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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8일 금요일

부쩍 증가한 철도 고장이 우려된다

철도 애호가인 지인들 말을 들어보니, 한국 철도가 (도시철도 일반철도 막론하고) 평소에 정시성도 괜찮은 편이고 장점들이 많지만, 생각보다 노후화가 상당히 진행돼있어서 안전이 슬슬 걱정된다는 얘기를 공통적으로 한다.


요새 도시철도나 ktx가 자잘한 고장 때문에 멈추거나 지연되는게 유난히 많은 것도 기분탓만은 아닌것 같다고 한다.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불과 몇 주 사이에 분당선, 신림선(이건 새 거긴 하지만), ktx 탈선 등등 크게 보도될만한 지연이 여러 건 있었다.

(추가: 그리고 그 이후에도 몇 달 동안 끊임없이 지하철 및 일반철도 관련 사고가 생기고 있다.)


심지어 저번에 코레일 직원이 충돌로 사망하기도 했는데, 이건 인력부족의 영향이 거의 확실하다고 한다. 그런데 꼭 그 역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인력이 많이 부족하다보니 직원들이 굉장히 정신없을 거라고 한다. 세밀한 안전 점검 같은 게 부족할수도 있고, 그런게 누적되다 보면 심하게는 예상되지 않은 상황에 대응할때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덜되거나 신호가 안맞는 사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함.


작은 사고가 여러 번 쌓이면 큰 사고가 나는데.... 특히 철도 사고는 한번 나면 많이 크게 날 테니까 이런 얘기를 들으니 걱정이 많이 됐다. 오늘 선릉역 가는 지하철 타면서 노조에서 붙인 유인물을 봐도 인력감축 우려를 언급하고 있는데 상당히 믿을만한 얘기 같았다. 철덕들도 같은 얘기를 하기도 하고.


고질적 인력부족이 심각한게 사실이라면 요금을 올리더라도 인력을 더 늘리던지 해서 안전점검을 최대한 잘 해서 사고를 미리 예방하고, 미숙련이나 피로 등에 의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방지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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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6일 수요일

문화전쟁과 러시아

극우(이경우 주로 미국에서)와 극좌 모두에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요약되는 서구 주류사회의 가치에 대한 대안으로서 인류문명의 지향점을 현대 러시아에서 찾는 경우가 더러 있는듯하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어느정도 계속되고있다.


그런데 재미난것은 자유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서방진영의 가치를 명백히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친러주의와 그 연원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때에도, 그 양상이 두 가지로 또 갈라지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러한 갈라짐의 원인은 결국 현재의 서방진영이 당면하고 있는 비교적 새로운문화적 현상들을 (1) 근대를 거치며 수립된 전통적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퇴락시키는 것으로 보는지, 아니면 (2) 유지 및 확장시키는 것으로 보는지의 차이인듯하다. 물론 매우 거칠게, 그리고 전형적으로 나눈것이다.


무슨 말일까? 일단 러시아로 대표되는 대륙문명에 대한 미적 매료 (나 또한 꽤 가지고 있는) 를, 현실 국제사회에서의 러시아에 대한 정치적 지지, 혹은 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근한 기대감으로 연결시켜 버리는 모종의 메커니즘이 극좌 및 극우 일각에서 작동하는것은 사실인듯하다.


그러한 정치적 매료는 서구 주류세계의 가치에 대한 반발심으로 대안을 추구하다보니 발생하는 것일텐데, 이는 서구적 가치들이 최소한 그들에게는 충분한 신뢰와 미적 매료를 제공하지 못하고있다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얘기하기위해, 일단 서방세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어느정도 존재하는것 자체는 현상이니까 그렇다 치자. 아예 없는게 정치적으로 꼭 건강한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기는 지점은 대략 다음과 같은 느낌인듯하다. 첫째로, 설령 자유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추구되더라도 그러한 일부세력은 근본적으로 설득할수 없는 것으로 보고 고정적 비주류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을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민주주의가 원래대로 추구되었다면 그들을 더 많이 설득할수 있었는데, 최근에 서구에서 발생하고있는 포스트-적인 현상들을 자유민주주의가 충분히 잘 작동하지 않고 지침을 제시해주지 못해서 (예컨대 과도한 지적 상대주의를 적용해서, 혹은 거시적인 것을 경시하고 미시적인 것에 천착해서 등등) 나타나는 혼란상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있을것이다.


물론 위에서 강조했듯 매우 거칠게 그리고 전형적으로 나눈것이며 매우 많은 예외가 있을것이다.


만약 전자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이 후자를 본다면, 현재 서구세계가 당면한 이슈들을 끊임없이 비웃지만 그렇다고 러시아를 지지하는건 아닌, 애매하고 모순적인 입장으로 보이게 되는듯하다. 그러나 후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모순될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대략 이러한 인식 차이에 따라 러시아에 대한 비판적 현실인식을 공유함에도 서로에게 묘한 불편을 느끼는 두 집단이 있는듯하다.


그리고 이는 소위 문화전쟁에서 각자가 전선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와도 관련이 될수 있어 보인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요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러한 전선의 설정이 달라질것이다.


이렇게 보면 대안으로서의 친러적 인식이 어느 한쪽이 아니라 좌/우파 모두에서 생겨나는 이상한 현상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게다가 서방진영에서 상술한 새로운 무브먼트들을 주도하는 당사자들 중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확장이라는 관점보다는 대안의 수립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경우에는 반서방 친중친러가 되는 경우가 실제로 더러 있는듯해서 (이는 소련붕괴에도 불구하고 문화적 좌파에서 꾸준히 조금씩 존재해온 경향이기도 하다) 위의 두 입장이 서로를 비판할 땔감을 제공하고 전선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듯하다.


여기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위치시키는지까지 들어가면 사태는 훨씬 더 복잡해진다. 나같은경우 기독교정신을 서구 자유민주주의와 필연적 관련은 없는 것으로 보고 전 세계에 각자마다의 기독교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만약 그 둘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경우 (또는 그래야 유익하다고 생각할 경우) 에는 전선의 설정이 나랑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경우, 인류가 회복시키고 증진시켜야 할 특정한 부류의 기독교정신을 상정해두기도 한다.


결론은 딱히 없지만... 얼핏 자유민주주의 체제 내에서만 치고받는 것으로 보일수있는 소위 '문화전쟁'은 기실 훨씬 커다란 글로벌한 외교안보 구도와도 결코 떨어질수없이 연관된 사안이며, 그 전선 또한 좌/우, 도시/농촌, 기독교/세속 등의 어느 단일한 기준으로 그어져있지가 않다. (n개 기준이 있다면 2^n개 견해가 모두 있다고 보는게 속편할것이다...)


이런 것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각자 나름의 전선을 형성해서, 스스로의 주장이 어디에 맞닿아있고 무엇과 맞서 있는지 파악해보는 연습을 해보는것도 정치에 관심있는 시민들에게 유익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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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3일 일요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간략한 후기

포스터에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나는 너를 구할거야" 이 문구가 매우 내 취향저격이었는데 (소중한 개인과의 관계가 세계 전체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느낌) 실제로도 그런 느낌으로 영화가 흘러갔다

딴생각을 자주 하며 여러가지 꿈을 가졌으나 실패한 사람의 성장과 화해 이야기라고 볼수 있을것임. 환상적 설정과 소재를 이용해서 그런 스토리를 풀어내는게 매우 자연스럽고 재밌음

우연과 필연을 혼동(나는 왜 하필 이렇게 살고있을까? 왜 하필 이런일들이 일어날까?)하며 여러가지 설명을 시도하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면서도 덧없게 느끼게 하는, 삶의 핵심적인 부조리인데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으로서 다중세계를 도입 -> 그러한 다중세계가 가져오는 마음속의 풍요로움과 파국, 그리고 그것을 현실과 화해시키며 살아가는 방식을 잘 묘사하고있음

지극히 일상적이고 재미없는 일들은 사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하기위해선 그런 일들에 충실해야함. 그런 일을 상징하는 공간인 국세청을 배경으로 함

한편 객관화될수 없고 두사람 사이에 상호주관적으로만 존재하는 특별한 순간들과 의미들에 대한 기억이야말로 사랑의 요체일것임.

인격적 성장은 자기 스스로를 깊게 돌아보는 것과, 한발짝 용기내서 주변을 따뜻하게 챙기는것 양쪽 모두 있어야 이뤄지는데, 몰아치는 장면들이 지나가고 처음과 끝의 주인공을 비교해보면 이런부분이 잘 다뤄졌음을 알수 있는듯

내가 이런식으로 시공간을 섞는 영화에서 디테일한 타임라인을 잘 못따라가는 편이라 정확히 어떤일들이 일어난건지 한 60%도 못따라간것 같아 아쉽고, 여운이 상당히 남는 영화여서 영화관에서 한번 더 봐도 좋을듯. 그치만 점프가 어떻게 일어나며 각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출의 디테일은 확실히 굉장히 좋았음. 시네마에서 보여줄수있는 여러 비일상적, 병리적 행동들이 끊임없이 개연성있게 등장하면서 재미를 줌. 여러가지 명작 영화들에 대한 유머섞인 오마주도 돋보임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1 (관람 전 기대), 링크2 (관람 후기)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A Road to 'Science of Semantics' (의미의 과학 및 의미 엔지니어링의 가능성)

이건 그야말로 잘 모르면서 하는 순전한 상상이기는 한데, 최근 머신러닝 분야의 발전과 발맞추어서, 그런 머신들이나 우리들의 두뇌 속에 '의미'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그것을 어떻게 엔지니어링할지에 대한 학문 분야가 발달하게 된다면 굉장히 재미있을 듯하다.


부전공에서 '기호학'이라는 키워드를 알게 되어서 이래저래 찾아봤던 바로는, 특히 철학 쪽에서 이런방향을 지향하며 지적 고속도로를 깔아 두는 탐구들이 예전부터 이미 활발히 있어 왔기는 하며, 이들은 과학기술과의 협력에도 굉장히 적극적이다. 그런데 최근에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가 지능시스템을 어떻게 '뜯어봐야' 할지에 대한 효과적인 개념적 틀이 점점 생겨나고 있으니, 계기만 있다면 이러한 분야가 훨씬 더 폭발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한다. 이공계 쪽에서는 내가 종종 언급하는 스탠포드의 Surya Ganguli 그룹이 어느 정도 이런 걸 지향하고 있는것 같기도 하다.


말하자면 수량화된 기호학이라고 불릴만한 이러한 '의미 엔지니어링' 분야가 더욱 발달하게 된다면 계산신경과학과 인문학 최전선의 협력이 될것이며, 이러한 분야는 분명히 '공학'인데도 불구하고 상징과 직관의 찬란한 언어가 오가는 독특한 색채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의미 엔지니어링이라는 단어와 그 가능성은 다름아닌 영화 《인셉션》을 보고 나서부터 내 머리속 한곳에 늘 자리잡고 있던 것인데... 최근의 발전들을 보다 보니 이것이 그저 SF적인 상상이 아니며, 내 생애 안에 그런 비슷한 건 충분히 가능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만큼 그 존재를 신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면이나 자각몽 같은 각종 비일상적 정신상태도, 결국은 휴리스틱하게 해왔던 일종의 정신 엔지니어링이 아닌가.


좀 다른얘기일지 모르지만 자연어처리 쪽에서 GPT-3으로 대표되는 거대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들도, 단지 그럴듯한 말을 적당히 흉내내는걸 넘어서 상당 수준의 reasoning 즉 논리적 기능이 자연스레 창발한다는게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이라면 그런 기계들도 어느 정도 논리성, 합리성을 갖추고 결이 맞는 언어생성기제를 내적으로 갖출 수 있다는 것인데 (그리고 그 능력의 유무는 '정도의 문제'가 될수 있다는 것인데), 그 속에서 각 단어들의 의미가 어떻게 인코딩되고 인출되는지를 뜯어보고 실제 생물체와 비교할수 있다면 재밌을 것이다. 특히 실제 생물체들은 의미의 추상적 부호화가 시청각적 직관과 막 뒤섞여 있을거 같은데 반해서, 자연어처리 기계들은 그렇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최근의 거대 언어 모델까지 가지 않고, 머신러닝 붐 초창기에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했던 word2vec 같은 임베딩만 봐도 의미의 수량적 분석 가능성은 예고되어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어들을 벡터공간 속 좌표로 임베딩했을 때, 예컨대 king에서 male을 빼고 female을 더했더니 queen이 나오더라 이런 것 말이다. 물론 실제 의미부호들의 존재방식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초등적인 부호화지만 아무튼 그렇다.


그리고 추상적인 의미들일수록 뇌 속의 네트워크에 보다 '분산적으로' 저장되어있을 듯한데, 그런걸 뜯어보면서 identify하고 사람마다 비교하려다 보면 지난 20년간 인터넷의 연결망 구조 분석 등으로부터 발전해온 '복잡계 과학' 및 네트워크 사이언스가 다시 한 번 크게 주목받을 수 있어 보인다.


다른 한쪽 극단으로 가 보자면 생명이나 안전에 관련있다던지 해서 좀더 본능에 가까운 대상들의 의미론은, 보편적인 의미 저장/인출 망으로서의 뇌에 소프트웨어적으로 올려진 것이 아니라 보다 낮은 레벨에 있는 '전용' 뇌 부위에 따로 저장돼있는게 아닐까 상상도 해본다. 특히 평소에 사람들의 언어생활 (그리고 언어생활에 발생하는 전형적인 결함의 패턴들) 을 보다보면 욕설이나 성적인 단어 같은 건 일반적인 단어들과 좀 다른방식으로 저장되고 인출되는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전술했듯이 이런 건 아무것도 모른 채로 하는 상상이고... 또한 위에서는 언어 위주로 썼지만 의미라는 게 꼭 순전히 언어적인 것일 필요도 없고 비언어적인 시청각적 archetype들과도 막 섞여 있을 것 같고. 아무튼 앞서나가는 분들에 의해 이미 제대로 된 판이 깔려있을 것 같긴 하다. 취미삼아 follow-up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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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7일 목요일

강금실 전 장관 강연 (과학기술시대의 기후위기와 지구 패러다임) 을 기대하며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11/8(화)에 자연대에 강연 오는데 나는 하필 그때 출장이라 못 갈 듯하다. 강연 주제는 '과학기술시대의 기후위기와 지구 패러다임'으로 강금실 장관의 오랜 관심사이다. 그런데 이 분은 한국정치에서 하나의 커다란 상징성을 가진 파격적 인사였던데다 민주당 원로로서의 활동이 있는 분이다보니, 그쪽 정치권에서 과학기술 및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환경 의제의 현실적 담지자들이 어떤 세력으로 구성돼 있는지까지 기대섞인 비판적 관점으로 들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듯하다.


젊은 이공학도들 중에 환경 의제와 기후위기 걱정 자체에는 진심으로 공감하면서도 지구의 총체성, 연결성을 강조하는 '세계관'으로서의 생태주의에 대해서는 히피적인 대안담론이라며 냉소하는 경우가 꽤 많은 듯하다. 나도 사실 단편적인 인상으로는 그렇게 느껴지는 편이기도 한데... 다만 그쪽 담론에도 다양한 분파가 있을 것인데 (사회주의 기반일지, 종교 기반일지, 철학 기반일지 등등) 나 같은 경우는 그런 담론지형 자체를 잘 읽어낼 줄 모르는지라 그냥 가만히 있는 편이다. 대신 나한테 비교적 잘 읽히는 종류의 글들부터 읽으면서, 어떻게 해야 의견을 효과적으로 모아서 거시적인 흐름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는 편. 그리고 강금실 장관이 공부한 생태주의가 한국의 생태담론에서 어떤 지위에 있는 것인지도 사실 전혀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강연이 전직 정치인의 개인적 컨텐츠 홍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문에서 기후위기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일종의 링크가 되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다. 기후위기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매우 현실적인 위협이고,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이과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어떤 의견들이 어떤 담론지형으로 존재하는지 그 전모를 이해하고 있어야 그것들을 효과적으로 모을 수 있을 테니까.


암튼 나 출장 가는 건 우리 분야 교수님들이 강의 느낌으로 발표해 주시는 학술행사인데,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일주일 중 하루 정도를 버리고 강금실 장관 강연 들으러 갈지 고민을 했겠지만... 어쨌든 선발 절차를 거친 스쿨인데다 (실제로 선발에 경쟁은 딱히 없었던 것 같기는 함) 내용도 매우 재밌어 보이기도 하고, 병무청에 통보되는 출장이다 보니 애초에 함부로 빠지고 강연 들으러 올 수가 없다. 나랑 비슷한 관점 가진 사람이 있으면 대신 들어주고 내용 알려줬으면 좋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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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6일 수요일

잔치는 끝났는가? 고연봉 리서치 포지션들의 상황 변화를 듣고

IT 쪽 석박사급 고연봉 일자리들은 올해 초중순을 끝으로 당분간 거의 문 닫힐 모양이다. 그동안 우수인력 뽑기도 충분히 많이 뽑았을뿐더러 경기가 급격히 얼어붙다 보니... 물론 내가 아예 모르는 좋은 자리들이 있을수 있겠지만 일단 들리는 바로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사실 지난 2년 정도가 유동성 덕분에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잔치였던 건가 싶기도 해서, 당분간이 아니라 그냥 앞으로 다시 안 올 수도 있을 것 같음. 딱 지금시기에 학위 받고 졸업하는 분들은 그 전 시기 취업자들과 비교해서 꽤나 배 아픈 분들 많을 듯함...


나는 어떤 부문에서 무엇을 될지를 떠나 포닥을 할지 취업을 할지조차 아직 아예 모르겠지만, 3년 후엔 전반적인 취업 상황이 어떨지 걱정되기도 하고 참 아예 모르는 일인 거구나 싶음.


취준생들뿐만 아니라 재직자들한테서도 안좋은 소리 종종 나오는 게, 지난 2년간 리서치 하도록 보장해 주겠다고 뽑은 포지션들도 올해 초중순 기점으로 연구 아닌걸로 돌려서 투입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함.


제품 개발하고 이익 내서 회사 살리는게 우선이니까 어쩔순 없다 싶지만, 약속이 안지켜진 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게다가 이쪽 직군에서 그간 형성된 컬쳐 탓에 자기 자신이 회사와 한 배를 탔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보니 직무 변경으로 스트레스 많이들 받는 듯하다. 리서치에 열정 많은 분들은 심지어 네카라쿠배 급 회사에서 대학원으로 컴백 준비중인 경우도 좀 있다.


아무튼 거시적인 경제지표가 경제 및 금융분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의 진로선택 및 직무 만족도에까지 이정도로 중요한 선택을 주는구나 하는 것을 이번에 처음 제대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회사 연구직들이 정말정말 부러웠는데, 꼭 그렇진 않고 (특히 경제가 어려워질 때) 그들도 힘든 점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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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23일 일요일

확장된 가정으로서의 숨막히는 한국사회: 김연아 선수 결혼에 대한 반응을 보며

나는 피겨 팬인 친누나의 영향으로 김연아 선수도 직접 보러 다니기도 했고, <팬텀싱어 2>도 워낙 열심히 봐서 화려한 목소리의 베이스 고우림도 원래 즐겨듣고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처음 결혼 발표됐을 때 사람들의 '그게 누구임?' 하는 반응이랑 반 농담식으로 전국민이 지켜본다고 하는 것을 넘어, 진지하게 급이 안맞는 결혼이라는 식으로 인터넷 상에서 계속 얘기가 나오는 건 굉장히 '억까' 같고 피곤하게 느껴진다.


농담이냐 진지하냐의 기준은? 일단 김연아선수가 아깝다 아니다에 대해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야 당연히 가질수 있지만, 아까운지 여부가 마치 논쟁을 통해 결정할수 있는 '논쟁거리'처럼 소비되는 양상이 생기면 진지해지는 거고 그게 억까의 시작인 듯하다.


그리고 후술하듯이 그렇게 진지하게 따지기 시작하면야 이 경우에 답은 당연히 한쪽으로 쏠리게 되어 있으며 개인사를 '논쟁거리'로 만들기 시작하는 이들도 이것을 알면서 의도하고있음. 그러니까 오히려 애초에 시작되어서는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며, 설령 안 진지하고 가볍게 말하는 것이더라도 한번 더 생각하는 게 좋은 것임.


결혼에(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관계에)도 손익을 따지고 비교하는 측면이 작용 할수밖에 없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서로한테 서로가 만족할 만큼 충실한 평생친구 하자고 하는 것이 결혼인데, 당사자들이라면 모를까 축복하고 응원해주면 될 타인들이 점수 매기는 식으로 접근하는건 별로인 것 같다.


김연아선수가 훨씬 유명하고 전국민이 주목하는데다 인간적으로도 멋있는 면모가 많이 알려져 있는, 대한민국 내에서 위인급 인물인건 자명한 사실이니... 아깝다는 소리 안나오게 하려면 고우림 당신이 정말 잘해야겠네 라는 덕담 정도로 해두는게 맞는거 같고, 그걸 넘어서 좋은 결혼인지 아닌지 진지하게 점수 매기고 평가질 하는건 매우 별로인 것 같다. 대중들한테 알려진 대단한 하자가 있다거나 한것도 아닌데 좋으면 결혼하는거지. 상대방이 올타임 레전드급 스타여서 그렇지 고우림도 보고있으면 심술이 날 정도로 정말 결점이 없고 가진게 꽤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아예 억까 말고 뭔가 근거를 갖춘(?) 듯 보이는 우려의 레파토리들의 경우는, 혹시 실제로 문제가 생기고 나서 i told you 시전하는거라면야 굉장히 심술나긴 하지만 그래도 인정하겠는데... 그러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말이 나오는건 (물론 유명인이라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는 거지만) 한국사회에서 일반인들의 결혼이 주변인들 입에 오르내리는 방식과도 무관하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셀럽들의 연애사가 대중들의 초미의 관심사인건 어느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파퓰러컬쳐에서의 떡밥으로 남겨두면 좋을 그런 관념이, 한국에서는 뭔가 가정과 가정간의 끕이 맞는 결합이자 계급의 재생산이라는 K스러운 관념과 나쁜 쪽으로 섞여서 더 유해해질 때가 많은 듯하다. 그렇게 하는게 한국사회 다수 정서라면, 주변에서 미래에 내 결혼에 대해 어떤식으로 잣대 들이대고 평가질 할지도 명약관화할 테고... 굉장히 숨막힐 것 같다.


한국사회는 아직까지는 강한 단일성과 동질성을 바탕으로 일원화된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의 기제가 효과적으로 작동하면서 사회적 화두를 생산하는데, 이것은 성숙한 사회라기보다는 확장된 가정에 불과한게 아닌가?


가정 공동체와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에 있어서 현재 작동이 멈춰가고 있는 디폴트 모델을 파탄없이 유지하고 싶다면 오히려 그것의 경직되고 답답한 부분을 사회전체가 최대한 빨리 버리고 다양한 모델을 포섭함으로써 연착륙시켜야 한다.


암튼 둘 모두의 나름 팬이지만 공개 때까지 전혀 몰랐던 결혼 소식이다 보니 아직도 신기한 기분이고.. 구설수없게 충실하게 좋은 결혼생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응원의 말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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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9일 수요일

엘리베이터 꿈에 대하여

내가 어릴 때 특히 많이 꾸었고, 지금도 아주 가끔씩 꾸는 꿈 중에 하나는 바로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엄청나게 빨리 올라가면서 비현실적인 수백 수천 층까지 표시되는 꿈이다. 주로 그 순간에 잠에서 깨게 된다.

(뇌피셜이지만, 잠을 깨게끔 하는 실제 물리적인 움직임이 꿈속 세계에서도 가속도로 작용해서, 그걸 해석하려다 보니 그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일수도 있지않을까 싶음. 만약 그런거면 꽤 재밌을듯)


한동안 잊고있었던 이러한 레파토리가 오랜만에 다시 생각났던 것은, aespa의 'Girls' 뮤비 첫장면에 딱 그런 장면이 나와서다. 아래에 쓰겠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꾸는걸 보면, 아마 실제로 꿈에서 힌트를 얻어서 그렇게 연출 했을 수도 있겠다 싶음.


아무튼 내 경우는 그런 꿈에서 나오는 엘리베이터들이 주로 평범하지는 않고, 유리 온실처럼 돼있다거나, 아니면 옛날 아파트에 간혹 있었던것처럼 칙칙하게 창문이 뚫려있어서 구동시스템 내부가 보인다거나 하여간 좀 이상한 경우가 많다.


인터넷 검색을 조금 해보니,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꿈을 겪는다. 엘리베이터의 빨간색 디지털숫자판에 숫자가 아닌 이상한 문자가 마구 표기되거나 (참고로 점검을 하거나 합선이 된다면 실제로 가능한 일인듯하다. 좀 무서울듯), 아니면 통제할 수 없이 위아래 층으로 빠르게 왔다갔다 한다거나 하는 등 사례를 많이 찾아볼수 있다.


내생각에 사람들이 이런 레파토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는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실제로 숫자판이 마구 바뀌어서 놀란 경험을 했다거나, 아니면 인터넷에서 엘리베이터 악몽에 대한 정보를 읽었다거나 하는것 말이다. 그것보다는 생활의 흔적으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이런 꿈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라는 공간 자체와 거기에 숫자가 표시되는 방식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있는 인식 및 정서의 틀과 효과적으로 조응하고 (아니면 강하게 불화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덕분에 우리의 꿈에 빈번하게 archetype으로서 등장하는게 아닐까 한다.


엘리베이터 외에도, 내가 꾸는 꿈에는 주로 인물과 스토리가 등장하지 않고 여러가지 공간들이 등장한다. 특히 살면서 겪었던 여러가지 공간들이 실제보다 훨씬 넓어지고 그 특징 또한 과장돼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물론 꿈의 특성상 '내가 보는 한에서만' 존재할 (즉 공간으로서가 아닌 장면으로서만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몇년전에 겪었던 게 몇년 후에도 다시 나오고 하는걸 보면 어느정도는 정합적인 공간으로서 존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꿈에 대한 통제력이 없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조사해보거나 하지는 못했다.


꿈에 나오는 그런 공간들의 특징은 자연스러운 공간들이 아니라 그 구조가 현대적으로 바닥부터 짜올려진 공간들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복잡다단한 플랫폼 및 환승구조를 갖고있는 지하철역 및 열차, 긴 복도가 있는 칙칙한 학교, 폭이 좁지만 수많은 층에 걸쳐있는 수직적인 학원건물 등이다.

(예전에 리미널 스페이스 (liminal space) 라는 걸 접하고 마음에 들어서 그에 대한 포스팅을 했었는데, 꿈에 이런 공간들이 자주 나오는건 이러한 취향과 연결되어 있지 싶다.)

그런데 이 포스트의 주제인 엘리베이터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조사해볼 여지 자체가 없는, 매우 타율적으로 작동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절대적인 크기 자체도 무척 작다. 이런 면에서 그런 과장되고 연장된 공간들과는 달라보인다. 그런데 어디로 나를 보낼지는 모르고, 웬만한 광대한 공간보다도 불확실성이 크며, 또한 오작동에 대한 은근한 걱정도 알게모르게 있을테다. 그런 면에서는 위에서 말한 커다란 공간들과 공통점이 있는 듯하다.

아무튼 모던하게 직조된 여러가지 공간들의 이러한 특징이 우리의 시공간적 직관과 결합해서 묘한 불안감이 유발되고, 이것이 정신에 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걸 뜯어보면서 체계적으로 조사해보고, 더 나아가서 엔지니어링해 볼 수 있다면 재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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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7일 월요일

능동물질 연구의 대가, M. E. Cates 케임브리지대학 루카스 석좌교수

아이작 뉴턴, 폴 디랙, 스티븐 호킹 등이 거쳐 간 케임브리지 대학의 석좌교수직인 루카스 석좌교수 (Lucasian professor of mathematics)는 2015년 이래로 마이클 케이츠 (Michael E. Cates) 교수님이 역임하고 있다.


이 분의 주 연구분야는 연성물질(soft matter), 그 중에서도 꾸준히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평형으로부터 벗어난 채로 와글거리는 물질군인 능동 물질(active matter)이다. 박테리아들의 모임이나, 세포 내부의 복잡한 환경 등을 그 예시로 들 수 있다. 이러한 물질들에서는 일반적인 평형상태의 액체 및 기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상들 (작은 크기의 구멍들이 뚫려 있다거나, 유한한 크기의 방울들을 이루되 더 성장하지는 않는다거나) 이 나타난다.


Cates 그룹의 연구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practical한 생물물리학적 모델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수 이론물리에서 주로 볼 법한 미니멀한 통계장론(statistical field theory)적 접근 및 RG 해석을 적극적으로 채용하여 다양한 임계현상을 탐구하는 등 특유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나 같은 경우 미시적 디테일을 갖춘 사실적이고 정확한 모델링도 물론 좋지만, 미니멀한 원리와 멋있는 이론적인 포말리즘으로부터 탑다운으로 유도해나가는 걸 분수에 안맞게 무척 좋아한다. 그렇다 보니 나로서는 이런 스타일의 연구들이 꽤 마음에 든다. 이분의 구글 스콜라 페이지 (링크) 에 들어가서 보면, 최고 저널인 PRL과 PRX에만 대체 몇개를 쓰신 것인지 셀 수 없어서 놀라게 된다.


우리 지도교수님도 임용 직전까지 Cates 그룹에서 포닥을 하셨는데, Cates와 이름이 직접 같이 올라간 논문은 없지만 Cates와 늘 같이 일하는 (주로 유럽 쪽) 분들이랑 함께 논문을 여럿 쓰셨다. 나 또한 학위과정 동안, 혹은 포닥 때 이분들이랑 협업할 기회가 생긴다면 좋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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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15일 토요일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인식 함양은 통례, 통설의 존중으로부터 출발해야한다

꽤 유명한 우파 페북셀럽의 최근 포스팅 중에 사실관계와 인식의 많은 부분에서 오류가 있는 글이 하나 보이길래 캡쳐해봤다 (본 게시물 최하단 Facebook 링크에 캡쳐본 게시). 이 글에서는 전후 GHQ가 동아시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는데 한국인들은 그 이름을 거의 모르고 일본인들은 거의 안다며 한국인들의 무지와 반미적 의식을 비판하고있다.


그러나 내가 늘 지적하듯이, 어떤 역사적 개념이나 쟁점을 남들은 몰라서 얘기 안하는게 아니다. 이것을 사람들이 모른다, 일부러 안가르친다, 쉬쉬한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소위 '불편한 진실'이다, 성역화다 등으로 믿는 것은 건강한 보수세력이 아닌 극우화로의 출발점이 될수 있으므로 경계해야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시작, 위기극복 그리고 존속에서 미국의 역할을 되새기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한미동맹 및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국제주의적 시야를 함양하는것 자체는 우파에서 권장될만한 하나의 정합적인 실천적 견해임.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확한 사실관계와 역사학계의 통례/통설을 기반으로 해야하는것임.


► 2차대전 종전 후 일본과 한반도에서 군정을 시행한 기구의 정식명칭은 SCAP이며, GHQ는 사실 원래는 그냥 총사령부 라는 일반명사로, 일본의 미 군정을 지칭하는데에만 주로 사용함.


► 그렇다고 한국에서 안 쓰거나 기피할 이유가 없는 단어이고, 한국에서도 근현대 세계사와 일본사에 조금만 관심 있다면 GHQ 당연히 모르지 않을것임. (물론 한국의 역사교육에 국제주의적 시각이 아직 부족하고 한국인들이 국제사안에 관심이 덜한면은 있어보이긴 함)


► 그러나 GHQ가 주로 >일본의 미 군정<을 지칭하는데 사용되는 단어임은 변함이 없으며 한국의 미군정사령부 및 군정청은 그냥 '미 군정'이라고 부르는게 일반적임.

► 편제상 한국 미군정의 사령관인 존 하지가 맥아더 휘하였던것은 맞으나, 실제로는 일본 통치에 바쁜 맥아더보다는 미국 본토의 지휘를 받거나 미군정청 자체적으로 통치한 면이 많으며 맥아더의 직접적 영향은 미약하였음 (물론 재조망의 시도도 존재함). 따라서 실질적 통치 형태를 고려하더라도 본문에서처럼 한국의 미 군정까지 GHQ로 칭하는것은 통례와 매우 다르며 정치성향을 막론하고 용례를 찾아보기 힘든 어색한 쓰임임.

즉 종합하자면 본문은 역사서술에서 용어 사용의 이슈(그마저도 용어 선택 문제가 실질적 정치적 쟁점사안도 딱히 아닌)에서 자신이 임의로 택한 의견이 통례와 불일치할 뿐인 것을, 국민들의 역사 인식의 문제로 비약 과장하고있음.

본문의 핵심 문제제기였던 GHQ 용어에 대한 얘기는 여기까지로 하되, 미 군정 자체에 대한 평가부분에도 사실관계 오류와 비정합적 논조가 다수 보이므로 사족으로 추가해본다.

► 물론 공산주의를 철저히 막는다는 큰 방향성 설정, 그리고 한반도 남부 통치라는 중책을 맡고 향후 수립될 대한민국의 기본적 방향을 잡았다는 점에서 미 군정의 영향은 매우 크긴 하지만 정작 그 세부에는 반복되는 실패와 혼란이라는 측면도 많이 존재함.

► 특히 여순사건은 미군철수 공표와 한국군 전력 충원 과정에서 미군정청이 좌익성향 인물들을 색출 없이 군인으로 받아서 총을 쥐어준것이 주요 요인중 하나로, 미 군정의 실책이 있다고 보는것이 통설임.

► 게다가 막상 여순사건의 실제 발생 및 진압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이므로 미 군정의 역할은 없음. 백번 양보해서 '주한미군'이 진압을 지원하긴 했다고 하나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진압으로 보는게 일반적. 여순사건의 대응에서 미군의 역할이 알려진것보다 클것이라고 가정하고 추적하는것은 주로 반미 진보계열 언론임.

► 4.3 사건의 경우도 그 최초 발생은 미 군정시기이나, 약간의 소강기를 거쳐 본격적인 토벌에 따른 커다란 인명피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로, 역시 미군정과 무관함. 남로당 무장세력뿐 아니라 군과 서북청년단 등의 토벌대가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였음. 더군다나 미군정이 각 세력을 조기에 원활하게 다루지 못한것도 4.3사건의 극단적인 귀결에 책임이 있다는게 흔히 지적됨.

► (이건 글 서두와도 연결되는 내 개인적 생각임) 정부수립 전후 혼란상에 있어 공산주의 세력의 책임은 모르거나 쉬쉬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당연히 모두가 아니까, 그리고 당시에 조직이 와해되고 주요인사가 월북하면서 쟁점들이 종결되고 현재성을 잃었으니까 굳이 적극적으로 얘기 할필요가 없어서 얘기가 덜되는것이 아닐까함.

► 4.3사건 진행은 미국이 예의주시하며 본국에 리포트 하고 있었으나, 토벌을 지원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얼마나 했는지는 미규명된 부분이며, 역시 미국의 역할이 클것이라고 생각하고 추적하는것은 주로 진보언론의 견해임. 물론 정확히 알려져야 할 부분이나 본문의 미군에 긍정적인 논조와는 맞지 않음. 4.3사건은 수많은 민간인희생을 자유진영 공산진영 양쪽에서 일으킨 사건이므로 미국의 역할을 부각하며 상찬하는것을 미국이 꺼려할지 반길지는 명약관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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