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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15일 토요일

보수우익의 이상한 불만: 민주화세력의 도덕적 우위를 끝내려면 제대로 인정부터 하라

윤석열 옹호 전사로 순식간에 떠오른 전한길 강사가 광주에서 진행된 탄핵 반대 집회에서 '이게 진정한 5.18 정신 계승'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래 사진).

이 사람만 이러는 게 아니다. 전한길이 뜨기 전부터도 탄핵 반대 집회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그냥 지금 상황에 맞는 자신들의 주장을 해도 될 텐데, 그러지 않고 20세기 민주화운동을 엄청나게 의식해서 발언한다. 우리도 4.19 한번 해보자, 우리가 진정한 5.18 정신 아니냐는 식이다.

전한길 강사의 발언 장면. 동의해서 가져왔다는 게 아니라는 뜻으로 대각선을 그었다.


나는 보수 여당 지지자들이 나타내는 이런 현상이, 20세기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끝나가고 보수 여당도 함부로 폄하 못하는 헌법적 지위를 획득하고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 내지는 불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각 세력에 대한 호오를 떠나 군사쿠데타로 수립된, 혹은 군사쿠데타가 기도된 당시의 여당은 늘 한쪽이었고 (3당합당 및 전향 등으로 복잡해지긴 했지만 대충), 그에 대항해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어쨌거나 그 반대세력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게 실제로 일어난 일인데, 대체 뭐가 불만이고 뭘 더 어떡하라는 것인가?

그 불만을 뜯어봐도 정작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이 없다는 게 정말 이상한 점이다. 5.18이 민주화운동인걸 인정한다고 하면서도 계속 뭔가 마음에 안든다는 듯이 의심할 자유를 달라고 주장해온 청년극우들과 굉장히 닮았다.

더불어민주당이 자꾸 민주화운동 가치를 독점하고 관성적으로 정치를 하려는 것 같아서 불만이면, 이렇게 우리도 우리 손으로 우리세력의 민주화운동을 만들자고 억지를 부릴 게 아니라, 보수세력 자신들 내에서 기존의 민주화운동들을 괜히 불편하게 여기고 딴 소리 하는 분위기부터 먼저 해결을 해서 보편 가치로의 추인에 협조하면 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민주당이 민주화운동 지지만으로 기본적인 도덕적 우위를 깔고 가는 상황이 끝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자꾸 자유라는 가치를 보수적 구호로 생각하고 불편해하고 배제하려는 걸 보고 이건 정말 상대 프레임에 말리고 스스로 기반을 좁히는 일(링크, 2021.07.01.)이라고 여러 번 지적했었는데... 보수도 민주화운동 가지고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지극히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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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6일 목요일

임명묵 작가 기고문을 읽고: 극우의 세대화합은 공동체를 복원하는 원리가 될 수 없다

임명묵 작가와는 학부를 다닌 시기가 거의 겹치고, 스터디도 한두 차례 같이 하기는 했었다. 이미 20대의 나이에 책도 수 권 쓰고 여러 지면에 기고도 하며 이름을 알려서 내가 상당히 부러워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지만, 아마 그 분은 내 존재 정도만 아실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기고된 탄핵 반대 집회 체험기(링크)는 평소보다 큰 논쟁을 촉발한 모양이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이야기를 얹을 수 있게 여러 가지 사유의 결을 풍부하게 깔아 놓았다는 점에서 그 글은 무척 성공적이다. 그러나 현상에 동조하는 게 아니라 진단할 뿐이라는, 우호적 독해에 근거한 팬들의 옹호가 어쨌거나 필요해졌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글이다. 글의 의도를 둘러싸고 크게 두 가지 독해가 대립하는 셈인데, 이런 상황이 왜 일어났는가? 한 가지 이유는 언론 기고문이라는 글의 성격과 관련이 있다. 논쟁을 촉발한 글의 내용과 행간을 찬찬히 보면, 동조보다 진단에 더 가까운 면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언론기고의 경우 내용 및 행간뿐만 아니라 글이 게재되는 매체, 글이 소비될것으로 기대되는 방식, 글이 주로 소구하는 대상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독해되어야 하고 글쓴이도 이를 고려해야 한다.


관련된 또 다른 요인은 스펙타클에 근거한 글쓰기다. 내가 임 작가의 글에 대해 예전부터 느낀 인상은, 국내 및 국제 문제에 대한 명시적인 정치적 평가를 다소간에 비우는 대신에, 그 대신 거기서 연출되는 상징적 장면들 자체를 위주로 심미적(?)으로 접근해서 어떤 문화적 코드를 읽어내고자 하는 특유의 스타일이다. 그러면 구체적인 정치적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한발 물러나서 그 스펙타클 자체를 감상하며 관조하듯이 평하게 되고, 자연히 서로 다른 여러 독해가 생겨날 공간이 늘어나게된다.

문화적 코드에 집중해서 '스펙타클한 장면이 스스로 말을 하게' 하는 이러한 글쓰기 방식은 정치, 시사 등에 관심이 있는 페이스북 유저들에게는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상당히 익숙한 글쓰기 방식이고, 나도 종종 즐기는 편이다 (특히, 웅장한 대륙적 아우라를 자랑하는 장면들을 다룰 때에는 유독 더 그러고 싶어진다). 그렇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쓰인 글은 언론 지면에 바로 나가기에는 좀 적절하지가 않을 수 있다.

스펙타클에 대한 관조적 향유와 동조적 열광은 언론 지면에서 구별되기 어렵다. 그것이 바로 스펙타클의 힘이고 언론지면의 힘이다. 그래서 '미적'으로 쓰인 글이더라도 정치 고관심층들은 지극히 '정치적'으로 독해하게 된다. 그 결과는 덧글창에서 드러난다.


동조가 아닌 진단일 뿐이라고 하면, 그 진단이 과연 적절한지도 물을 차례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이번 글에서는 진단 자체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현장에서 노년층과 청년층의 세대간 화합이 발생하는 장면은 기독교 보수 세력의 역할을 빼놓고 설명할 수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는 그 얘기가 아예 없어서 의아했다. 현장에 갔을 때 정말로 기독교적 코드가 느껴지지 않았는지는 나야 알 수 없지만... 각종 매체 보도와 뉴미디어 중계를 보면, 기독교 기반의 집회참가자들이 2030도 탄핵반대로 돌아섰다면서, 청년들을 기특해해야 하고 적극적으로 언급해 줘야 한다고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강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러한 정서에 편승하여, 청년구독자 위주 채널인 배인규는 가급적 선남선녀들(아마 외모 얘기일 것이다)을 발언대에 올려보내야 해서 고생했다고 하기도 했다. 내가 거의 6-7년 전부터 강조하며 우려했던, 국가주의 기독보수와 안티페미 청년보수의 접합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셈이다 (링크, 2018.11.26).

그런 강박에도 불구하고, 집회 안에서 일어나는 세대 간 화합과, 그 안에서 청년을 챙겨 주어야 한다는 분위기 자체는 상당부분 '진짜'로 인간적인 화합일 것이다.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든 화합이 꼭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갈등과 불화를 금기시하고 인간미있는 연대의 힘으로 눙치며 외부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 일을 화합이라고 한다면, 나는 그러한 화합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반대하겠다. 상대방이 일으키는 불화에 대해서는 뿔달린 도깨비 취급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사회에 더한 불화를 일으키고 있지 않나. 증오와 음모론에 근거한 화합은 동료시민을 적대시하게 하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면 나도 산업화 세대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고 세대화합 및 전통적 가족질서를 해체하고자 하는 뿔달린 좌파가 되나?

지금 국면에서 내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계엄 사태의 중대성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제대로 선긋기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잘못을 인정하라는 게, 순순히 정권을 헌납하라는 뜻이 아니다. '탈윤'을 확실히 하고 철저하게 절치부심만 한다면 보수가 재집권해도 원칙적으로 아무 상관 없다 (계엄 사태에 대해 확실히 선긋기를 해준다는 전제 하에, 어디까지나 계엄에 대한 책임 여부에 한해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당의 모습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계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많이들 이야기는 하는데, 그게 정말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에 대한 인식과 표현, 불법적으로 행사되는 국가폭력에 대한 경계심이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러면서 계엄 할 만 했다는 식의 얘기가 계속 섞여들어가고 있다. 여당 주요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면 더 명확해진다. 중진의원들도 계속 대통령 접견을 하고, 당협위원장들은 단체로 가서 구치소 앞에서 아예 공개적으로 설 세배 인사까지 했다. 대통령 측이 자기가 다 안고 가겠다는 식으로 하지 않고 계엄을 옹호하는 세력을 계속 만들고 있는데, 여당의 이러한 행보 하나하나가 그러한 극렬 지지층에게 힘을 실어준다는걸 어떻게 모른 체 할 수가 있겠나.

언론도 마찬가지다. 평소라면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것 자체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 조선일보는 계엄사태에 대해 선긋기를 철저하게 하지 않고, 지엽적인 문제를 강조하고 잔머리를 굴리는 보도들을 쏟아내면서 사법 불신을 과도하게 조장하고있다. 지금은 아직 조기대선 국면이 아니고 파면이 되냐 마냐의 국면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입장에서, 나라면 정치적인 주제, 그중에서도 탄핵반대 집회를 주제로 하는 글은 이 시점에서는 조선일보에 기고하지 않았을 것 같다.

서로 의견이 다를지라도 공통점을 넓혀나가는 대화의 가능성은 언제나 환영이다. 그렇지만 그런 대화는 군을 불법적으로 동원한 계엄사태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비판적인 인식을 유지한 채로, '계몽령' 따위의 언설에 대해서는 확실히 선긋기가 이뤄진 판 안에서 이뤄져야한다. 많은 우파 스피커들이 명시적으로는 계엄에 확고히 반대한다고 얘기하며 아마 실제 생각도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강조하는 부수적, 지엽적 논거들이 계엄 옹호와 탄핵반대 움직임에 실질적으로 연료를 공급해주고 있는 점도 보아야 한다.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공수처의 입법결함 지적, 야당의 패악질이 계엄사태의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 등의 모든 부수적인 것들은 탄핵 인용 이후의 얘기다. 여기서 이후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인 순서일뿐만 아니라 개념적인 순서이기도 하다.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아주 복잡하고 특이한 성정에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오랫동안 추적해 온 입장에서, 그의 성정으로 미루어보아 이번 사태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면 역시 있다. 다양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말하기 좋아하고 요리 해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권위적인 보스 행세를 하며 아랫사람들에게 조인트를 그렇게 심하게 깔수 있는가. 이는 의대증원, 수능킬러문제, R&D삭감, 홍범도 흉상 등에서 일관되게 보이는 윤석열 정부 특유의 뜬금없고 자폭적인 졸속정책추진의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링크, 2023.08.30). 또한 노무현을 좋아하고 김기춘이 부끄럽다는 사람이 어떻게 야당이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의 극우인사들을 기관장에 임명해서 대립을 격화하고 기관을 망쳐놓는 행위를 반복할수가 있는가.

윤석열은 자신의 직을 걸면서까지 '일이 잘 되게' 하기 위해 다소 무리해서라도 자신의 의사를 강하게 관철하는,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특유의 방식으로 공직생활을 해오면서 이를 통해 인지도를 쌓았다 (링크, 2021.03.05). 이러한 태도가 대부분은 (적어도 국민의 절반 이상에게 한번씩은) 원칙주의적 면모로 드러났지만, 때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절제되지 않은 행보로 나타났으며, 비상계엄 사태에서는 후자의 면모가 정점을 찍었다. 책임있는 민주정치를 해야 할 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도박적 태도가 얼마나 안맞았는가.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거시적인 정치 여건 그 자체보다도 대통령 개인의 아주 이례적인 성정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어서 일어난 사건으로, 국민들이 이 사태를 정치적으로 평가함에 있어서 윤석열의 인간적 면모에 보다 더 큰 관심을 갖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역시, 그가 12월 3일에 저지른 비상계엄사태,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도 극우개신교에 소구하며 헌정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것에 대한 책임을 철저하게 물은 이후의 얘기다. 여기서도 이후라고 하는 것은 시간적인 순서일뿐만 아니라 개념적인 순서이기도 하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나는 10년 안에 한국이 기독교극우 국가가 될 위험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세속의 논리와 별개로 돌아가는 신념체계를 신봉하면서도 그 논리가 세속에 관철되기를 바라는 소수의 음모론자들을 굳이 언급해서 키워줄 필요가 있나 생각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겠지만, 나는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고 본다. 2020년경 황교안대표 체제의 미래통합당 시기를 거치면서 보수정당 적극 지지층의 질이 너무 안좋아졌다. 극우목사 유튜브들의 수익모델이 확립되면서 세력이 커졌고, 급기야는 엄청난 발화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그의 변호인단이 그런 음모론적 생각들에 일정부분 영향을 받아 반헌법적 계엄사태를 일으켜 버렸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입맛에 맞는 논리를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까지 재생산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면에 이를 견제해야 할 사람들은 거대야당의 지리멸렬한 일극체제 하에서 대체로 무기력하거나 분열되어있고, 이를 타겟한 양비론의 힘도 너무 크다.

요즘 보면 어이없게도 제일 끈끈한 공동체가 바로 극우교회다. 마음을 기댈 공동체가 없는 사람들이 갈수록 분열하는 것과 대조된다. 보수교회에 위임된 복지 및 커뮤니티기능을 재정확장을 통해 국가와 지자체가 회수해서 집행해야한다. 그리고 극우목사는 처벌하고 돈줄을 끊어야한다. 퍼블릭한 성격을 갖는 공동체를 복원해서 극단주의에 대응할 역량을 키워야한다.

단지 일부 소외된 노년층만의 일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들의 지분이 크다). 위에서 말했듯이 대통령 및 변호인단과 보수교회가 논거를 공유하며 서로 지지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형 보수교회들은 심지어 미인가 대안학교까지 다수 운영하면서 성전을 치를 전사들을 양성하고 후속세대를 재생산하고있다. 이걸 쉬쉬하고 무시할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하고 적극적으로 경계해야한다. 이쪽에서 나오는 발언들이 언뜻 볼때 종교적 색채가 지워진 채로 유통되더라도, 그 생산기제 및 행간으로부터 종교적 동기를 읽어내어서 적확하게 추적, 비판할줄 아는 적극적 세속주의자들의 실천과 표명이 필요하다.

보수기독교인들은 대한민국 헌법이 기독교 정신을 기반으로 제정되었으며 대한민국은 기독교 국가라는 인식을 자신들끼리 공공연하게 얘기한다 (윤석열 대통령 “성경이 헌법 근간” 주장에 법학자들 “반헌법적 발언” (법보신문 김민아 기자)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316044). 이런 날조된 역사가 미래세대의 정사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 안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으며, 그게 외부와의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더 널리 알려져야한다.

2030 청년이 기특하다는 말은 많은데 그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청년에서는 중국에 선동당한 청년, 탄핵에 반대하는 청년, 계엄을 통한 윤대통령의 뜻을 깨닫지 못한 청년들 등이 배제되어있다. 이런 종류의 기특함에 의거한 화합은 공동체를 복원하고 세상을 구하는 원리가 될 수 없다. 이걸 어떻게 풀어나갈지 앞으로 걱정이 너무나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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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 2일 일요일

초가속하는 세상을 구할 방법은 다정한 생활감각의 실천뿐인가

기술과 자본과 밈컬쳐는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며 주체할 수 없는 규모로 질주하고, 국제사회의 원칙과 질서라고 믿었던 것들이 그 최심부가 해킹되면서 너무나 쉽고 빠르게 형해화되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조건짓는 기후와 생태의 비가역적 파괴가 촉진되고있는 2025년의 세상을 일일이 파악하고 이해하려 든다면 제정신을 차리고 살기가 오히려 더 어렵지 않을까.

말하자면 수 세기 동안 쌓아온 코드들이 매 해마다 더 누적된다는 감각보다는, 오히려 빠르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감각이 훨씬 많이 느껴지는, 구토감이 들 정도로 가속되는 세상이다. 어떤 건 어이없을 만큼 빠르고 쉽지만 어떤 건 지칠 만큼 느리고 어려운데, 앞의 것이 초가속하면서 뒤의 것을 압도하고 은폐하는 느낌도 있다. 기존의 약속들이 희화화되면서 그 자리에는 굉장히 가상적이고 희극적인 약속들을 끌어모아서 쌓아올렸지만, 그 무엇보다도 실물과 밀접하고 중대하게 결부되어있는 강력한 벽과 같은 약속들이 파괴적으로 귀환하고있다.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이러한 형국을 보고 있자니 피부에 와닿는 일상에서의 경험과 감각을 바탕으로 하루하루의 치열함과 다정함을 챙기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지엄한 가치와 약속들이 쉽게 쓸려나갈 수 있다는 게 목격되는 상황에서 진정으로 보편적이고 소중한 건 오히려 개인 차원에서 어느정도 통제하고 추구할 수 있는, 내 스스로의 몸과 마음으로 내 자신과 주변의 치열함과 다정함을 유지하려는 책임감뿐인 것 같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에서 가치를 찾게 된다. 그런 생활감각과 따분한 힘들이 모여 결국 세상의 변화를 집합적으로 process해 내고 대응도 하면서 세상의 sanity를 작게라도 유지해나갈 수 있다면 그게 나름대로 세상을 구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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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반드시 단순하지도, 반드시 입체적이지도 않다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하다'는 식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아마도 무언가를 주장할 때 '말이 길어질' 경우, 옹호할 수 없는 걸 옹호하느라 변명이 길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서 나오는 말인 것 같다. 물론 실제로 그런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잘 보면 이와는 정반대로 진실이 복잡다단하고 거짓이 매끄러운 경우도 무척 많은 것 같다. 그냥 경우마다 다르다고 봐야 한다.

꿀떡꿀떡 넘어가는, 모든 걸 설명해주는 '매끄러운' 세계관을 접하게 되면, 이렇게 매끄럽고 간명한데 이게 진실이 아닐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예컨대 요즘 인터넷에 유통되는 유사 젠더·사회·진화 이론(?)들이 사람들에게 수용되는 방식을 보면 그런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러나 간명하고 단순하다고 해서, 복잡해보이는 걸 쉽게 꿰뚫는다고 해서 그게 꼭 옳은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통념과 다른 것, 복잡한 것, 불편한 것에만 매료되는 습관도 좋지 않다. 어떤 정설과 통념이 자리잡아 있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게 마련이고, 복잡하고 불편한 진실을 결코 모르지 않고 오히려 이미 다 검토했음에도 그 검토의 결과로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왜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할까 하고 잘못된 의문을 가지면 퇴행적인 담론을 추종하게 된다.

결국은 몇몇 격언이나 사례에 경도되어서 진실은 반드시 간명하다, 혹은 반대로 진실은 무조건 불편하고 복잡하다 라는 자의적인 경험칙(?)을 만들지 말고, 각 사안별로 판단을 올바르게 해야 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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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28일 화요일

[음악 추천] Goliaths disarm their Davids - In Flames (원곡 및 커버 공연 영상)

Goliaths disarm their Davids - In Flames


최근에 참여하고 있는 밴드의 지난 2월 15일 공연에서 셋리스트 중의 하나로, 멜로딕 데스메탈 밴드 In Flames의 Goliaths disarm their Davids라는 곡을 공연했다.
(원곡 들어 보기: Youtube 링크)

파워풀하고 매력적인 메인 리프를 가진 이 곡은 살짝 예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그럼에도 촌스럽지 않고 아름다우며, 멜데스의 정수를 이른 시기에 상당부분 달성하고있다. 인플레임스의 주요 정규앨범만 들어 봤다 보니 몰랐던 곡인데, 이번 공연 선곡 과정에서 이 곡의 존재를 알고는 상당히 마음에 들어서 내 추천으로 셋리에 올렸다.
이 곡을 악기별(주로 기타)로 스튜디오에서 커버한 영상은 Youtube에서 꽤 여러 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공연에서 풀 세션으로 연주된 영상은 내가 열심히 검색해 본 바로는 (인플레임스 자신들의 공연을 포함해서) Youtube에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추측컨대 아마 처음에는 보너스 격 EP로 발매된 뒤에 정규앨범 Jester Race, Whoracle의 일부 재발매판에만 수록되어 있다 보니 (그래서 해당 앨범들은 자료에 따라서 이 곡 포함 여부가 다르다), 인플레임스 자신들도 라이브에서 선보일 기회를 마땅히 만들지 않았고, 커버 밴드들 입장에서도 제대로 하려면 기타가 3대 이상은 필요하므로 공연에 올리기는 애매했던 듯하다.

이렇듯 커버 공연 영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곡을, 001 클럽에서 녹화해서 올려주셨으니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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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17일 금요일

다시 87년을 생각한다: 막연한 낙관은 자제하되 국민들의 지혜를 믿어보자

비상계엄 사태를 그동안 엄중하게 지켜보면서도 국민의 민주적 의지와 제도를 믿고 잘 버텨 왔는데, 요 며칠 사이에는 스트레스가 어떤 임계점을 넘어 버린 듯하다.

나는 군대가 동원되어 버린 이번 반헌법적 사태의 중대성에 비해 국민의힘의 태도가 대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단순한 당리당략 문제를 넘어 헌법질서를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무려 당 공식 조직인 '진짜뉴스 발굴단'에서 가짜뉴스를 살포하고, 기초의원부터 중진 국회의원까지 곳곳에서 계엄 선포 자체를 아예 옹호해 버리는 등, 위헌 위법적 비상계엄에 대한 선 긋기조차 거의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너무 화가 나고 걱정이 된다. 오늘 카카오톡 단톡방에서 정치 고관심층 친구들한테 이걸 솔직하게 토로해 보고, 몇 시간 전에 내가 신뢰하는 페친 분의 포스팅도 보고 나니, 이런 내 생각이 중도층 생각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늘 calibrate해야 되는 것 같기는 하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문제있는 경제관이나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성격(먹사니즘, 빛의혁명 등 특유의 독자적인 어휘 사용을 보면 짐작이 된다)은 나 역시 지극히 우려가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재명 일극 체제가 너무 공고해져서 딱히 경쟁할만한 유력 주자도 없고, 그렇다고 새로운 흐름을 불러일으킬 만한 내부적인 계기도 없는 작금의 민주당 상황은 심히 유감스럽다. 대선 주자급 정치인들의 층은 국민의힘이 훨씬 두터운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그냥 균형 맞추려고 적당히 섞는 얘기가 아니라 정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이런 걸 논할 시점이 아직 전혀 아니라고 느낀다. 일부러 말을 자제하는 정도가 아니라, 탄핵 인용 결정이 나고 윤석열 측이 파면을 확실하게 승복하기 전까지는 일단 차기 대선에는 정말로 아무 관심이 안 간다... 이런 내가 이상한가 싶다. 군 부대의 국회 투입이라는, 통상의 정치 사안과 궤 자체가 다른 잘못을 저질러 버린 윤석열의 혹시 모를 정치적 복권(탄핵 기각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이나, 그 잘못의 심각성을 부정하거나 아예 적극 옹호하고 있는 극우세력 쪽으로 보수정당 주류가 아예 고착되는 것에 대한 위기감만이 오직 최우선적으로 든다. 이게 지금의 내 솔직한 심정이다. 게다가 19대 대선과 비슷한 '어대명' 상황도 전혀 아니라고 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군을 동원한 국가폭력의 무서움과 중대함을, 중도층을 중심으로 한 일반 국민들이 생각보다 너무 몰라주는 것 같아서 속상하다. 비상계엄이 조기에 해제되어서 결과적으로 피해가 없었다는 것 덕분에 (사실 없지도 않았지만) 일반적인 민주정치의 틀 내의 정쟁 사안이랑 비슷하게 취급되는 지금의 흐름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어떻게 쌓아온 민주주의인데.

그렇지만 이런 흐름이 존재하는 이상, 결국 이것도 건전한 사법과 정쟁의 틀 내에서, 더 좋게 말하면 민주정치의 절차적 방법으로 순리대로 풀어나가야만 한다. 위에서 언급한 페친 분도 얘기하셨듯이, 그러려면 어느 진영이든 일단 현상 자체를 먼저 인정하고 들어가야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내 페북을 오래 봐오신 페친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나는 유권자를 원망하거나 부정하기만 해서는 되는 게 없다, 현상을 받아들이고 시작해야 된다는 얘기를 정말 꾸준히 해 왔다. 이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와 국민들의 반응이 일치하지 않을 때 꼭 국민을 탓하고야 마는 민주당 지지자들한테도, 그리고 호남표심을 자꾸 이상하다고 하고 인정을 안 하는 일부 보수 지지자들한테도 정말 꾸준히 해왔다. 이번에는 이걸 내가 나 스스로에게 새겨야 하는 시점인 듯하다.

내 지금 상태가 이럴진대, 비상계엄 사태가 이미 어느 정도 정리된 걸로 생각하고 벌써 이재명 등 차기대선 이슈를 적극 언급하는 국민들은, 아마도 순리대로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고 믿고 벌써 그 다음 국면을 생각하는 것이니, 나보다 현명하고 강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음모론적 극우가 없을 수야 없지만, 대통령 본인이 경도되어서 거기에 아예 힘을 실어 줘 버린 것은 정말 너무 대형사고다. 혹자는 미국정치와 현재 세계질서의 변동을 보면 극우의 등장은 언젠가는 겪었어야 할 일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는' 겪지 않아도 될 너무 큰 분열의 씨앗을 윤석열 대통령이 '너무 빠르게' 싹틔워 버렸다고 생각한다. 이것만은 막아야 한다고 내가 오랫동안 경계해왔던, 기독교극우의 주류화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빠르게, 비가역적으로 진행되어서 한국사회를 두고두고 괴롭힐 거라고 생각한다.

미래통합당 때 장외 위주로 극우 음모론이 득세한 것이 황교안 당시 대표의 행보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런 거라고 안심시키는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그때 만들어진 것들이 지금까지 영항을 발휘하면서 지금의 이 사단을 일으킨 것 아닌가.


이런 내 우려가 과도한 것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진입, 정치인 체포 시도 등 일련의 사태의 반헌법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한게 아니라, 그것들은 너무 당연히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굳이 언급을 안 하고 그 이후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길 바란다.

국민의힘이 지금 정권을 뺏기면 안된다는 위기감 때문에, 마일드한 수준의 민주당 비토부터, 무려 당 공식 조직이 스카이데일리를 그대로 받아쓰는 수준의 심각한 가짜뉴스까지 모든 스펙트럼의 주장들을 일시적으로 여과없이 내보내는 것일 뿐이길 바란다 (물론 공당으로서의 공보기능이 마비된 수준의 그런 가짜뉴스 살포는 끝까지 기억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

상황이 정리되고 나면 국힘 지지 유권자들의 다수도 반헌법적인 계엄에 대해서는 철저한 비판적 인식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지도자의 권위주의적 행보를 자연법칙화해서 책임에서 이탈시키는 우파 지지자들의 특이한 습관을 이번에는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


어찌됐건 나는 탄핵 인용과 정상적인 승복 전까지는, 대통령이 계엄군을 동원해서 국민들과 대치시킴으로써 일촉즉발의 폭력에 노출시킨 사태의 중대성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그걸 잊거나 가벼이 여기는 의견들에 대해서는 지극히 비판적인 생각을 유지할것이다. 차기 대선은 그 이후에나 머리를 굴려도 늦지 않다는 생각이다. 누군가는 너무 비장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수 있지만, 이것도 결국 내 관심사에 따라 내가 할수 있는 일에 대한 내 판단인 거니까.


다시 87년을 생각한다. 정보가 차단된 채 진행된 고강도의 훈련으로 악에 받힌 계엄군을 동원하여 아예 실제로 국민을 학살하는 결과에 이르고, 그 이후로 7년이라는 시간 동안의 독재까지 했던 전두환 정권이 1987년에 끝나게 되었을 때, 양김의 분열로 인해 민정당 내 다른 세력도 아닌 전두환의 최측근 노태우가 당선되어 버렸다. 이를 보고, 민주화를 열망하던 국민들의 절망감은 대체 어땠을까 싶다. 그런 시간조차도 한국인들은 버텨왔고 민주화를 정착시켰다. 그러니 이번 상황도 잘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비합리적인 기대를 가져 보게 된다.

다만 1980년대에 비교해서 지금의 한국은 엄연한 세계 10위권 선진국으로서 너무 잃을 게 많은 나라가 되어있긴 하다. 국격과 국가 경제의 낙차가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 너무나 크다. 게다가 경제 성장 분위기 속에서 대통령 직선제라는 성취라도 얻어 내면서 정치적 진전과 희망이 없지 않았던 87년과 달리, 지금은 나라의 여러 상황 전체가 그렇지 않아도 근시일 내에 고점을 찍고 급격히 하락하는 게 예정되어 있던 시점이다.

그리고 이번 사태가 최대한 잘 해결되어 봤자 이번 사태의 빠른 수습과 세계에 자랑하던 민주주의의 원상회복 정도이지, 나라가 딱히 진전되거나 성취를 얻을 부분이 없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는 87년에 비해서 미래지향적 계기를 찾기 더 어려워보이는 면도 있다. 또한 정치엘리트들이 어떻게 다룰 수 있는 크기가 아닌 민간의 극우 및 극우기독교 조직이 너무나 커진 상태라는 점도 상당히 부정적인 지표다.


그러나 디테일에 있어서는 개혁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 배우고 기억할 부분도 분명히 많이 보인다. 내 생각에 먼저 5년짜리 왕과 다를 바 없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위를 더욱 분산하는 제도와 관례를 확립해야 한다. 경호실이 본연의 기능을 넘어서 정치적 최측근이 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만들고, 심기경호라는 잘못된 개념도 철폐해야 한다. 군 일부 고위 인사들과 일부 일선 부대 내에서 아직까지 이어져온 잘못된 인식을 타파하고 헌법과 군의 역할에 대해 더욱 철두철미한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번 일은 아마도 뉴미디어 음모론에 국가지도자 자신이 경도되어 반민주적 군사개입까지 일으킨 최초의 사례로 보이므로, 굉장히 중요한 화두를 전세계에 던져주고 있다. 이런 일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 앞으로 한국인들이 활발하게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루하루가 아까운, 나라가 성장을 점점 멈추고 미래를 위한 동력도 안 보이는 지금의 상황에서 나라의 미래를 설계해 나가기 위한 각 부문의 정책논의가 반드시 적극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물론 계엄 때문에 더 밀린 것 같긴 한데, 연내에 결국 상법개정 하나 합의를 못 한 것은 참 부끄러운 일이다.

암튼 이것저것 많이 썼는데 결과적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이렇게라도 내 생각을 풀어내고 반대 의견들과 비교해 봄으로써 요새 임계점에 달해있는 스트레스를 좀 식혀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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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5일 일요일

경호의 직업윤리: 심기경호라는 개념을 근절해야 한다

경호처는 끝까지 신명을 다하겠다는 표현을 쓰면서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저지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된 일이다. 대통령 신분인 개인의 신병 확보가 필요하다고 법원이 판단한 상황이라면, 관계 기관과 협의해서 대통령의 신체의 안전이 보장되게 하면 되고, 실제 과거 사례에서도 그랬다는 것 같다.


경호실/경호처는 공무원으로서 합법적 범위에서 경호 업무를 하면 되는 조직이다. 정무적인 성격이 강한 대통령비서실과 달리, 경호처 직원들 중에는 정권에 관계없이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대통령 경호업무를 해온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알 수 있다 (경호처장은 정무직공무원으로 분류되고 있기는 하다).


이번 일은 단기적으로는 그들 모두를 공범으로 만드는 일이고, 장기적으로는 대통령을 초법적으로 수호하는 집단적 경험을 시키면서 조직의 모럴을 근본적으로 왜곡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차지철, 장세동부터 최근의 김용현까지, 경호실/경호처장에 대통령 최측근이 임명되어서 대통령과 정치적 논의까지 주고받으며 사병화, 권력기관화 되는 아주 안 좋은 현상이 현대사에서 꾸준히 나타난다. 현재 경호처도 김용현이 확립한 그런 모럴 하에서 행동하는 것 같다.


앞으로는 이걸 반드시 막아야 한다. 대통령경호처 말고 다른 어떤 경호원이 그런 식으로 하는가. 장세동이 만든것으로 알려진 '심기경호'라는 단어부터가 지극히 잘못되었다. 자랑스러운 단어가 아니고 부끄러운 단어여야 한다. 찾아보니까 김영삼 정부에서는 내부 승진으로 경호실장을 뽑았고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채로 뽑았던데, 그렇게 해서 분위기가 정착될 수 있다면 괜찮은 방안 같다. 딸랑이들을 척결하고 심기경호를 근절해야 한다.


이런식으로 수사기관도, 헌법재판소도 다 무시하고 경호처가 그냥 버티면 어떤 조치이든 실질적으로 집행할 방법이 없다는 게 너무 참담하다. 12월 3일 이후 지금까지 국민들은 분노하면서도 인내하면서 헌법적 절차에 따라서 모든 절차를 해 왔고, 그 마무리까지 물리적 폭력 없이 잘 되는 것이 이상적일 테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경호처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헌정 민주주의에 있어서도 너무나 안 좋은 선례를 다수 제공하는 것이고, 물리적 충돌이 없는 사법처리의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걱정이 너무 크다. 단 한 사람과 그의 파면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세력이,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그렇지 5천만 국민들을 이렇게까지 위험에 노출시킬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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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코토바 x 단편선순간들 합동공연 "당신은 재미있다" 후기

2024.12.17

코토바 x 단편선 순간들 합동공연 <당신은 재미있다> at 공상온도 @gongsangondo


늘 궁금하던 두 팀이 공상온도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예매해서 보고 왔다.

단편선 님은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의 언급으로 이전부터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단편선 순간들이라는 이름으로 오랜만에 팀을 꾸려서 나오셨다는 걸 김로자 님 인터뷰(대중음악웹진 <온음> 인터뷰 전문: 링크)를 통해서 알게 됐었다. 인터뷰 내용이 뭔가 현대미술가 느낌이 나서 음악도 전위적, 개념적인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음악이 내용적으로 굉장히 풍부하고 연주도 매우 탄탄했다. 특히 중간에 연주가 끝나는 듯 아닌 듯 하면서 계속되는 곡이 하나 있었는데 어떻게 어긋나지 않고 맞추어 연주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단편선님의 액션이 생각외로 뽀짝하셔서 같이 간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원래 그게 포인트라고 한다.

코토바는 베이스 혜림 님의 공연 직전 부상으로 코토(?)가 된 채로 공연을 했다. 사운드에서는 베이스의 부재가 종종 느껴졌지만 박자가 복잡한 곡들인데도 역시 연주는 문제없이 이루어졌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특별한 공연이 되었다. 이 분들이 하시는 장르는 매스 록(math rock)이라는 음악인데, 몇 년 전부터 찾아서 들어 보고 있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및 재즈 퓨전 쪽과의 연관성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됸쥬 님이 흥을 돋우는 건지 박자 맞추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중간중간에 멤버들을 바라보며 추임새를 하시는 것도 너무 신나 보이고 인상적이었다. 베이스님의 회복 후 완전체로 공연할 때 한번 또 가보고 싶다.

크지 않은 공간에서 하는 인디밴드 공연에서는 아까 전의 공연자가 잠시 후에는 관객이 되기도 하고, 잠시 후에는 스텝이 되기도 하면서 관객들과 다같이 섞이는 옹기종기한 느낌이 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이야기도 나눠 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꽤 재미있게 느껴진다. 물론 성격이 소심한 편인지라, 나 자신도 무대에 서는 공연에서 다른 팀 공연자 분께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정도 말고는 실제로 말을 걸어 본 적이 많지는 않다.

이외에도 라이브 공연에 오게 되면 음원으로 듣거나 유튜브로 덧글들과 함께 듣는 것과는 많이 다른 라이브만의 장점이 있어서,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많이 다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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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デスメタルコリア 韓國メタル大全 - 水科哲哉 (데스메탈코리아 한국메탈대전 - 미즈시나 테츠야)

한국어-일어 번역가로 헤비메탈 관련 출판에도 일찍이 관여해온 미즈시나 테츠야(Tetsuya Mizushina)선생이 2018년에 출판한 책이다. 한국 메탈 밴드 300여 팀을 총망라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소수 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는 정기 간행물이 아닌 이러한 집대성 식 단행본 중에서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국내에서 나온 대부분의 출판물을 압도하며, 텍스트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한국 음악의 흐름에 이해할 수 있는 도표 및 그래픽 자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소장 가치 또한 상당하다.

모든 밴드에게 한 페이지 (각 챕터의 최후반부에는 1/4페이지) 정도를 할당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아주 유명한 팀도 비교적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밴드에 대해서도 유명 밴드와 비슷한 분량으로 다룬다는 뜻이기에 의미 있어 보이며, 내용도 피상적이지 않고 충실하다.

나는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지만 짧은 한자 지식과 Papago를 이용해서 몇 군데 읽어 보았는데, 단순히 밴드들의 공식 소개를 카피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밴드에 대해 저자가 직접 들어 본 뒤 앨범별로 설명과 소감을 적었고, 비슷한 스타일의 밴드들도 태그되어 있는 등 정성이 돋보인다.

우리 동아리의 멀지 않은 선배들이 주축이 된 팀들인 Liberalia, Purgatorium도 소개되어 있는 점도 무척 반가웠다. 저술 과정에서 굉장히 디깅을 많이 하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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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어린이의 사물 애호: 원초적인 박물학적 충동

어떤 동식물이나 사물에 푹 빠져서 그걸 직접 보고 싶어하거나 비슷한 걸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하는 어린아이들의 욕구, 그리고 그걸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들어 주고 체험시켜 주려는 양육자의 노력을 볼 때면 나는 마음 속 한 곳에서 이상하리만치 깊은 인상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보편적인 이해를 증진하는 게 아니라 신기하고 독특한 개별 사물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충족시켜 가는 과정은 주로 어린아이에게 허용되는 것으로서, 굉장히 원초적이고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욕구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아주 신기하고 인상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하루 종일 그것에 빠져 있지는 않게 된다. 그러다가 어린아이가 그러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기에 그런 욕구가 너무 잘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것에 빠졌지 하고 다소 이해가 안 되거나, 약간 부담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그런 신기함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보편적인 가치가 부여되거나 의도가 투영되지 않은 작은 부분으로부터 유발되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그렇다. 자연이나 인공물 중에서 무엇이, 어떤 부분이 어린이의 마음을 끌어당길지는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르고, 그렇기에 뭔가 불가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이렇게 주변에 풍랑을 일으키면서까지 무언가를 알고 싶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인간성의 정수가 담겨 있는 욕구를,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각자의 관심사를 형성해나가며 고유한 '소우주'(microcosm)가 되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이해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수록 감당이 안 되어서(?)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의 이러한 충동(혹은 이러한 충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심정능력)이,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인간사의 여러 위대한 도전들과 경악할 천태만상들을 일으키는 데에도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내 것으로 만든다'라는 건 그냥 내가 적당히 만들어서 쓰는 말인데, 소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신기함의 순간을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느끼고, 그 신기하다는 감정의 정체와, 애초에 호기심이 유발된 이유를 캐치해서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의 총체를 뜻한다. 이를 좀 더 멋있는 말로 하자면 "박물학적 충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조금 더 단순하게, 꼭 이런 종류의 충동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의 어떤 욕구를 양육자가 다소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조건없이 이해하려고 해 주고, 잘 대응해 주는 것 자체가 굉장한 사랑과 이해심이 있어야 되는 일이므로 이것은 당연히 따뜻하고 인상깊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친구관계를 비롯한 다른 욕구들에 비해서,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결부될 때가 나는 특히 더 인상적이고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 나 스스로가 아직까지도 사물과 현상을 애호하는 경향이 남들보다 굉장히 강하고, 그것들을 별 의미없이 찾아보고 감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꺼리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철덕도 아니고 수집가도 아니지만 이와 같은 심적 경향은 철덕 및 각종 수집광들과도 뭔가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서, 그들에게도 종종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된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음식을 즐길 때에도 혀에 느껴지는 맛 때문에 먹고 싶어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음식이라는 사물 자체에 호기심이 들고 마음이 이끌려서 애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디저트 종류가 주로 그렇다. 음식을 예로 드니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러한 욕구가 소유 및 소비 욕구와는 묘하게 다르다는 게 더 명확해지는 듯하다.


이런 것과 관련된 몇가지 구체적인 기억도 있다. 가족들이 나를 여기저기 데려가서 이것저것 보여주신 경험은 일일이 기억은 안 나더라도 꽤 많이 있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아래의 일화다.

어릴 때 나는 책이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신기한 것들을 부모님께 갖고 가서 보여드리는 걸 즐겼는데,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꽃으로 유명한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눔' (나중에는 '타이탄 아룸'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더 많이 알려짐)이 신기했는지 꽤 여러 차례 보여드렸나보다.
근데 어느 날은 그 꽃이 한국에서 오랜만에 핀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 거다. 아마 학교에서 배부해 주는 소년한국일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역만리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핀다니 굉장히 신기해서 그 소식도 보여드렸다. 고양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검색해보니 고양꽃박람회에 타이탄 아룸이 왔다는 소식은 2013년대 이후에나 나오는 걸 봐서 어디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런데 아빠가 차로 거기에 가보자고 하시는 거다. 나는 그거 하나 보자고 거기에 데려가신다는 게 어린 마음에 너무 큰 일 같아서 (사실 어린 마음이 아니라 어른 되고 나서 봐도 귀찮은 일은 맞다) 살짝 무섭고 겁나는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거기로 향했다. 걱정했던 대로 그 꽃은 며칠밖에 안 피는 거라 이미 져 버린 상태여서 그 화분에는 알수없는 흙덩어리와 팻말뿐이 없었고, 그렇지만 거기 행사장에 있는 다른 식물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걸 먹고 즐겁게 돌아왔었다.


이 일화가 기억이 나서 부모님께 여쭤봤는데, 아예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는 걸 보니 심하게 귀찮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대신 엄마가 잊을 만 하면 얘기하시는 일화는, 집에 엄마 친구 분들이 와 계신데 내가 뜨거운 그릇(오븐에서 나온 도자기 같은 것)이 신기하고 예뻤는지 그 그릇을 만져보고 싶다고 해서 곤란했다던가 하는 류의 일화들이다. 그 때는 가만히 있게 조심시킨 다음에 열기가 느껴지게 꽤 가까이에 대서 위험하다는걸 알게 해 주셨고 친구 분들이 훌륭한 교육이라며 놀랐다는데, 정작 난 아예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확실히 결이 다르다. 물론 이 일화도 꽤 울림이 있기는 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나는 사물 애호뿐 아니라 오래된 인터넷 공간들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묘한 기분을 느끼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인터넷 덧글창과 어린이의 마음: 원초적 정신의 관점으로'라는 제목으로 한 번 포스팅을 했었다. 이것도 링크로 공유해 본다.

링크를 다시 읽어 보니 본문의 내용과 공통점이 꽤 많다. 결국 둘 모두 인간의 정신에 있는 원초적인 계기들이 점점 합리화되고 간접화되면서 보다 세련된 이성능력과 의지를 구성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가끔씩은 그 원초적인 형태 그대로 튀어나오기도 하는 사태들을 다룬다. 나 스스로가 지금까지도 은연중에 갖고 있는 이러한 계기들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는 것이 다소 불편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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