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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일 금요일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화를 환영한다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원심의 유죄판단을 뒤집고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최근들어 1, 2심에서의 무죄판결은 종종 있어 왔으나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은 그 개별 판결들과는 무게가 다르다고 보인다. 지난번에 헌법재판소에서 병역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이은 중대한 전환점인데, 이로써 현재 계류 중인 모든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비록 나의 사적인 신념, 개인적 양심은 병역거부가 아닌 군 인권 보장을 통한 복무환경 개선 쪽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공적 영역에서 명백한 연대의 대상이다. 일부 반대론자들의 오해와 달리 양심적 병역거부의 반의어는 비양심적 병역이행이 아닌 양심적 병역이행임을 강조하면서 오늘의 판결을 환영하고 이들의 선택을 응원한다. 아울러 평화체제의 정착을 통해 다양한 대체복무의 유지 및 확대가 보다 편하게 논의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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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군대문제를 보는 관점에 대한 좋은 예시

  어제 공유했던 글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이런 관점의 활동들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페친 분이 공유해 주셔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군대를 오직 시민사회와 유리되어 있는 이상한 공간으로 보기를 중단하고, 시민성을 바탕으로 군대의 운영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간섭하고 개입해야 한다. 군대에 대한 시민적 담론이 활성화되는 것이 역으로 군대가 시민성을 규정하는 반동적인 사태로 이어질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며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30년 동안 성장한 우리 사회의 '맷집'에 이제는 슬슬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대를 걸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5년 2학기 때 우리 학교 사회대 학생회랑 군인권센터 공동 주최로 이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임태훈 소장님이랑 김광진, 김종대 의원님이 토크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여담이지만 당시 행사 종료 후 김광진 의원님이랑 우리 동아리 회원들이 길게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가지 않은 점이 새삼 아쉽다. 지금 같아서는 아무리 드랍 기한 이후일지라도 중간고사 따위 버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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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SNL 군무새 논란

  SNL의 후속격 프로그램인 '최신유행프로그램'의 한 코너에서 모임을 갖는 대학생들이 소위 '군무새'에게 한 방 먹이는 내용의 콩트(https://www.youtube.com/watch?v=8LkYkx6Ne3U)를 제작하여 화제와 논란이 되고 있다. 나는 이 영상이 '군무새'가 모임 분위기를 깨뜨리는 데 대한 불쾌감을 공유하며 웃음으로 승화하는 효과는 있으나, 문제의 핵심은 전혀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영상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이상의 시사적 효과를 (적확하게) 발휘하기를 의도했다면 그리 성공적이지 못한 것이다.

  군인들의 경험에 모두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그렇게 주장하는 이들을 이 정도로 '빈틈없이' 타자화시키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소위 '군무새' 문제의 원인을 그러한 행동을 하는 개별 전역자들이 아닌,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충분한 물질적/정신적 보상을 제공하지 않고 있는 국방부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할진대, 이 영상은 문제를 개별 전역자들에서 찾고, 그 너머에 대한 시야를 제공하지 않는다.

  제목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여성혐오의 주요 레퍼토리인 스타벅스를 전복적으로 활용하는 포인트는 재미있었으나, 이 역시 여성혐오와 '군무새'의 괴이한 결합을 지적하는 오직 그 지점까지만 한정적으로 유효하다고 본다. 스타벅스 간다고 욕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을 넘어 스타벅스가 여성혐오의 레퍼토리가 된 이유에 대한 진지한 분석도 필요하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일단 영상의 주제와는 별개일 것이다.

  전역자들의 경험을 들어 주고 정신적/물질적 보상을 제공해 주는 것은 국가의 몫이며, 시민들은 전역자들이 보이곤 하는 '군무새'적인 태도를 조롱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게 그들을 챙겨 주기를 요구해야 한다. '군무새' 현상을 모종의 트라우마라고 본다면, 국가는 그 트라우마의 해소를 전역자의 주변 사람들, 사적인 심리적 안식처 등에게 떠맡겨서는 안 되며 공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래서 월급을 인상하고 복무기간을 단축하며 휴대폰 사용을 보장하는 등의 최근의 조치는 - 아직도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 다행스럽다. 이러한 조치들을 점차 확대함과 동시에, 휴가 및 외출도 대폭 늘리고, 전역자들에게도 군에서 겪은 신체적, 정신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적극적으로 약속하고 실현하는 등의 조치도 필요할 것이다. 이에 더하여, 남북 평화체제 정착을 통해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더 힘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은 이만 줄이도록 하고, '군무새' 문제에 대해 이전에 썼던 글을 링크로 공유한다. 이 글에서 중언부언하는 것보다는 링크된 글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잘 전달될 것 같기 때문이다. 위 문단에서 장황하게 쓴 것을 보니, 어쩌면 나도 이 영상에서 희화화하고 있는 그러한 종류에 정확하게 해당하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군대 문제 외의 다른 문제들에 있어서도 개별 인간에 대한 조롱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관성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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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일 월요일

평양: 연출된 도시

  물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평양의 변화와 자유롭고 활기찬 모습을 조명하는 최근의 기사들과 달리 나는 평양이 여전히 일반적인 도시라기보다는 물화된 이념의 전시장으로서의 거대한 극장 내지는 놀이공원 같다는 인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인상은 아파트에서 고개를 내밀고 손을 흔든 사람들이 동원된 간부들이라는 기사, 그리고 도로의 양 사이드에서 손을 흔든 사람들이 권역별로 수십 명씩 동일한 옷을 입고 있는 사진 등을 볼 때 어느 정도 실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내가 속한 사회도, 가상의 완전히 중립적인 제3자가 보면 그렇게 여겨질 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서울도 그 형태가 강제적이지 않고 자기검열적일 뿐 무언가의 선전장일지도 모른다. 특히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에 서울의 모습이 소개될 때는 권력에 의한 동원을 통해 그러한 전시장과 같은 면모가 인위적으로 부각될 가능성이 있다. 이 점에 대한 반성을 현재와 미래에 중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평양에 분명히 존재하는 강제적 통제는 구별하기 쉬우니 우선 논외로 하고, 나는 자기검열적 통제의 상태와 자유의 상태도 분명히 서로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검열적 통제의 상태에서도 사회는 나름대로 (긍정적 의미에서) 혼란스러워 보이게 될 수 있으며 주민들이 기본적인 운신의 폭 측면에서 실질적으로 꽤나 많은 것을 누리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유로운 상태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사실 한국도 이념적 동질성이 너무 강하고 '불온한' 언설들을 사회적으로 싫어라 하는 면이 있어서 완전히 후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평양에 비해서는 압도적으로 후자에 가깝다고 보아야겠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민주주의가 자리잡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화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게 되지 않는 한, 삶의 질이 높아지고 활기가 돌더라도 평양은 후자가 아닌 전자의 상태에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 당국이 평양을 자유롭고 활기찬 모습으로 노출시키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자유화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반대로 체제가 극도로 잘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강제적/자기검열적 통제에 의해 자유를 연출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 아닐까?

  만일 이러한 관점이 정당할지라도, 현재의 남북관계 개선 국면에서 한국의 리더십은 평양의 자유로운 모습에 대해 일종의 외교적 제스처로서 어느 정도 호응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방향을 기본적으로 지지한다. 현재 한국의 리더십이 남북관계에 임함에 있어 평양에 대한 낭만적인 관념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의 연출을 위한 물적, 인적 자원의 착취가 있었을 가능성을 언제나 분명하게 염두하고, 그러한 일이 실질적으로 덜 발생하도록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이산가족 상봉 시에 한국의 가족들이 북측 가족에 건넨 선물 중 상당수가 북한 당국에 '자발적으로' 신고되고 바쳐졌다고 한다. 명백한 착취이다. 반면 3차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 당국이 보내 온 2톤의 송이버섯을 한국 정부는 남측의 미상봉 이산가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만약 북측의 미상봉 이산가족들에게도 나누어주도록 했다면 더욱 더 멋졌을 것이라고 상상해 보기는 했으나, 이것은 북한 체제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고 선물의 의미를 퇴색시키기 때문에 외교적 제스처의 측면에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한국 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북한 당국과의 대조를 이루는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외교적으로 우호적인 제스처를 유지하면서도 북한 당국의 주민 착취를 적극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는 교묘한 방법을 찾는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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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1일 화요일

문/이과 융합적 교양 담론을 늘 의심하자

  나는 과학과 인문학 양 쪽 모두를 좋아한다. 하지만 매우 상이한 그 두 가지를 서로 섣부르게 합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그 둘을 모든 수준에서 방법론적으로 치밀하게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표층 수준에서 병존시킨 다음에 얼기설기 연결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과학과 인문학이 동일한 발생적 기원을 가지므로 그 둘은 사실 하나의 진리로 소급된다는 식의 '세련되지 못한 일원론'적 발상, 혹은 과학과 인문학이 지금까지 서로 다른 것이었지만 양 쪽에 능통한 내가 그 둘을 통합해서 하나의 멋진 컨텐츠를 만들겠다는 식의 '르네상스'적 발상 같은 것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발상들은 주로 종교적 신념과 같은 숨겨진 형이상학적 전제에 의해서, 아니면 문화산업을 통해 정치적/금전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서 발생한다.

  이러한 발상들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나, 많은 경우에 대중적으로 학술의 최전선으로 간주되며 이것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들은 현대에도 '통섭', '융합' 등의 이름을 취한 채,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과 그것을 선망하는 준비생들에게 일군의 교양적 담론을 공급하면서 문화적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교양적 담론에서 4차 산업혁명 등 최첨단 과학기술처럼 보이는 것과 명상과학 등 사이비적으로 보이는 것의 기이한 결합이 종종 관찰되는 것은 아마도 이 둘이 위에서 지적한 오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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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9일 일요일

인천 퀴어축제 혐오세력 폭력사태 유감

혐오세력의 난동으로 인해 인천 퀴어문화축제가 부스 설치조차 하지 못하고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한다(알아본 결과 무산이라고 기사화는 되었지만 그것은 축제 부스 등이 정상 진행되지 못했다는 뜻이며 많은 대치 끝에 퍼레이드까지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혐오세력이 등장해서 행사 장소를 둘러싸고 참가자가 진입할 수 없게 한 것은 물론, 기존에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이 나가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기존의 어느 퀴퍼보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폭언을 듣거나 폭행당한 참가자는 수도 없이 많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방화를 위해 기름통을 들고 왔다가 체포되기까지 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신들을 위한 세계를 예비해 주었다는 절대자를 닮기를 바라면서 정작 현실 세계에서 사랑을 실천하기는커녕 배제와 폭력만을 재생산하는 이 자들은 사랑을 입에 올릴 자격이 단언컨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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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5일 토요일

과학자를 참칭하는 사이비 구루들을 주의하자

  물리학자 Menas Kafatos는 대체의학자 Deepak Chopra와 함께, 정식 학자임에도 무언가에 경도되어서 우주와 인간을 조화시키려는 사이비 과학자가 된 대표적 서양 학자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세민이 센터장으로 있는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 에서 초청하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세민은 세월호 사건 당일에 정윤회와 만나고 있었던 역술인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사상에 관심 가지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 중 꽤 많은 경우가 사이비집단을 통해서라는 것이 안타깝다(대표적으로 단월드). 이들은 단순히 유사과학을 전파해서, 혹은 오리엔탈리즘적이라서 막연하게 나쁜 것이 아니라, 유사과학을 활용하여 자기들만의 왕국을 짓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협력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나쁘다. 이공학도에게 사회적 책임이 부과된다면 그 1순위는, Menas Kafatos와 같이 과학 지식을 통해 정신적 수양과 삶의 지침을 제공하겠다는 Guru와 같은 인물과는 되도록 엮이지 말고, 이들은 과학자이든 아니든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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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8일 토요일

합리성과 공감

'공감 능력'이라는 개념은 감정-이성 이분법 상에서 흔히 감정의 영역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사실은 상호주관적 '이성'의 영역에서 설득력 있게 정초될 수 있다. 나는 늘 합리성의 두 거목으로 칸트와 하버마스를 지목한다. 감성과 이성(정확히는 오성)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고 둘 모두를 인식판단에 이르기 위한 불가분한 요소라고 간주하여 성공적으로 통합한 칸트 인식론의 성과와, 칸트의 고독한 의무론적 윤리를 비판적으로 보완하는 하버마스의 상호주관적 윤리학의 성과를 함께 고려함으로써 공감 능력을 합리성의 영역에 통합하는 기획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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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5일 수요일

안희정 1심 선고 유감

  성폭력 상황의 애매성에 의한 고질적인 증명부족 문제가 얘기되는데, 아래의 대목을 보면 원인을 거기에만 귀속할 수는 없으며 성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 개선 역시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즉시 기존의 업무상 관계를 피해자-가해자 관계로 스스로 전환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위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전환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김씨가 피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안 전 지사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 점, 지난 2월 마지막 피해를 당할 당시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한 상태였음에도 안 전 지사에게 그에 관해 언급하거나 자리를 벗어나는 등 회피와 저항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 안희정 '성폭력' 모두 무죄... "성적자유 침해 증명 부족" (종합) (2018.08.14)] )


(1) 애매하다는 특징을 갖는 성폭력 혐의를 합리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신뢰로운 방법이 연구되어야 한다. 이건 연구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문제인데 지금은 피해자 개인의 입증 능력에 과도하게 맡겨져 있는 것 같다.

(2) 위의 애매성과 별도로 성범죄 처벌을 유달리 어렵게 만드는 추가적인 법률적, 현실적 요인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법의 여러 원칙들은 지켜져야 하지만, 법의 원칙에 어긋나거나 법률적인 틀로 담아낼 수 없으므로 처벌이 힘들 수밖에 없다는 태도'만을' 갖는 것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법의 원칙을 수호하면서도 처벌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입법적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3) 성폭력에 대한 검경 및 사법부 구성원 개인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물론 판결문만 보고 판사의 인식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서 공유한 기사에 나온 것 같은, 판결에서 엿보이는 인식상의 문제를 애써 무시하고 무한히 합리적인 가상의 사법부를 상정하는 것은 더 이상하지 않나. 이 문제가 개선된다면 (2)와 관련된 대중 설득도 좀 더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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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 목요일

유튜브의 이상한 분노 자극 영상들



  유튜브에서 '카톡'을 검색해 봤는데,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 고유의 대중예술 장르가 형성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위 여부조차 불분명한, 시청자들의 분노 및 억울함을 자극할 만한 카톡 대화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띄워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에게 통쾌하게 복수해서 쩔쩔매게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런 영상들의 다수가 '김치녀', '맘충' 등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종 창의적인(?) 소재들이 많이 있으며,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 집착 등을 소재로 한 영상들도 좀 있기는 하다. 조회수 100,000이 넘는 영상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이런 걸 찾아 보면서 분노와 통쾌함을 재생산하고 현실 인식에까지 영향을 받는 이런 기이한 모습은 디지털 시대 대중예술의 디스토피아적 귀결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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