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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7월 10일 일요일

딥마인드 데미스 허사비스의 재미있는 경력

어릴 때 Black & White라는 CD게임을 했었는데, 거기서 플레이어가 키울 수 있는 creature에 적용된 인공지능이 당시 게임 AI 중 최고 성능이라고 기네스북에 올랐던 것을 기억한다.

사진: Black & White 인게임 스크린샷.


그 AI의 주요 개발자가 바로, 훗날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DeepMind)의 수장 데미스 허사비스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고위공무원 '개돼지' 망언을 보며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607082025001
[ 교육부 고위간부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 공고화해야" (2016.07.08) ]

정책기획관이면 2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안다.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헌정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에 정면으로 반하는 발언이다. 아무리 술을 마셨어도 그렇지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당당히 내비친다는 건, 저 사람이 가지고 있을 엘리트주의와 선민의식, 반민주적인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소름이 돋는다. 은연중에라도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고위 공직에 유의미한 숫자로 존재한다면, 이 땅이 소위 말하는 헬조선이 된 게 납득이 간다.

  말은 중요하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의 말은 그 무게가 상당하며, 만일 그것이 민주주의, 자유, 권리, 헌법 같은 단어들과 연관이 된 말들일 경우엔 그 무게는 더욱 크다. 치열한 사유의 결과물들이어야 한다.

  너무나 참담한 심정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정부 들어 헌정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사상들이 어떻게 훼손되어 왔는가? 또한 정치인들의 어떤 언행들이 그 훼손을 증언하였는가?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에서 인터넷 사이트 댓글과 트위터를 통해 대규모의 여론조작을 하였다. 대선 3일 전에는 김용판 경찰청장이 국정원 여론조작행위가 없었다고 거짓말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런 일을 하고 그는 무죄를 받았다.

  청와대의 허현준 행정관은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단체를 관리하며 관제 데모를 지시하고 여론을 조작해 온 바 있다. 어버이연합에 대한 조사는 잘 진행되지 않다가, 증거인멸 하고도 남았을 시기인 바로 며칠 전에야 사무실 수색이 진행되었다.

  이완구 전 총리는 총리 지명 이후 언론사 간부에게 전화하여 자신에 대한 의혹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지시했고, 그 사실을 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말했다.

  이정현 의원(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세월호 사건 당시 김시곤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하여, 정권에 도움이 되는 보도를 하라고 다소 고압적으로 요청했다.

  헌법에 써 있는 자유와 권리의 가치, 대의제 민주주의의 의미를 충분히 많이 공부했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고위직에 올랐을 사람들이, 그 의미를 체화하고 있기는커녕 정면으로 위배하면서 권력을 남용하는 행태를 보여 온 것이다.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부 정책기획관의 개돼지 발언은 이러한 비극의 단면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증언한다.

  엄청난 실언들의 쓰나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코 이것들에 무뎌지거나 체념해서는 안 되며,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비판해 나가야 한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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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24일 화요일

강남역 살인사건

  5월 17일자에 강남역 인근에서 있었던 충격적인 살인사건은 그 사건성 자체와 함께 많은 사회적 논의를 동반하며 거대한 의미를 획득해 버렸다. 매우 큰 담론이기에 다소 조심스럽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표적이 되어 목숨을 잃은 여성을 추모하면서, 최근 며칠간 느낀 바를 간단히 적어 보려 한다. 읽어주시는 페북 친구 여러분들과 보충이든, 반론이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이 사건이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인지,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인지에 대한 논쟁이 많다. 그러나 사실 이 문제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둘 중 어느 하나가 옳다고 판단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서울신경정신과 서천석 원장이 언급했듯이, 정신질환에 따른 망상도 사회적 맥락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혐오의 피라미드’라고 알려진 도식에서 볼 수 있듯이, 여성혐오(misogyny의 번역어)는 남성혐오와는 달리 단순한 혐오감정뿐만이 아닌 고용 등에 있어 차별적인 사회적 구조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객체화하는 문화적 풍조를 포함한다(그렇기에 여성혐오라는 단어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점은 글 최하단에 언급할 것이며, 그 전까지는 우선 여성혐오라는 어휘를 사용하겠다). 이것은 왜냐하면 실제로 남성에게와는 달리 여성에게는 그런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해자의 뇌 속에 형성된 망상에는 그가 지금까지 보고 들은 사회의 모습들이 분명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풍조가 아니었다면 가해자가 ‘하필 그런’ 망상에 휩싸여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일은 없었을 수도 있다.

  또한, 굳이 망상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현재 성희롱, 성폭행, 데이트폭력 등 왜곡된 성 관념에 의한 범죄 피해에 노출될 가능성이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서 현저하게 높은 것이 사실이다.

  또한, 남성혐오적 망상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와 같은 극단적인 폭력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성혐오의 경우에 비해 낮게 관측된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젠더적인 담론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한 것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정신질환에 의한 여성혐오적 망상을 가진 가해자가 원한관계가 없는 여성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이며,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정신보건의 실패>와 <여성혐오>의 두 축에서 종합적인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전자의 측면과 관련된 논의도 보다 활발해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소셜 미디어나 언론사 보도 등을 보면 현재의 논쟁은 이러한 종합적인 시각에 도달하려는 생산적인 논의보다는 이분법 구도에서의 싸움(물론 장기적으로 보면 생산적일 수도 있다)으로 격화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은 국민성이 미개하기 때문도 아니며, 남혐 사이트가 이 사건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이러한 극단적인 논쟁의 직접적인 원인은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이다’ 또는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이다’라는, 얼핏 보면 사실관계의 진술로만 보이는 말들 속에 사실은 무엇을 더 중요시하고 무엇을 상대적으로 무시할 것이라는 가치판단이 혼재되어 있고, 그것을 말하는 의도에 역시 그러한 가치판단이 함의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간접적 원인으로는 사회적 공론장이 마비된 한국 사회에서 구성원들이 자비의 원칙에 입각한 토론보다는 서로 증오하면서 비난을 일삼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있다.

  이에 대해 모두 논의하자면 지나치게 길어지고 논점도 벗어나므로 이 글에서는 직접적인 원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젠더 담론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해해야 할 부분은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이다’라는 주장은 사실 ‘여성혐오가 아닌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이다’라는 뉘앙스를 갖고, 젠더 문제가 이야기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주체에 의해 발화되는 가치판단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화가 존재하는 한, 남녀끼리 갈등을 하지 말고 연대하자는 말은 폭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 이야기한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사건 이외에도 남성과 여성에게서 비대칭적으로 발생하는 범죄는 아주 많다. 성희롱, 성폭력, 데이트 폭력 등은 물론이고, 강도와 같은 젠더와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강력범죄도 평균적인 완력의 차이 등을 이유로 여성을 표적으로 자행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은 남성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이 점에 대해 공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범죄 위협은 이성 이전의 문제이다. 모든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주체로서 대우받을 것이 보장되지 않는 한, 일상 속에서 대부분의 여성이 대부분의 남성에 비해 일상에서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지위에 대한 위협을 많이 느끼면서 살아가는 기막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일각에서 터져 나오는 기계적 중립에의 요구, 일반화하지 말라는 요구는 실제로는 그들이 거부감을 갖는 소위 전투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주장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큰 폭력이 되며, 자칫 평화주의적인 요구로 오해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기만이 된다. 마치 군사독재가 종식된 이후 보수 언론에서 ‘과거는 잊고 희망찬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기사를 냈던 것과 같은 것이다.

  사건 자체와 함께 사건에 대한 반응 역시 충격적이었다. 네이버 댓글 등지에서는 '솔직히 늦게까지 논 여성도 잘못은 있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었다. 이런 정도의 전근대적 발상이 실재하며,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여성혐오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앞서 말한 극단적인 주장들을 보고 잘 성찰해 본다면 여성혐오가 분명히 실제로 공고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혐 아닌 대부분의 남자한테까지 일반화하지 말라'는 자칫 평화주의적인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말 그대로 ‘김치녀’와 같은 여성혐오부터 여성의 객체화와 성적 대상화, 호의적 성차별 등은 일부 남성만의 문제점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매우 만연해 있는 왜곡된 성 관념이며, 심지어 미디어와 문화권력에 의해 조장되고 있기까지 하다. 이러한 사회적 풍조 속에서 남성들에게는 그저 '여혐에 동참하지 않는 것' 정도가 아니라, 성 평등 의식과 공감 능력, 소위 ‘젠더감수성’을 기르고, 여성혐오를 목격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지적하면서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여, 성 평등 사회를 이루는 데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젠더문제는 여성들의 삶에 매우 밀접한 문제이다. 또한 여성혐오는 사회적 구조와 문화적 풍조의 문제와 함께, 그 영향을 받은 각 개인 심리의 문제로 다층적인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젠더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들의 일상을 투쟁화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 많이 부족하지만 기꺼이 동참하고자 한다.

  나는 대학 생활 중에 학과 내에서의 동료 여학우들에 대한 성적 대상화, ‘개념녀네’와 같은 호의적 성차별을 비판하는 데 전투적으로 임해 왔다. 이러한 태도를 견지하되,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사회적 논쟁을 통해 여성혐오적 풍조가 일반에 생각보다 훨씬 더 만연하다는 것을 알게 된 만큼 문제의식을 더 확장해 보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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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여성혐오’라는 어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어휘는 misogyny의 번역어라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어휘는 대단히 강력하고 포괄적이다. 젠더문제는 일상에서의 성차별적 언행 하나부터 넓은 평등하지 못한 사회 구조, 그리고 성폭력이나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다. 그런데 글 초반부에 언급하였듯이 이 모든 것이 '여성혐오적' 이라고 불리어진다. 현재 여성혐오라고 묶여서 일컬어지는 이러한 사회적 징후에는 사회구조적 측면과, (결국은 사회풍조의 영향을 받아 구성되었을) 개인의 심리적 측면이 있을 것이고, 왜곡된 인식, 차별적 대우, 성적대상화 등 다양한 면모가 있는 것이다. '여성혐오'라는 단어가 그것들을 잘 대표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특히 자기 딴에는 ‘여성이 싫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님에도 사실은 차별적 인식을 담고 있는 소위 '호의적 성차별'이 매우 심각하다고 보는 입장에서('개념녀네', '여자답다' 등등), 여성혐오라는 단어는 저런 현상들의 총체에 대한 대표성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엥, 난 여혐 안 하는데?’ 라며 제대로 사유해 볼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젠더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 왔던 사람을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데에는 보다 직관적인 어휘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페이스북 상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어떤 분에 따르면 ‘여성혐오’와 ‘이분법적 성 고정관념’이 교집합 관계에 있다고 한다. 이러한 몇몇 어휘들을 함께 제시하여 misogyny라는 현상의 총체에 도달하도록 보완할 순 있겠지만, 한 단어로 된 대체제가 생각이 나지 않는 관계로 본 글에서는 일단 여성혐오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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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9일 목요일

5월 18일을 맞으며: 헌정 민주주의를 사유하기

  군사정권에서 투입한 계엄군에 의해 통신과 교통이 차단당한 채로 광주시민들이 학살당했던 일, 실존을 위협하는 시스템의 폭력 아래서 총까지 들어 가며 시민군으로서 계엄군과 대적을 하게 되었던 비극, 불과 36년 전 오늘, 1980년 5월 18일부터 수 주에 걸쳐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러나 실상은 꽤나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군의 개입이 있었다거나, 순수하지 않은 목적의 폭동이었다는 주장이 아직까지도 자주 보인다. 언론인들은 용기가 없었다. 당시 조선일보의 기사를 보라. 나는 그들이 후대에라도 사과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했다.

  이후에도 제5공화국 내내 많은 민주진영 인사들과 대학생들이 탄압당했고, 고문으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대학생과 직장인 등 다수의 국민들이 참여한 1987년 6월 항쟁 이후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약속되었다. 서슬퍼런 군사정권이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정경유착을 하며 정권에 돈을 주었던 기업들은 서서히 발을 뺐고, 책임자들은 청문회에서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군사정권의 잔재 청산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고, 어쨌든 세상의 우려와 달리 88 올림픽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30년쯤 시간이 흘렀다. 시민의 자유와 권리와 생명을 탄압했던 군사정권 수뇌부의 정점에 있던 전두환은 2016년, 예우를 해 준다면 광주를 찾아갈 수 있다며, 생생히 살아 있는 광주시민들의 기억을 기만한다. 군사 독재는 끝났지만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여당에는 군사 독재를 주도하거나 찬동한 인사들도 포함되었고, 이들은 지금까지도 정치계에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회는 해체되었지만 하나회 출신 인사들은 여전히 퇴역장성 단체에 소속되어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는 등 정치의 배후에서 개입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5월 18일 새벽, 짧게나마 알고 있는 역사를 되짚어 보며, 2013년 이래로 외우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곱씹어 보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연 자연스레 주어진 안정적인 것인가, 혹은 섬세하고 예민하게 쌓아올려진 것인가? 과연 그것은 영속적인 것이고 신뢰할 만한 것인가? 과연 우리의 민주적 기본질서가 위협받을 때, 우리 옆의 사람들이 실존을 위협당할 때, 우리는 다시금 문제를 인식하고, 용기내어 문제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헌법에 명시된 우리의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에 대해 어떻게,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들은 잘 지켜지고 있는가? 그것들이 위협받는 것을 목도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헌정 민주주의의 원리에 기반한 시민들의 끊임없는 반성과 성찰, 노력과 투쟁,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소중한 헌법적 가치, 민주주의적 가치의 존속과 발전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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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8일 수요일

전문연구요원 폐지 폭탄선언에 대해

  전문연구요원 폐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어제 뉴스 링크([단독] "이공계 병역특례 2023년까지 폐지")를 공유하면서 썼던 글에 더하여 몇 가지 쟁점에 대해 보다 자세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을 느낀다.

  이번 발표에서 첫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유예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이미 전문연을 염두에 두고 학부생활 도중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이공계열 선배들이 상당히 많을 텐데, 이렇게 될 경우 학부를 졸업하고 입대하거나 대학원 과정을 중단하고 입대하는 등 사회인으로서의, 이공학도로서의 커리어에 문제를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교육과정이랑 군대정책은 최소 10년은 유예기간을 두어야 한다. 시행 중인 제도의 폐지에 이런 식으로 유예기간을 안 둠으로서, 그 제도를 상정하고 계획을 세워 놓은 수많은 이공학도들의 인생계획을 꼬이게 만드는 것은 배려가 없는 걸 넘어 폭력적인 처사이다.

  또한 연구 지망 이공학도들의 개인적 불편함 외에 국가적, 사회적 측면에서도 전문연을 폐지할 경우 국내 이공계 학문 연구에 차질이 발생하고 우수 연구인력이 대량으로 해외 유출되어 대한민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이 하락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이다. 국내와 해외의 과학기술자 대우 및 연구환경의 차이와 함께, 이런 식으로 연구인력을 기만하는 정부의 태도로 인해 많은 이공학도들이 실망하며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병사 수천 명 더 확보하려고 전문연을 폐지함으로써 국내 이공계 전체가 타격을 입는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조치인 것이다. 과학기술을 중시한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이러한 조치를 철회하는 것이 합당하다.

  2020년까지 달 탐사를 하겠다고 하는데(유인탐사 얘기는 아니겠지만), 미국이 달에 사람 보내는 데 들인 돈이 현재 가치로 약 200조 원이었다.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알파고의 개발 배경에는 구글이라는 거대 IT 기업이 전세계의 좋은 스타트업들을 거액에 인수 합병하면서 연구 개발해 온 수많은 기술들이 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하게 선언 하고 테이프 끊는 것으로는 어떤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 과학기술 연구 환경이 잘 되어 있어야 한다. 국내 대학원생 대우가 열악한 편인데 이런 문제까지 더해지면 많은 학도들과 지망생들이 실망하고, 국내 이공계 연구원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할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로 넘어가 보자면, 전문연구요원과 관련해서 문제제기를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은 타 특수병과 및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에 대한 것일 것이다. 이공계 연구인력만 소중하고 다른 직종 희망자는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다.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답변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흔히 전문직이라고 이야기되는 의사, 법조인, 연구원 중에서 앞의 두 직종은 군의관, 군법무관이라는 잘 정착된 특수병과를 통해 병역문제를 해결해 왔으나, 연구원의 경우 전문연이라는 고학력 이공계에 제한된 좁은 문을 통해 보충역으로 병역문제를 해결해 왔고, 결국 그마저도 없어지면서 본인의 전문성을 살려 병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게 되어 버렸다. 이는 전문직 종사자 개인 입장에서도 차별적인 대우가 될 수 있을 뿐더러, 군대 입장에서도 과학기술을 통한 기계화, 현대화된 선진강군 건설이라는 최근의 추세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조치가 될 수 있다.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연 제도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상황에서 현역 일반병과의 형평성 문제가 전문연 폐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현역 일반병에 대해서도 군기강과 상관없는 폭력을 최대한 막고, 밥이랑 월급 수준 개선하고, 장비 제대로 지급하고, 외출을 자주 가능하게 하고, 자기계발 시간을 어느정도 이상 확보하도록 하여, 전문연뿐만이 아닌 전체적인 병역수행의 환경을 상향평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특수성으로 인해 전문연과 같은 수준의 자유화는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겠지만, 앞서 나열한 것들 정도는 현역일반병에게도 못 해 줄 이유가 전혀 없는 조처들이다. 혜택이 아닌 당연한 권리들이다.

  대한민국 징병제 하의 군인들의 복무환경과 그 대우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이 나쁜 수준이고, 한국이라는 국가의 전반적인 사회 수준에 비추어 보면 아연실색할 정도이다. 전문 연구인력에 대한 특별대우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일반병사의 복무환경 자체도 정상적인 수준으로 확 끌어올려질 필요성이 있다.

  안그래도 시민사회와 유리된 한국 군대의 폐쇄성과 전근대성이 조만간 매우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며, 우리가 군대에 대해 문제를 문제라고 똑바로 인식하고 목소리를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 전문연 폐지 조처를 통해 군대 문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목소리도 나오고 하면서 전반적인 개선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 전문연구요원 폐지 조치에 대해 전면 재검토 착수하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면밀히 조사하여 수정 조치하여야 한다.
- 임금 개선, 식사 개선, 자기계발 시간 및 휴가 확보 등, 수십 년간 방치되어 오다시피 한 군인들의 복무 환경 정상화 문제를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설정하고 대대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 사회구성원 개인들의 삶의 방향 설정에 큰 영향을 주는 교육, 입시, 군대 등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최소 10년의 유예기간을 두도록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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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7일 토요일

대담

A: 감동적인 영화 한 편 본 것 같은 2분이야.

[미야자키 하야오 다큐멘터리 중, 그의 은퇴 기자회견 직전의 2분 정도를 담은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평생 아름다운 상상력을 간직하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살아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생이 집약된 2분이다.
(https://youtu.be/oJhTQvyG0CI?t=1h51m49s)]

B: 헛웃음만 나와....... 나, IT 서비스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살았잖아? 근데 역량 있는 핵심 엔지니어를 찾지 못해서 넉 다운 당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봤어.

A: 어떤 생각을?

B: 솔직히 아날로그와 미학적 아우라를 중요시하는 나 같은 인간이 왜 IT 서비스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구현하려고 하는가, 페이스북, 트위터 같은 것들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이 확실한 내가 또 IT 서비스를 만들려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자문자답해보니 지금, 16년 중순, 이 순간에 당당한 답을 할 수가 없더라. 왜 만들려고 했을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원해서야. 근데 그런 건 없는 것 같아. 절대적인 개념으로서의 나은 세상이란 건 말이야. 결국 나의 주관적 판단이 그려낸 이상이고, 내가 완벽하다고 믿는 시스템은 그 자체로 모순을 지니게 되는 거지. 그리고 고민을 했어. 그럼 난 무엇을 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B: 나는 이 세계가 싫었어. 그래서 이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 허나 그 것은 나의 아집, 바꾼다고 해도 나는 바꿈과 동시에 스테레오타입이 되는 거야.

A: 프로젝트란 그렇지. 시스템의 밖에서 지적을 하는 역할에서 출발하나, 또 다른 시스템이 되어서 맹목화된다면 또 다시 문제가 생기겠지. 그러니 B씨는, 그리고 인류는 끊임없이 반성적 사고를 해야 되는 겁니다. 라는 거지.

B: 정확히 이해했어.

B: 근데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르더라. 언젠가 내 조카가 디즈니랜드에 가서 줄을 서는 걸 보는데, 조카는 그 긴 줄을 서면서도 웃으면서 삼촌한테 온갖 장난을 치면서 웃는 얼굴로 기다리더라.

A: 어린아이에겐 모든 것이 놀이.......

B: 나는 오늘 어머니랑 수목원에 갔다 오는데 사람 많고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거든. 근데 얘는 왜 이럴까를 생각해보니 디즈니랜드는 이 아이들에게 있어 다른 세계의 신나고 재미있는 친구들이야. 이상 속의. 내가 어머니랑 수목원 가는 것과는 다르지. 얼마를 기다리든 디즈니랜드에 있는 것 자체가 신나는 일이니까. 그래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야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A: 그렇지. 또 다른 세계. 어린 아이들이 상상 속의 친구, 상상 속의 세계를 갖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겠지.

B: 응 맞아.

A: 워워, 근데 너무 큰 기획이야 그건.

B: 근데 이것저것 현실세계를 녹여내서 analogy 범벅을 만드는 건 그냥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거고, 나는 그냥 이야기를 해 주고 싶어졌어. 즐거운 이야기. 신화 같은 이야기. 진짜 새로운 세계. 현실에 결부시키지 않은 이야기. 어중간하게 아이들의 세계에 어른들 이야기 넣지 않고. 그냥 정말.......

A: 신화라는 단어를 꺼낸 게 나와 같은 맥락인지 모르겠는데, 나도 그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B: 응. 더 말이 필요 없겠다. 그거야. 난 이제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지브리라던가 디즈니라던가.

A: 새로운 세계의 창조 그거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건데. 인간성을 최대한 발현시키셔야 하겠군요.

B: 응, 이제는 진짜 그냥 내 모든 것을 아이들에게 바치고 싶어. 결국 미래는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살려고. 이게 나 나름대로의, 2016년의 답이야.

A: 단편적이고 짧은 생각일 뿐이었지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나는 세속주의자이자 인본주의자로서, 신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야말로 인간 고유의 일이라고 생각을 하거든. 그래서 환상의 세계를 좋아해. 물론 기술복제 시대가 도래하고 매스미디어가 처음 나올 때 많은 이들이 비판했듯이, 그런 것들이 실제 세상에 어중간하게 적용되어서 혼란을 낳을 수 있기도 하지만 말이야. 그런데 결국 인간성을 제대로 발휘한다면 그런 혼란도 극복하고 진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B: 우리가 숨을 쉬고 있는 이 세계를 A라고 하자. 근데 나나 너나 B라는 세계에서 어느 정도 위안, 즐거움을 얻으면서 살아가. 이 B는 음악, 만화 등의 현실과는 다른 세계야.

B: 우린 어쨌든 A에서 살아가. 그건 현실이야 어쩔 수 없어. 하지만 이렇게 새벽에 친구와 대화하면서, 따로 파티션을 나누어 얘기할 또 다른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완전히 새로운 공간. 물리적인 공간은 아니야. 내용적으로도 A와 일치하지 않아. 하여튼 이렇게 A에서 살면서 B적인 이야기를 해나가며 행복하게, 아니, 행복하지 않을지라도, 자기 나름대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그런 것이 필요해. 작아져버린 인간으로서 숨 쉴 공간이 필요해.

A: 그런 게 필요하다. 도구적인 필요라기보다는, 이유는 없지만 우리는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다.

A: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B: 왠지 서글플 얘기가 나올 것 같은데.......

A : 우리 인간들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거의 같은 유전자를 갖고, 지구라는 거의 같은 곳에서 살고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뇌의 회로와 우리가 자라오면서 한 경험들은 각자가 다 다르다고 볼 수도 있어. 따라서 우리들이 얘기하는 B적인 것들이 서로 같은 건지 완전히 검증할 수는 없어.

B: 응.

A: 그러나 우리의 유전자와 경험을 통해 형성된 우리의 뇌 구조는 이렇게 많이 다르면서도 결국 모두 서로 비슷하지. 따라서 우리가 B를 얘기할 때 우리에게 떠오르는 것들은, 많이 다를지라도 결국엔 많은 지점들을 공유할 거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B를 이해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가 성립하고, 문학이 성립하고, 예술이 성립하지 않을까.

B: 뭐 예상대로랄까. 조금, 아니 조금이 아니라 눈물이 나오네. 모르겠다. 슬픈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A: 서글픈 느낌은 아니지 않아?

B: 벅차올라. 서글프기보단.

A: 열광 아니겠습니까....... 열광.

B: 응, 그러네.

B: 결국 우린 B적인 이야기를 해나가는 중에 우는 거고, 아니 어쩌면 나만 우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 어찌 정의할 수 있겠어. 딱 맞아 떨어지는 답이 안 나오는 주제긴 한데,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조금 더 하자면, 현실은 언제나 모두에게 달라. 그 70억 개의 다른 현실들 중엔 힘든 현실도 안락한 현실도 있겠지만, 현실들의 개별적인 속성을 막론하고 적어도 내가 만든 세계에 다이빙하는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들에게서 자유로워지길 바래. 아름다운 방향으로.

B: 사실 단순하고 짧은 얘긴데 너무 늘어뜨렸네. 미안하다.

A: 나는 매우 중요한 얘기라는 생각이 드는걸. 말씀하신 대로, 간단할 수도 있는 얘기겠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답이 안 나오지.

B: 난 이제 미래를 위한 삶을 살련다. 미래라는 게, 나의 미래가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 아이들의 꿈. 거기에 나의 모든 걸 바치고 싶어. 그리고 어른들도 내가 아이들을 위해 만든 무언가를 접하며 잠시나마 새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토이스토리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며 즐거워하듯........ 청각예술이든 시각예술이든 상관없어. 그게 아름답다고 생각해. 난 이제 정말 아름다운 일을 하고 싶다. B 세계를 열심히 만들 거야. 잘 해야지.

A: 맞아. 그렇게 생각했다면 잘 해야지. 뭐 구체적으로 코멘트를 할 게 없네. 좋은 생각이야.

B: 이제 내 인생은 나를 위한 생이 아니야. 난 남을 위해 모든 걸 바칠래.

A: 위한다는 표현도 이상할 수 있겠다. ‘B에 임하는 삶’ 정도?

B: 그러네. 맞아. 난 새로운 세계를 만들래. 그냥 계속 그럴래. 눈물이 또.

A: 현실이라는 굴레는 매우 무겁지만, 그렇기에 인간은 온갖 이성을 다 발휘하지만, 때로는 B의 창조에 우린 그저 그렇게 임하면 되는 것....... 그리고 현실이 확고히 있기에 그 모든 B는 의미를 가진다. 창조를 해 나가자.

with Sanghyeon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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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2일 금요일

구시대적 관제 동원 시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구시대적 관제 동원 시위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전부터 폭력 논란, 관변단체 의혹 등으로 입에 자주 오르내리며 보수적 시민단체의 대명사가 된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는 단체와 관련해서인데, 최근 탈북단체 동원설, 청와대 지시설, 전경련 자금지원설 크게 세 가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 시사저널의 단독 보도로 드러난 청와대 지시설에서 등장한 청와대 ㅎ사무관이 탈북단체를 관리하는 일을 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최고책임자이자 민주적 원리에 따라 국가를 통치할 의무가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건과 비슷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시사에 나름대로 처음 관심을 가진 이래로,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들은 모든 시사 이슈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2012년 대선국면에서 국가정보원과 사이버사령부에 의한 댓글작업이다. 이것을 여론 면에서, 법적인 면에서 꼬리자르기를 잘 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의 SNS미디어본부장이었던 윤 모 목사가 소위 십자군알바단이라는 댓글부대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윤 모 목사가 '나를 지원하는 분이 국정원이랑 연결이 돼 있어' 라고 말하는 녹취록이 존재한다. 또한 윤 모 목사는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와 직접 보고하고 지시받는 관계였다는 것 역시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도 국가정보원에 의해 진행된 이 여론조작의 책임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버이연합의 정치적 집회가 누군가에게서 자금 지원을 받아서 진행될 거라는 단순 의혹 자체는 자주 제기되었으나, 그 주체가 바로 청와대라는 시사저널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것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 댓글작업 사건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더 직접적으로 대중들의 눈에 띄는 어버이연합 시위를 기획하는 데 청와대가 일부라도 참여하여 지시했다는 것은, 국민들이 방해하여 자기들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데서 나오는 발상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운영 원리조차 이들이 내재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012년 국정원 댓글작업 사건이 그 사건의 중요도에 비해 충분한 책임자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마무리되었고, 결국 '게이트'라는 칭호를 대중적으로 얻지는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는 입장으로서, 이번 청와대 지시설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게이트라는 칭호를 부여받을 만 하고, 성역 없이 철저히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쯤 되면 국가수반을 보좌하는 청와대인지, 국가수반을 보위하는 친위대인지 알 수가 없다.

  관제 동원 시위는 민주국가의 시민들에 대한 노골적인 기만이며, 여론조작 행위이다. 권위주의 통치의 회귀의 징조이다. 청와대가 이러한 관제 동원 시위에 깊이 개입해 온 의혹이 있다면 명명백백히 밝혀야 하며, 의혹이 사실일 경우 최고 책임자가 직접 사과하고 책임져야 한다.

  또한 이번 논란을 계기로 정부기관에서, 그리고 군대 사상교육 현장에서 탈북자들을 어떻게 이용해 왔는지도 (공공연히 막연하게 알려져 있는 것 같긴 하더라만) 낱낱이 밝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폭압적인 권위주의 정권에서 살다가 목숨 걸고 탈출해서 나온 사람들을,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정의롭고 따뜻하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옳다구나 하고 관제 동원에 이용함으로써 국민 분열을 조장하고, 결과적으로 또다른 권위주의 정치에 이용하고 있는 행태는 반드시 중단되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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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1일 목요일

한국 보수이념에서의 '자유' 개념 비판

  한국에서 '자유'라는 단어가 주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지 상기할 때마다 대단히 안타깝다. 자유라는 단어를 내건 사람들이 헌정 민주주의 국가가 보장하는 자유의 개념과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한국에서 자유 개념의 쓰임이 현재와 같이 된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주로 소위 주류집단에서 그러한 것을 조장한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그 사회적 역사적 배경에 대해 분석해 본다. 두 파트로 나누어서 쓰겠지만, 본질은 하나이다. 정치적 및 경제적 이념지형에 대해 깊이 이해한 상태에서 쓰는 글은 아닌데, 읽어주시는 분들의 많은 지적을 통한 공부가 앞으로 필요할 것 같다.

  첫번째는 보수 정치권에서 사용하는 '자유'의 개념이다. 자유에 대한 낡은 관념이 충분한 반성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특히 한국 사회 기득권층 내에서 그 본질적인 의미를 상실하고 주변부의 의미만을 취한 채로 맹목화되었는데, 그 잘못된 관념이 불행하게도 권력자들이 헤게모니를 쥐는 데에 매우 유용했기 때문에 계속 조장되고 사용되어져 온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에 대한 잘못된 관념이란, 냉전시대 '공산진영'과 대립한 '자유진영'에서의 그 '자유'가 본래적 의미를 잃고 오로지 상대방에 대한 안티테제로서만 사용되기 시작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결국 독재와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정치적 자유와,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의미에서의 경제적 자유주의를 모두 포괄하긴 하나, 후자는 이후 문단에서 논하고 여기에서는 전자에 포커스를 맞추겠다.

  물론 자유를 추구한다는 말 자체는 현재에도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동의할 만한 좋은 일이나, 그 실상을 본다면 '자유진영'에서 그 반대 진영을 경계한다는 목적으로 사상교육과 인권침해를 강행했던 일들이 너무 많았고, 이것이 진정으로 자유 개념을 잘 수호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주 큰 무리가 있다. 현재에도 군대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실태 및 정부기관과 보수단체에서 탈북자들을 이용하는 행태를 보면, 공산진영 및 북한 독재정권에 반대되는 의미로 보수 진영에서 사용하는 자유라는 단어가 그 본래 의미대로 잘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렇게 자유 개념을 왜곡시키지 않고도, 자유권 침해 관련해서만으로도 북한에 대해서는 수많은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유 개념의 왜곡은 딱히 '분단관계라는 특수상황에서 불가피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자유의 본질과는 매우 떨어져 있었던 것들을 자유의 본질인 것처럼 착각하게 함으로써 보수적 헤게모니가 힘을 얻게 된 것은 비판당해 마땅하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한창 논란이 되었을 때 진행된 TV 토론에서도 나는 이러한 '자유' 개념에 대한 시각차를 보았다. 국정화 반대 측에서 말한 자유가 내가 지지하는 것에 가깝고, 찬성 측에서 주장한 자유는 사실 그 본질과는 많이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잘 봐 줘야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고 충돌이 잦던 시절,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남한 정권에서 국민들에게 감내하도록 한 희생(?) 정도이지, 전혀 진정한 자유의 수호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 남한 정권마저도 반공을 명분삼아 독재체제로 이행되어 국민들을 탄압하는 등, 높은 수준의 자유를 결국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조치에 찬성하면서 이런 식의 자유 개념을 다시 꺼내든 것은 오히려 자유를 침해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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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는 재계에서 주로 사용하는 자유의 개념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의 자유와 현대 민주주의에서 보장하는 '자유권'에서의 자유 개념은 사실 불평등이 이슈인 21세기에 와서는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 옳다고 보는데, 전자와 후자의 혼동은 매우 잦다. 비록 이 둘은 계몽주의를 위시한 그 근대적인 거대한 흐름에서 함께 출발해서 오랫동안 같이 흘러온 것들이긴 하나, 전자의 경우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오히려 후자의 자유를 침해하기까지 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러한 면에서 두 자유 개념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일부 경우에 후자의 자유가 이미지가 좋기 때문에 그 구분을 흐리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즉 (극단적으로 말하면)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능력이 없어서 도태되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며, 불평등이 성장을 촉진하므로 그러한 것들을 일부러 없애자는 것은 공산주의자들이라는 주장들이다. 이들은 자유 경쟁 체제에서 우위를 점한 사람이 무한이기주의를 펼치는 순간 더이상 자유경쟁은 없다는 그런 역설은 고려하지 않고 래디컬하게 시장경제를 옹호한다. '자유롭게 추구하되, 다른 사람의 자유로운 추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하라'는 자유의 대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바로 이 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의 '자유'가 힘을 얻을수록 경제적 이익을 얻는 이권단체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혼동이 조장되는 면이 상당하다고 본다. 자유경제원이 전경련 산하단체로 출발한 것에서 드러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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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오독된 자유'가 교묘하게 결합되고 보수 헤게모니로 작동하면서, 현대 민주국가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권 개념과는 다소 떨어진, 한국 보수이념에서의 '자유'가 탄생한다. 바로 그래서 자유경제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단체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아스트랄한 일이 가능한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자유의 가치가 이 사회에 잘 아로새겨지는 날은 언제쯤 올까? 각 개인 스스로가 하고 싶은 바대로 추구하되, 타인이 하고 싶은 바를 침해하지 않도록 하자는 건데, 이걸 실현시키는 길이 참 쉬운 길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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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2일 화요일

20대 총선을 앞두고: 투표행위의 의미에 관한 생각

  투표의 일차적인 목적은 내가 지지하는 후보자를 당선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는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거나, 안 되거나로 이분법적이며, 후자가 유력할 경우엔 어차피 유권자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는 당선이 안 될 텐데 뭐하러 투표를 하느냐는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심지어, 소위 정치판 자체에 대해 잘 모르는 유권자의 경우는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모르거나, 결국 다 똑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투표 의지를 잃기가 더 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투표 행위의 가치는 단순히 '내 후보가 당선되느냐 마느냐'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다음날 뉴스에 나오는 것 중에 하나가 '투표율'이다. 정확한 숫자와, 퍼센티지와 함께 지역별, 연령별 투표율이 쭉 나온다. 이 투표율엔 내 한 표가 명확히, 눈에 보이는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 투표율이다. 20대 투표율이 높다면 정치인들은 이 전 4년보다 이 다음 4년 동안 20대의 목소리에 더 많이 집중해 줄 거라는 것이다.

  투표권 행사, 참정권 행사의 의미를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달리 보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내 투표는 아주 미약하나마, 진짜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가 높을 때만이 잘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투표의지를 결정하는 것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거시적으로는 정치인들이 발의한 정책들에 의해 국민들의 삶에 활력과 여유가 생겨 투표하러 가는 것이 가능하고, 미시적으로는 정치인들의 디테일한 면모들을 보고 이에 열광하여 투표하러 가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만약 정치인들의 행태가 바람직하지 못하여 국민들이 정치 참여 의지를 잃는다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지반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정치인들의 행태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악순환이다. 나는 이런 악순환을 깨고, 국민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자생적인 힘에 의해 활발한 정치 참여가 이루어져 정치인들을 좀 놀래키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는 낭만주의적인 믿음을 잃지 않고 싶다.

  효과적인 투표 참여 독려를 위한 참신한 설득 전략들이 필요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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