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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1일 화요일

문/이과 융합적 교양 담론을 늘 의심하자

  나는 과학과 인문학 양 쪽 모두를 좋아한다. 하지만 매우 상이한 그 두 가지를 서로 섣부르게 합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그 둘을 모든 수준에서 방법론적으로 치밀하게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표층 수준에서 병존시킨 다음에 얼기설기 연결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과학과 인문학이 동일한 발생적 기원을 가지므로 그 둘은 사실 하나의 진리로 소급된다는 식의 '세련되지 못한 일원론'적 발상, 혹은 과학과 인문학이 지금까지 서로 다른 것이었지만 양 쪽에 능통한 내가 그 둘을 통합해서 하나의 멋진 컨텐츠를 만들겠다는 식의 '르네상스'적 발상 같은 것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발상들은 주로 종교적 신념과 같은 숨겨진 형이상학적 전제에 의해서, 아니면 문화산업을 통해 정치적/금전적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목적에 의해서 발생한다.

  이러한 발상들은 학술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이나, 많은 경우에 대중적으로 학술의 최전선으로 간주되며 이것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이들은 현대에도 '통섭', '융합' 등의 이름을 취한 채,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과 그것을 선망하는 준비생들에게 일군의 교양적 담론을 공급하면서 문화적 권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교양적 담론에서 4차 산업혁명 등 최첨단 과학기술처럼 보이는 것과 명상과학 등 사이비적으로 보이는 것의 기이한 결합이 종종 관찰되는 것은 아마도 이 둘이 위에서 지적한 오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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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9일 일요일

인천 퀴어축제 혐오세력 폭력사태 유감

혐오세력의 난동으로 인해 인천 퀴어문화축제가 부스 설치조차 하지 못하고 사실상 무산되었다고 한다(알아본 결과 무산이라고 기사화는 되었지만 그것은 축제 부스 등이 정상 진행되지 못했다는 뜻이며 많은 대치 끝에 퍼레이드까지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혐오세력이 등장해서 행사 장소를 둘러싸고 참가자가 진입할 수 없게 한 것은 물론, 기존에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이 나가는 것도 막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기존의 어느 퀴퍼보다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폭언을 듣거나 폭행당한 참가자는 수도 없이 많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방화를 위해 기름통을 들고 왔다가 체포되기까지 했다. 무한한 사랑으로 자신들을 위한 세계를 예비해 주었다는 절대자를 닮기를 바라면서 정작 현실 세계에서 사랑을 실천하기는커녕 배제와 폭력만을 재생산하는 이 자들은 사랑을 입에 올릴 자격이 단언컨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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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5일 토요일

과학자를 참칭하는 사이비 구루들을 주의하자

  물리학자 Menas Kafatos는 대체의학자 Deepak Chopra와 함께, 정식 학자임에도 무언가에 경도되어서 우주와 인간을 조화시키려는 사이비 과학자가 된 대표적 서양 학자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이세민이 센터장으로 있는 '일우생명문화융합센터' 에서 초청하면서부터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세민은 세월호 사건 당일에 정윤회와 만나고 있었던 역술인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서양인들이 동양사상에 관심 가지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 중 꽤 많은 경우가 사이비집단을 통해서라는 것이 안타깝다(대표적으로 단월드). 이들은 단순히 유사과학을 전파해서, 혹은 오리엔탈리즘적이라서 막연하게 나쁜 것이 아니라, 유사과학을 활용하여 자기들만의 왕국을 짓고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과 협력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나쁘다. 이공학도에게 사회적 책임이 부과된다면 그 1순위는, Menas Kafatos와 같이 과학 지식을 통해 정신적 수양과 삶의 지침을 제공하겠다는 Guru와 같은 인물과는 되도록 엮이지 말고, 이들은 과학자이든 아니든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는 것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임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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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8일 토요일

합리성과 공감

'공감 능력'이라는 개념은 감정-이성 이분법 상에서 흔히 감정의 영역으로 분류되곤 하지만, 사실은 상호주관적 '이성'의 영역에서 설득력 있게 정초될 수 있다. 나는 늘 합리성의 두 거목으로 칸트와 하버마스를 지목한다. 감성과 이성(정확히는 오성)을 서로 대립시키지 않고 둘 모두를 인식판단에 이르기 위한 불가분한 요소라고 간주하여 성공적으로 통합한 칸트 인식론의 성과와, 칸트의 고독한 의무론적 윤리를 비판적으로 보완하는 하버마스의 상호주관적 윤리학의 성과를 함께 고려함으로써 공감 능력을 합리성의 영역에 통합하는 기획이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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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5일 수요일

안희정 1심 선고 유감

  성폭력 상황의 애매성에 의한 고질적인 증명부족 문제가 얘기되는데, 아래의 대목을 보면 원인을 거기에만 귀속할 수는 없으며 성폭력에 대한 사법부의 인식 개선 역시 분명히 필요해 보인다. 피해자가 피해를 입은 즉시 기존의 업무상 관계를 피해자-가해자 관계로 스스로 전환이라도 해야 한다는 말인가? 위계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전환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김씨가 피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안 전 지사에 대한 존경을 나타낸 점, 지난 2월 마지막 피해를 당할 당시 미투 운동을 상세히 인지한 상태였음에도 안 전 지사에게 그에 관해 언급하거나 자리를 벗어나는 등 회피와 저항을 하지 않은 점 등을 보면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지적했다."
[ 안희정 '성폭력' 모두 무죄... "성적자유 침해 증명 부족" (종합) (2018.08.14)] )


(1) 애매하다는 특징을 갖는 성폭력 혐의를 합리적으로 입증하기 위한 신뢰로운 방법이 연구되어야 한다. 이건 연구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문제인데 지금은 피해자 개인의 입증 능력에 과도하게 맡겨져 있는 것 같다.

(2) 위의 애매성과 별도로 성범죄 처벌을 유달리 어렵게 만드는 추가적인 법률적, 현실적 요인들이 개선되어야 한다. 법의 여러 원칙들은 지켜져야 하지만, 법의 원칙에 어긋나거나 법률적인 틀로 담아낼 수 없으므로 처벌이 힘들 수밖에 없다는 태도'만을' 갖는 것은 지나치게 방어적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법의 원칙을 수호하면서도 처벌의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입법적 노력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3) 성폭력에 대한 검경 및 사법부 구성원 개인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 물론 판결문만 보고 판사의 인식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서 공유한 기사에 나온 것 같은, 판결에서 엿보이는 인식상의 문제를 애써 무시하고 무한히 합리적인 가상의 사법부를 상정하는 것은 더 이상하지 않나. 이 문제가 개선된다면 (2)와 관련된 대중 설득도 좀 더 수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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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 목요일

유튜브의 이상한 분노 자극 영상들



  유튜브에서 '카톡'을 검색해 봤는데, 세계에 자랑할 만한 한국 고유의 대중예술 장르가 형성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진위 여부조차 불분명한, 시청자들의 분노 및 억울함을 자극할 만한 카톡 대화를 영상으로 만들어서 띄워 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분노의 대상에게 통쾌하게 복수해서 쩔쩔매게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이런 영상들의 다수가 '김치녀', '맘충' 등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각종 창의적인(?) 소재들이 많이 있으며, 남자친구의 데이트폭력, 집착 등을 소재로 한 영상들도 좀 있기는 하다. 조회수 100,000이 넘는 영상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데, 사람들이 유튜브에서 이런 걸 찾아 보면서 분노와 통쾌함을 재생산하고 현실 인식에까지 영향을 받는 이런 기이한 모습은 디지털 시대 대중예술의 디스토피아적 귀결 그 자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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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31일 화요일

서태지 8집 발매 10주년을 기념하여

  어제는 서태지 8집이 나온 지 정확히 10년 째 되는 날이었다. 정확히는 정규 8집이 나오기 전에 미스터리 컨셉의 프로모션이 진행된 뒤 <Moai>, <Human Dream>, <T'ikT'ak> 등이 수록된 첫 번째 싱글이 2008년 7월 29일에 발매되었고, 나머지 곡들은 그 이후에 2회에 걸쳐 공개되었다. 내가 생애 처음으로 일부러 찾아서 들어 본 노래가 서태지 8집이고, 이것을 계기로 서태지를 통하여 록의 다양한 장르를 접하기 시작한 만큼 내겐 2018년 7월 29일이라는 어제의 날짜가 괜히 감회가 새로웠다. 이하에서는 서태지에 대한 몇 가지 생각과 함께 좋아하는 곡들을 추천해 보기로 한다.

  이 10년이라는 숫자는 이 글을 쓰면서 내게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숫자이기도 하다. 메탈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인 서태지가 댄스그룹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으로 넘사벽급 커리어를 쌓고 은퇴하였을 때가 서태지가 불과 25세일 때로, 그가 악기를 처음 잡은 지 약 10년만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저런 걸 이뤄낼 수 있는 기간인데 나는 10년간 무엇을 했는가? 서태지가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엄청난 인기를 바탕으로 기존 음악산업의 관례를 무시한 채 마이웨이를 걸으면서 개인적 성공과 함께 사회에도 많은 화두를 던진 것을 보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만화적 인물'이라는 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4집을 끝으로 서태지와 아이들 활동을 정리하고 은퇴했던 서태지는 귀국하지 않고 앨범만을 발매한 솔로 1집(통칭 5집)을 거쳐, 새빨간 레게머리를 하고 뉴 메탈 장르의 곡들을 들고 나온 6집 활동을 통해 음악적으로도, 외모적으로도 완연한 로커의 모습으로 컴백하였다. 그러나 그는 로커로 컴백한 솔로 커리어 이후로도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아이돌'적인 면모를 독특한 방식으로 계속 가지고 간다. 한국의 록을 이야기할 때 서태지의 위치가 아주 미묘해지곤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인데, 이것은 첫째로는 그가 록 밴드의 성향과 랩댄스 아이돌의 성향을 결합한 음악적 토양을 가지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후대의 대중음악 판도에는 주로 후자의 면모만이 부각되어 계승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것은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선보였던 랩댄스 음악을 솔로 활동에서는 주로 록으로 편곡하여 선보이면서도, 방탄소년단과 함께한 25주년 기념공연 등 특별한 경우에는 랩댄스 스타일의 원곡을 최대한 살려서 선보이기도 하는 것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로커 출신이지만 랩댄스 위주로 대중음악이 재편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나서 은퇴한 뒤, 다시 로커로 회귀하여 컴백한 서태지는 과거의 랩댄스 아이돌이자 현재의 로커로서 묘한 이중성을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서태지가 로커로 컴백했음에도 아이돌적인 면모가 계속 유지되는 것은 위와 같은 점 외에도, 그의 솔로 커리어의 구체적인 운영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서태지의 솔로 커리어의 매 앨범은 같은 아티스트의 앨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상이한 장르를 보여준다. 6집에서는 공격적인 기타 리프와 차가운 래핑 위주의 뉴 메탈을 표방하였으며, 7집에서는 몰아치는 기타 연주에 마치 다채로운 색깔이 느껴지는 듯한 장조의 선율을 덧붙이는 작법을 구사하였고, 8집에서는 지극히 복잡한 리듬 위에서 록과 일렉트로니카의 화학적 결합을 추구하였다. 그리고 9집에서는 기타의 비중을 축소시키고 통통 튀는 신스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러한 디스코그래피 운영은 넓은 폭의 장르를 수용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서태지의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일관되지 못한 커리어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개별 음반들이 꽤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디스코그래피로 인하여 록 중에서도 특정한 장르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 정통적 록 팬들보다는, 서태지라는 인물과 서태지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 위주로 팬덤이 축소되는 면이 있다. 그리고 이 팬덤은 록 밴드의 팬덤이라기보다는 아이돌 그룹의 팬덤과 닮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서태지의 의중과 관계없이 상당히 많은 록 마니아들에게 서태지와 그의 팬덤이 이질적인 존재로 느껴지고, 때로는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그러나 펜타포트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위와 연결되기도 하는 이야기인데,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설 등 돌이켜 볼 때 웃음만이 나오는 것들을 제외하면, 서태지에게 가장 크게, 또 오래 씌워진 혐의는 아마 '록적 저항 정신의 상업화'일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상술한 솔로 2집(6집) 활동에서 가장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작게는 헤드뱅잉 등의 록적 액션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형화된 안무를 하듯이 구사한다는 비판부터, 크게는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이 있다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저항의 이미지만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뿐 실질적인 저항이 부재하다는 비판까지 수많은 비판이 쏟아졌으며, 이러한 비판은 기성 보수 언론에서부터 진보적 인디씬까지 넓은 스펙트럼에서 터져나왔다.

  그러한 비판들 중 일부는 뼈아픈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서태지가 저항을 상업화시켜 퇴색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각종 문제들에 대한 개인 차원에서의 저항을 실질적으로 성공시켜서 상업적 성공까지 거두었다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서태지는 아이들 시절부터 솔로 시절까지 끊임없이 기획사의 횡포, 음반 사전심의제도, 방송 검열 등 충분한 표현을 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애를 썼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춤출 수 없으면 혁명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서태지의 이런 행보가 인기를 바탕으로 한 대담한 마이웨이에 따른 통쾌한 성공이며 그 과정에서 꽤 많은 사회문화적 변화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변화가 주로 대중음악인의 권리 증진에 집중되었고, 진보적 인디 씬에서 서태지에게 의심 섞인 눈초리로 기대하던 혁명적 사회 변화와 인디 음악의 부흥으로 이어지지는 못하였으므로 비판의 소지가 제공되었다고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서태지는 스스로 끊임없이 혁명가, 문화 대통령이라는 언론의 칭호에 대한 부담감을 표해 왔으며 자신이 자처하지 않은 어떤 사회적 역할이 기대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자주 난처함을 표했다. 말하자면 서태지에게 과도한 사회적 역할을 부여한 것도 서태지 및 팬덤이 아닌 외부의 호사가들이었고, 그 역할이 수행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서태지를 비판한 것도 그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는 솔로 커리어 초기에 서태지컴퍼니를 통하여 인디 씬과 끊임없이 교류하면서 넬, 피아 등의 밴드를 지원하고 록 페스티벌 ETPFEST를 수 회에 걸쳐 주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서태지에 대한 '록적 저항 정신의 상업화'라는 비판은 대체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서태지 솔로 커리어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운드, 가사 등 모든 면에서 솔직하고 강렬한 표현보다는 거의 집착적인 수준으로 세밀하게 정제된 음악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서태지의 곡을 감상할 때 가슴이 뛰는 것과 별개로 그 곡들이 창작된 작법은 디오니소스적이라기보다는 아폴론적이고, 뜨겁고 열정적이라기보다는 차갑고 계산적이라는 느낌이다. 그리고 약간의 '센스' 내지는 '재치'라고 불릴 만한 것들은 많으나, '유머', '인간미'라고 불릴 만한 요소는 0에 가깝다는 점도 특징이다. 아마도 충분히 조탁되지 못한 인간미가 작품에 혼입되는 것을 서태지가 체질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리고 서태지를 둘러싼 '신비주의'라는 유명한 칭호의 본래 정체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이것은 서태지뿐만 아니라 대중적이지 않은 록 음악에서 어느 정도 빈번하게 관찰되는 특성이지만, 서태지는 한때 대중성의 정점에 오른 스타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향을 추구하다 보니 마치 이게 서태지만의 특징인 것처럼 세간에 회자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서태지가 이들 중에서도 유달리 이러한 성향이 강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러한 특성은 가사뿐만 아니라 사운드적인 면에서도 드러나는데, 그는 기타 리프를 raw하게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며, 여러 겹의 소리들로 감싸서 조심스럽게 배치한다(6집 리레코딩은 예외이겠다). 이런 성향은 6, 7집부터 조짐을 강하게 보이다가 8집에서 폭발적으로 발현되었는데 몇몇 평론가들은 이러한 성향을 두고 '자폐적'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어제로서 딱 10년 된 서태지 8집은 그의 이러한 세밀함이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이기도 하고, 서태지가 제일 잘 하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준 앨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8집을 서태지 솔로 커리어의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한다. 곡 하나하나의 밀도가 상당하여 여러 번 반복해서 듣더라도 인지적으로 '재밌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이라는 점도 있고. 그런데 뭐 이러한 서술도 9집에서 인간미를 많이 드러내면서 옛날 얘기가 될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특유의 세밀함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화되었으므로 뭐라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겠다. 아무튼 기대하면서 지켜볼 일이다.

(2) 'Bermuda[Triangle]' (8집 'Seotaiji 8th Atomos', 2008) : https://www.youtube.com/watch?v=km1fuG7svPY
(3) '로보트' (7집 'Seotaiji 7th Issue', 2004) : https://www.youtube.com/watch?v=ToeTsQWSSqI
(4) '울트라맨이야' (6집 'Tai Ji', 2000) : https://www.youtube.com/watch?v=8jtKmWXdhm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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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30일 월요일

음산한 종교적 도상들에 대한 매료

  나는 동서양 문화권을 막론하고 음산하고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주는 종교적 도상들이 뭔가 컬트적으로 마음에 든다. 집에 걸어두고 싶지는 않지만 미술관 같은 걸 차려서 수집해 두고 싶다는 정도의 생각. 특히 상대적으로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르네상스적인 그림들보다는, 지극히 복잡하여 눈과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것들, 종교적 위계에 따라 인위적으로 배치된 것들, 기하학적 대칭성을 갖는 것들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뭐랄까... 분절적으로 언표될 수 없는 고대의 거칠고 원형적인 정신(?)을 담으려고 한 것 같달까. 나는 이런 것들을 본래의 맥락에서 탈각시켜서 내 미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멋대로 향유하고 있긴 하지만, 제작자의 본래 의도대로 향유될 경우에는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정신분석이 문화이론 등에서 많이 쓰이게 된 것도 이런 것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사람들이 많이 요구해서가 아닐까 싶다.

  돌이켜보면 내가 헤비메탈을 처음 접했을 때 마음에 쏙 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메탈밴드들이 컨셉으로 이런 이미지를 자주 차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일부는 진지하게 반종교적인 표현을 위해 다른 문화권의 종교적 모티브를 차용하기도 하고, 다른 일부는 그냥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특유의 시각적 느낌을 주고자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음산한 종교적 도상들에 더불어 나는 이전에 썼듯이 기계스러운(?) 것들에도 강하게 매료되는데, 메탈이 하필 사운드적으로, 내용적으로 그런 기계스러운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나는 메탈 장르를 적극적으로 새로이 찾아서 듣지는 않는데도 불구하고 늘 괜스레 친숙하게 느끼곤 한다.

  막짤 국벤져스는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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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ongkhapa Refugee Tree by Urken La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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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6집 "Tai Ji" 앨범 커버(후면) designed by 전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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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huggah 7집 "Koloss" 앨범 커버 designed by Luminokaya

이미지: 사람 1명
Mexican. Mano Poderosa (The All-Powerful Hand), or Las Cinco Personas (The Five Persons), 19th century. Oil on metal (possibly tin-plated iron), 13 7/8 x 10 1/16 in. (35.2 x 25.6 cm). Brooklyn Museum, Museum Expedition 1944, Purchased with funds given by the estate of Warren S.M. Mead, 44.195.24

이미지: 사람 8명, 웃고 있음, 사람들이 서 있음
국벤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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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7일 금요일

오랜만의 일기

  인생샷, 인생맛집 같은 것처럼, 뭔가를 생각하다가 때로는 '이건 진짜 내 인생주제다,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들이 여기서 종합되어 다뤄질 수 있겠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서 생각이 마구 전개되고 이것저것 찾아보게 되는 때가 있다. 문제는 그 인생주제라고 확신하는 관심사가 지난 1년만 해도 벌써 몇 번씩이나 바뀌었다는 점이다. 아주 넓게 보자면 '합리성'에 대한 관심인 것 같긴 하지만, 딱히 체계적이지 않고 그냥 산발적인 것들이므로 단순하게 요약되긴 어렵다.

  그럴 때마다 카톡 나와의 채팅에다 써 놨던 글 조각들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내 뇌를 그 때의 모드로 되돌려 보고 싶은데 시간이 지나면 그게 불가능해지는 것이 대단히 아쉽다.

  사실 중학교 때는 인생주제라고 일관되게 생각한 게 "물리를 계속 공부하면서도 '일반물리적 센스'를 잃지 않는 것"이었다. 일반물리적 센스라는 것은 그냥 내가 만든 말인데, 지금은 그 때 생각했던 일반물리적 센스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 시절 저 강령을 따르면서 써놓은 글 조각들을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그 당시로 되돌아가서 생각하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마치 남이 써 놓은 글을 읽는 느낌이다.

  아마도 그때 생각했던 '일반물리적 센스'란, 물리적 세계를 이루는 원자들과 그 상호작용을 나름대로 '내면화'함으로써, 추상화된 개념들과 수학적 도구를 쓰면서도 계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결국 수식에만 매몰되면서 현상을 못 보게 되지는 않을지에 대한 불안함이었던 것이다. 그걸 일반물리적 센스라고 불렀던 것은 그냥 내가 그걸 일반물리에서 그나마 잘 해서 그랬을 것이고.

  물론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에서 물리를 공부하면서, 저것이 아주 특별한 관심사가 아니라 충분히 흥미를 가지고 공부한다면 달성할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그 '충분히'의 기준이 생각보다 높기 때문에 갈피를 못 잡는 것도 흔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수하지 않고 일반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닌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모르겠다면 거기가 내 공부의 한계인 것이겠다. 그래서 '일반물리적 센스'에 대한 나의 관심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과학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문학도 아닌', 중간쯤에 있는 분야를 정초해 보는 것이 나의 인생주제라고 생각했다. 저것 역시 적절한 단어를 몰라서 그냥 내가 만든 표현인데, (물리적 세계가 아닌) 인간 세상을 문학으로만 다루는 것은 명백히 불충분하지만, 그렇다고 과학이 발전해서 모든 걸 설명해 주기를 기다리며 모든 뇌피셜을 완전히 중단하기도 아쉬우니까, 그 중간 정도 위치에서 나름대로 '지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제공하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만든 표현이다.

  구체적으로는 과학 자체를 배우는 걸 넘어 그 과학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생각들, 사회 내지는 인간관계에 대해 마치 과학처럼 나름대로 개념을 정의하고 이론을 세우는 것들, 그리고 국어 시간에 배우는 문학 작품들의 형식에서 느껴지는 형용 불가능한 아름다움을 좀 구체적인 언어로 풀어내는 것들 등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첫번째와 세번째는 그냥 교과 공부를 하면서 든 생각이고, 두번째는 내가 사회성이 떨어진다고 자책하면서 주변을 열심히 관찰하다 보니 든 생각이다.

  그런데 웬걸, 대학에 와 보니 이런 분야가 이미 (너무도 당연한 듯이) 있었고 그것은 다름아닌 '철학'이었다. 위 문단의 세 가지 관심사는 각각 과학철학, 사회철학, 미학 정도가 되겠다. 중학교 때는 철학에 해당하는 내용들을 도덕 시간에 단편적으로만 배우면서 부정적인 인상으로 접했고(뇌피셜로 훈계하는 느낌이라), 고등학교 때는 철학을 접할 기회 자체가 적었기 때문에, 그 이름도 익숙한 '철학'이 정확히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그것일 줄은 전혀 몰랐던 것 같다. 이렇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관심사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철학이란 말 자체는 많이 보았지만 대부분 그냥 물리에서의 어떤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말하는 것이었고, 분과학문으로서의 철학에 대해서는 어린시절 모친께서 말해 준 '생각에 대한 학문'이라는 말만을 기억한 채 그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기에, 바로 그게 철학이라는 걸 알고 대단히 반가웠다. 철학 중에서도 여러 가지 우연적인 이유로 미학에 흥미를 느껴서 미학과를 부전공하게 되었고, 돌아보니 마치 필연이자 운명인 것처럼 느껴지는 몇몇 이유가 있지만 필연이란 없으므로 자세한 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잘 맞는 것 같아서 계속 하고 있다.
(참고로 어린시절 모친께서 물리에 대해서는 '힘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했다. 문리대를 나오셨는데 발음 때문에 당시에 잠깐 동안은 물리를 전공했다는 줄 알고 이것저것 물어보았었다. 그 당시에 사회과 교사이신데 물리를 전공했다고 하는 것의 이상함을 아주 막연하게밖에 못 느꼈을 정도로 아무것도 몰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서 이론 물리학자가 될 거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다녔다).

  그런데 철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나의 철학적 성향에는 위에서 말한 중학교 시절의 '일반물리적 센스'가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나는 뭔가를 과도하게 체계화하여 사변적으로 성을 쌓는 것, 상징과 은유, 서사를 오용하는 것을 매우 경계하며, 온갖 분야를 하나로 합치고 거슬러 올라가서 통합된 진리, 내지는 궁극인을 발견하려는 시도를 냉소한다. 따라서 로고스중심주의에 비판적이면서도, 그걸 까면서 나온 상징과 은유, 내러티브에 과잉되게 의존하는 현대철학의 일부 사조에는 더욱 비판적이다. 철저하게 개별 문제의 성격에 따라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을 따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성향은 계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중학교 시절에 추구했던 '일반물리적 센스'와 어느 정도 연관성을 갖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내가 최근에 생각하는 '합리성'과도 통해 있다. 흔히 이성이라고 생각되던 오만한 사변을 철폐하되, 흔히 이성의 오만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것으로 여겨지는 상징, 은유, 서사의 오용 (양적 남용이 아닌 질적 오용이다) 역시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상으로 서사를 경계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겪었던 여러가지 생각의 변화를 자의적으로 엮어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 보았다. 서사를 경계하면서도 결국 서사를 만들어 내고야 마는 이러한 습관이 생긴 건, 내가 했던 생각들이 반드시 어떤 의미가 있어야만 한다는 집착에 의해 사후적으로 어떤 '큰 그림'을 뒤늦게 요청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면서는 이것이 나의 지난 몇 년에 대한 최선의 요약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 생각이 바뀌어 다르게 요약될 것이다.

  아무튼 필연이란 없고 서사 역시 사후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므로, 나라는 인간의 캐패시티를 키워서 다양한 가능성과 기회를 열어 놓으면서도, 밀려오는 우연들에 잘 대처하여 특정한 방향을 향하고 그것이 사후적으로 괜찮은 서사로 요약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라는 자기계발서스러운 결론으로 일기를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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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26일 목요일

저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댄디 보수'를 보며

  K-자유주의자들이 조선일보에서 '댄디 보수'라고 소개되어 이런저런 말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꼰대 보수는 싫다, 2030 '댄디 보수'의 등장 (2018.07.19)] )

  자유는 그 자체로 발견된다기보다는 그 가능성만이 발견되어 실질적으로는 투쟁을 통해 쟁취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사회에서의 권리와 의무를 이론화하는 출발점처럼 여겨지는 사회계약론 역시 - 물론 사회 형성 과정에 대해 일종의 ‘자연 현상’처럼 보고 분석한 것이기도 하지만 - 실질적으로는 근대국가 속에서의 개인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당위적으로 채택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밑바탕에 권리 획득을 위한 투쟁이 있어야만 유명무실화되지 않고 실현되어 유지될 수 있다. ‘사회는 사회계약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자유로운 존재이다’ 같은 명제를 투쟁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연 법칙인 것처럼 이해한 채 전개되는 담론은 유해하다. 내가 한국 보수이념에서의 자유주의, 소위 ‘K-자유주의’를 자유주의에 대한 오독이라고 여기며 매우 경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2년 전에 이에 대해 몇 자 적은 바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002544776503894&id=100002451425265)

  정치적 자유주의자라면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성실하고 근면하게 노력하여 남들보다 잘 되어서 성공을 거두라는 주문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부당한 처사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과 관련되어 있는 ‘불온한’ 영역, 입사지원서의 스펙 란에 써넣기 다소 꺼려지는 영역을 필시 어느 정도 긍정하게 된다. 그러나 K-자유주의자들은 그러한 정치적 영역에서의 행동들을 비판하고, 오직 비정치적이고 소시민적인 노력만이 성공의 정당한 수단이라고 한다. 이것은 한때 '꼰대 보수'들에 의하여 유행했던 노오력 담론과 통하는데, 특정한 방식의 삶만이 정상이고 보편인 것처럼 권장하는 것을 보면 친기업 정서의 확대를 노리는 공작의 산물이라는 혐의도 받을 수 있다.

  차라리 정치적 투쟁을 통한 자유의 획득도 정당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하여 동일한 관점을 적용한다면 일관성도 있고 나름 설득력도 있는데, 이들은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자유 사회를 쟁취하기 위한 수면 아래의 투쟁에 대해 사유하는 것을 ‘불온하다’고 생각하여 폄하하고, 활동가들의 실책이나, 청렴결백한 이미지와 달리 권력을 누리는(?) 모습들을 부각하고 희화화하면서,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삶을 영위하는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스스로는 그런 가식적인 모습에 감화되는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댄디한’ 보수임을 자처한다.

  이들이 정치적 자유에 의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비우호적인 이유는 주로 그러한 활동들이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경제적 자유주의의 이념을 지키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체제 속에서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가 훼손된다면, 즉 자유로워야 할 사람들이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면, 정치적 자유에 의거한 비판이 과연 부당할까?
결국 K-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의, 긴밀하면서도 서로 구분되는 오묘한 관계를 무시하고 후자의 영역만을 긍정한다. 따라서 이러한 K-자유주의는 매우 정치혐오적이고 반동적이다. 이러한 점은 현실 정치 지형상에서도 나타나는데, 지난 박근혜 정권 4년간 자유주의를 자처해 온 청년 보수단체들은 어버이연합과 함께 전경련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는 어용단체로서 박근혜 정권의 이념적 정당성을 결사 옹위한 것을 제외하면 그 정치적 기여가 전무하다.

  폭식투쟁을 기획하여 많은 어그로를 끌고 정작 그 실행이 임박하자 비겁하게 뒤로 물러났던 K-자유주의 청년단체의 타고난 반사회성은 벌써 4년이 넘게 비판받았고, 박정희의 국가발전 서사를 찬미하는 기성세대의 보수 역시 태극기집회를 필두로 한 실추된 이미지를 보이며 몰락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한목소리로 ‘댄디’를 자처하고 있다. 심지어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면서 출범한 보수 개신교인 모임으로서 캠퍼스 내에서 수구적인 이미지의 총화와도 같은 ‘트루스 포럼’마저, 채널에 따라서는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강조하기도 하면서 급기야는 이 ‘댄디보수’의 대열에 함께 소개되기까지 하였다. 세련됨을 강조하는 청년보수와 수구적 기독보수의 이미지는 표면적으로 반대되기에 이 둘의 결합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으나, 유튜브의 ‘슈타인즈 채널’ 등을 보면 이미 이 둘의 결합은 ‘화학적 결합’ 단계에 이르렀음을 능히 볼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보다 자세히 써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들이 ‘댄디’를 운운하면서 세련되고 품위있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보수의 품격 상실과 이미지 실추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라고 보지 않으며, 오히려 반사회적 폭식투쟁만큼이나 문제성이 크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약자들이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때 ‘댄디’함을 유지하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변하여 열을 내는 것을 웃음거리로 삼는 일베적 정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페북 판에서 나름 유명한 어느 대학생이 노회찬의 사망과 관련하여 잔치국수 짤을 올린 것 역시 이와 비슷하게, 고인을 모독했다는 데에 진보 진영이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화내는 것을 웃음거리로 삼으려는 일베적 정서와 통해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 혹은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정치적 문제제기가 감정적 표출만으로 끝나지 않고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은 맞으나, 이것은 국민들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접수되어 누적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가 발전해야 하는 문제이지, K-자유주의자들처럼 감정이 섞였다는 이유로 문제제기를 기각하고 조롱함으로써 해결되는 문제는 절대 아니다.

  자유, 합리 등 내가 좋아하는 가치들을 가져가서 오염시킨 K-자유주의자들에 대해 비난을 하다가도, 정작 이 단어들이 오염되지 않고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보여진 적이 있는지를 생각하면 조금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자유와 합리를 좋아할수록 이들 단어의 의미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실제 정치적 문제에 적용해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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