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게시물 목록

2020년 2월 29일 토요일

새소년 예찬

밴드 '새소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8년 초의 동아리 MT에서 누군가가 '긴 꿈'(2017)을 틀어 주었을 때부터였다. 실은 그 이후로 1년 넘게 이 밴드를 알고만 있었다가, 리더 황소윤의 솔로 앨범을 친구의 소개로 듣고, 우연히 접한 아리랑TV I'm Live 영상 및 EBS 스페이스 공감 영상을 보면서 2019년 후반의 1, 2달 사이에 새소년, 그리고 황소윤의 활동들에 급격히 매료되어 버렸다.

근래 유행하는 복고적 분위기와도 통해 있으며 그러한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새로운 음악을 하며 새로운 물결을 창출하는 새소년만의 특성은 그들이 가진 탄탄한 음악적 배경과, 그 위에 올리기에 걸맞는 전복적 사유 덕분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 '고양이'(2019, '시인과 촌장' 원곡) 리메이크에서 그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새소년스러움 가득한 편곡, 전복적이고 감각적인 뮤직비디오 연출은 새소년의 팬임을 자랑스럽게 느끼게까지 한다.



밴드 새소년의 음악과 함께 리더 황소윤의 유니크한 보컬, 악기 연주 그리고 스타일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이 컴플렉스였다고 언급하기도 한 황소윤의 목소리는 그의 특유한 표현 방식과 결합되어 무대를 가득 채우는 보컬이 된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황소윤이 작곡자 김현철의 피아노 반주 하에 노래한 이소라의 <난 행복해>에서 그러한 보컬의 매력과 역량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여기에 더해지는 황소윤의 스타일, 퍼포먼스 등을 보면 노래과 연주를 아주 잘 하는 데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무대 위에서 공연이라는 형태로 어떻게 더욱 멋스럽게 전달할지를 너무나 잘 알고 구체적인 신체적 표현과 동작의 레벨에서 발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황소윤과 밴드 새소년이 가지고 있는, 세상을 구하러 온 것 같은 따뜻한 카리스마는 그들에 대한 현장의 열광적인 반응과, 유튜브 영상에 남겨지는 '주접' 덧글들의 선명한 원인이 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새소년과 황소윤의 좋은 곡들이 정말 많지만, 특별히 내 마음에 들었던 곡은 바로 황소윤의 솔로 앨범 <So!YoON!>(2019)에 수록된 'FOREVER dumb(feat. SAM KIM)'이다. 원래 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잘 몰입하지는 못하는 편인데, 이 곡은 이상하게도 처음 듣자마자 가사 한 줄 한 줄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정확한 뜻을 말해 내기는 어려움에도 왜인지 모르게 주파수가 맞아 버린 그러한 신선한 경험이 좋았고, 멜로디도 너무나 좋아서 자주 듣고 연주하며 부르는(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곡이다. 2020년을 맞이하는 순간, SNS에 '올해의 첫 곡'을 골라서 올리는 이들이 많았다. 나의 '올해의 첫 곡'은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이 곡이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EP <비적응>(2020)도 인상적이다. 타이틀곡인 '심야행'을 비롯한 수록곡들은 귀에 익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그 다음부터는 무척 재미있게 듣고 있다. 황소윤 본인이 언급했듯이 황소윤의 솔로 앨범에서는 주로 보컬이 앨범을 관통하는 데 비해, 새소년의 <비적응> EP에서는 밴드 연주가 각 곡의, 그리고 앨범 전체의 몰입감 강한 분위기를 유지하며 이끌어가는 면이 있다.

특히 타이틀곡인 '심야행'은 그 제목과 가사가 주는 이미지가 함께 작용하는 탓도 분명히 있겠으나, 곡 자체도 무언가 질주하는 느낌(그 때문인지 말 그대로 '달리는' 곡이 될 가능성도 많이 보인다)과, 빛 덩어리가 부유하는 느낌(?)을 상상해 볼 때 무척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평소에 미디어를 다소 관성적,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편이고 적극적으로 디깅하는 편은 아니어서,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팬심의 단계에 이른 것은 손에 꼽는다. 그래서 새소년 덕분에 오랜만에 경험하고 있는, 자꾸만 그들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고 싶게 만드는 팬심의 감각이 신선하다. 그러나 나의 미약한 언어로 그들이 제공하는 풍부한 경험의 가능성을 어떻게 충분히 담아낼 수 있겠나. 전부터 알았지만 뒤늦게서야 -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낼 물결에 비해서는 뒤늦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 빠져든 만큼, 앞으로도 이들의 활동에 꾸준한 관심을 갖고 보다 실질적으로 참여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재키와이와의 'FNTSY' 합동 무대도 언젠가는 보고 싶다.


*산발적으로 쓴 팬심의 기록들을 합치고 일부 내용을 추가한 것임.
Facebook에서 보기: 링크1, 링크2, 링크3

2019년 12월 14일 토요일

어르신 짤: 아우라의 귀환과 공적 권위의 인식

  어제 청와대 SNS에 '어르신 짤' 양식으로 예산안 홍보물이 게시된 것을 보고 단순히 키치적 유행에의 때늦은 영합인 줄 알았는데, 청와대 공식 유튜브에 따르면 이는 실제 그 밈의 유래가 된 방식으로 어르신들이 복지관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외형적으로는 서로 구분되지 않는 문화적 산물들도 그 생산의 과정이 다름으로 인하여 전혀 다른 맥락으로 수용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배경 일화는 흥미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대중적인 것, 사적인 것, 공적인 것이 이 일화에서 서로 묘하게 겹쳐서 드러나므로 종합적으로 사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 짤' 밈은 그것과 외형상 비슷하면서도 결이 상당히 다른 '망한 PPT 밈'과 함께, 키치적 유행 중에서도 특히 실패하기 쉬운 종류에 속한다. 그리고 그러한 실패에는 어김없이 권력 혹은 권위의 문제가 개입하고 있다. 만약에 위와 같은 배경을 몰랐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간주할 수밖에 없듯이, 어르신 짤 밈에 SNS 담당자가 단순히 영합하였을 뿐이라고 (잘못) 가정해 보자. 키치적인 것 중에서는 공적 권위에 의해 추인됨으로써 더욱 빛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있으나, 그렇지 못한 것들도 많이 있는데 그러할 경우는 전형적인 후자의 사례로써 사람들에게 실소를 유발할 것이다. 심지어 그러한 실패는 공적 권위의 최종 심급에 위치한 청와대에 의한 것이므로 한국 내에서 원리적으로 가장 강력한(...) 실패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아래 링크된 기사에서 보듯, 실제로는 달랐다. 일단 청와대 홍보 담당자가 이러한 '어르신 짤'들이 밈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채로 기획을 했다는 것을 전제하자. 그렇다면 이러한 기획은 공적 권위라는 측면에서 끝판왕 급인 청와대 스스로가 그러한 유행의 원조를 추적하여, 사실은 그러한 키치적 유행의 원조는 임의의 대중이 아니라 특정한 프로그램들에 있는 것이었고, 그것도 다른 게 아니라 어르신들 대상의 복지 프로그램이라는 지극히 공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아우라를 귀환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서 특기할 점은, 복지관 현장에서의 생산 행위와 결부된 아우라가 귀환할 때, 복지관으로 대표되는 복지 제도를 유지하고, 또한 그러한 제도를 홍보할 수 있는 정부라는 공적 주체의 거대한 힘에 대한 인식 역시 은은하게 따라온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논할 점은 결국 위 논의의 연장선 상에서 도출되는, 궁극적인 구분 가능성의 문제이다. 위에서 전제하였듯이 밈적으로 소비되는 것을 인지한 채로 진행된 것이라면 결국 키치적 유행을 공적 권위에 의해 전유하는 점은 다를 바 없는데, 그 유행의 근원이 사실 공적인 것에 있었다는 점에 의해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해진 것뿐이다. 과연 대중적 유행에 맞서 있는 모멘트로서 아우라를 복귀시킨 행위라는 점에서 궁극적인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는 공적인 것들도 사실 처음에는 사적인 것들로부터 시작했다는, 언뜻 잊기 쉬운 사실에 대해 세밀하게 살펴봐야한다.

  나는 어르신들이 짤을 만들면 자동으로 이러한 양식으로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강사들의 강의 내용, 축적된 샘플, 그리고 어르신들의 성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러한 양식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내는 체계가 확립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양식은 따지고 보면 결국 '우연히' 공적 영역에 포함되어 있었을 뿐 어디까지나 '특정한'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식별하기 쉬운 이러한 양식의 존재를 통해, 결국 공적 권위라는 것은 처음부터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이고 특정한 무엇인가가 공적 권위에 의해 선택되어 제도의 틀 속에 편입되는 데 성공함으로써 확보되는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러한 선택행위는 홍보 담당자의 홍보 방식 선택행위와도 겹쳐 보인다. 권위에 의한 선택에 따라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추인되는 사태가 한 번은 공적 권위의 말단인 복지관 현장에서, 한 번은 공적 권위의 최종 심급인 청와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중화된 구조인 것이다.

  공적 영역은 언뜻 생각했을 때 '상징'이라는 키워드와 거리가 멀어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는 않다. 특히 청와대 정도 되면 모든 활동 하나하나에 타의적으로 의미가 부여되므로, 상징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많은 상징들을 자의적으로 스스로의 내부에 포섭함으로써 적재적소에 메시지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공적 가치일 수도 있다. 현대 국가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권력에게 기대하거나 권력이 자처해서는 안 된다는 데 동감하지만 그것은 의례 행위 그 자체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추어지면 안 된다는 주장이라고 생각하며, 의례에 활용되는 양식의 선택과 공적 영역으로의 포섭 과정이 사실 수많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문제의식의 총화와도 같음을 고려할 때 권력이란 어떤 면에서 여전히 현대에도 어느 정도 제사장과 같을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19년 12월 6일 금요일

만물상 예찬


금강산에는 만물상이라고 이름붙여진 일군의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높이 솟은 복잡다단한 기암괴석들이 마치 세상의 만물을 다 모아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곱씹어 볼수록 무척 마음에 드는 작명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조각되어 있는 바위산이 존재한다는 상상은 그 풍광의 장엄함을 보면서 느껴지는 숭고감을 설명하기 위한 표현인 동시에, 그 자체로 무척 매력적인 동양적 숭고함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걸 조금 비틀면 보르헤스적인 발상이 연상되기도 하며, 또 다르게 비틀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이토 준지(!)스러운 기묘한 상상력과도 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여러모로 풍광에 대한 즉물적 감탄 그 이상의 많은 영감을 주는, 절경에 걸맞는 멋진 찬사라고 생각한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2019년 11월 19일 화요일

유진박에 대한 생각

마미손의 신곡 <별의 노래>에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피처링을 한 것을 알고 뮤직비디오를 찾아봤다. 놀라운 아이디어이고 멋진 콜라보레이션이어서 인상깊게 들었다. 특별히 우월한 입장에서, 혹은 특별히 비참한 입장에서가 아닌, 그냥 많이 울어 본 한 명의 사람으로서 건네는 말처럼 느껴지는 "괜찮아 울어"라는 가사는 마미손과 유진박의 대화 같기도 하고, 그들이 청자에게 건네는 말 같기도 하다.

유진박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형용하기 어려운 많은 감정이 든다. 이것의 이유로는 그가 선보여 온 음악이 주는 감동도 감동이지만, 그의 재능과 성향, 그리고 겪어온 삶에 대하여 내가 머릿속에 만들어낸 어떤 인상이 강하게 작용함을 부정하기는 어렵겠다. 그러한 감정들이 팬심의 동력이 되는 것이 틀림없지만 그것들 자체에 과도하게 집중하기보다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유진박의 행복한 삶과 멋진 음악생활을 기대하고 응원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유진박에 대한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을 종종 찾아보곤 하는데, 유진박은 대체로 자신에 대해 말을 많이 하고 싶어하는 편은 아닌 것 같다. 추측이지만 그가 좋지 않은 일을 여럿 겪었다는 사실과 별개로, 언어 문제를 위시하여 사람들이 그에게 느끼는 약간의 낯섦 탓에 그의 이러한 성격이 특정한 방향으로 규정되고 개념화됨으로써 부풀려져서 소비되는 점도 어느 정도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겪었던 좋지 않은 일들을 조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과거의 방송들을 보면 낯설고 기이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 내레이터에 의해 종종 언급되곤 한다. 사람이 망가졌지 않냐, 도움이 필요하다 라는 식으로 시청자를 설득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 그 점이 영 편하지만은 않다. 유진박은 사건사고를 많이 겪었고 그러한 시절이 마치 긴 터널을 지나온 것처럼 타인 혹은 스스로에 의해 규정지어질 수도 있지만, 그는 어찌되었든 매일매일 그의 삶을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것이다.

유명인에 대해 모든 종류의 답답함, 명쾌하지 않음을 견디지 못하고 특정한 개념을 동원하여 규정짓고야 마는 것이 대중의 속성이다. 그러나, 정서적 문제를 겪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의일지라도 캐물어 가며 너무 많이 알고자 하는 것이 도움이 별로 안 될 때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명인과 대중의 관계에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에게 무리가 되지 않는 방식과 수준에서 의사소통을 지속해 가는 것이 건강한 관계가 아닌가 한다.

여하튼 유진박이 매체에 하는 말의 양에 비해 그에 대한 궁금증은 너무 많다보니, 그에 대한 기억과 단편적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많은 지레짐작을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략 '잊을 만 하면 방송에 나오는 비운의 천재' 정도의 이미지로만 소비되어 온 몇 년을 거치면서도 그의 음악세계는 엄연히 활발하게 살아 있으므로, 앞으로는 유진박 본인의 의사와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는 배려 있는 매니지먼트를 받으며 그러한 부분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 내가 제일 자주 듣는 유진박의 곡은 바이올린 연주만큼이나 보컬의 비중이 많은 "Do it in the dark"(링크)라는 곡이다. 애수가 느껴지면서도 솔직담백한 특유의 분위기가 일품이니 꼭 들어 보시기를 권한다. / 이번 콜라보레이션에 대한 마미손의 인터뷰(링크)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의 맺음을 대신한다.

"저도 처음에 유진박 형님에 대한 인상이, 안타까운 일에 대한 솔직히 동정심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당연히 그런 맘이 들잖아요. 만나뵙기 직전까지도 제가 작업 제의를 하고 이렇게 부탁을 드리는 것도 형님께 어떠한 형태로든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고. 만나 뵙고 나서 그게 굉장히 내가 오만한 생각이었고 굉장히 건방진 동정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TV나 이런 데에서 비친 것처럼 그 일 자체는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 맞잖아요? 거기에서 우리가 받는 어떤 감정만큼 형님께서는 불행하지 않으세요. 오히려 공연 어떻게 할까, 바이올린 녹음할 때 잘 했나 못 했나 이런 게 주된 고민과 걱정거리고 관심사고, 음악 안에서 너무 행복하세요, 형님은, 제가 만나서 느낀 바로는.

그래서 제가 처음에 가졌던 그런 감정들이 굉장히 얄팍했다고 느꼈던 거였고, 제가 작업 같이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대중들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우리가 이렇게 얄팍한 동정심으로 이 사람을 바라보면 안 되겠구나, 오히려 음악 안에서 지금 행복해하고 있구나, 그리고 앞으로도 더 행복해질 것 같아 보인다라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19년 10월 14일 월요일

조국 사태가 남긴 것

1. 여러모로 애매한 사퇴의 시점
  소위 '조국 사태'의 시작은 대략 지난 8월 중순부터였을 것이다. 자녀 입시 및 장학금 문제, 사모펀드 문제 등 일반인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조 장관 일가의 특권들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어느새 엄청나게 커졌다. 장관 후보 한 명의 인선 문제가 정권 최중요 인물 급의 거대한 논란으로 점화되어 버렸고, 전방위적 검찰 수사도 진행되었다. 서초동과 광화문에 많은 인파가 운집해서 지지 집회와 규탄 집회를 했다. 검찰개혁의 선봉장을 자처한 후보가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됨으로써,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의의 도식이 크게 꼬이기도 했다. 따라서 어쩌면 조 장관은 처음부터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책임지기에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조국의 사퇴는 한편으로는 너무 늦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조국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총선 부담 등에 따른 연말 사퇴설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논란에 따른 국민적 분열을 감수하고까지 임명된 바, 상처를 감수하고 검찰개혁 특임장관(?) 느낌으로, 검찰개혁안을 어느정도 제도화 선상에 올려놓고 난 뒤에 퇴진한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최선의 정국 수습방안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아직 어떤 것도 불가역적으로 실시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조 장관은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예상보다도 더 빠른 오늘 사퇴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의 사퇴는 너무 일렀다.


2. 검찰개혁의 딜레마: 공은 누구에게 넘어갔는가
  솔직히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그 요체가 쉬이 잡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법무부 개혁위 측과 검찰 측으로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조치들은 부족하나마 괜찮은 방향의 것들이니, 궤도에 잘 올려놓고 나서 사퇴하는 것이 더 책임 있는 모습일 수 있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힘든 것이야 이미 지난달부터 계속 그랬을 테니, 검찰수사 관련해서 새로운 국면이 있거나, 여당 쪽에서 사퇴 압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임명 과정에서 국론 분열은 될 대로 되고 본인과 주변 역시 망가졌는데, 숙원이었던 검찰개혁 조치를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기한은 가진 뒤 사퇴하면 안 되었나. 검찰개혁이라는 의제 자체도 그렇지만, 국민에 대한 책임의 측면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검찰개혁의 선봉장이 바로 검찰의 전방위 수사 대상이라는 기막힌 사태에 의해 전선이 복잡하게 꼬여 버린 상황에서 조 장관의 사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수사가 장기화되는 와중에 장관 발 검찰개혁도 계속된다면 결국 실제의 의중과 별개로, 두 가지 사안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이라는 보편적 의제를, 조국 수호라는 특수한 의제로 축소시켜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사퇴와 같은 결단이 필요했다(이는 조 장관의 입장문에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기도 하다). 다만 그 옵티멀한 시점은 지금보다 좀더 나중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아쉽다.

  서초동 집회에서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이 동시에 외쳐진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검찰개혁 필요성'이라는 보편적 의제가 '조국 사퇴 트라우마로 인한 검찰개혁 필요성'으로 인식되면서, 보편성을 잃고 세력 간의 복수와 같은 개념으로 축소될 것 같아서 나는 두렵다.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개혁의 과정에서는 세력끼리 치고받으면서 승기를 점하는 구도가 어느정도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목표는 '자신들의 승리'가 아니라 제도의 올바른 구현에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 장관은 사퇴했고, 검찰개혁이라는 의제는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긍정적으로든 냉소적으로든 국민 일반에 확실하게 각인되었으니, 그 구체적인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책임이 붕 뜨면서 국민 전체에 공이 넘어가 버렸다. 지금까지 나온 개혁안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국민적 논의가 충분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3. 윤석열 총장의 딜레마: 검찰개혁을 완수해야만 하는 이유
  모두가 망가지고 있는 이번 국면에서, 최근까지 그나마 제일 '정석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물론 윤중천 관련 의혹보도는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하겠다). 권력의 핵심인사일지라도 전방위 수사를 한다는 점, 그리고 임명 취지대로 꽤나 과감한 자체 검찰개혁 방안들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과 같은 이상한 상황에서 그런 '정석적인' 행보를 밟았기 때문에 윤 총장의 의중을 짐작하고 해석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면이 있다.

  검찰이 기존엔 이 정도로 현 정권 핵심 인사를 날카롭게 겨누어 전방위 수사를 한 적이 잘 없다는 것, 그리고 하필 윤 총장 임명 후 첫 대형 이벤트가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였다는 두 가지 우연(?) 때문에, 조국 지지자들에게 윤 총장은 적폐청산 검사에서 순식간에 적폐 검사로 낙인찍혔다(참고로 어린이들을 동원하여 윤 총장 등을 모욕하는 동요(?)를 만든 '주권TV' 채널은 조 장관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트롤러(...)라고 할 만한, 전혀 다른 성향의 채널로 보이던데 동질적으로 취급된 점이 아쉽다).

  윤석열 총장이 검찰 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검찰을 비호하고자 하는지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고 시대가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청와대에 조국 임명 철회를 건의하고자 시도했다는 설, 그리고 조국 수사 개시 전에 '이러다 정권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라고 사석에서 말했다는 설이 사실이라면, 그 말은 현재 국면에 대해 그가 가진 생각을 어느정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엄중한 사안이고 문제가 될 사안인 만큼 검사로서 수사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합당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 장관의 혐의와 별개로, 언론에 수사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지극히 잘못된 관행도 역시나 볼 수 있었다. 그런 일을 한 일선 검사들과, 윤 총장을 동질적인 행위자로 봐야 할지 이질적으로 봐야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전자라면 윤 총장도 결국 검찰 기득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검사인 것일 테지만, 후자라면 검찰 수사의 잘못된 관행이 아직 청산되지 않은 것일테다. 자극적 보도는 언론의 속성이다. 그러나 그 소스를 제공하는 검찰의 수사정보 유출은 청산되어야 할 관행이다. 일반적인 수사도 정치검찰의 모욕주기로 보이게 만드는, 아니, 스스로를 실제로 정치검찰로 만드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검찰이 다른 세력,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강력한 기준을 보여준다면(그러면서도 포토라인 폐지, 수사정보 흘리기 금지 등 개혁조치는 유지된다면), 윤 총장의 행보는 모두에게 비교적 긍정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비교적 건실한 정권의 핵심인사를 겨눈 전방위 수사가 이번으로 일회적인 데 그친다면,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재 친문 지지자들의 실망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 총장은 더욱더 임기 중에 검찰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야만 하게 되었다. 용의자 인권 보호와 같은 조치는 물론이고, 눈치를 봐서 수사를 안 하거나, 타겟을 잡아서 표적수사를 하는 등의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고 공명정대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4. 기타: 권력과 특권을 성찰하자
  내가 생각하는 현 정부여당 집권층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들 권력은 진짜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특유의 태도이다. 김정호 의원이 공항 직원에게 갑질하면서도,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가 아닌 저항적 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상징적 장면이다. 또한 김의겸 대변인 사퇴 때처럼, 중요 기관 관계자들의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들이 자꾸만 보도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발언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최근 '조국 사태' 국면에서도 이러한 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알릴레오 인터뷰로 며칠간 화제의 중심이었던 유시민 이사장은 자신을 유튜브 언론인이라고 자칭하면서 '나한테 무슨 권력이 있냐'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조국 관련 폭로를 하자 전화를 걸어서 노골적인 압박을 하면서도 그것이 압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국 장관 본인이 일가를 수사하는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걱정되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수도 있지만, 논란 당사자이자 잠재적 수사대상인 실권자로서는 결코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나치게 잘 행사하면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되지만, 자신의 권력이 권력인 줄 모르면서 행사하면 추한 존재가 된다. 다들 본인의 권력을 인지하고 자중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조국 일가에 대한 논란, 특히 입시 및 장학금과 관련되어 대두된 공정성 담론이다. 조국 자녀 논란은 웬만큼 지위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도 상상도 못할 일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명문대라고 하는 곳들에 있는 많은 기회들도 일반적으로는 제도의 형태로 포장되어서 주어지는 것이지, 조 장관의 자녀처럼 관계자로부터 특별하게 케어받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공정성' 담론은 주로 공정성에 그치며, 특권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까지 도달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겠다. 결국 공정성을 위해 입시 등의 과정에서의 각종 제한과 감시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 입시를 물질적으로 추동하고 있는 기회 자체의 불균등함까지 해소해야 한다. 교육 기회의 확대와 동시에, 각급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들에서 특권적 색채를 지우고 공공성을 강화하여 그 기회가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 오세정 총장이 구성원 특혜에 대한 성찰과 공공성 강화의 일환으로, 고교와 교육청을 통해 신청할 수 있는 인턴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지인 통해 알음알음 인턴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여 소득 장학금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늦었지만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성에 대한 고민은 정해진 룰 하에서 반칙이 있었는지의 여부뿐만 아니라, 룰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데까지 도달해야 한다.

  끝으로, 스누라이프 인용해서 기사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들인데 언론을 타면서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으며, 눈치를 봐야 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기사화가 꾸준히 된다는 사실 자체가 특권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19년 9월 12일 목요일

휴먼아시아 청년인권활동가 워크숍 참여 후기

  여름방학 동안 휴먼아시아 청년인권활동가 워크숍에 참여했다. 이주민 인권 문제 및 상호문화교육 방법론 관련해서 이슈들을 빠르게 따라갈 수 있도록 7월 한 달 동안 활동가 분들의 수업을 집중적으로 들었고, 중고등학교에서 강의할 나름대로의 강의안을 만들어서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는 시간도 가졌다.

  8월 동안에는 현직 교사 분들의 피드백을 받았고, 각 조별로 자율적으로 모여서 강의안을 마저 개발했다. 학교라는 기관에 가서 수업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인권교육 강의안을 구성하려다 보니 고려해야 할 점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래도 많은 분들께 피드백 받으면서 내용을 어찌저찌 구성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조원들 파트가 워낙 좋았어서... 여튼 8월 28일에 서울 중화고등학교에서 <이주인권교육: 세계시민적 관점으로>라는 제목으로 밀도있는 수업을 마쳤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학생분들이 잘 따라오지 않았나 싶다.

  수업이란 걸 할 때 단순히 내용 구성뿐 아니라 그걸 어떻게 전달할지, 어떤 태도로 전달해야 오해가 없을지 등에 대해 다같이 고민해본 두 달이었다. 다수 청중 앞에 서서 말하는 걸 힘들어하면서도 늘 잘하고 싶어하는지라, 내 개인적으로도 배움과 도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19년 9월 9일 월요일

사변적 이론체계의 힘에 대하여: 이우창 선생님의 글을 읽고

아래에 소개할 이우창 선생님의 글은 매우 매우 중요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사변적 이론체계를 대하는 연구자의 메타적 태도와 관련하여 내가 지난 수 년간 막연하게 가져 왔던 문제의식의 상당 부분이, 이 글에 명료한 언어와 적확한 예시를 바탕으로 제시되어 있다.

거대도식이 제공하는 미적 매료와 강한 설명력의 뒷면에는 많은 비약과 디테일의 생략, 목적에 복무시키는 경향 등이 있음을 습관적으로 기억하면서 그것을 조심스레 다루어야 할 것이다. 사변적 상상은 대범하고 유쾌하게, 내딛는 발걸음은 엄밀하게....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19년 8월 29일 목요일

서울대의 미래: 결국 구성원의 실천만이 신뢰에 기여할 것

  학교 안에서 지켜본 바로는 트루스포럼이라는 기독보수 집단과, 현재의 비운동권 총학생회 및 그 주변 사람들은 그 기원도, 정서도, 활동도 매우 다르다. 그런데 최근에 캠퍼스가 정치계와 언론의 주목을 받는 과정에서, 캠퍼스 외부의 조국 후보 지지자들에게 그 둘이 비슷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특히 김어준은 서울대 집회를 주최한 곳이 바로 트루스포럼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트루스포럼의 성격을 이해하는 건 단지 일개 캠퍼스 내의 문제가 아니라 중앙정치에서의 세력 구성에 대한 이해와도 약간은 연결이 되는 문제라서 김어준 같은 사람이 모를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왜곡을 위해 그 차이를 일부러 뭉갰거나, 아니면 애초에 자세히 알아보지조차 않은 것 아닐까 싶다. 왜곡에 따른 반발이 있더라도, 공격은 어차피 효과적으로 먹힐 것이므로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이전에 나는 2010년대 초반의 청년보수가 박근혜 탄핵 이후로, 트루스포럼 류의 기독보수와 유튜브 채널 등을 함께하면서 어떤 면에서 실질적인 교집합을 형성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탄핵 이후에 등장한 '보리수'(?)에게선 그런 현상을 직접 관찰하지는 못했다. 또한 스스로는 비정치적임을 선언하지만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보리수(?)와 종종 유사하다고 간주되는 현 비운동권 총학생회 역시 그렇다(다른 관찰들이 있다면 댓글로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 정치적 공세 국면이라 가려지는 면이 있어서 이런 건데, 역사적 기록의 측면에서 보면 서로 명백히 다른 집단들을 좀 더 자세하게 나눠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글은 순전히 내 감상을 적으려고 쓰는 것이지, 누군가를 두둔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캠퍼스에서 내가 직간접적으로 체험해 온 얘기들이, 캠퍼스 밖의 국가적 정치 이슈 속에서 계속 호출되고 있는 현재의 상태가 매우 흥미롭긴 하지만 다소 혼란스럽고 두렵다는 느낌도 있다. 학내 정치가 갑자기 훨씬 더 크고 무서운 중앙정치의 관심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컨대 강용석이 취재하러 온 것도 그렇다.

  조국 교수 논란과 그에 따른 시위를 거치면서 서울대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구체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느낌이다. 이렇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 해서 혜택을 누린다는 식의 막연한 전통적 도식(주로 입시생들 동기부여에 자주 쓰여 온)은 통하지 않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는 것인지, 또한 그것이 왜 정당한지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낼 것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이 학교 사람들의 많은 수가 상대적으로 큰 사회적 혜택을 받아 왔고, 사회적 시선도 많이 쏠린다는 것을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 이 논란 이후에 적폐 집단이라는 식의 인식이 자리잡지 않기를 원한다면 누구의, 어떤 지혜가 필요한 것일까. 아니, 그게 과연 누군가의 지금 당장의 지혜만으로 해결이 가능한 것이기는 할까. 결국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증명해야/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많은 생각이 든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19년 8월 24일 토요일

학부 졸업을 앞두고

학교는 대학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카데미에 원활히 편입될 수 있도록 많은 자원들을 제공한다. 인턴 같은 기회가 대표적이다. 학부 오래 다니면서 복수/부전공, 수업, 동아리 등 후회없이 하긴 했지만, 그런 걸 충분히 활용 못 한 건 아쉽다. 돌아보면 그때 그냥 하면 됐지 싶은데, 당시에 그게 막막하게만 느껴졌단 건 내 시야가 그 정도였다는 것이겠다.

그래서 뒤늦게 졸업논문 쓰기 시작했지만 재밌게 진행을 했다. 전기과에선 control theory 쪽으로 했는데(Stability Analysis for Newly-proposed Distributed Kalman Filtering Algorithm), 물리학, 응용수학 쪽에 관심이 있다고 하니까 교수님께서 관련된 주제 추천해 주셔서 재밌게 할 수 있었고, 이게 지금의 희망분야 선택에 큰 계기가 되었다. Multi-agent system의 collective behavior를 다루는 수학적 framework는 제어이론에뿐만 아니라 물리학의 일부 분야에까지 공유되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가져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리과에선 멱법칙, 상전이 쪽으로 주제 잡아서 진행을 했고(Power-law Degree Distributions and Percolation Phase Transition Characteristics of 3-dimensional Weighted Stochastic Lattice), 막판에 조교님이 코딩도 많이 도와주시고 글쓰기도 피드백 주시는 등 많이 신경써 주신 덕분에 논문 쓰는 기분을 상당히 내 볼 수 있었다. 논문 검색 중에 찾은, 기존에 존재하는 2d 모델(WPSL, weighted planar stochastic lattice)을 고차원으로 꽤나 trivial하게 확장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스스로 주제를 정했다는 점에서 동기 부여가 많이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주제임에도, 프로그래밍 능력이 부족한 덕분에 실질적 구현 중에 꽤 고생을 했고 조교님의 결정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훨씬 더 축소해서 진행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미학과 쪽도 많이 애착을 가지고 있었는데(사실 내적친밀감은 이쪽이 제일 컸던 것 같기도), 부전공이다 보니 졸업논문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글쓰기 훈련을 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그래도 영미미학연습 수업에서 레포트 피드백은 한 번 받아 봤다). 철학, 미학 쪽으로 얘기 나눌 지인도 별로 없었고 해서 페이스북에 그런 쪽으로 글 많이 쓴 것 같고, 그 덕분에 페이스북 친구 분들과도 많이 교류하게 되었던 것 같다.

졸논 2번 다 랩에 자리 얻어서 출퇴근하고 랩미팅 가는 식으로는 못 한 게 아쉬워서, 지난 겨울방학 동안은 카이스트 물리학과의 연구실에서 개별연구를 했다. 여기서도 출퇴근은 안 했지만 매주 랩미팅 가서 피드백을 받으니까 상당히 빠르게 발전을 했다(물론 초기값이 낮아서 ㅎㅎ). 교수님도 늘 친절하게 조언 주셔서 개인적으로 무척 가치있게 느낀 시간이었다.

3월에 마음을 잠깐 바꾸어서 전기과에서 ML이랑 통신 이론 하시는 교수님께 예비 컨택도 해 뒀는데(물천이랑 반대로, 전기과는 입시절차와 동시에 지도교수를 정한다), 물리를 부전공한 분이다 보니 내 상황을 잘 이해해 주셔서, 좀더 고민해 보고 결정하라고 하셨다. 그 때도 카이스트 쪽 교수님께서 시간 내서 설득해 주신 덕분에 흥미 따라서 물리쪽으로 진학을 결정했다. 공부 더 하고 싶은데 안 하면 후회할 테니, 해 봐야 하는 것 아니겠나.

카이스트로 가려고 했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몇 번 얘기했었는데, 개별연구 했던 랩이 워낙 인기가 많은데다, 후기라 TO 문제도 있다 보니 아무래도 자교로 진학하기로 했다. 물론 여기서도 원하는 랩 가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리천문학부의 경우 연구실 결정 전에는 인턴도 원칙상 불가능하다고 해서, 공부하고 알바하고 수업조교 하고 그러면서 준비하게 될 듯하다.

연구실이 결정될 시점(올해 12월)이면 학부 동기들은 표준적으로 이미 석박통합 2년을 마친 시점일 거라(학부 3학년 때부터 연구실 생활을 했다고 치면 무려 4년 차이), 늦었다는 조바심이 많이 든다. 뭐 늦은 건 늦은 거고,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준비하는 수밖에 없겠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19년 8월 20일 화요일

조국교수 논란에 부쳐: 특권에 의한 공공성 훼손을 강력히 규제하자

  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교수 딸의 연구참여는 고교에서 대학 등의 기관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이었나본데, 그걸 각계의 지위 가진 학부형들이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하도록 한 것이 상당히 놀랍다. 아무 학교에서나 하지 못할, 위화감을 조성하기에 충분한 발상이고 공공성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지 않았나 싶다.

  사회적 위화감과 교육 공공성의 문제를 넘어 지금의 인사청문회 국면에서 조국 후보자에게 직접적으로 문제제기할 만한 것은 이 프로그램 자체라기보다는, 무리하게 1저자를 받았다는 것일테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했던 것도 결국, 대학교수가 개인적으로 알음알음 진행한 이러한 배경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이건 고교 입장에서나 '프로그램'이었지, 사실 대학 입장에서는 학교의 자원을 자기도 모르게 고교생 개인 스펙을 위해 나눠준 셈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는 이런 프로그램을 교수 개인이 비공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공식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그리고 사전에 보고받도록 하겠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단국대학교의 입장은 꽤나 모범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더하여, '우수한 학생 있으면 끼워서 논문 쓸 수 있지' 이런 예외적인(?) 느낌이 아니라, 상시적, 공개적으로 운영되는 쪽으로 대학 차원의 프로그램이 아예 마련되어 버렸으면 한다. 그러면 예컨대 지역 사회에 기여한다던지 하는 공익적 목적도 생길 수 있을테고 말이다.

  물론 그렇더라도 부당하게 할 사람들은 언제나 생길 것이고, 지역/학군 등에 따른 위화감이 빠르게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대학연계 프로그램이 최소한의 공적 가치라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은 이쪽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더 나아가서 수시입학 제도에 대한 뿌리깊은 국민적 불신을 완화하는 것과도 관련될 것 같다.

  조국교수와 같이 사회적 입지를 가진 민주/진보 인사들에게서 발생하는, 정치적 소신과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공적 영역에 진출하고자 할 때 받는 국민적 요구들과, 자녀교육 및 개인의 경제적 풍요를 위해 해 온 일들 사이의 충돌이 그 자체로 뭔가 비극적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여기서 비극적이라는 건 당연히 감정적으로 슬프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런 모순이 누군가에게 발생하도록 사회적 구조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순의 첨단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비난을 피하기 어렵고 말이다.

  물론 위화감 그 자체만으로는 특정한 이윤 추구 행적이 '부당하다'고 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길 테니,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활발하게 필요할테다.

  나는 개인적 영달을 위한 찜찜한 선택의 순간에 사회적 소신에 따라 그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도덕적인 '성자'와 같은 공인들이 많아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물론 그 자체로야 훌륭한 일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선택지가 그들에게 여전히 주어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보다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선택지 자체가 없는 환경, 그리고 설령 눈에 보이더라도 감시 및 견제 장치가 많아서 비자발적으로 포기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사회 주류집단에는 그러한 견제 장치가 없었고, 그래서 그 속에서 살아 오던 사람들이 공직에 오르려 할 때 언제나 망가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순 없이 정의로움을 유지하려면, '안' 하기보다는 '못' 하는 방향밖엔 없는 것이다.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임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 국면에서 보이듯이 이런 쪽으로 개혁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주로 그 문제의 당사자들이고(...), 그들이 공직에 나서고자 할 때 언제나 이런 부분이 문제가 되어 실망감을 안기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신뢰를 형성하고 바꿔갈 수 있을지, 찜찜하고 부당한 일들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참 막막하고 답답하긴 하다.

  더불어, 이런 구조를 비판하는 청년들의 언어가 등장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주로 특정한 세대,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구조의 첨단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물론 알고 있다. 그러나 기성 보수 언론이 그들에게 부여한 '386 세대'와 같은 단어는 '내 언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고, 오히려 그 단어를 사용할수록 시계가 거꾸로 돌아갈 거라는 불안감이 든다. 민주/진보 인사 개인을 비판하되, 그 사람들 개인이 위선적 운동권이라는 식의 비판에 머무르기보다는 그들이 그렇게 된 요인도 함께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과연 그러한 장기적인 해법이 등장하면 현재의 보수언론이 좋아할까? 그러지 않으리라 본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