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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30일 일요일

KAIST 명상과학연구소 논란에 부쳐: 과학, 후원 그리고 지식생산의 건전성

KAIST 명상과학연구소 관련하여 진즉에 공개적으로 있었어야 할 논쟁이 최근 며칠 사이에 페북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모양이다.

먼저 확실하게 전제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떤 부문이든 만약 과학적 방법론을 결여한 채로 검증을 우회하여 과학의 외피를 취하려는 시도가 발견된다면 과학계의 자정능력을 통해 단호하게 거부를 해야할 테다.
이러한 전제의 작동은 무슨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정상과학의 데일리한 프로세스로, 과학의 영역 혹은 그 부근에서 지적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규범이다.


그런데 페북에 여러 교수님들이 퍼 와 주신 명상과학연구소 측 (혹은 소장 개인)의 자료들을 보면 명상 효과의 과학적 검증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종교 쪽에서 이야기하는 사랑, 조화, 자비 등을 과학적 용어정의 및 문제설정으로 포섭하지 않고 그대로 적극 채용하여 서술해둔 부분이 많다.
이에 대해, 아직은 한정적으로만 알려졌더라도 앞으로 과학적 원리가 더욱 많이 밝혀질 것이니까 비전을 작성해둔 것이라고 한다면? 종교 단어라는 이유로 편견을 갖지 말고 지켜봐 달라고 한다면? 애석하지만 그런 말들은 이미 너무 여러 번, 너무 여러 곳으로부터 들었다.
차라리 그런 특정 종교색이 지나치게 강한, (과학의 맥락에서) 막연하게 들리는 어휘들은 잠시 접어두고 현재 자원을 투입해서 풀고 있는 과학 문제들 위주로 소개하고 홍보한다면 더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하간 이러한 정황들로 인해 나는 인간 정신의 비일상적 영역에 대한 과학적 해명과 다채로운 활용을 매우 기대하면서도, 현재의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에 대해서는 본질상 흥미롭지만 아슬아슬한 기획인데 반해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다소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어, 기본적으로 우려하는 입장임을 미리 밝혀둔다.


명상이라는 특수한 정신상태와 그 긍정적 효과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고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다수 진행되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사실 남의 분야라 자세히는 모르나 그렇다길래 그렇구나 한다).
나는 물질세계와 분리된 신비한 정신적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정신이란 지극히 복잡한 물질들의 작용의 산물로 주관에 표상되는 것으로서 물질계와 수반적인 관계만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영역을 상정하는 것보다는 가급적이면 성공적으로 검증되어온 기계론적 세계관 하에서의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설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받아들일만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계론적 세계관은 과학 이해와 궁합이 좋을 뿐 실제 개별 과학활동을 하는 데의 필수 요건은 아니고, 그런거 없이도 지장없이 잘 연구하기도 하다 보니 이런 얘기가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므로 여담 정도로 해두기로 한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있는 정신현상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한 비물질적 세계를 표상해내어 그러한 현상의 해석에 동원하게끔 하는 듯한데, 이를 광의의 과학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상술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고수하더라도 퍽 흥미로운 일이다. 특정 종교에서 유래되어 그쪽에서 주로 이야기가 되어왔을지라도 인간 정신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여 긍정적 체험을 제공할 가능성, 그리고 꼭 신비한 비물질적 영역을 전제하지 않고 담백하게 설명될 가능성도 당연히 있기 때문이다.
명상의 과학화를 추구하는 많은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연구들은 위에 말한 전제를 인지하여 조심스럽고 담백하게 진행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입장, 그리고 혹시 모를 종교부문의 부당한 과학침투를 적극 막고자 하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연구들과 그 검증에 더욱 활발히 참여를 해주었으면 한다.
아무튼 명상의 과학화를 염두한 개별 연구들의 내용에 대해서는, 열린 태도의 비판적 검토가 잘 작동한다고 전제하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정말로 잘 작동한다고 확신해서라기보다는 그러한 전제 없이는 이하의 논의들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사실 서론이고, 이러한 과학연구의 개별 내용 자체에 대한 평가의 이면에 있는 좀 다른 논점으로 넘어가보자. 과학지식의 생산방식, 그리고 그것이 추진되는 동기 등과 관련한 '사회구성적 계기'를 논쟁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구성적 관점은 각 부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바깥에서 대충 평할 수 있는 만능키 같은 것이기도 해서 굉장한 자제심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능히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오랜만에 꺼내본다.


나는 아직 펀딩을 직접 따 보거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수행하는 입장이 못 되고, 복잡한 거대 실험과학이나 IRB 필요한 생물과학이 아닌 순수 이론과학의 말단에서 첫 발을 뗀 후보생인데다, 페북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계정은 아니다보니 오히려 약간 더 발언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이라 사견을 보태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우선 기금 출연을 해주시는 높으신 분의 의지(혹은 사립대학의 경우 대학 재단 소유자)에 의해서 다소간에 튀는 전공이나 연구기관이 설립되는 것은 국내의 수많은 대학교는 물론이고, 이름난 해외 명문대학에서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닌듯하다.

그리고 서양권 종합대학들은 종교학의 연구 대상에 가까운 직업 종교인 당사자들이 직접 종교학전공에 있으면서 영성을 탐구하고 학위 하는 것에 대해 더욱 관대하고 긍정적인 경향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혹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부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여기에 결합해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보는 것은 지나친 태도일까).
조심스럽지만 서구 백인 인텔리 중심으로 형성되어온 학계에서, 다른 인간집단을 지나치게 이국적인 연구 대상으로만 대해 온 것에 대한 반성적 경향 때문에 비교적 폭넓게 그런 것들을 열어두는 것 같다. 다양성을 찾아나가면서 지적 전통을 혁신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아카데미의 지식생산 규범을 비판적으로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럴때에 비로소 따뜻하고 열려있는 보편성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돌아와서, 카이스트 경우에는 SK 일가의 부회장 급의 의지에 의해 명상과학 연구소가 처음 추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걸 보면 좀더 구조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기금을 출연하는 측의 개인적 관심분야에 학교 측이 맞춰 드리면서 제너럴한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원도 받고, 그러면서도 그 특정 관심분야 내에서도 가급적 학적 엄밀성을 잃지 않고 의미있는 연구성과가 나오도록 학자들이 이끌고 가는 것은 잘 된다면야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후원은 과학사에서도 상당히 흔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국가에서의 거대과학은 주로 왕이나 귀족의 개인적 관심사가 아니라 민주적 합의에 의해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후원자' 모델은 과거의 것으로서 변증법적으로 지양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기초과학에 투자할수 있는 규모와 방식은 한계가 있으며 (심지어 한국은 그 집행방식이 늘 논란일지언정 R&D 예산의 총량 자체는 이미 많다고 알려져있기도 하고) 민주적 합의에 의해 과학기술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어쩔수 없다. 그러므로 민간의 자본에 의한 후원으로 당장에 돈이 안되는 과학기술연구가 진흥되는 것은 상당히 고마운 일이다.
다만 그러한 후원이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진실성, 그리고 과학기술 연구 비용이 국민들 앞에 정당화되기 위한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적절히 복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후원자가 자신의 사적, 궁극적 동기보다는 아카데미의 솔리드한 강령 하에서 과학자들이 자율적으로 생산하는 성과를 더 우선시하고 재미있어해야 한다는, 일종의 '쿨함'을 통해 구현되는 책임성 또한 필요하다.



이런 관점들을 종합해 봤을때, 명상의 과학화를 추구하는 명상과학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이 과학자가 아닌 직업 종교인인 점은 내게 의구심을 크게 더해주는 부분이었다 (물론 과학기술부문은 아니지만 학위가 있는 분인것은 맞다).
개인적으로는 명상의 과학화라기보다는 명상의 과학적 검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데, 전자는 종교에서 유래된 개념들의 과학영역으로의 편입 시도가 다소간에 무비판적으로 일어날 경우에 이를 예방하기 어려워 보여서다. 물론 단어가 본질이 아닐순 있다.
이러한 편입은 단순히 내용적인 것뿐만 아니라 과학활동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의 통합 내지는 전이를 포함하며 이는 여러 사람들의 이익과도 관련되어 있다. 위의 '당장에 돈이 안되는'이라는 표현과 굳이 비교해보자면,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한테 당장에 돈이 되는 방식으로 이용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끊기는 순간 엄격한 과학적 태도를 결여하게 되는 것은 금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종교에서 유래된 개념을 심리학적, 인지과학적으로 해명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우나, 근본적으로 아슬아슬한 동거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심리학적으로 연구가 되고 있는 현상일지라도 종교에서 유래되었고 현재적으로도 많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현실적인 종교권력이 부당하게 과학계에 침투하거나 그 이름으로 권위를 행사하고자 했던 과거 주요사례들의 트라우마도 고려되어야 한다.
비판적 검토를 포함한 종합적인 관심이 끊기지 않을 때 건강한 지적 생태계가 구성될수 있고 이를 위해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는, 그리고 다른 모든 연구기관들은 오히려 더욱 꾸준한 화제와 관심을 받아야 한다. 나도 미약하게나마 앞으로 그러한 종합적 관심에 꾸준히 참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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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8일 수요일

윤 대통령발 수능 킬러문제 논란: 비판 차단을 위한 연쇄적인 졸속행정이 문제다

수능 논란은 처음부터 대통령발 사고였지만, 최근에 교육부가 직접 킬러문항 (사실상 앞으로 출제되어서는 안되는 종류의 문제라는 뜻) 목록을 구체적으로 찍어서 공개해 버린 건 정말 이 논란의 정점을 찍는 초대형사고인 것 같다.


정책 찬반을 떠나서, 선정된 문제들이 애초에 누가 봐도 킬러문항이긴 하다고 동의할 만하지조차 않았다는 게 일단 문제다. 대체 이게 왜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된, 혹은 사교육을 조장하는 문제인지 의문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수험생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 고난도 문항들은 오히려 빠진 경우도 많다는데...

확실한 방침에 의거한 전문적 검토가 아니라, 대통령실의 요구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즉 킬러문항 리스트라는게 아무튼 정치적으로 필요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졸속으로 선정한 문제들임이 명확해보인다.


이렇게 되면 킬러문항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여 대체 어떤 종류의 문항을 말하는지가 모호해지므로, 올해 수능이 어떻게 출제가 되더라도 이 킬러문항 리스트에 비추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왜 이게 킬러문제랬는데 나왔냐, 왜 이건 더 어려운데 나왔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다해도 한번 본 시험은 되돌릴수 없으니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리고 만약에 (실제와는 다르지만) 교육부가 과도한 고난이도 문제들만 킬러문항으로 잘 골랐다고 치더라도 이번 조치는 여전히 문제가 된다.

설령 그 문제들이 지나치게 어렵다, 혹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데 동의하더라도, 일단 현 수능 기조 내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출제되어온 이유가 있기는 했던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내용적으로 보면, 엄연히 출제위원들과 검토위원들이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근거를 찾아서 만든 문제들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요구에 따른 교육부의 졸속 발표로, 기존에 이미 검토를 거쳐 출제됐던 그 문제들이 '짜잔~ 사실 알고보니 교육과정 내에서 풀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라며, 순식간에 존재해서는 안 됐을 문제로 둔갑하는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이고 이번 발표가 제일 대형사고인 이유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의, 그리고 지금까지의 수능 출제에 대한 수험생들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 사태에서 교육정책 및 수능 출제기조의 향방을 놓고 제대로 싸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졌다. 대통령실이 상황 수습을 위해 발언을 철회하거나 다소 천천히 하겠다는 등의 책임지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비판 차단만을 위해 연쇄적인 졸속 논점을 생산하고 강경 일변도로 나오면서 오히려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정책의 일관적 기조라는것 자체를 찾아볼수 없게끔 헤집어놓는 것은 정말 문제적이다.

이번 킬러문제 목록발표를 포함한 여러 방침을 리셋하고 올해 초부터 예정됐던 출제방침으로 되돌려놓는게 순리가 아닐까 싶은데 이미 그렇게 하기도 늦어버린 것 같다. 아예 말이 안되는 얘기를 할경우에 그냥 무시하고 평가원 독립성 보장을 근거로 기존 방침대로 밀고 나가면 좋겠긴 한데... 그럴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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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일 토요일

포털 검색이 어려운 단어들의 특징: 할할팟, 모각공, 각할모

사람들이 카페나 스터디룸 등에 모여서 각자 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모임을 일컫는 용어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 주로 대학 선배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할할팟'(할일 하는 팟. 혹은 아예 "저녁에 할할하실 분~" 이렇게 동사로도 사용)이라고 불렀었는데, '모각공'(모여서 각자 공부?), '각할모'(각자 할일 하는 모임?) 등 여러 단어들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것 같다.

이 단어들은 주로 친구들 사이 카톡에서 혹은 소셜미디어 내지는 동네별 교류 앱 같은 곳 위주로만 쓰이다 보니 포털 검색 사이트에서는 잘 검색이 안 되고, 그러다보니 사람들 각자가 자신이 속한 그룹 위주로만 그 단어를 듣게 되어 그룹 간에 통일이 잘 안 되고 서로 차이를 보이게 된 것 같다.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다른 단어들은 무엇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일단 생각나는 것으로는, 인스타그램 위주로 돌아가는 소규모 문화활동 부문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주요 용어들이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한다고 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밴드음악 합주 및 작업 관련한 노하우나 용어 같은 것들도 은근히 그런 게 많다.

공통적으로 생활에 비교적 밀접한 공부 내지는 놀이의 영역이되, 혼자서는 잘 성립되지 않고 적당한 소규모의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너무 대규모여도 안 됨), 그리고 소셜 미디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문들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듯하다.


반면에 대학원 공부나 코딩 쪽은 인터넷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분포해서 그런지, 검색되는 자료의 양도 많고, 그에 따라서 서로 다른 그룹들도 비교적 광범위하게 공통된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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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일 목요일

애플, VR헤드셋 그리고 생성 AI

애플이 잠시 후 열릴 WWDC 발표에서 (현지시간 6월 5일) VR/AR 헤드셋 기기를 공개한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모양이다.


여러 전망들에 따르면 개발자용으로 선보이는 기기여서 일반 소비자로서는 퍽 부담스러운 가격일 것이며, 소비자용 기기는 향후에 따로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망들이 사실이라면 마치 iPhone 및 iPad를 발표할 때처럼 즉각적인 대중화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럼에도 애플은 퍼스널컴퓨터의 등장부터 스마트폰 그리고 태블릿PC에 이르는 - 사실상 IT 시대의 전체를 아우르는 - 긴 기간 동안 혁신을 주도해온 기업인 만큼, 통제되고 가이드됨으로써 세련되어지는 특유의 사용자경험이 적용된 VR 헤드셋을  애플이 '짠' 하고 내놓아서 혁신을 실현하고 생태계 발전의 계기를 제공하지 않을까 기대섞인 시각도 있다.




VR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지 꽤나 오래되었음에도 그 접근성과 사용 유인이 아직도 그리 높지 못하고 오히려 관심이 다소간에 시들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일 수도 있지만 - 결국은 VR에 관심이 없던 대중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불하여 구매하고 착용하게 만들 만한 킬러 콘텐츠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대형 모니터가 아닌 VR에서만 가능한, 꼭 해 보고 싶은 풍부한 경험이 무엇이 있는지 설득이 안 되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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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AR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첫 번째 개인적 경험은 2016~2017년 동안에 VR게임 개발 팀에 섭외되어 예술적 컨텐츠 구상에 참여했을 때이다. 그 팀에서 나는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으나 (이 팀은 내가 그만둔 이후에 PC게임으로 전환하여 한국산 인디게임으로서는 손꼽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컨텐츠 구상의 일환으로 여러 산업 박람회에 다니면서, 컨텐츠에 대한 영감뿐 아니라 VR 기기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들과, VR 산업의 분위기도 다소간에 읽어 볼 수 있었다.

당시에 컨텐츠 측면에서는, 나는 VR에서의 전방위 시야 활용을 디스플레이의 연장선이라기보다는, 건축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VR을 확장된 디스플레이로 볼 경우, 디스플레이를 기존의 콘솔 게임 등과 완전히 차별화하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면에, VR을 확장된 건축이라고 볼 경우에는 기존의 건축에서 불가능했던 수많은 다채로운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면을 배치하여 공간을 구획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라고 보면, VR에서는 이러한 면들이 실제 물리적, 경제적 제약에서 탈피하여 완전히 자유롭게 배치되고, 심지어 시간축 상에서도 매우 빠르게 시시각각 변화할 수 있다. 이후로, 개념적 혁신력을 가지는 VR 컨텐츠들 중에 이러한 컨셉을 적극 채용한 것이 실제로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편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당시의 VR은 생각보다 많이 무겁고 어딘가 답답하다, 혹은 불편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메타에서 낸 퀘스트2 (2020년이었을 것이다) 같은 경우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 착용해 본 결과 상당히 편해졌고, 시야도 덜 답답했던 기억이다. 또한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방식도 직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어느정도 표준화가 이루어진 동시에, 창의적으로 활용될 여지도 많이 남겨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실제 기술 특허 등을 추적해 보더라도 그동안 노하우를 축적해서 많은 개선이 있었다고 한다. VR/AR은 머리에 착용하는 것이고 시야 전체를 커버하는 것이다보니 컴퓨터 및 스마트폰과는 궤를 달리하는 여러 복잡미묘한 HCI 및 하드웨어 이슈가 있는데, 이것이 메타 등에서 개발한 여러 노하우를 통해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개선이 많이 되어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 시간 이상 착용하고 있는 것은 무리일 정도로, 불편감의 문제가 아직 결정적으로 해소되지는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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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에 대한 두 번째 개인적 경험은 2017년, 필자가 대학생 시절 학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시범연구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5G 통신과 VR/AR을 연계하여 5G 기술을 확산시키고 시장을 확대하고자 했던 KT의 경영전략을 평가하는 것이 그 주제였다. 아래의 내용은 산업공학의 기초 개념들을 현실적 문제에 적용해보기 위한 모의 보고서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하였으며, 전문성이 담보된 분석이 아님을 밝힌다.

첨단기술이 실제 시장에서 채택되어 성공적으로 확산되는지의 여부는, 기술의 우수성 그 자체가 아니라 해당 첨단기술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고객집단 풀의 변화에 따라서 판매자가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는지에 의하여 결정된다.

KT는 2018년에 평창 올림픽에서 VR/AR 기술을 이용한 다채로운 중계를 선보였다. 그런데 VR에 요구되는 특유의 낮은 레이턴시(즉 짧은 응답 시간)과 대량의 계산을 고려하면, 이러한 중계는 데이터를 빠르게 송수신할 수 있는 고속, 광대역 통신 기술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KT는 통신회사로서, 5G 기술을 통해서만 전적으로 실감나는(immersive) VR/AR중계가 가능함을 입증하고 5G를 홍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에 5G 기술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생태계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으며, 이는 당시에 VR/AR 기술이 소비자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에 VR/AR을 구성하는 기술들(제스처 컨트롤러, 기기간 통신(일종의 사물인터넷) 플랫폼)이 주류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정도로 성숙하려면 최소 5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다수의 문헌들에서 전망했다.

이 둘을 연계하여 차별화를 시도할 때, 통신은 인프라인 반면 소비자에게 직접 와닿는 컨텐츠는 VR/AR이므로, 전자보다는 후자가 소비자들에게 직접 어필하여야 한다. 여기서 기술 확산에 대한 캐즘(chasm) 이론에 따르면, 전체 잠재적 고객집단(통신산업의 경우 한국 국민들)의 맨 앞쪽 15%에게 기술이 전파되었을 때쯤에 집중화, 차별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VR/AR과 연계된 5G 통신기술이 국민의 15%에게 선택되었을 시점은 그 당시 통신기술 확산의 전례를 보았을 때 2018-2019년 정도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위에 썼듯 2017년 당시에도 2018-2019년에 VR/AR이 충분한 파괴력을 갖출 수 없다고 전망되었으므로, 평창 올림픽을 계기 삼아 VR/AR을 매개로 하여 5G 통신 기술을 파괴력있게 데뷔시키겠다는 KT의 전략은 시기상조였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 평창 올림픽 개최 이후로도 이 전략은 대중적으로 크게 소구하지 못하여, 5G 기술의 시장 채택은 3G 및 4G의 확산에 비하여 다소 애매한 수준의 폭발력만을 보여주었다. 또한 VR/AR의 대중화 역시 수많은 노하우의 축적에 의한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무색하게 상당 기간 동안 답보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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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킬 계기는 없을까? 위의 2017년 당시 모의 보고서와, 당시에 내가 참고했던 문헌들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2020년대 초반 생성형 AI의 매우 이른 시장 데뷔였다. 사실 나는 2014년에 발표된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필두로 한 고성능 생성 인공지능을 보며 그 문화기술로서의 가능성에 꾸준히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자유도가 높은 플레이그라운드형 게임에서 원하는 맵과 배경, 원하는 사물, 그리고 이들을 이용한 상호작용을 생성형 AI를 통해 쉽게쉽게 만든다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다. 기존에 전혀 생각하기 어려웠던 매우 다채로운 형태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면에서 내가 필생의 꿈(?)으로 생각하고 한 십몇년 뒤엔 달성되겠지 했던 수준의 것들이, 2021년경부터 매우 급속히 대중화된 text-to-image generation(DALL-E 2, Midjourney, Stable diffusion 등 디퓨전 모델들에 기반함)과 거대언어모델(ChatGPT 등)에 의해서 순식간에 매우 실질적으로 입증되고 돈을 벌어들이는 단계가 되어 버렸다. 지금시기에 정신을 잘 차리고 재미있는 것들을 꾸준히 팔로업해 보면 좋을 듯하다. 문화기술로서의 생성 인공지능이 전혀 새로운 종류의 게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이젠 진짜 금방 되겠다는 확신이 있다.

다시 이 글의 주제인 VR/AR로 돌아오자. 당분간 답보 상태였던 VR 사용자 층의 저변을 결정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그것 또한 다름 아닌 생성형 인공지능이 아닐까 한다. 즉, VR을 모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대거 관심을 가지고 구매 및 사용할 만큼의 킬러 컨텐츠가 나온다면 결국 생성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컨텐츠에서 나올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심지어 생성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컨텐츠는 더 이상 단순히 단일 컨텐츠가 아니라, 과장을 조금 섞자면 무수히 많은 새로운 컨텐츠를 사용자 스스로 생성해서 즐길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가 된다. 단순히 시각적인 장면만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언어모델이 작성해주는 코드를 통해서 사용자가 겪는 상호작용의 형태, 더 나아가면 게임의 디자인 자체를 어느 정도 레벨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서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하면 VR에서 킬러 컨텐츠의 부재가 일으키는 악순환이 매우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왜 하필 번거롭게 VR이어야 하냐 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은 안될수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VR을 디스플레이의 연장이 아닌 건축의 연장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위의 내 주장을 통해 갈음해 본다.

결론적으로, 애플이든 누구든, 생성형 AI를 통해 VR/AR의 가능성, 더 나아가서 꼭 VR이 아니더라도 아주 새롭고 다채로운 형태의 게임적 상호작용을 적극 탐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현재 생성형 AI에 의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형국에서 애플이라는 회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세간에 있는 편이기도 하다. 혹자는 애플이 자신이 원하는 아주 잘 정제된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까지는 섣불리 얘기를 안하는것 뿐이니까 걱정할거 없다고 하지만... 글쎄다. 진짜로 그 동안 무언가를 못 해 왔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확률에 의존하는 생성형 AI 자체가 애플의 완벽주의적 철학에 다소 맞지 않는 면이 있기도 하거니와, 현실적으로 AI 연구개발 조직에 무언가 문제가 있고 제대로 운영이 되지 못해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그동안 실제로 생성형 AI 연구를 잘 못 해 왔고 이제야 대폭 채용하면서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이긴 한 것 같다.

과연 VR이 대중화되는 순간이 오긴 올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반드시 와야만 한다는 믿음도 개인적으로 사실 없지만...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들과 열심히 개발된 컨텐츠들이 크게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은 든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생성형 AI에 의해 강하게 assist된 형태일 것이라는 확신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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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4일 수요일

프롬프팅을 통한 거대언어모델 설계원리 탐구에서 실험 디자인과 해석의 중요성

기술의 세부에 대해서는 잘 모른채로 그냥 상상해 보는 것인데, ChatGPT를 비롯한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LLM)의 특성을 얘기하기 위해 프롬프트를 넣어서 조사를 할 때, stylized output을 줄 수 있는 LLM의 높은 capacity를 고려하여 실험 디자인과 그에 대한 해석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LLM을 가지고 놀다 보면 자기 자신의 특성 및 설계원리를 근본적으로(?) 드러내어 주는 것처럼 보이는 출력을 내는 경우가 있다. 자기 자신이 ai로서 어떠한 특징을 갖게 설계되었다는 명시적 응답은, 개발자들의 의도에 맞게 하드코딩되거나 RLHF되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사용자들이 쉽게 할 수 있으므로 오히려 비교적 덜 속아넘어갈 수 있다. 그것보다는, 우연성에 강하게 의존하는 작업을 시킬 때 LLM 자신도 모르게 그런 설계원리를 드러내어 버린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특히 더 미묘하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점은, 그렇게 accidental하게 설계원리를 드러낸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조차 대부분 stylized output, 즉 매 dialogue마다 다르게 일종의 '컨셉을 잡은' 연기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즉 LLM이 제로샷 능력(더 구체적으로는 in-context learning 능력)에 힘입어 여러가지 처음 보는 과제 및 잘 정의되지 않은 과제를 수행하는 워낙 높은 capacity를 가진 탓에, 어떤 단일 dialogue만 보면서 그것이 다른 dialogue에 비해 더 근본적으로, LLM에 내재된 중요한 특성 탓에 광범위하게 나오는 결과라고 함부로 결론내릴 수 없는 듯하다.


세심하고 반복적인 프롬프팅을 통해 LLM이 가진 경향성을 탐색하고 성능을 최대로 이끌어내는 작업은 중요하고 흥미롭다. 그러나 실험자가 무엇을 보려고 의도해서 그것을 실제로 보았을 때, 단순히 그 담화 내에서의 연기에 속아넘어가는 게 아니라 LLM의 아주 일관적인 특성을 드러내었음을, 즉 소위 말해서 학술지식으로서 가치가 있는 '논문감'임을 입증하려면 실험 디자인과 해석을 굉장히 잘 해야 하는것 같다.


사실은, 본질(?)이 아닌 연기임에도 아무튼 그러한 연기를 이끌어내는 체계적인 프롬프팅 방법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좋은 성능이 나온다면 이 역시 의미있는 결과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 두 가지를 구별하기도 어렵다. 예컨대 특정 프롬프팅을 통해 LLM이 SAT 시험 문제를 훨씬 잘 풀게 되었다고 하면 (실제로 이와 비슷한 결과들이 굉장히 많다), 이것은 stylized된 연기라고 하더라도 아무튼 그 시험을 실제로 잘 풀게 된 것이며, LLM은 분명히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테다. 이는 의미있는 지식이 된다.


한편, 뭔가 도식이 한 군데 잘못되어 있어서, 일관적인 이상한 방식으로 시험문제를 틀리는 dialogue도 존재할 수 있을테다. 이런 컨셉을 수행하는 능력 역시, 설계 원리상으로 보면 어떤 failure라기보다는, 위 문단에서 서술한 시험문제를 잘 푸는 dialogue와 비교했을 때 꼭 그것과 같은 만큼 'LLM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고 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 매번 다르게 수많은 컨셉을 잡고 얘기를 할 수 있는데 (혹은 언제나 그렇게만 할 뿐인데), 그 컨셉이라는 것에 실제 전문적인 수준의 퍼포먼스를 발휘해 주는 것까지 포함이 되어 버리다 보니 LLM이 우리의 직관을 벗어나는 점이 많은 것 같다.


또한 유명한 ChatGPT 탈옥 방법으로 'pretend that you are a~' 따위의 프롬프팅을 통해서 부적절하고 위험한 결과를 내는 게 있는데, 이때 사용자는 겉으로 안 보이게 안에 숨겨져 있는 어떠한 능력을 uncover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사실은 그냥 LLM에는 구조상 '겉면밖에 없고', 때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겉면들을 보여주며, 그것들 중에 RLHF를 통해 금지해 둔 한 가지를 우회적으로 본 것일 뿐이라는 게 좀더 적절한 이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흔히 아이폰 같은 데서 얘기하는 탈옥과는 많이 다른 듯하다.
물론 by design 그렇다는 것이지, 능력의 어떠한 계층 구조가 자연스레 emerge했을 수는 있고, 그런 걸 탐색하는 것도 정말 재밌는 작업일 것이다.

아무튼 생명과학, 심리학 등 복잡한 대상을 다루는 실험과학 분야에서도 과연 연구자가 원하는 그 효과를 제대로 보고있는게 맞는지를 확신하기 위해 실험 디자인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LLM을 대상으로 한 실험들에서도 비슷한 면모가 있는 듯하다.
특히 LLM의 경우 시험문제 고득점 하는것처럼 명확한 척도가 있는경우도 있겠지만,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는 창의적인 과제에 대한 수행능력을 평가할때 일률적 정량화가 곤란한 semantic한 층위가 전면에 들어오다보니 더 미묘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연구문제 설정과 실험 디자인에 있어 생각을 아주 정밀하게 해야지만 믿을 만한 지식으로 정리가 될 듯하다.
아무튼 방대한 데이터와 심원한 아키텍쳐로부터 오는 LLM의 과제 수행능력이, 단순히 답을 잘 주는 걸 넘어 다양한 부문의 대화를 수행하는 데 이르는 것을 보면 굉장히 기분이 묘하다. 마치 사람이 직업상 아주 틀에 박힌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사적인 자리에서는 개인으로서 여러가지 입체적 면모를 가지고 말을 할 수도 있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는 수많은 종류의 텍스트를 학습한 덕분일 것이다.
이러한 LLM은 성능이야 무척 좋지만 결국은 과제별로 따로따로 학습해야 하는 전통적인(?) 딥러닝에 비해서도, 양적, 질적, 개념적으로 한 차례 도약해 있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서두에 말했듯 개인적으로 이쪽에 대해 주워듣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본 것들은 있지만, 제대로 된 전문적 이해는 없는 관계로 이 모든 내용은 상상에 불과하며, LLM을 평가하고 이해하기 위한 더 좋은 방법과 개념적 틀들이 이미 있을 존재할 것이다. 이들을 기회가 될 때마다 잘 팔로우업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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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0일 토요일

진영 스피커를 추종하는 정치, 그리고 질료적 퍼포먼스의 정치: 원전 오염수 논란을 보며

원전 오염수가 그렇게 안전하면 방류하지 말고 유용한 곳에 그대로 갖다 써서 증명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어디서 처음 퍼졌는지 서로서로 거의 비슷한 워딩으로 무척 여러 군데에서 보인다.

경험상 이런 건 우연히 다들 비슷한 논리를 생각한 게 아니라 공통된 소스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그럼에도 베낀 숙제와 직접 한 숙제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을 생각하면 쉽다.

그 소스는 주로 정치쪽 유명 스피커들이다. 사람들이 어디어디 방송에서 봤다고 얘기를 하지 않고 마치 원래 알고 있는, 혹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처럼 말하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안 보일 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반에 원래 젤렌스키가 누군지도 몰랐을 사람들(나 포함)이, 푸틴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에 젤렌스키한테 무능하다고 조롱하는 얘기를 어디 방송 같은 데에서 듣고 왔는지 다들 똑같은 얘기를 읊던 장면도 생각난다.

그때 그런 부자연스러운 얘기가 널리 퍼지게 된 건, 당시 대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를 젤렌스키에 비유해서 공격하기 위한 무리수였던 걸로 추측된다. 이러한 분위기에, 적극적인 반서방주의와 러시아에 대한 재조명을 표방해오던 대안적 진보 스피커들이 탑승해서 역할을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오염수를 유용하게 쓰는 것은 차라리 퍼포먼스성으로 일부러 몇 개 하려면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아니라 대대적으로 '실제로 써라', '쓰자고 하지 못하는 걸 보니 유해한게 맞을 것이다'라는 주장에는 내용 면에서, 그리고 효과 면에서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내용적인 부분을 보면, 이 오염수라는 것이 양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우리가 관심 있는 스케일에서 안정적인 공급이라는 개념 자체를 얘기할 수 없는, 어쩌다 생겨났고 한번 소모되면 끝인 말 그대로 폐기물같은 물 덩어리이지 수자원이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실제 사회 및 산업 각 부문에서 굳이 기존 공급처를 놔두고 그걸 쓰자고 전환해서 일이 그런식으로 돌아가게 될 하등의 이유도, 프로세스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해서 증명하라고 하는 것 자체가, 형식적으로 그 말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통쾌한 기분을 받고 끝나는 일종의 사이다 같은 것이고, 실제로 누군가에게 정합적으로 요구됨으로써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종류의 주장은 아닌 것 같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인데, 원전 관련 기관 및 회사들의 신뢰 확보는 그런 식의 질료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하라고 해서 진짜로 하더라도, 비용은 비용대로 낭비하고 코믹한 밈만 되고 말 것이다.

그런 건 늘 왜 코믹하게 느껴질까? 신뢰의 확보라는 문제는 지극히 세밀한 것인데 비해서, 질료적(?) 퍼포먼스를 통한 증명은 전근대적이고 무대뽀 같은 느낌이 있다는 걸 국민들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결국 사고와 위험성에 대한 정보를 국민 상대로 최대한 공개하고 설명해서 (이걸 안 한 게 아니고 나름대로 엄청나게 열심히 하는데 왜 와닿지 않는가에 대한 답답함은 백번 이해된다), 우리가 국민의 편이다 라는 신호를 실질적 실천을 통해서 발신하는게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쪽의 덧글들을 보니 비판의 방향을 또 틀게 되기도 한다. 사실관계와 숫자를 도대체 언제까지 설명해야 하냐며 국민의 무지몽매함(?)을 탓하는 부적절한 태도들이 많이 보여서 그렇다. 소통을 저해하고, 국민 편이라는 느낌을 못주는 이런 태도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이다. 전문가 집단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 늘 겪는 문제점 중에 하나다.

환멸을 표하는 그러한 태도 속에는 사실 '아무튼 나는 맞는 말 했으니 됐다'라는 느낌의 자기만족적 통쾌함도 섞여 있게 된다. 이는 상술한 반대진영의 태도와 겹쳐보이는 점이 없지 않다. 따라서 설득의 대상인 국민들을 도리어 탓해 버리는 그림이 나오며, 이로써 정작 설득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이렇다 보니 양 쪽 모두 덮어놓고 편들기 어렵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참 어려운 문제 같다. 게다가 국내 문제라면 사실관계를 놓고 서로 치열하게 싸워보면 되는데, 외교적인 문제다 보니 국가간의 체면 및 실익 문제까지 많이 얽혀 들어와 버려서 더 그런 듯하다. 결국 일본이 은폐, 거짓말 등등 지나치게 불투명하게 나왔던 것도 실제 위험성과 별개로 명백히 잘못됐다고 의견이 모이는 듯하고, IAEA가 오염수에 대해 아예 직접적인 검증도 할 것 같으니 어느정도 괜찮은 출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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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5일 월요일

사설업체들의 서울대 무단 캠퍼스투어 유감

돈 버는 방법도 참 다양하구나 하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요새 학교에 캠퍼스투어 오는 중고생들이 평년보다 눈에 띌 정도로 많아져서 기본적인 학교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가 되고 있다. 밖에 잠깐만 나가더라도 무조건 시야에 여러 팀이 보이고, 평년보다 최소 서너 배 이상의 인원은 되는 듯하다. 게다가 정문에서 법대, 사회대 사이 큰길의 인도 쪽 거의 전체를 인솔자들과 학생들이 채우고 있을 정도이다. 학생식당 줄도 너무 길어서, 점심시간인 1시간 이내에 정상적으로 이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이렇듯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사실 학교는 기본적으로 열린 공간이니까 투어를 운영하는 것 자체에는 별 생각이 없고, 사람 많아진 건 코로나 끝나서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아까 다른 일로 에브리타임 들어가서 보니까, 놀랍게도 이러한 대형 캠퍼스투어가 대부분 학교 측과는 무관하게 사설 업체에서 하는 것이고, 심지어 일부 구성원들이 학교 공식 홍보대사를 사칭해서 "수백명씩" 인솔하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많았던 것이다. 규장각이나 도서관에까지 단체로 들어가서 일장연설 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설 캠퍼스투어는 학생들의 대학에 대한 관심을 이용해서 돈을 번다는 점에서 광의의 사교육(?)이라고 보인다. 돈이 필요한 실제 서울대 구성원들을 이용해서 이런 식으로 사업 하는 것이겠지.

나는 학교 시설을 공식적 절차 (일선 중고등학교 및 교육청과의 협력 등) 에 따라서 중고생들한테 소개해 주고 하는 것은 공공성에 부합하므로 찬성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프로그램의 내용과 퀄리티가 보장도 되지 않은 사설 업체 영리를 위해서 학교 구성원들이 양보를 해주어야 하고, 학교의 시간적 공간적 자원이 이렇게까지 대규모로 쓰이는 것은 매우 적절치 않아 보인다.

아무튼 학교에서 국립대로서의 책임 때문에 제재를 적극적으로 못 하니까, 업체들이 아주 화수분 같은 돈벌이 수단을 잘 잡은 셈이다... 돈 버는 방법도 참 다양하구나 싶었다.
외부인 출입을 막지 않는 대표적인 논리가 세금이 들어가는 국립대라서 그렇다는 것이고 여기엔 사실 꽤 동의되지만 (그러나 상징성 때문에 여러 정신적으로 아픈 분들이 모이는 걸 생각하면 학생들 안전 문제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음), 그 세금의 목적이 학술진흥 및 교육 공공성에 있음을 생각하면, 사설 투어업체 제재 정도는 과감하게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설 투어로 인한 인원 과다 문제 이외에도, 요즘 들어서 학교가 기존에 겪은적 없는 수준으로 불편한 점이 요즘 너무 많아졌다. 생협(생활협동조합) 운영이 문제가 있는지, 운영하는 식당의 숫자 자체가 거의 2/3토막 났는데, 캠퍼스 내 인원은 위에서 언급한 사설업체 캠퍼스투어 포함해서 과다한지라 농식 두레미담 줄이 건물 바깥까지 온다고 하고,

학식 가격 또한 너무 비싸지다 보니, 원래 항상 제일 줄이 짧던 학B(천원의학식)이 이제는 학부생들의 기본 픽이라 늘 제일 길다는 얘기가 있고 (정작 난 요즘 채식뷔페에 정착해서 학식 줄이 긴지 어떤지 잘 몰랐다),

5511은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제일 몰리는 버스 노선인데, 신림선 개통되면서 두번에 한번씩만 서울대입구역 쪽으로 가게 되어서, 말이 격번이지 실질적으로는 두 대쯤 보내고 세번째쯤은 되어야 겨우 낑겨 탈 수 있고 (그냥 정문까지 걸어가서 타거나, 종점에 가까운 정류장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타는 게 나음),

단순히 코로나 때 사람 없었던 것의 역체감이라고 보기에는, 이전에 겪지 못했던 수준으로 불편이 심해지고, 사실상 하나의 도시 규모인 이 넓은 캠퍼스에서 원활히 유지되어야 할 것들이 하나도 유지가 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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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8일 월요일

aespa 'Hold on tight' 및 3rd mini album 《MY WORLD》 감상평

2023.04.25

코로나를 앓는 동안 유튜브로 이것저것 보다가 거둔 최대 소득은, Apple TV 영화 <테트리스>의 ost로 기획된 aespa의 'Hold on Tight'를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Youtube 공식 영상(visualizer): 링크, 잘 만든 팬 무비: 링크)

유명한 테트리스 테마(Youtube 영상: 링크)를 K-POP 느낌으로 무척 잘 어레인지한 것 같다. 에스파 특유의 사이버한 느낌을 잘 살린 속도감있는 진행이 마음에 들고, 테트리스와도 무척 잘 어울린다.
에스파가 이 곡으로 ost에 참여한 애플TV 영화 <테트리스>는 일종의 첩보전의 색깔을 가진 역사극 같은 것이라고 하는데, 아마 영화에 이 곡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노래는 에스파가 불렀지만 작곡 및 편곡 자체는 SM엔터테인먼트 쪽 관여 없이 영화 음악팀에서 한 것 같은데 케이팝 댄스곡의 스타일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여담이지만 에스파는 새 앨범 <MY WORLD> 발매도 앞두고 있어서 최근에 유튜브에도 티저를 올리고 공식 홈페이지인 에스파닷컴(https://aespa.com/)에도 나름의 에스테틱이 있는 간단한 인터랙티브 아트워크도 올려두고 있다. 수록곡들은 콘서트에서 이미 공개했다고 하니 팬들은 이미 들어본 셈이다.

SM엔터 내부 분쟁 때문에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던 준비기간인 만큼 어수선함을 감추게끔 잘 프로듀싱이 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5월 2일에 첫 곡이 선공개되고 5월 8일에 전체가 공개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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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8

이번 aespa 신보인 3rd mini album 《MY WORLD》는 준비 과정에서 SM엔터 내부 분쟁 때문에 광야 콘셉트를 급히 캔슬한다고 하길래 걱정을 했는데 그것치고는 그래도 괜찮게 뽑힌 것 같다. 회사가 어수선한 와중일 텐데 기본 이상의 프로듀싱 능력은 보여주었다는 느낌이다.


특히 'Welcome to MY world'랑 'I'm unhappy'처럼 immersive한 분위기의 느린 곡들과, 시시각각 변하는 래핑이 곡을 이끌고 가는 타이틀곡 'Spicy' 및 'Salty & Sweet' 같은 곡들 사이의 일관된 대조가 인상깊다 (아예 편하게 가는 후반부 몇 곡들은 논외로 하자).

후자의 스타일은 전전작인 'Savage'에서 이미 히트했기에 새롭지는 않은 반면, 전자는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것이다. 일단은 둘 모두를 에스파의 개성으로 끌고 갈 생각인것 같다.

또한 신난다고 해서 마냥 블링블링한게 아니라, 거의 SMP 느낌이 날 정도의 하드한 어레인지가 곡 곳곳에 살아 있어서 에스파 음악의 기존 팬덤에게도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결과가 될듯하다. 물론 곡이 그렇다는 것이고 비주얼과 콘셉트는 꽤나 현실세계로 내려오긴 했다.


전작인 《Girls》에서 동명의 타이틀곡은 개인적으로 정말 단단하게 잘 편곡된 멋진 곡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중의 반응이 크게 오질 않았던 반면, 오히려 꺾임과 빈틈이 있는 '도깨비불(illusion)'이 대중들 사이에서 꽤 흥했던 걸 보니, 곡이 전반적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진 것보다는 균형을 다소 상실하더라도 뭔가 확 와닿는 포인트들이 있는 게 흥행에 더 중요한듯하다.

타이틀인 'Spicy'의 경우 균형은 감각적으로 깨 두었는데 비해서, 착 감기는 킬링파트가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는지라 이런 면에서 흥행이 걱정이긴 하다.


정식 뮤비뿐만 아니라, 사실상 뮤비라고 봐도 되는 여러 비주얼 컨텐츠들도 거의 1곡당 2개씩 풍부하게 업로드가 되어 있다. 안그래도 어수선한 상황에서 투어랑 병행하면서 녹음 및 촬영을 했을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굴린 모양이다. 원래 기획을 거의 갈아엎는 수준으로 새로 한 모양이던데 이러니 멤버들 컨디션 난조가 안 생길 수가 없을 것 같다.

케이팝을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꼽자면 '감각적'이라는 형용사라고 생각한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송라이팅도, 케이팝에서는 리듬을 밀고 당겨서, 그리고 반음계를 재치있게 사용해서 뻔하지 않게 감각적으로 편곡되는 편이다.
예전에 TV예능 《놀면 뭐하니》에 이효리가 나왔을 때 유쾌하게 지적된 것처럼, 블랙핑크의 파라방팡 파라바라 팡팡팡이 사실 숭구리당당 숭당당과 크게 다를 게 없고 자칫 코믹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박자의 디테일 덕분에 매우 세련되게 들렸던걸 떠올리면 쉽다.

뉴진스와 르세라핌의 약진으로 스엠이 더이상 이러한 트렌드의 선두주자라고 보기는 어려워졌지만, 포스트 이수만 체제로 예기치 못하게 이행하는 지금 상황에서도 감각적인 프로듀싱의 기본이 당장 무너지지는 않았구나 싶다.
광야와 사이버 컨셉, 그리고 SMP로 대표되는 차갑지만 빡센 송라이팅은 미래적임을 자처하지만 사실 지극히 레트로한 것들을 레퍼런스하고 있으므로 언제까지 그것들로만 할 수는 없다. 제뉴인한 퓨처리즘을 잘 찾아서 제시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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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7일 일요일

이론물리학 지식 습득에의 미련에 관하여

공부를 하다 보면 앞으로 어차피 들여다볼 시간과 기회가 없을 법한, 그리고 내 연구와 직접 연결될 거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어렵고 멋있어 보이는 지식체계 및 이론들에 대해서 많은 미련을 가지는 편이다. 사실 특정 연구주제에 대한 전문성을 요구받기 이전인 학부생 시절에 그런 토픽별 공부를 깊게 해 두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했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어떤 교수님들은 박사과정 대학원생 때야말로 '공부'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간이라는 점을 강조하시며, 연구와 직접 관련있지 않더라도 궁금한 이론들이 있으면 지난(至難)한 계산들을 직접 해 보며 많이 습득해 두라고 조언을 해 주신다. 한편, 명확한 목적이 없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책을 독파하는 식의 공부는 가급적 지양하고 연구와의 관련성 하에서 효율적인 공부를 하며 연구에 집중하도록 조언을 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공부하는 속도가 빠르다면 위 둘을 모순되지 않게 병행할 수 있겠으나, 물리학과 내에서 보통 혹은 그 이하의 실력을 가진 내 입장에서는 유한한 시간이라는 제약 하에서 위 둘은 현실적으로 충돌하며, 이도저도 아니게 둘 다 가져가려 하기보다는 선택을 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결국 대학원생은 (특히 박사 수료 이후에는) 학생이라는 신분보다는 연구에 시간을 투입해서 논문을 써야 하는 예비 연구자로서의 신분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고, 나로서도 그러지 않으면 초조하기도 해서, 적어도 강령으로서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둘 수밖에 없다.


노력해서 습득할 수 있는 멋진 이론물리학 지식 체계 - 심지어 그것들은 수학적으로 기술되다 보니, 그저 체계적이기만 한 사상누각 같은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검증 가능하며 새로운 지식을 무한히 창출하는 것들인데 - 가 멀쩡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일일이 이해하고 싶다는 미련을 버리는 게 연구자로서 필요한 덕목일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 다니면서 제한된 시간 내에서 직접 부딪혀 보며 잘 납득하게 됐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와닿지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간을 들여서 그 지식들을 직접 공부 해내느냐 하면... 그러면 차라리 좋을 텐데 위에서 말했듯이 그것조차 아니다. 결국 능력과 시간이 부족해서 못 하면서 무의미한 미련만 계속 생기는 것 같다. 여러모로 내 여건과 능력 하에서 공부해 볼 수 있는 것들의 한계를 인정하고 미련을 버리면서 지혜롭게 치고 나가는 태도를 마음 깊이 내면화해야 할 것 같다.


잠깐 대학원생의 이러한 자세한 사정을 차치하고 조금 더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지식 추구'로서의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입신양명을 지향하는 일반적인 범주의 학업을 넘은, 지식체계에서 보이는 개념들의 탁월성과 이론의 미묘한 정합성들에 매료되어서 여기에 천착하는 태도가 과연 인생의 팔자에 도움이 되는가를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혹은 성공을 할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는데, 그러나 이것은 사실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범주의 학업까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만약에 공부가 깊어져서 건전한 지식을 생산하면서 학술 장을 유지하고, 생산되는 지식을 사회에 공급하거나 사회와 견주어 보는 지식생산 노동에 이르게 되면, 공부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팔자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도 않고, 관심을 가지더라도 주로 그다지 좋게 보는 쪽은 아닌 것 같다. 결국 한국 사회는 공부라는 것의 수량화, 실용화 가능한 외피와 그로 인한 성취지위에 관심이 많을 뿐, 개념들을 치열하면서도 재미있게 부딪혀 보며 갈고닦는 작업으로서의 공부의 '내용' 혹은 '과정'으로 논의가 확장되는 순간 사람들의 관심은 사라지는 듯하다.


그런데 나처럼 내가 현실적으로 소화하기 어렵고 연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들에 미련을 갖고 굳이 들여다 보려는 경향을 갖는 사람은, 이러한 지식 추구에의 무관심, 공부의 입신양명 도구화 경향으로부터도 분명히 배울 점이 있는 듯하다. 관심을 가질수록 오히려 시간만 과다하게 투입하면서 연구의 현장과 유리되는 경향이 생기므로, 그러지 말고 내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고 또한 그러기를 요구받는 도구들 내에서 보편적 독자가 재미있어할 만한 문제 설정을 해서 빨리빨리 풀어 내는 것이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식추구 라는 가치에 지나치게 매몰되기보다는, 결국 현재의 내 status에서 부여받은 역할(주로 지식생산)을 하는 것인데 그 역할이 우연히도 사회 평균보다 지식추구와 조금 더 많이 관련되어 있을 뿐인 셈이다.


재밌었던 것은 가족들에게도 이러한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건 원래 그런 건데 이제야 알았냐고, 15년째 나에게 똑같은 얘기를 했다고 하셨다. 공부뿐만 아니라 평소 생활에서의 문제해결 능력 면에서도, 본인이 감당하지 못할 거면서 어렵고 답답하고 오래걸리는 길을 가려는 경향이 있어서 늘 걱정을 했다고 하신다.

아무튼 일을 하는 데에 있어 내 이러한 경향을 적당히, 효율적으로 활용해서, 내가 다룰 수 있는 이론적 도구들의 범위를 넓혀 가면서도 내 연구라는 명확한 목적 하에 생산적으로 복무시킬 수 있다면 가장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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