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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7일 수요일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부족한 한국의 이공계 박사 취업 환경

내 생각에는 이공계 박사 배출인력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는 절반의 진실이다.


이공계 박사 졸업 후에 전문성을 살려서 갈 만한 일자리의 숫자 자체가 부족하고 (아카데미는 말할 것도 없고, 박사 인력들을 받아서 혁신적인 연구개발을 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인더스트리 쪽이), 그에 따라서 챌린징한 학위연구의 경험을 정석적인 아카데미나 혁신적인 산업현장에서 활용할수 있는 루트가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박사를 학력이라는 개념으로, 타이틀이 필요해서 따는 경우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이로 인해 박사 인력의 질적 저하 얘기가 종종 나오는 것 같다. 그러면 현장에서도 그런 박사인력의 수요 자체가 불필요해지고, 악순환이 생기게 된다.


그렇다면 그러한 혁신적인 산업분야가 어떻게 등장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진짜로 미래먹거리가 될 수 있는 돈을 벌어 오는 곳들이 생기고, 그것을 보고 이공계로 인력이 많이 유입되는 선순환이 있어야 될 것 같다.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느낌이 있는 것인데, 그 선순환의 고리를 되살릴 방법이 있을지 모르겠다.

메디컬의 질적 상승이 해외 돈을 많이 벌어 오는 고마운 부문이긴 하겠지만, 규모 면에서 반도체나 전자제품 제조 급으로 나라의 미래먹거리와 사람들의 일자리를 제공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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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20일 수요일

거대모델이 건설되는 기술사회학적 과정, 그리고 90년대의 딥러닝 역사

삼전 DS부문 경계현 사장은 박사학위를 1994년에 뉴럴 네트워크를 결합한 로봇 제어기법으로 받았다. 이러한 이력을 보고 떠오른, 그러나 이 분 자체에 대한 인물평은 전혀 아닌 몇 가지 생각들을 써 본다.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칩 개발을 리드하는 경계현 사장.



경계현 사장의 1994년도 박사학위논문 서지사항.


AI 칩 관련 기술혁신 최전선의 돌파구를 탐색하는 데 있어서, 현재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을 뉴럴 네트워크 분야에 대한 이분의 학술연구 경험이, 주로 반도체 설계와 관련해서 삼성전자 내에서 쌓은 혁신적 리더십 경험에 견줄 만큼의 구체적인 도움이 되고 있을 가능성은 사실 높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에 인공신경망 연구를 했다는 것은 개인사적으로 재미있게 느껴지는, 개인적 소회가 어떠실지 무척 궁금해지는 지점이기는 하다.

여담이지만 나는 학사졸업연구를 전기과 내의 제어 트랙에서 다개체시스템 제어 쪽으로 했는데 (트랙이란 것은 공식적인 것은 아니고 그냥 졸업연구를 제어 연구실에서 해 보았다는 정도이다), 이것이 경계현 사장님이 졸업한 제어계측공학과의 후신 격인 테크트리라는 점에서 또 한 번의 공연한 친밀감을 형성해 본다.


다음으로, 이 박사논문이 뉴럴네트워크 중에서도 하필 로봇제어에 대한 응용이다 보니 또 다른 생각들도 떠오른다. 그 얘기를 조금 해 보자.

딥러닝 중에서도 극히 최근의 패러다임(2020년 부근에 본격화된)은 초거대 모델을 수많은 데이터로 사전학습(pre-training)시킴으로써, 밑바닥부터의 재학습 내지는 전이학습 없이도 수많은 종류의 과제를 비교적 쉽게 수행하게 한다. 이는 전통적(?) 즉 2012년경부터 2010년대 후반쯤까지의 딥러닝과도 양적, 질적으로 꽤나 구분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본다.

이러한 패러다임에서는 인류 전체가 산발적으로 생산하고 축적해온 데이터가 급격하게 일원적으로 수집되고 통합됨으로써 거대모델 구축에 활용되는 무척 흥미로운 기술사회학적 과정이 작용한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지(text-to-image generation), 텍스트(ChatGPT 등의 거대언어모델) 등 여러 도메인에 걸쳐 순차적으로 일어나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로봇 제어에 필요한, (좁은 의미의)기계적 상호작용과 관련된 운동학 및 제어공학, 비디오 등과 같은 도메인의 데이터 및 메타데이터들 역시 이러한 초거대모델 구축에 사용될 수 있게 수집되어 초거대화되는 과정이 급격히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이를 통해, 로봇들로 하여금 언어 프롬프트 기반으로 놀랄만큼 세련되고 복합적인 동작적 과업을 수행하게 하는 연구들도 속속 소개되고 있다. 물론 그러한 동작을 실제 가능하게 하는 하드웨어의 발전이 느리다는 문제도 있으나, 그러한 제약까지 고려해서 최대한 성공적인 제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들도 등장할 것 같다.

아마 생각보다 꽤 빠른 시일 내에 ChatGPT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대중을 놀라게 할 돌파구가 로봇 쪽에서 다수 소개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한 기술들의 등장을 목전에 둔 지금의 시점에서, 위와 같이 90년대에 연구된 인공 신경망 기반의 로봇제어를 다시 찾아보고 사유해 보게 되면, 귀여운 아기토끼 같으면서도 먼 고대의 조상님처럼 느껴지는 것이 우리들에게 굉장히 독특한 기분을 선사할 듯하다.

90년대 당시와 지금의 신경망 연구를 조금 더 제너럴한 센스에서 비교해 보자면 상당히 양면적인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일단 먼저는 '엥 그때도 이런 용어들이 있었다고?' 싶을 만큼 주요 essense는 이미 그때 다 연구되어 있었구나 싶은 때가 있다. Teacher-student framework를 다루는 아래의 통계물리학 논문 캡쳐처럼 말이다.

Teacher-Student framework를 통계물리학의 관점에서 풀이한 1999년도 논문의 첫 장.


여담이지만, GPU를 뉴럴 넷 학습에 사용한 초창기 논문 중에서도 국내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것이 있다.

인공신경망 학습에 GPU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한 2004년도 논문의 첫 장.


그러나 한편으로는 딥러닝을 실제로 tractable하게 만드는 여러 노하우 및 신기술들의 도입과 계산 성능의 발전으로 인해, 지금과 그때의 인공신경망 연구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단절에 가까운 완전히 상이한 모습으로 변화했기도 하다.

아무쪼록 딥러닝의 발전사를 추적할 때, AlexNet 및 알파고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 공학 양쪽에서 나름의 성과를 축적했었던 90년대까지의 역사도 더 많이 주목받고 탐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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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3월 13일 수요일

웨딩업계 소비자 권익 강화 정책을 환영한다

내년부터 '스드메' 가격 공개 의무화...웨딩업계 횡포 막는다

입력 
 
수정2024.03.13. 오후 2:33
 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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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산업 관련해서 재미난 소식이 기사로 나왔다.


웨딩산업은 고객들이 이왕 하는 거 불쾌한 요구를 받더라도 얼굴 찌푸릴 일을 되도록 안 만들어야 액운이 안 붙고(?)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있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한 번 하면 끝이니까 (물론 아닐수도 있지만) 지속적 고객 관리가 불필요하다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폭리나 각종 암묵적인 추가금, 혹은 금전 외적으로 정성을 들인 선물 등을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것, 그리고 여러가지 가능한 옵션들 (대표적으로 드레스 사진 등) 과 그 가격 등을 웹에 공개하지 못하게 해서 정보를 통제하는 것, 이미 다 찍은 사진들인데도 최종 선택본 외에 다른 것도 받아 보려면 추가금을 내야 하는 것 등등, 국민 일반이 한번쯤 거쳐가는 산업치고는 굉장히 불투명하고 문제가 많다.

물론 수완을 발휘해서 크게 횡포를 당하지 않고 깔끔하게 잘 처리한 멋있는 커플도 많은데, 얘기를 들어 보니 아무리 본인들이 실속있게 잘하려 해도 예상못한 일이 생기는 등 쉽지가 않다.


이런 것이 요새 사람들이 결혼 꺼리거나 미루는 이유, 혹은 결혼 하기로 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것을 피곤하고 힘들다고 느끼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한 10%는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소비자 조합(?) 같은 걸 만들어서 대응해야 된다고 생각해 왔고 이에 관해 자세히 포스팅도 해보았던 바 있다 (블로그에서 해당 포스팅 보기: 링크). 장례식 같은 경우는 상조회사가 보편화되면서 실제로 그런 문제들이 꽤 많이 해결되었다고 듣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위와 같이 기사로 나온 방안은 상당히 괜찮은 것 같고, 결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피부에 와닿는 변화를 줄 수 있는 것 같다.

다만 이전 포스팅에서도 지적했듯이 이러한 제도가 일단 실효성있게 작동을 해야 하고, 여러 업종의 사람들이 차례차례, 혹은 동시에 관여되는, 그리고 고객들이 취향에 따라 표준화되어있 지 않은 특별한 요구를 해 올 수도 있는 웨딩 특유의 복잡한 비즈니스 파이프라인을 고려해서, 과도한 불편이 야기되지 않게끔 실정에 맞게 진행해야 할 것이다.


"결혼은 사치재다" 라는 말은 물론 결혼식 하나만 놓고 얘기하는 건 아닐 것이고, 내집마련 등도 포함하는 얘기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이 정설처럼 통하고, 심지어 딱히 잘못된 것도 아닌 것 같은 작금의 세태는 참 안타깝다. 결혼에 대한 이러한 부담감이, 결혼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인 결혼식에서도 고스란히 농도짙게 드러나고 있다.

물론 청년들이 조금씩 희생하고 양보할 생각, 돈 쓸 땐 써 가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점점 안 하고 금전적 손익만을 따진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하지만 설령 그런 태도가 유의미하게 실재한다고 하더라도, 기층문화가 아닌 규범문화를 먼저 혁신하고 생애주기별 금전 부담을 줄여서 간접적으로 바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기도 하다. 지금의 극도로 낮은 혼인율과 출생률은 미래에 나타날 사회상의 원인이기 이전에, 지금까지의 사회상이 만들어낸 결과 아니겠나.

충분한 정보와 자율적 판단에 따른 여러 선택지를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혼인 부담을 낮추고 결혼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벼랑 끝과 같은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국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이런 것들을 사소한 부분이라도 하나씩 고민해 나가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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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7일 수요일

생산적 교통덕질의 조건

버스 배차 1시간→30분 단축…전문가도 놀란 대학생 '교통박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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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버스 노선을 개선하는 정책제안을 하여 실제로 성공을 거둔 '버스 박사' 대학생 김강산(23) 씨의 멋진 사례가 기사로 소개되었다.

교통 덕질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으며 사회가 필요로 하는 귀한 능력이다. 남들이 잘 신경쓰지 않는 교통수단 및 체계의 세부를 관심 갖고 파악할 줄 아는 것에 더하여, 그것들을 이용하는 인간의 편의와 편익에 대한 관심이 동반될 때에 좋은 정책제안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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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4일 일요일

문헌 인용에 허락이 필요하다?: 책임있으면서도 다채로운 창작문화 확립을 향하여

출판업계에서 출처를 표기하는 인용 또한 출판 단계에서 원저자에게 일일이 허락 받는 방식이 자리잡은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 출판사 사람들도 저작권법상 그렇게 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경우까지 있다는 모양인데, 원저자가 인용 허락을 실제로 안 해 준 이례적인 경우가 최근에 생겨서 꽤나 시끌시끌한 모양이다.


작가의 창의력이 묻어나는 극도로 고유한 표현을 또 다른 창작물에 그대로 가져다 쓰는 식의 상당히 특별한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런 것이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음악으로 따지면 샘플링에 해당?).

그러나 그런 창작물을 '비평'하기 위한 인용이나, 학술적 견해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인용까지 일일이 허락을 맡고, 실제로 호불호에 따라 안 해 줄 수도 있는 문화가 규칙으로든 관례로든 확산된다면, 지식과 사유를 축적시키고 공유시키는 문헌 특유의 힘이 오히려 위축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저작권이라는 것이 행사됨에 있어서 명백히 문제적인 사례들을 효과적으로 방지함과 동시에 어려운 쟁점들을 잘 조절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고, 자유롭되 책임감 있는 건강한 창작문화 전반이 저해되는 일은 없게끔 지혜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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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다원예술 프로젝트 <다이빙 미러>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 후기 및 발제문

지난번에 포스팅한 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의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가 지난 12월 10일(일요일)에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기술 미학'이라는 키워드로 지난 10월부터 이번 협업에 참여하여, <표현 재조합 기계로서 딥러닝의 기술미학적 쟁점들>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문을 작성하였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협업자의 한 명으로서 30분가량의 발표를 진행하였습니다.

과분하게도 제 발제문이 이번 쇼케이스에 전반적인 화두를 던지는 역할을 하게 되었는데, 제가 여러 의미로 아날로그 vs 디지털을 비교하면서 밀어붙인, '딥러닝의 매체성은 디지털화의 끝에서 등장한 아날로그이다 (디지털의 양적 팽창 -> emulated analog로의 질적 도약)'라는 테제가 사전미팅 때도 그렇고 본 쇼케이스 때에도 꽤 논쟁적이어서, 예상보다 활발한 논의가 있었고 저도 많이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뒤늦게 합류하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디스커션 하며 작업했는데도 한동석 작가님을 중심으로 여러 협업자 선생님들과 밀도있는 교류가 오간 인상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유튜브 영상 다시 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발음/발성 연습을 좀 해야겠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업결과 공유 차 이번 쇼케이스에 대한 네오룩neolook 공지 게시물 (쇼케이스 진행 후 업데이트됨) 을 덧글에 링크하였습니다. 또한 네오룩 공지의 여러 링크는 12/19(화)를 끝으로 만료될 예정이라, 발제문 pdf 파일과, 저 외에도 총 5명의 협업자가 함께한 쇼케이스 녹화본 유튜브 영상들도 덧글로 직접 링크해둡니다.
발제문의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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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재조합 기계로서 딥러닝의 기술미학적 쟁점들>
I. 소개 및 서론
II. 본론
1. 딥러닝의 매체성: 디지털과 아날로그 사이에서
(1) 기술매체의 미학: 복제와 재조합의 용이성
(2) 아날로그 알고리즘으로서의 딥러닝
(3) 원형 재조합 기계로서의 딥러닝: 디지털의 끝에서 다시 아날로그로
2. 의미-기계의 기술적 조건들
(1) 고차원 공간에 임베딩되는 내부 표현들
(2) 추상성의 위계와 정보의 정량화
3. 딥러닝을 활용하는 예술, 딥러닝을 사유하는 예술
(1) 예술에서 인공지능의 이중적 지위
(2)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에서 탐구될 중간적 시공간들


유튜브 녹화영상 링크
1. 사업 결과
2. 쇼케이스 녹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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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3일 수요일

[음악 추천]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예찬

1994년에 발매되어 벌써 3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 <교실 이데아> 도입부만큼 세련된 것이 또 있을까?

이 곡의 도입부에서는 스크래치의 역할이 단순한 보조적인 효과음 이상으로 중요한데, 쓰래쉬한 헤비메탈 기타 사운드가 자칫 실제 속도에 비해서도 곡을 더 무겁고 둠하다고 느끼게 할수 있으며 리프 자체도 단순함에도, 여기에 턴테이블 스크래치가 적절하게 더해져서 무척이나 감각적이고 댄서블하게 느껴지는 듯.

특히 첫 보컬 '됐어~' 들어가기 직전의 5초 정도에 스크래치 들어간 질감이 너무 세련되어 있고, 100번 들어도 절대 질리지 않는다. 이 구체적인 질감은 라이브 공연 무대에는 잘 없고 원곡 음원 버전에만 있어서, 계속 원곡 음원을 찾아 듣게 된다.


랩댄스뮤직과 헤비메탈 기타리프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하는 전작의 타이틀곡 '하여가' (1993) 와 비교해 보자면, 곡의 전반적인 컨셉의 혁신성은 하여가가 더 뛰어난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구성이나 디테일이 정리가 조금 덜 된 느낌이 드는 하여가에 비해서 세부적인 터치의 센스는 교실이데아가 들을수록 탁월한 듯.

가사 면에서도 하여가는 재밌는 부분들이 있지만 주제의식 자체는 비교적 평범한 데 비해, 교실 이데아는 교육문제에 대한 노골적인 (그러면서도 분노를 과격한 감정으로 표출하지는 않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당대에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맨처음 드럼 필인 들어가기 전에도 짧은 비트박스(?) 같은 게 나오는데 이 부분부터 범상치 않은 곡임을 알 수 있다.


서태지가 은퇴해 있는 사이에 세계적으로 본격화된 누메탈 유행을 타고 다시 나온, '울트라맨이야'가 수록된 6집 (2000) 또한 뉴메탈 사운드에서 raw함을 좀 죽이고 서태지 특유의 집착적으로 갈고닦는 스타일을 결합했다 보니 편곡이나 사운드적인 완성도, 세부적인 아이디어는 탁월한 명반이지만, 수록곡들의 전반적인 독창성 면에서는 당대에 이미 피크를 찍어 가고 있던 세계적 뉴메탈 유행에 비교했을 때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이러한 랩과 메탈의 결합이라는 유행을, 미국에서 본격화되기 전에 이미 높은 완성도로 선취한 교실 이데아를 그래서 더욱 높게 평가할 수밖에 없다.

'매일아침 일곱시~' 부터 시작하는 벌스 부분도 사실은 단순하고 둠한 기타리프인데, 드럼이 적절하게 들어가 줘서 거의 컴백홈 급으로 가볍고 복잡하고 신나게 느껴진다. 드럼의 중요성이다.

3집 콘서트 '다른 하늘이 열리고'에서 크래쉬랑 같이 엄청 길게 공연한 교실이데아 무대는, 물론 서태지 커리어 중에서도 역대급으로 꼽힐 만한 명 무대이지만 오히려 전통적인 쓰래쉬 느낌으로 편곡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세련된 스크래치의 맛은 안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다. 그래도 시작 전에 오글거리는 교육 비판 연설(?), 3집 특유의 발해왕자 의상 입고 댄스 하는 것, 그리고 크래쉬한테 '하고 싶은거 다 하시라'고 한 듯한, 전면에 오랫동안 내세워지는 기타연주가 조화를 이룬 아주 좋은 무대다.

이외에도 3집을 요새 다시 탐구하고 있는데, '발해를 꿈꾸며'는 남북통일이라는 메시지를 떠나서 송라이팅 면에서는 기존에 내게는 잘 와닿지 않고 그냥 그런가보다 싶어서 잘 모르는 곡이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들어 보니 오히려 너무 매끄러워서 감흥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고, 이것도 들을수록 대단한 완성도를 가진 록 음악인 듯하다.

이 외에도 '내 맘이야', '제킬박사와 하이드' (메탈 뮤지컬(?)의 원조랄까), '널 지우려 해' 등등 각 수록곡들이 기타사운드를 통해 한 앨범이라는 통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제각각 개성있는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영원'이랑 '아이들의 눈으로'는 록 사운드는 아니지만 뭔가 뮤지컬 느낌, 연극적인 느낌이 난다는 점에서, 사운드적으로는 상극에 있는 '제킬박사와 하이드'와 묘하게 잘 어울리는 접점을 이루면서 앨범에 새로운 축을 더해준다. 이렇게 다양하면서도 통일성 있는 3집이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더 좋아지는 듯하다. 시간을 투입해서 들어 보고 이 정도의 장문으로 기록해 볼 가치가 있는 음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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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6일 수요일

뮤지션 김민기에 대한 몇몇 이야기

어머니가 잊을만하면 얘기해 주시는 재미있는 일화인데, 옛날에 어느 자리에 갔는데 너무나 익숙하지만 누군지 생각이 안 나는 사람이 앉아 있더란다.

그래서 주저하던 끝에 혹시 저 아시지 않냐고, 누구셨더라 하고 물어봤는데 그분이 허허 웃으시더니 아마 무대에서 보셨을 거라고... 알고보니까 가수 김민기였다고 한다. 내 기억이 확실친 않은데, 아마 옷을 굉장히 멋있게 입었다고 하셨던 것 같다.

아마 유명인들은 이런 일화가 워낙 많을 것 같다. 혹시 TV에 나오는 분 아니냐는 질문은 물론이거니와, 그럴 거라고 생각 못한 나머지 질문하는 본인이 아는 사람 아니냐는 질문들까지 말이다.

사실 나도 몇 년 전에 우연히 본 어떤 분이 얼굴이 너무나 익숙한데 누군지 기억이 안나 나서, 어릴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이셨나? 막 이랬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신태용 축구 감독이었던 적이 있다. 안 물어보길 다행이었다.


김민기는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비롯해서 감동적이고 벅찬 분위기의 곡도 많이 썼지만 그의 노래극 중에서는 위트가 담긴 풍자적 가사도 많은데 그 중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깊고 재미있는 건 <공장의 불빛>의 한 수록곡에 나오는 다음의 가사다.

"사장님네 강아지는 감기 걸려서 포니 타고 병원까지 가신다는데 / 우리들은 타이밍 약 사다 먹고요 시다 신세 면할 날만 기다리누나"

실로 재치있으면서도 씁쓸한 가사가 아닐 수 없다.


김민기는 최근에 암투병으로 인해서인지 학전도 닫기로 하고 마지막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김민기가 한국 노래극에 기여한 바를 보면 시대의식이나 시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음악사적으로도 의미가 상당한데, 김민기 본인의 드문 매체출연은 물론이고, 노래극 관련 영상자료도 생각보다 남아있는 게 풍부하지는 않다 보니 잘 보전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음악 자료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80-90년대 록밴드 뮤지션들이 열심히 활동한 것에 관해서 남아 있는 자료들도 생각보다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운데, 이들도 당시를 직접 겪어서 잘 알고 있는 뜻있는 팬들이 더 늦기 전에 잘 수집하고 보전해나갔으면 하는 바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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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5일 화요일

다원예술 프로젝트 <다이빙 미러> 쇼케이스 '비전이 공간이 될 때' 홍보

2023년 다원예술창작지원사업 <다이빙 미러> 프로젝트에서 이번주 일요일에 쇼케이스를 합니다.

<다이빙 미러>는 영상매체 작업에 컴퓨터비전 기법을 도입한 다원예술 프로젝트로 저는 지난 10월 초부터 참여하였는데, 주말을 활용하여 2회의 디스커션, 그리고 1회의 내부 상영회(사전미팅)을 거쳐 '기술 미학'이라는 키워드로 쇼케이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에 늦게 합류한 관계로 준비 기간이 짧기도 했거니와 AI 현업에도, 미학분야에도 내세울만한 전문성은 없다보니 훌륭한 분들 사이에 참여해도 될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AI에 대한 약간의 수학적/물리학적 이해와 더불어, AI가 개입되는 새로운 예술형식에서 발생하는 매체미학적 쟁점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견해를 재미있게 봐 주셔서 그런 내용들에 대해 짧은 발표를 해 보고자 합니다.

행사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네오룩neolook에 업로드되어 있습니다 (클릭하여 네오룩neolook 링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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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용재 ● 학부시절 전기공학, 물리학 및 미학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물리학전공 박사과정생(통계물리 세부전공)이다.
생체를 비롯한 여러 시스템들의 창발적 집단현상에서 나타나는 에너지 및 정보의 흐름과 그 제약 조건들에 대해 확률을 도구삼아 연구하는 '비평형 통계물리학'이 본업이며, 이러한 관심사를 인공지능 시스템의 풍부한 표현 학습과 높은 성능에 대한 이론물리학적 해명에 다각도로 접목하는 연구들도 조금씩 살펴보고 있다.
최근 인공지능에서 딥러닝 패러다임의 부상은, 데이터를 학습하여 구조화되며 고차원 공간상에서 배열되고 표류하는 '표현'들의 기하학으로써 특히 문화기술 부문에서, 그간 주관적 표현의 영역이었던 '의미'와 '질감'에 대해 우리 스스로 더 잘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것들을 엔지니어링할 수 있게 길을 열어 주고 있다.
이렇듯 근래에 실현되고 있는 시맨틱 테크놀로지, 텍스쳐 테크놀로지로서의 딥러닝이 인간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촉발되는 새로운 종류의 미학적, 인간학적 질문들을 꾸준히 포착해 나가고자 한다.
본 프로젝트에서 여러 문화예술 부문의 협업자 선생님들이 함께하는 다원적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 설레는 마음이며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상이한 매체성이 테크놀로지에 의해 종합되면서 제공되는 새로운 시공간적 체험들과, 그러한 테크놀로지의 여백 및 틈새에서 폭로되는 시공간 지각의 매끄럽지 않은 이음매들에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주관적인 것들에 관한 학으로서 미학 고유의 영역이, 테크놀로지의 인간학적 해석과 수용에 적절히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주로 텍스트작업과 컴퓨터비전 실습작업을 통해 탐구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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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상승욕구는 평등이 아닌 계급주의를 향해 있다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대체로 상승욕구가 굉장히 강하며, 이것과 발맞추어서 실제적인 경제적/문화적 계급 고착화도 여지껏 비교적 덜하게 유지되어 왔다고 흔히 얘기한다.

이러한 특징이 개인과 국가가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고 발전할 거라는 믿음과 결합하여 '역동성'으로 작용하면서 (심지어 산업 및 경제뿐만 아니라 민주정치 발전에 있어서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기능을 해왔던 것 같다.


그런데 만약에 이런 상승욕구의 근원을 따져봤을때 그것이 평등지향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반대로 철저한 계급적 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면, 즉

1.현재의 계급과 무관하게 누구나 지금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나아가서 더 성공할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 아니라
2. 오히려 급을 철저하게 나누고 내가 그 위계 하에서 윗급에 서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라는 생각 때문이라면
나라가 역동적으로 성장할 때는 위 두 가지가 그다지 구분이 되지 않으나 (혹은 구분 안해도 크게 상관없을 수 있으나) 나라의 성장동력이 사라지고 저성장 및 인구감소에 접어들면서 국민생활 개선 및 그에 대한 희망이 제공이 안되기 시작하면, 그래서 실질적으로 계급이 고착화되기 시작하면 위 둘은 즉각적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게 되는 듯하다.


한국사회에서의 삶의 표준모델은 아직까지 비교적 동질적인데 (현실을 떠나서 동질성을 표상하는 이념의 측면에서) 그렇다 보니 지극히 일원화된 기준 하에서 한 사람의 삶의 모든 것이 급수화, 점수화되고 이 점수가 그 사람의 성공 여부를 정하는 듯하다.

말하자면 추석에 가족들이 모였을 때 어느 대학 갔냐, 어디 취업했냐 캐물어보고 하는 클리셰적인 스트레스 요인을, 가족 친지 단위에서 미시적으로 내면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라는 거시적인 레벨에서 마치 거대하게 확장된 단일 친척공동체 (그러나 서로 도와주기보다는 서로 비교만 하는) 처럼 다같이 그러고 있다는 것이다. 동질성이 이러한 일원적 평가기준에 근거하여 수립된 탓에 사회적 갈등 의식도 높고 말이다.

즉 내 생각에 위 1, 2 중에 한국인들은 명백히 후자라는 것이고, 이러한 특질이 딱 내 또래 세대가 첫타로 얻어맞게 될 전례없는 사회변화의 국면에서 시너지로 작용하여 매우 부정적인 여파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성취지위에 대한 과도한 주목과 일원화된 평가보다는, 다원화된 각 부문에서 자기가 맡은 자리를 지키면서 역할, 책임, 그리고 직업윤리를 다하는 사람들에게 인식상의 존중과 실제적인 상승도전의 기회가 더 많이 돌아가는 모럴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는 소득과 안전을 보장해줌과 동시에, 구성원 간에 급을 나누고 비교하는 peer pressure를 완화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사실 나도 이런 peer pressure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리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 하고는 있는데, 회사에 다니는 동기들은 절대적인 금전 부분을 떠나 커리어적인 성장을 하며 생애주기 상의 단계에 드라이브를 거는 데 비해서, 나는 계속 학교라는 똑같은 공간에 있고, 진로가 국내일지 국외일지 불확실해서 정착준비가 불가피하게 유예되다보니, 커리어적으로 치고나간다는 느낌과 객관적인 성장의 증거가 없어서 더 그런 듯하다.

저성장, 인구감소, 계급고착화를 필두로 한국사회가 곧 마주하게 될 망국적 변화속에서 내가 진로선택과 정착 준비를 20대 5년쯤 유예하기로 한 것이 아주 부정적인 스노우볼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불안감이 많이 드는 게 사실이다. 졸업하고 나서 내가 역할을 발휘하면서 꾸준히 기여할 수 있는 쪽으로 잘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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