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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다원예술 프로젝트 <다이빙 미러>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 후기 및 발제문

지난번에 포스팅한 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의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가 지난 12월 10일(일요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기술 미학'이라는 키워드로 지난 10월부터 이번 협업에 참여하여, <표현 재조합 기계로서 딥러닝의 기술미학적 쟁점들>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문을 작성하였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협업자의 한 명으로서 30분가량의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과분하게도 제 발제문이 이번 쇼케이스에 전반적인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여러 의미로 아날로그 vs 디지털을 비교하면서 밀어붙인, '딥러닝의 매체성은 디지털화의 끝에서 등장한 아날로그이다 (디지털의 양적 팽창 -> emulated analog로의 질적 도약)'라는 테제가 사전미팅 때도 그렇고 본 쇼케이스 때에도 꽤 논쟁적이어서, 예상보다 활발한 논의가 있었고 저도 많이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뒤늦게 합류하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디스커션 하며 작업했는데도 한동석 작가님을 중심으로 여러 협업자 선생님들과 밀도있는 교류가 오간 인상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유튜브 영상 다시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발음/발성 연습을 좀 해야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업결과 공유 차 이번 쇼케이스에 대한 네오룩neolook 공지 게시물 (쇼케이스 진행 후 업데이트됨) 을 덧글에 링크하였습니다. 또한 네오룩 공지의 여러 링크는 12/19(화)를 끝으로 만료될 예정이라, 발제문 pdf 파일과, 저 외에도 총 5명의 협업자가 함께한 쇼케이스 녹화본 유튜브 영상들도 덧글로 직접 링크해둡니다.
발제문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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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재조합 기계로서 딥러닝의 기술미학적 쟁점들>
I. 소개 및 서론
II. 본론
1. 딥러닝의 매체성: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1) 기술매체의 미학: 복제와 재조합의 용이성
(2) 아날로그 알고리즘으로서의 딥러닝
(3) 원형 재조합 기계로서의 딥러닝: 디지털의 끝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2. 의미-기계의 기술적 조건들
(1) 고차원 공간에 임베딩되는 내부 표현들
(2) 추상성의 위계와 정보의 정량화
3. 딥러닝을 활용하는 예술, 딥러닝을 사유하는 예술
(1) 예술에서 인공지능의 이중적 지위
(2)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에서 탐구될 중간적 시공간들


유튜브 녹화영상 링크
1. 사업 결과
2. 쇼케이스 녹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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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음악 추천]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예찬

1994년에 발매되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도입부만큼 세련된 것이 또 있을까?

이 곡의 도입부에서는 스크래치의 역할이 단순한 보조적인 효과음 이상으로 중요한데, 쓰래쉬한 헤비메탈 기타 사운드가 자칫 실제 속도에 비해서도 곡을 더 무겁고 둠하다고 느끼게 할수 있으며 리프 자체도 단순함에도, 여기에 턴테이블 스크래치가 적절하게 더해져서 무척이나 감각적이고 댄서블하게 느껴지는 듯.

특히 첫 보컬 '됐어~' 들어가기 직전의 5초 정도에 스크래치 들어간 질감이 너무 세련되어 있고, 100번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이 구체적인 질감은 라이브 공연 무대에는 잘 없고 원곡 음원 버전에만 있어서, 계속 원곡 음원을 찾아 듣게 된다.


랩댄스뮤직과 헤비메탈 기타리프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는 전작의 타이틀곡 '하여가' (1993) 와 비교해 보자면, 곡의 전반적인 컨셉의 혁신성은 하여가가 더 뛰어난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구성이나 디테일이 정리가 조금 덜 된 느낌이 드는 하여가에 비해서 세부적인 터치의 센스는 교실이데아가 들을수록 탁월한 듯.

가사 면에서도 하여가는 재밌는 부분들이 있지만 주제의식 자체는 비교적 평범한 데 비해, 교실 이데아는 교육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그러면서도 분노를 과격한 감정으로 표출하지는 않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당대에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맨처음 드럼 필인 들어가기 전에도 짧은 비트박스(?) 같은 게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곡임을 알 수 있다.


서태지가 은퇴해 있는 사이에 세계적으로 본격화된 누메탈 유행을 타고 다시 나온, '울트라맨이야'가 수록된 6집 (2000) 또한 뉴메탈 사운드에서 raw함을 좀 죽이고 서태지 특유의 집착적으로 갈고닦는 스타일을 결합했다 보니 편곡이나 사운드적인 완성도, 세부적인 아이디어는 탁월한 명반이지만, 수록곡들의 전반적인 독창성 면에서는 당대에 이미 피크를 찍어 가고 있던 세계적 뉴메탈 유행에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러한 랩과 메탈의 결합이라는 유행을, 미국에서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높은 완성도로 선취한 교실 이데아를 그래서 더욱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매일아침 일곱시~' 부터 시작하는 벌스 부분도 사실은 단순하고 둠한 기타리프인데, 드럼이 적절하게 들어가 줘서 거의 컴백홈 급으로 가볍고 복잡하고 신나게 느껴진다. 드럼의 중요성이다.

3집 콘서트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 크래쉬랑 같이 엄청 길게 공연한 교실이데아 무대는, 물론 서태지 커리어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힐 만한 명 무대이지만 오히려 전통적인 쓰래쉬 느낌으로 편곡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세련된 스크래치의 맛은 안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시작 전에 오글거리는 교육 비판 연설(?), 3집 특유의 발해왕자 의상 입고 댄스 하는 것, 그리고 크래쉬한테 '하고 싶은거 다 하시라'고 한 듯한, 전면에 오랫동안 내세워지는 기타연주가 조화를 이룬 아주 좋은 무대다.

이외에도 3집을 요새 다시 탐구하고 있는데, '발해를 꿈꾸며'는 남북통일이라는 메시지를 떠나서 송라이팅 면에서는 기존에 내게는 잘 와닿지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싶어서 잘 모르는 곡이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들어 보니 오히려 너무 매끄러워서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고, 이것도 들을수록 대단한 완성도를 가진 록 음악인 듯하다.

이 외에도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메탈 뮤지컬(?)의 원조랄까), '널 지우려 해' 등등 각 수록곡들이 기타사운드를 통해 한 앨범이라는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제각각 개성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영원'이랑 '아이들의 눈으로'는 록 사운드는 아니지만 뭔가 뮤지컬 느낌, 연극적인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 사운드적으로는 상극에 있는 '제킬박사와 하이드'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접점을 이루면서 앨범에 새로운 축을 더해준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3집이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아지는 듯하다. 시간을 투입해서 들어 보고 이 정도의 장문으로 기록해 볼 가치가 있는 음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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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수요일

뮤지션 김민기에 대한 몇몇 이야기

어머니가 잊을만하면 얘기해 주시는 재미있는 일화인데, 옛날에 어느 자리에 갔는데 너무나 익숙하지만 누군지 생각이 안 나는 사람이 앉아 있더란다.

그래서 주저하던 끝에 혹시 저 아시지 않냐고, 누구셨더라 하고 물어봤는데 그분이 허허 웃으시더니 아마 무대에서 보셨을 거라고... 알고보니까 가수 김민기였다고 한다. 내 기억이 확실친 않은데, 아마 옷을 굉장히 멋있게 입었다고 하셨던 것 같다.

아마 유명인들은 이런 일화가 워낙 많을 것 같다. 혹시 TV에 나오는 분 아니냐는 질문은 물론이거니와, 그럴 거라고 생각 못한 나머지 질문하는 본인이 아는 사람 아니냐는 질문들까지 말이다.

사실 나도 몇 년 전에 우연히 본 어떤 분이 얼굴이 너무나 익숙한데 누군지 기억이 안나 나서, 어릴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셨나? 막 이랬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신태용 축구 감독이었던 적이 있다. 안 물어보길 다행이었다.


김민기는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비롯해서 감동적이고 벅찬 분위기의 곡도 많이 썼지만 그의 노래극 중에서는 위트가 담긴 풍자적 가사도 많은데 그 중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고 재미있는 건 <공장의 불빛>의 한 수록곡에 나오는 다음의 가사다.

"사장님네 강아지는 감기 걸려서 포니 타고 병원까지 가신다는데 / 우리들은 타이밍 약 사다 먹고요 시다 신세 면할 날만 기다리누나"

실로 재치있으면서도 씁쓸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김민기는 최근에 암투병으로 인해서인지 학전도 닫기로 하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민기가 한국 노래극에 기여한 바를 보면 시대의식이나 시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도 의미가 상당한데, 김민기 본인의 드문 매체출연은 물론이고, 노래극 관련 영상자료도 생각보다 남아있는 게 풍부하지는 않다 보니 잘 보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음악 자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80-90년대 록밴드 뮤지션들이 열심히 활동한 것에 관해서 남아 있는 자료들도 생각보다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이들도 당시를 직접 겪어서 잘 알고 있는 뜻있는 팬들이 더 늦기 전에 잘 수집하고 보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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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5일 화요일

다원예술 프로젝트 <다이빙 미러>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 홍보

2023년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에서 이번주 일요일에 쇼케이스를 합니다.

<다이빙 미러>는 영상매체 작업에 컴퓨터비전 기법을 도입한 다원예술 프로젝트로 저는 지난 10월 초부터 참여하였는데, 주말을 활용하여 2회의 디스커션, 그리고 1회의 내부 상영회(사전미팅)을 거쳐 '기술 미학'이라는 키워드로 쇼케이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늦게 합류한 관계로 준비 기간이 짧기도 했거니와 AI 현업에도, 미학분야에도 내세울만한 전문성은 없다보니 훌륭한 분들 사이에 참여해도 될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AI에 대한 약간의 수학적/물리학적 이해와 더불어, AI가 개입되는 새로운 예술형식에서 발생하는 매체미학적 쟁점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견해를 재미있게 봐 주셔서 그런 내용들에 대해 짧은 발표를 해 보고자 합니다.

행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네오룩neolook에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클릭하여 네오룩neolook 링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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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재 ● 학부시절 전기공학, 물리학 및 미학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물리학전공 박사과정생(통계물리 세부전공)이다.
생체를 비롯한 여러 시스템들의 창발적 집단현상에서 나타나는 에너지 및 정보의 흐름과 그 제약 조건들에 대해 확률을 도구삼아 연구하는 '비평형 통계물리학'이 본업이며, 이러한 관심사를 인공지능 시스템의 풍부한 표현 학습과 높은 성능에 대한 이론물리학적 해명에 다각도로 접목하는 연구들도 조금씩 살펴보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에서 딥러닝 패러다임의 부상은, 데이터를 학습하여 구조화되며 고차원 공간상에서 배열되고 표류하는 '표현'들의 기하학으로써 특히 문화기술 부문에서, 그간 주관적 표현의 영역이었던 '의미'와 '질감'에 대해 우리 스스로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엔지니어링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이렇듯 근래에 실현되고 있는 시맨틱 테크놀로지, 텍스쳐 테크놀로지로서의 딥러닝이 인간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촉발되는 새로운 종류의 미학적, 인간학적 질문들을 꾸준히 포착해 나가고자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 여러 문화예술 부문의 협업자 선생님들이 함께하는 다원적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 설레는 마음이며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상이한 매체성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종합되면서 제공되는 새로운 시공간적 체험들과, 그러한 테크놀로지의 여백 및 틈새에서 폭로되는 시공간 지각의 매끄럽지 않은 이음매들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주관적인 것들에 관한 학으로서 미학 고유의 영역이, 테크놀로지의 인간학적 해석과 수용에 적절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주로 텍스트작업과 컴퓨터비전 실습작업을 통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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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상승욕구는 평등이 아닌 계급주의를 향해 있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대체로 상승욕구가 굉장히 강하며, 이것과 발맞추어서 실제적인 경제적/문화적 계급 고착화도 여지껏 비교적 덜하게 유지되어 왔다고 흔히 얘기한다.

이러한 특징이 개인과 국가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발전할 거라는 믿음과 결합하여 '역동성'으로 작용하면서 (심지어 산업 및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정치 발전에 있어서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상승욕구의 근원을 따져봤을때 그것이 평등지향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반대로 철저한 계급적 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즉

1.현재의 계급과 무관하게 누구나 지금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나아가서 더 성공할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2. 오히려 급을 철저하게 나누고 내가 그 위계 하에서 윗급에 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라는 생각 때문이라면
나라가 역동적으로 성장할 때는 위 두 가지가 그다지 구분이 되지 않으나 (혹은 구분 안해도 크게 상관없을 수 있으나) 나라의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저성장 및 인구감소에 접어들면서 국민생활 개선 및 그에 대한 희망이 제공이 안되기 시작하면, 그래서 실질적으로 계급이 고착화되기 시작하면 위 둘은 즉각적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 듯하다.


한국사회에서의 삶의 표준모델은 아직까지 비교적 동질적인데 (현실을 떠나서 동질성을 표상하는 이념의 측면에서) 그렇다 보니 지극히 일원화된 기준 하에서 한 사람의 삶의 모든 것이 급수화, 점수화되고 이 점수가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정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추석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어느 대학 갔냐, 어디 취업했냐 캐물어보고 하는 클리셰적인 스트레스 요인을, 가족 친지 단위에서 미시적으로 내면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거시적인 레벨에서 마치 거대하게 확장된 단일 친척공동체 (그러나 서로 도와주기보다는 서로 비교만 하는) 처럼 다같이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동질성이 이러한 일원적 평가기준에 근거하여 수립된 탓에 사회적 갈등 의식도 높고 말이다.

즉 내 생각에 위 1, 2 중에 한국인들은 명백히 후자라는 것이고, 이러한 특질이 딱 내 또래 세대가 첫타로 얻어맞게 될 전례없는 사회변화의 국면에서 시너지로 작용하여 매우 부정적인 여파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성취지위에 대한 과도한 주목과 일원화된 평가보다는, 다원화된 각 부문에서 자기가 맡은 자리를 지키면서 역할, 책임, 그리고 직업윤리를 다하는 사람들에게 인식상의 존중과 실제적인 상승도전의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가는 모럴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소득과 안전을 보장해줌과 동시에, 구성원 간에 급을 나누고 비교하는 peer pressure를 완화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사실 나도 이런 peer pressure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리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하고는 있는데, 회사에 다니는 동기들은 절대적인 금전 부분을 떠나 커리어적인 성장을 하며 생애주기 상의 단계에 드라이브를 거는 데 비해서, 나는 계속 학교라는 똑같은 공간에 있고, 진로가 국내일지 국외일지 불확실해서 정착준비가 불가피하게 유예되다보니, 커리어적으로 치고나간다는 느낌과 객관적인 성장의 증거가 없어서 더 그런 듯하다.

저성장, 인구감소, 계급고착화를 필두로 한국사회가 곧 마주하게 될 망국적 변화속에서 내가 진로선택과 정착 준비를 20대 5년쯤 유예하기로 한 것이 아주 부정적인 스노우볼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불안감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졸업하고 나서 내가 역할을 발휘하면서 꾸준히 기여할 수 있는 쪽으로 잘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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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6일 일요일

노이즈 - 상상속의 너 (1995) 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

노이즈의 <상상속의 너>(1995)는 신나는 리듬과 인트로의 뚝뚝 끊기는 듯한 독특한 효과음, 그리고 무척 시원시원한 보컬로 잘 알려진 댄스음악이다. 96년생인 내 입장으로서는 90년대 댄스곡들 중에 제목까지 확실히는 모르더라도 들으면 무조건 아는 곡들이 여럿 있는데 이 곡도 그 중 하나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곡이 아르헨티나에서 1999-2002년 동안 방영된 유명 코미디 쇼 프로그램 'todo x 2 pesos'의 오프닝 장면에 통째로 쓰여서 (유튜브에 찾아보면 방송 중간중간 전환 장면 등에도 조금씩 나온다) 아르헨티나의 중장년 세대들에게는 매우 귀에 익은 곡이라고 한다 (실제 당시 아르헨티나 방송에 삽입된 영상: 링크).


시원시원하면서 뭔가 재치있는 느낌이 이런 프로그램과 꽤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 중에 한국계가 있어서 이 곡을 알고 삽입하게 되었다고 한다. 축구스타 메시도 아는 곡이라는 얘기도 있으나 명확한 근거는 없고 그냥 하는 얘기인 듯하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해서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이 여전히 추억삼고 있고, 무슨 곡인지 유튜브에서 찾아보다가 노이즈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하는 걸 보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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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7일 화요일

힘든 청년들을 대하는 기성세대의 시각: 위로(慰勞)에서 조롱으로의 전환?

요즈음 40~50대들이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에 우연히 들어가보면, 어린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 혹은 반동을 지엄하게 비판하면서, '우리는 인구도 많고 돈도 많고 똑똑하며 실력적으로도 프로페셔널한데, 너희는 모든 면에서 우리보다 부족하므로 성장해서도 우리를 이길수 없을 것이다' 라는 식으로 조롱하는(?) 글들이 꽤 인기있는 레퍼토리를 차지하고 있다. Facebook 유명인들의 덧글창에서도 많이 보인다.

그런 글들에서는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 확정적인 현재의 청년 세대를 상당히 불쌍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심하게 묘사하는데, 이는 자신들과 같은 세대의 어깨를 으쓱하게 하고 결속력을 제공하면서, 우연히 그 글을 읽게 된 청년 세대들을 열받게 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기능이 없다.

이렇게 감정 유발 외에 별다른 기능이 없고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주지 못하는, 게다가 동정과 비난이 애매하게 섞여 결국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없는 인터넷 게시물 레퍼토리들 여럿이 대단히 의미있는 담론처럼 유통되는 것을 보면 나는 굉장히 괴상하다고 느낀다. 그 이름조차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은 소위 설거지론 역시 (공격의 구도는 이 글의 예시와 반대 양상이지만) 그 대표적인 예시다.


예전에는 현재의 청년세대가 최초로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것이라는 데 대한 확고한 인식이 지금처럼 널리 자리잡고 부각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너희들이 힘든 것은 너희들 잘못이 아니다', 혹은 '청년들에게 힘든 사회를 물려주어서 어른들이 미안하다'는 식으로 연대 의식을 드러내는 정서가 꽤 많이 보였는데... 글 서두에 언급한 것과 같은 레퍼토리의 유행, 위로(慰勞)에서 조롱으로의 전환이 언제부터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물론 순전히 통시적인 것 같지는 않고 비중의 문제이지, 언제나 공존해 왔을 것 같기는 하다.


원전 해체산업 주장이나 러-우 전쟁 우크라이나 무능론/책임론 등 다른 맥락에서 이미 몇번 언급했듯이, 사람들은 무척 공격적인 말들이나 지극히 어색한 주장도, 본인이 신뢰하는 스피커들에 의해 유통되면서 자신이 불편감을 느끼는 부분을 시원하게 설명해 준다면 '저렇게 말해도 되나보다' 하면서 합리적이라고 느끼게 되고, 정보버블이 깨질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그런 말들을 계속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위와 같은 종류의 글들의 유행도 이러한 경향의 한 예시라는 생각이 든다.




캡쳐된 기사의 전문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이 부분만 보면 노인세대의 공로를 대우하고, 동시에 능력을 발휘할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여 사회구성원으로서 계속 역할을 하게 하자는 꽤나 의미있는 담론으로 보인다. 이러한 괜찮은 담론이, 위에 말한 것과 같이 청년세대를 이상하게 후려치는 레퍼토리와 섞여서 이야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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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2일 목요일

기계의 표현과 내 생각을 정렬하는 포스트휴먼적 체험

내가 아무렇게나 그렸던 그림이 그려 놓고 보니 테리어몬이랑 다루마를 섞은 것처럼 생겼다고 써 놓은 게 과거의 오늘에 뜨길래 (그림 1), 아예 테리어몬과 다루마를 섞은 걸 그려 달라고 무료 AI그림 웹사이트에 세심하게 프롬프트를 넣어 보았다.



당연히 꽤 잘 해 주며 (그림 2), 이것들을 내 그림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듯하다. 섞어 달라고 했을 뿐인데 실제로 그림 1과 비슷한 느낌이 조금씩 엿보이는 걸 봐서, 영 잘못 짚은 건 아닌 것 같아서 공연히 뿌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기계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성공할 때, 즉 기계의 표현과 자신의 생각을 발맞춰 갈 때 사람들이 종종 느끼는 이런 뿌듯함 또한 일종의 포스트휴먼적인(?) 정서로서 인문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닐까 한다.

2021년 12월에 VQGAN+CLIP 기반의 text-to-image generation을 처음 제대로 접하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림 1에서 두 대상을 섞는다는 생각을 포스팅한 게 그 바로 직전쯤인 것 또한 흥미롭다. 그 직전만 해도 이런 걸 기계가 근시일 내에 정말로 잘 해 줄 거라고는 생각을 잘 못 하고 있었을 것이다.


원래부터 이런 생각의 경향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쓸만한 생성 ai가 나왔을 때도 서로 전혀 다른 두 대상 사이의 interpolation을 시켜 보면서 내부 표현공간을 탐색해 보는 관심사를 가장 우선적으로 갖게 되었던 게 아닐까 한다.

지금도 딥러닝의 부상은 곧 '의미 엔지니어링'의 대두와 매우 밀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고차원 공간상에 임베딩된 피쳐들 혹은 표현들을 조합하는 의미 기계의 출현 말이다.

그림 3, 4는 구글링해서 퍼온 테리어몬과 다루마 이미지.





[음악 추천] john0 - Rebell10n 1n neVeRland

아티스트 겸 프로듀서 john0의 정규앨범 Rebell10n 1n neVeRland가 발매되었습니다. 메탈코어 계열의 곡들로 구성되어 있고 국내 음원 사이트 및 Spotify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3번 트랙 und1SPuTed에 기타솔로 라인작업 및 녹음으로 작게 참여를 했습니다.

melon의 앨범 정보: 링크
타이틀곡 deMol1SH 뮤직비디오 Youtube: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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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 1일 수요일

매끄러운 설명을 경계하고 입체성을 직시하자 - 전청조 사기 사건을 보며 (2)

매끄러운 설명의 요구를 경계하고 사태의 입체성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회자되는 사기 사건은 결국 전청조라는 사람이 남현희 감독과 그 가족들을 작정하고 헤집어 놓으면서 사기를 친 것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가족들끼리, 혹은 가족을 넘어 펜싱업계 사람들끼리 서로간에 이간질에 의한 갈등이 일어나고, 서로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되고 이런 것은 마이너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이 전혀 없다는게 아니지만, 판을 짠 것에 말려들어서 그렇게 된 거면 당연히 제일원인은 전청조한테 있는 것 아닌가.

판단력이 흐려졌고, 계속 의심까지 했음에도 빠져나갈 계기와 용기도 부족했고, 그러면서 주변에 피해를 끼쳤고 이런 것들은 잘잘못을 가려야겠지만, 사기사건이라는 본질을 흐려 놓는 가해자의 몇마디 언사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락도 통제하고 주변 환경까지 통제해 가며 작정하고 달려든 사기꾼한테 말려든 사람의 심리는 입체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의심되긴 했다고 하면서도 결혼이라는 엄청 큰 선택까지 한 것이 밖에서 보면 너무 이해가 안될거고 나 역시도 그렇지만, 의심을 불식시키는 근거를 계속 제공함과 동시에 물질적 유혹과 인간적으로 조종, 통제하는 능력을 발휘하면 그 안에서 의아함을 갖더라도 빠져나가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가들이 흔히 언급하는 사기의 메커니즘 중에서는, 어설프더라도 속임수 내용을 '믿고 싶어서', 즉 원하는 걸 제공해줘서 믿게 된다는 것을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의 진의도 사람들이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다. 믿고 싶어서 믿게 된다는게, "거짓말인게 보이지만 나한테 이익이 되니까 믿어야지"라는 명시적인 악한 판단을 한다는게 아니지 않을까? 점점 의심이 안 발휘되게 되면서, 자기자신의 도식이 암시적으로 수정되면서 말려들어 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리고 애초에 사태의 명백한 제일원인인, 작정하고 달려든 가해자가 있는 사기 사건인 이상 위 두 가지의 구분이 그렇게 명확한지, 혹은 중요한지도 잘 모르겠다.
물론 그것을 애초에 처음에 안 당했거나, 아니면 중간에라도 용기를 발휘해서 빠져나갔거나 하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암튼 남현희감독한테는 무언가 이상하다, 깔끔하게 설명이 안된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전청조가 하는 말들이 훨씬 깔끔하고 명쾌하게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직업적 사기꾼의 말은 단 한마디도 귀를 기울여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기꾼 본인이 상황을 통제하면서 사기를 친 입장이니까 당연히 설명이 더 매끄러운 것 아니겠는가.

복잡하고 비일상적인 상황에 놓인, 본인도 잘못이 없지는 않은 어떤 사람의 여러 입체적인 면모에 대해 꼭 '합리적 판단'을 하려 하지 말고 사태 자체로 바라봐야 할 때가 있다. 단순명쾌하고 매끄러운 설명만을 원하다 보면 오히려 사기에 취약해진다고 생각한다. 순수한 피해자 찾는 것의 거울쌍인 것 같다.

(뱀발로, 이전 글에서는 사람이란 게 피차 별거 없는걸 너무 심오하고 대단하게 생각할 때에 사기에 취약해진다고 했는데, 이 글과 얼핏 반대되어 보이지만 모순되지 않는 듯. 단순화/합리화된 이해와, 입체적인 판단중지를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오갈 줄 아는 것이 메타적인 합리성인 것 같음)


전청조는 남현희 감독을 위해서 돈을 쓴 것이고 자신은 얻은 게 없다고 하는데, 그러면 애초에 왜 재벌3세를 사칭하고, 임신 여부도 속이는 등 온갖 속임수를 써서 접근한 것인가? 명백히 거짓말과 설정놀음으로 판을 깔고 자기 자신한테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어서 그 설정을 현실로 만들려고 한 것이지, 그것이 어떻게 남 감독을 위한 것이 되며 사람들도 그런 주장에 휘둘리는가.

남현희 감독을 위한 것이었다거나, 물질적인 선물을 남현희 감독도 거절하지 않았다거나 하는 말은 표면적으로 '깔끔한 설명'은 될수 있을지언정, 전청조라는 가해자 본인이 애초에 판을 깔아서 주변 환경까지 통째로 바꾸어 놓고 조종, 통제하고 한 것은 쏙 빼놓으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기 위한 아전인수격 발언들이다.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고 처벌받겠다는 등의 말들은, 사기행위가 이미 들통난 상황에서 누구나 그냥 할 수 있는,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는 언설들이고 말이다.

사람들이 인간적인 정이나 이익관계를 통해 심리적으로, 일적으로 얽히다 보면 공동 책임이 생기는 부분들,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는 것인데, 바로 그런 지점을 부각해서 '어쨌든 당신도 다 오케이하지 않았나' 하는 것은 전형적인 가해자의 책임회피 수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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