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모로 애매한 사퇴의 시점
소위 '조국 사태'의 시작은 대략 지난 8월 중순부터였을 것이다. 자녀 입시 및 장학금 문제, 사모펀드 문제 등 일반인들이 생각하기 어려운 조 장관 일가의 특권들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어느새 엄청나게 커졌다. 장관 후보 한 명의 인선 문제가 정권 최중요 인물 급의 거대한 논란으로 점화되어 버렸고, 전방위적 검찰 수사도 진행되었다. 서초동과 광화문에 많은 인파가 운집해서 지지 집회와 규탄 집회를 했다. 검찰개혁의 선봉장을 자처한 후보가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됨으로써, 검찰개혁을 둘러싼 논의의 도식이 크게 꼬이기도 했다. 따라서 어쩌면 조 장관은 처음부터 검찰개혁이라는 과제를 책임지기에는 문제가 많은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조국의 사퇴는 한편으로는 너무 늦었다.
그렇지만 어찌되었든 조국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총선 부담 등에 따른 연말 사퇴설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다. 논란에 따른 국민적 분열을 감수하고까지 임명된 바, 상처를 감수하고 검찰개혁 특임장관(?) 느낌으로, 검찰개혁안을 어느정도 제도화 선상에 올려놓고 난 뒤에 퇴진한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최선의 정국 수습방안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아직 어떤 것도 불가역적으로 실시되지는 않은 상태에서, 조 장관은 사람들의 조심스러운 예상보다도 더 빠른 오늘 사퇴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그의 사퇴는 너무 일렀다.
2. 검찰개혁의 딜레마: 공은 누구에게 넘어갔는가
솔직히 검찰개혁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개인적으로 그 요체가 쉬이 잡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지금까지 법무부 개혁위 측과 검찰 측으로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조치들은 부족하나마 괜찮은 방향의 것들이니, 궤도에 잘 올려놓고 나서 사퇴하는 것이 더 책임 있는 모습일 수 있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힘든 것이야 이미 지난달부터 계속 그랬을 테니, 검찰수사 관련해서 새로운 국면이 있거나, 여당 쪽에서 사퇴 압박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임명 과정에서 국론 분열은 될 대로 되고 본인과 주변 역시 망가졌는데, 숙원이었던 검찰개혁 조치를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최소한의 물리적 기한은 가진 뒤 사퇴하면 안 되었나. 검찰개혁이라는 의제 자체도 그렇지만, 국민에 대한 책임의 측면에서도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검찰개혁의 선봉장이 바로 검찰의 전방위 수사 대상이라는 기막힌 사태에 의해 전선이 복잡하게 꼬여 버린 상황에서 조 장관의 사퇴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수사가 장기화되는 와중에 장관 발 검찰개혁도 계속된다면 결국 실제의 의중과 별개로, 두 가지 사안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이라는 보편적 의제를, 조국 수호라는 특수한 의제로 축소시켜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사퇴와 같은 결단이 필요했다(이는 조 장관의 입장문에도 어느 정도 드러나 있기도 하다). 다만 그 옵티멀한 시점은 지금보다 좀더 나중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아쉽다.
서초동 집회에서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이 동시에 외쳐진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검찰개혁 필요성'이라는 보편적 의제가 '조국 사퇴 트라우마로 인한 검찰개혁 필요성'으로 인식되면서, 보편성을 잃고 세력 간의 복수와 같은 개념으로 축소될 것 같아서 나는 두렵다.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한다. 개혁의 과정에서는 세력끼리 치고받으면서 승기를 점하는 구도가 어느정도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목표는 '자신들의 승리'가 아니라 제도의 올바른 구현에 있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조 장관은 사퇴했고, 검찰개혁이라는 의제는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긍정적으로든 냉소적으로든 국민 일반에 확실하게 각인되었으니, 그 구체적인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책임이 붕 뜨면서 국민 전체에 공이 넘어가 버렸다. 지금까지 나온 개혁안들은 물론이고 그 이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이에 대해 국민적 논의가 충분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3. 윤석열 총장의 딜레마: 검찰개혁을 완수해야만 하는 이유
모두가 망가지고 있는 이번 국면에서, 최근까지 그나마 제일 '정석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윤석열 검찰총장이다(물론 윤중천 관련 의혹보도는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하겠다). 권력의 핵심인사일지라도 전방위 수사를 한다는 점, 그리고 임명 취지대로 꽤나 과감한 자체 검찰개혁 방안들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과 같은 이상한 상황에서 그런 '정석적인' 행보를 밟았기 때문에 윤 총장의 의중을 짐작하고 해석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면이 있다.
검찰이 기존엔 이 정도로 현 정권 핵심 인사를 날카롭게 겨누어 전방위 수사를 한 적이 잘 없다는 것, 그리고 하필 윤 총장 임명 후 첫 대형 이벤트가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였다는 두 가지 우연(?) 때문에, 조국 지지자들에게 윤 총장은 적폐청산 검사에서 순식간에 적폐 검사로 낙인찍혔다(참고로 어린이들을 동원하여 윤 총장 등을 모욕하는 동요(?)를 만든 '주권TV' 채널은 조 장관 지지자들 입장에서도 트롤러(...)라고 할 만한, 전혀 다른 성향의 채널로 보이던데 동질적으로 취급된 점이 아쉽다).
윤석열 총장이 검찰 개혁의 의지가 있는지, 아니면 검찰을 비호하고자 하는지는 본인만이 아는 일이고 시대가 평가할 일이다. 그러나 윤 총장이 청와대에 조국 임명 철회를 건의하고자 시도했다는 설, 그리고 조국 수사 개시 전에 '이러다 정권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라고 사석에서 말했다는 설이 사실이라면, 그 말은 현재 국면에 대해 그가 가진 생각을 어느정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엄중한 사안이고 문제가 될 사안인 만큼 검사로서 수사를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합당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 장관의 혐의와 별개로, 언론에 수사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지극히 잘못된 관행도 역시나 볼 수 있었다. 그런 일을 한 일선 검사들과, 윤 총장을 동질적인 행위자로 봐야 할지 이질적으로 봐야 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전자라면 윤 총장도 결국 검찰 기득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검사인 것일 테지만, 후자라면 검찰 수사의 잘못된 관행이 아직 청산되지 않은 것일테다. 자극적 보도는 언론의 속성이다. 그러나 그 소스를 제공하는 검찰의 수사정보 유출은 청산되어야 할 관행이다. 일반적인 수사도 정치검찰의 모욕주기로 보이게 만드는, 아니, 스스로를 실제로 정치검찰로 만드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검찰이 다른 세력, 다른 사건들에 대해서도 강력한 기준을 보여준다면(그러면서도 포토라인 폐지, 수사정보 흘리기 금지 등 개혁조치는 유지된다면), 윤 총장의 행보는 모두에게 비교적 긍정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비교적 건실한 정권의 핵심인사를 겨눈 전방위 수사가 이번으로 일회적인 데 그친다면,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현재 친문 지지자들의 실망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윤 총장은 더욱더 임기 중에 검찰에 대한 신뢰를 회복시켜야만 하게 되었다. 용의자 인권 보호와 같은 조치는 물론이고, 눈치를 봐서 수사를 안 하거나, 타겟을 잡아서 표적수사를 하는 등의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고 공명정대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4. 기타: 권력과 특권을 성찰하자
내가 생각하는 현 정부여당 집권층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들 권력은 진짜 권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특유의 태도이다. 김정호 의원이 공항 직원에게 갑질하면서도, 권력을 가진 국회의원으로서가 아닌 저항적 시민으로서의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그 상징적 장면이다. 또한 김의겸 대변인 사퇴 때처럼, 중요 기관 관계자들의 지나치게 솔직한 발언들이 자꾸만 보도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인간적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발언들이라고 생각해서 그럴 것이다.
최근 '조국 사태' 국면에서도 이러한 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알릴레오 인터뷰로 며칠간 화제의 중심이었던 유시민 이사장은 자신을 유튜브 언론인이라고 자칭하면서 '나한테 무슨 권력이 있냐'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조국 관련 폭로를 하자 전화를 걸어서 노골적인 압박을 하면서도 그것이 압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국 장관 본인이 일가를 수사하는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가족이 걱정되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할수도 있지만, 논란 당사자이자 잠재적 수사대상인 실권자로서는 결코 적절한 행동이 아니다. 자신의 권력을 지나치게 잘 행사하면 무섭고 두려운 존재가 되지만, 자신의 권력이 권력인 줄 모르면서 행사하면 추한 존재가 된다. 다들 본인의 권력을 인지하고 자중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점은 조국 일가에 대한 논란, 특히 입시 및 장학금과 관련되어 대두된 공정성 담론이다. 조국 자녀 논란은 웬만큼 지위를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도 상상도 못할 일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명문대라고 하는 곳들에 있는 많은 기회들도 일반적으로는 제도의 형태로 포장되어서 주어지는 것이지, 조 장관의 자녀처럼 관계자로부터 특별하게 케어받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공정성' 담론은 주로 공정성에 그치며, 특권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까지 도달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이겠다. 결국 공정성을 위해 입시 등의 과정에서의 각종 제한과 감시를 강화하는 것을 넘어, 입시를 물질적으로 추동하고 있는 기회 자체의 불균등함까지 해소해야 한다. 교육 기회의 확대와 동시에, 각급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들에서 특권적 색채를 지우고 공공성을 강화하여 그 기회가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에 오세정 총장이 구성원 특혜에 대한 성찰과 공공성 강화의 일환으로, 고교와 교육청을 통해 신청할 수 있는 인턴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지인 통해 알음알음 인턴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성적 장학금을 폐지하여 소득 장학금을 강화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늦었지만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공공성에 대한 고민은 정해진 룰 하에서 반칙이 있었는지의 여부뿐만 아니라, 룰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데까지 도달해야 한다.
끝으로, 스누라이프 인용해서 기사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들인데 언론을 타면서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으며, 눈치를 봐야 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기사화가 꾸준히 된다는 사실 자체가 특권적인 면이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