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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삶, 기록, 의미... 그리고 재조직화하는 흐름으로서의 인간

사람들 혹은 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의해 회고되는 위대하거나 소소한 성취들을 보면서, 매우 최근까지도 implicit하게 가지고 있던 어떤 사고방식이 있다. 대략 언어화해 보자면, 아무리 즐거운 기억, 아무리 훌륭한 성취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상실한다는 생각, 혹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훌륭하고 즐거운 사건들은 오직 기록되기 위해서 기획되고 전개되는 것일 거라는 정도의 생각이다.


몇 달 전에 내 사고방식의 그런 부분을 명시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마침 내 흘러간 과거의 개인 자료들을 보게 되는 등, 거의 동시에 일어난 몇 가지 우연한 계기 때문에 최근에 생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시간 눈금을 조금 길게 잡아서 보면 그런 기록물들과 현재의 우리와의 관계는 생각보다 금방 단절되는 감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며 어떤 활동을 함께한 기억은 그 사람들을 만나거나 상기할 때 거의 즉각적으로 호출될 수 있고, 심지어는 축적된 경험으로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면서 개인과 세계에 영향을 주는데, 이런 기억과 경험들이야말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원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억과 경험들 및 그 영향도 당연히 영속하지는 않고, 지속시간으로만 따지면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짧을 수 있다. 하지만 요지는 영속성이 아니라, 그 충만함의 정도와 양태가 많이 다르고, 둘 중에서 전자가 인간에게 있어서 '의미'라는 부분에 더 많이, 더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 않은가 하는 것.

위대하거나 소소한 성취들과 사건들의 경우에도, 그 기록이 아주 적거나 아주 많거나 상관없이, 현장에 참여하지 않은 채로 기록된 내용들만 보아서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비텍스트적인 면모들도 많다. 바로 그 공간, 바로 그 시간에 있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고, 심지어 바로 그 시공간에 있었더라도 거기에서 발생한 사건을 나의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와 사회성의 많은 부분을 열정적으로 쏟아부어서 충실하게 체험하고 의미화하지 않았다면 재현해내고 공유하고 집단적으로 향유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


인간 활동의 응집력은 그 활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흩어지면서 생각보다 금방 흩어지게 마련인데, 그 활동들이 의미가 되고 영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기록보다는 이런 식으로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의식적 기억,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경험들이 아닌가. 물론 나는 성향상 그런 참여에 충실하지 못하고 기록 위주로 생각하고 간접 경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을 굳이 돌아돌아 생각까지 해야 알 수 있는 거고.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꾸만 '저장', 그리고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두 키워드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전개되게 된다. 인간의 정신은 정보를 단순히 쌓아둘 수도 있지만 정보를 예쁘고 유용하게 처리하고 가공해서 흘려보내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마저 재조직화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어떤 형식인데 이러한 처리 능력이 그저 인간의 기능적인 부분에 그치는 대신 유희적이고 감상적인 부분, 인격을 형성하는 부분에까지 심원하게 닿아 있고 (물론 내용을 단순히 저장하는 기능도 정보처리에 따른 side effect로서 개인과 세계에게 매우 중요하긴 할테다), 그로 인해 위와 같은 일이 생기는 듯하다.

심지어 '저장'이 아닌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이러한 인간 역량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와중에 문명 전체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어떤 기능일 수도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그 무엇도 명시적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버려지더라도 그러한 내용들을 처리하고 재조직화하는 형식의 작동을 통해 그 형식 자체가 발전할 수 있으며, 그렇게 발전한 형식이 존재하는 한 그 모든 사라진 내용들, 혹은 발견되기 어렵게 가라앉아 있는 내용들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고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문명사적 차원에서도 유효한 것 같다. 너무 거창한 예시지만 언어들의 초기 역사 중에서는 절대로 알수 없게 돼버린 것들도 많을텐데 그 과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암튼 이게 나로서는 꽤 충격적인 생각의 전환이라 지난 6월쯤에 며칠간 실제로 멍함을 느낄 정도였는데, 그 며칠 동안 들었던 생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와 같이 글로 적을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명료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멍하던 상태는 이런 생각을 계속 상기해보더라도 다시 재생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별로 쾌적한 상태도 아니고, 이런 생각과 상관없이 그냥 컨디션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때 하필 왜 이런 생각이 들게 됐는지, 그러한 기분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너무 깊게 회고하거나 분석하려 들지 말고, 내 마인드도 이런 생각을 처리하면서 어떻게든 재조직화되었을 테니 그대로 놔두고 활용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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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9일 금요일

지중해의 휴양지, 코르시카 꺄흐제즈(Cargèse) 여름 학교에 가다!

여기에 와서 유럽 학생들이랑 어울리겠다고 처음으로 WhatsApp이랑 PayPal을 다 깔아봤다.
지금 참석 중인 Summer School은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에 있는 Cargèse라는 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교과서적 프랑스어 발음으로 말하자면 꺄흐제즈 정도일 텐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카르제스 정도로 부른다. 코르시카의 최대도시인 아작시오(Ajaccio)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산악지대 풍경을 보면서 굽이굽이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오면 도착한다.

여긴 통신이 잘 안 터질 때가 많고 에어컨이랑 찬 음료가 없어서 좀 지치긴 한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와 제로콜라가 그립다... 내가 있는곳은 숙소 겸 학회장소 (IESC, Institut d'Études Scientifiques de Cargèse) 인데,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정말 이 시설뿐이다. 손전등 들고 30분 정도 산길을 걸으면 상점과 식당이 있는 중심가가 있어서 저녁은 거기서 먹는다. 거기도 말이 중심가지 인구가 13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살면서 와 본 모든 곳 중 제일 외진 듯.

물론 멋진 점이 훨씬 많아서, 위와 같은 약간의 불편함들도 낭만으로 느껴진다. 밤이 되면 수많은 별들이랑 심지어 은하수까지 흐릿하게나마 보일 정도로 하늘이 깨끗하고 (12일 밤에는 페르세우스 유성우도 떨어진다고 해서 무척 기대 중이다), 이 일대에 말 그대로 우리밖에 없다 보니, 바닷가가 꽤 넓은데도 굉장히 프라이빗하고 깨끗하다. 엄청 오랜만에 사람들과 어울려서 해수욕 해 봤다. 그리고 빌리지가 멀다보니 아침 점심은 다 숙소에서 해결하는데 메인메뉴 작은 거 하나에 과일, 요거트, 빵 정도라서 뭔가 살 빠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더워서 숙소 창문은 활짝 열고 자는데, 바닷가 + 산골인데도 곤충이나 뱀이 안 들어오는 것도 신기하다. 섬 자체에 뱀은 좀 있긴 하지만 독사는 없다고 한다. 밤길에 보면 도마뱀이랑 박쥐는 있다.

그렇다면 왜 스쿨을 이 곳에서 하는가? 이 스쿨은 나도 무척 관심 많은 곳인 룩셈부르크 대학의 통계물리, 생물물리 그룹들에서 주최하는 것인데, 코르시카가 약간 유럽인들에게는 제주도 포지션이라 그쪽 교수님들이 휴양 겸해서 하려고 여기로 잡은 것 같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뿐만이 아니라 이 IESC라는 곳 자체가 1960년대에 출범해서 그때부터 이런 학회를 꾸준히 호스팅해온 근본있는 시설이라고 한다.

특히 이론물리학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Gerardus t'Hooft, 아직도 살아 계시고 작년인가에 한국이 주최하는 워크숍에서도 강연하심)가 이휘소 박사님의 강연을 듣고 영감을 받아 후일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을 이룬 게 다름이 아니라 여기 카르제스 스쿨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여기 시설에 뭔가 연혁이 써 있거나 흔적이 있거나 하지는 않던데, 그래도 그런 역사가 일어난 곳이라고 하니 반갑고 뜻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21일에 한국 돌아가자마자 삼척에서 invited talk 하는 게 있어서 맘 편히 있지는 못하고 그것도 틈틈이 준비 해야 되기는 하지만, 다시 오기 힘든 좋은 곳인만큼 스쿨 참여도, 휴양도 즐겁게 한 뒤에 귀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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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4일 목요일

야구경기 밈 보도와 호남 혐오: 문제적인 유머에는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지난 6월 25일에 열린 한 극적인 야구 경기의 전개가 실제 6.25 전쟁의 전황과 비슷해서, 각 팀을 국군과 북한군에 대응시키고 전황을 경기 상황에 대응시킨 짤방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K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 비유를 송출해서 문제가 된 모양이다.

그 어떤 집단이더라도 그것이 북한에 비유된 것 자체로 상황에 따라 기분이 나쁘거나 심지어 낙인찍는 기제가 작동될 수 있을진대, 하필 팬덤이 강한 스포츠라는 부문이고, 또 하필 북한군의 역할(?)에 비유된 팀이 호남 연고 팀이다 보니 특히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순전히 구도가 비슷해서 재미있는 것이지 호남을 북한과 엮는 지역차별의 맥락은 전혀 없다며 항변한다. 어제 이 내용을 접하고,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쟁점들이 있어 조금 자세히 써 본다.


물론 어떤 사람은 지역 차별 맥락이라는 문제성을 떠올리지 못하고 정말 해당 구도만 따와서 즐겼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지하긴 했지만 윤리와 평판의식이 작동해서 그런 의도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그럼에도 소비 및 재생산은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커다란 유튜브 채널(특히 공영방송에서 운영하는)에 올라가게 되면, 평소 인터넷의 모습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호남 혐오 덧글들이 줄지어 달리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다면 방송은 그러한 판을 연 것에 대해 책임을 표명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북한을 굉장히 민감한 소재로 인식할 만한 사람들이, 하필 호남연고 팀이 북한이랑 엮인 것에 대해서는 '지역드립이 아니라 그냥 구도가 그런 건데 뭐가 문제임?' 하면서 유독 관대해지는 것 역시 명백히 문제적이다. 호남 혐오, 호남 희화화가 인터넷 공간상에서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는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송을 제작한 사람들도 그 짤방을 가져올 때 사람들의 순수한(?) 소비 방식 외에 지역차별적인 소비 방식도 목격했을 것 아닌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즐기던 것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을 때 확 오는 불쾌감을 잠시 접어두고,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볼 줄 아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시민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발화에서의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진보진영에서조차 정작 자기가 의심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남초, 우파 분위기 위주인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어떤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흔한 오해와 달리 도덕적 태도는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오히려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잘 알고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물론 당신의 재미는 중요하다. 그치만 그것이 공적 공간에서 다른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는 아닌 경우가 많다.


실제 지역차별을 의도로 해서 호남을 북한이랑 엮은 게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지 않나. 심지어 요즘처럼 인터넷상의 드립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식사 자리와 술자리,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서까지 말이다. 그러면 이번 것도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서 적어도 공영방송에선 송출되지 않는게 맞았을 것 같다.
설령 at first glance에서는 순수하게 구도가 비슷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더라도, 북한이라는 소재 자체가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데 하필 호남 연고 팀도 관련이 있으니 적어도 공영방송에서는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해당 경기의 상황이 6.25의 전개를 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각날 법한 상황임에도, 자기 생각이 아닌 외부 요인 때문에 (적어도 공영방송에서) 표현이 제한되고 창의성의 산물 하나를 잃는 것은 아쉬운 일일 수 있다. 타율로부터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을 추구해 온 내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자신의 재미에 찬물이 끼얹어졌을 때 발생하는 거부감은 그 존재는 인정되되, 즉물적으로 표출되는 대신에 철저히 반성되어야 한다.

이것도 결국 우리 나라에 쌓여 있는 여러 문화정치학적 갈등의 업보가, 유머에 대한 구성원들의 해석의 형식으로 불가피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것은 문제제기의 중단을 강요하기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세밀하게 극복해야 하는 종류의 문제다.

차별의 맥락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하듯 반응하고 극복을 강요하는 공간은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이 아니라 디씨에 불과하다. 타율적 전제로부터의 자유는 그 타율을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율에 의해 조건지어진 하에서 사고와 표현을 도구삼아 그 조건을 변화시켜 나가고, 종국에는 극복함으로써 진정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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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음악 이론] 헷갈리는 기타 튜닝 용어 정리하기

기타의 여러 튜닝방식들을 일컫는 표현들은 초심자들을 헷갈리게 하기 쉽다. 왜 그렇게 이름이 붙었는지도 처음엔 알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또 사람들이 정확한 이름을 하나 정해서 일컫기보다는 각자 입에 붙은대로 편하게 말하기도 해서 더 그렇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렇게 이름이 헷갈리는 것은, 사실 서로간에 잘 확인하면서 소통을 하면 되는 부분인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튜닝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스스로 언제든 찾아낼 수 있게, 본인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게 제일 안 헷갈리고 편한 것 같다.

먼저 제일 기본인 정튜닝(E 스탠다드 튜닝)은 6번 줄(제일 두꺼운 줄)부터
미 라 레 솔 시 미
로 맞추는 튜닝을 말한다. 음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고 그냥 '스탠다드 튜닝'이라고만 한다면 그게 주로 이 정튜닝을 말하는 것 같다.

한편 이 정튜닝에서 6번 줄만 2키(=한음)내리면 
레 라 레 솔 시 미
가 될 것이다. 이를 드랍D 튜닝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소리를 반드시 입으로, 귀로 기억해두자.


물론 unusual한 튜닝들도 있지만,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튜닝들은 결국 '◯ 스탠다드 튜닝', '드랍◯ 튜닝' 두 가지에 속한다고 보면 되고, 그 각각이 위 두 가지와 대응된다.
(◯는 E, D 등 음이름)

1. '◯ 스탠다드 튜닝'은 줄들 간의 상대적 음 높이차가 '미 라 레 솔 시 미'와 똑같다.
2. '드랍◯ 튜닝'은 줄들 간의 상대적 음 높이차가 '레 라 레 솔 시 미'와 똑같다.

튜닝의 이름에 있는 알파벳 음이름 ◯는, 6번 줄의 소리를 그 음에 맞추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스탠다드냐 드랍이냐에 따라 위 두 가지 중 하나로 다른 줄들까지 맞춰 주면 완성이다.

즉 ◯스탠다드튜닝은 정튜닝(=스탠다드튜닝?)에서 다같이 동일한 만큼 내려준것, 드랍튜닝은 거기서 6번 줄만 2키(=한음) 더 내린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드랍 C 튜닝을 맞추는 방법을 내 방식대로 써 보면,
드랍 C 튜닝 = 6번줄이 C이되, 6개 줄의 상대적 음높이차를 '레라레솔시미'와 같게 한 튜닝 = 드랍 D에서 모든 줄을 2키(=한음)씩 더 내린 튜닝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각 튜닝에서 여섯 개 줄의 음이름을 모두 짚어 말할 수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본적인 음감이 있다면, 6번 줄 먼저 맞추고, 거기서 상대적 음 높이차만으로 다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운튜닝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 스탠다드 튜닝'이랑 똑같다. 그것을 '정튜닝에서 몇 음만큼 다같이 내렸냐(다운)'를 기준으로 세서 부르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즉 드랍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때만 레라레솔시미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대개는 미라레솔시미라고 보면 된다.

정튜닝에서 다같이 1키(=반음) 내림 = half step down tuning = 하프다운튜닝 = D# 스탠다드 튜닝

정튜닝에서 다같이 2키(=한음) 내림 = whole step down tuning = one step down tuning = D 스탠다드 튜닝

정튜닝에서 다같이 4키(=두음) 내림 = two steps down tuning = C 스탠다드 튜닝

이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익힌 기본 방식이고, 다음으로는 사람들이 용어를 어떻게 섞어 쓰는지 대표적인 예들을 보자.

먼저 다른 말 없이 그냥 다운튜닝이라고만 하면, 드랍튜닝과 대조되는 좁은 의미 (◯스탠다드튜닝, 즉 ◯◯다운튜닝)일 수도 있고, 반대로 그냥 정튜닝이 아니라 뭐 하나라도 낮췄으면 아주 넓은 의미에서 다운튜닝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맥락상 적당히 알아들어야 한다.

여담이지만 물리학에서 역학 파트를 공부할 때도 이렇게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탄성 충돌'이랑 '비탄성 충돌'이 사실 같은 뜻일 수도 있는(...) 기막힌 경우가 생긴다. 마치 단어 뜻만 보면 스탠다드 튜닝과 다운튜닝이 같은 뜻일 수가 없어보이는데 같은 튜닝을 일컬을수 있는것처럼...


드랍다운튜닝이라는 말도 가끔 접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건 정말 혼란스러운 표현이다. 굳이 드랍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건 레라레솔시미 류를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겠으나, 잘 모르고 미라레솔시미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의 다운튜닝을 말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이 역시 적당히 맥락상 알아듣자.


사실 이런 것들은 굳이 글로 쓰려고 하니까 무슨 논문 쓰듯이 복잡하게 되는 건데, 대부분 실제 대화에서는 용어를 조금 섞어쓰더라도 전혀 오해없이 잘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백마디 말보다 직접 악기를 잡고 해보면서 손과 귀로 익히는 게 쉽다.

다만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초반에도 강조했듯이, 튜닝의 종류에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찾는지에 대한 기본은 본인이 잘 알고는 있어야 한다.



2024년 6월 27일 목요일

복개천을 통해 보는 언어현상과 토목의 도시공간사

얼마전까지 뜻을 정반대로 알고있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복개'이다.


나는 복개라는 한자어의 훈을 내 느낌대로 추측해서, 콘크리트에 덮여있던 청계천을 '다시 오픈한' 게 복개인 줄 알았다 (다시 복 자에 열 개 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알고 보니 옛날에 청계천을 고가도로로 덮은 게 바로 복개공사였고, 그렇게 덮인 하천을 복개천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개천을 MB 시장 때 다시 연 것은 복원공사 라고 부른다.

근데 웃긴 게, 이 단어의 원래 한자는 덮을 부 (거의 안쓰임), 덮을 개 (개연성, 두개골 등에서 쓰임) 자여서 굳이 말하자면 '부개'가 맞는데, 이 '덮을 부' 자와 위에 말한 '다시 복' 자가 사실 한자로는 같은 글자라고 한다. 이렇게 여러 음 (그리고 주로 그에 대응되는 여러 훈) 을 갖는 한자를 '다음자'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덮다의 의미로 쓰일 때도 거의 '복'이라고 읽게 되다 보니 (이런 현상을 '속음'이라고 한다고 한다) 부개 대신 복개가 표준어로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속음인 독음과 맥락에 이끌려 내 마음대로 한자의 훈을 잘못 추측했는데, 사실 그 잘못 생각한 한자가 실제 한자와 같은 글자였던 (그러나 다음자여서 의미상으로는 정반대인) 묘한 상황인 것이다. 그야말로 속음에 완벽히 속음...


그리고 서울에 현재 존재하는 자동차 도로 중에서도 이러한 복개천 위에 차가 다니는 구조인 게 꽤 있다고 한다.

말로만 들으면 엥 그런가? 싶은데, 한번 생각해 보면 도심 하천이 갑자기 콘크리트 지붕 속으로 들어가면서 끊기는 건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다. 그런 것들이 바로 복개천인 듯하다. 우리 학교 옆의 도림천, 그리고 본가 근처에서 가족들과 자주 산책했던 성내천이 이런 식으로 일부 구간 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구간 복개천인 곳도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서울대입구역 큰길 말고 그 바로 뒤편에는 술집이 많고 자전거타기 좋은, 나름 넓은 이상한 뒷길이 있는데 (학부때는 이 길을 6, 7, 8번 출구쪽 갈 때 봐서 그 존재만 알고, 제대로 탐색한 적은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거기가 바로 봉천천이라는 하천을 복개한 도로라고 한다. 2024년에 복원할 예정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될지 기대해볼 법하다.


그러면 애초에 이러한 복개를 왜 했는가? 먼저 하천들은 애초에 물길 겸 자연구획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현대적 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하천을 그대로 따라서 자동차 도로를 깔면 여러모로 편리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하천들 중에 백 년 넘게 아무리 공사를 해도 범람 및 위생문제가 계속되어온 경우, 이를 아예 덮고 하수도로 이용하면 해결된다는 장점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서울시내의 땅 모습이 결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 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역사를 거치며 형성되어 온, 우리가 잘 모르는 구조물들이 굉장히 많다는걸 알면 기분이 신기해진다.

복개천 외에도, 마치 베네치아처럼 조선시대때 이미 늪지대에 나무 말뚝을 빽빽하게 박아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든 지역들이 서울 시가지에 있다고 한다. 훨씬 더 와닿는 또다른 예로, 지하철도 그냥 뚫어 놓았다고 끝이 아니라, 매일 수만 톤의 물을 펌핑해서 버려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침수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외에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관여되고 있는 여러가지 물질, 에너지, 정보의 흐름 (혹은 그것들의 의도된 차단) 을 각 타임스케일에서 유지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인적, 물적 인프라들을 뽑아내서 한눈에 볼 수 있다면, 도시공간에 대한 색다르면서도 본질적인 이해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해외의 융성했던 고대 도시들이 전란을 겪으며 관리가 끊기면 그 형태를 잃어버리고 유적으로만 남거나 심지어 땅에 묻혀 버려서 나중에 발굴되는 게 잘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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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적 사고'에 대한 일부 해석을 보고: 열광과 가벼운 향유는 공존가능하다

IVE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 태도로 잘 알려진 '원영적 사고' 관련 글들이 뒤늦게 Facebook에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 글들 중에서 '원영적 사고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다 자기 편인 순진무구한 사람만이 할수있는 생각이므로, 그걸 소비하는건 진지한 열광이 될수 없고 가벼운 밈에 그친다'는 취지의 글은 자세한 취지도 알기 어렵거니와 내용 자체에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성장 배경도 좋고 외모와 실력도 뛰어난 장원영은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는 지지와 인기, 그리고 부를 얻고 있겠지만, 어린 나이부터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극복해야 했던 억까는 단지 아이돌로서 캐릭터성 면에서의 서사 형성을 넘어 실제 장원영이라는 사람이 겪는 인간적 고난의 범주에 너끈히 속한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설령 전자라고 해도 밈의 성립에는 문제가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원영적 사고가 무엇인지 '굳이' 살펴보자면, 사람들이 자기 편이 아니게 될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순진무구한 낙관은 전혀 아닐 듯하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든 단순한 정신승리가 아니라 유연하고 강하게 대응해서 긍정적으로 바꿔내려는 천생 낙관, 혹은 계속되는 억까에도 불구하고 아이돌로서 좋은 모습을 가지고 또 보여주려는 프로페셔널한 낙관 등에 가깝지 않을까.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사는 입장의 기만적인 긍정보다는 (그러면 밈이 아니라 오히려 소소하게든 크게든 논란거리가 되었겠지), 따라잡기 어렵지만 그래도 본받을 점이 있는 긍정에 조금 더 가깝게 소비된다는 게 내 인상이다. 그러한 긍정이 래디컬하게 추구되었을 때 내적 일관성을 갖추고 성립할수 있는지, 어떤 결과를 주는지를 따지는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물론 밈을 소비하는 양태는 다면적이기 때문에 그냥 그 말 자체가 재밌고 좋아 보여서, 남들이 하니까, 큰 생각없이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심지어, 힘든 상황에서 쉬이 와닿지 않을만큼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보니 가볍게 냉소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며 집단적 위로를 꾀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을 많이 본 것 같다). 이 정도로 사실 충분하다. 밈의 소비 및 재생산과 그 담론화(?)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의 단정적인 분석은 무리다. 그러나 그런 글들처럼 원영적 사고가 무엇인지 '굳이' 분석적으로 생각해보고 파고든다면, 그것이 위에서 언급한 '순진무구한 긍정'에 닿아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밈이라고 해서 꼭 가볍기만 하고, 열광적인 태도를 가질 수 없다는 식의 이분법도 다소 의아하다. 사람마다, 혹은 한 사람 안에서도 여러 계기가 겹쳐 있을 수 있다. 남다른 긍정에 진심으로 감명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열광적으로 쓰지 않겠는가. 밈의 strict한 개념을 레퍼런스하면서 과하게 의존하지 말고, 회색 부분까지 총체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해당 글에서 여러 차례 비판하는 열광이란 단어가 어느 글들에서 어떤 뉘앙스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런 글들에서 과잉되고 단정적인 분석들이 있었고, 그게 열광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했나보다 싶기는 함), 그 열광이라는 단어가 꼭 비일상적 수준의 카타르시스적 경험을 일컫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가벼운 소비일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면 열광적인 인기라고 으레 표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물론 해당 밈에서 이야기하는 긍정적 태도가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 하에서 언급될 때 강요로 작용할 것을 미리 경계하는 것 자체는 좋다. 또한 이런 류의 유행이 일각에서처럼 각종 리더십 강연(?)들과 어른들이 보는 tv 등에서 언급되게 되면 종종 실제로 위처럼 흘러가면서 생명력을 금세 잃는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그런 전형적인 '페북긴글'에서의 단정적인 분석과 논쟁 역시 밈들에 대한 피로감을 유발해서 정확히 바로 그런 흐름에 일조한다는 것 역시 인지해야 한다. 사실 내가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라서, 그냥 쓰지 말걸 하고 후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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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2일 일요일

aespa 정규 1집 더블 타이틀곡 'Supernova' 및 'Armageddon' 감상평

5월 14일

aespa 정규 1집 선공개곡인 <Supernova>를 처음 들어 봤는데, 곡이 화려한 요소 크게 없이 깔끔한데도 귀에 감기는 듯하다. 다만 정규앨범 수록될 곡인데도 메인 활동 곡이라기보다는 광고 삽입곡 내지는 ost 같은 느낌이 나는데 이건 왜인지 잘 모르겠다. 앞에 말한 대로 미니멀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드라마 테트리스의 삽입곡이었던 <Hold on Tight>와 약간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듣다보니 은행플러팅 노래랑도 뭔가 비슷한 것 같음 ㅋㅋㅋ

(추가: 그동안 aespa 곡으로 발매된 것 중에 KENZIE 곡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Savage 앨범의 <I'll make you cry>와 이번 Supernova가 켄지 작곡이라고 해서 무척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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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멜론 차트 보는데 수퍼노바 실시간 화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정규앨범 곡의 제목들(총 10곡)도 멜론에 이미 다 공개되어 있으나 아직 들어 볼 수는 없다. <Licorice>도 곡이 참 좋던데, 민트초코 괴물과 싸우는 재미난 특촬물 스타일의 뮤비도 공개했지만 음원은 아직 열어 주지 않고 있다.
5월 27일에 공개될 타이틀곡 <Armageddon>은 장르가 올드스쿨 힙합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 장르의 전형적인 문법으로 쓰인 곡이라면 레트로 팬들이야 환장할 테지만 과연 어떤 부분에서 트렌디하고 에스파답다고 어필이 될지 약간 걱정이 되긴 한다. 그렇지만 에스파 멤버들도 엄청 마음에 들어한다 하고 여러모로 기대해도 좋다는 느낌이 있어서 일단 기다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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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

수퍼노바에서 '잔인한 queen 이며 scene 이자 종결' 이라는 가사를 실제로 그 표현에 걸맞는 위엄이 느껴지게 살린 게 신기하다. 보컬의 디테일한 뉘앙스랑 발차기 안무 덕분에 그런 것 같은데, 수퍼노바에서 코러스랑 댄스브레이크 외에 또 다른 킬링파트인 것 같고 계속 보게 된다. 켄지가 오랜만에 에스파 곡을 했는데 곡이 가벼우면서도 힘있는 것이 참 잘 어울리게 만들어낸 것 같다.

또다른 타이틀곡인 <Armgeddon>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긴 해도 곡에 특기할 만한 점이 좀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올드스쿨 힙합 장르는 특유의 길바닥(?) 느낌, 그리고 찰지고 인간적이며 유머러스한 느낌이 있는 탓에, 아마게돈을 비롯한 장엄한 개념들을 표현하기에 유독 잘 안 어울린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유머러스한 느낌은 이 곡에서 사용한 Armageddon과 Imma get em의 언어유희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장르와 잘 어울리는 유머지만 아마게돈이라는 개념의 아우라는 파괴하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스쿨 장르는 묘한 세기말적 분위기로 인해 어두움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게 신적, 대자연적인 어둠보다는 지극히 인간 문명이 만들어낸 어둠에 가깝다보니 정작 별로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달까...

그런데 이번 곡의 경우 작법은 그쪽 스타일의 전형적인 찰진 비트 및 바람 빠지는 듯한 고음역의 꾸밈 효과음(?)들을 포함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연주하는 사운드는 기존 에스파 스타일의 쇠맛 악기들로 많이 배치함으로써 아마게돈이라는 개념에 어울리는 아포칼립스적이면서도 텁텁한 테마가 약간은 묻어나오는 것 같다. 멤버들의 흙맛이라는 표현이 꽤나 적절한 듯싶다.

음악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 원하는 콘셉트와 색깔을 송라이팅에 구체적, 감각적으로 반영하는 프로듀싱은 산업화된 k팝의 역량 중 하나이고 스엠이 이런 면에서는 여전히 참 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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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23일 목요일

전공설계지원센터 간담회 후기 - 퀀트 헤지펀드: 전공을 넘나드는 투자전략

5월 21일 화요일에 전공설계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진로 특강(링크)에는 퀀트 리서쳐로 일하는 분이 특강을 오셨다. 연사분이 너무 자세한 얘기는 할 수가 없다고 하셨고 실제로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명료하고 구체적인 lesson들이 있는 유익한 톡이었다.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좀 specific하다고 느껴지는 업계 얘기 몇 개는 빼고, 질의응답 중에 흥미로운 내용들을 밑에 옮겨본다.


개인적으로는 LLM이 이미 광범위하게 업계에 적용 중이라는 것과 (코딩 돕는 것뿐 아니라 투자 알고리즘 자체에 적용한 일부 사례는 본 적 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음), 퀀트 리서치에 SDE가 당연히 절대적인 비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제일 놀라웠다.

물론 현업 최전선에서 알파를 창출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지, 확률과정 지식을 통한 포트폴리오 이론과 파생상품론의 수리적 이해는 기초 소양으로 잘 갖추고 있어야 하긴 할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5월 23일(목요일)에는 AI, 언어처리 쪽 국내 리서치 엔지니어 분이 특강을 해 주셨는데, 이 분과는 끝나고 운좋게 커피챗 하는 시간도 가져 볼 수 있었다. 다소 시니컬하게 이야기하셨지만 현재 업계 동향과 함께, 학부뿐 아니라 석박사 졸업생들까지 염두에 둔 진로 관련 조언들을 해주셨다. 나랑 학부 학번이 같으시고 생각보다 human distance도 가까운 덕분에 겹지인들이 꽤 있다보니, 학교 졸업하고 떠난 그때 그 시절 사람들 얘기도 오랜만에 해 볼 수 있기도 했다.


밑에는 분야 자체에 대한 질의응답 위주로만 썼는데, 사실 이번 특강 시리즈의 포커스는 다중전공자 및 희망자의 학업 및 진로설계 쪽이었다. 센터에서 각종 경로를 통해 다중전공자나 특이 이력자를 파악하고 있다가 연락을 줘서 섭외를 한다고 하는데, 나도 평범하지 않게 다중전공을 했던 경우인만큼, 만약에 나도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이런 자리에 섭외가 된다면 보람차겠다는 상상도 해 보게 된다.


질의응답 요약

- 퀀트 일은 크게 연구 / 검증(구현 포함) / 운용 으로 나뉘는데 기본적으로는 (프랙티컬한) 리서치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손가락 끝에 수백억이 달린 트레이더와는 구분되는 편이다. 물론 퀀트 리서쳐도 회사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당연히 아주 큰데, 트레이더와는 책임의 양상이 다른 것이다. 검증 및 구현은 연구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면 된다. 운용은 회사의 방향과 관련된 거시적인 의사결정을 말하는데, 운용 관련 능력은 학교에서 쌓긴 어렵고 업계에서 연차를 쌓으며 얻어야 하는 것.


- 퀀트는 계속 배워야 살아남고, 수학, 물리, 통계학적 기초체력이 높아야 한다. 학업 내용들 자체보다도, 어떤 새로운 걸 봐도 쫄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이건 오늘 오신 인공지능, 언어모델 쪽 연사 분도 정확히 같은 단어를 써서 이야기하신 부분. 이공계 쪽 챌린징한 일들은 대부분 마찬가지인 듯)


- fancy한 업계에서의 튀는 이력일수록, 그 당시 업계 사정에서만 가능했던 예외 사례일 수 있다. 그렇다고 표준적인 이력을 따라가서 성공한 사람을 너무 롤모델 삼아 따라가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력상에 안 나오는 요소들이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퀀트뿐 아니라 general하게 의미 있는 wisdom인 듯).


- SDE를 비롯한 금융수학이 얼마나 활용되나?
: SDE는 퀀트헷지펀드를 기준으로 옵션, 단기예측 쪽에서는 활용을 하는 것 같은데, 현재 퀀트 전반적으로 각광받고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경우에따라 재조명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SDE라는 수학분야를 알고 있으니 그게 그 자체로 많이 쓰일 거라고 기대를 하기보다는, 나는 이런 정도의 수학을 이해하고 내 아이디어로 삼아서 사용할 수 있다 라는 개인역량으로 어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 시장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 수리적 이해능력, 빠른 습득 및 적용 능력 중 퀀트에 가장 중요한 역량을 꼽자면?
하나만 꼽기보다는 순위를 매기자면 1: 시장 2: 수리 3: 빠른적용 이다. 그런데 LLM 도입 이전까지는 정반대였다. 3이 edge가 되는 리서쳐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2는 LLM이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훨씬 늦거나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1은, 시장 분석까지는 LLM으로 되겠지만 의사결정은 자신의 몫이므로 대체되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애초에 시장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지 않다면 좋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게 어렵다.
(여담이지만 이건 내가 등록한 사전질문인데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해 주셔서 뿌듯했음)


- 자격증은 가점이 굳이 된다면 CFA 정도이지만 크지는 않다. 그 자체로 가점이 된다기보다는, 쌩 이과 출신인데 CFA가 있다면 금융 모르지는 않겠구나 정도이다. 그렇다고 CFA 있는 걸 특이하다거나 낭비라고 보는건 아니고, 있으면 당연히 좋다.


- 추천하는 실전 경제 공부법이 있다면?
1. 작은 금액이라도 다양한 섹터를 해보기
2. 실질 소득을 냉정하게 판단 (세금, 은행 이자수익 대비 상대값, 현금화비용 등 다 고려)
3. 확증 편향을 안 하는 습관


- 물리학 전공자가 여전히 많은가? 업계 경험상 그들이 특별히 보완해야 할 능력?
: rocket scientists in wall street 시절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굉장히 많다.
: 특별히 보완해야 할 능력? 이론적으로 파다 보면 리서치의 호흡이 느려진다. 일단 들어오고 나서 연습해도 되는 거긴 하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나 view를 전환, 도입하는 능력의 속도를 높이는게 필요하다.


- 비 stem 리서치 경험도 채용에 도움?
: 무조건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재밌어하고 연구 경험을 좋게 본다. 예컨대 퀀트를 위한 LLM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철학 전공이 도움이 된 사례.
: 본인의 아이디어가 테스트로 확인이 안 되더라도 말이 되고 창의적이라면 채용에 가점이 될 수 있다.


- hedgefund brainteaser 이런 식으로 구글링하면 나오는 퀴즈를 많이 풀어 보는 게 좋다.


- 너무 이것저것 요건을 채우기보다 자신만의 edge를 만들어서 어필하는 게 좋다.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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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8일 토요일

[음악 추천]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Skrillex) - Squijeeblion cover

Skrillex의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는 명실상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전자음악 곡 중 하나로, 더 말할 필요가 없이 유명한 곡이다. 그런데 이번에 동아리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어떤 분이 올려 주신, 정말 인상깊은 커버를 발견했다.

이 커버는 Leonard Solomon (개인 홈페이지: http://www.bellowphone.com/) 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bellowphone"에 올라왔는데, Squeejeeblion이라는 이름의 자체 제작 악기 세트를 이용한 연주를 보여준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기계장치와 악기 세트들 사이에서, Squeejeeblion을 꺼내 놓고 약간 느린 템포로 홀로 한 음 한 음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매우 인상깊다. 연주를 들어 보면 더욱 그러한데, 일반적인 피아노 및 어쿠스틱 커버와는 다르게, 악기 세트의 이름대로 squeeze하는 악기를 이용해서, 누가 들어도 덥스텝의 어쿠스틱 버전이구나 라는 느낌이 나게끔 원곡의 특색을 창의적으로 살려서 연주한다. 이 연주에서 느껴지는 다소 웃기면서도 극도로 서정적인 분위기가 정말로 마음에 든다.


이분의 웹사이트를 보면 Squeejeeblion 외에도 여러 가지 기계장치를 이용한 멋진 악기들을 제작하고, 이에 대해 글도 쓰고 공개 공연도 하고 교육(?)도 하는 듯하다. 어떤 분인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 시간이 나면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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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11일 목요일

22대 총선 단상: 정권 견제는 다행이나 미래정책 실종이 아쉽다

어제는 22대 총선이 있었다. 나는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며 종합선거상황실(?)을 차려놓고 출구조사를 본 뒤에, 할 일을 하다가 새벽쯤 주요 격전지만 좀 다시 들여다 봤다.

자취방에 차려진 종합선거상황실(?).


국가대표 축구 경기나 전국구 선거 등의 행사가 있을 때면
BBQ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시청하곤 한다. 

다음날의 해가 뜬 지금 정리되어 가는 결과를 보니, 더불어민주당(161), 더불어민주연합(14, 시민 및 진보 포함), 조국혁신당(12)을 합쳐서 범민주계열은 187석 정도를 가져갈 모양이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야권 연대에 의미가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개혁신당 등도 야권으로 친다면 190석 초반 정도까지도 볼 수 있다.

총선 전날에 나는 더민주+더민연+조혁 합쳐서 185석 정도를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의 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운좋게 실제 결과와 상당히 근접했던 내 의석수 예측.

다만 이것을 지역구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예상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200석 이상까지 조심스레 점치던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수도권과 PK의 격전지들에 대해서 너무 낙관하는 것 같고,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너무 낮게 잡는 것 같아서, 분위기 봐서 이를 적당히 낮추어 불렀더니 대충 비슷하게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잇따른 외교 실수와 그에 대한 부적절한 국내 대응, 이태원 참사, 수능 킬러문제 논란, 재정건전성으로 얼토당토않게 위장된 심각한 세수부족, 과학기술 R&D 예산을 비롯한 수많은 정부사업 졸속 삭감, 역사관 논쟁,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과 이종섭 호주대사 도피임명, 방송장악, 무대책 졸속 의대 증원 등을 비롯한 수많은 논란거리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졸속 조치들로 오히려 일을 계속 키우는 괴상한 대응의 방식을 매우 일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에 여당이 참패한 것은 이러한 정부여당의 태도 때문이며, 선거결과의 이러한 면 자체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의 결과가 전혀 기쁘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들지 않는다. 그 이유를 마지막쯤에 쓰겠다.


먼저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까지의 각종 조사결과들과, 개헌저지선 확보를 향한 국민의힘의 간절한 호소, 그리고 출구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야권우세(200석 이상)를 감안하면 범민주 계열이 약간은 김새는 면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것 자체만으로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후술하겠지만 좀 다른 국면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출구조사는 출구조사일 뿐이니 그것보다 적게 나와서 아쉬운 것에 과잉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수도권 격전지와 PK를 국민의힘이 안정적으로 지켰다. 정치 구도 자체에 균열과 충격이 생길 정도의 결과는 아니다.

따라서 보수언론이 선방이라고 평가해 주면서 정부여당을 보호하는 논리를 펼칠 구석이 은근히 좀 있다. 이런 흐름에 따르면 대통령실 대대적 개편과, 비윤 중진들 다수 당선에 따른 정부여당의 관계 재정립은 어느 정도 일어날 수 있겠지만, 대통령실이 지금까지와 다른 겸허한 태도, 경청하는 태도로 근본적인 변화를 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민주세력 입장에서도 이번 결과는 기존 구도에 비해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의석이 아니기 때문에, 의석은 많지만 이걸로 어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돈 시점 이후 (특히 최후반) 에 민주당이 180석을 가지고 진행하던 여러 입법들 중에서도 국민생활문제에 밀착된 것과 나라의 미래에 관련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집중해서 밀어붙였던 권력기관 개혁 관련 입법에서는 국정 동력을 과도하게 소모해버리며 확실한 결실 없이 정권이 끝나는 모습을 봤지 않는가. 게다가 어쨌든간에 압승은 압승이기 때문에, 현재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쇄신의 계기도 딱히 마련되지 않고 계속 곪아 갈 것이다.


의석 수와 별개로 구체적인 판세를 통해 민심을 짚어 볼 수도 있다. 일단 민주당이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긍정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끌고 간 선거가 아니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 정서, 그리고 역으로 이재명, 조국에 대한 심판(?) 정서만이 선거에서 부각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먼저 수도권 격전 예상지역들에서 민주당이 대부분 패배한 것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구들 중에 원래대로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들에서도 생각보다 접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는 점은 민주당이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도봉갑, 마포갑, 동작을에서의 패배, 송파병, 영등포을, 강동갑 등에서의 아슬아슬한 승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유를 꼭 알아야 한다. 아무리 지역특색의 변화가 있었기로소니, 각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정치역량에 대한 반성도 반드시 필요한것이다.

또한 PK 격전지에서 은근히 기대했던 곳들 중에서도 단 한 곳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히려 21대 총선보다 더 안 좋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즉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론에도 불구하고, 원래 민주당을 안 뽑던 사람들까지 민주당을 뽑으러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그렇기 때문에 의외의 곳에서 의석을 넘는 이변을 일으키지 못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밀리면 안 될 곳들에서도 상당부분 따라잡히거나 밀려난 것이다.

즉 의석 수에 비해서 선거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민주당에게 생각보다 좋지가 않다. 이런 걸 감안하면 자칫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지부진한 선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조국혁신당이 등장해서 선거판에 활기를 확 돌게 만들면서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오히려 민주당세까지 같이 견인해 준 면이 있다.


결국 대통령실 입장에서도 겸허한 태도로 돌아설 계기가 없고, 민주당 입장에서도 당내 쇄신의 계기 및 지금까지와 질적으로 다른 개혁적 국회운영의 동력이 없으므로, 당분간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은 각종 민주당 취향의 입법과 그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민주당의 특검 시도, 정부의 언론장악 등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답한 정국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실이 주요 사건사고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인정하고 정석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정말 단 한 차례도 못 본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은 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대통령 본인의 태도 변화를 통해 꼭 좀 바뀌었으면 한다. 걱정에 비해 선방한 부분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참패했다는 큰 결과를 바탕으로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개혁신당의 이준석은 좋으나 싫으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얻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여당 당대표 자리에서 노골적인 대통령실의 의중으로 완전히 쫓겨났는데도, 애매한 태도 없이 얄미울 정도의 선명한 반윤석열 스탠스를 보여주며 혼자 힘으로 살아 돌아와서 마침내 당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밀리는 결과가 나오다가 개표에서 드라마틱하게 당선되는 서사가 생기면서 보도도 많이 되고 국민들의 인상에 남았기 때문에, 의석 수에 비해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향후 주요 선거에서도 일정 정도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약자 계층에 대한 혐오, 차별 정서에 의존해서 정치적 기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성장해 온 면이 크다 보니 개인적으론 퍽 우려가 된다.


조국혁신당은 대정부 강경노선과 함께 조국 후보의 대표 컨텐츠인 '사회권 선진국'을 내세우면서 민주당에 비해 조금 더 선명한 진보개혁적 색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 자체는 좋지만 대기업 임금 제한 등 괴상한 정책으로 지지자들에게마저 의문을 사고 비판을 받는 등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주요 정당치고는 역대 한국정치에 없었던 수준의 서울 강남 엘리트 편중도 큰 한계점이다.

창당 초기 목표보다 훨씬 많은 의석으로 당선이 된 얼떨떨한 상황이고,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진보개혁적 의제와 정권심판이라는 커다란 사안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실질적인 실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이준석과 함께 정권이 불편해할 만한 구도를 연출하면서 일정 정도 의석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므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정부여당은 입시비리 범죄혐의자라는 낙인을 가진 조국이 이렇게 돌풍을 일으키는, 3년 전은 물론이고 반년 전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가 왜 나왔는가 한번 겸허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녹색정의당은 오랜 기간 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오면서 인지도는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서 결국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 이 결과를 현실적으로 본다면, 좋으나 싫으나 민주당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단독으로 지역구 후보를 당선시킬 능력까지는 없었고, 정의당의 주요 후보가 있되 민주당과 단일화를 해야만 야권이 이길 수 있는 아슬아슬한 지역구도 크게 없다 보니, 단일화의 동기도 양쪽 모두 크게 없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결국 소수정당에 좋은 쪽으로 작용을 하지 못했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심리적 거리가 8년 전에 비해 매우 멀어졌고, 반쪽짜리 비례대표제로 인해 탄생한 기형적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도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진보당보다도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다. 민주당이 당분간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은, 정의당이 상징해 온 진보적 가치들이 의회정치에서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면서 이슈파이팅이 되면 좋은데 참 답답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번 선거를 보며 전혀 기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안 되었던 이유를 얘기해보자. 그 이유는 중단기적으로 여의도 정치 구도가 큰 변화 없이 계속될 것 같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 생각에 위의 모든 논의를 뒤로하고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책 실종 선거, 그중에서도 청년 실종 선거였다. 상대방 진영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의 주요 동력이 되었고 정책 공약, 심지어 정치이념의 이슈마저 이에 묻혀 버린 느낌이 있다.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어차피 누가 되든 똑같어~' 라는 클리셰 같은 정치혐오적 언설은, 우리나라의 지금까지와 같은 성장세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야 아주 큰 틀에서는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위기와 불가역적인 기후변화를 비롯한 세계 체제의 총체적 위기에 더해서, 선진국이라면 으레 접어들게 되는 저성장이라는 국면, 그리고 극단적 저출생과 서울집중이라는 거대한 망국병까지 앓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외교안보 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의 체질을 어떻게 개혁할지를 결정해서 최대한 파국 없이 연착륙을 하려면 효과적인 정책을 통해서 선제적,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느 세력이 집권해서 4~5년간 어떤 정책을 집행하느냐가 그야말로 나라의 미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결국 미래세대를 타겟으로 한 정책들이 적시에, 애매하지 않고 확실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감소 때문에 청년 세대에 대한 정치적 주목도는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막힌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망국병의 직접적인 여파가 목도되기 전에 나라의 체질을 개혁하는 선제적인 대응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확실한 근거는 없는 느낌이지만, 딱 우리 세대쯤이 그 여파를 방파제 없이 정면으로 맞고, 그 이후 세대쯤부터 부랴부랴 대책이 마련될 것 같다는 (그리고 그때쯤이면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미 늦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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