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게시물 목록

2024년 12월 26일 목요일

코토바 x 단편선순간들 합동공연 "당신은 재미있다" 후기

2024.12.17

코토바 x 단편선 순간들 합동공연 <당신은 재미있다> at 공상온도 @gongsangondo


늘 궁금하던 두 팀이 공상온도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얼른 예매해서 보고 왔다.

단편선 님은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지인들의 언급으로 이전부터 이름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단편선 순간들이라는 이름으로 오랜만에 팀을 꾸려서 나오셨다는 걸 김로자 님 인터뷰(대중음악웹진 <온음> 인터뷰 전문: 링크)를 통해서 알게 됐었다. 인터뷰 내용이 뭔가 현대미술가 느낌이 나서 음악도 전위적, 개념적인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보니 음악이 내용적으로 굉장히 풍부하고 연주도 매우 탄탄했다. 특히 중간에 연주가 끝나는 듯 아닌 듯 하면서 계속되는 곡이 하나 있었는데 어떻게 어긋나지 않고 맞추어 연주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단편선님의 액션이 생각외로 뽀짝하셔서 같이 간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원래 그게 포인트라고 한다.

코토바는 베이스 혜림 님의 공연 직전 부상으로 코토(?)가 된 채로 공연을 했다. 사운드에서는 베이스의 부재가 종종 느껴졌지만 박자가 복잡한 곡들인데도 역시 연주는 문제없이 이루어졌고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특별한 공연이 되었다. 이 분들이 하시는 장르는 매스 록(math rock)이라는 음악인데, 몇 년 전부터 찾아서 들어 보고 있는 프로그레시브 메탈 및 재즈 퓨전 쪽과의 연관성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됸쥬 님이 흥을 돋우는 건지 박자 맞추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중간중간에 멤버들을 바라보며 추임새를 하시는 것도 너무 신나 보이고 인상적이었다. 베이스님의 회복 후 완전체로 공연할 때 한번 또 가보고 싶다.

크지 않은 공간에서 하는 인디밴드 공연에서는 아까 전의 공연자가 잠시 후에는 관객이 되기도 하고, 잠시 후에는 스텝이 되기도 하면서 관객들과 다같이 섞이는 옹기종기한 느낌이 있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이야기도 나눠 볼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꽤 재미있게 느껴진다. 물론 성격이 소심한 편인지라, 나 자신도 무대에 서는 공연에서 다른 팀 공연자 분께 자연스럽게 인사하는 정도 말고는 실제로 말을 걸어 본 적이 많지는 않다.

이외에도 라이브 공연에 오게 되면 음원으로 듣거나 유튜브로 덧글들과 함께 듣는 것과는 많이 다른 라이브만의 장점이 있어서, 앞으로도 기회가 되면 많이 다녀 보고 싶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12월 25일 수요일

デスメタルコリア 韓國メタル大全 - 水科哲哉 (데스메탈코리아 한국메탈대전 - 미즈시나 테츠야)

한국어-일어 번역가로 헤비메탈 관련 출판에도 일찍이 관여해온 미즈시나 테츠야(Tetsuya Mizushina)선생이 2018년에 출판한 책이다. 한국 메탈 밴드 300여 팀을 총망라해서 소개하고 있는데, 소수 팀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는 정기 간행물이 아닌 이러한 집대성 식 단행본 중에서는 양과 질 모든 면에서 국내에서 나온 대부분의 출판물을 압도하며, 텍스트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한국 음악의 흐름에 이해할 수 있는 도표 및 그래픽 자료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어 소장 가치 또한 상당하다.

모든 밴드에게 한 페이지 (각 챕터의 최후반부에는 1/4페이지) 정도를 할당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아주 유명한 팀도 비교적 간단히 소개되어 있는 점이 아쉽기도 하지만, 이를 달리 말하면 비교적 이름이 덜 알려진 밴드에 대해서도 유명 밴드와 비슷한 분량으로 다룬다는 뜻이기에 의미 있어 보이며, 내용도 피상적이지 않고 충실하다.

나는 일본어를 읽을 줄 모르지만 짧은 한자 지식과 Papago를 이용해서 몇 군데 읽어 보았는데, 단순히 밴드들의 공식 소개를 카피한 것이 아니라, 모든 밴드에 대해 저자가 직접 들어 본 뒤 앨범별로 설명과 소감을 적었고, 비슷한 스타일의 밴드들도 태그되어 있는 등 정성이 돋보인다.

우리 동아리의 멀지 않은 선배들이 주축이 된 팀들인 Liberalia, Purgatorium도 소개되어 있는 점도 무척 반가웠다. 저술 과정에서 굉장히 디깅을 많이 하신 듯하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어린이의 사물 애호: 원초적인 박물학적 충동

어떤 동식물이나 사물에 푹 빠져서 그걸 직접 보고 싶어하거나 비슷한 걸 더 많이 찾아보고 싶어하는 어린아이들의 욕구, 그리고 그걸 부담스러워하면서도 들어 주고 체험시켜 주려는 양육자의 노력을 볼 때면 나는 마음 속 한 곳에서 이상하리만치 깊은 인상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를 알아가는 과정, 그 중에서도 보편적인 이해를 증진하는 게 아니라 신기하고 독특한 개별 사물들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충족시켜 가는 과정은 주로 어린아이에게 허용되는 것으로서, 굉장히 원초적이고 단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욕구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아주 신기하고 인상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보더라도 하루 종일 그것에 빠져 있지는 않게 된다. 그러다가 어린아이가 그러는 것을 보면, 누구나 한때는 어린아이였기에 그런 욕구가 너무 잘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이런 것에 빠졌지 하고 다소 이해가 안 되거나, 약간 부담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이가 느끼는 그런 신기함이,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보편적인 가치가 부여되나 의도가 투영되지 않은 작은 부분으로부터 유발되는 경우도 많아서 더욱 그렇다. 자연이나 인공물 중에서 무엇이, 어떤 부분이 어린이의 마음을 끌어당길지는 부딪혀보기 전에는 모르고, 그렇기에 뭔가 불가해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럴 때 어른들은, 이렇게 주변에 풍랑을 일으키면서까지 무언가를 알고 싶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라는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인간성의 정수가 담겨 있는 욕구를,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다시 마주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각자의 관심사를 형성해나가며 고유한 '소우주'(microcosm)가 되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이해받고 싶어한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할수록 감당이 안 되어서(?)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조금 무리한 주장일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의 이러한 충동(혹은 이러한 충동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심정능력)이,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인간사의 여러 위대한 도전들과 경악할 천태만상들을 일으키는 데에도 꽤 많은 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여기서 '내 것으로 만든다'라는 건 그냥 내가 적당히 만들어서 쓰는 말인데, 소유의 개념이라기보다는, 사물을 면밀히 관찰하면서 신기함의 순간을 충분하고도 온전하게 느끼고, 그 신기하다는 감정의 정체와, 애초에 호기심이 유발된 이유를 캐치해서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의 총체를 뜻한다. 이를 좀 더 멋있는 말로 하자면 "박물학적 충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조금 더 단순하게, 꼭 이런 종류의 충동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의 어떤 욕구를 양육자가 다소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조건없이 이해하려고 해 주고, 잘 대응해 주는 것 자체가 굉장한 사랑과 이해심이 있어야 되는 일이므로 이것은 당연히 따뜻하고 인상깊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친구관계를 비롯한 다른 욕구들에 비해서, 사물에 대한 호기심과 결부될 때가 나는 특히 더 인상적이고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마 나 스스로가 아직까지도 사물과 현상을 애호하는 경향이 남들보다 굉장히 강하고, 그것들을 별 의미없이 찾아보고 감상하면서 내 것으로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걸 꺼리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철덕도 아니고 수집가도 아니지만 이와 같은 심적 경향은 철덕 및 각종 수집광들과도 뭔가 맞닿아 있다고 느껴져서, 그들에게도 종종 내적 친밀감을 갖게 된다.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음식을 즐길 때에도 혀에 느껴지는 맛 때문에 먹고 싶어서 먹는 경우도 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 음식이라는 사물 자체에 호기심이 들고 마음이 이끌려서 애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특히 디저트 종류가 주로 그렇다. 음식을 예로 드니까,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이러한 욕구가 소유 및 소비 욕구와는 묘하게 다르다는 게 더 명확해지는 듯하다.


이런 것과 관련된 몇가지 구체적인 기억도 있다. 가족들이 나를 여기저기 데려가서 이것저것 보여주신 경험은 일일이 기억은 안 나더라도 꽤 많이 있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아래의 일화다.

어릴 때 나는 책이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본 신기한 것들을 부모님께 갖고 가서 보여드리는 걸 즐겼는데, 그 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큰 꽃으로 유명한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눔' (나중에는 '타이탄 아룸'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 더 많이 알려짐)이 신기했는지 꽤 여러 차례 보여드렸나보다.
근데 어느 날은 그 꽃이 한국에서 오랜만에 핀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된 거다. 아마 학교에서 배부해 주는 소년한국일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역만리에나 있을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핀다니 굉장히 신기해서 그 소식도 보여드렸다. 고양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검색해보니 고양꽃박람회에 타이탄 아룸이 왔다는 소식은 2013년대 이후에나 나오는 걸 봐서 어디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런데 아빠가 차로 거기에 가보자고 하시는 거다. 나는 그거 하나 보자고 거기에 데려가신다는 게 어린 마음에 너무 큰 일 같아서 (사실 어린 마음이 아니라 어른 되고 나서 봐도 귀찮은 일은 맞다) 살짝 무섭고 겁나는 마음 반, 고마운 마음 반으로 거기로 향했다. 걱정했던 대로 그 꽃은 며칠밖에 안 피는 거라 이미 져 버린 상태여서 그 화분에는 알수없는 흙덩어리와 팻말뿐이 없었고, 그렇지만 거기 행사장에 있는 다른 식물들을 구경하고 맛있는 걸 먹고 즐겁게 돌아왔었다.


이 일화가 기억이 나서 부모님께 여쭤봤는데, 아예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는 걸 보니 심하게 귀찮은 일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다행이다. 그대신 엄마가 잊을 만 하면 얘기하시는 일화는, 집에 엄마 친구 분들이 와 계신데 내가 뜨거운 그릇(오븐에서 나온 도자기 같은 것)이 신기하고 예뻤는지 그 그릇을 만져보고 싶다고 해서 곤란했다던가 하는 류의 일화들이다. 그 때는 가만히 있게 조심시킨 다음에 열기가 느껴지게 꽤 가까이에 대서 위험하다는걸 알게 해 주셨고 친구 분들이 훌륭한 교육이라며 놀랐다는데, 정작 난 아예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면 확실히 결이 다르다. 물론 이 일화도 꽤 울림이 있기는 하다.


글을 마무리하며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나는 사물 애호뿐 아니라 오래된 인터넷 공간들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묘한 기분을 느끼는데,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인터넷 덧글창과 어린이의 마음: 원초적 정신의 관점으로'라는 제목으로 한 번 포스팅을 했었다. 이것도 링크로 공유해 본다.

링크를 다시 읽어 보니 본문의 내용과 공통점이 꽤 많다. 결국 둘 모두 인간의 정신에 있는 원초적인 계기들이 점점 합리화되고 간접화되면서 보다 세련된 이성능력과 의지를 구성하게 되고, 그러면서도 가끔씩은 그 원초적인 형태 그대로 튀어나오기도 하는 사태들을 다룬다. 나 스스로가 지금까지도 은연중에 갖고 있는 이러한 계기들을 정면으로 마주해 보는 것이 다소 불편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듯하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AKIRA (1988) 관람 후기

애니메이션 불후의 명작으로 평가되는 아키라(AKIRA, 1988)가 한국에서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직전에야 알게 되어, 12월 22일 밤 시간에 CGV 혜화에서 관람하고 왔다. 영화 상영이 끝나니 11시 10분이 넘어서, 결국 귀갓길에 사당역에서 막차가 끊겼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익히 알려진 웅장하고 화려한 사이버펑크 배경들뿐 아니라, 뛰어난 작화와 높은 프레임에서 오는 아기자기한 장면들과 훌륭한 동세 묘사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 작품의 장면들에서 유래되어 클리셰적으로 쓰이는 연출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으로는 아키라 하면 모두가 떠올릴 정도로 유명한, 달리던 오토바이가 90도 선회하며 급제동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날아오는 총알 등의 무기를 슬로우모션으로 (혹은 작중에서 실제로 느려지게 해서) 피하는 장면도 아키라에서 등장해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마침내는 매트릭스(1999)의 그 유명한 장면에도 오마주된 것이라고 한다.


스토리와 주요 설정들 자체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스토리의 전달 방식이 어딘가 뚝뚝 끊기고 등장인물들의 행동들도 잘 파악이 안 되다 보니, 어느새 스토리의 세부보다는 대략적인 얼개만을 기억한 채 장면 연출 위주로만 감상하게 되기도 했다. 알고 보니 원래 훨씬 길고 자세한 내용을 담은 만화책이 있고, 그 만화가 연재되는 도중 애니메이션화를 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만화책의 주요 사건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담으려고 하면 이렇게 뚝뚝 끊기는 느낌이 생기고, 그렇다고 특정 사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면 내적 완결성과 박진감은 확보하지만 원작 팬들이 아쉬워할 뿐더러 일반 관객 입장에서도 뭔가 스펙타클이 부족하다고 느낄 공산이 생긴다 (후자의 예시로는 내 인생 만화 중에 하나인 BLAME! (브레임!)을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화한 것이 있다).

만화책의 애니메이션화에 따르는 위와 같은 한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박진감 있고 활달하게 시작했다가 점점 아득해지고 멘탈해지는, 그리고 모든 소중한 것들이 세심하지 않은 방식으로 파괴되는 일본 만화 특유의 서사 전개는 여전히 내 취향과는 다소 멀게 느껴졌다. 어쩌면 거대한 자연 재난을 빈번하게 겪는, 그리고 그러한 부조리를 신화화, 인격화해서라도 집단적으로 process하며 이해하고자 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관념이 반영된 부분일 수도 있겠다.

또한, 웅장하고 커다란 이야기가 결국 한 소년의 심리적 문제로 귀결되는 건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 이전에 아키라에서도 (그리고 아마도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미 그랬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경로로 주워들어 이름만 알거나, 주요 장면을 유튜브 클립으로만 보고 정작 제대로 감상을 안 해 본 유명한 영화들이 굉장히 많다. 약 2년 전쯤부터는 이들을 엑셀 파일에 리스트업해 두고 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드는 일은 아니니, 일주일에 한 편 정도씩 감상하고 기록을 남겨 보는 취미를 가져도 좋을듯싶다. 이번 아키라처럼 리스트에 적어 두었던 영화가 극장에서 재개봉한다면 더욱 좋고 말이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12월 8일 일요일

급기야 북한발 비상사태까지 유발하려 한 내란세력: 안보와 국민경제는 안중에도 없었나

설마 했는데, 지난 가을의 평양 무인기 사건도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김용현 국방부장관이 기획한 게 맞았던 모양이다. 야당을 향한 경고성 계엄이라는 희대의 주장도 완벽한 거짓말로 드러나고있다.

북한의 도발은 언제 왜 일어나는가?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내부의 불안정한 역학관계가 발생했을때 대내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바깥(?)에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거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윤석열과 김용현도 비슷한 이유로 남북관계 긴장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우리는 북한 같은 폐쇄 고립 정권이 들어선 곳도 아니고 대외적인 리스크에 정면으로 개방된 채 매일같이 막아내며 여기까지 성장해온 나라인데, 이번 국지전 유발 시도 및 계엄으로 국민 생명이 이미 위협당한 것은 물론이며,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국민경제는 쪼그라들었고 국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만약 여기에 북한이 대응해서 확전이라도 했으면? 한국의 계엄군뿐 아니라 북한에 의한 실제 비상사태가 발생하면서 계엄령의 정당성마저 확보될 수가 있고 그 여파는 상상할 수가 없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교육받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참담할 따름이다.

지금도 한국은행을 비롯한 관계기관들이 이미 RP 무제한매입, 국민연금-한은 외화 스와프 등으로 우리 세대의 복지 자금이 될수 있는 돈들을 하루에 십수조 혹은 수십조씩 빼서 금융시장 충격을 막고 있다고 한다. 이건 안 그래도 무너져 있고 부동산에 기형적으로 집중하고 있는 우리 국민들의 생애주기 설계에 장기적이고 결정적 악영향이 불가피하고, 이는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 및 용서가 불가능하다.

잘못은 내란을 획책한 소수 사람들이 했는데 왜 그 책임은 5000만 국민들이 져야 하는지, 그것도 왜 하필 내가 살아가가야 하는 세대에 이런일이 일어나야 되는지 정말 너무나도 억울하다. 이번 일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고, 이번 기회에 국가 체질을 바꿀 부분은 바꾸어서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대비하는 게 그나마 이번 사태의 충격을 줄이는 일이다.

기무사도 이름까지 안보지원사로, 또 방첩사로 바꿔가며 쇄신을 열심히 했다고 하는데, 이런 식으로 충암파인 방첩사령관 지휘 하에 사전 작업까지 포함해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번일에 참여해 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상명하복에서 오는 비극일 수도 있지만 결국 본연의 임무들 잘 했건 못 했건 이번 일에는 부대 해편까지 포함한 아주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 같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12월 7일 토요일

무엇이 질서있는 퇴진인가

여당에서 이야기하는 2선 후퇴, 책임총리제, 거국내각 등이 법적으로 애초에 없는 개념인데, 그게 왜 '질서 있다'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오직 탄핵에 의한 직무정지 및 파면, 자진 하야, 혹은 불소추특권 예외에 의한 체포의 3가지만이 질서있는 퇴진의 방법이다.

결국 여당이 원하는 것은 위헌적 계엄으로 계엄군을 동원하여 국회의원들을 잡아넣으려고 했던 대통령을 권한도 확실하게 정지 안 된 채로 직에 유지시켜 놓고 비정상적인 형태로 시간을 벌겠다는 것 아닌가.

만약 그 와중에 군사적 급변사태나 외교, 경제, 금융 등에서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면 결국 군통수권을 포함한 모든 주요 결정 권한은 법적으로 대통령한테 있는데 그때는 어떻게 할건가? 이렇듯 소위 2선 후퇴가 제대로 된 법적 개념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문제는 지극히 크다. 헌법적 근거가 있는 퇴진의 방안들이 속도도 더 빠르고 그 실행의 방법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도 적으며 더 민주적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에서 우리 경제와 금융은 대외 불확실성에 언제나 정면으로 노출되어있다. 국내 인구는 충격적인 감소세가 예정되어 있는데다 나라의 먹거리가 될 미래 성장동력조차 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라면 초저성장을 넘은 마이너스성장이 기정사실이다. 연금, 지역균형, 부동산, 가계부채, 노동 등 국민경제의 모든 주요 부문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폭탄을 만성적으로 끌어안고 있다.

지금까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해결 못한채로 쌓아오기만 한 그런 것들이 초저성장을 계기로 구체적으로 터져나올 것인데 이는 단순한 관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방향이 설정된 정책 집행으로밖에 해결할 수 없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걸어온 오르막길을 뒤로하고 처음으로, 그것도 대단히 가파른 내리막길에 진입하고있다. 바로 내 주변 세대가 그런 숨막히는 시대와 처음으로 정면으로 부딪혀가며 살아가야한다.


그런 상황에서 계엄선포에 따른 전대미문의 정치적 위기까지 촉발되어 국정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리스크에 대응할 능력이 특히 현저하게 감소되어있다. 1분 1초가 아까운 이런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여당이 한갓된 정치적 이해관계 탓에 이재명 판결까지, 혹은 심지어 2026년 5월까지 이런 식으로 하겠다는 게 도대체 말이 되는가. 제발 나라의 미래를 생각해야 한다.

Facebo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12월 6일 금요일

이젠 실패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없다고 할 셈인가

- 계엄의 어설픔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또한 내란 옹호 세력의 프레임이다! -

우파 스피커들 중에서 아무리 그래도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너무 큰 잘못이 맞다고, 현재 촉발된 헌정위기의 중대성 앞에 우선 마음을 모아 주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이러다가 이재명이 당선되면 어떡할 거냐, 안귀령이 뭘 잘못했다, 포고령상 법리적으로 국회 계엄해제가 불가능한 것 아니냐 이런 식으로 현 시점에 지엽적인 부분, 혹은 법리상 이미 전혀 문제가 없는 건데 커뮤에서나 뇌피셜로 굴러가는 떡밥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도 많다.

심지어, 진짜로 간첩 잡는 줄 알았는데 뭣도 없어서 아쉬웠다, 칼을 뽑았으면 뭐라도 했어야 되는데 어설프고 무능해서 실망이었다 등 핀트가 묘하게 나가 있거나, 일어나지 않은 상황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바람에 근거한 지극히 위험한 얘기나 하는 등, 속편한 대가리 굴리기부터 들어간 청년 보수들도 정말 많이 보인다. 똑똑하고 쿨한 척은 다 해 왔으면서 정말 양심이 있는 건가?

경악하고 참담한 마음, 상황에 대한 전체적인 인식 이전에 그런 지엽적인 떡밥부터 머리 속에서 굴러가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헌정 위기의 중대성에 대한 감수성이 지극히 부족해 보이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직도 이 사람들은 계엄 금방 해제되고 실패했으니 내란범이라는 무서운 단어는 야당의 과장된 레토릭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듯하다. 성공한 쿠데타뿐 아니라 실패한 쿠데타도 처벌할수 없다는 얘기인가. 나야말로 과장된 레토릭을 그 누구보다 경계하고 정확한 개념을 중요시하는 사람인데... 이게 개념상 내란이 아니면 뭔가?

물론 계엄 사태의 심각성 자체는 이미 벌어져서 모두가 아는 상황이니까, 굳이 계속 이야기하지 않고 조금 다른 디테일을 더 얘기하는 건 좋다. 나도 많이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계엄 사태 자체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애써 입을 꾹 다물었으면서, 쿨병에 걸린 것처럼 자꾸 지엽적인 얘기만 과도하게 강조하는 사람들의 글에서 그 정도 행간을 사람들이 못 파악할까? 실패했으니 별 문제 아니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축소하고 싶어하는 의도를 사람들이 못 읽어낼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셈이다.

보수정권이 국가를 대내외적으로 이렇게까지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하고 있는 것에 대한 충격과 아쉬움은 이해하나, 그러면 더욱 뼈를 깎는 심정으로 정확한 비판을 하는 것에 집중할 때지, 그런식으로 본질과 말단이 전도된 사고방식에 지지자들이 휘둘리기 시작하면 보수세력은 더욱 더 다같이 망하게 된다.

쿠데타가 나름의 계획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것을 무능이라고 부른다면 그러한 무능은 차라리 다행인 거에 가깝고 (그것도 사실 국민들과 국회가 막아 주고 있었고 군 지휘관이랑 일선 군인들이 최후의 선을 안 넘어서 다행인거지... 순전히 주동세력이 무능해서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번 기습 계엄 사태 자체가 자유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지극히 반헌법적이고 폭력적인 것이다. 주된 논의의 초점은 어설프다, 무능하다 따위가 아니라 오로지 여기에 맞춰져야 한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12월 4일 수요일

충격적인 12.3 비상계엄 사태: 의문들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단 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얼마나 큰 일을 저지른 것인지 실감조차 나지 않아서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해보고 있다.

지난 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국민들의 신속한 관심과 국회의 의결 등을 통해 인명피해 없이 몇시간 안에 해제되면서 일단 당장의 급박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런데 이를 보고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하룻밤의 '해프닝'이라는 단어로 사태의 무게를 축소하려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해프닝이라는 말은 물론이고 '오판', '정치적 자폭행위'라는 보수언론들의 마지못한 비판적 언사마저,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말이다. 이번 일이 헌법에 얼마나 많은 위반사항이 있고, 흘러가기에 따라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 건인지를, 한치 앞도 알 수 없던 어젯밤의 감각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끊임없이 실감나게 상기하며 적극적으로 기억해야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여당과 군에 대한 장악이 안된 채로 이런 사태를 벌인 것이 어차피 안될 일이었다는 식으로 '오판' 내지는 '정치적 자폭행위' 정도로 축소하려는 모습도 보수언론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국회를 무력화하는 조치가 취해진 것은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정치적인 무력 수단을 동원한 것으로써 서슬퍼런 1970-80년대에 사용되었던 수단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윤석열 자신이 정말 국회의 완전한 무력화와 전국민 기본권 통제까지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해는 전혀 안되지만) 나름의 경고성 조치 내지는 일종의 충격요법을 생각한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엄연한 사실은 선관위가 장악되고, 여야 대표 체포조가 투입되고, 특히 국회에서 일반 시민과 무장 계엄군이 직접 대치하면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다는 것이다. 해프닝이라기엔 이 모든 일들이 민주주의를 위협한 정도가 너무나 크다.

여기서 만약에 상황이 조금만 잘못되고, 일일이 통제할 수 없는 대치 최일선에서 아주 조금의 돌발적 사태나 오판만 있었어도 사태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국가폭력 사태가 되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미 이런 일을 한 번 벌인 이상, 집회 및 시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앞으로의 정국에서 박근혜 때와는 다른 굉장한 오판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아직 그 어떤 것도 해결된 건 없는 것이다. 이는 전혀 과도한 우려가 아니며, 이러한 위험에 국민들을 노출시킨 것 자체가 1970-80년대의 서슬퍼런 군사정권의 행태와 전혀 다르지 않다. 외신들의 경악에는 이유가 있다.

이번 비상계엄은 그 요건 자체가 안 될 뿐만 아니라, 계엄은 초헌법적인 것이 아니므로 현행 헌법 및 계엄법상 계엄령이라고 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발효되었던 포고령의 내용과 군부대를 통해 국회 장악 시도를 한 것 등 계엄의 구체적 전개과정도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위반하고있다. 민주국가에서 사용될 수 있는 정상범위의 정치적 수단을 한참 넘어선 일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국민들과 정치인들이 정확하게 인식하고 평가해야 한다.

대통령이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성정을 가진 매우 특이한 인물이고 그러한 성정이 국민들에게 아직 충분히 이해되지 않은 채로 당선되어 정치를 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도대체 어떤 생각과 판단능력으로 이러한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수단에까지 이르게 된 것인지는 아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경색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으로 하는 건가 생각도 들었지만 그렇다고 본인이 감옥 갈 수도 있는, 헌법 교과서를 다시 쓰이게 할법한 이런 일까지 할까.

당선 직후부터 여당 대표를 수차례 갈아치우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오로지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부적절하고 대결적인 대응으로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드는 특유의 정치행태를 통해 점점 더 고립을 자초한 형국이, 이러한 파국을 예견함과 동시에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았는가 조심스레 생각해볼 뿐이다.

충암고등학교 동문인 경호처장을 국방부장관에 임명했을 때부터 이미 이러한 계획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인지 등, 아직은 의문투성이인 이번 일의 정확한 경위와 전말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야당의 반복적인 고위공직자 탄핵발의와 예산안 비협조 또한 하나의 배경으로 자연스레 고려될 수는 있을 것이다.

성숙한 민주국가라면,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이번 일을 대통령과 극소수 참모의 지극히 일탈적인, 기존의 정치 풍토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빠르게 평가를 정리해야 하며, 그와 동시에 헌정사적 의미와 재발 방지 방안 등 보편적인 고찰이 가능한 점들 또한 부족함 없게 속속들이 논의하여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능히 같이 가져갈 수 있느냐가 우리나라 정치의 역량과 성숙도를 시험대에 오르게 할 것이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실용음악 이론] 다이아토닉 코드, 모드 스케일, 대리코드 등 간단 정리

어느새 햇수로 3년째 기타 레슨을 받으면서, 이론적인 부분 중에 여지껏 가장 어렵지만 그래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이 바로 모드스케일이다. 사실 화성학에서는 기초에 해당하는 내용이겠지만 여지껏 코드 이름들과 코드의 진행들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외워 왔던 내 입장에선 그것들이 통합되어 이해되는 좋은 경험이었다.

레슨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나도 정리해볼 겸, 내 나름대로 스케일을 찾아내고 이름을 이해하는 방법을 정리해본다. 아래 설명은 피아노 기준으로 검은 건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C키 (구성음: 도 레 미 파 솔 라 시)을 기준으로 한다.

먼저 코드 톤은 특정 코드의 제일 기본적인 색깔을 정해주는 구성음들(1, 3, 5, 7)을 말하는데, 여기서 조금씩 다른 색깔을 부여하기 위해 그 사이의 음들(2, 4, 6)을 적당히 내리거나 올려서 스케일 및 코드를 만들게 되고 이를 텐션이라고 한다. 이렇게 텐션을 포함한 스케일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모드스케일 및 다이아토닉 코드이다.


먼저, 현재 키인 C키의 기본 스케일인 C major scale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와 구성음(=diatonic notes)이 같되 근음만 바꾼 일련의 스케일들을 생각하자.

예컨대 근음을 D로 바꾸면: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이를 D major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와 비교해 보면 3도, 7도 음이 반음씩 내려가 있다.

이렇게 3, 7도음이 내려간 것을 D 도리안(dorian) 스케일이라고 하고 (이건 그냥 이름이라 외우면 됨),

이는 C키와 구성음(=다이아토닉 노트)를 공유하는 모드 스케일의 하나이다.

한편 이 스케일에서 1 3 5 7도음인 레 파 라 도 를 취하면 D minor 7 코드 (Dm7)가 되는데, 이는 C키의 다이아토닉 코드의 하나이다. 이를 키에 무관하게 쓰기 위해 IIm7이라고 쓰면 (C키와 구성음이 같되, 2도음을 근음으로 바꾼 다이아토닉 코드니까 로마 숫자 II를 붙임), 키가 바뀌더라도 어떤 코드를 일컫는지 쉽게 찾을 있다.

다이아토닉 코드는 위에서 찾은 모드 스케일과 서로 어울리게끔 되어 있다. 애초에 코드 구성음이 모드스케일의 일부분이니까 어울리는게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C키라는 키가 역할을 하고 있는 덕분에 가능한 거라 꼭 당연하지만은 않다.

약간 헷갈리는 부분이, 모드 스케일은 D를 1도음으로 생각해서 이름이 'D' 도리안이고, 다이아토닉 코드 역시 이름이 'D' minor 7인데, 둘다 C키의 모드스케일이고 C키의 다이아토닉 코드라는 점이다. 여기서는 '구성음'이 vanilla한 C키의 구성음이라서 모두 C키에 어울리는 소리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덜 헷갈릴 수 있다.


여기서 잠깐, D minor code를 얘기했으니 D minor scale도 생각해보자. D minor scale은 레 미 파 솔 라 시b 도 로, D major scale에 비해 3, 6, 7도 음이 내려가 있다. 그러면 6도음이 D 도리안 스케일과 충돌하지 않는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코드와 스케일은 별개의 것이고, 모드스케일 관점에서는 D minor code는 이름이 비슷한 D minor scale보다 오히려 D 도리안 스케일과 더 자연스럽게 짝이 맞는 것이다. 물론 D minor scale에 있는, 내려간 6도음 (시b)도 C키의 Dm7 코드 연주 중에 적당하게 사용해줄 수는 있겠다.


하나만 더 굳이 자세히 해 본 다음에 나머지는 같은 원리로 일반적으로 정리하자.

C키와 구성음이 같고 근음이 E일 때: 미 파 솔 라 시 도 레 미

이를 E major (미 파# 솔# 라 시 도# 레#) 와 비교해 보면 2, 3, 6, 7번 음이 내려가 있다.

이를 E 프리지안(Phrygian) 스케일이라고 하며, C키의 모드 스케일 중 하나이다.

위 스케일의 1, 3, 5, 7음을 고르면 미 솔 시 레 인데, 이는 바로 Em7 코드 (키에 무관하게 쓰면 IIIm7) 로 역시 C키의 다이아토닉 코드의 하나이며, E 프리지안 스케일과 어울리게 되어 있다.


그러면 일반적으로, 다이아토닉 코드와 그에 대응되는 모드스케일, 그리고 (메이져 스케일에 비해) 바뀐 음을 정리해보자. 원리는 위와 완전히 같다.

  다이아토닉 코드  |      모드 스케일      |         바뀐 음        |    예: C키의 경우 구성음   |

         IM7                  아이오닉(Ionic)                 x                :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IIm7                  도리안(dorian)              b3, b7            : 레 미 파 솔 라 시 도 레

        IIIm7              프리지안(Phrygian)    b2, b3, b6, b7      : 미 파 솔 라 시 도 레 미

        IVM7                 리디안(Lydian)                #4               : 파 솔 라 시 도 레 미 파

         V7           믹솔리디안(Myxolydian)           b7               : 솔 라 시 도 레 미 파 솔

       VIm7               에올리안(Aeolian)         b3, b6, b7         : 라 시 도 레 미 파 솔 라

     VIIm7b5            로크리안(Locrian)    b2, b3, b5, b6, b7  : 시 도 레 미 파 솔 라 시


여기서 일부 독자들은 알아챘다시피, A aeolian scale은 C major과 나란한조인 A minor scale와 구성음이 완전히 같다. 하지만 C major 키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 C major 키의 모드스케일인 A aeolian scale로 새롭게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코드들과의 조화를 쉽게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것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들이 왜 중요한가? 바로 특정 키의 코드진행에서 가장 무난하게 쓸 수 있는 코드들이 바로 다이아토닉 코드들이고, 거기에 잘 어울리는 스케일이 모드스케일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잘 알려진 2, 5, 1 진행을 C키에서 다이아토닉 코드로 찾으면 Dm7, G7, CM7가 되는데, 이 진행을 연주해 보면 상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멜로디를 쉽게 얹어서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대응되는 D 도리안 스케일, G 믹솔리디안 스케일, C 메이져 스케일이 잘 어울릴 것이다 (사실 이들의 구성음은 플랫이나 샵이 붙지 않은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로 모두 같으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코드에 따른 근음과 스케일을 알고 있으면 진행에 따라 보다 더 스토리가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모두 다이아토닉 코드만 사용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며, 음악의 종류에 따라 수많은 코드진행들이 가능하다. 이 중 다이아토닉 코드를 기본으로 하되 조금씩 다른 코드를 써 줄 수 있는 체계적인(?) 방법이 바로 대리코드차용화음인데 이들은 이 포스팅의 범위를 넘는다.


반대로 코드 진행이 주어졌을 때 키를 찾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IM7 IIm7 IIIm7 IVM7 V7 Am7 Bm7b5

유튜브의 백킹 트랙에 있는 어떤 코드진행에서 m7코드가 나왔다면, 위 리스트에 따르면 그 코드의 근음은 키의 2도, 3도, 6도음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3도는 잠깐 사용하는 것 말고 주되게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따라서 2도, 6도 중에 하나인데, 둘 중에 하나라고 가정했을 때 해당 코드진행에 등장하는 다른 코드들이 위 리스트의 다이아토닉 코드와 맞아야 한다. 이렇게만 해도, 키를 거의 추정할 수 있다.

- 끝 -




2024년 9월 9일 월요일

jtL - My Lecon: 과거의 커다란 인기와 다시 얻은 생명력

기아 타이거즈의 아웃송으로 요새 유명한 삐끼삐끼송은 Olive Beat의 Lecon Studios라는 트랙인데, 이 트랙은 H.O.T.가 해체하고 멤버 세 명이 뭉쳐서 만든 그룹 jtL의 곡인 'My Lecon' (2001년 발매)을 빨리감기 하고 삐끼삐끼 소리를 입혀서 믹스한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My Lecon이라고 하는 원곡은 jtL 활동 중에 특별히 밀어준 곡은 아닌 것 같은데도, 인도네시아에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어서 국민 히트곡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유튜브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덧글들을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도 각종 행사에서 늘 들었다고, K팝인 줄은 이제야 알았다고 하는 식의 얘기가 많다.


원곡을 들어보면 단조풍의 멜로디에, 거만함과 폭력을 비판하는 가사까지 더해져 90년대 말-00년대 초의 분위기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다소 특이하게도 인도네시아에서는 댄스그룹뿐 아니라 마칭밴드에서도 단골로 커버하는 곡인데, 비트와 랩이 상당히 찰진데다,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지 않고, 곡의 흐름도 너무 단조롭지도 너무 복잡하지도 않고 꽤나 포인트가 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이 곡이 발매된지도 어느새 20년이 넘어가는데, Olive Beat의 버전이 틱톡 등의 매체에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다시 한 번 인기를 끌고, 킹받는 아웃송으로 쓰이면서 다시금 알려진 과정은 상당히 극적이고 흥미롭다.

물론 아웃송에서 가장 부각되는 삐끼삐끼 부분이 원곡에는 딱히 없는 사운드라는 점에서 이 서사의 매력이 조금은 약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양적으로 급격히 팽창하는 인터넷 트렌드에서 점차 흔적이 사라져가던 곡이 믹스된 트랙의 배경 트랙으로 깔려서 다시 생명력을 얻고 잘 알려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재조합을 통한 무제한적 확장이라는 매체이론적 관점으로 본다면 오히려 더 흥미롭기도 하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삶, 기록, 의미... 그리고 재조직화하는 흐름으로서의 인간

람들 혹은 그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에 의해 회고되는 위대하거나 소소한 성취들을 보면서, 매우 최근까지도 implicit하게 가지고 있던 어떤 사고방식이 있다. 대략 언어화해 보자면, 아무리 즐거운 기억, 아무리 훌륭한 성취도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상실한다는 생각, 혹은 조금 더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훌륭하고 즐거운 사건들은 오직 기록되기 위해서 기획되고 전개되는 것일 거라는 정도의 생각이다.


몇 달 전에 내 사고방식의 그런 부분을 명시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마침 내 흘러간 과거의 개인 자료들을 보게 되는 등, 거의 동시에 일어난 몇 가지 우연한 계기 때문에 최근에 생각이 크게 바뀌고 있다. 시간 눈금을 조금 길게 잡아서 보면 그런 기록물들과 현재의 우리와의 관계는 생각보다 금방 단절되는 감이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며 어떤 활동을 함께한 기억은 그 사람들을 만나거나 상기할 때 거의 즉각적으로 호출될 수 있고, 심지어는 축적된 경험으로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작동하면서 개인과 세계에 영향을 주는데, 이런 기억과 경험들이야말로 의미를 발생시키는 원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억과 경험들 및 그 영향도 당연히 영속하지는 않고, 지속시간으로만 따지면 명시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내용들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더 짧을 수 있다. 하지만 요지는 영속성이 아니라, 그 충만함의 정도와 양태가 많이 다르고, 둘 중에서 전자가 인간에게 있어서 '의미'라는 부분에 더 많이, 더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 않은가 하는 것.

위대하거나 소소한 성취들과 사건들의 경우에도, 그 기록이 아주 적거나 아주 많거나 상관없이, 현장에 참여하지 않은 채로 기록된 내용들만 보아서는 그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운 비텍스트적인 면모들도 많다. 바로 그 공간, 바로 그 시간에 있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고, 심지어 바로 그 시공간에 있었더라도 거기에서 발생한 사건을 나의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와 사회성의 많은 부분을 열정적으로 쏟아부어서 충실하게 체험하고 의미화하지 않았다면 재현해내고 공유하고 집단적으로 향유하기 어려운 그런 것들.


인간 활동의 응집력은 그 활동에 관여한 사람들이 하나둘씩 흩어지면서 생각보다 금방 흩어지게 마련인데, 그 활동들이 의미가 되고 영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많은 경우에 기록보다는 이런 식으로 거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의식적 기억, 무의식적으로 축적된 경험들이 아닌가. 물론 나는 성향상 그런 참여에 충실하지 못하고 기록 위주로 생각하고 간접 경험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을 굳이 돌아돌아 생각까지 해야 알 수 있는 거고.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꾸만 '저장', 그리고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두 키워드를 대조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전개되게 된다. 인간의 정신은 정보를 단순히 쌓아둘 수도 있지만 정보를 예쁘고 유용하게 처리하고 가공해서 흘려보내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마저 재조직화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는 어떤 형식인데 이러한 처리 능력이 그저 인간의 기능적인 부분에 그치는 대신 유희적이고 감상적인 부분, 인격을 형성하는 부분에까지 심원하게 닿아 있고 (물론 내용을 단순히 저장하는 기능도 정보처리에 따른 side effect로서 개인과 세계에게 매우 중요하긴 할테다), 그로 인해 위와 같은 일이 생기는 듯하다.

심지어 '저장'이 아닌 '처리와 재조직화'라는 이러한 인간 역량은, 수많은 사람들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와중에 문명 전체를 관통하면서 흐르는 어떤 기능일 수도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그 무엇도 명시적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버려지더라도 그러한 내용들을 처리하고 재조직화하는 형식의 작동을 통해 그 형식 자체가 발전할 수 있으며, 그렇게 발전한 형식이 존재하는 한 그 모든 사라진 내용들, 혹은 발견되기 어렵게 가라앉아 있는 내용들은 제 역할을 다한 것이고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도 문명사적 차원에서도 유효한 것 같다. 너무 거창한 예시지만 언어들의 초기 역사 중에서는 절대로 알수 없게 돼버린 것들도 많을텐데 그 과실을 우리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나.

암튼 이게 나로서는 꽤 충격적인 생각의 전환이라 지난 6월쯤에 며칠간 실제로 멍함을 느낄 정도였는데, 그 며칠 동안 들었던 생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위와 같이 글로 적을 수 있을 정도로 꽤나 명료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멍하던 상태는 이런 생각을 계속 상기해보더라도 다시 재생이 되지 않는다 (애초에 별로 쾌적한 상태도 아니고, 이런 생각과 상관없이 그냥 컨디션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때 하필 왜 이런 생각이 들게 됐는지, 그러한 기분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를 너무 깊게 회고하거나 분석하려 들지 말고, 내 마인드도 이런 생각을 처리하면서 어떻게든 재조직화되었을 테니 그대로 놔두고 활용하는 게 더 현명할 것이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8월 9일 금요일

지중해의 휴양지, 코르시카 꺄흐제즈(Cargèse) 여름 학교에 가다!

여기에 와서 유럽 학생들이랑 어울리겠다고 처음으로 WhatsApp이랑 PayPal을 다 깔아봤다.
지금 참석 중인 Summer School은 지중해의 코르시카 섬에 있는 Cargèse라는 마을에서 열리고 있다. 교과서적 프랑스어 발음으로 말하자면 꺄흐제즈 정도일 텐데 여기 사람들은 그냥 카르제스 정도로 부른다. 코르시카의 최대도시인 아작시오(Ajaccio)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산악지대 풍경을 보면서 굽이굽이 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오면 도착한다.

여긴 통신이 잘 안 터질 때가 많고 에어컨이랑 찬 음료가 없어서 좀 지치긴 한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와 제로콜라가 그립다... 내가 있는곳은 숙소 겸 학회장소 (IESC, Institut d'Études Scientifiques de Cargèse) 인데, 주변엔 아무것도 없고 정말 이 시설뿐이다. 손전등 들고 30분 정도 산길을 걸으면 상점과 식당이 있는 중심가가 있어서 저녁은 거기서 먹는다. 거기도 말이 중심가지 인구가 130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살면서 와 본 모든 곳 중 제일 외진 듯.

물론 멋진 점이 훨씬 많아서, 위와 같은 약간의 불편함들도 낭만으로 느껴진다. 밤이 되면 수많은 별들이랑 심지어 은하수까지 흐릿하게나마 보일 정도로 하늘이 깨끗하고 (12일 밤에는 페르세우스 유성우도 떨어진다고 해서 무척 기대 중이다), 이 일대에 말 그대로 우리밖에 없다 보니, 바닷가가 꽤 넓은데도 굉장히 프라이빗하고 깨끗하다. 엄청 오랜만에 사람들과 어울려서 해수욕 해 봤다. 그리고 빌리지가 멀다보니 아침 점심은 다 숙소에서 해결하는데 메인메뉴 작은 거 하나에 과일, 요거트, 빵 정도라서 뭔가 살 빠지고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더워서 숙소 창문은 활짝 열고 자는데, 바닷가 + 산골인데도 곤충이나 뱀이 안 들어오는 것도 신기하다. 섬 자체에 뱀은 좀 있긴 하지만 독사는 없다고 한다. 밤길에 보면 도마뱀이랑 박쥐는 있다.

그렇다면 왜 스쿨을 이 곳에서 하는가? 이 스쿨은 나도 무척 관심 많은 곳인 룩셈부르크 대학의 통계물리, 생물물리 그룹들에서 주최하는 것인데, 코르시카가 약간 유럽인들에게는 제주도 포지션이라 그쪽 교수님들이 휴양 겸해서 하려고 여기로 잡은 것 같다. 그런데 찾아보니 그뿐만이 아니라 이 IESC라는 곳 자체가 1960년대에 출범해서 그때부터 이런 학회를 꾸준히 호스팅해온 근본있는 시설이라고 한다.

특히 이론물리학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Gerardus t'Hooft, 아직도 살아 계시고 작년인가에 한국이 주최하는 워크숍에서도 강연하심)가 이휘소 박사님의 강연을 듣고 영감을 받아 후일에 노벨상을 받게 되는 업적을 이룬 게 다름이 아니라 여기 카르제스 스쿨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여기 시설에 뭔가 연혁이 써 있거나 흔적이 있거나 하지는 않던데, 그래도 그런 역사가 일어난 곳이라고 하니 반갑고 뜻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21일에 한국 돌아가자마자 삼척에서 invited talk 하는 게 있어서 맘 편히 있지는 못하고 그것도 틈틈이 준비 해야 되기는 하지만, 다시 오기 힘든 좋은 곳인만큼 스쿨 참여도, 휴양도 즐겁게 한 뒤에 귀국해야겠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사진 포함)

2024년 7월 4일 목요일

야구경기 밈 보도와 호남 혐오: 문제적인 유머에는 찬물을 끼얹어야 한다

지난 6월 25일에 열린 한 극적인 야구 경기의 전개가 실제 6.25 전쟁의 전황과 비슷해서, 각 팀을 국군과 북한군에 대응시키고 전황을 경기 상황에 대응시킨 짤방이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KBS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그 비유를 송출해서 문제가 된 모양이다.

그 어떤 집단이더라도 그것이 북한에 비유된 것 자체로 상황에 따라 기분이 나쁘거나 심지어 낙인찍는 기제가 작동될 수 있을진대, 하필 팬덤이 강한 스포츠라는 부문이고, 또 하필 북한군의 역할(?)에 비유된 팀이 호남 연고 팀이다 보니 특히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순전히 구도가 비슷해서 재미있는 것이지 호남을 북한과 엮는 지역차별의 맥락은 전혀 없다며 항변한다. 어제 이 내용을 접하고, 생각할수록 흥미로운 쟁점들이 있어 조금 자세히 써 본다.


물론 어떤 사람은 지역 차별 맥락이라는 문제성을 떠올리지 못하고 정말 해당 구도만 따와서 즐겼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러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지하긴 했지만 윤리와 평판의식이 작동해서 그런 의도를 의식적으로 배제하고, 그럼에도 소비 및 재생산은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커다란 유튜브 채널(특히 공영방송에서 운영하는)에 올라가게 되면, 평소 인터넷의 모습에서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호남 혐오 덧글들이 줄지어 달리게 되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다면 방송은 그러한 판을 연 것에 대해 책임을 표명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북한을 굉장히 민감한 소재로 인식할 만한 사람들이, 하필 호남연고 팀이 북한이랑 엮인 것에 대해서는 '지역드립이 아니라 그냥 구도가 그런 건데 뭐가 문제임?' 하면서 유독 관대해지는 것 역시 명백히 문제적이다. 호남 혐오, 호남 희화화가 인터넷 공간상에서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확대 재생산되어 왔는지를 생각하면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생각한다. 그 방송을 제작한 사람들도 그 짤방을 가져올 때 사람들의 순수한(?) 소비 방식 외에 지역차별적인 소비 방식도 목격했을 것 아닌가.

자신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즐기던 것에 누군가 찬물을 끼얹었을 때 확 오는 불쾌감을 잠시 접어두고, 타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 볼 줄 아는 태도야말로 성숙한 시민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발화에서의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문화적 진보진영에서조차 정작 자기가 의심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이게 안 되는 사람들이 많으니, 남초, 우파 분위기 위주인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들에서 어떤지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흔한 오해와 달리 도덕적 태도는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는 달성될 수 없으며, 오히려 비도덕적인 것들에 대해 잘 알고 그것들을 의식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 물론 당신의 재미는 중요하다. 그치만 그것이 공적 공간에서 다른 것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가치는 아닌 경우가 많다.


실제 지역차별을 의도로 해서 호남을 북한이랑 엮은 게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되어 왔지 않나. 심지어 요즘처럼 인터넷상의 드립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식사 자리와 술자리,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서까지 말이다. 그러면 이번 것도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서 적어도 공영방송에선 송출되지 않는게 맞았을 것 같다.
설령 at first glance에서는 순수하게 구도가 비슷해서 재미있다고 생각했더라도, 북한이라는 소재 자체가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데 하필 호남 연고 팀도 관련이 있으니 적어도 공영방송에서는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해당 경기의 상황이 6.25의 전개를 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생각날 법한 상황임에도, 자기 생각이 아닌 외부 요인 때문에 (적어도 공영방송에서) 표현이 제한되고 창의성의 산물 하나를 잃는 것은 아쉬운 일일 수 있다. 타율로부터 자유로운 사유와 표현을 추구해 온 내 입장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렇지만 자신의 재미에 찬물이 끼얹어졌을 때 발생하는 거부감은 그 존재는 인정되되, 즉물적으로 표출되는 대신에 철저히 반성되어야 한다.

이것도 결국 우리 나라에 쌓여 있는 여러 문화정치학적 갈등의 업보가, 유머에 대한 구성원들의 해석의 형식으로 불가피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것은 문제제기의 중단을 강요하기보다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세밀하게 극복해야 하는 종류의 문제다.

차별의 맥락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하듯 반응하고 극복을 강요하는 공간은 제대로 된 공론의 장이 아니라 디씨에 불과하다. 타율적 전제로부터의 자유는 그 타율을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타율에 의해 조건지어진 하에서 사고와 표현을 도구삼아 그 조건을 변화시켜 나가고, 종국에는 극복함으로써 진정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실용음악 이론] 헷갈리는 기타 튜닝 용어 정리하기

기타의 여러 튜닝방식들을 일컫는 표현들은 초심자들을 헷갈리게 하기 쉽다. 왜 그렇게 이름이 붙었는지도 처음엔 알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또 사람들이 정확한 이름을 하나 정해서 일컫기보다는 각자 입에 붙은대로 편하게 말하기도 해서 더 그렇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렇게 이름이 헷갈리는 것은, 사실 서로간에 잘 확인하면서 소통을 하면 되는 부분인 것 같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 튜닝이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스스로 언제든 찾아낼 수 있게, 본인의 방식대로 이해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이 이해하는 게 제일 안 헷갈리고 편한 것 같다.

먼저 제일 기본인 정튜닝(E 스탠다드 튜닝)은 6번 줄(제일 두꺼운 줄)부터
미 라 레 솔 시 미
로 맞추는 튜닝을 말한다. 음이름을 따로 밝히지 않고 그냥 '스탠다드 튜닝'이라고만 한다면 그게 주로 이 정튜닝을 말하는 것 같다.

한편 이 정튜닝에서 6번 줄만 2키(=한음)내리면 
레 라 레 솔 시 미
가 될 것이다. 이를 드랍D 튜닝이라고 한다. 이 두 가지 소리를 반드시 입으로, 귀로 기억해두자.


물론 unusual한 튜닝들도 있지만,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튜닝들은 결국 '◯ 스탠다드 튜닝', '드랍◯ 튜닝' 두 가지에 속한다고 보면 되고, 그 각각이 위 두 가지와 대응된다.
(◯는 E, D 등 음이름)

1. '◯ 스탠다드 튜닝'은 줄들 간의 상대적 음 높이차가 '미 라 레 솔 시 미'와 똑같다.
2. '드랍◯ 튜닝'은 줄들 간의 상대적 음 높이차가 '레 라 레 솔 시 미'와 똑같다.

튜닝의 이름에 있는 알파벳 음이름 ◯는, 6번 줄의 소리를 그 음에 맞추라는 것이. 그 다음에 스탠다드냐 드랍이냐에 따라 위 두 가지 중 하나로 다른 줄들까지 맞춰 주면 완성이다.

즉 스탠다드튜닝은 정튜닝(=스탠다드튜닝?)에서 다같이 동일한 만큼 내려준것, 드랍튜닝은 거기서 6번 줄만 2키(=한음) 더 내린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서 드랍 C 튜닝을 맞추는 방법을 내 방식대로 써 보면,
드랍 C 튜닝 = 6번줄이 C이되, 6개 줄의 상대적 음높이차를 '레라레솔시미'와 같게 한 튜닝 = 드랍 D에서 모든 줄을 2키(=한음)씩 더 내린 튜닝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각 튜닝에서 여섯 개 줄의 음이름을 모두 짚어 말할 수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기본적인 음감이 있다면, 6번 줄 먼저 맞추고, 거기서 상대적 음 높이차만으로 다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운튜닝이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이것은 무엇인가?
'◯ 스탠다드 튜닝'이랑 똑같다. 그것을 '정튜닝에서 몇 음만큼 다같이 내렸냐(다운)'를 기준으로 세서 부르는 다른 이름일 뿐이다. 즉 드랍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때만 레라레솔시미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대개는 미라레솔시미라고 보면 된다.

정튜닝에서 다같이 1키(=반음) 내림 = half step down tuning = 하프다운튜닝 = D# 스탠다드 튜닝

정튜닝에서 다같이 2키(=한음) 내림 = whole step down tuning = one step down tuning = D 스탠다드 튜닝

정튜닝에서 다같이 4키(=두음) 내림 = two steps down tuning = C 스탠다드 튜닝

이렇게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익힌 기본 방식이고, 다음으로는 사람들이 용어를 어떻게 섞어 쓰는지 대표적인 예들을 보자.

먼저 다른 말 없이 그냥 다운튜닝이라고만 하면, 드랍튜닝과 대조되는 좁은 의미 (◯스탠다드튜닝, 즉 ◯◯다운튜닝)일 수도 있고, 반대로 그냥 정튜닝이 아니라 뭐 하나라도 낮췄으면 아주 넓은 의미에서 다운튜닝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결국 맥락상 적당히 알아들어야 한다.

여담이지만 물리학에서 역학 파트를 공부할 때도 이렇게 애매한 경우가 있어서, '탄성 충돌'이랑 '비탄성 충돌'이 사실 같은 뜻일 수도 있는(...) 기막힌 경우가 생긴다. 마치 단어 뜻만 보면 스탠다드 튜닝과 다운튜닝이 같은 뜻일 수가 없어보이는데 같은 튜닝을 일컬을수 있는것처럼...


드랍다운튜닝이라는 말도 가끔 접할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런 건 정말 혼란스러운 표현이다. 굳이 드랍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다는 건 레라레솔시미 류를 말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겠으나, 잘 모르고 미라레솔시미까지 포함한 넓은 의미의 다운튜닝을 말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이 역시 적당히 맥락상 알아듣자.


사실 이런 것들은 굳이 글로 쓰려고 하니까 무슨 논문 쓰듯이 복잡하게 되는 건데, 대부분 실제 대화에서는 용어를 조금 섞어쓰더라도 전혀 오해없이 잘 소통할 수 있다. 그리고 백마디 말보다 직접 악기를 잡고 해보면서 손과 귀로 익히는 게 쉽다.

다만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초반에도 강조했듯이, 튜닝의 종류에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찾는지에 대한 기본은 본인이 잘 알고는 있어야 한다.



2024년 6월 27일 목요일

복개천을 통해 보는 언어현상과 토목의 도시공간사

얼마전까지 뜻을 정반대로 알고있는 단어가 있었는데, 그게 무엇인고 하니 바로 '복개'이다.


나는 복개라는 한자어의 훈을 내 느낌대로 추측해서, 콘크리트에 덮여있던 청계천을 '다시 오픈한' 게 복개인 줄 알았다 (다시 복 자에 열 개 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알고 보니 옛날에 청계천을 고가도로로 덮은 게 바로 복개공사였고, 그렇게 덮인 하천을 복개천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복개천을 MB 시장 때 다시 연 것은 복원공사 라고 부른다.

근데 웃긴 게, 이 단어의 원래 한자는 덮을 부 (거의 안쓰임), 덮을 개 (개연성, 두개골 등에서 쓰임) 자여서 굳이 말하자면 '부개'가 맞는데, 이 '덮을 부' 자와 위에 말한 '다시 복' 자가 사실 한자로는 같은 글자라고 한다. 이렇게 여러 음 (그리고 주로 그에 대응되는 여러 훈) 을 갖는 한자를 '다음자'라고 한다.

그런데 현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덮다의 의미로 쓰일 때도 거의 '복'이라고 읽게 되다 보니 (이런 현상을 '속음'이라고 한다고 한다) 부개 대신 복개가 표준어로 인정이 되었다고 한다.

속음인 독음과 맥락에 이끌려 내 마음대로 한자의 훈을 잘못 추측했는데, 사실 그 잘못 생각한 한자가 실제 한자와 같은 글자였던 (그러나 다음자여서 의미상으로는 정반대인) 묘한 상황인 것이다. 그야말로 속음에 완벽히 속음...


그리고 서울에 현재 존재하는 자동차 도로 중에서도 이러한 복개천 위에 차가 다니는 구조인 게 꽤 있다고 한다.

말로만 들으면 엥 그런가? 싶은데, 한번 생각해 보면 도심 하천이 갑자기 콘크리트 지붕 속으로 들어가면서 끊기는 건 여기저기서 많이 보았다. 그런 것들이 바로 복개천인 듯하다. 우리 학교 옆의 도림천, 그리고 본가 근처에서 가족들과 자주 산책했던 성내천이 이런 식으로 일부 구간 복개되어 있다.

그리고 전구간 복개천인 곳도 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서울대입구역 큰길 말고 그 바로 뒤편에는 술집이 많고 자전거타기 좋은, 나름 넓은 이상한 뒷길이 있는데 (학부때는 이 길을 6, 7, 8번 출구쪽 갈 때 봐서 그 존재만 알고, 제대로 탐색한 적은 이상하리만치 없었다) 거기가 바로 봉천천이라는 하천을 복개한 도로라고 한다. 2024년에 복원할 예정이 있다고 하니 어떻게 될지 기대해볼 법하다.


그러면 애초에 이러한 복개를 왜 했는가? 먼저 하천들은 애초에 물길 겸 자연구획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현대적 교통이 발달하면서 그 하천을 그대로 따라서 자동차 도로를 깔면 여러모로 편리했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하천들 중에 백 년 넘게 아무리 공사를 해도 범람 및 위생문제가 계속되어온 경우, 이를 아예 덮고 하수도로 이용하면 해결된다는 장점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서울시내의 땅 모습이 결코 자연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며, 그 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역사를 거치며 형성되어 온, 우리가 잘 모르는 구조물들이 굉장히 많다는걸 알면 기분이 신기해진다.

복개천 외에도, 마치 베네치아처럼 조선시대때 이미 늪지대에 나무 말뚝을 빽빽하게 박아서 사람이 생활할 수 있는 땅으로 만든 지역들이 서울 시가지에 있다고 한다. 훨씬 더 와닿는 또다른 예로, 지하철도 그냥 뚫어 놓았다고 끝이 아니라, 매일 수만 톤의 물을 펌핑해서 버려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방 침수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외에도 서울이라는 도시에 관여되고 있는 여러가지 물질, 에너지, 정보의 흐름 (혹은 그것들의 의도된 차단) 을 각 타임스케일에서 유지시키기 위해 투입되는 인적, 물적 인프라들을 뽑아내서 한눈에 볼 수 있다면, 도시공간에 대한 색다르면서도 본질적인 이해를 갖출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해외의 융성했던 고대 도시들이 전란을 겪으며 관리가 끊기면 그 형태를 잃어버리고 유적으로만 남거나 심지어 땅에 묻혀 버려서 나중에 발굴되는 게 잘 이해가 안 됐었는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원영적 사고'에 대한 일부 해석을 보고: 열광과 가벼운 향유는 공존가능하다

IVE의 멤버 장원영의 초긍정 태도로 잘 알려진 '원영적 사고' 관련 글들이 뒤늦게 Facebook에 많이 올라온다. 그런데 그 글들 중에서 '원영적 사고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다 자기 편인 순진무구한 사람만이 할수있는 생각이므로, 그걸 소비하는건 진지한 열광이 될수 없고 가벼운 밈에 그친다'는 취지의 글은 자세한 취지도 알기 어렵거니와 내용 자체에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성장 배경도 좋고 외모와 실력도 뛰어난 장원영은 일반적인 범주를 뛰어넘는 지지와 인기, 그리고 부를 얻고 있겠지만, 어린 나이부터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극복해야 했던 억까는 단지 아이돌로서 캐릭터성 면에서의 서사 형성을 넘어 실제 장원영이라는 사람이 겪는 인간적 고난의 범주에 너끈히 속한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설령 전자라고 해도 밈의 성립에는 문제가 없고).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원영적 사고가 무엇인지 '굳이' 살펴보자면, 사람들이 자기 편이 아니게 될때 쉽게 무너질 수 있는 순진무구한 낙관은 전혀 아닐 듯하다. 오히려 어떤 상황이든 단순한 정신승리가 아니라 유연하고 강하게 대응해서 긍정적으로 바꿔내려는 천생 낙관, 혹은 계속되는 억까에도 불구하고 아이돌로서 좋은 모습을 가지고 또 보여주려는 프로페셔널한 낙관 등에 가깝지 않을까.


일반인과 다른 삶을 사는 입장의 기만적인 긍정보다는 (그러면 밈이 아니라 오히려 소소하게든 크게든 논란거리가 되었겠지), 따라잡기 어렵지만 그래도 본받을 점이 있는 긍정에 조금 더 가깝게 소비된다는 게 내 인상이다. 그러한 긍정이 래디컬하게 추구되었을 때 내적 일관성을 갖추고 성립할수 있는지, 어떤 결과를 주는지를 따지는건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물론 밈을 소비하는 양태는 다면적이기 때문에 그냥 그 말 자체가 재밌고 좋아 보여서, 남들이 하니까, 큰 생각없이 소비하고 재생산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심지어, 힘든 상황에서 쉬이 와닿지 않을만큼 지나치게 긍정적이다 보니 가볍게 냉소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며 집단적 위로를 꾀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쪽을 많이 본 것 같다). 이 정도로 사실 충분하다. 밈의 소비 및 재생산과 그 담론화(?)는 분리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의 단정적인 분석은 무리다. 그러나 그런 글들처럼 원영적 사고가 무엇인지 '굳이' 분석적으로 생각해보고 파고든다면, 그것이 위에서 언급한 '순진무구한 긍정'에 닿아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밈이라고 해서 꼭 가볍기만 하고, 열광적인 태도를 가질 수 없다는 식의 이분법도 다소 의아하다. 사람마다, 혹은 한 사람 안에서도 여러 계기가 겹쳐 있을 수 있다. 남다른 긍정에 진심으로 감명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좀더 열광적으로 쓰지 않겠는가. 밈의 strict한 개념을 레퍼런스하면서 과하게 의존하지 말고, 회색 부분까지 총체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해당 글에서 여러 차례 비판하는 열광이란 단어가 어느 글들에서 어떤 뉘앙스로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그런 글들에서 과잉되고 단정적인 분석들이 있었고, 그게 열광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했나보다 싶기는 함), 그 열광이라는 단어가 꼭 비일상적 수준의 카타르시스적 경험을 일컫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냥 가벼운 소비일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면 열광적인 인기라고 으레 표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물론 해당 밈에서 이야기하는 긍정적 태도가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 하에서 언급될 때 강요로 작용할 것을 미리 경계하는 것 자체는 좋다. 또한 이런 류의 유행이 일각에서처럼 각종 리더십 강연(?)들과 어른들이 보는 tv 등에서 언급되게 되면 종종 실제로 위처럼 흘러가면서 생명력을 금세 잃는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그런 전형적인 '페북긴글'에서의 단정적인 분석과 논쟁 역시 밈들에 대한 피로감을 유발해서 정확히 바로 그런 흐름에 일조한다는 것 역시 인지해야 한다. 사실 내가 쓰는 이 글도 마찬가지라서, 그냥 쓰지 말걸 하고 후회가 된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6월 2일 일요일

aespa 정규 1집 더블 타이틀곡 'Supernova' 및 'Armageddon' 감상평

5월 14일

aespa 정규 1집 선공개곡인 <Supernova>를 처음 들어 봤는데, 곡이 화려한 요소 크게 없이 깔끔한데도 귀에 감기는 듯하다. 다만 정규앨범 수록될 곡인데도 메인 활동 곡이라기보다는 광고 삽입곡 내지는 ost 같은 느낌이 나는데 이건 왜인지 잘 모르겠다. 앞에 말한 대로 미니멀해서 그런 것인지... 실제로 드라마 테트리스의 삽입곡이었던 <Hold on Tight>와 약간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리고 듣다보니 은행플러팅 노래랑도 뭔가 비슷한 것 같음 ㅋㅋㅋ

(추가: 그동안 aespa 곡으로 발매된 것 중에 KENZIE 곡은 하나밖에 없었는데 (Savage 앨범의 <I'll make you cry>, 수 퍼노바가 켄지 작곡이라고 해서 무척 반갑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5월 20일

멜론 차트 보는데 수퍼노바 실시간 화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정규앨범 곡의 제목들(총 10곡)도 멜론에 이미 다 공개되어 있으나 아직 들어 볼 수는 없다. <Licorice>도 곡이 참 좋던데, 민트초코 괴물과 싸우는 재미난 특촬물 스타일의 뮤비도 공개했지만 음원은 아직 열어 주지 않고 있다.
5월 27일에 공개될 타이틀곡 <Armageddon>은 장르가 올드스쿨 힙합이라고 하는데, 만약 그 장르의 전형적인 문법으로 쓰인 곡이라면 레트로 팬들이야 환장할 테지만 과연 어떤 부분에서 트렌디하고 에스파답다고 어필이 될지 약간 걱정이 되긴 한다. 그렇지만 에스파 멤버들도 엄청 마음에 들어한다 하고 여러모로 기대해도 좋다는 느낌이 있어서 일단 기다려 보게 된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6월 2일

수퍼노바에서 '잔인한 queen 이며 scene 이자 종결' 이라는 가사를 실제로 그 표현에 걸맞는 위엄이 느껴지게 살린 게 신기하다. 보컬의 디테일한 뉘앙스랑 발차기 안무 덕분에 그런 것 같은데, 수퍼노바에서 코러스랑 댄스브레이크 외에 또 다른 킬링파트인 것 같고 계속 보게 된다. 켄지가 오랜만에 에스파 곡을 했는데 곡이 가벼우면서도 힘있는 것이 참 잘 어울리게 만들어낸 것 같다.

또다른 타이틀곡인 <Armgeddon>은 사실 내 취향은 아니긴 해도 곡에 특기할 만한 점이 좀 있다. 사실 나는 이런 올드스쿨 힙합 장르는 특유의 길바닥(?) 느낌, 그리고 찰지고 인간적이며 유머러스한 느낌이 탓에, 아마게돈을 비롯한 장엄한 개념들을 표현하기에 유독 잘 안 어울린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유머러스한 느낌은 이 곡에서 사용한 Armageddon과 Imma get em의 언어유희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난다. 장르와 잘 어울리는 유머지만 아마게돈이라는 개념의 아우라는 파괴하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드스쿨 장르는 묘한 세기말적 분위기로 인해 어두움을 표현하는데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신적, 대자연적인 어둠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어둠에 가깝다보니 정작 별로 어둡게 느껴지지 않는달까...

그런데 이번 곡의 경우 작법은 그쪽 스타일의 전형적인 찰진 비트 및 바람 빠지는 듯한 고음역의 꾸밈 효과음(?)들을 포함하지만, 정작 그것들을 연주하는 사운드는 기존 에스파 스타일의 쇠맛 악기들로 많이 배치함으로써 아마게돈이라는 개념에 어울리는 아포칼립스적이면서도 텁텁한 테마가 약간은 묻어나오는 것 같다. 멤버들의 흙맛이라는 표현이 꽤나 적절한 듯싶다.

음악 자체에 대한 평가를 떠나 원하는 콘셉트와 색깔을 송라이팅에 구체적, 감각적으로 반영하는 프로듀싱은 산업화된 k팝의 역량 중 하나이고 스엠이 이런 면에서는 여전히 참 잘하는 것 같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5월 23일 목요일

전공설계지원센터 간담회 후기 - 퀀트 헤지펀드: 전공을 넘나드는 투자전략

5월 21일 화요일에 전공설계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진로 특강(링크)에는 퀀트 리서쳐로 일하는 분이 특강을 오셨다. 연사분이 너무 자세한 얘기는 할 수가 없다고 하셨고 실제로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명료하고 구체적인 lesson들이 있는 유익한 톡이었다.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좀 specific하다고 느껴지는 업계 얘기 몇 개는 빼고, 질의응답 중에 흥미로운 내용들을 밑에 옮겨본다.


개인적으로는 LLM이 이미 광범위하게 업계에 적용 중이라는 것과 (코딩 돕는 것뿐 아니라 투자 알고리즘 자체에 적용한 일부 사례는 본 적 있는데 이 정도인 줄은 몰랐음), 퀀트 리서치에 SDE가 당연히 절대적인 비중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 제일 놀라웠다.

물론 현업 최전선에서 알파를 창출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지, 확률과정 지식을 통한 포트폴리오 이론과 파생상품론의 수리적 이해는 기초 소양으로 잘 갖추고 있어야 하긴 할 거라고 내 마음대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5월 23일(목요일)에는 AI, 언어처리 쪽 국내 리서치 엔지니어 분이 특강을 해 주셨는데, 이 분과는 끝나고 운좋게 커피챗 하는 시간도 가져 볼 수 있었다. 다소 시니컬하게 이야기하셨지만 현재 업계 동향과 함께, 학부뿐 아니라 석박사 졸업생들까지 염두에 둔 진로 관련 조언들을 해주셨다. 나랑 학부 학번이 같으시고 생각보다 human distance도 가까운 덕분에 겹지인들이 꽤 있다보니, 학교 졸업하고 떠난 그때 그 시절 사람들 얘기도 오랜만에 해 볼 수 있기도 했다.


밑에는 분야 자체에 대한 질의응답 위주로만 썼는데, 사실 이번 특강 시리즈의 포커스는 다중전공자 및 희망자의 학업 및 진로설계 쪽이었다. 센터에서 각종 경로를 통해 다중전공자나 특이 이력자를 파악하고 있다가 연락을 줘서 섭외를 한다고 하는데, 나도 평범하지 않게 다중전공을 했던 경우인만큼, 만약에 나도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이런 자리에 섭외가 된다면 보람차겠다는 상상도 해 보게 된다.


질의응답 요약

- 퀀트 일은 크게 연구 / 검증(구현 포함) / 운용 으로 나뉘는데 기본적으로는 (프랙티컬한) 리서치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손가락 끝에 수백억이 달린 트레이더와는 구분되는 편이다. 물론 퀀트 리서쳐도 회사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당연히 아주 큰데, 트레이더와는 책임의 양상이 다른 것이다. 검증 및 구현은 연구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면 된다. 운용은 회사의 방향과 관련된 거시적인 의사결정을 말하는데, 운용 관련 능력은 학교에서 쌓긴 어렵고 업계에서 연차를 쌓으며 얻어야 하는 것.


- 퀀트는 계속 배워야 살아남고, 수학, 물리, 통계학적 기초체력이 높아야 한다. 학업 내용들 자체보다도, 어떤 새로운 걸 봐도 쫄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
(이건 오늘 오신 인공지능, 언어모델 쪽 연사 분도 정확히 같은 단어를 써서 이야기하신 부분. 이공계 쪽 챌린징한 일들은 대부분 마찬가지인 듯)


- fancy한 업계에서의 튀는 이력일수록, 그 당시 업계 사정에서만 가능했던 예외 사례일 수 있다. 그렇다고 표준적인 이력을 따라가서 성공한 사람을 너무 롤모델 삼아 따라가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력상에 안 나오는 요소들이 영향을 주었을 수 있다 (퀀트뿐 아니라 general하게 의미 있는 wisdom인 듯).


- SDE를 비롯한 금융수학이 얼마나 활용되나?
: SDE는 퀀트헷지펀드를 기준으로 옵션, 단기예측 쪽에서는 활용을 하는 것 같은데, 현재 퀀트 전반적으로 각광받고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경우에따라 재조명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SDE라는 수학분야를 알고 있으니 그게 그 자체로 많이 쓰일 거라고 기대를 하기보다는, 나는 이런 정도의 수학을 이해하고 내 아이디어로 삼아서 사용할 수 있다 라는 개인역량으로 어필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 시장을 읽고 대응하는 능력, 수리적 이해능력, 빠른 습득 및 적용 능력 중 퀀트에 가장 중요한 역량을 꼽자면?
하나만 꼽기보다는 순위를 매기자면 1: 시장 2: 수리 3: 빠른적용 이다. 그런데 LLM 도입 이전까지는 정반대였다. 3이 edge가 되는 리서쳐는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2는 LLM이 대체할 수도 있겠지만 훨씬 늦거나 제한적일 것으로 본다. 1은, 시장 분석까지는 LLM으로 되겠지만 의사결정은 자신의 몫이므로 대체되기 힘들 것 같다. 그리고 애초에 시장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높지 않다면 좋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게 어렵다.
(여담이지만 이건 내가 등록한 사전질문인데 아주 좋은 질문이라고 해 주셔서 뿌듯했음)


- 자격증은 가점이 굳이 된다면 CFA 정도이지만 크지는 않다. 그 자체로 가점이 된다기보다는, 쌩 이과 출신인데 CFA가 있다면 금융 모르지는 않겠구나 정도이다. 그렇다고 CFA 있는 걸 특이하다거나 낭비라고 보는건 아니고, 있으면 당연히 좋다.


- 추천하는 실전 경제 공부법이 있다면?
1. 작은 금액이라도 다양한 섹터를 해보기
2. 실질 소득을 냉정하게 판단 (세금, 은행 이자수익 대비 상대값, 현금화비용 등 다 고려)
3. 확증 편향을 안 하는 습관


- 물리학 전공자가 여전히 많은가? 업계 경험상 그들이 특별히 보완해야 할 능력?
: rocket scientists in wall street 시절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굉장히 많다.
: 특별히 보완해야 할 능력? 이론적으로 파다 보면 리서치의 호흡이 느려진다. 일단 들어오고 나서 연습해도 되는 거긴 하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나 view를 전환, 도입하는 능력의 속도를 높이는게 필요하다.


- 비 stem 리서치 경험도 채용에 도움?
: 무조건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재밌어하고 연구 경험을 좋게 본다. 예컨대 퀀트를 위한 LLM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철학 전공이 도움이 된 사례.
: 본인의 아이디어가 테스트로 확인이 안 되더라도 말이 되고 창의적이라면 채용에 가점이 될 수 있다.


- hedgefund brainteaser 이런 식으로 구글링하면 나오는 퀴즈를 많이 풀어 보는 게 좋다.


- 너무 이것저것 요건을 채우기보다 자신만의 edge를 만들어서 어필하는 게 좋다.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5월 18일 토요일

[음악 추천]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 (Skrillex) - Squijeeblion cover

Skrillex의 Scary Monsters and Nice Sprites는 명실상부 2010년대를 대표하는 전자음악 곡 중 하나로, 더 말할 필요가 없이 유명한 곡이다. 그런데 이번에 동아리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 어떤 분이 올려 주신, 정말 인상깊은 커버를 발견했다.

이 커버는 Leonard Solomon (개인 홈페이지: http://www.bellowphone.com/) 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bellowphone"에 올라왔는데, Squeejeeblion이라는 이름의 자체 제작 악기 세트를 이용한 연주를 보여준다.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여러 기계장치와 악기 세트들 사이에서, Squeejeeblion을 꺼내 놓고 약간 느린 템포로 홀로 한 음 한 음 연주하는 모습 자체가 매우 인상깊다. 연주를 들어 보면 더욱 그러한데, 일반적인 피아노 및 어쿠스틱 커버와는 다르게, 악기 세트의 이름대로 squeeze하는 악기를 이용해서, 누가 들어도 덥스텝의 어쿠스틱 버전이구나 라는 느낌이 나게끔 원곡의 특색을 창의적으로 살려서 연주한다. 이 연주에서 느껴지는 다소 웃기면서도 극도로 서정적인 분위기가 정말로 마음에 든다.


이분의 웹사이트를 보면 Squeejeeblion 외에도 여러 가지 기계장치를 이용한 멋진 악기들을 제작하고, 이에 대해 글도 쓰고 공개 공연도 하고 교육(?)도 하는 듯하다. 어떤 분인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 시간이 나면 더 찾아봐야겠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4월 11일 목요일

22대 총선 단상: 정권 견제는 다행이나 미래정책 실종이 아쉽다

어제는 22대 총선이 있었다. 나는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며 종합선거상황실(?)을 차려놓고 출구조사를 본 뒤에, 할 일을 하다가 새벽쯤 주요 격전지만 좀 다시 들여다 봤다.

자취방에 차려진 종합선거상황실(?).


국가대표 축구 경기나 전국구 선거 등의 행사가 있을 때면
BBQ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 시청하곤 한다. 

다음날의 해가 뜬 지금 정리되어 가는 결과를 보니, 더불어민주당(161), 더불어민주연합(14, 시민 및 진보 포함), 조국혁신당(12)을 합쳐서 범민주계열은 187석 정도를 가져갈 모양이다. 여기에 실질적으로 야권 연대에 의미가 있는 숫자는 아니지만 개혁신당 등도 야권으로 친다면 190석 초반 정도까지도 볼 수 있다.

총선 전날에 나는 더민주+더민연+조혁 합쳐서 185석 정도를 예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거의 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운좋게 실제 결과와 상당히 근접했던 내 의석수 예측.

다만 이것을 지역구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예상한 것은 당연히 아니고, 200석 이상까지 조심스레 점치던 주장들은 공통적으로 수도권과 PK의 격전지들에 대해서 너무 낙관하는 것 같고,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를 너무 낮게 잡는 것 같아서, 분위기 봐서 이를 적당히 낮추어 불렀더니 대충 비슷하게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집권 이후에는 잇따른 외교 실수와 그에 대한 부적절한 국내 대응, 이태원 참사, 수능 킬러문제 논란, 재정건전성으로 얼토당토않게 위장된 심각한 세수부족, 과학기술 R&D 예산을 비롯한 수많은 정부사업 졸속 삭감, 역사관 논쟁, 해병대 채상병 사망 사건과 이종섭 호주대사 도피임명, 방송장악, 무대책 졸속 의대 증원 등을 비롯한 수많은 논란거리들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비판을 차단하기 위한 졸속 조치들로 오히려 일을 계속 키우는 괴상한 대응의 방식을 매우 일관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번에 여당이 참패한 것은 이러한 정부여당의 태도 때문이며, 선거결과의 이러한 면 자체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의 결과가 전혀 기쁘지도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들지 않는다. 그 이유를 마지막쯤에 쓰겠다.


먼저 여론조사 공표금지 직전까지의 각종 조사결과들과, 개헌저지선 확보를 향한 국민의힘의 간절한 호소, 그리고 출구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야권우세(200석 이상)를 감안하면 범민주 계열이 약간은 김새는 면이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것 자체만으로 뭔가 아쉬운 느낌을 받기도 하는데 후술하겠지만 좀 다른 국면을 생각해야 한다. 결국 출구조사는 출구조사일 뿐이니 그것보다 적게 나와서 아쉬운 것에 과잉된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수도권 격전지와 PK를 국민의힘이 안정적으로 지켰다. 정치 구도 자체에 균열과 충격이 생길 정도의 결과는 아니다.

따라서 보수언론이 선방이라고 평가해 주면서 정부여당을 보호하는 논리를 펼칠 구석이 은근히 좀 있다. 이런 흐름에 따르면 대통령실 대대적 개편과, 비윤 중진들 다수 당선에 따른 정부여당의 관계 재정립은 어느 정도 일어날 수 있겠지만, 대통령실이 지금까지와 다른 겸허한 태도, 경청하는 태도로 근본적인 변화를 하는 일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민주세력 입장에서도 이번 결과는 기존 구도에 비해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의석이 아니기 때문에, 의석은 많지만 이걸로 어떤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반환점을 돈 시점 이후 (특히 최후반) 에 민주당이 180석을 가지고 진행하던 여러 입법들 중에서도 국민생활문제에 밀착된 것과 나라의 미래에 관련한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집중해서 밀어붙였던 권력기관 개혁 관련 입법에서는 국정 동력을 과도하게 소모해버리며 확실한 결실 없이 정권이 끝나는 모습을 봤지 않는가. 게다가 어쨌든간에 압승은 압승이기 때문에, 현재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한 쇄신의 계기도 딱히 마련되지 않고 계속 곪아 갈 것이다.


의석 수와 별개로 구체적인 판세를 통해 민심을 짚어 볼 수도 있다. 일단 민주당이 압승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긍정적인 존재감을 발휘하면서 끌고 간 선거가 아니다.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 정서, 그리고 역으로 이재명, 조국에 대한 심판(?) 정서만이 선거에서 부각되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먼저 수도권 격전 예상지역들에서 민주당이 대부분 패배한 것뿐만 아니라, 서울 지역구들 중에 원래대로라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들에서도 생각보다 접전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는 점은 민주당이 대단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도봉갑, 마포갑, 동작을에서의 패배, 송파병, 영등포을, 강동갑 등에서의 아슬아슬한 승리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유를 꼭 알아야 한다. 아무리 지역특색의 변화가 있었기로소니, 각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정치역량에 대한 반성도 반드시 필요한것이다.

또한 PK 격전지에서 은근히 기대했던 곳들 중에서도 단 한 곳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히려 21대 총선보다 더 안 좋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즉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론에도 불구하고, 원래 민주당을 안 뽑던 사람들까지 민주당을 뽑으러 투표장에 나오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고, 그렇기 때문에 의외의 곳에서 의석을 넘는 이변을 일으키지 못한 것을 넘어서, 오히려 밀리면 안 될 곳들에서도 상당부분 따라잡히거나 밀려난 것이다.

즉 의석 수에 비해서 선거의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민주당에게 생각보다 좋지가 않다. 이런 걸 감안하면 자칫하면 민주당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지부진한 선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조국혁신당이 등장해서 선거판에 활기를 확 돌게 만들면서 지지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오히려 민주당세까지 같이 견인해 준 면이 있다.


결국 대통령실 입장에서도 겸허한 태도로 돌아설 계기가 없고, 민주당 입장에서도 당내 쇄신의 계기 및 지금까지와 질적으로 다른 개혁적 국회운영의 동력이 없으므로, 당분간은 별다른 일이 없는 한은 각종 민주당 취향의 입법과 그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민주당의 특검 시도, 정부의 언론장악 등 지금까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답답한 정국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실이 주요 사건사고에 대해 제대로 책임을 인정하고 정석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정말 단 한 차례도 못 본 것 같은데(...) 이런 모습은 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대통령 본인의 태도 변화를 통해 꼭 좀 바뀌었으면 한다. 걱정에 비해 선방한 부분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참패했다는 큰 결과를 바탕으로 겸허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개혁신당의 이준석은 좋으나 싫으나 커다란 정치적 자산을 얻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여당 당대표 자리에서 노골적인 대통령실의 의중으로 완전히 쫓겨났는데도, 애매한 태도 없이 얄미울 정도의 선명한 반윤석열 스탠스를 보여주며 혼자 힘으로 살아 돌아와서 마침내 당선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종일관 밀리는 결과가 나오다가 개표에서 드라마틱하게 당선되는 서사가 생기면서 보도도 많이 되고 국민들의 인상에 남았기 때문에, 의석 수에 비해서 더 많은 주목을 받고 향후 주요 선거에서도 일정 정도 존재감을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약자 계층에 대한 혐오, 차별 정서에 의존해서 정치적 기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성장해 온 면이 크다 보니 개인적으론 퍽 우려가 된다.


조국혁신당은 대정부 강경노선과 함께 조국 후보의 대표 컨텐츠인 '사회권 선진국'을 내세우면서 민주당에 비해 조금 더 선명한 진보개혁적 색채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것 자체는 좋지만 대기업 임금 제한 등 괴상한 정책으로 지지자들에게마저 의문을 사고 비판을 받는 등 준비가 부족해 보인다. 주요 정당치고는 역대 한국정치에 없었던 수준의 서울 강남 엘리트 편중도 큰 한계점이다.

창당 초기 목표보다 훨씬 많은 의석으로 당선이 된 얼떨떨한 상황이고, 나라의 체질을 바꾸는 진보개혁적 의제와 정권심판이라는 커다란 사안들을 제대로 추진해 나갈 실질적인 실력이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이준석과 함께 정권이 불편해할 만한 구도를 연출하면서 일정 정도 의석을 차지한 것은 사실이므로 흥미롭게 지켜볼 만하다. 정부여당은 입시비리 범죄혐의자라는 낙인을 가진 조국이 이렇게 돌풍을 일으키는, 3년 전은 물론이고 반년 전에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결과가 왜 나왔는가 한번 겸허하게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녹색정의당은 오랜 기간 정의당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해오면서 인지도는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서 결국 한 석도 차지하지 못한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다. 이 결과를 현실적으로 본다면, 좋으나 싫으나 민주당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 단독으로 지역구 후보를 당선시킬 능력까지는 없었고, 정의당의 주요 후보가 있되 민주당과 단일화를 해야만 야권이 이길 수 있는 아슬아슬한 지역구도 크게 없다 보니, 단일화의 동기도 양쪽 모두 크게 없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도 결국 소수정당에 좋은 쪽으로 작용을 하지 못했다. 정의당과 민주당의 심리적 거리가 8년 전에 비해 매우 멀어졌고, 반쪽짜리 비례대표제로 인해 탄생한 기형적 비례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도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진보당보다도 안 좋은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다. 민주당이 당분간 관심을 갖지 않을 것 같은, 정의당이 상징해 온 진보적 가치들이 의회정치에서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면서 이슈파이팅이 되면 좋은데 참 답답한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번 선거를 보며 전혀 기쁘지 않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안 되었던 이유를 얘기해보자. 그 이유는 중단기적으로 여의도 정치 구도가 큰 변화 없이 계속될 것 같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내 생각에 위의 모든 논의를 뒤로하고 이번 선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정책 실종 선거, 그중에서도 청년 실종 선거였다. 상대방 진영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의 주요 동력이 되었고 정책 공약, 심지어 정치이념의 이슈마저 이에 묻혀 버린 느낌이 있다.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하는 '어차피 누가 되든 똑같어~' 라는 클리셰 같은 정치혐오적 언설은, 우리나라의 지금까지와 같은 성장세가 앞으로도 계속된다면야 아주 큰 틀에서는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위기와 불가역적인 기후변화를 비롯한 세계 체제의 총체적 위기에 더해서, 선진국이라면 으레 접어들게 되는 저성장이라는 국면, 그리고 극단적 저출생과 서울집중이라는 거대한 망국병까지 앓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외교안보 환경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의 체질을 어떻게 개혁할지를 결정해서 최대한 파국 없이 연착륙을 하려면 효과적인 정책을 통해서 선제적,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어느 세력이 집권해서 4~5년간 어떤 정책을 집행하느냐가 그야말로 나라의 미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는 결국 미래세대를 타겟으로 한 정책들이 적시에, 애매하지 않고 확실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감소 때문에 청년 세대에 대한 정치적 주목도는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기막힌 상황이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망국병의 직접적인 여파가 목도되기 전에 나라의 체질을 개혁하는 선제적인 대응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확실한 근거는 없는 느낌이지만, 딱 우리 세대쯤이 그 여파를 방파제 없이 정면으로 맞고, 그 이후 세대쯤부터 부랴부랴 대책이 마련될 것 같다는 (그리고 그때쯤이면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미 늦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좋지가 않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차이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행동의 LLM 표현공간을 이용한 모형화 제안

다개체 동역학 시스템(Multi-agent dynamical systems)의 관점에서, 타 개체에 대한 아주 원초적인 호불호의 감각들과 기본적인 사회적 행동의 규칙들만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복잡다단해 보이는 social behavior들 (대표적으로 이지메 같은 것)을 재현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들이 재현된다면, 반대로 최소한의 개입으로 특정한 현상을 억제하는 external control도 개발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아주 원시적인 버전을, 2018-2 학부 시절에 수강한 최적제어이론 수업 프로젝트에서도 풀어낸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다룬 문제는 이지메는 아니었고, 죄수의 딜레마 (정확히는 죄수의 딜레마를 연속 시간 및 연속적인 협력도에 대해 일반화한 CAIPD라는 모형) 때문에 낮은 수준의 협력에 머무르고 있는 동역학계가 있을 때, 한 agent에만 외부 제어입력을 가함으로써 인위적으로 협력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협력도를 높이기 위한 최적의 제어입력을 구하는 것이 해석적으로 풀리는 문제는 아니어서, 기본적인 분석만 한 뒤에 제약된 조건에서 의사-최적 해를 수치적으로 구했다.


여기서 중요한 목표는 당연히 최종 시점의 협력도를 높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약간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시간에 따른 두 개체의 '협력도 차이의 누적량'을 최소화하라는 조건도 넣었다. 사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최종 협력도가 높더라도 한쪽만 협력 의사가 많고 다른 쪽은 협력 의사가 별로 없을 경우 상당히 stressful한 상황이 되고, 실제 고도의 사회적 상호작용과 목표 달성은 실패하고 있는 상황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서, 개체들간에 고도의 지적 판단 없이도 본능적으로 느끼고 표출하는 '차이의 감각'이 서로를 이해하거나 배제하는 핵심 기제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내 오래된 직관과도 관련이 있다. 간단하지만 지금 봐도 꽤 재밌는 디자인이다.


그런데 그런 원초적인 호불호의 감각이나 다양한 감정에 해당하는 internal state를 그럴듯하게 모형화하는 것이 어렵다 보니, 이 프로젝트는 각 개체의 상태가 '협력도'라는 단 한 개의 축으로 되어 있는 지극히 간단한 모델을 이용하여 수행되었다. 게다가 더 심한 문제는, 개체에 가해 주는 외부 입력의 인간학적 해석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냥, 이유는 모르지만 한 개체가 갑자기 협력할 의사를 갖게 될 뿐이다. 겸손하게 말하자면, 협력도를 높이라고 시켰으니 당연히 높아지는 상황 정도에 그친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낮은 협력도를 유지하게 만들어진 모델인데도, 한쪽만 일부러 높여 주면 다른 쪽이 같이 올라갈 수 있다는 내 관찰은 죄수의 딜레마 모델의 동역학적 특성에 대한 분석으로서 의미가 있기는 하다.


여하튼 이러한 한계의 이유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모델이 너무 단순해서이다. 그러나 이를 굳이 거창하게 말해 보자면, 내가 사용한 모델의 internal state가, 외부 입력에 의해 간접적으로만 액세스되는 인간의 감정적, 사회적 특징을 모사하지 못했고, 그 이전에 state space의 차원 (협력도라는 1차원 축) 자체도 그런 일을 절대 수행하지 못할 만큼 낮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된 모델이 떠오르기 이전에는 이 주제와 관련해서 더 자세한 탐구는 하지 않게 되었었다.


생성AI 시대가 된 지금, 오랜만에 이 주제를 꺼내 보고 다시 떠오르는 게 있다. 먼저 위와 같은 감정적인 부분에 대한 internal representation을 갖고 있는 LLM agent들을, 그런 부분들 위주만으로 남겨서 경량화하거나 미세조정(fine-tuning)한다. 만약에 경량화시키는 방식 자체를 달리하거나 혹은 노이즈를 주어서 agent별로 약간의 차이를 두면, 이는 사람별 성격 차이 혹은 인지 도식의 미세한 차이에 대응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representation을 여러 방법으로 뜯어서 이해해 본다.

그 다음에 특정한 상황을 제시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여러 agent들 사이에 최소한의 짧은 사회적 상호작용들과 의사소통을 하게 한다 (이런 것 자체는 이미 여러가지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그 종류에 따라 LLM으로 하여금 서로 다른 emotional, social한 representation을 시시각각 동원하게 할 것이다. 만약에 경량화를 했더니 상황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고 인간적 능력이 깎여 나가는 것이 관찰된다면, full weight를 가지면서도 최소한의 짧은 상호작용만을 하는 stylized output을 내도록 프롬프팅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다음에 dialogue의 한 round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관찰을 하면, LLM이라고 특별한 취급을 할 것 없이, 정해진 weight 값과 약간의 stochasticity를 바탕으로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어떠한 연속시간 동역학계라고 간주할 수 있다. 물론 LLM인 만큼 굉장히 차원이 크겠지만, 로컬에서 inference할 수 있게 경량화된 LLM 같은 것도 있다고 하니 비용 면에서 아주 불가능한 수준의 일은 아닐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어진 설정과 외부 환경 하에서 각 개체별 차이에 의해 어떤 social behavior들이 창발하는지, 각 개체들이 어떠한 역할에 놓이게 되는지 관찰해보고, 그러한 현상들이 각 LLM agent들의 고차원 internal representation에 비추어 볼 때 어떠한 인간학적 해석을 갖는지까지 뜯어본다면, 서두에서 언급한 내 오래된 상상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작업의 결과가 실제 사회학이나 심리학 같은 게 될 수는 없겠지만, 통계물리에서도 일부 진행하고 있는, 협력, 진화, 생태 등에서 영감을 받아서 단순화한 모형을 다루는 비선형 동역학 연구에는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거대 딥러닝 모델이 자신에게 주어진 loss를 minimize하기 위해 알아서 형성해주는 고차원의 internal representation들을, 우리가 그냥 주어진 고정된 물체처럼 생각하고(?) 다방면으로 꺼내서 쓰면서 또다른 연구들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Facebook에서 이 글 보기: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