맞는 결합이자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K스러운 관념과 나쁜 쪽으로 섞여서 더 유해해질 때가 많은 듯하다. 그렇게 하는게 한국사회 다수 정서라면, 주변에서 미래에 내 결혼에 대해 어떤식으로 잣대 들이대고 평가질 할지도 명약관화할 테고... 굉장히 숨막힐 것 같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는 강한 단일성과 동질성을 바탕으로 일원화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의 기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면서 사회적 화두를 생산하는데, 이것은 성숙한 사회라기보다는 확장된 가정에 불과한게 아닌가?


가정 공동체와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에 있어서 현재 작동이 멈춰가고 있는 디폴트 모델을 파탄없이 유지하고 싶다면 오히려 그것의 경직되고 답답한 부분을 사회전체가 최대한 빨리 버리고 다양한 모델을 포섭함으로써 연착륙시켜야 한다.


암튼 둘 모두의 나름 팬이지만 공개 때까지 전혀 몰랐던 결혼 소식이다 보니 아직도 신기한 기분이고.. 구설수없게 충실하게 좋은 결혼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응원의 말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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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9일 수요일

엘리베이터 꿈에 대하여

내가 어릴 때 특히 많이 꾸었고, 지금도 아주 가끔씩 꾸는 꿈 중에 하나는 바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엄청나게 빨리 올라가면서 비현실적인 수백 수천 층까지 표시되는 꿈이다. 주로 그 순간에 잠에서 깨게 된다.

(뇌피셜이지만, 잠을 깨게끔 하는 실제 물리적인 움직임이 꿈속 세계에서도 가속도로 작용해서, 그걸 해석하려다 보니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일수도 있지않을까 싶음. 만약 그런거면 꽤 재밌을듯)


한동안 잊고있었던 이러한 레파토리가 오랜만에 다시 생각났던 것은, aespa의 'Girls' 뮤비 첫장면에 딱 그런 장면이 나와서다. 아래에 쓰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는걸 보면, 아마 실제로 꿈에서 힌트를 얻어서 그렇게 연출 했을 수도 있겠다 싶음.


아무튼 내 경우는 그런 꿈에서 나오는 엘리베이터들이 주로 평범하지는 않고, 유리 온실처럼 돼있다거나, 아니면 옛날 아파트에 간혹 있었던것처럼 칙칙하게 창문이 뚫려있어서 구동시스템 내부가 보인다거나 하여간 좀 이상한 경우가 많다.


인터넷 검색을 조금 해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겪는다. 엘리베이터의 빨간색 디지털숫자판에 숫자가 아닌 이상한 문자가 마구 표기되거나 (참고로 점검을 하거나 합선이 된다면 실제로 가능한 일인듯하다. 좀 무서울듯), 아니면 통제할 수 없이 위아래 층으로 빠르게 왔다갔다 한다거나 하는 등 사례를 많이 찾아볼수 있다.


내생각에 사람들이 이런 레파토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는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실제로 숫자판이 마구 바뀌어서 놀란 경험을 했다거나, 아니면 인터넷에서 엘리베이터 악몽에 대한 정보를 읽었다거나 하는것 말이다. 그것보다는 생활의 흔적으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런 꿈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라는 공간 자체와 거기에 숫자가 표시되는 방식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있는 인식 및 정서의 틀과 효과적으로 조응하고 (아니면 강하게 불화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덕분에 우리의 꿈에 빈번하게 archetype으로서 등장하는게 아닐까 한다.


엘리베이터 외에도, 내가 꾸는 꿈에는 주로 인물과 스토리가 등장하지 않고 여러가지 공간들이 등장한다. 특히 살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공간들이 실제보다 훨씬 넓어지고 그 특징 또한 과장돼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꿈의 특성상 '내가 보는 한에서만' 존재할 (즉 공간으로서가 아닌 장면으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몇년전에 겪었던 게 몇년 후에도 다시 나오고 하는걸 보면 어느정도는 정합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꿈에 대한 통제력이 없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조사해보거나 하지는 못했다.


꿈에 나오는 그런 공간들의 특징은 자연스러운 공간들이 아니라 그 구조가 현대적으로 바닥부터 짜올려진 공간들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복잡다단한 플랫폼 및 환승구조를 갖고있는 지하철역 및 열차, 긴 복도가 있는 칙칙한 학교, 폭이 좁지만 수많은 층에 걸쳐있는 수직적인 학원건물 등이다.

(예전에 리미널 스페이스 (liminal space) 라는 걸 접하고 마음에 들어서 그에 대한 포스팅을 했었는데, 꿈에 이런 공간들이 자주 나오는건 이러한 취향과 연결되어 있지 싶다.)

그런데 이 포스트의 주제인 엘리베이터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조사해볼 여지 자체가 없는, 매우 타율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크기 자체도 무척 작다. 이런 면에서 그런 과장되고 연장된 공간들과는 달라보인다. 그런데 어디로 나를 보낼지는 모르고, 웬만한 광대한 공간보다도 불확실성이 크며, 또한 오작동에 대한 은근한 걱정도 알게모르게 있을테다. 그런 면에서는 위에서 말한 커다란 공간들과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아무튼 모던하게 직조된 여러가지 공간들의 이러한 특징이 우리의 시공간적 직관과 결합해서 묘한 불안감이 유발되고, 이것이 정신에 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걸 뜯어보면서 체계적으로 조사해보고, 더 나아가서 엔지니어링해 볼 수 있다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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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능동물질 연구의 대가, M. E. Cates 케임브리지대학 루카스 석좌교수

아이작 뉴턴, 폴 디랙, 스티븐 호킹 등이 거쳐 간 케임브리지 대학의 석좌교수직인 루카스 석좌교수 (Lucasian professor of mathematics)는 2015년 이래로 마이클 케이츠 (Michael E. Cates) 교수님이 역임하고 있다.


이 분의 주 연구분야는 연성물질(soft matter), 그 중에서도 꾸준히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평형으로부터 벗어난 채로 와글거리는 물질군인 능동 물질(active matter)이다. 박테리아들의 모임이나, 세포 내부의 복잡한 환경 등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물질들에서는 일반적인 평형상태의 액체 및 기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상들 (작은 크기의 구멍들이 뚫려 있다거나, 유한한 크기의 방울들을 이루되 더 성장하지는 않는다거나) 이 나타난다.


Cates 그룹의 연구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practical한 생물물리학적 모델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수 이론물리에서 주로 볼 법한 미니멀한 통계장론(statistical field theory)적 접근 및 RG 해석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다양한 임계현상을 탐구하는 등 특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나 같은 경우 미시적 디테일을 갖춘 사실적이고 정확한 모델링도 물론 좋지만, 미니멀한 원리와 멋있는 이론적인 포말리즘으로부터 탑다운으로 유도해나가는 걸 분수에 안맞게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나로서는 이런 스타일의 연구들이 꽤 마음에 든다. 이분의 구글 스콜라 페이지 (링크) 에 들어가서 보면, 최고 저널인 PRL과 PRX에만 대체 몇개를 쓰신 것인지 셀 수 없어서 놀라게 된다.


우리 지도교수님도 임용 직전까지 Cates 그룹에서 포닥을 하셨는데, Cates와 이름이 직접 같이 올라간 논문은 없지만 Cates와 늘 같이 일하는 (주로 유럽 쪽) 분들이랑 함께 논문을 여럿 쓰셨다. 나 또한 학위과정 동안, 혹은 포닥 때 이분들이랑 협업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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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5일 토요일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인식 함양은 통례, 통설의 존중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꽤 유명한 우파 페북셀럽의 최근 포스팅 중에 사실관계와 인식의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는 글이 하나 보이길래 캡쳐해봤다 (본 게시물 최하단 Facebook 링크에 캡쳐본 게시). 이 글에서는 전후 GHQ가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한국인들은 그 이름을 거의 모르고 일본인들은 거의 안다며 한국인들의 무지와 반미적 의식을 비판하고있다.


그러나 내가 늘 지적하듯이, 어떤 역사적 개념이나 쟁점을 남들은 몰라서 얘기 안하는게 아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모른다, 일부러 안가르친다, 쉬쉬한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소위 '불편한 진실'이다, 성역화다 등으로 믿는 것은 건강한 보수세력이 아닌 극우화로의 출발점이 될수 있으므로 경계해야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시작, 위기극복 그리고 존속에서 미국의 역할을 되새기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국제주의적 시야를 함양하는것 자체는 우파에서 권장될만한 하나의 정합적인 실천적 견해임.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사실관계와 역사학계의 통례/통설을 기반으로 해야하는것임.


► 2차대전 종전 후 일본과 한반도에서 군정을 시행한 기구의 정식명칭은 SCAP이며, GHQ는 사실 원래는 그냥 총사령부 라는 일반명사로, 일본의 미 군정을 지칭하는데에만 주로 사용함.


► 그렇다고 한국에서 안 쓰거나 기피할 이유가 없는 단어이고, 한국에서도 근현대 세계사와 일본사에 조금만 관심 있다면 GHQ 당연히 모르지 않을것임. (물론 한국의 역사교육에 국제주의적 시각이 아직 부족하고 한국인들이 국제사안에 관심이 덜한면은 있어보이긴 함)


► 그러나 GHQ가 주로 >일본의 미 군정<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단어임은 변함이 없으며 한국의 미군정사령부 및 군정청은 그냥 '미 군정'이라고 부르는게 일반적임.

► 편제상 한국 미군정의 사령관인 존 하지가 맥아더 휘하였던것은 맞으나, 실제로는 일본 통치에 바쁜 맥아더보다는 미국 본토의 지휘를 받거나 미군정청 자체적으로 통치한 면이 많으며 맥아더의 직접적 영향은 미약하였음 (물론 재조망의 시도도 존재함). 따라서 실질적 통치 형태를 고려하더라도 본문에서처럼 한국의 미 군정까지 GHQ로 칭하는것은 통례와 매우 다르며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용례를 찾아보기 힘든 어색한 쓰임임.

즉 종합하자면 본문은 역사서술에서 용어 사용의 이슈(그마저도 용어 선택 문제가 실질적 정치적 쟁점사안도 딱히 아닌)에서 자신이 임의로 택한 의견이 통례와 불일치할 뿐인 것을, 국민들의 역사 인식의 문제로 비약 과장하고있음.

본문의 핵심 문제제기였던 GHQ 용어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로 하되, 미 군정 자체에 대한 평가부분에도 사실관계 오류와 비정합적 논조가 다수 보이므로 사족으로 추가해본다.

► 물론 공산주의를 철저히 막는다는 큰 방향성 설정, 그리고 한반도 남부 통치라는 중책을 맡고 향후 수립될 대한민국의 기본적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미 군정의 영향은 매우 크긴 하지만 정작 그 세부에는 반복되는 실패와 혼란이라는 측면도 많이 존재함.

► 특히 여순사건은 미군철수 공표와 한국군 전력 충원 과정에서 미군정청이 좌익성향 인물들을 색출 없이 군인으로 받아서 총을 쥐어준것이 주요 요인중 하나로, 미 군정의 실책이 있다고 보는것이 통설임.

► 게다가 막상 여순사건의 실제 발생 및 진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이므로 미 군정의 역할은 없음. 백번 양보해서 '주한미군'이 진압을 지원하긴 했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진압으로 보는게 일반적. 여순사건의 대응에서 미군의 역할이 알려진것보다 클것이라고 가정하고 추적하는것은 주로 반미 진보계열 언론임.

► 4.3 사건의 경우도 그 최초 발생은 미 군정시기이나, 약간의 소강기를 거쳐 본격적인 토벌에 따른 커다란 인명피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역시 미군정과 무관함. 남로당 무장세력뿐 아니라 군과 서북청년단 등의 토벌대가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음. 더군다나 미군정이 각 세력을 조기에 원활하게 다루지 못한것도 4.3사건의 극단적인 귀결에 책임이 있다는게 흔히 지적됨.

► (이건 글 서두와도 연결되는 내 개인적 생각임) 정부수립 전후 혼란상에 있어 공산주의 세력의 책임은 모르거나 쉬쉬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당연히 모두가 아니까, 그리고 당시에 조직이 와해되고 주요인사가 월북하면서 쟁점들이 종결되고 현재성을 잃었으니까 굳이 적극적으로 얘기 할필요가 없어서 얘기가 덜되는것이 아닐까함.

► 4.3사건 진행은 미국이 예의주시하며 본국에 리포트 하고 있었으나, 토벌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얼마나 했는지는 미규명된 부분이며, 역시 미국의 역할이 클것이라고 생각하고 추적하는것은 주로 진보언론의 견해임. 물론 정확히 알려져야 할 부분이나 본문의 미군에 긍정적인 논조와는 맞지 않음. 4.3사건은 수많은 민간인희생을 자유진영 공산진영 양쪽에서 일으킨 사건이므로 미국의 역할을 부각하며 상찬하는것을 미국이 꺼려할지 반길지는 명약관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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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Novel AI 히트를 보며: 인터넷상의 정보전파와 임팩트를 추적할 수 있을까?

지난 십수 개월 동안 그림을 그려주는 ai들이 등장하고 발전하는걸 보면서, 이렇게 대단하고 신기한데 왜 인터넷에서 그렇게까지 폭발적인 유명세를 타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미드져니 작품의 미술공모전 수상소식 등이 소소한 화제가 되는정도였다.


그런데 최근에 등장한, 2d 만화캐릭터 그림을 잘 그려주도록 stable diffusion을 파인튜닝한 'Novel AI'의 이미지 제너레이터의 경우에는 좀 다른듯하다. 정말 불과 3-4일만에 전 인터넷이 들썩이게 되었고, 그림그리는 분들 및 지망생들의 대화는 가히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나아가 이로인해 인터넷상에서 AI에 대한 경탄과 경외, 일자리 위협 등은 2016년 알파고 화제 이후 최고수준의 관심을 다시금 받고있다. 또한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인터넷커뮤니티에 익숙한 분들은 다들 novel AI 이야기를 꺼내며 디퓨전모델의 작동원리를 요약한 디시인사이드 글을 서로 공유하고있다. 이러한 대박의 원인이 궁금하다.


지금 생각나는 경우의 수로는 1. 인터넷문화 향유자들의 관심사가 2d여캐에 상당히 많이 쏠려있어서 / 2.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그림 지망생들의 상당수의 향후 기대 진출 분야가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 쪽이라서 / 3. 상업미술 시장 중에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이 그 비중이 무척 커서 등이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위 요인들 모두 섞여있을 것이며, 이유를 딱히 얘기하기 힘든 우연일수도 있겠다. 아니면 허브의 역할을 하는 몇몇 대형커뮤니티에서 유명세를 탔느냐 아니냐가 중요할수도 있다. 아무튼 인터넷 떡밥 전파의 과정과, 캐릭터 일러스트레이션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니 이런게 굉장히 궁금하다.


이런 일이 있을때마다 생각하는게, 인터넷 곳곳에서 시간에 따른 정보의 흐름을 토픽별로 혹은 키워드별로 probe하고, 이용자층 통계와 종합해서 이러한 유행의 과정을 추적하고 인과를 알아낼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는 열심히 노력을 들이면 반드시 가능할것이며, 이미 꽤 많은경우에 그런 작업들이 이뤄지고있다. 그러나 이러한 추적이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인데 비해서 >제너럴한 솔루션<은 마땅히 없는듯하다. 뇌피셜이지만 이것은 고맥락적 정보흐름을 토픽별로 분류하고 취합하는게 어려워서 그런게 큰 것 같다.


2000년경에 복잡계 과학의 대상으로서 척도 없는 네트워크 (scale-free network) 가 주목받은 이후로, 네트워크 위에서의 데이터과학이 지난 20년동안 매우 활발히 연구되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해당 분야는 근래에 대성공한 패턴인식 및 ai라는 패러다임만큼 아주 결정적으로 빛을 발하진 못한 감이 있다.


그런데 만약에 인터넷상의 고맥락적인 정보를 취합, 가공, 판단하는 절차가 보다 쉬워지거나 ai에 의해 자동화되어서 위에 말한 제너럴한 솔루션에 근접한게 나온다면, 복잡 네트워크 과학이라는 지적 조류의 한 정점으로서 매우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널리즘적으로도 의미가 있을테고 말이다. 아마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상업적인 응용은 이미 많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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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1일 화요일

과학친화적 세계관을 철지난 계급주의로부터 적극 분리해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진화론의 수호자이며 합리성의 옹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생학이랑 별로 다를 바 없는 얘기를 진지하게 하는 게 꽤 많이 보인다. 설령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야 한다는 능동적 주장을 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사회의 변천을 유전자 풀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분석하는데, 결국 정확히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월-열등 개념 (특히 지능이나 외모 관련) 을 바탕으로 한 '낯설게 보기'만이 남는 그런 아티클들 말이다.


최소한 우생학은 지금 와서는 윤리적으로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적절히 비판받고 사장되었지만 당시에는 수리통계학을 만들다시피 한 사람들까지 적극 참여하는 정상과학의 지위를 누리고 있기라도 했던 반면에, 한국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러한 우월-열등 설왕설래는 동시대의 나무위키 주석에서조차 극우주의로 규정되고있는 실정이다.


만약에 이를 집단유전학을 비롯한 진화생물학 및 사회과학의 세련된 정량적 연구방법론, 그리고 과학연구가 인간 사회에 대해 말해줄수 있는/없는 것에 대해 실제로 잘 훈련받은 연구자들이 본다면 뒷목 잡을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정작 저들은 자신의 계급주의에 대한 적절한 비판을, 엉뚱하게도 진화론에 대한 도전, 내지는 좌파적인 상대주의로 잘못 간주하게 마련이다 (그러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지독한 농담정도로 생각하는 경우는 담론지형을 꼬이게 하지 않는다는 점에 한해선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그런 잘 훈련된 학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창조과학 같은 사이비이론에 비판적일테고, 정치적 동기를 가진 지적 상대주의를 경계할 것이므로 과학의 적법한 옹호자일텐데 말이다.


진영을 오독하고 스스로 진화론의 옹호자임을 자처하면서 불필요한 분란을 촉발하는, 그러면서도 과학 및 과학적 세계관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보다 진심인 이러한 과학주의적-계급주의는, 유사과학 비판 및 광의의 과학커뮤니케이션에 관심있는 실력있는 연구자들에게 곤혹스럽기 그지없을테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진화생물학을 인용하는 아티클이나 영상컨텐츠들 중에 과도하게 '썰 풀기 식으로만' 되어있는, 혹은 개별 과학지식의 전달을 넘어 어떤 이념 내지는 '세계관'의 구축에 몰두하는 것들은 일단은 의심하고 보기 시작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권한다.


그리고 이것은 서두에서 언급한 냉정한(?) 과학주의적 주장들뿐만 아니라, 자연의 연결성과 총체성을 중시하며 주로 진보적 의제를 서포트해주는 과학기반 담론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좁은 지성계 및 출판계의 역사에서 간헐적으로나마 주류로 등장하는 이쪽의 계보를 비판적으로 추적하는 작업도 꽤 의미가 있을테고 언젠가는 취미삼아 해 봐야 하는데 아직 문헌들을 본격적으로 수집해보지는 못했다.


아무튼 내생각엔 비과학 및 유사과학에 대응해서 과학적 합리성을 적극 전파하려는 사람들 ㅡ소위 말하는 스켑틱 진영ㅡ은 이렇게 인간학과 생물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특유한 유사-학술적 주장들과의 디커플링을,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천명해야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얘기지만, 외부에서 보기에 스켑틱진영은 이러한 과학주의적 계급주의와 오히려 비슷하게 여겨질 때가 많으며, 스켑틱진영 스스로도 이들을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명시적으로 설정해두진 않을때가 많다. 나는 나름 내부자인 입장에서 그러한 동일시가 대부분 오해라고 생각하지만, 적극적 선긋기가 부족하다면 100퍼센트 그렇다는 보증은 못 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과학주의적 계급주의의 연원은 무엇일까? 여기서부터는 그냥 가설이다. 김정희원 선생님의 최근 Facebook 포스팅(전체공개가 아니어서 링크하지 않음)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약간 나왔는데, 소위 명문고 및 명문대 재학생들 중에 지능 및 학업성취 관련해서 과몰입한 경우엔 우열에 대한 얘기를 꽤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나도 노골적 우월-열등이라는 개념까지는 거부감을 느껴서 안 다다르긴 했지만, 학창시절 소수 고지능자들의 사례를 보며 지능이 높느니 낮느니 하는 것에 과몰입한 시기가 길었던 건 사실이다. 경쟁하며 스트레스 받는 학생들의 시야에서 이것이 자연스러울듯하며, 다만 적절한 교육을 통해 조기에 또다른 시야들도 경험하고 선택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본다.


아무튼 이렇게 머리가 좋다 나쁘다와 관련된 설왕설래가 오가며 '끕'을 나누는 사고방식을 고착시키는 대치동 학원 내지는 오르비 마인드셋에, 고교와 학부를 거치며 본격적으로 학습한 과학지식,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느끼는 돈 및 외모 등에 대한 관념 같은 게 절묘하게 결합해서 위와 같은 세계관이 형성되는 듯하다. 물론 하나의 전형을 제시하는 것이지 꼭 이렇다는 건 아니다.


세계관 얘기를 더 해보자. 학부수준의 과학지식 및 교양과학지식 학습, 그리고 과학에 대한 신뢰가 모종의 과학 친화적 세계관 (기계론적, 원자론적 세계관으로 대표되는)을 유발하는 면은 분명히 있는 듯하며 나 또한 그런 세계관을 어디 가서 지지 않을 만큼 당연히 가지고있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이들 과학주의적 계급주의자들은 자신들을 비판하는 자들이 대부분 이러한 과학적 세계관과 과학지식을, 그리고 과학에 대한 애정을 갖고있지 않을 거라고 잘못 가정한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비교적 지적/실천적으로 건전하게 쓰일만한 과학친화적 세계관에, 자꾸만 자신들의 차별적 생각을 덤으로 끼워넣고자 시도하게된다.


아무튼 사람들이 살아가고 공부해나가면서 형성한 세계관과 인지도식을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러나 인식의 층위를 분별하여 세계관과 개별 지식을 잘 구분하고, 각각을 적재적소에 꺼낼 줄 아는 훈련은 이공학도들 및 과학 애호가들에게 반드시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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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6일 목요일

여성권익 문제의 통합적, 독립적 관리부처로서 여가부를 존치해야한다

여성가족부 폐지 추진과 관련한 연합뉴스 기사 (["21년만에 간판 내리게 된 여가부…주요 기능 대부분 복지부로" (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링크) 말미에 꽤나 일리있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쯤 내가 썼던 포스트와도 맥락이 통한다.


여성가족부 기능을 폐지하지 않고 복지부 산하로 이관한다고 해도 기존과 부처 구획을 달리해서 여성권익 문제의 통합적 관리주체가 부재하게 되면 조율이 어렵게 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많을듯하다.


단적인 예시로 말하자면 여성가족부가 독립 부처냐 아니냐에 따라, 국무위원으로서 발언권을 갖고 국무회의에 참석 하냐 못하냐 자체부터가 달라지지 않나. 여성 권익 문제를 중심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국무회의에 오냐 못오냐가 달라진다는 것.


과거 장관들의 무용담(?)을 들어보면 국정운영은 관료제 시스템에 의해 이뤄지는것 같지만 결국 최종심급에서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보니 예컨대 국무회의에서 어필과 설득을 해야된다던가 그런 면이 많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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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하지만 여성계에서는 여성 및 성평등 정책의 총괄 기능을 수행할 '컨트롤타워'가 사라지게 된다는 데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여가부 업무를 여러 부처로 쪼개면 정책 수혜자인 여성·청소년·가족의 복지 수준이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보건복지부가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도 방대한 규모의 보건이나 복지 업무에 더해 돌봄과 가족지원 업무까지 추가되면 이 업무는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성인지적 관점을 갖고 각 부처의 성평등 업무를 조율하고 관장할 곳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계속 제기된다.
전 부처 정책에 대해 여가부가 시행하는 성별영향평가사업이나 성인지 교육이 축소될 경우 성적 불평등을 점검할 정책 수단이 사라지고, 성평등 관련 예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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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일 일요일

Asunojokei - Island (2022)

따끈하다면 따끈한, 이번 여름에 발매된 포스트 블랙메탈 음반인데 꽤나 맘에 든다. 밴드명인 Asunojokei는 일본어로 내일의 풍경 (明日の叙景, 명일의 서경?)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래 링크된 곡은 짧지만 맘에 드는 수록곡 Tidal Lullaby이다 (Youtube에서 듣기: 링크). 재즈퓨전 및 매스록 스러운 전반부와, 블랙게이즈/포스트블랙 하면 흔히 생각나는 멜로딕하면서도 immersive한 느낌의 후반부 둘다 잘 쓴듯. 짧은 플레이타임 안에서 밴드의 성격을 잘 드러내주는 곡이며 그것이 제목에도 정직하게 반영되어 있다.


밴드캠프에서 사서 다른 수록곡들과 이전 정규앨범도 쭉 들어 보았다. 처음에는 이분들이 곡 부분부분은 잘 쓰지만 긴 곡 구성을 좀 못하는가보다 싶었는데, 한두 번 더 듣다보니 짜임새도 꽤 좋은것 같기도 하다.


주관적 표현이지만 이쪽 장르의 매력은 개인들을 동일화하는 강대한 자연을 연상케 하는 헤비한 송라이팅의 틈에서 역설적으로 개화하는 소품적이면서도 극에 달한 서정성과 센스있는 터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블랙게이즈/포스트블랙메탈 특유의 이러한 소품적 서정성은 블랙메탈에서 하나의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Filosofem에서부터 이미 조금은 예견되는 것인데 슈게이즈와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더욱 명시적으로 탐구되게된다.


다만 어려운 점은 그 균형을 조금만 잘못 잡으면 유치하게 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고... 사실 4년 전에 나온 이 밴드 전작의 몇몇 트랙들도 상당 부분 그랬다. 반면에 이번 앨범은 장르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스무스하게 들을 수 있게 꽤나 잘 다듬어진 것 같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일본어 나레이션이 들어가니까 만화느낌이 확 나기는 한다. 우리가 일본 만화 말투라고 하는 것은 사실 그냥 일본어 말투였던 것인가... 암튼간에 요즘 보니까 세상에 있는 좋은 음악 중 꽤 많은게 일본에서 나온것 같아서 일본어도 좀 익혀볼겸 그런것들을 더 많이 찾아 들어야겠다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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