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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7일 일요일

수완사회: 소비자 보호의 상업윤리

최근에 '수완사회'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해 보고 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의 가치가 다소간에 낮게 평가되거나, 혹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실제로는 작동을 못 하고 유명무실화되어 있는 상황이 많다고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수완'을 검색해 보면 '일을 꾸미거나 치러 나가는 재간'이라고 해설되어 있다. 위와 같이 시스템이 부재한 영역에서, 이러한 인간적인 '수완'이 여전히 고평가되며 또한 실제로도 무척 중요한 면이 많은 듯하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이런 '수완사회'의 면모가 비교적 덜한 사회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매일 보고 듣고 생활하는 나라에 대해 굳이 다른 나라와의 상대적 비교를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야기해 보는 것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한, 잘 작동하는 시스템 뒤에도 사실은 언제나 '사람'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잘 작동하는 시스템 뒤에 사람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충돌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수완사회'의 대표적인 단면은 바로 상업 부문에서 나타난다. 나는 정해진 금액을 내면 정해진 물건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현대 상업사회에서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러한 기본적인 상업윤리(?)에 대한 신뢰를 잃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 업종들에서 암묵적으로 돈을 추가로 받거나, 고객들한테 단순히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성들인 편지 내지는 선물을 받는 것, 혹은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행동과 관련된 과도한 규칙들을 관행처럼 만들어 둔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많이 들려서 그렇다.

특히 (1)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며 콘셉트가 선명한 소규모의 공간 (식당, 카페 등) 이나, (2) 이사, 미용, 웨딩, 촬영 및 각종 이벤트 관련 업계 쪽에서 그런 현상들이 많은 것 같다.


(1)의 경우 한때 꽤 화제였던 레터링케이크 가게 운영방침 관련 갈등들도 어찌보면 이것의 연장선일 수 있다. 또한 극히 최근에는 일부 식당들을 시작으로 북미의 팁 문화를 한국에 이식해 오려는 게 아니냐는 논쟁이 생겨 언론에 보도까지 되기도 했다.

이런 게 요즘 실제로 많아지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데 요새 나한테 많이 들릴 뿐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대중의 구매력 및 소비 욕구가 높아지면서 소비형태가 변화하고,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효과가 커진 상황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 아닐까 한다. 사장님들이 공간과 고객경험을 독창적으로 디자인하는 데에 갈수록 수고를 많이 들이게 되고, 그에 따른 충분히 많은 금전적 보상과 인간적인 존중을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왕이면 가게에서 원하는 공간의 콘셉트나, 업무의 편의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규칙들을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걸 존중하며 지키는 것을 참 재미있고 예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이면 돈만 내면 기분을 상하게 해도 된다는 태도 대신,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이 직업적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좋은 고객이 되자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존중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가게 입장에서 보편적인 고객이 지키기 힘든 규칙들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사람 가려 가며' 서비스나 가격을 달리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들도 실제로 존재하다 보니, 일괄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매 경우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애매한 영역들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게들에서는 사실 가게 측의 문제보다는, 손님들의 각종 갑질과 민원이 훨씬 많고 심각한 문제이기는 할 테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는 잘 없는 것 같다. 이상적으로는 두 문제는 경합하는 관계가 아니고, 둘 다 해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돈만 내면 다 된다, 혹은 돈을 못 내겠다 하는 갑질 고객들이 워낙 많다 보니, '고객이 잘못한 거다 vs 사장이 잘못한 거다'로 싸우는 상황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또한 더 크게 보면, 공론장(?)의 자원도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어떤 논점이 얼만큼의 비중으로 형성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두 문제가 경합하는 양상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해 두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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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위 (2)의 경우, 즉 이사, 미용, 웨딩 및 각종 이벤트 관련 부문에서 대금 지불을 깔끔하지 않게 하는 구조가 생기는 것에 대해 다루어 보자. 사실 이쪽은 (1)의 경우보다 여파가 더 심각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오가는 금액의 액수가 훨씬 크기도 하고, 서비스의 질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웨딩 준비에 관여되는 여러 부문의 사람들이 수고비나 식사비 등의 명목으로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추가 현금 입금을 요구하는 경우, 혹은 요구하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금액이 아니라, 손으로 예쁘게 꾸민 편지를 쓰는 것이 암묵적 관행으로 자리잡아 있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결합해서 썩 놀라운 사례도 보았다. 고객님들이 비싼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며 인스타그램에 고급 간식 사진 같은 것을 올린다. 그러면 고객들은 관행인가보다 하면서 그런 선물들을 가지고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처음에 올린 사진은 실제 고객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도용한 사진이다.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 구조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밴드 활동을 하다 보니 미용, 의상, 촬영 등 여러 사람들이 단계별로 관여되는 일에서의 대금 지불을 수차례 해봤었다. 반면에 개인적인 성격상 업계의 여러 암묵적 관행들은 잘 파악하고 대처를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기 딱 좋겠다, 혹은 그동안 그런 일이 이미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내가 서비스를 받는 입장임에도 암묵지를 캐치하고 인간적인 수완을 발휘해야만 적당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들이 많다면, 구매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피곤하고 솔직히 공포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런 구조가 생기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프로세스에 워낙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단계적으로 관여를 하는데 그 사람들이 각자 돈을 받아가야 하다 보니, 사전에 정확한 금액을 얘기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일의 난이도도 높다: 고객들의 요구에 맞추어서 매번 다르게 해야 하고, 한나절 넘게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출장을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잘 정의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고객과의 밀접한 소통이 필요하고, 또한 단순 금전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적인 감사 표현도 아무래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여기서 돈만 내면 됐지 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상당히 인간미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고객들도 아무래도 특별한 순간을 위한 거니까 조금 무리하다 싶은 요구를 받아도 좋게좋게 하자는 생각도 있을 것이고, 일이 돌아가는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일일이 따지기 어려운 상황들도 있을테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미리 얘기해서 정확하게 표시된 가격으로 지불을 해야지, 암묵적으로 추가금을 받는게 당연시되는 건 전혀 좋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돈과 별개의 감사 표현도 각자가 진심으로 하면 되지, 이상하게 관행처럼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 역시 참 별로인 것 같다.

약간 별개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 가격 자체에서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최근에 보도된 것으로는,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때 국가에서 100만원을 지원하기로 하자, 산후조리원들에서 일괄적으로 금액을 100만원씩 올렸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해도 이러한 행태는 제대로 된 가격의 결정방식이 아니므로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고, 국가와 국민을 조롱하는 행태이므로 규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그래도 사람들이 결혼, 출산, 육아 등에 시간적, 금전적 부담을 무척 많이 느끼는데, 이러한 부문들에서 사람들이 소비자 단체 같은 거라도 만들면 어떨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들이 철저한 개인으로서 직접 복잡한 대금지불을 파악하고 감당하는 일이 줄어들게끔, 또한 무리한 요구가 오가는 일을 줄어들게끔 해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업체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일이 현대화, 시스템화 되고 신뢰를 받는 셈이므로 장기적으로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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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필자의 관점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다: 상업, 특히 서비스업에서 '수완'이 발휘될 여지를 줄이고 시스템적으로만 하자는 주장,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보호 요구가 과도해진다면 그것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얘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가격과 서비스가 표준화되어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상업거래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철저한 불확실성 속에서의 흥정에 있다. 또한 유통의 말단에 있는 일반 소비자 레벨에서 잘 표준화된 소매를 제외하면, 지금 현재도 수많은 야생(?)의 흥정과 인간적 수완에 의해 전 세계 상업과 무역의 많은 부분이 작동하긴 할 것이다 (나도 사고 싶은 옷 같은 걸 찾아서 사느라 그런 걸 아주 약간은 해 봤다).

그러나 뭔가 대단히 특별한 상품 내지는 한정된 서비스를 거래하거나 아예 직업상 상업 자체에 깊게 관여하는 게 아닌, 비교적 보편적인 범주의 소비 (이사, 웨딩 등 일회적인 것도 포함) 를 할 때까지 소비자들이 이런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현대사회의 등장이란 결국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집단이 직접 충돌하는 것을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완화하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만약에 그것들이 보편적인 소비가 아니므로 표준화와 보호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더욱더 사람들이 꺼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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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일 일요일

정치적 지지를 맡겨놓은 듯한 태도는 잠재적 아군마저 적으로 돌린다

정치 고관여층들이 특정 그룹에게 정치적 지지/반대를 '맡겨놓은 것처럼' 대하는 것도 참 유감스러운 일인 듯하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도 통합된 결사체의 부재, 내외적으로 요구되는 탈정치적 태도를 비롯한 여러 문제 탓에 크게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것 같아 보이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소문들이 있는지 이야기를 먼저 자세히 들어 보는 게 이상적인 태도 아닌가. 효과적인 창구가 없다 뿐이지 막상 얘기를 시켜 보면 사정을 자세히 알고 얘기를 해 줄 분들도 많이 있는데 말이다.


일례로 요즘 일각에서는 '과학자들 연구예산 깎인다는데 왜 반대시위 안하나요?'라면서, 옛날에 누군지도 모르는 과학기술인 백수십 명이 윤석열 지지성명 하나 낸 거 기사 첨부해 가면서 과학자들에 대해 막연히 조롱 및 원망하는 게 아주 스포츠처럼 되어 있다. 설령 과학자 집단의 (탈)정치적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런식으로 단정적으로 적으로 만들면 결코 마음을 얻기 힘들고, 그 결과는 자기실현적 예언밖에 더 되겠나.

당장 예산이 깎인다는데 비판적인 얘기를 다들 했지 왜 안 했겠는가? 심지어 각 대학 이공계쪽 학생회들도 의견을 활발히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쓰려다 보니 메시지의 선명성이 정치 고관여층들의 성에 차지 않게 되어서 그게 또 비난받던데, 요즘의 대학가 특히 이공계에서 '정치적 오해'를 피해야 하는 강박에 가까운 요구가 꽤 널리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정권 비판자들 입장에서는 저 정도로 메시지 나온것에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박수를 쳐 줘야 맞지. 아무튼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다.

오염수 관련해서도 자꾸 과학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바람에 과학자들이 반드시 정권과 한편인 것처럼 생각해서 저런 식의 비아냥을 더 거리낌없이 하는것도 없지 않은것 같은데, 과학자들 중에서 괴담 말고 과학을 믿으라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건 과학과 별개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믿을수 있느냐의 문제, 그리고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사회적 문제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결국 접점을 조금씩 넓혀나가면서 신뢰를 확보해야 각 사회적 그룹이 사안에 따라 정치 쪽이랑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이합집산 하는 역동적인 과정이 생산적으로 진행이 될 텐데, 어느 진영이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특정 그룹은 무슨무슨 성향이니까 마음놓고 적으로 돌려서 내 적의를 마음껏 쏟아부어야지 하는 태도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부 정치고관여층 개개인의 태도일 뿐인데 무슨 상관인가 할수도 있지만, 정치인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지지층 전반에 깔린 정서와 대체로 같이 가게 되어 있고, 그 결과로 각 사회집단을 불필요하게 적으로 돌려서 신뢰를 잃는 걸 지난 몇년간 아주 많이 봤기 때문에... 위와 같은 태도를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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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0일 수요일

비판을 차단하는 졸속행정과 극우 이념운동으로 점철된 윤석열 정부의 15개월

대선 직후에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성실하고 양심있는 시민들의 절차적, 실질적 법익이 당장 대규모로 침해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비판과 감시가 작동할 테니까, 검사출신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이제 우리도 검찰에 잡혀가는거 아니냐'(주로 SNS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많이 말하던)라는 식의 과도한 언사는 일단은 반대자들한테 비웃음만 사기 쉽고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었다. 이 얘기는 무려 대선 바로 다음날 포스팅에서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군검찰이 해병대 사망사건 수사단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보니 (뉴스 기사 링크: [1보] 군검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 청구 | 연합뉴스) 위의 우려는 그 동기와 별개로 결과적으로 결코 조롱도, 과도한 걱정도 아니었고 그 자체로 맞는 말이자 타당한 우려였다는 생각까지 든다.

관료집단은 그 보신주의적 성격상 정권의 의지가 강하다면 아무리 이상한 일에 대해서도 억지로라도 논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이는 대통령 실언 수습 과정, 그리고 수능 논란이랑 R&D예산삭감 등 졸속정책 등에서 여러 차례 보았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법익이 직간접적으로 심대하게 침해되며, 논쟁의 내용 면에서도 건전하고 조심스러운 논의일수록 가장 빨리 힘을 잃게 된다. 이렇게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관료집단을 통해 구현되는 국가권력을 내가 너무 가볍게 봤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서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판당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대규모로 법익을 침해하고 일을 말도 안 되게 더 키우는게 벌써 십수 번씩이나 눈에 보이니까 정말 걱정이 된다. 외교 무대 관련 논란이나 수능 킬러문제 논란 때도 여러 번 그랬었다. 사실은 백수십명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는 얘기도 있는데 이건 너무 마음이 아파지니까 더 얘기는 안 하겠다.

물론 군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폭로하고 싶으면 이런 고초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한데, (내가 평시 군검찰 군판사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인건 차치하고) 그걸 감안하고 봐도 지금 수사단장에 대한 군검찰의 적극적인 기소는 다름 아니라 윗선의 외압을 폭로하는 행보에 대한 보복임이 명백해보인다.


말문이 트인 김에 역사관 논쟁도 얘기해보자. 21세기 이래로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보수 이념운동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형국인데 그 수위가 대단히 세며 국민통합이 아닌 좌우 분열을 노골적으로 의도하는 점, 그리고 육사를 비롯한 군 조직이 자신들의 내부 방침을 정리하는 것일 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이 문제겠다.

임시정부 수립 및 8.15 광복이 아니라 1948년 건국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뉴라이트 역사관에서 늘 밀고 있는 방향이니 이번 정권 들어 그렇게 하겠다 싶긴 했지만, 그 방법으로서 당대 인물의 공산주의와 관련된 행보를 '현재의' 북중러와 직접 연관시켜, 현재적 이적성(利敵性)에 가까운 것을 단정적으로 부여하고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배제하려는 지금의 행보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막말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 전후에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의 대한민국 수립에의 기여를 일괄적으로 불인정해 버리면 (실제로 홍범도 유해를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한다는 보수단체의 주장도 있었다) 오히려 북한이 그들에 대한 계승의식을 배타적으로 취하는 것을 막을 논리가 사라져서, 대한민국을 이념의 무균실로 만들어 그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맷집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지 않은가.

섬세한 역사학적 논리가 아닌 오직 반공 몰이를 통해 역사 논쟁에서 정치적으로 승리하려고 하는 보수 이념운동의 오랜 나쁜 습관이 정권에 의해 직접 추인되면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정부여당이 매우 강경한 의견을 천명하니까 그동안 외면되거나 자제되었던 온갖 강경한 의견들이 덩달아 힘을 얻어 수면위로 나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역시 정치권력의 가장 무서운 힘 중에 하나는 스스로의 개념체계를 - 그 개념체계의 건전성과 무관하게 - 현실 사회에 그대로 구현해 버리는 능력이다.


인사도 정말 문제다. 막말로 이동관이 자녀 학폭 무마 적극 개입, 정보기관과 연계한 적극 방송탄압 경력 등 숱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장으로 임명을 시키려는 모습이 보인다면, 2019년 당시의 검찰이었다면 바로 수사개시를 해야 맞음.

정권 초반 고위공직자 인사문제는 일차적으로 정치영역에서 해결을 보는 게 순리이기도 할 것이고. 후보자의 논란사항에 대해 검찰이 전격 수사를 개시해봤자 정권이 아직 건재하니까 제대로 진행될 각이 안 선다고 봐서 일반적으로 안 하는 일인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국정원 덧글사건, 그리고 2019년 조국사태 당시 검찰 내 특정인사는 숱한 노골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걸 해냈기 때문에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을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결국 임명된) 이번 이동관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는 검찰이 그런 움직임을 전혀 안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이건 뭔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겠냐는 것.

물론 여러번 지적했듯이, 이걸 어떻게 해야 이상적이냐고 물었을 때 답이 명확하진 않다. 무슨 카드게임 하는 것처럼 어떤 건은 바로 수사 개시하고 다른 건은 각이 안 나오니 꿍쳐놓고 못 하고... 특수수사의 이러한 '근본적으로 선택적인' 모럴은 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지만,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관료기구가 자율적 시스템 위주로 작동하면서 구성원의 직업윤리적 책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아무튼 지난 5년 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이 하는 문제가 많은 발언들에 질려서 가급적 거리를 뒀는데, 정권 바뀌고 나서 나도 이렇게 금방 그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말 (나도 잡혀가는거 아니냐? 왜 조국은 수사했는데 쟤는 수사 안하냐?) 을 하게 될 거라고는 1년 전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제대로 하면 이러지도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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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7일 목요일

R&D 예산삭감, 부실재정 의혹 그리고 설명 부재 유감

이번 R&D 예산 일괄 삭감으로 인해 기존에 진행중이던 과학기술 연구 프로젝트들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게 될텐데, 이런식으로 흔들고 죄게 되면 정부가 우려하는 보여주기식, 실적 채우기식 연구들을 오히려 더 종용하는 셈이 아닌가?

설령 연구비 부정수급이 존재하고 그것을 잡기 위한 좋은 의도라고 치더라도 출연연, 과기원 포함한 대규모 삭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


특히 출연연뿐 아니라 연구재단, 한림원 등의 예산도 깎이게 될 경우, 연구가 정상적으로 되려면 장비랑 시약, 그리고 고용관계인 근로자 인건비 등에서 비용을 줄이기 어려우므로 결국 연구재단을 통해서 받는 다수 대학원생들 인건비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 틀림없는지라 개인적으로도 참 걱정되고 의욕이 떨어진다.


이렇게 정확한 설명도 양해도 없이 광범위한 부문에서 대폭 깎은 것을 보니 애초부터 어떤 체계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졸속으로 정해진 것이고, 그 이유는 국가의 재정상황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꽤 유력한 추측도 있는데, 그 와중에 한국자유총연맹을 비롯한 우파 관변단체 예산은 증액했다는 보도를 보면 참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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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30일 일요일

KAIST 명상과학연구소 논란에 부쳐: 과학, 후원 그리고 지식생산의 건전성

KAIST 명상과학연구소 관련하여 진즉에 공개적으로 있었어야 할 논쟁이 최근 며칠 사이에 페북에서 활발히 이뤄지는 모양이다.

먼저 확실하게 전제해야 할 것이 있는데, 어떤 부문이든 만약 과학적 방법론을 결여한 채로 검증을 우회하여 과학의 외피를 취하려는 시도가 발견된다면 과학계의 자정능력을 통해 단호하게 거부를 해야할 테다.
이러한 전제의 작동은 무슨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정상과학의 데일리한 프로세스로, 과학의 영역 혹은 그 부근에서 지적 도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규범이다.


그런데 페북에 여러 교수님들이 퍼 와 주신 명상과학연구소 측 (혹은 소장 개인)의 자료들을 보면 명상 효과의 과학적 검증이라는 취지와는 달리 종교 쪽에서 이야기하는 사랑, 조화, 자비 등을 과학적 용어정의 및 문제설정으로 포섭하지 않고 그대로 적극 채용하여 서술해둔 부분이 많다.
이에 대해, 아직은 한정적으로만 알려졌더라도 앞으로 과학적 원리가 더욱 많이 밝혀질 것이니까 비전을 작성해둔 것이라고 한다면? 종교 단어라는 이유로 편견을 갖지 말고 지켜봐 달라고 한다면? 애석하지만 그런 말들은 이미 너무 여러 번, 너무 여러 곳으로부터 들었다.
차라리 그런 특정 종교색이 지나치게 강한, (과학의 맥락에서) 막연하게 들리는 어휘들은 잠시 접어두고 현재 자원을 투입해서 풀고 있는 과학 문제들 위주로 소개하고 홍보한다면 더 믿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하간 이러한 정황들로 인해 나는 인간 정신의 비일상적 영역에 대한 과학적 해명과 다채로운 활용을 매우 기대하면서도, 현재의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에 대해서는 본질상 흥미롭지만 아슬아슬한 기획인데 반해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다소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있어, 기본적으로 우려하는 입장임을 미리 밝혀둔다.


명상이라는 특수한 정신상태와 그 긍정적 효과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보고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다수 진행되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사실 남의 분야라 자세히는 모르나 그렇다길래 그렇구나 한다).
나는 물질세계와 분리된 신비한 정신적 영역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정신이란 지극히 복잡한 물질들의 작용의 산물로 주관에 표상되는 것으로서 물질계와 수반적인 관계만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영역을 상정하는 것보다는 가급적이면 성공적으로 검증되어온 기계론적 세계관 하에서의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설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받아들일만 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기계론적 세계관은 과학 이해와 궁합이 좋을 뿐 실제 개별 과학활동을 하는 데의 필수 요건은 아니고, 그런거 없이도 지장없이 잘 연구하기도 하다 보니 이런 얘기가 이 글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므로 여담 정도로 해두기로 한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에 있는 정신현상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비한 비물질적 세계를 표상해내어 그러한 현상의 해석에 동원하게끔 하는 듯한데, 이를 광의의 과학을 통해 이해하는 것은 상술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고수하더라도 퍽 흥미로운 일이다. 특정 종교에서 유래되어 그쪽에서 주로 이야기가 되어왔을지라도 인간 정신에서 보편적으로 발생하여 긍정적 체험을 제공할 가능성, 그리고 꼭 신비한 비물질적 영역을 전제하지 않고 담백하게 설명될 가능성도 당연히 있기 때문이다.
명상의 과학화를 추구하는 많은 심리학적, 인지과학적 연구들은 위에 말한 전제를 인지하여 조심스럽고 담백하게 진행하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이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입장, 그리고 혹시 모를 종교부문의 부당한 과학침투를 적극 막고자 하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연구들과 그 검증에 더욱 활발히 참여를 해주었으면 한다.
아무튼 명상의 과학화를 염두한 개별 연구들의 내용에 대해서는, 열린 태도의 비판적 검토가 잘 작동한다고 전제하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정말로 잘 작동한다고 확신해서라기보다는 그러한 전제 없이는 이하의 논의들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사실 서론이고, 이러한 과학연구의 개별 내용 자체에 대한 평가의 이면에 있는 좀 다른 논점으로 넘어가보자. 과학지식의 생산방식, 그리고 그것이 추진되는 동기 등과 관련한 '사회구성적 계기'를 논쟁에 도입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사회구성적 관점은 각 부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서도 바깥에서 대충 평할 수 있는 만능키 같은 것이기도 해서 굉장한 자제심을 가지고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능히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오랜만에 꺼내본다.


나는 아직 펀딩을 직접 따 보거나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수행하는 입장이 못 되고, 복잡한 거대 실험과학이나 IRB 필요한 생물과학이 아닌 순수 이론과학의 말단에서 첫 발을 뗀 후보생인데다, 페북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계정은 아니다보니 오히려 약간 더 발언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입장이라 사견을 보태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우선 기금 출연을 해주시는 높으신 분의 의지(혹은 사립대학의 경우 대학 재단 소유자)에 의해서 다소간에 튀는 전공이나 연구기관이 설립되는 것은 국내의 수많은 대학교는 물론이고, 이름난 해외 명문대학에서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닌듯하다.

그리고 서양권 종합대학들은 종교학의 연구 대상에 가까운 직업 종교인 당사자들이 직접 종교학전공에 있으면서 영성을 탐구하고 학위 하는 것에 대해 더욱 관대하고 긍정적인 경향이 있어보이기도 한다 (혹시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부 서구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이 여기에 결합해 있지는 않은지 의심해보는 것은 지나친 태도일까).
조심스럽지만 서구 백인 인텔리 중심으로 형성되어온 학계에서, 다른 인간집단을 지나치게 이국적인 연구 대상으로만 대해 온 것에 대한 반성적 경향 때문에 비교적 폭넓게 그런 것들을 열어두는 것 같다. 다양성을 찾아나가면서 지적 전통을 혁신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아카데미의 지식생산 규범을 비판적으로 적용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그럴때에 비로소 따뜻하고 열려있는 보편성이 성립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돌아와서, 카이스트 경우에는 SK 일가의 부회장 급의 의지에 의해 명상과학 연구소가 처음 추진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걸 보면 좀더 구조가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기금을 출연하는 측의 개인적 관심분야에 학교 측이 맞춰 드리면서 제너럴한 과학기술과 관련된 지원도 받고, 그러면서도 그 특정 관심분야 내에서도 가급적 학적 엄밀성을 잃지 않고 의미있는 연구성과가 나오도록 학자들이 이끌고 가는 것은 잘 된다면야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후원은 과학사에서도 상당히 흔했을 것이다.
물론 현대국가에서의 거대과학은 주로 왕이나 귀족의 개인적 관심사가 아니라 민주적 합의에 의해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후원자' 모델은 과거의 것으로서 변증법적으로 지양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가 기초과학에 투자할수 있는 규모와 방식은 한계가 있으며 (심지어 한국은 그 집행방식이 늘 논란일지언정 R&D 예산의 총량 자체는 이미 많다고 알려져있기도 하고) 민주적 합의에 의해 과학기술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어쩔수 없다. 그러므로 민간의 자본에 의한 후원으로 당장에 돈이 안되는 과학기술연구가 진흥되는 것은 상당히 고마운 일이다.
다만 그러한 후원이 과학자들이 추구하는 진실성, 그리고 과학기술 연구 비용이 국민들 앞에 정당화되기 위한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적절히 복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후원자가 자신의 사적, 궁극적 동기보다는 아카데미의 솔리드한 강령 하에서 과학자들이 자율적으로 생산하는 성과를 더 우선시하고 재미있어해야 한다는, 일종의 '쿨함'을 통해 구현되는 책임성 또한 필요하다.



이런 관점들을 종합해 봤을때, 명상의 과학화를 추구하는 명상과학연구소의 초대 연구소장이 과학자가 아닌 직업 종교인인 점은 내게 의구심을 크게 더해주는 부분이었다 (물론 과학기술부문은 아니지만 학위가 있는 분인것은 맞다).
개인적으로는 명상의 과학화라기보다는 명상의 과학적 검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은데, 전자는 종교에서 유래된 개념들의 과학영역으로의 편입 시도가 다소간에 무비판적으로 일어날 경우에 이를 예방하기 어려워 보여서다. 물론 단어가 본질이 아닐순 있다.
이러한 편입은 단순히 내용적인 것뿐만 아니라 과학활동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의 통합 내지는 전이를 포함하며 이는 여러 사람들의 이익과도 관련되어 있다. 위의 '당장에 돈이 안되는'이라는 표현과 굳이 비교해보자면,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한테 당장에 돈이 되는 방식으로 이용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비판적 관심이 끊기는 순간 엄격한 과학적 태도를 결여하게 되는 것은 금방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론적으로, 종교에서 유래된 개념을 심리학적, 인지과학적으로 해명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우나, 근본적으로 아슬아슬한 동거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심리학적으로 연구가 되고 있는 현상일지라도 종교에서 유래되었고 현재적으로도 많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한국에서 현실적인 종교권력이 부당하게 과학계에 침투하거나 그 이름으로 권위를 행사하고자 했던 과거 주요사례들의 트라우마도 고려되어야 한다.
비판적 검토를 포함한 종합적인 관심이 끊기지 않을 때 건강한 지적 생태계가 구성될수 있고 이를 위해 카이스트 명상과학연구소는, 그리고 다른 모든 연구기관들은 오히려 더욱 꾸준한 화제와 관심을 받아야 한다. 나도 미약하게나마 앞으로 그러한 종합적 관심에 꾸준히 참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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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28일 수요일

윤 대통령발 수능 킬러문제 논란: 비판 차단을 위한 연쇄적인 졸속행정이 문제다

수능 논란은 처음부터 대통령발 사고였지만, 최근에 교육부가 직접 킬러문항 (사실상 앞으로 출제되어서는 안되는 종류의 문제라는 뜻) 목록을 구체적으로 찍어서 공개해 버린 건 정말 이 논란의 정점을 찍는 초대형사고인 것 같다.


정책 찬반을 떠나서, 선정된 문제들이 애초에 누가 봐도 킬러문항이긴 하다고 동의할 만하지조차 않았다는 게 일단 문제다. 대체 이게 왜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된, 혹은 사교육을 조장하는 문제인지 의문이 많다고 한다. 심지어 수험생들 사이에 회자되는 유명 고난도 문항들은 오히려 빠진 경우도 많다는데...

확실한 방침에 의거한 전문적 검토가 아니라, 대통령실의 요구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즉 킬러문항 리스트라는게 아무튼 정치적으로 필요해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졸속으로 선정한 문제들임이 명확해보인다.


이렇게 되면 킬러문항을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불명확하여 대체 어떤 종류의 문항을 말하는지가 모호해지므로, 올해 수능이 어떻게 출제가 되더라도 이 킬러문항 리스트에 비추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 왜 이게 킬러문제랬는데 나왔냐, 왜 이건 더 어려운데 나왔냐...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런다해도 한번 본 시험은 되돌릴수 없으니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그리고 만약에 (실제와는 다르지만) 교육부가 과도한 고난이도 문제들만 킬러문항으로 잘 골랐다고 치더라도 이번 조치는 여전히 문제가 된다.

설령 그 문제들이 지나치게 어렵다, 혹은 사교육을 유발한다는데 동의하더라도, 일단 현 수능 기조 내에서는 그런 문제들이 출제되어온 이유가 있기는 했던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내용적으로 보면, 엄연히 출제위원들과 검토위원들이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근거를 찾아서 만든 문제들이다.

그런데 대통령실의 요구에 따른 교육부의 졸속 발표로, 기존에 이미 검토를 거쳐 출제됐던 그 문제들이 '짜잔~ 사실 알고보니 교육과정 내에서 풀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라며, 순식간에 존재해서는 안 됐을 문제로 둔갑하는것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이고 이번 발표가 제일 대형사고인 이유다. 이렇게 하면 앞으로의, 그리고 지금까지의 수능 출제에 대한 수험생들의 신뢰를 크게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결국 지금 사태에서 교육정책 및 수능 출제기조의 향방을 놓고 제대로 싸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어졌다. 대통령실이 상황 수습을 위해 발언을 철회하거나 다소 천천히 하겠다는 등의 책임지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비판 차단만을 위해 연쇄적인 졸속 논점을 생산하고 강경 일변도로 나오면서 오히려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들고, 정책의 일관적 기조라는것 자체를 찾아볼수 없게끔 헤집어놓는 것은 정말 문제적이다.

이번 킬러문제 목록발표를 포함한 여러 방침을 리셋하고 올해 초부터 예정됐던 출제방침으로 되돌려놓는게 순리가 아닐까 싶은데 이미 그렇게 하기도 늦어버린 것 같다. 아예 말이 안되는 얘기를 할경우에 그냥 무시하고 평가원 독립성 보장을 근거로 기존 방침대로 밀고 나가면 좋겠긴 한데... 그럴 수 있는 나라도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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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일 토요일

포털 검색이 어려운 단어들의 특징: 할할팟, 모각공, 각할모

사람들이 카페나 스터디룸 등에 모여서 각자 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모임을 일컫는 용어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원래 주로 대학 선배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할할팟'(할일 하는 팟. 혹은 아예 "저녁에 할할하실 분~" 이렇게 동사로도 사용)이라고 불렀었는데, '모각공'(모여서 각자 공부?), '각할모'(각자 할일 하는 모임?) 등 여러 단어들이 존재한다. 이 외에도 조금씩 다르게 부르는 것 같다.

이 단어들은 주로 친구들 사이 카톡에서 혹은 소셜미디어 내지는 동네별 교류 앱 같은 곳 위주로만 쓰이다 보니 포털 검색 사이트에서는 잘 검색이 안 되고, 그러다보니 사람들 각자가 자신이 속한 그룹 위주로만 그 단어를 듣게 되어 그룹 간에 통일이 잘 안 되고 서로 차이를 보이게 된 것 같다.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다른 단어들은 무엇이 있을지도 궁금하다. 일단 생각나는 것으로는, 인스타그램 위주로 돌아가는 소규모 문화활동 부문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주요 용어들이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한다고 해서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밴드음악 합주 및 작업 관련한 노하우나 용어 같은 것들도 은근히 그런 게 많다.

공통적으로 생활에 비교적 밀접한 공부 내지는 놀이의 영역이되, 혼자서는 잘 성립되지 않고 적당한 소규모의 사람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너무 대규모여도 안 됨), 그리고 소셜 미디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부문들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듯하다.


반면에 대학원 공부나 코딩 쪽은 인터넷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이 분포해서 그런지, 검색되는 자료의 양도 많고, 그에 따라서 서로 다른 그룹들도 비교적 광범위하게 공통된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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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일 목요일

애플, VR헤드셋 그리고 생성 AI

애플이 잠시 후 열릴 WWDC 발표에서 (현지시간 6월 5일) VR/AR 헤드셋 기기를 공개한다는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모양이다.


여러 전망들에 따르면 개발자용으로 선보이는 기기여서 일반 소비자로서는 퍽 부담스러운 가격일 것이며, 소비자용 기기는 향후에 따로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망들이 사실이라면 마치 iPhone 및 iPad를 발표할 때처럼 즉각적인 대중화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닌 것 같기는 하다.


그럼에도 애플은 퍼스널컴퓨터의 등장부터 스마트폰 그리고 태블릿PC에 이르는 - 사실상 IT 시대의 전체를 아우르는 - 긴 기간 동안 혁신을 주도해온 기업인 만큼, 통제되고 가이드됨으로써 세련되어지는 특유의 사용자경험이 적용된 VR 헤드셋을  애플이 '짠' 하고 내놓아서 혁신을 실현하고 생태계 발전의 계기를 제공하지 않을까 기대섞인 시각도 있다.




VR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진 지 꽤나 오래되었음에도 그 접근성과 사용 유인이 아직도 그리 높지 못하고 오히려 관심이 다소간에 시들한 상태가 되어 버린 결정적인 이유는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일 수도 있지만 - 결국은 VR에 관심이 없던 대중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불하여 구매하고 착용하게 만들 만한 킬러 콘텐츠의 부재가 아닐까 한다. 대형 모니터가 아닌 VR에서만 가능한, 꼭 해 보고 싶은 풍부한 경험이 무엇이 있는지 설득이 안 되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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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AR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은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첫 번째 개인적 경험은 2016~2017년 동안에 VR게임 개발 팀에 섭외되어 예술적 컨텐츠 구상에 참여했을 때이다. 그 팀에서 나는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으나 (이 팀은 내가 그만둔 이후에 PC게임으로 전환하여 한국산 인디게임으로서는 손꼽히는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 컨텐츠 구상의 일환으로 여러 산업 박람회에 다니면서, 컨텐츠에 대한 영감뿐 아니라 VR 기기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들과, VR 산업의 분위기도 다소간에 읽어 볼 수 있었다.

당시에 컨텐츠 측면에서는, 나는 VR에서의 전방위 시야 활용을 디스플레이의 연장선이라기보다는, 건축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것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VR을 확장된 디스플레이로 볼 경우, 디스플레이를 기존의 콘솔 게임 등과 완전히 차별화하는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상호작용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반면에, VR을 확장된 건축이라고 볼 경우에는 기존의 건축에서 불가능했던 수많은 다채로운 상호작용이 가능해진다. 면을 배치하여 공간을 구획하는 것이 바로 건축이라고 보면, VR에서는 이러한 면들이 실제 물리적, 경제적 제약에서 탈피하여 완전히 자유롭게 배치되고, 심지어 시간축 상에서도 매우 빠르게 시시각각 변화할 수 있다. 이후로, 개념적 혁신력을 가지는 VR 컨텐츠들 중에 이러한 컨셉을 적극 채용한 것이 실제로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편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당시의 VR은 생각보다 많이 무겁고 어딘가 답답하다, 혹은 불편하다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메타에서 낸 퀘스트2 (2020년이었을 것이다) 같은 경우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가서 착용해 본 결과 상당히 편해졌고, 시야도 덜 답답했던 기억이다. 또한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방식도 직관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어느정도 표준화가 이루어진 동시에, 창의적으로 활용될 여지도 많이 남겨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실제 기술 특허 등을 추적해 보더라도 그동안 노하우를 축적해서 많은 개선이 있었다고 한다. VR/AR은 머리에 착용하는 것이고 시야 전체를 커버하는 것이다보니 컴퓨터 및 스마트폰과는 궤를 달리하는 여러 복잡미묘한 HCI 및 하드웨어 이슈가 있는데, 이것이 메타 등에서 개발한 여러 노하우를 통해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개선이 많이 되어 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 시간 이상 착용하고 있는 것은 무리일 정도로, 불편감의 문제가 아직 결정적으로 해소되지는 못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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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에 대한 두 번째 개인적 경험은 2017년, 필자가 대학생 시절 학업의 일환으로 진행했던 시범연구이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 5G 통신과 VR/AR을 연계하여 5G 기술을 확산시키고 시장을 확대하고자 했던 KT의 경영전략을 평가하는 것이 그 주제였다. 아래의 내용은 산업공학의 기초 개념들을 현실적 문제에 적용해보기 위한 모의 보고서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하였으며, 전문성이 담보된 분석이 아님을 밝힌다.

첨단기술이 실제 시장에서 채택되어 성공적으로 확산되는지의 여부는, 기술의 우수성 그 자체가 아니라 해당 첨단기술제품에 관심을 가지는 고객집단 풀의 변화에 따라서 판매자가 적절한 전략을 구사하는지에 의하여 결정된다.

KT는 2018년에 평창 올림픽에서 VR/AR 기술을 이용한 다채로운 중계를 선보였다. 그런데 VR에 요구되는 특유의 낮은 레이턴시(즉 짧은 응답 시간)과 대량의 계산을 고려하면, 이러한 중계는 데이터를 빠르게 송수신할 수 있는 고속, 광대역 통신 기술에 의해서 뒷받침되어야 한다. KT는 통신회사로서, 5G 기술을 통해서만 전적으로 실감나는(immersive) VR/AR중계가 가능함을 입증하고 5G를 홍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에 5G 기술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한 생태계 변화로 이어지지 못했으며, 이는 당시에 VR/AR 기술이 소비자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충분히 무르익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시에 VR/AR을 구성하는 기술들(제스처 컨트롤러, 기기간 통신(일종의 사물인터넷) 플랫폼)이 주류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정도로 성숙하려면 최소 5년이 소요될 것이라고 다수의 문헌들에서 전망했다.

이 둘을 연계하여 차별화를 시도할 때, 통신은 인프라인 반면 소비자에게 직접 와닿는 컨텐츠는 VR/AR이므로, 전자보다는 후자가 소비자들에게 직접 어필하여야 한다. 여기서 기술 확산에 대한 캐즘(chasm) 이론에 따르면, 전체 잠재적 고객집단(통신산업의 경우 한국 국민들)의 맨 앞쪽 15%에게 기술이 전파되었을 때쯤에 집중화, 차별화 전략을 적극적으로 구사해야 한다. VR/AR과 연계된 5G 통신기술이 국민의 15%에게 선택되었을 시점은 그 당시 통신기술 확산의 전례를 보았을 때 2018-2019년 정도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위에 썼듯 2017년 당시에도 2018-2019년에 VR/AR이 충분한 파괴력을 갖출 수 없다고 전망되었으므로, 평창 올림픽을 계기 삼아 VR/AR을 매개로 하여 5G 통신 기술을 파괴력있게 데뷔시키겠다는 KT의 전략은 시기상조였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 평창 올림픽 개최 이후로도 이 전략은 대중적으로 크게 소구하지 못하여, 5G 기술의 시장 채택은 3G 및 4G의 확산에 비하여 다소 애매한 수준의 폭발력만을 보여주었다. 또한 VR/AR의 대중화 역시 수많은 노하우의 축적에 의한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기대감이 무색하게 상당 기간 동안 답보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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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킬 계기는 없을까? 위의 2017년 당시 모의 보고서와, 당시에 내가 참고했던 문헌들에서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2020년대 초반 생성형 AI의 매우 이른 시장 데뷔였다. 사실 나는 2014년에 발표된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s, 생성적 적대 신경망)을 필두로 한 고성능 생성 인공지능을 보며 그 문화기술로서의 가능성에 꾸준히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특히, 자유도가 높은 플레이그라운드형 게임에서 원하는 맵과 배경, 원하는 사물, 그리고 이들을 이용한 상호작용을 생성형 AI를 통해 쉽게쉽게 만든다면 정말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해 왔다. 기존에 전혀 생각하기 어려웠던 매우 다채로운 형태의 상호작용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면에서 내가 필생의 꿈(?)으로 생각하고 한 십몇년 뒤엔 달성되겠지 했던 수준의 것들이, 2021년경부터 매우 급속히 대중화된 text-to-image generation(DALL-E 2, Midjourney, Stable diffusion 등 디퓨전 모델들에 기반함)과 거대언어모델(ChatGPT 등)에 의해서 순식간에 매우 실질적으로 입증되고 돈을 벌어들이는 단계가 되어 버렸다. 지금시기에 정신을 잘 차리고 재미있는 것들을 꾸준히 팔로업해 보면 좋을 듯하다. 문화기술로서의 생성 인공지능이 전혀 새로운 종류의 게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이젠 진짜 금방 되겠다는 확신이 있다.

다시 이 글의 주제인 VR/AR로 돌아오자. 당분간 답보 상태였던 VR 사용자 층의 저변을 결정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그것 또한 다름 아닌 생성형 인공지능이 아닐까 한다. 즉, VR을 모르던 사람들이 갑자기 대거 관심을 가지고 구매 및 사용할 만큼의 킬러 컨텐츠가 나온다면 결국 생성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컨텐츠에서 나올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심지어 생성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컨텐츠는 더 이상 단순히 단일 컨텐츠가 아니라, 과장을 조금 섞자면 무수히 많은 새로운 컨텐츠를 사용자 스스로 생성해서 즐길 수 있는 플레이그라운드가 된다. 단순히 시각적인 장면만을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언어모델이 작성해주는 코드를 통해서 사용자가 겪는 상호작용의 형태, 더 나아가면 게임의 디자인 자체를 어느 정도 레벨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서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하면 VR에서 킬러 컨텐츠의 부재가 일으키는 악순환이 매우 효과적으로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왜 하필 번거롭게 VR이어야 하냐 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은 안될수 있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VR을 디스플레이의 연장이 아닌 건축의 연장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위의 내 주장을 통해 갈음해 본다.

결론적으로, 애플이든 누구든, 생성형 AI를 통해 VR/AR의 가능성, 더 나아가서 꼭 VR이 아니더라도 아주 새롭고 다채로운 형태의 게임적 상호작용을 적극 탐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 현재 생성형 AI에 의한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형국에서 애플이라는 회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우려가 세간에 있는 편이기도 하다. 혹자는 애플이 자신이 원하는 아주 잘 정제된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까지는 섣불리 얘기를 안하는것 뿐이니까 걱정할거 없다고 하지만... 글쎄다. 진짜로 그 동안 무언가를 못 해 왔을 가능성도 있지 않나.

확률에 의존하는 생성형 AI 자체가 애플의 완벽주의적 철학에 다소 맞지 않는 면이 있기도 하거니와, 현실적으로 AI 연구개발 조직에 무언가 문제가 있고 제대로 운영이 되지 못해 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그동안 실제로 생성형 AI 연구를 잘 못 해 왔고 이제야 대폭 채용하면서 박차를 가하는 중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사실이긴 한 것 같다.

과연 VR이 대중화되는 순간이 오긴 올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반드시 와야만 한다는 믿음도 개인적으로 사실 없지만... 축적된 기술적 노하우들과 열심히 개발된 컨텐츠들이 크게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 오면 좋지 않을까 생각은 든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생성형 AI에 의해 강하게 assist된 형태일 것이라는 확신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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