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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7일 수요일

인터뷰 후기: 결국 하고픈 한 마디

개강 전인 2월 말 경에 전문연구요원 지망생으로서 서울대저널 기자님들과 인터뷰를 했다. 정신이 없어서 찾아보지 못하고 있다가, 2건의 기사에 쓰여 나온 것을 지금에서야 봤다. 다소 중언부언했던 인터뷰였는데, 인터뷰에서 제일 하고 싶던 얘기를 잘 넣어 주셔서 감사하다.

<현재 전문연을 지망하고 있는 오용재(물리천문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씨 역시 "당시 전문연에 대한 누군가의 발언이 나오면 그렇게 확정된 것처럼 기사가 나왔다"면서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만 쏟아지면서 진로에 대해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가 4년 가까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기사 1: 밑 빠진 독에 전문연 붓기 - 전문연구요원 존폐 논란 너머의 문제들 (링크)

기사 2: 갈등과 논란 속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전문연 제도 존폐를 넘어 폭넓은 논의 필요해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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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4일 금요일

정치적 의도라는 낙인에 급진적으로 맞서자

정치인에 의한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가 폭로를 총선 이후에 하기로 했다는 것은 존중받아야 할 결정이다. 그러나 만약 그러지 않고 당시에 폭로했다고 해도 그것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결정일 수 있었어야 할 것이다. 말들과 생각들의 묘한 지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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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1일 화요일

꿈에서의 무력한 불쾌감

내가 기억하는 꿈들은 주로 장면 없이 설정만 주어지고 그에 대해 생각하는 일상적인 꿈이거나, 아니면 서사 없이 구조화된 공간들만 나오는 꿈이다. 그 중 전자의 하나로서 종종 나오는 레파토리는 수업들 중 한 개의 존재 자체를 계속 잊어버려서 아 또못갔네.... 하는 그런 내용이다. 심지어 은근히 있을법한 일이고 뭔가 실제 학기랑 연동돼서 꿈이 계속 연결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꿈을 생각하다 보면 현실이랑 잘 분간도 안가고 마음 한구석에 슬픈 느낌이 생긴다. 해결하긴 해야 하는데 정작 계속 잊어버려서 늘 그 상태로 계속 남아 있으면서 파국을 예고하는, 무력하고 일상적인 불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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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6일 목요일

21대 총선에 대한 단상

1. 선거 제도 개편에 따른 혼란에 더하여,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들이 많이 나와서 솔직히 말하면 의욕이 들지 않는 선거였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정당투표는 결국 더불어시민당에 했다.

당에서 육성해온 인사들이 아닌, 외부 군소정당이나 시민사회 인사들에 대해서는 검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분들을 앞쪽 순번에 배치시켜 놓은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었고 더불어시민당에 표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표를 주지 않아도 그 분들은 어차피 되실 분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정말 많이 고민했지만, 핵융합 과학자 출신의 이경수 후보를 포함해서, 내가 좋게 봤던 뒤쪽 순번 인사들의 당선을 돕겠다는 심정으로 투표했다. 방송의 예측치를 보면 대다수가 16, 17번에서 끊길 것으로 예상하는데, 조금 더 파이팅해서 18번인 이경수 후보가 꼭 당선되면 좋겠다. 보다 진보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정당에 투표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이번 선거에서는 이 문제가 내게 어쩔 수 없이 크게 다가왔다.


2. 사실 현재 주민등록된 관악갑 쪽 판세보다는, 본가 쪽 동네인 강동, 송파 쪽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당선여부에 더 신경이 많이 쓰인다. 자취하기 전 지역구였던 송파병의 남인순 의원, 치과의사이자 변호사인 강남갑 전현희 의원, 명성교회 영향력 하에서도 힘들게 노력 많이 한 진선미 의원 등 좋게 봤던 의원들이 많다. 이번에도 당선되었으면 좋겠다. 다만 현재 개표 상황을 보면 진선미 의원과 전현희 의원은 쉽지 않을 것 같아 아쉬움이 많다.

3. 민주당과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을 동일시하고 동시에 적대하는 소위 청년극우의 탄생은 여전히 우려되는 점이다. 특히 국민의당 4번 후보가 당선될 경우 안티페미 청년극우의 중앙 정계 진출은 세간의 비웃음과 달리 매우 이른 시점에 이뤄지는 셈이다.

4. 내가 해 본 첫 투표는 20대 총선이었다. 비록 내가 특정 진영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난번 총학생회 선거(...)를 제외하면 '진 선거'는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굳이 따지면 '이긴 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찝찝한 느낌이 있기는 하다.

결국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 미래로 나아가는 선거보다는, 20대 총선과 박근혜 탄핵 이후 혼란상이 정리되고 힘의 구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더 강성, 퇴행적인 측면 역시 생기지 않을 수 없는 선거가 아닌가 한다. 이러한 우려와 다르게, 진영을 떠나 미래적인 가치가 자리잡을 공간이 생기는 4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민주당에서도 역대급으로 많은 의석을 가졌으니, 좀 여유를 가지고 그런 공간을 열어주어야 할 텐데 말이다. 사실 선의를 기대하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며, 들어 줄 수밖에 없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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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8일 수요일

시민의식을 박탈하는 엘리트교육은 귀족주의일 뿐이다

트위터에서 고소득층이지만 힘들다고 말하는 플로우가 있었다고 한다. 학원비 운운하는 것으로 보아 주로 중고등학생들인 듯한데, 학원비가 월 수백만원씩 나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고소득층도 사실 힘들다'의 근거가 되나? 어떻게든 그럴 여건이 되니까 그렇게 보내는 것 아닌가. 차라리 세금 많이 떼어 간다는 얘기를 하면 정치적 견해로서 존중이 될 텐데, 학원에서 내용적으로 우수한 학습컨텐츠는 제공받겠지만, 그러한 환경이 학생들로 하여금 필수적인 시민적 덕목을 결여하게 하고 오히려 시야를 좁히는 면이 있는 듯하다.

돌이켜 보면 학원과 특목고를 중심으로 한 기형적 엘리트교육 환경에서 학생들이 듣는 이야기들과 서로 주고받는 얘기들이, 이런 종류의 생각들을 체계적으로 강화시키는 면이 꽤 있었다. 특히 학부모들도 '내가 너한테 돈을 얼마나 들이는데' 류의 말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말들이 문제의식 없이 유통되는 것이 무리는 아니겠다. 동질적인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의식을 체계적으로 박탈시키는 엘리트교육은 21세기 귀족주의에 불과하다.

더 문제적인 것은 중고등학생들의 트위터뿐 아니라 서울대 대나무숲에도 이러한 종류의 개복치 글(?)이 참 많다는 사실이다. 9, 10분위 학생이 70% 이상이라고 하던데 그러한 환경과 결부지어 생각해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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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4일 토요일

코로나19 시국의 교육: 과감한 선택으로 무리한 운영을 예방해야

코로나19 시국에 교육의 현장에서 종종 보이는 것은 오프라인 강의를 최대한 모방하려는 운영의 경향이다. 그러나 이는 효과적으로 진행되기 어렵고, 여러가지 무리한 일들이 따를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는 이유는, 사이버강의의 이점을 전면적으로 살리도록 준비하기엔 이번 사태가 지나치게 급작스러워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강의의 운영방침은 준비 부족에 의한 불가피한 것이라기보다는, 굳이 없었어도 될 다소 인위적인 제한사항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 예로 수업시간 외에는 각종 자료(수업 영상, 강의ppt 등)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있다. 출석률과 참여도를 확보하기 위함일테다. 그러나 이는 강의를 몇 번씩이라도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사이버강의의 가장 큰 이점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물론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강의가 학생들에게 배포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사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수업시간에 해야 하는 일은 공지 전달과 질의응답 위주이므로 그 내용들을 정리해서 글로 올리는 식으로 할 예정이다). 그러나 다소 정제되지 않은 강의라도 다시 들을 수 있는 것이, 그렇지 못한 것보다 학생들에게 더 낫다는 면도 분명히 있다.

또한 강의자의 얼굴이 나오도록 하는 것, 그리고 출석체크 및 집중 여부 확인을 위해 학생들의 얼굴이 나오도록 하는 것 또한 문제적이다. 학생들이 집에서 부스스한 상태로도 마음껏 수강을 할 수 있는 것 역시 사이버강의의 이점인데, 집에 있으면서도 그러지 못한다는 것은 현 시국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또한 디지털 매체의 특성상 무단으로 저장 유포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도 여러 방면으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집중하는지 여부의 확인을 다른 식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을 뿐더러, 사이버강의에서 그걸 반드시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요컨대 관건은 강의자의 수강생들에 대한 통제력이다. 그 통제력이 사이버강의에서도 현장 강의 수준으로 확보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기대를 가지고 현장 강의의 방식을 사이버강의에 억지로 이식하려다 보면 여러가지 무리가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왕 사이버강의를 하게 된 바, 현장 강의와의 어쩔 수 없는 차이점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매체의 이점을 살려 강의컨텐츠가 효과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자원이 많이 드는 적극적인 실험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굳이 없어도 되는 제한사항이 인위적으로 추가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한편 의무교육에서 통제력 확보가 안 되는 것은 공적 책임의 측면에서 고등교육과 그 의미가 현저히 다른만큼 그 나름의 고민의 지점들이 있을 것이다. 대학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이고 기존과 완전히 다른 발상이 필요할 것 같다. 개별 가정에 지나친 관리책임을 지우는 것은 공교육의 가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깨워서 학교 보내는' 것에 준하는, 비교적 간단한 관리만으로도 의무교육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 묘안이 없을지 궁금하다.

입시도 문제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너무 많은 게 결정되는 지금의 입시체제에는 이런 비상상황이 생겼을 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역량이 근본적으로 없다. 사람별로 놓인 상황에 따라 유불리가 여러모로 갈리면서 엄청난 논란과 원한(?)이 발생할 것이며, 사교육이 가져 온 과도한 영향은 기존보다 더 커질 것이다.

일단 현행 체제 하에서 오래 준비해온, 입시가 임박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상황에 맞게 연착륙을 시키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그리고 좀 더 장기적으로, 이번 사태처럼 변동이 조금 생기더라도 학생들이 크게 동요하거나 원한을 갖지 않을만한 튼튼한 입시제도가 필요하다.

여러모로 코로나19 사태는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우리 사회의 능력을 테스트함과 동시에, 우리 사회의 몇몇 부분에 대해서는 그 일상적인 작동방식마저 전면적으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사회가 매 순간 비상 체제일 수 없으므로, 재난은 그 극복 과정에서 많은 비일상성과 불편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재난에 의해 지나치게 손상되지 않는 제도라면, 대체로 일상에서도 비교적 합리적이고 스트레스를 덜 유발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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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4일 화요일

가시화되는 반지성주의의 국회 입성

당에서 영입한 핵융합 국제전문가는 18번이고, 핵융합을 지구에서 구현하는 건 비현실적인데 왜 하냐고 어떤 현황도 이해하지 않은 채 주장하는 사람은 시민사회 몫으로 9번으로 당선권이구나. 비록 시민사회 및 군소정당이랑 같이 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긴 하지만, 전혀 다른 메시지 내는 두 사람이 비례후보 명단에 공존하는 것 자체가 확실한 방향성 없는 몸집 불리기로 보이기도 한다. 어떻게 투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당에 아쉬움이 크다.

늘 이렇게 말로만 언급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밀려나는 과학기술 쪽에서도 그렇고, 국회에 성평화, 이퀄리즘 세력이 확정적으로 진입할 것으로 보이며 보수 종교계도 진입 시도하는 상황에서 내가 관심이 있는 또 다른 주제 중 하나인 젠더문제 및 소수자 문제에서도 그렇고, 21대 국회의 모습이 대체 어떨지 정말 걱정된다.

이와 비슷한 무력감의 문제에 대해 근 몇 년 간 느낀 바는 다음과 같다: 나를 완벽하게 대변해줄 사람이 나타나길 기다릴수록, 더욱 더 이상한 사람들만이 내게로 온다. 그런 기다림의 정서가 극단주의적, 반지성주의적 정치담론을 직간접적으로 만들어낸다. 결국 영역의 적극적인 확보와 개척을 위한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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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21일 토요일

세상의 절반을 생각한다: 'N번방 사건'과 그 경악스런 일반성을 보며

끔찍하고 초현실적이다. 읽기 힘들고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N번방 사건'에 대한 글들을 의무감에 꾸역꾸역 읽었다. 특정 범죄자 몇 명이 아니라, 한 나라 전체에서 유의미한 비율의 불특정 대중들이 참여하는 여성들에 대한 체계적인 억압, 직접적이고 심각한 폭력이 그동안 있어 왔다.

불법 음란물을 아무렇지 않게, 혹은 재미있게 여기고 남성들끼리의 유머 소재로 소비해 온, 그 유서깊은 잘못된 분위기가 이 사건에는 분명히 작용하고 있다. 아니, 이 사건이 바로 그러한 분위기의 아주 극단적이면서도 솔직한 귀결 그 자체이며, 그러한 분위기가 견제받지 않을 때 이런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휴대폰 조작 몇 번에 불과한 아주 일상적인 일도,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 아주 비일상적이고 파괴적일 수 있다. 이것이 불법적인 성적 착취와 디지털성범죄의 아주 무서운 점이다.

26만 명은 중복 집계가 있으므로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들을 많이 본다. 물론 그것보다 수가 더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방의 회원 수만 해도 2만여 명이었다고 하며,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이 숫자만 생각하더라도 매우 높은 비율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텔레그램과 같은 비주류적 디지털 매체 사용에 익숙할 연령층이 어디까지일지 생각해 보면, 비율을 따질 때 분모에 들어갈 숫자는 훨씬 더 줄어든다. 이 정도 비율이면 위에서 말했듯 특정 집단을 넘어 사회 전체의 불특정 다수가 이 체계적 억압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말이다. 게다가 사건이 드러난 이후로 (디지털성범죄 사건에서 언제나 그래 왔듯이) 그 범죄적 자료들에 대해 여러 경로로 관심을 갖는 이들의 게시물들이 속출했음을 고려하면 그 일반성은 더욱 확장된다.

그런데 26만명이라는 숫자가 왜 계속 강조될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있기는 하겠으나, 사건의 끔찍함에 공감하기보다 숫자가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먼저 지적하면서 선 긋기, 심각성 축소하기부터 시도하는 그런 소위 '합리적' 태도를 본다면, 그 반대급부로 '결코 일부가 아니다'를 강조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여자가 몇 명이냐 하는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일반성이라는 질적인 문제와, 그에 따른 철저한 반성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다르지만 이런 얘기도 해보겠다. 음란물 금지, 성매매 금지 등에 대한 대중적인 반대 의견은, 주로 그 금지의 근거가 성을 엄숙하게 보는 전근대적 관점 하에 수립되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물론 역사적으로, 그리고 판례 및 현행법의 논리 상으로는 그것이 옳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주장들이 다소 허수아비 때리기처럼 느껴진다. 남성중심적인 환경에서의 성 산업 발달이 가져올 결과를 많은 이들이 긍정적으로 전망하지 못하고 우려하는 이유가 정말 과연 그것뿐인가?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관점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현대사회로 나아가자는 관점에서 그런 의견들을 비판하는 것은 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이 사건에서 극단적으로(그러나 매우 일반적으로) 드러났듯이,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에 대한 실질적인 성적 착취, 속임수, 폭력이 매우 일상적인 수준에서조차 만연하고, 또한 그것이 'N번방'과 같은 형태로 간단히 연결되는 지금의 환경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 전체에서 성적 관계맺음의 전면적인 비폭력적 재구성, 그리고 성 담론의 탈-남성중심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지금 이 상태에서 성 산업의 발달이 가져올 것은 자유와 권리의 확대가 아닌 명백한 축소일 것이 아닐까 한다. 산업의 양지화를 통해 그런 비폭력적 재구성이 알아서 유발될 것이라는 기대는 그 근거가 미약하다. 오히려 비폭력적 재구성의 가능성에 대한 확실하고 정교한 근거와 사회 전체적인 추진 의지가 충분히 확보됨이 우선이고, 그에 따라서 그걸 진행하든 말든 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원래 얘기로 돌아오자. N번방 착취 사건, 그리고 남초 집단이 그 사건을 대하는 왜곡된 관점의 '일반성'을 고려할 때, 이 쯤 되면 여성들이 겪는 매우 실질적이고 일상적인 성적 폭력에 대해 호모소셜 대중들의 자발적 태도변화와 동료 시민으로서의 연대는 딱히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 지금 느껴지는 솔직한 심정이다. 그저 여성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연대를 구성하고, 권력과 언어를 더 많이 획득하고, 더 많은 사실들을 찾아 폭로하고, 더 많은 호모소셜을 해체하고, 그러면서 과거와 현재를 기억한 채 새로운 시대를 치열하게 열어 가는 방법밖에 없겠다. 이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며 미약하게나마 보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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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11일 수요일

전염된 윤리적 둔감성: 상대편의 비인격화로부터

코로나19 시국과 관련해서 지자체장 대응을 비판하는 것이나, 무슨무슨 담당 공무원이 신천지였더라, 진짜 뭐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가능하며 유의미하다. 그런데, 대구라는 지역 자체를 신천지에 점령된 곳이라는 식으로 희화화하는 분위기를 은근히 내비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물론 본인들은 아니라고 할 것이고, 이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방법도 없다. 그렇지만, 투표 성향이 본인과 다르다는 이유로 막말에 대한 '필터'가 묘하게 무뎌지고, 굳이 없어도 될 조롱의 뉘앙스가 섞여 들어가는 그런 거, 확실히 있다.

심지어 대구경북 지역이 투표를 잘못 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식의 주장을 유명 작가, 총선 예비후보 등 꽤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없이 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은 보수 우세 지역이라서 욕했다는 건 오해이며 지자체장 한 명에 대한 이야기였다라고 해명하는데,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공감 능력이 충분히 발휘되었다면 그런 식으로 오해(오해라고 해 두겠다)를 살 표현은 절대로 안 나오지 않았을까. 표현 한 마디 한 마디가 줄 수 있는 오해의 여지에 누구보다 신경써야 하고 또한 실제로 그래 왔을 사람들이 바로 작가, 정치인 아닌가. 그런데도 그렇다.

혼란에도 불구하고 질서 있는 대구의 모습을 보도하는 기사에도, 중앙정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있다면서 조롱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특정 지역을 중앙정부와 분리해서 보는 건 반대쪽에서 쓰던 악의적인 프레임인데, 그새 배운 것인가 싶기도 하다. 인간적인 격려와 위로의 효과를 갖는 그런 기사를 조롱하지 않으면서도, 정부여당 때리기에 나선 보수언론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조국 교수 논란을 겪으면서, 존경해 온 분들, 나랑 비슷한 진영이라고 여겨 온 분들이 이상한 말을 하는 경우를 참 많이 보았다. 이번에도 그런 것 같다. 안 그래도 전염병 사태와 인프라 부족으로 고통받는데, 위로와 격려, 지원은커녕 그런 식의 말들을 들으면 그야말로 뽑으려다가도 안 뽑고 싶겠다.

해도 될 말일지 아닐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의외로 다들 알고 있다. 요새는 성희롱, 여성혐오 등 문제있는 발언을 할 때도 '요새 이런 말 하면 큰일난다던데'로 운을 띄운다고 하지 않는가. 다들 아는 것이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한다. 도의에 어긋나는 사고와 언동을 제발 자제해야 한다. 투표를 잘 하라고 훈계할 시간에, 지금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찾아 실천하고, 앞으로 이런 비슷한 일이 생길 때 보건, 공공의료, 방역이 잘 돌아가기 위해 뭐가 필요할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개발해야 한다.

물론 특정 지역 차별에 편승하며, 없애기는커녕 재생산해 온 어떤 다른 정당에서는 공천에서 떨어진 사람들을 호남에 차출시키겠다는 이야기도 나온 것을 보면, 상대방 진영을 동등한 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그러면서 묘한 재미까지 느껴 버리는 것은 한쪽만의 일이 아니긴 한가보다. '선택적 공감능력'이라는 말은 진보진영을 비판한답시고 오남용돼온 말인데다 약자 혐오의 맥락도 있어서 아주 싫어한다. 근데 오늘만큼은 이상하게도 그 단어가 머리에서 자꾸만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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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6일 금요일

내가 본 천만 관객 영화들(스포일러 있음)

Facebook에서 유행한 #천만영화리스트 해시태그를 달아서 썼던 글(링크)을 옮김.
27개 중 13개를 보았으며, 감상여부와 함께 간단한 평들도 남겨 보았다.

1. 명량(X)

2. 극한직업(O): 유튜브로 결제해서 봄. 비교적 깔끔하고 시원한 코미디 영화.

3. 신과함께-죄와 벌(X)
4. 국제시장(X)

5. 엔드게임(O): 극장에서 두 번 봄. 장르적으로 일반적인 영화라고는 보기 힘들며, 팬들을 초청해놓고 MCU를 마무리하는 클로징 이벤트? 행사?에 해당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딱히 부정적 평가는 아님. 말하자면 이 영화 전체가, '파 프롬 홈' 영화 초반에 나온 PPT와 메타적으로 동등한 것임(여담이지만 나는 파프롬홈을 엄청나게 좋아함). 누구도 안 해본 대규모의 일을 했고 그것의 자연스런 귀결이었던 듯. 통시적 짜임보다는 개별 장면에 환호하는 방식으로 감상하는 와중에, 여성캐릭터 희생은 그 목적이 설득되지 않아 아쉬웠음.

6. 겨울왕국 2(X): 봐야 하는데 하다가 결국 못 봄. 곡들 모르는 채로 보고 싶었는데 설입 할리스에서 인투디언노운 주구장창 나와서 실패... 내용은 아직 모름.

7. 베테랑(X)

8. 아바타(O): 극장에서 보긴 봤는데, 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좀 급이 떨어지는 3D로 봄. 그래서 당시 찬미받던 그래픽의 진수를 느끼진 못한 점이 꽤 아쉬움. 그래도 대단하다 느끼긴 했던 기억.

9. 괴물(O): 학창시절 학교에서 보고, 최근에(불과 몇 주 전) 다시 봄. 너디한 학생답게 괴수의 생김새와 스펙, 그래픽 같은 것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그런 게 뛰어나게 표현되었음에도 전면에 내세워지진 않아서 아쉬웠음. 최근에 다시 볼 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여서 재밌었고, 기생충과의 색깔 차이에도 주목하게 됨.

10. 도둑들(X)

11. 7번방의 선물(O): 아버지와 극장에서 봄. 울리려고 만들었네~ 하면서 울긴 욺.

12. 암살(X)

13. 알라딘(O): 어머니랑 누나랑 봄. 화려하고 유쾌한 춤 장면 같은 걸 원래 오글거려서 잘 못 보는데, 원작 만화영화가 상기되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괜찮게 봄. 원작 스토리를 바꾼 부분은 재밌었지만 정교하기보다는 거칠고 솔직했음.

14. 광해, 왕이 된 남자(X)
15. 왕의 남자(X)
16. 신과 함께- 인과 연(X)
17. 택시운전사(X)
18. 태극기 휘날리며(X)

19. 부산행(O): 친구들끼리 봄. 오락적인 좀비영화에 큰 매력을 못 느끼는데, 그런 영화들에도 종종 있는 딜레마적 순간(?)들을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재해석해서 연출한 듯.

20. 해운대(X)

21. 변호인(O): 고교 때 친구랑 같이 봄. 그렁그렁하면서 봄.

22. 인피니티 워(O): 극장에서 봄. Endgame 대사를 못 이해해서, '가망 없음' 번역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음. 영화 속에서 각자의 배경을 가진 수많은 히어로들이 합류하는 거랑, 현실에서 저작물로서 각자의 지위를 가진 캐릭터들이 복잡한 계약을 통해 한 영화로 합류하는 것 사이의 필연적인 유사성이 흥미롭다는 따위의 생각을 함. 사실 쉴드의 본체는 작품 속 기관이 아니라 현실의 마블영화 생산 체계 그 자체 아닐까. 한편 엔드게임과 달리 그 기능과 필연성이 매우 분명하긴 했지만 여성캐릭터의 희생 방식이 여기서도 꽤 외상적이었음.

23. 실미도(X)

24. 에이지 오브 울트론(O): 넷플릭스로 봄. 예고편이 소름돋아서 최근까지도 즐겨 보고, 본편은 개그 장면들이 맘에 들어서 클립을 즐겨 봄. Language 드립이 엔드게임에도 나왔더라면 좋았을 듯.

25. 인터스텔라(O): 서사는 상대론 관련해서 나올 수 있는 전형적인 것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생각. Stay 장면 비롯한 연출은 다소 숨막혔지만 멋졌음.

26. 겨울왕국(O): 고등학교 동기랑 봄.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로움을 느끼고 노래하는 엘사의 캐릭터가 매우매우 마음에 들었음. 렛잇고도 아주 좋아하는 곡.

27. 기생충(O): 개봉한 지 얼마 안돼서 봄.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봤는데, 외국 상 받을려고 작정하고 잘 만들었다는 느낌이었고 결국 후일 아카데미까지... 문제의식 자체가 특별히 급진적이거나 새롭진 않지만, 비교적 전형적인 주제를 아주 잘 다듬어서 비평의 여지가 많도록 잘 전달했다고 생각. 영화 내외적으로 기택 가족의 가난이 별로 존엄하지 않은 방식으로(...) 소비되는데 사실 비판적으로 볼 수 있지만 그것조차 영화 주제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냄새', '계단'(으로 대표되는 수직적 짜임구조), '계획' 정도일 텐데, 그 중 '계획'의 극중 기능은 아직도 사실 잘 모르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