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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31일 화요일

[도서 소개]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 - 다슌 왕,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우리 비평형 통계물리 분야의 옆집인 복잡계 물리학 분야에서 이번에 교양서 번역이 새로 나왔다고 해서 공유해 봅니다.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 다슌 왕, 앨버트 라즐로 바라바시 지음, 이은, 노다해 옮김, 도서출판 이김(2023).

도서 링크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0778375


<과학의 과학(Science of science)>은 이 책의 제목이면서, 저자인 Dashun Wang이 연구하는 '분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과학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연구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광의의 메타과학 내지는 과학학으로서 과학인문학(과학철학, 과학사, 과학사회학)과 공통점이 많이 있으나, 과학 활동을 분석하기 위해서 인문사회학이 아니라 네트워크 과학을 필두로 한 복잡계 과학 및 데이터 사이언스를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는 과학인문학과도 방법론적으로 구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h-index 등을 비롯한 과학 연구 실적지표를 제안하고 개발하는 '과학계량학(scientometrics)'과는 어떤 관계일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저자인 알버트 라즐로 바라바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Reka Albert, 정하웅 교수님과 함께 인터넷 연결망의 구조 분석, 신진대사 네트워크 분석 등으로 scale-free network라는 개념을 데뷔시킨, 네트워크 이론 및 복잡계 물리학 분야의 거장이기도 합니다.

주로 네트워크 분석 방법으로 사회 동역학과 다양한 사회현상을 연구하시는 이은 교수님과, 역시 네트워크이론 전공으로 과학대중화 및 커뮤니케이션에 힘쓰고 계시는 노다해 선생님이 번역을 했습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제너럴한 독자뿐만 아니라 과학을 업으로 삼는 연구자들이 얻어갈수 있는 팁들도 많이 있다고 하니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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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9일 일요일

미래지향적 연금제도를 바란다: 국가 체질변화의 총체적 과도기를 앞두고

연금개혁은 하기는 해야 한다. 방향성을 전문가들이 잘 정하긴 하겠지만 꼭 지켜져야 할 것이 있는데, 미래 세대까지 실제로 수혜를 잘 입을 수 있는 쪽으로 개혁이 되어야 할 테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할 얘기가 없으니 나랏일(?) 얘기를 자연스레 하게 될 때가 있는데, 얘기해 보면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는 이상 딱 우리 세대쯤부터 국민연금을 내기만 하고 노후에 못 받지 않냐고, 너무 아까운거 같다고 기정 사실화된 분위기가 있다. 이는 근거 없이 팽배한 불신이 아니고 심지어 국민연금 측에서도 공식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에서는 연금제도는 나라가 다 책임을 지고 운용하는 건데 설마 고갈이 되겠냐고, 그럴 일은 없다고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앞으로 인구문제와 지방소멸, 산업경쟁력 상실을 포함해서 국가 성장이 총체적으로 꺾이게 될,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맞이하는 총체적 과도기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 주장인 듯하다.


여러가지 커다란 문제를 애매하게 타협적으로 끌고 가지 말고, 인식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조기에 확실하게 방향을 정해서 개혁을 해야 하는 것 같다. 이민정책이나 가족제도 같은것도 마찬가지이고 말이다. 만약 그렇게 못하면 나라에 하나둘씩 구멍이 날 수 있고, 또 그게 이미 예정되어 있는 상황인 것 같다.


아무튼 국민연금이라는 것에 대해 좀 알아보니, 국민들한테 믿음을 주고 가입률을 높게 유지해야 실제로 나중에도 다들 잘 받을 수 있고, 다들 못받을 거라고 생각해서 가입률이 떨어지면 실제로도 받기 어렵게 되는 구조가 있는 것 같다. 물론 표준에 가깝게 받아들여지는 노동의 형태이며 실제 생산가능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근로소득자의 경우 애초에 의무가입이기도 하니, 여건 변화에 따라 납부율과 소득대체율을 잘 조절하는 지혜가 훨씬 중요하기는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게 지속가능하게 유지가 된다면야 내가 지금 내는 돈을 내가 미래에 받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내가 낸 돈은 윗세대에 가고 나는 미래 세대가 낸 돈으로 수혜를 입는 구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인구가 꾸준히 증가한다면 연금제도가 대체로 잘 작동할 것이므로 이 둘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데, 인구가 감소세로 접어들면 이 두 가지의 차이는 정말 커지게 된다. 그렇기에 현재 우리나라가 마주하고 있는 망국적 저출생에 의한 인구 감소가 크리티컬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말이다.


여하간 우리 세대부터는 나라가 제공하는 여러 사회보장 제도나 안전 및 건강 환경이 지금처럼 계속 그럭저럭 돌아갈 거라는 근거없는 신뢰를 접고, 여러가지 리스크들 (그리고 이미 예정된 문제들) 을 치열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특히 우리보다 더 미래 세대에게는 어떻게든 변화한 상황에 맞는 국민 인식의 변화와 제도적 체질개선이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세대야말로 그야말로 과도기이다 보니, 나라가 처음으로 겪는 총체적 체질 변화를 아무 안전장치 없이 정면으로 맞아서 정말 힘든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왜 하필 나라가 고점을 찍고 성장세가 꺾일 때 태어났는가 억울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런 근본적 불안감을 다른 세대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적이다. 위에도 말했지만 어느 쪽으로든 확실하게 방향을 정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예정되어 있는 문제들을 우리 세대 중심으로 직접 미리미리 제기하지 않는 한 쉽지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국민연금은 근로소득자만 의무 가입이기는 하지만, 대학원생 신분인 나도 임의가입 형태로 가입을 할 수는 있고 주변에서도 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개혁의 방향이나 강도가 어떻게 되는지 좀 더 지켜보고 정하려고 한다. 다만 어차피 가입할 거라면 일찍 가입해 둘수록 나쁠 건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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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5일 수요일

심리 해킹을 경계하라 - 전청조 사기 사건을 보며 (1)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을 하다 보면, 대인관계에서 감정 소모와는 별개로 정신세계의 아주 내밀한 부분까지 건드려질 일은 잘 없고, 설령 건드리더라도 거기에는 피차 아주 대단하거나 특별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불완전하고 얕은 면모와, 심연같고 신비로운 면모를 다들 피차 비슷하게 가지고 있을테다.

근데 만약에 그리 친밀하지 않은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그런 내밀한 부분이 사정없이 건드려지는 느낌이 든다면, 혹은 지나치게 고양되거나 푹 빠지는 기분이 든다면 (상대방이 의도했든 아니든) 사실은 상당히 무례한 일을 당하고 있는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대화를 통해 뭔가 인간에 대해 기존과 다른 시각, 특별한 시각을 체험했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런걸 너무 대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조심해야 한다.

그런 것들이 잘 디자인된 허풍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만, 설령 진짜로 우리네 심리구조의 어떤 의미있는 영역을 건드린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경우 사람 사이에서 그게 굳이 끄집어내어질 필요가 없는 것이며... 만약 그게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기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례한 악취미라고 생각해 버려도 크게 나쁠 게 없는 듯.


꼭 의도하지 않더라도, 대화하는 질감이 남들과 약간 다른 사람들이 있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럴 경우에는 뭔가 남다르고 깊은 게 있다거나, 상대방을 꿰뚫어본다는 느낌을 주기가 쉽고, 말을 하는 본인까지 이것을 자각해서 활용하다 보면 위처럼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다.

이렇게 언변이 지나치게 좋거나, (구체적이지 않고 막연한) 사람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발언이나 그럴듯한 거짓말 같은 걸 일삼는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해킹하기에 용이하게끔 타고난, 혹은 어디서 배운 몇가지 스킬을 가지고 있을 뿐인데, 이를 바탕으로 비즈니스적인 사기를 기획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런 능력도 결국 믿음의 영역을 건드려서 해킹하는 것이다 보니 사이비종교와 약간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일테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사람을 꿰뚫어볼줄 아는 것'이나, '사람 보는 눈'이 중요하다는 식의 말들을 확실한 컨텐츠 없이 모호하게 강조하면서 중요시하는 사람들, 혹은 인간의 내밀한 심리에 지나치게 몰입하고, 타인한테든 자신한테든 그러한 영역을 심오한 것인 양 뜯어보는 것을 지나치게 즐기거나 대단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바로 그러한 관심사 때문에 사기나 컬트에 매우 취약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들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그런 영역까지 건드릴 일이 없다는걸 기억하고, 사적으로 잘 관리하면서 자기 할 일을 잘 하면 되는 것 같다. 사적이라는 게 꼭 혼자 힘으로 라는 뜻은 아니다.


이런건 공부든 예술이든 체육이든 자기 할일을 잘 하는 능력과는 정말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나이를 먹다 보면 심리적으로 취약한 부분, 혹은 자기가 아끼는 사람들과 지내면서 물러지는 부분들이 생기게 되는데, 그런 것들을 잘 파고드는 사람을 주변에 계속 두고 있다 보면 하나둘씩 그리 권할 만하지 않은 선택을 하게 되는 듯하다.

근데 그러면서도 자기 하는 일의 영역에서는 변함없이 멀쩡하게 잘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남들이 쉽게 알아챌 수 있는, 혹은 알아채더라도 뭐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도 하고... 참 어려운 문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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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20일 금요일

음악 지휘 행위의 흥미로운 점: 비언어적으로 명령화되는 동작적 계기로서

예술활동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요체를 이루는 감각에 대한 기본적 체험조차 해 보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는 오케스트라 지휘인 것 같다.


물론 지휘라는 것이 오직 지휘현장에서의 손의 움직임만으로 환원되는 건 아니고,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감독 입장에서 자신이 가진 곡 해석을 바탕으로 평소에 단원들과 연습하고 교감하는 것이 아주 많이 작용할테다. 그러나 여기서는 공연 현장에서의 지휘행위에 일단 집중해보기로 한다.


위계 하에서의 협동으로 진행되는 예술활동은 물론 지휘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그러나 지휘의 경우는 신체의 동작적 계기와 그 연속적 질감이 단원들에 대한 명령으로서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해서, 단원들에게 언어 이전에 감각의 레벨에서 수용되고, 그 결과가 '연주'라고 하는 피드백 겸 예술실현의 결과로 시시각각 돌아오는데, 이는 다른 예술활동에는 잘 없는 요소인 듯하다.


그 이전에, 이미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는 연주자들이 누군가의 지휘를 받기 위해 굳이 같은 시공간에 모여야 하는데, 실제 음악경력을 바탕으로 지휘를 하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럴 일 자체가 없기도 하다. 지휘라는 기회는 이만큼 주어지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일상에서의 행동 중에 그나마 지휘와 연관될 수 있는 계기를 굳이 찾아보자면, 다름이 아니라 음악을 청취하면서 박자에 맞게 손과 발을 움직이거나 머리를 흔드는 등의 행동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행동들, 혹은 이러한 행동을 하고 싶게 되는 심적 경향을 '동작적 계기'라고 부를 수 있겠다.


예컨대 대중음악의 경우는 대체로 누구나 예측 가능하게 레귤러한 박자로 연주를 이어가지만, 가끔가다가 그러지 않고 점점 빨라지거나 느려질 때, 혹은 갑자기 연주를 중단하거나('잡는다'고 종종 표현됨), 모든 악기가 다같이 한번에 긁어서 청자의 집중을 유도할('깬다'고 종종 표현됨) 때, 그 곡에 대해 청자가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해석을 바탕으로 그 순간을 올바르게 '맞추게' 되면, 특히 그것을 동작적 계기와 성공적으로 연결짓게 되면 이는 청자에게 상당한 쾌감을 유발하게 된다. 물론 레귤러한 박자에 맞게 신체를 움직이는 것 자체도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작적 계기가 오케스트라 지휘에 있어서도 기초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다만 지휘는 위의 예시와 달리, 청자와는 무관하게 이미 잘 연주되고 있는 곡을 동작적으로 따라가는 것을 넘어서, 이미 대략적인 얼개가 정해진 연주들에 동작적 계기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능동적으로 개입해서 세부적 질감을 조직해 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내게 지휘 행위와 비슷한 일을 해 볼 기회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위의 모든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


기술매체의 발전에 따라, 이렇게 지휘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을 체험해볼수 있는 반응형 컨텐츠를 상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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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8일 일요일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역 맛집 'Radio Cafe'에 얽힌 역사적, 정치적 이야깃거리

크라쿠프의 야기에우워 대학(Jagiellonian University,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에서 열린 심포지움 "36th Marian Smoluchowski Symposium"에 참여하기 위해 다녀온 이번 폴란드 출장에서, 폴란드의 수도인 바르샤바는 단순히 출국 항공편 때문에 들른 거라 저녁에 딱 한 끼 먹을 시간만 있었다. 그런데 바르샤바 중앙역 앞에서 랩 동료가 우연히 찾아서 함께 들어간 식당 'Radio Cafe'가 상당히 역사적, 정치적인 이야깃거리가 많은 장소였다. 이 식당이 국내 인터넷에서 바르샤바 맛집으로는 나름 유명함에도, 이러한 배경에 대해서는 인터넷상에 한국어로 소개된 자료가 거의 없는 것 같아 한번 소개해 본다.


이 식당은 바르샤바 중앙역 역전앞에서 큰길을 건너면 바로 있는데,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와 달리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 푸틴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포스터가 붙어 있길래 범상치 않은 식당이구나, 그리고 폴란드 사람들도 현재의 러시아를 커다란 위협으로 느끼는구나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음식이 나오기 전에 잠깐 건네주는 읽을거리를 보니 이 식당에는 과연 그럴 만한, 그러나 일반론을 넘어선 훨씬 구체적인 배경이 있었다.




RFE(Radio Free Europe)이라고 해서 마치 한국의 대북방송처럼, 서구권 국가들이 냉전시기에 동구권에 송출했던 선전 방송이 있는데, 우리가 들른 식당 Radio Cafe가 다름이 아니라 RFE의 전 직원들과 그 가족들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폴란드에서 나중에 대통령을 하게 되는 레흐 바웬사도 이 RFE를 들으면서 국제적 대립과 동구권이 놓인 상황을 적극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기자를 하실 적에 젊은 시절의 바웬사와 직접 인터뷰를 하셨다고 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때쯤이 아닐까 한다).


이 식당은 바르샤바의 대학생들과, 최근에 이주해온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주로 직원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RFE 직원들이라는 배경에 의해 형성된 그들의 사회적, 국제정치적 신념을 실천하는 나름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사진의 일러스트에서도 보이듯이, 철의 장막(Iron Curtain)을 우리가 뚫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해 보였다.



지금의 푸틴도 갈수록 권위주의 체제로 이행하고 전면전까지 일으키면서 주변국들과 서구사회를 위협하고 있기에, 이들에게는 과거의 소련 혹은 그 이상으로 대단히 경계와 비판의 대상이 되고있는 듯했다.

이렇듯 정치적 요소가 있었지만 손님한테 부담을 주는 부분은 없었고 전반적인 음식 맛과 식당 분위기는 정말 훌륭했다. 특히 비록 메인메뉴 나오기 전의 에피타이저 같은 거였긴 하지만, 서양권 문학에서 가족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 종종 등장하는 따뜻한 닭고기 수프를 여기서 처음 먹어 보았다.

메인메뉴였던 슈니첼도 커다랗고 맛있게 요리되어서 든든하게 먹을 수 있었다. 약간 매운맛이 있는 자우어크라우트 (빨간 김치와 비슷한 포지션일텐데 한국인 입장에서는 전혀 맵지 않은 정도) 도 잘 어울렸다.






식당으로 가는 과정에서 본, 바르샤바 중앙역의 역전앞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두 건물은 바로 삼성과 LG 건물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서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그럴 수밖에 없게끔 위치해 있다. 특히 LG 건물에 쓰여진 future is here 라는 문구는 정말 잘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한편, 시선을 뒤쪽으로 돌리면 소련의 스탈린이 1950년대에 바르샤바에 지어 준, 2020년까지도 폴란드 최고층 건물이었던 문화과학궁전이 있다. 참 웅장한 건물이다.




바르샤바의 복합적인 역사성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인상적인 스카이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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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24일 일요일

[음악 추천] Native Construct - 'Mute'

최근에 스포티파이를 시작한 이후로 좋은 곡들을 자동으로 추천받아서 듣고 있다. 특히 해외에 많다 보니 정보를 잘 찾아보기 어려운 프로그레시브 메탈/재즈퓨전 밴드들을 스포티파이가 잘 추천해 준다.

그런데 오늘은 Native construct의 Mute라는 굉장히 독특한 곡을 알게 되었다 (Youtube 링크: Native Construct - Mute (OFFICIAL VIDEO)). 이걸 듣고나니 다른 좋은 추천곡들이 다 심심해져 버렸다.


이 곡은 처음에는 거의 심포닉 블랙메탈을 연상케 하는 스트링을 얹은 블라스트비트로 시작하더니 (단 이때도 선율은 꽤 복잡하게 쓰고 있음) 갑자기 뮤지컬(!?) 내지는 디즈니영화(?!) 같은 부분이 나오고.... 그런데 이게 흉내만 낸 게 아니라, 노래-연기의 '대사'를 뒷받침하기 위해 반주 자체가 시시각각 바뀌어 주는 뮤지컬 특유의 편곡을 아주 잘 살렸다.

그 다음에는 좀더 프록메탈/재즈퓨전에서 많이 들리는, 지극히 차분하고 정제되어 있는 정교하고 복잡다단한 연주가 한동안 진행이 된다. 그러면서도 뮤지컬스러운 스트링 등을 조금씩은 계속 가지고 가다가... 그런 요소가 점점 고조되면서 앞에 나온 모든 스타일들이 종합되는 클라이막스로 곡이 끝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각각 별개의 곡을 붙여둔것처럼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메탈의 범주 내에서 잘 통합되어 어우러지면서 비교적 무리없이 한 곡처럼 들리게 구성이 되어 있다.


그리고 프록메탈/재즈퓨전 음악들은 너무 깔끔하게 정제되어 있는 나머지 나머지 그 음악적 성취에 비해 너무 편하게 흘러가듯이 듣게 되어서, 각 잡고 듣지 않는 한 곡에 집중을 잘 못 하게 되는 점이 있는데.. 이 곡은 오히려 인간적인 요소들을 많이 복귀시켜서 매 순간 재미있게 들을 수 있게끔 하는 듯.

전반적으로 소위 아트록이라고도 불리곤 하는 70년대식 프로그레시브 록을 의식한달까 리스펙한달까... 아무튼 그런 요소들이 많이 느껴지는데, 그것들에 21세기 헤비 뮤직의 성과를 흡수시켜서 한 30배는 더 현대화한 느낌이다.

7년 전 곡이라고 하는데 간만에 정말 충격적으로 즐거운 청취 경험이었음.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이 많이 있는지 아니면 이 곡이 유니크한 건지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스타일이고 대단히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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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17일 일요일

수완사회: 소비자 보호의 상업윤리

최근에 '수완사회'라는 키워드로 한국 사회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해 보고 있다.

나는 한국 사회에서 시스템의 가치가 다소간에 낮게 평가되거나, 혹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더라도 실제로는 작동을 못 하고 유명무실화되어 있는 상황이 많다고 생각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수완'을 검색해 보면 '일을 꾸미거나 치러 나가는 재간'이라고 해설되어 있다. 위와 같이 시스템이 부재한 영역에서, 이러한 인간적인 '수완'이 여전히 고평가되며 또한 실제로도 무척 중요한 면이 많은 듯하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이런 '수완사회'의 면모가 비교적 덜한 사회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매일 보고 듣고 생활하는 나라에 대해 굳이 다른 나라와의 상대적 비교를 하지 않고 그 자체로 이야기해 보는 것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한, 잘 작동하는 시스템 뒤에도 사실은 언제나 '사람'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잘 작동하는 시스템 뒤에 사람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과,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영역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충돌하는 것을 우려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이러한 '수완사회'의 대표적인 단면은 바로 상업 부문에서 나타난다. 나는 정해진 금액을 내면 정해진 물건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믿음이 현대 상업사회에서 소비자들이 누릴 수 있는 큰 혜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러한 기본적인 상업윤리(?)에 대한 신뢰를 잃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여러 업종들에서 암묵적으로 돈을 추가로 받거나, 고객들한테 단순히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성들인 편지 내지는 선물을 받는 것, 혹은 공간에서 지켜야 하는 행동과 관련된 과도한 규칙들을 관행처럼 만들어 둔다는 이야기가 주변에서 많이 들려서 그렇다.

특히 (1) 젊은 사람들이 운영하며 콘셉트가 선명한 소규모의 공간 (식당, 카페 등) 이나, (2) 이사, 미용, 웨딩, 촬영 및 각종 이벤트 관련 업계 쪽에서 그런 현상들이 많은 것 같다.


(1)의 경우 한때 꽤 화제였던 레터링케이크 가게 운영방침 관련 갈등들도 어찌보면 이것의 연장선일 수 있다. 또한 극히 최근에는 일부 식당들을 시작으로 북미의 팁 문화를 한국에 이식해 오려는 게 아니냐는 논쟁이 생겨 언론에 보도까지 되기도 했다.

이런 게 요즘 실제로 많아지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그랬는데 요새 나한테 많이 들릴 뿐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대중의 구매력 및 소비 욕구가 높아지면서 소비형태가 변화하고,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효과가 커진 상황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이 아닐까 한다. 사장님들이 공간과 고객경험을 독창적으로 디자인하는 데에 갈수록 수고를 많이 들이게 되고, 그에 따른 충분히 많은 금전적 보상과 인간적인 존중을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왕이면 가게에서 원하는 공간의 콘셉트나, 업무의 편의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규칙들을 기본적으로 고객들이 지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걸 존중하며 지키는 것을 참 재미있고 예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왕이면 돈만 내면 기분을 상하게 해도 된다는 태도 대신,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이 직업적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좋은 고객이 되자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존중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가게 입장에서 보편적인 고객이 지키기 힘든 규칙들을 요구하거나, 아니면 '사람 가려 가며' 서비스나 가격을 달리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례들도 실제로 존재하다 보니, 일괄적인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매 경우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밖에 없는 애매한 영역들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게들에서는 사실 가게 측의 문제보다는, 손님들의 각종 갑질과 민원이 훨씬 많고 심각한 문제이기는 할 테다. 그러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는 잘 없는 것 같다. 이상적으로는 두 문제는 경합하는 관계가 아니고, 둘 다 해결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돈만 내면 다 된다, 혹은 돈을 못 내겠다 하는 갑질 고객들이 워낙 많다 보니, '고객이 잘못한 거다 vs 사장이 잘못한 거다'로 싸우는 상황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또한 더 크게 보면, 공론장(?)의 자원도 한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어떤 논점이 얼만큼의 비중으로 형성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두 문제가 경합하는 양상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해 두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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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는 위 (2)의 경우, 즉 이사, 미용, 웨딩 및 각종 이벤트 관련 부문에서 대금 지불을 깔끔하지 않게 하는 구조가 생기는 것에 대해 다루어 보자. 사실 이쪽은 (1)의 경우보다 여파가 더 심각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오가는 금액의 액수가 훨씬 크기도 하고, 서비스의 질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웨딩 준비에 관여되는 여러 부문의 사람들이 수고비나 식사비 등의 명목으로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추가 현금 입금을 요구하는 경우, 혹은 요구하지 않더라도 암묵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는 금액이 아니라, 손으로 예쁘게 꾸민 편지를 쓰는 것이 암묵적 관행으로 자리잡아 있다고 하기도 한다.

또한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와 결합해서 썩 놀라운 사례도 보았다. 고객님들이 비싼 선물을 가지고 오셨다며 인스타그램에 고급 간식 사진 같은 것을 올린다. 그러면 고객들은 관행인가보다 하면서 그런 선물들을 가지고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처음에 올린 사진은 실제 고객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도용한 사진이다.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 구조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나는 밴드 활동을 하다 보니 미용, 의상, 촬영 등 여러 사람들이 단계별로 관여되는 일에서의 대금 지불을 수차례 해봤었다. 반면에 개인적인 성격상 업계의 여러 암묵적 관행들은 잘 파악하고 대처를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듣고 나니,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받기 딱 좋겠다, 혹은 그동안 그런 일이 이미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내가 서비스를 받는 입장임에도 암묵지를 캐치하고 인간적인 수완을 발휘해야만 적당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들이 많다면, 구매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피곤하고 솔직히 공포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런 구조가 생기는 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면도 있다. 프로세스에 워낙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단계적으로 관여를 하는데 그 사람들이 각자 돈을 받아가야 하다 보니, 사전에 정확한 금액을 얘기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일의 난이도도 높다: 고객들의 요구에 맞추어서 매번 다르게 해야 하고, 한나절 넘게 함께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출장을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듯 잘 정의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고객과의 밀접한 소통이 필요하고, 또한 단순 금전으로 환원되지 않는 인간적인 감사 표현도 아무래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여기서 돈만 내면 됐지 하는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상당히 인간미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고객들도 아무래도 특별한 순간을 위한 거니까 조금 무리하다 싶은 요구를 받아도 좋게좋게 하자는 생각도 있을 것이고, 일이 돌아가는 구조가 너무 복잡하다 보니 일일이 따지기 어려운 상황들도 있을테다.

그래도 가급적이면 미리 얘기해서 정확하게 표시된 가격으로 지불을 해야지, 암묵적으로 추가금을 받는게 당연시되는 건 전혀 좋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돈과 별개의 감사 표현도 각자가 진심으로 하면 되지, 이상하게 관행처럼 만들어져 있다면 그것 역시 참 별로인 것 같다.

약간 별개의 얘기일 수도 있지만, 가격 자체에서 부당하게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최근에 보도된 것으로는, 산후조리원을 이용할 때 국가에서 100만원을 지원하기로 하자, 산후조리원들에서 일괄적으로 금액을 100만원씩 올렸다는 것이다. 나는 아무리 자본주의라고 해도 이러한 행태는 제대로 된 가격의 결정방식이 아니므로 자본주의 질서를 위협하고, 국가와 국민을 조롱하는 행태이므로 규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그래도 사람들이 결혼, 출산, 육아 등에 시간적, 금전적 부담을 무척 많이 느끼는데, 이러한 부문들에서 사람들이 소비자 단체 같은 거라도 만들면 어떨까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들이 철저한 개인으로서 직접 복잡한 대금지불을 파악하고 감당하는 일이 줄어들게끔, 또한 무리한 요구가 오가는 일을 줄어들게끔 해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업체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일이 현대화, 시스템화 되고 신뢰를 받는 셈이므로 장기적으로 더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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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필자의 관점에 대한 비판도 가능하다: 상업, 특히 서비스업에서 '수완'이 발휘될 여지를 줄이고 시스템적으로만 하자는 주장, 그리고 소비자에 대한 보호 요구가 과도해진다면 그것은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얘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가격과 서비스가 표준화되어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상업거래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철저한 불확실성 속에서의 흥정에 있다. 또한 유통의 말단에 있는 일반 소비자 레벨에서 잘 표준화된 소매를 제외하면, 지금 현재도 수많은 야생(?)의 흥정과 인간적 수완에 의해 전 세계 상업과 무역의 많은 부분이 작동하긴 할 것이다 (나도 사고 싶은 옷 같은 걸 찾아서 사느라 그런 걸 아주 약간은 해 봤다).

그러나 뭔가 대단히 특별한 상품 내지는 한정된 서비스를 거래하거나 아예 직업상 상업 자체에 깊게 관여하는 게 아닌, 비교적 보편적인 범주의 소비 (이사, 웨딩 등 일회적인 것도 포함) 를 할 때까지 소비자들이 이런 것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찌되었든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다. 현대사회의 등장이란 결국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집단이 직접 충돌하는 것을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완화하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만약에 그것들이 보편적인 소비가 아니므로 표준화와 보호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더욱더 사람들이 꺼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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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3일 일요일

정치적 지지를 맡겨놓은 듯한 태도는 잠재적 아군마저 적으로 돌린다

정치 고관여층들이 특정 그룹에게 정치적 지지/반대를 '맡겨놓은 것처럼' 대하는 것도 참 유감스러운 일인 듯하다. 부당한 일을 당하고 있는데도 통합된 결사체의 부재, 내외적으로 요구되는 탈정치적 태도를 비롯한 여러 문제 탓에 크게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것 같아 보이면,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어떤 소문들이 있는지 이야기를 먼저 자세히 들어 보는 게 이상적인 태도 아닌가. 효과적인 창구가 없다 뿐이지 막상 얘기를 시켜 보면 사정을 자세히 알고 얘기를 해 줄 분들도 많이 있는데 말이다.


일례로 요즘 일각에서는 '과학자들 연구예산 깎인다는데 왜 반대시위 안하나요?'라면서, 옛날에 누군지도 모르는 과학기술인 백수십 명이 윤석열 지지성명 하나 낸 거 기사 첨부해 가면서 과학자들에 대해 막연히 조롱 및 원망하는 게 아주 스포츠처럼 되어 있다. 설령 과학자 집단의 (탈)정치적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이런식으로 단정적으로 적으로 만들면 결코 마음을 얻기 힘들고, 그 결과는 자기실현적 예언밖에 더 되겠나.

당장 예산이 깎인다는데 비판적인 얘기를 다들 했지 왜 안 했겠는가? 심지어 각 대학 이공계쪽 학생회들도 의견을 활발히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성향을 배제하고 건조하게 쓰려다 보니 메시지의 선명성이 정치 고관여층들의 성에 차지 않게 되어서 그게 또 비난받던데, 요즘의 대학가 특히 이공계에서 '정치적 오해'를 피해야 하는 강박에 가까운 요구가 꽤 널리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 정권 비판자들 입장에서는 저 정도로 메시지 나온것에 비난이 아니라 오히려 박수를 쳐 줘야 맞지. 아무튼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이 보이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서 하는 얘기다.

오염수 관련해서도 자꾸 과학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바람에 과학자들이 반드시 정권과 한편인 것처럼 생각해서 저런 식의 비아냥을 더 거리낌없이 하는것도 없지 않은것 같은데, 과학자들 중에서 괴담 말고 과학을 믿으라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건 과학과 별개로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믿을수 있느냐의 문제, 그리고 위험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 속하는 정치사회적 문제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결국 접점을 조금씩 넓혀나가면서 신뢰를 확보해야 각 사회적 그룹이 사안에 따라 정치 쪽이랑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이합집산 하는 역동적인 과정이 생산적으로 진행이 될 텐데, 어느 진영이든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특정 그룹은 무슨무슨 성향이니까 마음놓고 적으로 돌려서 내 적의를 마음껏 쏟아부어야지 하는 태도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일부 정치고관여층 개개인의 태도일 뿐인데 무슨 상관인가 할수도 있지만, 정치인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지지층 전반에 깔린 정서와 대체로 같이 가게 되어 있고, 그 결과로 각 사회집단을 불필요하게 적으로 돌려서 신뢰를 잃는 걸 지난 몇년간 아주 많이 봤기 때문에... 위와 같은 태도를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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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30일 수요일

비판을 차단하는 졸속행정과 극우 이념운동으로 점철된 윤석열 정부의 15개월

대선 직후에는 어떻게 생각했냐면, 정권이 바뀌더라도 성실하고 양심있는 시민들의 절차적, 실질적 법익이 당장 대규모로 침해되기는 어려울 것이고 설령 그런 일이 있더라도 국민들의 비판과 감시가 작동할 테니까, 검사출신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이제 우리도 검찰에 잡혀가는거 아니냐'(주로 SNS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많이 말하던)라는 식의 과도한 언사는 일단은 반대자들한테 비웃음만 사기 쉽고 별로 좋지 않다는 게 내 솔직한 의견이었다. 이 얘기는 무려 대선 바로 다음날 포스팅에서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군검찰이 해병대 사망사건 수사단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보니 (뉴스 기사 링크: [1보] 군검찰,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 청구 | 연합뉴스) 위의 우려는 그 동기와 별개로 결과적으로 결코 조롱도, 과도한 걱정도 아니었고 그 자체로 맞는 말이자 타당한 우려였다는 생각까지 든다.

관료집단은 그 보신주의적 성격상 정권의 의지가 강하다면 아무리 이상한 일에 대해서도 억지로라도 논리를 만들어낼 수밖에 없고 (이는 대통령 실언 수습 과정, 그리고 수능 논란이랑 R&D예산삭감 등 졸속정책 등에서 여러 차례 보았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법익이 직간접적으로 심대하게 침해되며, 논쟁의 내용 면에서도 건전하고 조심스러운 논의일수록 가장 빨리 힘을 잃게 된다. 이렇게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관료집단을 통해 구현되는 국가권력을 내가 너무 가볍게 봤다.

특히 이번 정부 들어서는 일이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비판당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렇지 않게 대규모로 법익을 침해하고 일을 말도 안 되게 더 키우는게 벌써 십수 번씩이나 눈에 보이니까 정말 걱정이 된다. 외교 무대 관련 논란이나 수능 킬러문제 논란 때도 여러 번 그랬었다. 사실은 백수십명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는 얘기도 있는데 이건 너무 마음이 아파지니까 더 얘기는 안 하겠다.

물론 군인이라는 신분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폭로하고 싶으면 이런 고초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기는 한데, (내가 평시 군검찰 군판사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인건 차치하고) 그걸 감안하고 봐도 지금 수사단장에 대한 군검찰의 적극적인 기소는 다름 아니라 윗선의 외압을 폭로하는 행보에 대한 보복임이 명백해보인다.


말문이 트인 김에 역사관 논쟁도 얘기해보자. 21세기 이래로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보수 이념운동이 마침내 꽃을 피우는 형국인데 그 수위가 대단히 세며 국민통합이 아닌 좌우 분열을 노골적으로 의도하는 점, 그리고 육사를 비롯한 군 조직이 자신들의 내부 방침을 정리하는 것일 뿐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점이 문제겠다.

임시정부 수립 및 8.15 광복이 아니라 1948년 건국에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찾고자 하는 것은 뉴라이트 역사관에서 늘 밀고 있는 방향이니 이번 정권 들어 그렇게 하겠다 싶긴 했지만, 그 방법으로서 당대 인물의 공산주의와 관련된 행보를 '현재의' 북중러와 직접 연관시켜, 현재적 이적성(利敵性)에 가까운 것을 단정적으로 부여하고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배제하려는 지금의 행보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막말로 독립운동가들이 독립 전후에 공산주의와 연관이 있었다고 해서 그들의 대한민국 수립에의 기여를 일괄적으로 불인정해 버리면 (실제로 홍범도 유해를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한다는 보수단체의 주장도 있었다) 오히려 북한이 그들에 대한 계승의식을 배타적으로 취하는 것을 막을 논리가 사라져서, 대한민국을 이념의 무균실로 만들어 그 입지를 스스로 좁히고 맷집을 약화시킬 위험도 있지 않은가.

섬세한 역사학적 논리가 아닌 오직 반공 몰이를 통해 역사 논쟁에서 정치적으로 승리하려고 하는 보수 이념운동의 오랜 나쁜 습관이 정권에 의해 직접 추인되면서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정부여당이 매우 강경한 의견을 천명하니까 그동안 외면되거나 자제되었던 온갖 강경한 의견들이 덩달아 힘을 얻어 수면위로 나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역시 정치권력의 가장 무서운 힘 중에 하나는 스스로의 개념체계를 - 그 개념체계의 건전성과 무관하게 - 현실 사회에 그대로 구현해 버리는 능력이다.


인사도 정말 문제다. 막말로 이동관이 자녀 학폭 무마 적극 개입, 정보기관과 연계한 적극 방송탄압 경력 등 숱한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통위장으로 임명을 시키려는 모습이 보인다면, 2019년 당시의 검찰이었다면 바로 수사개시를 해야 맞음.

정권 초반 고위공직자 인사문제는 일차적으로 정치영역에서 해결을 보는 게 순리이기도 할 것이고. 후보자의 논란사항에 대해 검찰이 전격 수사를 개시해봤자 정권이 아직 건재하니까 제대로 진행될 각이 안 선다고 봐서 일반적으로 안 하는 일인것 같기는 하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3년 국정원 덧글사건, 그리고 2019년 조국사태 당시 검찰 내 특정인사는 숱한 노골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그걸 해냈기 때문에 많은 박수와 관심을 받을수 있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결국 임명된) 이번 이동관 방통위원장에 대해서는 검찰이 그런 움직임을 전혀 안 보여준다면 국민들이 이건 뭔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겠냐는 것.

물론 여러번 지적했듯이, 이걸 어떻게 해야 이상적이냐고 물었을 때 답이 명확하진 않다. 무슨 카드게임 하는 것처럼 어떤 건은 바로 수사 개시하고 다른 건은 각이 안 나오니 꿍쳐놓고 못 하고... 특수수사의 이러한 '근본적으로 선택적인' 모럴은 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지만, 부조리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관료기구가 자율적 시스템 위주로 작동하면서 구성원의 직업윤리적 책임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아무튼 지난 5년 동안 민주당 지지자들이 하는 문제가 많은 발언들에 질려서 가급적 거리를 뒀는데, 정권 바뀌고 나서 나도 이렇게 금방 그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는 말 (나도 잡혀가는거 아니냐? 왜 조국은 수사했는데 쟤는 수사 안하냐?) 을 하게 될 거라고는 1년 전까지는 생각을 못했다. 제대로 하면 이러지도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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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7일 목요일

R&D 예산삭감, 부실재정 의혹 그리고 설명 부재 유감

이번 R&D 예산 일괄 삭감으로 인해 기존에 진행중이던 과학기술 연구 프로젝트들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게 될텐데, 이런식으로 흔들고 죄게 되면 정부가 우려하는 보여주기식, 실적 채우기식 연구들을 오히려 더 종용하는 셈이 아닌가?

설령 연구비 부정수급이 존재하고 그것을 잡기 위한 좋은 의도라고 치더라도 출연연, 과기원 포함한 대규모 삭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


특히 출연연뿐 아니라 연구재단, 한림원 등의 예산도 깎이게 될 경우, 연구가 정상적으로 되려면 장비랑 시약, 그리고 고용관계인 근로자 인건비 등에서 비용을 줄이기 어려우므로 결국 연구재단을 통해서 받는 다수 대학원생들 인건비가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 틀림없는지라 개인적으로도 참 걱정되고 의욕이 떨어진다.


이렇게 정확한 설명도 양해도 없이 광범위한 부문에서 대폭 깎은 것을 보니 애초부터 어떤 체계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졸속으로 정해진 것이고, 그 이유는 국가의 재정상황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꽤 유력한 추측도 있는데, 그 와중에 한국자유총연맹을 비롯한 우파 관변단체 예산은 증액했다는 보도를 보면 참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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