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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1일 목요일

22대 총선 단상: 정권 견제는 다행이나 미래정책 실종이 아쉽다

어제는 22대 총선이 있었다. 나는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며 종합선거상황실(?)을 차려놓고 출구조사를 본 뒤에, 할 일을 하다가 새벽쯤 주요 격전지만 좀 다시 들여다 봤다.

자취방에 차려진 종합선거상황실(?).


국가대표 축구 경기나 전국구 선거 등의 행사가 있을 때면
BBQ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시청하곤 한다. 

다음날의 해가 뜬 지금 정리되어 가는 결과를 보니, 더불어민주당(161), 더불어민주연합(14, 시민 및 진보 포함), 조국혁신당(12)을 합쳐서 범민주계열은 187석 정도를 가져갈 모양이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야권 연대에 의미가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개혁신당 등도 야권으로 친다면 190석 초반 정도까지도 볼 수 있다.

총선 전날에 나는 더민주+더민연+조혁 합쳐서 185석 정도를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의 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운좋게 실제 결과와 상당히 근접했던 내 의석수 예측.

다만 이것을 지역구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예상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200석 이상까지 조심스레 점치던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수도권과 PK의 격전지들에 대해서 너무 낙관하는 것 같고,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너무 낮게 잡는 것 같아서, 분위기 봐서 이를 적당히 낮추어 불렀더니 대충 비슷하게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잇따른 외교 실수와 그에 대한 부적절한 국내 대응, 이태원 참사, 수능 킬러문제 논란, 재정건전성으로 얼토당토않게 위장된 심각한 세수부족, 과학기술 R&D 예산을 비롯한 수많은 정부사업 졸속 삭감, 역사관 논쟁,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과 이종섭 호주대사 도피임명, 방송장악, 무대책 졸속 의대 증원 등을 비롯한 수많은 논란거리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졸속 조치들로 오히려 일을 계속 키우는 괴상한 대응의 방식을 매우 일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에 여당이 참패한 것은 이러한 정부여당의 태도 때문이며, 선거결과의 이러한 면 자체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의 결과가 전혀 기쁘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들지 않는다. 그 이유를 마지막쯤에 쓰겠다.


먼저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까지의 각종 조사결과들과, 개헌저지선 확보를 향한 국민의힘의 간절한 호소, 그리고 출구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야권우세(200석 이상)를 감안하면 범민주 계열이 약간은 김새는 면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것 자체만으로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후술하겠지만 좀 다른 국면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출구조사는 출구조사일 뿐이니 그것보다 적게 나와서 아쉬운 것에 과잉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수도권 격전지와 PK를 국민의힘이 안정적으로 지켰다. 정치 구도 자체에 균열과 충격이 생길 정도의 결과는 아니다.

따라서 보수언론이 선방이라고 평가해 주면서 정부여당을 보호하는 논리를 펼칠 구석이 은근히 좀 있다. 이런 흐름에 따르면 대통령실 대대적 개편과, 비윤 중진들 다수 당선에 따른 정부여당의 관계 재정립은 어느 정도 일어날 수 있겠지만, 대통령실이 지금까지와 다른 겸허한 태도, 경청하는 태도로 근본적인 변화를 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민주세력 입장에서도 이번 결과는 기존 구도에 비해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의석이 아니기 때문에, 의석은 많지만 이걸로 어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돈 시점 이후 (특히 최후반) 에 민주당이 180석을 가지고 진행하던 여러 입법들 중에서도 국민생활문제에 밀착된 것과 나라의 미래에 관련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집중해서 밀어붙였던 권력기관 개혁 관련 입법에서는 국정 동력을 과도하게 소모해버리며 확실한 결실 없이 정권이 끝나는 모습을 봤지 않는가. 게다가 어쨌든간에 압승은 압승이기 때문에, 현재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쇄신의 계기도 딱히 마련되지 않고 계속 곪아 갈 것이다.


의석 수와 별개로 구체적인 판세를 통해 민심을 짚어 볼 수도 있다. 일단 민주당이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긍정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끌고 간 선거가 아니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 정서, 그리고 역으로 이재명, 조국에 대한 심판(?) 정서만이 선거에서 부각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먼저 수도권 격전 예상지역들에서 민주당이 대부분 패배한 것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구들 중에 원래대로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들에서도 생각보다 접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는 점은 민주당이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도봉갑, 마포갑, 동작을에서의 패배, 송파병, 영등포을, 강동갑 등에서의 아슬아슬한 승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유를 꼭 알아야 한다. 아무리 지역특색의 변화가 있었기로소니, 각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정치역량에 대한 반성도 반드시 필요한것이다.

또한 PK 격전지에서 은근히 기대했던 곳들 중에서도 단 한 곳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히려 21대 총선보다 더 안 좋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즉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론에도 불구하고, 원래 민주당을 안 뽑던 사람들까지 민주당을 뽑으러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그렇기 때문에 의외의 곳에서 의석을 넘는 이변을 일으키지 못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밀리면 안 될 곳들에서도 상당부분 따라잡히거나 밀려난 것이다.

즉 의석 수에 비해서 선거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민주당에게 생각보다 좋지가 않다. 이런 걸 감안하면 자칫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지부진한 선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조국혁신당이 등장해서 선거판에 활기를 확 돌게 만들면서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오히려 민주당세까지 같이 견인해 준 면이 있다.


결국 대통령실 입장에서도 겸허한 태도로 돌아설 계기가 없고, 민주당 입장에서도 당내 쇄신의 계기 및 지금까지와 질적으로 다른 개혁적 국회운영의 동력이 없으므로, 당분간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은 각종 민주당 취향의 입법과 그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민주당의 특검 시도, 정부의 언론장악 등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답한 정국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실이 주요 사건사고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인정하고 정석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정말 단 한 차례도 못 본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은 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대통령 본인의 태도 변화를 통해 꼭 좀 바뀌었으면 한다. 걱정에 비해 선방한 부분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참패했다는 큰 결과를 바탕으로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개혁신당의 이준석은 좋으나 싫으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얻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여당 당대표 자리에서 노골적인 대통령실의 의중으로 완전히 쫓겨났는데도, 애매한 태도 없이 얄미울 정도의 선명한 반윤석열 스탠스를 보여주며 혼자 힘으로 살아 돌아와서 마침내 당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밀리는 결과가 나오다가 개표에서 드라마틱하게 당선되는 서사가 생기면서 보도도 많이 되고 국민들의 인상에 남았기 때문에, 의석 수에 비해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향후 주요 선거에서도 일정 정도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약자 계층에 대한 혐오, 차별 정서에 의존해서 정치적 기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성장해 온 면이 크다 보니 개인적으론 퍽 우려가 된다.


조국혁신당은 대정부 강경노선과 함께 조국 후보의 대표 컨텐츠인 '사회권 선진국'을 내세우면서 민주당에 비해 조금 더 선명한 진보개혁적 색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 자체는 좋지만 대기업 임금 제한 등 괴상한 정책으로 지지자들에게마저 의문을 사고 비판을 받는 등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주요 정당치고는 역대 한국정치에 없었던 수준의 서울 강남 엘리트 편중도 큰 한계점이다.

창당 초기 목표보다 훨씬 많은 의석으로 당선이 된 얼떨떨한 상황이고,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진보개혁적 의제와 정권심판이라는 커다란 사안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실질적인 실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이준석과 함께 정권이 불편해할 만한 구도를 연출하면서 일정 정도 의석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므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정부여당은 입시비리 범죄혐의자라는 낙인을 가진 조국이 이렇게 돌풍을 일으키는, 3년 전은 물론이고 반년 전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가 왜 나왔는가 한번 겸허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녹색정의당은 오랜 기간 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오면서 인지도는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서 결국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 이 결과를 현실적으로 본다면, 좋으나 싫으나 민주당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단독으로 지역구 후보를 당선시킬 능력까지는 없었고, 정의당의 주요 후보가 있되 민주당과 단일화를 해야만 야권이 이길 수 있는 아슬아슬한 지역구도 크게 없다 보니, 단일화의 동기도 양쪽 모두 크게 없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결국 소수정당에 좋은 쪽으로 작용을 하지 못했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심리적 거리가 8년 전에 비해 매우 멀어졌고, 반쪽짜리 비례대표제로 인해 탄생한 기형적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도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진보당보다도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다. 민주당이 당분간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은, 정의당이 상징해 온 진보적 가치들이 의회정치에서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면서 이슈파이팅이 되면 좋은데 참 답답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번 선거를 보며 전혀 기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안 되었던 이유를 얘기해보자. 그 이유는 중단기적으로 여의도 정치 구도가 큰 변화 없이 계속될 것 같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 생각에 위의 모든 논의를 뒤로하고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책 실종 선거, 그중에서도 청년 실종 선거였다. 상대방 진영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의 주요 동력이 되었고 정책 공약, 심지어 정치이념의 이슈마저 이에 묻혀 버린 느낌이 있다.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어차피 누가 되든 똑같어~' 라는 클리셰 같은 정치혐오적 언설은, 우리나라의 지금까지와 같은 성장세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야 아주 큰 틀에서는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위기와 불가역적인 기후변화를 비롯한 세계 체제의 총체적 위기에 더해서, 선진국이라면 으레 접어들게 되는 저성장이라는 국면, 그리고 극단적 저출생과 서울집중이라는 거대한 망국병까지 앓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외교안보 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의 체질을 어떻게 개혁할지를 결정해서 최대한 파국 없이 연착륙을 하려면 효과적인 정책을 통해서 선제적,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느 세력이 집권해서 4~5년간 어떤 정책을 집행하느냐가 그야말로 나라의 미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결국 미래세대를 타겟으로 한 정책들이 적시에, 애매하지 않고 확실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감소 때문에 청년 세대에 대한 정치적 주목도는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막힌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망국병의 직접적인 여파가 목도되기 전에 나라의 체질을 개혁하는 선제적인 대응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확실한 근거는 없는 느낌이지만, 딱 우리 세대쯤이 그 여파를 방파제 없이 정면으로 맞고, 그 이후 세대쯤부터 부랴부랴 대책이 마련될 것 같다는 (그리고 그때쯤이면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미 늦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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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차이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행동의 LLM 표현공간을 이용한 모형화 제안

다개체 동역학 시스템(Multi-agent dynamical systems)의 관점에서, 타 개체에 대한 아주 원초적인 호불호의 감각들과 기본적인 사회적 행동의 규칙들만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복잡다단해 보이는 social behavior들 (대표적으로 이지메 같은 것)을 재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들이 재현된다면, 반대로 최소한의 개입으로 특정한 현상을 억제하는 external control도 개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아주 원시적인 버전을, 2018-2 학부 시절에 수강한 최적제어이론 수업 프로젝트에서도 풀어낸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다룬 문제는 이지메는 아니었고, 죄수의 딜레마 (정확히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속 시간 및 연속적인 협력도에 대해 일반화한 CAIPD라는 모형) 때문에 낮은 수준의 협력에 머무르고 있는 동역학계가 있을 때, 한 agent에만 외부 제어입력을 가함으로써 인위적으로 협력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협력도를 높이기 위한 최적의 제어입력을 구하는 것이 해석적으로 풀리는 문제는 아니어서, 기본적인 분석만 한 뒤에 제약된 조건에서 의사-최적 해를 수치적으로 구했다.


여기서 중요한 목표는 당연히 최종 시점의 협력도를 높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약간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시간에 따른 두 개체의 '협력도 차이의 누적량'을 최소화하라는 조건도 넣었다. 사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최종 협력도가 높더라도 한쪽만 협력 의사가 많고 다른 쪽은 협력 의사가 별로 없을 경우 상당히 stressful한 상황이 되고, 실제 고도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목표 달성은 실패하고 있는 상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개체들간에 고도의 지적 판단 없이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표출하는 '차이의 감각'이 서로를 이해하거나 배제하는 핵심 기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오래된 직관과도 관련이 있다. 간단하지만 지금 봐도 꽤 재밌는 디자인이다.


그런데 그런 원초적인 호불호의 감각이나 다양한 감정에 해당하는 internal state를 그럴듯하게 모형화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이 프로젝트는 각 개체의 상태가 '협력도'라는 단 한 개의 축으로 되어 있는 지극히 간단한 모델을 이용하여 수행되었다. 게다가 더 심한 문제는, 개체에 가해 주는 외부 입력의 인간학적 해석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냥, 이유는 모르지만 한 개체가 갑자기 협력할 의사를 갖게 될 뿐이다. 겸손하게 말하자면, 협력도를 높이라고 시켰으니 당연히 높아지는 상황 정도에 그친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낮은 협력도를 유지하게 만들어진 모델인데도, 한쪽만 일부러 높여 주면 다른 쪽이 같이 올라갈 수 있다는 내 관찰은 죄수의 딜레마 모델의 동역학적 특성에 대한 분석으로서 의미가 있기는 하다.


여하튼 이러한 한계의 이유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델이 너무 단순해서이다. 그러나 이를 굳이 거창하게 말해 보자면, 내가 사용한 모델의 internal state가, 외부 입력에 의해 간접적으로만 액세스되는 인간의 감정적, 사회적 특징을 모사하지 못했고, 그 이전에 state space의 차원 (협력도라는 1차원 축) 자체도 그런 일을 절대 수행하지 못할 만큼 낮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모델이 떠오르기 이전에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더 자세한 탐구는 하지 않게 되었었다.


생성AI 시대가 된 지금, 오랜만에 이 주제를 꺼내 보고 다시 떠오르는 게 있다. 먼저 위와 같은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internal representation을 갖고 있는 LLM agent들을, 그런 부분들 위주만으로 남겨서 경량화하거나 미세조정(fine-tuning)한다. 만약에 경량화시키는 방식 자체를 달리하거나 혹은 노이즈를 주어서 agent별로 약간의 차이를 두면, 이는 사람별 성격 차이 혹은 인지 도식의 미세한 차이에 대응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representation을 여러 방법으로 뜯어서 이해해 본다.

그 다음에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여러 agent들 사이에 최소한의 짧은 사회적 상호작용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한다 (이런 것 자체는 이미 여러가지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그 종류에 따라 LLM으로 하여금 서로 다른 emotional, social한 representation을 시시각각 동원하게 할 것이다. 만약에 경량화를 했더니 상황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인간적 능력이 깎여 나가는 것이 관찰된다면, full weight를 가지면서도 최소한의 짧은 상호작용만을 하는 stylized output을 내도록 프롬프팅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다음에 dialogue의 한 round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관찰을 하면, LLM이라고 특별한 취급을 할 것 없이, 정해진 weight 값과 약간의 stochasticity를 바탕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어떠한 연속시간 동역학계라고 간주할 수 있다. 물론 LLM인 만큼 굉장히 차원이 크겠지만, 로컬에서 inference할 수 있게 경량화된 LLM 같은 것도 있다고 하니 비용 면에서 아주 불가능한 수준의 일은 아닐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어진 설정과 외부 환경 하에서 각 개체별 차이에 의해 어떤 social behavior들이 창발하는지, 각 개체들이 어떠한 역할에 놓이게 되는지 관찰해보고, 그러한 현상들이 각 LLM agent들의 고차원 internal representation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인간학적 해석을 갖는지까지 뜯어본다면, 서두에서 언급한 내 오래된 상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작업의 결과가 실제 사회학이나 심리학 같은 게 될 수는 없겠지만, 통계물리에서도 일부 진행하고 있는, 협력, 진화, 생태 등에서 영감을 받아서 단순화한 모형을 다루는 비선형 동역학 연구에는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거대 딥러닝 모델이 자신에게 주어진 loss를 minimize하기 위해 알아서 형성해주는 고차원의 internal representation들을, 우리가 그냥 주어진 고정된 물체처럼 생각하고(?) 다방면으로 꺼내서 쓰면서 또다른 연구들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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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7일 수요일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의 이공계 박사 취업 환경

내 생각에는 이공계 박사 배출인력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이다.


이공계 박사 졸업 후에 전문성을 살려서 갈 만한 일자리의 숫자 자체가 부족하고 (아카데미는 말할 것도 없고, 박사 인력들을 받아서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더스트리 쪽이), 그에 따라서 챌린징한 학위연구의 경험을 정석적인 아카데미나 혁신적인 산업현장에서 활용할수 있는 루트가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박사를 학력이라는 개념으로, 타이틀이 필요해서 따는 경우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로 인해 박사 인력의 질적 저하 얘기가 종종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 현장에서도 그런 박사인력의 수요 자체가 불필요해지고, 악순환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혁신적인 산업분야가 어떻게 등장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진짜로 미래먹거리가 될 수 있는 돈을 벌어 오는 곳들이 생기고, 그것을 보고 이공계로 인력이 많이 유입되는 선순환이 있어야 될 것 같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느낌이 있는 것인데, 그 선순환의 고리를 되살릴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메디컬의 질적 상승이 해외 돈을 많이 벌어 오는 고마운 부문이긴 하겠지만, 규모 면에서 반도체나 전자제품 제조 급으로 나라의 미래먹거리와 사람들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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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0일 수요일

거대모델이 건설되는 기술사회학적 과정, 그리고 90년대의 딥러닝 역사

삼전 DS부문 경계현 사장은 박사학위를 1994년에 뉴럴 네트워크를 결합한 로봇 제어기법으로 받았다. 이러한 이력을 보고 떠오른, 그러나 이 분 자체에 대한 인물평은 전혀 아닌 몇 가지 생각들을 써 본다.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칩 개발을 리드하는 경계현 사장.



경계현 사장의 1994년도 박사학위논문 서지사항.


AI 칩 관련 기술혁신 최전선의 돌파구를 탐색하는 데 있어서, 현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뉴럴 네트워크 분야에 대한 이분의 학술연구 경험이, 주로 반도체 설계와 관련해서 삼성전자 내에서 쌓은 혁신적 리더십 경험에 견줄 만큼의 구체적인 도움이 되고 있을 가능성은 사실 높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인공신경망 연구를 했다는 것은 개인사적으로 재미있게 느껴지는, 개인적 소회가 어떠실지 무척 궁금해지는 지점이기는 하다.

여담이지만 나는 학사졸업연구를 전기과 내의 제어 트랙에서 다개체시스템 제어 쪽으로 했는데 (트랙이란 것은 공식적인 것은 아니고 그냥 졸업연구를 제어 연구실에서 해 보았다는 정도이다), 이것이 경계현 사장님이 졸업한 제어계측공학과의 후신 격인 테크트리라는 점에서 또 한 번의 공연한 친밀감을 형성해 본다.


다음으로, 이 박사논문이 뉴럴네트워크 중에서도 하필 로봇제어에 대한 응용이다 보니 또 다른 생각들도 떠오른다. 그 얘기를 조금 해 보자.

딥러닝 중에서도 극히 최근의 패러다임(2020년 부근에 본격화된)은 초거대 모델을 수많은 데이터로 사전학습(pre-training)시킴으로써, 밑바닥부터의 재학습 내지는 전이학습 없이도 수많은 종류의 과제를 비교적 쉽게 수행하게 한다. 이는 전통적(?) 즉 2012년경부터 2010년대 후반쯤까지의 딥러닝과도 양적, 질적으로 꽤나 구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본다.

이러한 패러다임에서는 인류 전체가 산발적으로 생산하고 축적해온 데이터가 급격하게 일원적으로 수집되고 통합됨으로써 거대모델 구축에 활용되는 무척 흥미로운 기술사회학적 과정이 작용한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지(text-to-image generation), 텍스트(ChatGPT 등의 거대언어모델) 등 여러 도메인에 걸쳐 순차적으로 일어나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로봇 제어에 필요한, (좁은 의미의)기계적 상호작용과 관련된 운동학 및 제어공학, 비디오 등과 같은 도메인의 데이터 및 메타데이터들 역시 이러한 초거대모델 구축에 사용될 수 있게 수집되어 초거대화되는 과정이 급격히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이를 통해, 로봇들로 하여금 언어 프롬프트 기반으로 놀랄만큼 세련되고 복합적인 동작적 과업을 수행하게 하는 연구들도 속속 소개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동작을 실제 가능하게 하는 하드웨어의 발전이 느리다는 문제도 있으나, 그러한 제약까지 고려해서 최대한 성공적인 제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들도 등장할 것 같다.

아마 생각보다 꽤 빠른 시일 내에 ChatGPT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대중을 놀라게 할 돌파구가 로봇 쪽에서 다수 소개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기술들의 등장을 목전에 둔 지금의 시점에서, 위와 같이 90년대에 연구된 인공 신경망 기반의 로봇제어를 다시 찾아보고 사유해 보게 되면, 귀여운 아기토끼 같으면서도 먼 고대의 조상님처럼 느껴지는 것이 우리들에게 굉장히 독특한 기분을 선사할 듯하다.

90년대 당시와 지금의 신경망 연구를 조금 더 제너럴한 센스에서 비교해 보자면 상당히 양면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일단 먼저는 '엥 그때도 이런 용어들이 있었다고?' 싶을 만큼 주요 essense는 이미 그때 다 연구되어 있었구나 싶은 때가 있다. Teacher-student framework를 다루는 아래의 통계물리학 논문 캡쳐처럼 말이다.

Teacher-Student framework를 통계물리학의 관점에서 풀이한 1999년도 논문의 첫 장.


여담이지만, GPU를 뉴럴 넷 학습에 사용한 초창기 논문 중에서도 국내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것이 있다.

인공신경망 학습에 GPU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한 2004년도 논문의 첫 장.


그러나 한편으로는 딥러닝을 실제로 tractable하게 만드는 여러 노하우 및 신기술들의 도입과 계산 성능의 발전으로 인해, 지금과 그때의 인공신경망 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단절에 가까운 완전히 상이한 모습으로 변화했기도 하다.

아무쪼록 딥러닝의 발전사를 추적할 때, AlexNet 및 알파고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공학 양쪽에서 나름의 성과를 축적했었던 90년대까지의 역사도 더 많이 주목받고 탐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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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 수요일

웨딩업계 소비자 권익 강화 정책을 환영한다

내년부터 '스드메' 가격 공개 의무화...웨딩업계 횡포 막는다

입력 
 
수정2024.03.13. 오후 2:3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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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산업 관련해서 재미난 소식이 기사로 나왔다.


웨딩산업은 고객들이 이왕 하는 거 불쾌한 요구를 받더라도 얼굴 찌푸릴 일을 되도록 안 만들어야 액운이 안 붙고(?)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한 번 하면 끝이니까 (물론 아닐수도 있지만) 지속적 고객 관리가 불필요하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폭리나 각종 암묵적인 추가금, 혹은 금전 외적으로 정성을 들인 선물 등을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것, 그리고 여러가지 가능한 옵션들 (대표적으로 드레스 사진 등) 과 그 가격 등을 웹에 공개하지 못하게 해서 정보를 통제하는 것, 이미 다 찍은 사진들인데도 최종 선택본 외에 다른 것도 받아 보려면 추가금을 내야 하는 것 등등, 국민 일반이 한번쯤 거쳐가는 산업치고는 굉장히 불투명하고 문제가 많다.

물론 수완을 발휘해서 크게 횡포를 당하지 않고 깔끔하게 잘 처리한 멋있는 커플도 많은데, 얘기를 들어 보니 아무리 본인들이 실속있게 잘하려 해도 예상못한 일이 생기는 등 쉽지가 않다.


이런 것이 요새 사람들이 결혼 꺼리거나 미루는 이유, 혹은 결혼 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것을 피곤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 10%는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소비자 조합(?) 같은 걸 만들어서 대응해야 된다고 생각해 왔고 이에 관해 자세히 포스팅도 해보았던 바 있다 (블로그에서 해당 포스팅 보기: 링크). 장례식 같은 경우는 상조회사가 보편화되면서 실제로 그런 문제들이 꽤 많이 해결되었다고 듣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위와 같이 기사로 나온 방안은 상당히 괜찮은 것 같고, 결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줄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이전 포스팅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제도가 일단 실효성있게 작동을 해야 하고, 여러 업종의 사람들이 차례차례, 혹은 동시에 관여되는, 그리고 고객들이 취향에 따라 표준화되어있 지 않은 특별한 요구를 해 올 수도 있는 웨딩 특유의 복잡한 비즈니스 파이프라인을 고려해서, 과도한 불편이 야기되지 않게끔 실정에 맞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결혼은 사치재다" 라는 말은 물론 결혼식 하나만 놓고 얘기하는 건 아닐 것이고, 내집마련 등도 포함하는 얘기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정설처럼 통하고, 심지어 딱히 잘못된 것도 아닌 것 같은 작금의 세태는 참 안타깝다. 결혼에 대한 이러한 부담감이, 결혼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인 결혼식에서도 고스란히 농도짙게 드러나고 있다.

물론 청년들이 조금씩 희생하고 양보할 생각, 돈 쓸 땐 써 가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점점 안 하고 금전적 손익만을 따진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런 태도가 유의미하게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기층문화가 아닌 규범문화를 먼저 혁신하고 생애주기별 금전 부담을 줄여서 간접적으로 바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도 하다. 지금의 극도로 낮은 혼인율과 출생률은 미래에 나타날 사회상의 원인이기 이전에, 지금까지의 사회상이 만들어낸 결과 아니겠나.

충분한 정보와 자율적 판단에 따른 여러 선택지를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혼인 부담을 낮추고 결혼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벼랑 끝과 같은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국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런 것들을 사소한 부분이라도 하나씩 고민해 나가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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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7일 수요일

생산적 교통덕질의 조건

버스 배차 1시간→30분 단축…전문가도 놀란 대학생 '교통박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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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버스 노선을 개선하는 정책제안을 하여 실제로 성공을 거둔 '버스 박사' 대학생 김강산(23) 씨의 멋진 사례가 기사로 소개되었다.

교통 덕질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귀한 능력이다. 남들이 잘 신경쓰지 않는 교통수단 및 체계의 세부를 관심 갖고 파악할 줄 아는 것에 더하여, 그것들을 이용하는 인간의 편의와 편익에 대한 관심이 동반될 때에 좋은 정책제안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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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4일 일요일

문헌 인용에 허락이 필요하다?: 책임있으면서도 다채로운 창작문화 확립을 향하여

출판업계에서 출처를 표기하는 인용 또한 출판 단계에서 원저자에게 일일이 허락 받는 방식이 자리잡은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출판사 사람들도 저작권법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경우까지 있다는 모양인데, 원저자가 인용 허락을 실제로 안 해 준 이례적인 경우가 최근에 생겨서 꽤나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작가의 창의력이 묻어나는 극도로 고유한 표현을 또 다른 창작물에 그대로 가져다 쓰는 식의 상당히 특별한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음악으로 따지면 샘플링에 해당?).

그러나 그런 창작물을 '비평'하기 위한 인용이나, 학술적 견해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인용까지 일일이 허락을 맡고, 실제로 호불호에 따라 안 해 줄 수도 있는 문화가 규칙으로든 관례로든 확산된다면, 지식과 사유를 축적시키고 공유시키는 문헌 특유의 힘이 오히려 위축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저작권이라는 것이 행사됨에 있어서 명백히 문제적인 사례들을 효과적으로 방지함과 동시에 어려운 쟁점들을 잘 조절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자유롭되 책임감 있는 건강한 창작문화 전반이 저해되는 일은 없게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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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다원예술 프로젝트 <다이빙 미러>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 후기 및 발제문

지난번에 포스팅한 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의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가 지난 12월 10일(일요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기술 미학'이라는 키워드로 지난 10월부터 이번 협업에 참여하여, <표현 재조합 기계로서 딥러닝의 기술미학적 쟁점들>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문을 작성하였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협업자의 한 명으로서 30분가량의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과분하게도 제 발제문이 이번 쇼케이스에 전반적인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여러 의미로 아날로그 vs 디지털을 비교하면서 밀어붙인, '딥러닝의 매체성은 디지털화의 끝에서 등장한 아날로그이다 (디지털의 양적 팽창 -> emulated analog로의 질적 도약)'라는 테제가 사전미팅 때도 그렇고 본 쇼케이스 때에도 꽤 논쟁적이어서, 예상보다 활발한 논의가 있었고 저도 많이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뒤늦게 합류하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디스커션 하며 작업했는데도 한동석 작가님을 중심으로 여러 협업자 선생님들과 밀도있는 교류가 오간 인상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유튜브 영상 다시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발음/발성 연습을 좀 해야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업결과 공유 차 이번 쇼케이스에 대한 네오룩neolook 공지 게시물 (쇼케이스 진행 후 업데이트됨) 을 덧글에 링크하였습니다. 또한 네오룩 공지의 여러 링크는 12/19(화)를 끝으로 만료될 예정이라, 발제문 pdf 파일과, 저 외에도 총 5명의 협업자가 함께한 쇼케이스 녹화본 유튜브 영상들도 덧글로 직접 링크해둡니다.
발제문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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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재조합 기계로서 딥러닝의 기술미학적 쟁점들>
I. 소개 및 서론
II. 본론
1. 딥러닝의 매체성: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1) 기술매체의 미학: 복제와 재조합의 용이성
(2) 아날로그 알고리즘으로서의 딥러닝
(3) 원형 재조합 기계로서의 딥러닝: 디지털의 끝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2. 의미-기계의 기술적 조건들
(1) 고차원 공간에 임베딩되는 내부 표현들
(2) 추상성의 위계와 정보의 정량화
3. 딥러닝을 활용하는 예술, 딥러닝을 사유하는 예술
(1) 예술에서 인공지능의 이중적 지위
(2)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에서 탐구될 중간적 시공간들


유튜브 녹화영상 링크
1. 사업 결과
2. 쇼케이스 녹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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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음악 추천]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예찬

1994년에 발매되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도입부만큼 세련된 것이 또 있을까?

이 곡의 도입부에서는 스크래치의 역할이 단순한 보조적인 효과음 이상으로 중요한데, 쓰래쉬한 헤비메탈 기타 사운드가 자칫 실제 속도에 비해서도 곡을 더 무겁고 둠하다고 느끼게 할수 있으며 리프 자체도 단순함에도, 여기에 턴테이블 스크래치가 적절하게 더해져서 무척이나 감각적이고 댄서블하게 느껴지는 듯.

특히 첫 보컬 '됐어~' 들어가기 직전의 5초 정도에 스크래치 들어간 질감이 너무 세련되어 있고, 100번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이 구체적인 질감은 라이브 공연 무대에는 잘 없고 원곡 음원 버전에만 있어서, 계속 원곡 음원을 찾아 듣게 된다.


랩댄스뮤직과 헤비메탈 기타리프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는 전작의 타이틀곡 '하여가' (1993) 와 비교해 보자면, 곡의 전반적인 컨셉의 혁신성은 하여가가 더 뛰어난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구성이나 디테일이 정리가 조금 덜 된 느낌이 드는 하여가에 비해서 세부적인 터치의 센스는 교실이데아가 들을수록 탁월한 듯.

가사 면에서도 하여가는 재밌는 부분들이 있지만 주제의식 자체는 비교적 평범한 데 비해, 교실 이데아는 교육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그러면서도 분노를 과격한 감정으로 표출하지는 않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당대에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맨처음 드럼 필인 들어가기 전에도 짧은 비트박스(?) 같은 게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곡임을 알 수 있다.


서태지가 은퇴해 있는 사이에 세계적으로 본격화된 누메탈 유행을 타고 다시 나온, '울트라맨이야'가 수록된 6집 (2000) 또한 뉴메탈 사운드에서 raw함을 좀 죽이고 서태지 특유의 집착적으로 갈고닦는 스타일을 결합했다 보니 편곡이나 사운드적인 완성도, 세부적인 아이디어는 탁월한 명반이지만, 수록곡들의 전반적인 독창성 면에서는 당대에 이미 피크를 찍어 가고 있던 세계적 뉴메탈 유행에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러한 랩과 메탈의 결합이라는 유행을, 미국에서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높은 완성도로 선취한 교실 이데아를 그래서 더욱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매일아침 일곱시~' 부터 시작하는 벌스 부분도 사실은 단순하고 둠한 기타리프인데, 드럼이 적절하게 들어가 줘서 거의 컴백홈 급으로 가볍고 복잡하고 신나게 느껴진다. 드럼의 중요성이다.

3집 콘서트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 크래쉬랑 같이 엄청 길게 공연한 교실이데아 무대는, 물론 서태지 커리어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힐 만한 명 무대이지만 오히려 전통적인 쓰래쉬 느낌으로 편곡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세련된 스크래치의 맛은 안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시작 전에 오글거리는 교육 비판 연설(?), 3집 특유의 발해왕자 의상 입고 댄스 하는 것, 그리고 크래쉬한테 '하고 싶은거 다 하시라'고 한 듯한, 전면에 오랫동안 내세워지는 기타연주가 조화를 이룬 아주 좋은 무대다.

이외에도 3집을 요새 다시 탐구하고 있는데, '발해를 꿈꾸며'는 남북통일이라는 메시지를 떠나서 송라이팅 면에서는 기존에 내게는 잘 와닿지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싶어서 잘 모르는 곡이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들어 보니 오히려 너무 매끄러워서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고, 이것도 들을수록 대단한 완성도를 가진 록 음악인 듯하다.

이 외에도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메탈 뮤지컬(?)의 원조랄까), '널 지우려 해' 등등 각 수록곡들이 기타사운드를 통해 한 앨범이라는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제각각 개성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영원'이랑 '아이들의 눈으로'는 록 사운드는 아니지만 뭔가 뮤지컬 느낌, 연극적인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 사운드적으로는 상극에 있는 '제킬박사와 하이드'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접점을 이루면서 앨범에 새로운 축을 더해준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3집이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아지는 듯하다. 시간을 투입해서 들어 보고 이 정도의 장문으로 기록해 볼 가치가 있는 음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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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수요일

뮤지션 김민기에 대한 몇몇 이야기

어머니가 잊을만하면 얘기해 주시는 재미있는 일화인데, 옛날에 어느 자리에 갔는데 너무나 익숙하지만 누군지 생각이 안 나는 사람이 앉아 있더란다.

그래서 주저하던 끝에 혹시 저 아시지 않냐고, 누구셨더라 하고 물어봤는데 그분이 허허 웃으시더니 아마 무대에서 보셨을 거라고... 알고보니까 가수 김민기였다고 한다. 내 기억이 확실친 않은데, 아마 옷을 굉장히 멋있게 입었다고 하셨던 것 같다.

아마 유명인들은 이런 일화가 워낙 많을 것 같다. 혹시 TV에 나오는 분 아니냐는 질문은 물론이거니와, 그럴 거라고 생각 못한 나머지 질문하는 본인이 아는 사람 아니냐는 질문들까지 말이다.

사실 나도 몇 년 전에 우연히 본 어떤 분이 얼굴이 너무나 익숙한데 누군지 기억이 안나 나서, 어릴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셨나? 막 이랬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신태용 축구 감독이었던 적이 있다. 안 물어보길 다행이었다.


김민기는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비롯해서 감동적이고 벅찬 분위기의 곡도 많이 썼지만 그의 노래극 중에서는 위트가 담긴 풍자적 가사도 많은데 그 중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고 재미있는 건 <공장의 불빛>의 한 수록곡에 나오는 다음의 가사다.

"사장님네 강아지는 감기 걸려서 포니 타고 병원까지 가신다는데 / 우리들은 타이밍 약 사다 먹고요 시다 신세 면할 날만 기다리누나"

실로 재치있으면서도 씁쓸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김민기는 최근에 암투병으로 인해서인지 학전도 닫기로 하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민기가 한국 노래극에 기여한 바를 보면 시대의식이나 시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도 의미가 상당한데, 김민기 본인의 드문 매체출연은 물론이고, 노래극 관련 영상자료도 생각보다 남아있는 게 풍부하지는 않다 보니 잘 보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음악 자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80-90년대 록밴드 뮤지션들이 열심히 활동한 것에 관해서 남아 있는 자료들도 생각보다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이들도 당시를 직접 겪어서 잘 알고 있는 뜻있는 팬들이 더 늦기 전에 잘 수집하고 보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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